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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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嫌疑)[편집]

명순이가 주인 영감과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고 얼마 아니 되는 짐짝도 영감에게 보관을 시키려고 부탁을 할 지음에 문 밖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들린다.

주인 영감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갔다. 명순이는 문틈으로 가만히 내여다보았다. 순사가 와서 주인 영감과 무에라고 수근수근 이야기를 하더니 주인 영감은 갖은 경례를 꼬박꼬박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명순이가 있는 방을 가리킨다.

명순이는 처음에는 누가 왔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내다보았던 것이 영감이 순사와 무에라고 지꺼리다가 자기 방을 가리키는고로 어쩐지 가슴이 서늘하여졌다.

“또 무슨 일에 걸리지나 않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며 순사가 방문 앞으로 걸어오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섰다. 순사는 명순이를 한참 치어다보다가

“당신이 김명순이요”

하며 거친 눈짜위로 명순이를 할근 훑어본다

“네 그렀읍니다. 그런데 제게 무슨 볼일이 계십니까”

명순이는 가벼운 공포를 느끼면서 말하였다

“별로 그리 긴한 볼일은 아니라도 종로서까지 잠깐 같이 가서야 되겠오”

명순이는 이 소리에 깜짝 놀래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봐도 경찰서까지 갈만한 사건은 없을것 같은데 그러나 아무 죄가 없기로 안간다고 버틸 수도 없어 더 재처 물어보지도 않고서 구두를 신고 따라나섰다. 순사의 뒤를 따라가는 명순이는 지내가는 사람들을 보기에 어쩐지 부끄러웠다. 명순이는 길에서 될 수 있는대로 순사와 말을 아니하였다. 가끔가끔 묻는 말도 대답을 입속으로 우물우물하여 들릴락말락 하게 하였다.

변원식이라는 놈이 무슨 일을 꾸며 놓았는가 하여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병원식이가 지꺼리지 않으면 이런 봉변을 당치 않으리라고 하였다.

변원식이를 의심하기 시작하니 그만 명순이는 앞길이 아득하였다. 앞길이 바야흐로 열리랴 할 때에 또 이러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니 오히려 죽었더니만 같지 못하였다.

악마다. 그 놈은 확실히 악마다. 그 악마를 어떻게 하면 처치를 할 것이냐. 자기의 꽁무니를 줄줄 따라다니면서 저주의 독소를 휘졌는 그 변원식이란 놈을 이 길거리에서라도 만나기만 하면 그만 그 놈의 간을 끄집어내어 씹어먹어도 시원하지 않을 것 같다.

“ 확실히 그 놈의 장난이 옳다”

그 날 밤 모욕을 당하고간 복수로 어떠한 허위의 사실을 고발한 것이 아니면 부채지불 요구수속을 한 것에 틀리지 않을 것이다.

명순이는 속으로 별의별 생각을 하여 가며 맘을 굳게 먹었다. 그 놈이 자기의 힘으로 될 수 가 없으니까 경찰의 힘을 빌랴고 하는데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명순이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 놈의 야비한 행동에 전신이 떨리었다

명순이는 마음이 초조하여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해 보거나 말거나 대뜸 순사에게 물어보았다.

“어떠한 사실로 불렀읍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경찰에 불려갈만한 일은 한 일이 없는데요?”

“나도 알 수가 없읍니다. 사법실에서 불러오라고 명령을 받고 온 것이니까요”

순사는 솔직하게 대답을 한다.

“그러나 대개 짐작이라도 되는 일이 없읍니까?”

“나도 당신과 같지요 원체 모르는 것을 짐작인들 어떻게 하겠읍니까”

“중대한 사실에 걸리지는 않었을까요?”

“별로 중대한 사실 같지는 않더군요”

“어떻게 그것을 아서요?”

“중대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은 알기 쉽지요 만일 중대한 사실이라면 검속을 하여갑니다. 그러나 이것은 호출이니까요”

명순이는 그 말에 다소 안심은 되었다. 원체 중대한 사건에 걸릴만한 일도 없거니와 순사의 말을 들어보려고 여러 가지 말을 끄내었던 것이다.

