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침묵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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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못 할 건 글인가 보다. 테마의 준비만 되면 써질 것 같아도 마음의 안정과 시간의 여유가 없어도 붓은 내키지 않는다. 테마가 확정되고 마음의 안정에 시간의 여유까지 충분히 있어야 붓끝엔 흥이 실린다. 한 센텐스에 같은 부사가 곱잡아 하나만 연달리게 되어도 필흥(筆興)이 죽는 내 성벽(性癖)엔 원고 마감 기일이 박두하면 마음의 초조에 그 테마가 충분히 매만져지질 않는다. 적어도 그 기일을 4, 5일 쯤 앞두고 끝이 날 만한 예정의 시일이 내다보여야 마음이 턱 놓이고 붓이 들린다.

그러나 이렇게 붓은 들리게 된다 해도 그 진행까지엔 또 하나의 난관이 돌파되어야 하는 것이니, 그것은 처음으로 내어야 할 서두 그것이다. 나에겐 언제나 이 서두 일행(一行) 여하에 그 작품의 성(成)·불성(不成)이 따르게 된다. 서두가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시일 관계로 그래도 되겠지 하고 진행을 시키다가는 번번이 실패를 본다. 실로 이 서두 일행에 내용을 살릴 작품의 형식이 결정되는 것이니, 이 서두에 소홀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테마가 결정되고 마음의 안정을 기다려 시간의 여유를 충분히 얻어 놓고도 서두가 흡족히 되어야 그제서야 붓은 일사천리로 내닫게 된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의 창작에 있어선 시작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만 되면 시간이 허하는 한 쉼이 있다.

이 서두 일행 때문에 살이 깎인다. 8·15 이후 내가 들었던 붓을 다시 놓고 침묵을 지키기 무릇 몇 해이거니와 구상까지 다 되어 있는 것도 이 서두를 내지 못해 머리 속에서 그대로 썩어나는 게 4, 5개나 된다.

누군가 글을 비붓이 부탁만 해도 곧 승낙을 하고 잡은 참에 앉아서 4, 50매 내지 100여 매짜리를 꾸려대던 그 옛날 어느 시기를 생각하면 내게도 과거에 이런 시절이 있었나 하리만큼 놀랍게 생각된다. 이것이 글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소치였는지 모르나 어쨌든 그런 용기만이라도 되살려 찾고 싶은 마음이 문득 나곤 하는 때가 있다.

이번 《문예》지 창간호가 나에게 그렇게도 간곡히 마감 기일을 연기 하면서까지 창작을 원하는 그 부탁의 성의로 해서라도 어떻게 하나 만들어 보리라 시간이 있는 대로 노력을 해 보았으나 이놈의 서두가 몇 번이고 고쳐 보아도 불만이어서 끝내 이행을 못 하고 이런 잡문으로 색새(塞賽)를 하게 된다.

구체적인 내용 이야기는 작가의 비밀이라 피하거니와 후암동 개천가 종이 집을 쓰고 사는 그 어떤 부족의 내력을 그려 보려고 처음 서두를 이렇게 내었던 것이다.

별이 흐른다. 물이 흐른다. 밤이야 깊거나 말거나 별은 별대로 흐르며 눈을 부시고, 물은 물대로 흐르며 귓전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마음이 붙질 않아 찢어 버리고,

어야 디야아
어어야 디야아

놋대가 물을 세기 시작하자 배는 수면을 미끄러져 나간다.

어야 디야아
어야 디야아

노래 소리가 높아질수록 미끄러지는 속도도 빠르다. 호심으로 호심으로 기어드는 배는

하고, 써 보다가 또 집어치우고,

백여 년 동안이나 해마다 가을철이면 진흙으로 뒤바르고 하기를 잊지 않은 바람벽은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단단하다. 육십이 장근한 늙은 몸이라고는 해도 힘을 다하는 곡괭이였다. 어깨 너머로 잔뜩 품었다가 냅다 건너 치는데도 ‘텅’하고 소리만이 요란할 뿐, 구멍 하나 제대로 뚫리지 않는다.

엇취
엇취
땀을 벌벌 흘리며 초시는 곡괭이를 메었다 건너친다.

이렇게 시작을 해 보니 어느 정도 내용을 살리어 나가는 것 같아서 그대로 계속해 10여 장을 내려 써 보았으나 이 역시 달갑게 마음에 당기는 것이 아니어서 또 내어 버리고는 아예 붓대를 놓고 단념해 버렸다.

이렇게도 어려운 창작이건만,

“저 댁에서는 소설을 쓴대. 쓰윽쓱 쓰기만 하면 돈이 생길걸…….”

하고 우리 집을 가르쳐 근처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땐 참으로 어떻게 대답을 하여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