상아탑/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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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생활에 있어 여행이 지극히 필요한 줄은 알면서도 나는 여행에 취미를 그토록 느끼지 못한다. 그리하여 특수한 사정으로서가 아닌 한에선 우금(于今)껏 여행을 위한 여행이란 단 한 번도 가져 본 일이 없다.

고독이 찰지게 두고 스며들 때에는 여행이라도 하여 보면, 시원할 듯이 문득 생각은 되면서도 차마 그것을 실행하여 그 찰지게 파고드는 고독을 아주 잊고 싶지는 않다. 고독이란 그 무슨 진리를 담은 껍데기 같게도 생각이 되면서 나를 버리지 않고 따르는 그 고독이 차라리 반갑게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고독을 피함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고자 하기보다는 그것을 싸와 익힘으로, 그래서 그 껍데기를 깨트림으로 그 속에 담긴 그 참된 진리를 알뜰히 꺼내 보고 싶은 욕심이 여행에의 취미보다 오히려 고독에의 취미에 보다 더 강한 유혹을 받는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고독이 심할수록 고요한 곳을, 지극히 고요한 곳을 찾아서는 것보다 더한 고독으로 친하여 보자는 것이 언제나 잊지 못하는 태도다.

그러나 그 고독이란 껍데기 속에 들어 있을 듯한 진리는 가만히 눈을 감곤 숙친하기에 여간 베찬 것이 아니다.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하여 오는 가슴은 얼마 동안의 계속을 더 못 견디어 벌떡 몸을 일으켜 방안으로 걸음을 돌린다. 역시 감은 눈에 뒷짐을 지고 홍글홍글 몇 바퀴고 수없이 돌아본다.

그래도 마음이 시원치 않으면 밖으로 나가, 뜰 안을 돈다. 방안보다는 여유 있는 면적이, 그리고 호흡할 수 있는 신선한 공기가 한결 시원함을 느끼어 주위의 사정에 거리낌이 없는 한, 그래서 때가 밤일 경우에는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몇 시간이고 줄곧 계속 하여 돌게 된다. 그러나 중안의 시선에 이 행동이 드러날 우려가 있는 낮일 때에는 산상(山上)을 찾는다. 산상의 평다분한 잔디판을 고요히 눈을 감고 제 사념에 자기를 잊어 가며 거니는 맛이란 담배연기 자욱한 기차 속에서 오력(五力)을 못 펴고 무릎을 맞비벼야 되는 그러한 여행에 비할 정도의 맛이 아니다.

그리하여 끊일 줄 모르는 이 취미는 같은 산상의 같은 자리에서 흔히 반복되는 것이므로 한때에는 흉보기 잘하는 근처 집 노파에게 아무개가 그게 미치지 않았나? 하는 퀘스천마크를 길게 끌고 다니며 외임을 들어 본 일도 있지만 고독을 친하자는 나의 이러한 취미는 도차 안 고칠 수 없는 하나의 버릇으로 되어 무엇을 생각하게만 되면 그 처소가 어디임을 헤아리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서 왔다갔다 좌석을 거니는 무례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 버릇을 구태여 자신에 책하고 싶은 마음이 없이 주위를 피하여 마음놓고 거닐어 볼 터전이 없는 서울에 살게 됨을 한한다.

문 밖을 나서면 거리다. 눈을 부릅뜨고 좌우를 살펴 가며 걸어도 어느 틈에 앞으로 맞닥뜨리는 자전거, 자동차가 사람을 몰라보는 혼잡이다. 바른 정신을 가지고는 차마 감불생심이요, 산이 그리우니 발 가까운 데가 없다.

적어도 하루의 시일은 다들 요(要)할 만한 곳이다. 그러니 다만 허여(許與)된다는 곳이 오직 제가 기거하는 방안일 따름이다.

그러나 방이란, 내 방이자 곧 아내의 방이요, 그러니까 아이들의 방이 또한 아니 되지 못한다.

조용할 리도 없거니와, 세간살이 도구가 너저분히 널렸다. 생념이 날 턱도 없는데 걸음까지 또한 촌보도 허치 않는다.

그러니 실내 여행에조차 굶주리게 되는 고독의 껍데기는 이제 비껴 볼 길이 없이 제대로 아주 굳어져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