“오늘로 나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들어가 보서야 알지요 그렇게 큰 사실만 아니면 곧 나오실 터이지요”

명순이는 암만 알려고 말귀를 돌려보아도 모두 어물어물 대답할 뿐이요 시원한 대답이라고는 하나도 들을수 없었다.

거리로 오고가는 남녀학생 젊은 남녀 할것 없이 순사를 따라가는 자기를 주목하여 보는 드하였다. 명순은 얼굴에 모닥불을 붓는 듯이 확근확근하고 달았다.

변원식이란 놈은 일시의 그 정욕을 위하여서 사회적으로도 자기를 모욕을 시키는 것 같았다. 어떠한 사건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만일 이 사건이 의외에 큰 사실이아면 명순이는 세상에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명순이는 순사의 뒤를 따라 경찰서 사법실로 들어갔다. 명순이는 정일여학교 재학 당신에 동맹퇴학으로 들어가 보고는 이번에 처음이다.

순사는 사법주임 옆에 가서 경례인사을 붙이고 무에라고 수근거리더니 사밥주임이 명순이를 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명순이는 그의 명령대로 맘으로는 바눌방석 같은 의자에 앉았다. 사법주임은 명순이를 앉혀 놓고도 그 존재를 모른다는 듯이 서류만 정리하고 있다

아홈점 열점 열한점을 처도 아무 말도 없이 자기의 일을 끝내야 심문을 착수할 것 같았다. 명순이는 너무도 지리하여 외몸이 뒤틀리고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배까지 고팠다. 어떠한 일로 불렀는지 말이라도 시원하게하여 주었으면 좋으렸만 사건도 알지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노라니 십년감수나 되는 듯이 가슴이 탔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고 처분만 기다리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시계가 열두시를 알리자 사법실의 계원들은 일제이 쏠려나간다. 문역에 앚은 순사만이 홀로 남아서 신문을 두적거기고 있을 뿐…… 그러고는 명순이가 들어오기 전부터 앉아 있는 노동자 비슷한 청년을 겉눈으로 연해 감시를 하는 것이었다.

그 청년의 손에 크다란 족쇠가 걸리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중한 범인이라는 것을 곧 알 수가 있었다.

영양부족으로 햇쓱하여진 낯과 쑥 들어간 눈길다랗게 자란 흩어진 머리, 남루한 옷 이 모든 것을 보아도 황금에 저주받은 생명이라는 것을 영리한 명순이는 추측할 수가 있었다. 먹을 것을 위하여 할수 없이 절도나 강도질을 하다가 붙들려온 사람이거니 하였다.

그는 머리를 푹 숙으리고 앉아서 끄덕끄덕 조는 것이었다. 그가 조을고 있는 것을 보고는 벼락 깉이 호령을 지르며 자기 발이 아프리만치 구두로 마루바닥을 꽝 울린다. 그는 그 호령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다가 또 조는 것이었다.

순사는 명순이를 바라보며 씽긋 웃다가 또 소리를 지른다. 그는 또 놀래어 깨었다가 도루 존다. 순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그 청년을 바라보며 멸시에 가까운 웃음을 싱그레 웃는다. 명순이는 속으로 동정이 끓어 올라왔다. 그가 몹시도 가엾이 보였다.

“누구의 죄일까?”

“사회의 죄지”

명순이는 이렇게 속으로 자문자답을 하였다. 순사는 명순이가 그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을 보더니

“그 놈은 강도 절도의 전과사범이라우”

이렇게 묻지도 않는 말을 하고 그를 흘겨보는 것이다.

“오직 옹색하였으면 그런 일을 하였겠오”

라고 말을 하려고 하다가 명순이는 속으로 ‘유우고’의 ‘레미제과불’에 나오는 ‘짠발쨘’을 연상해 보았다.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사람을 악한 놈이라고 부르지만 명순이는 그 사람을 동정하고 싶었다.

“그 무엇이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세상의 고통을 받고 황금의 저주를 받고 있는 명순이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에왼 사회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삼십분이 넘어서야 나갔던 사람들은 들어왔다. 들어오는 그들의 번지르르한 입들을 보아도 그들이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사법주임은 차를 한잔 마시고 나서 명순이를 가까이 와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명순이는 사법주임 책상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당신이 김명순이요?”

