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백리아의 이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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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歐羅巴[구라파]를 經由[경유] 하여 北美 [북미]로 가는 路次[노차]에 海蔘威[해삼위]를 거치어 吉林省穆陵縣[길림성 목릉현]인 中東線[중동선] 물린 驛[역]에, 병으로 누우신 秋汀[추정]李甲先生[이갑 선생]을 아니 찾을 수 없었다.

秋汀[추정]과 나는 前面[전면]이 없다. 그렇지마는 그때 朝鮮[조선] 靑年[청년]으로 秋汀[추정]李甲[이갑]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으랴.

秋汀[추정]도 雜誌[잡지] 반연으로인지 나를 아시었었다.

日本 [일본] 陸軍士官學校 [육군사관학교] 出身 [출신], 日露戰爭[일로 전쟁]에 觀戰武官[관전무관]으로 滿洲[만주]까지 從軍[종군] 하였고, 韓國 [한국]에 돌아와 陸軍參領[육군참령]·軍部大臣副官[군부대신 부관]을 歷任[역임] 하고, 後[후]에 官職[관직]을 내어던지고 여러 同志[동지]를 糾合[규합] 하여 西友學會[서우학회](後[후]에 西北學會[서북학회])를 組織[조직]하여, 朝鮮敎育運動[조선 교육운동]의 嚆矢[효시]를 이루었을 뿐더러, 또한 曠前絶後[광전절후]한 有力[유력]한 敎育運動[교육운동]을 이루었고, 그뿐 아니라 大規模[대규모] 結社[결사]의 嚆矢[효시]를 이루어 民衆團結運動[민중단결운동]의 氣運 [ 기운]을 促進[촉진]한 것이다.

그러다가 庚戌年[경술년] 合邦[합방]의 機運[ 기운]이 熟[숙]하여 支撑[지탱]할 수 없었음을 看破[간파]하고, 飄然[표연]히 亡命[망명]하여 俄京[아경] 페테르스브르크에 逗留[두류]하던 중에, 全身不隨[전신불수]가 되어 德京[덕경] 法京[법경]의 모든 名醫[명의]의 治療[치료]를 받았으나 効[효]가 없어, 조그만 집을 빌어 가지고 療養[요양]하시는 中[중]이었다.

내가 물린에 秋汀[추정]을 찾은 것이 바로 陰曆[음력] 正初[정초]이던가 싶다. 나는 上海[상해]에서 陽曆換歲[양력환세]를 하고, 海蔘威[해삼위]에서 俄曆換歲[아력환세]를 하고, 그리고 물린에서 陰曆換歲[음력환세]를 했다고 記憶[기억]한다. 이때 물린에는 눈과 얼음뿐이었고 춥기도 여간 아니었다.

秋汀[추정]이 居處[거처]하시던 집은 房[방]이 셋에 부엌, 其他[기타]가 붙은, 아무렇게나 지은 本製[본제] 洋屋[양옥]으로, 방에는 카아핏도 깔지 아니하고, 窓[창]은 겹窓[창]이나 커어튼도 없고, 家具[가구]라고는 秋汀[추정]이 앉은 安樂椅子[안락의자] 外[외]에 木椅子[목의자] 二[이], 三張[삼장]과 장지 하나, 새둔 寢室[침실]에 寢臺[침대] 하나쯤이었다고 생각한다.

寢室[침실]과 居處室[거처실] 새에는 페치카가 있어서 寢室[침실]로 아궁이가 나고, 居處室[거처실]은 西南向[서남향]으로 窓[창]이 있어서 光線[광선]은 充分[충분]히 들어 오고 아라사 사람의 집이니만큼 방이 춥지는 아니했다.

秋汀[추정]은 아침에 일어나서는 安樂椅子[안락의자]에 앉아서 저녁에 갈 때에야 내리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어느 때에 가나 그가 같은 姿勢[자세]와 같은 方向[방향]으로(南窓[남창]을 등지고 페치카를 향하여) 앉아 있는 것을 보았으나 그 밖에 다른 모양으로 있는 것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 起動[기동]을 못하기 때문에 寢臺[침대]에서 椅子[의자]에 올 때나 그와 反對[반대]일 때나(이것이 그의 移動[이동]의 全體[전체]다) 그 夫人[부인]과 따님의 힘을 빌었을 것이다. 그래도 謹嚴[근엄]한 秋汀[추정]은 남이 있는 곳에서 이러한 悲慘[비참]한 動作[동작]을 보이지 아니함인지, 나는 一個月[일 개월]이나 每日[매일] 先生[ 선생]을 訪問[방문]하되 언제나 安樂椅子[안락의자]에 앉은 그를 보았을 뿐이다.