“네 그렀읍니다”

“어저께 밤에 어디 있었오”

“집에 있었읍니다”

“ 집이라니―”

명순이는 이러한 곳에 와서 심문을 당하여 본 경험이 많지 않은고로 어떻게 대답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라서 쭈멋쭈멋 하였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면 별 수가 없겠지”하고는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다.

“가회동에 있는 제 하숙에 있었읍니다”

“누가 놀러온 사람이 없었오”

“있었읍니다. 변원식씨가 놀러 왔읍니다”

사법주임은 종이조각을 들고 명순의 말을 받아 쓴다.

“몇시에 왔다가 몇시에 돌아갔오”

“일곱시쯤 되어 오섰다가 열두점이 넘어서 갔읍니다”

명순이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일곱시반에 이선생을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그 시간보다 삼십분 전에 집을 나가려고 할 때 변교장이 들어온 것이고 또 그가 돌아갈 때에도 시계를 보았다. 명순이는 그 날 밤 변교장이 어떠한 추행이나 아니할까하여 맘을 조리고 시계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명순이는 공포에 가슴이 두근거리었었다. 그러다가 열두시 십분쯤 되었을 때 그가 돌아갔으므로 마음놓고 자리에 누웠었던 것이 역력히 기억된다.

“열두시가 넘어서 갔다니 간 시간을 확실히 알수가 없단 말이오”

“확실히 알지요 열두시 십분이 되었을 때 갔읍니다”

“어떻게 그렇게 온 시간과 돌아간 시간을 똑똑이 기억하여 두었을까”

명순이는 시간을 기억하게 된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였다. 사법주임은 명순의 말을 듣더니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변교장과 말다툼한 일이 있었오”

명순이는 어떻게 대답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라 한참 머뭇머뭇 하였으나 그러나 대답을 아니할수가 없었다. 변교장과 싸운 것은 사실이니까 숨길 대가 못되는 것을 알았다.

“예 사소한 일로 싸웠읍니다”

“어떠한 일로?”

“대차 관계가 있었어요”

명순이는 이렇게 몽롱하게 대답을 하여 버렸다. 여기서 확실히 변교장이라는 놈이 고발을 하였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 장차 어떻게 되어나갈지 근심이 되는 일이다.

“당신과 변교장이 싸울 때에 그 방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었오”

“없었읍니다”

“그러면 당신과 변교장 사이에 대차 관계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오”

“없읍니다 변교장이누구에게 말하였는지는 몰라도 저는 아무에게도 말한 일이 없읍니다”

“바로 말해!”

사법주임 말투가 변하자 음성이 높아가며 태도가 이상하여진다.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예요 원체 저는 남자이고 여자이고 요사이는 친이 교제한 일이 없읍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아무도 교제한 일이 없어요”

“그러면 그 전에는―”

“그 전에도 별로히 없었읍니다”

명순이는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변원식이가 그 날 밤에 돌아간 다음 어디로 나갔어”

“나간 일이 없읍니다. 곧 자리에 누워서 잤읍니다”

명순이는 자기 생각한 것보다 문제가 차차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므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여기에 와서는 변원식이가 차용금 반환요구로 고발을 한것도 같이 않았다.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까 거짓말을 말고 정직하게 말하여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자미 없을터이니까!”

사법주임이 딱 으르는 바람에 명순의 몸은 부르르 떨였다.

자기로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으나 어떤 중대한 사건에 혐의를 들쓴 것이라 하였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읍니다. 어떠한 사건인지 자세히 이야기하여 주세요”

이 말에 사법주임은 한번 껄껄 웃는다.

“자기가 한 일을 자기가 모른다니 생각하여 보아도 몰라! 바로 어저께밤에 한 일인데―”

“그러게 말예요 어저께밤에 한 일을 제가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이야기를 하지 않었읍니까?”

“그 외에 한 딴일 말야! 변교장이 나간 다음에 한 일을 말하란 말이야!”

“…………”

“익선동 골목에서 한 일이 생각이 안나나?”

이 말이야 말로 명순에게 청천의 벽력이었다.