내가 여덟 시에 秋汀[추정]을 찾아 가면(나는 秋汀宅[추정댁]에서 約[약] 五分程[오분정]되는 安淸溪[안청계]에 留宿[유숙]하고 있었다.) 秋汀[추정]은 如前 [여전]히 南窓[남창]을 등지고 페치카를 向[향]하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分明[분명]치 못한 語音 [어음]으로 時候人事[시후 인사]를 하고, 그리고는 우리 日課[일과]에 入[입]하였다.

우리 日課[일과]란 것은 편지를 쓸 것과 談話[담화]를 하는 것과 電氣治療[전기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편지는 하루에 平均[평균] 四[사], 五張[오장]을 썼는데, 편지 받을 이는 西伯利亞[서백리아]·南北滿洲[남북만주]·上海[상해]·其他 [기타] 中國一帶[중국 일대]·布哇[포와]·北美 [북미], 間或 [간혹]은 歐洲 等地[구주 등지]에 흩어지어 있는 同志[동지]들이었고, 편지 사연인즉 하나도 秋汀[추정] 自身 [자신]에 關[관]한 것은 없고, 全部 [전부] 同志間[동지간]의 誤解[오해]와 疎隔[소격]을 풀기 爲[위] 한 忠告[충고]와 仲裁[중재]·團結作成[단결 작성]에 關[관]한 意見[의견], 靑年訓練機關[청년훈련기관] 設置 [설치]에 關[관]한 計劃[계획], 情報[정보]의 交換[교환], 健康[건강]을 注意[주의]하라는 忠告[충고]와, 落心[낙심] 말고 奮鬪[분투] 努力[노력]하라는 激勵等[격려 등]이다.

一個月間 [일 개월간]에 나는 秋汀[추정]의 편지를 百張[백장]만 쓰지 아니하였다. 秋汀[추정]은 내가 가기까지는 그 따님(이름은 正熙[정희] ─ 只今[지금] 陸軍 步兵大尉[육군 보병 대위]李應俊氏[이응준 씨] 夫人[부인].

두 분에 對[대]해서는 다시 말할 機會[기회]도 있겠다] ─ 그때 겨우 十五[십오], 六歲[육세] 밖에 아니 되었던 이가 代書[대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秋汀[추정]이 平素[평소]에 하고 있는 말을 다 하지 못하다가 다행히 내가 간 機會[기회]를 利用[이용]하여 편지를 쓰게 한 것이다.

이 편지들 中[중]에 어떤 것은 直接[직접] 그가 口授[구수]하였고 어떤 것은 要旨[요지]만 口授[구수]한 것을 내가 適當[적당]하게 지어 썼다.

나는 그의 口授[구수]를 받아 적는 동안에 그가 感極[감극]하여 或[혹]은 落淚[낙루]하고, 말이 막히고, 聲淚俱下 [성루구하]하여 한참이나 우후후 하고 울음 소리를 진정치 못하는 것을 보았다. 鐵石心腸[철석심장]이라는 評[평]을 받던 一代英雄[일대 영웅]이 同胞事[동포사]를 말하다가 放聲慟哭[방성통곡]하는 양은 참으로 悲壯[비장] 그 물건이었다.

편지에만 아니라 談話[담화]에도 秋汀[추정]의 話題[화제]는 恒常[항상]公[공]에 關[관]한 것이었다. 無非憂世[무 비우세]의 至情[지정]으로 나오는 말씀이어니와, 더러는 後輩[후배]인 나를 啓發[계발]하기 爲[위]하여 夜來[야래]에 材料 [재료]를 準備[준비]한 듯한 談話[담화]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決[결] 코 先輩[선배]가 後輩[후배]를 敎訓[교훈]하는 듯한 態度[태도]를 보임이 없고, 어디까지든지 나는 당신과 平等[평등]인 親友[친우]·知己[지기]로 보아 肝膽[간담]을 吐露[토로]하는 態度[태도]였다. 用語[용어]도 그러하거니와 表情[표정]도 그러하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억지로 짓는 것이 아니라 至情[지정]이요 自然[자연]이었다.