“저는 그 날 밤 변교장이 돌아간 다음 아무데도 가간 일이 없읍니다. 목숨을 내어놓고 맹서를 합니다 익선동 골목에서 한 일이라니요? 저는 꿈에도 그런 일이 없는데요”

“네가 안갔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시키지 않었느냐 말야?”

“무얼요? 시키다니요?”

명순의 눈은 둥그래졌다.

“명순이가 시키지 않었으면 누가 시켰을까?”

“무엇 말입니까 무엇이 시켰단 말입니까 말씀이나 시원히 하서야 알지 않겠읍니까”

이 누구냐 말이냐. 그래도 모를까?”

“예? 변원식의 골통을? 저는 절대로 그러한 일이 없읍니다. 웨 제가 그 사람을 때렸겠읍니까 저는 죽어도 그러한 일을 한 일도 없고 시킨 일도 없읍니다”

명순이는 이 얼토당토 않은 의외의 말에 미친사람 모양으로 날뛰며 말하였다.

“저는 절대로 그러한 일을 한 일이 없읍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하겠읍니까? 그러한 일은 꿈에도 생각하여 본 일이 없읍니다”

“암만 그렇게 변명을 하여도 쓸데가 없어 변교장이 너의 집에서 싸우고 돌아가는 길에 그러한 참사를 당하였으니 너 밖에 의심할 사람이 어디있어? 속이면 속일수록 네게만 불리한 것이니 사건이 크게 되기 전에 말을 해야지 한때 잘못은 용서 할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수단을 부려가며 욱박하였으나 명순이는 터문이 없는 누명에 가슴이 답답하였다.

“여보시오 안한 일을 어떻게 하였다고 하겠읍니까 주인집에 가서 물어봐요 그 날 저녁 내가 어디로 나가던가고!”

명순의 눈에는 눈물이 돌았다.

“어떠한 남자가 나타나서 때렸다고 하니 연순이야 물론 안 나간 것은 사실이겠지 그러나 명순이가 뒤에서 어떠한 남자에게 시켰다는게 확실한 사실이니까 말야”

“내가 시킨 것을 어떻게 압니까? 젊은 여자의 앞길을 망처 놓아도 분수가 있지요 증거를 말씀하십시오 내가 시켰다는 증거를!”

명순이는 발악을 하기 시작항다. 꼭 자기가 혐의를 뒤집어 쓰게 되였으므로 극력으로 대항을 하였다.

“좀 자서히 조사를 하여 보십시오 청천밸일이 내려다 봅니다”

명순이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느끼여운다. 사법주임의 생각에는 명순이가 그러한 일을 할 여자 같이 보이지 않았다. 다욱이나 충분한 증거가 없어서 빡빡이 욱여댈 수도 없었다. 그러나 변원식의 진술에 의하면 자기가 평시에 감정을 일으킨 사람이 없고 다만 그 날 밤 명순이와 싸웠을 뿐이고 따라서 자기를 원망하는 사람은 명순이 밖에 없다고 하였으나 아무리 취조하여봐도 명순이가 그러한 행동을 항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떠들지 말고 곰곰이 생강하여 보란 말이야 명순이가 시키지 않았다니 그 사실은 그렇게 보류하여 두고 다른 사실을 물을 터이니 조금도 속이지 말고 말하여야 돼!”

“네 아는데까지는 얼마든지 말씀을 하지요”

“명순이와 연애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가?”

“있읍니다”

명순이는 조금도 속일 필요가 없었다.

“누구인가?”

“박철하라는 사람이올시다”

“박철하? 그 사람의 집이 어디야?”

“그는 집이 없읍니다”

“집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집이 없다면 그 사람이 거리에서 자고 거리로 돌아마 다니는 거지란 말인가?”

“지금 서대문 감옥에서 복역중이예요”

명순이는 이런 경우에 그 말을 하기는 거북하였다. 명순이는 말을 맞추고는 브끄러운 듯이 머리를 숙였다.

“서대문감옥? 무슨 쥐로?”

“동맹파업을 한 이유로―”

“하―하―”

사법주임은 무엇인가 깨달은 듯이 외마디 소리로 외치고 머리를 끄덕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