나는 혼자 내 宿所[숙소]인 淸溪宅[청계댁]에 누워서 지나간 하루 秋汀[추정]과 같이 하던 일을 생각하고는, 〈秋汀[추정]의 속에는 朝鮮[조선]이 찼다. 秋汀[추정]의 속에는 朝鮮[조선] 밖에 없다. 그는 그의 속에서 自己[자기]를 내어쫓고 그 자리에다 朝鮮[조선]을 들여 앉혔다 ─〉 이렇게 생각하고는, 「愛國者[애국자]란 이런 사람이로구나」 하고 觀念[관념]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을 實物 [실물]로 目擊[목격]한 것을 기뻐했다.

지금도 내 속에 己利心[기이심]이 發作[발작]할 때에는 秋汀[추정]의 웃는 모양이 나타나서 나를 激勵[격려]해 준다.

나는 秋汀[추정]의 곁에 一個月[일 개월]을 머무는 동안 여러 가지 아름다운 光景[광경]도 보고 이야기도 들었다. 그 中[중]에 몇 가지를 적자.

이것은 秋汀[추정] 自身 [자신]의 이야기이다 ─.

『島山[도산]이 美洲[미주]에 건너 가는 길로 돈을 美貨[미화] 五百圓[오백원]을 보냈읍데다. 島山[도산]의 事情[사정]을 내가 다 아는데 웬 돈 五百圓[오백원]이 있어서 내 病[병] 治療費[치료비]로 이 적지 아니한 돈을 보냈는고 하고 매우 받기가 거북한 것을, 同志[동지]의 精誠[정성]을 拒絶[거절]하는 것도 道理[도리]가 아니어서 받았지요. 했더니 그 後[후]에 알아 보니까 島山[도산]이 本國 [본국] 들어 와 있는 동안 島山夫人[도산부인]이 남의 빨래를 해주고 벌어서 貯蓄[저축]한 돈이라고요. 그러고는 島山[도산]은 어느 運河[운하]를 파는데 役夫[역부] 노릇을 하고 日工 [일공]을 받아서 生計[생계]를 보탰다고요.』

여기島山[도산]이란 이는 毋論[무론] 安昌浩氏 [안창호씨]다.

또 하나는 伯林[백림]에 滯留[체류]하였을 적 이야기 ─.

『내가 島山[도산]이 오라는 말대로 美國 [미국]을 가려다가 紐育[뉴육] 서 上陸禁止[상륙 금지]를 當[당]하고 돌아오는 길에 伯林[백림] 어느 旅舘[여관]에 있을 때요. 이렇게 앉았노라면 바로 正面[정면]에 德皇 [덕황] 카이제르의 肖像[초상]이 걸렸읍데다. 날마다 나는 그 肖像[초상]을 바라보았지요. 그러고 혼자 말하기를, 陛下 [폐하]! 나와 같은 亡命客[망명객]을 비웃지 마시오. 陛下 [폐하]의 先王[선왕]은 어떠하시었읍니까. 陛下 [폐하]의 父王[부왕]이신 프레데릭大王[대왕]과 그보다도 陛下 [폐하]의 母后[모후]께서 나폴레옹에게 어떠한 辱[욕]을 當[당]하시었읍니까. 陛下 [폐하]! 오늘 이 외로운 亡命客[망명객]인 外臣[외신]이 他日 [타일]에 友邦[우방]의 一員[일원]으로 陛下 [폐하]의 宮廷[궁정]에 손이 되어 陛下 [폐하]와 天下事[천하사]를 談[담]할 날이 없으리라고 어찌 말하겠읍니까. 陛下 [폐하]! 오늘 外臣[외신]이 逋蹤[포종]으로 陛下 [폐하]의 國土[국토]를 밟는 것을 책망하지 맙시오.

或時[혹시] 陛下 [폐하]께서 外臣[외신]의 나라에 亡命[망명]하시어서 外臣[외신]의 保護[보호]를 받으실 날이 있을는지 어찌 압니까.

外臣[외신]이 陛下 [폐하]의 國家[국가]의 萬萬歲[만만세]를 비옵거니와, 人生[인생]의 일이란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말했지요. 하하하하.』

先生[선생]의 이 말씀 中[중]에서 한 가지는 맞아서 德皇 [덕황] 빌헬름 三世[삼세]는 萬乘[만승]의 位[위]를 잃고 和蘭[화란]에 亡命客[망명객]이 되었거니와, 秋汀[추정] 自身 [자신]은 德皇 [덕황]을 保護[보호]할 地位[지위]에서 보지 못하고 벌써 不歸[불귀]의 客[객]이 되고 말았다.

내가 穆陵[목릉]을 떠나기 거의 臨時[임시]해서 秋汀[추정]은 나더러 春皐[춘고] 朴泳孝氏[박영효씨]에게 돈 一萬圓[일만원]만 보내 달라는 편지를 쓰기를 부탁하였다. 나는 先生[ 선생]의 부탁대로 그날 밤 나의 宿所[숙소]인 安淸溪宅[안청계댁]에서 苦心[고심]해서 春皐[춘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나는 그 속에 무슨 말을 썼던지 그것은 다 잊어버렸다. 다만 大監[대감]·侍生[시생]하는 말의 反覆[반복]되던 것과, 相當[상당]히 長文[장문]이던 것과, 이튿날 아침에 이 편지를 내가 읽어 드릴 때에 秋汀[추정]이 聲淚俱下[성루구하]하던 것을 記憶[기억]한다.

그러나 後[후]에 들으니 朴春皐[박춘고]는 이 편지에 對[대]해서 回答[회답]조차 아니했다고 한다.

秋汀[추정]은 春皐[춘고]를 많이 사모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少時[소시]에 春皐[춘고]에게 사랑받던 것을 내게 이야기하고 感謝[감사]하는 情[정]을 表[표]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나는 秋汀[추정]의 입에서는 그가 얼마나 會往[회왕]에 現金[현금]으로 春皐[춘고]를 도운 것을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나는 다른 어떤 이에게서 春皐[춘고]가 일찍 窮[궁]할 때에 (侯爵[후작]이 되기 前 [전]에) 秋汀[추정]에게 단 萬圓[만원]만 보탬을 받은 것이 아니란 말을 들었다.

秋汀[추정]은 春皐[춘고]에게서 돈 萬圓[만원]이 올 것을 相當[상당]히 自信[자신]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길래 이 萬圓[만원]이 온다면 어떻게 쓸 것을 내게 말하기도 한 것이 아닐까. 그 돈의 用處[용처]는 決[결]코 自己[자기]의 治療費[치료비]나 家庭[가정]의 生活費[생활비]는 아니었다.

나는 몹시 눈 오고 바람 부는 날 밤 한시(?) 차로 치따를 向[향]하여 穆陵[목릉]을 떠났다. 그러므로 나는 秋汀[추정]께는 떠나는 날 午後[오후]에 작별을 하였을 뿐이요, 바로 떠날 때에는 뵙지를 못했다.

秋汀[추정]은 내가 떠나지 말기를 바란 듯하나 말로는 표시하지 아니하였다. 나도 아니 돌아 서는 발길을 억지로 돌렸다. 좀 더 오래 모시고 있어서 이야기 동무라도 해 드릴 것을 하고 至于今[지우금] 後悔[후회]를 마지아니 한다.

앓는 秋汀[추정]을 말할 때에 나는 빼놓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李應俊氏[이응준 씨]와 秋汀[추정]의 唯一[유일]한 血肉[혈육] 인 따님 正熙氏[정희씨]와의 婚姻[혼인]에 關[관]한 것이다. 李氏[이씨]는 少時[소시]에 秋汀[추정]의 聰愛[총애]를 받아 韓國 [한국] 士官學校 [사관학교]에 다니다가 軍隊解放後 [군대 해방후]에 東京[동경] 陸軍幼年學校 [육군유년학교]로 轉學 [전학]하여 該校[해교]와 陸軍士官學校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인해 日本 [일본] 士官[사관]으로 있었다. 그러다가 一九二一年[일구 이 일 년] 日本軍[일본군]이 西伯利亞[서백리아] 出兵時 [출병시]에 出征[출정]하였던 길에 李氏[이씨]는 그 恩人[은인] 秋汀[추정]의 墓[묘]를 展[전] 하고 그 恩人[은인] 遺孤[유고]인 正熙氏[정희씨]와 婚姻[혼인]한 것이다. 十三[십삼], 四年前 [사년 전]에 한번 秋汀[추정]이,

『너는 내 딸을 맡아 다고.』

한 한 마디 말을 지키고 지키었던 것이다. 李氏[이씨]에게는 달리 請婚[청혼]하는 데도 많았으나 물리치고 恩人[은인]의 遺託[유탁]을 有信[유신]하게도 지킨 것이다. 近世[근세]에 드문 美談[미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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