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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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편집]

이제와서는 변가놈이 확실히 자기를 멸망케 하는 것이다. 앞길이 열릴만 하면 그 놈의 악희가 직접간접으로 앞길을 망처놓는 것이 아니냐? 하루 바삐 그놈의 돈을 지불하여 버리고 일체 관계를 끊어 버리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명순이로서는 그 거대한 돈을 무슨 수단으로 쉬웁게 얻을 수가 있을까? 가슴이 타는 듯하였다. 어떻게 하던지 방장노의 집으로 가는 것이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명순이는 만일 방장노가 거적을 할 때에는 이선생을 앞장을 세워가지고 자서한 이야기를 하여 방장노의 양해를 구하기로 하였다.

명순이는 어느 사이에 가회동 하숙으로 돌아왔다. 주인 영감은 명순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반기면서 명순이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드러온다.

“무슨일로 가섰읍니까 하루 이틀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퍽 근심을 하였읍니다”

하며 그 영감은 자리를 잡고 앉는다.

“고맙습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여 주시니까! 별 큰 일도 아닌데!”

명순이는 주인 영감에게 갔다온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낱낱이 이야기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상한 일입니다”

“글쎄 참 이상합니다. 내가 그 날 밤 변교장이 돌아갈 때까지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요 대문깐에서나 엿들었는지 몰라도 마당으로는 개이미 한마리도 들어도지 않었는데”

“괴상한 일입니다. 익선동 으슥한 골목에 가서 한바탕 후려논 것을 보더라도 미행을 한 것이 틀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변교장을 평시에 벼르고 있던 사람이 있던가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딴 사건으로 변교장의 뒤를 따라다니던 사람이 있었기에 그렇지요 위체 그 놈은 심뽀가 고약하게 생긴 놈이니까 그를 원망하고 있던 사람도 있을 듯하지요”

명순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한숨을 내쉬였다. 젊은 몸에 겹겹이 닥처오는 재난과 번민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영감은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깨달은게 있는듯한 낯밫으로 명순이를 본다.

“아! 늙으면 정신도 없어지는 법인가 봅니다. 무슨 말을 하려하다가 깜짝 잊었으니…… 오늘 이른 아침 정정…… 무슨 여학교?”

“정일여학교요?”

“아! 옳습니다”

명순이는 주인영감의 앞으로 바싹 닥아 앉았다.

“정일여학교가 어쨌단 말입니까?”

“오늘 이른 아침 정일여학교 소사가 명순씨를 찾아 왔읍데다”

“그 늙은 영감말이지요 허리가 꼬불어진 영감!”

“옳습니다”

“찾어 와서 무에라고 해요?”

“이선생이라는 이가 명순씨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오라고 하여서 왔노라고 합디다”

명순이는 방장노집 가정교사 사건으로 소식이 없으니 사람을 보낸 것이라고 대번에 추측을 하였다. 명순이는 마음이 조리조리 하였다.

“그래 어디로 갔다고 대답을 하섰읍니까 경찰서로 갔다고 하섰읍니까”

명순이는 그 대답한 것을 알고 싶어서 마음이 갑갑하였다.

“천만에― 경찰서가 좋은 곳이면 두 말할 것도 없이 경찰서로 갔다고 하였겠지만……”

명순이는 이말을 듣고는 안심을 하였다. 주인영감에게 감사한 맘으로는 철이라도 하고 싶었다. 주인영감은 어쩌면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지 참으로 믿을 만한 노인이라는 생각하였다.

“어디로 갔다고 하섰읍니까?”

명순이는 영감의 입만 치어다보았다.

“급한 볼일이 생기여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하였읍니다”

“언제 오느가고 묻지는 않습데까”

“묻지는 않어도 내가 말하였지요”

“언제 온다고 하섰읍니까”

“언제 온다고 날짜지정은 하지 않고 며칠이 안되야 곧 올라오신다고 하였지요”

주인 영감이 나간다음 얼마 아니되야 배달보가 한장의 편지를 던지고 갔다.

명순이는 편지를 받었으나 뒤에는 발신인의 주소도 씨명도 없었다.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겉봉을 떼여보았다. 봉투 안에는 편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은 종일 조각이 들어 있었다. 명순이는 그 종이 조각을 끄내여 보았다. 종이 조각을 들고보는 명순의 두 눈은 점점 커졌다.

“명순씨 걱정마시오 뒤어는 내가 있읍니다. 목숨을 내여놓고 도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 주시오 ST"

이것이 그 편지의 내용이었다. 명순이는 두 손이 떨리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쪼각쪼각 찢고 찢어 문밖에 뿌렸다. 그러나 명순의 가슴은 여전히 두군거렸다. 그것은 요전 날 저녁에 변교장을 때려부신 사람이 이 편지를 보낸 주인공이라는 것을 직각하였던 까닭이었다. 명순이는 이것이 마치 활동사진에 나오는 시커먼 그림자 같이 생각이 되었다. ST! 아무리 연구하여 봐도 모를 암호이다. 명순이는 자기가 알음직한 사람들의 이름과 성을 하나도 빼지 않고 ST에 밪추어 보았으나 이에 ST가 부합이 되는 이름은 없었다. ST? 누구일까? 아무리 생각하여봐도 알수가 없었다. ‘ST’ 는 고사하고 자기에게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하여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이 ‘ST’ 야말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스핑스’ 같이 생각이 되었다.

어떠한 탐정소설에 나타나는 암호와 같이 생각이 되었다. 자기의 목숨을 내여놓고 도와주겠다는 ‘ST’?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그거은 철하일 것이다. 그러나 철하는 감옥에 있지 아니한가? 그 다음에는 수길이다. 친구의 애인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와 줄만한 사람은 그다. 그러나 그도 감옥에 가 있지 아니한가? 그 다음에는 목숨을 내여놓고 자기를 도와주기는 고사하고 말로라도 원조하여 줄만한 남자도 없었다. 그렇다면 변태심리를 가진 남자들의 장난으로 볼 수 밖에 없다. 탐정소설을 즐겨 하는 사나이들과 활동사진에 나타나는 복면괴인 같은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나이들의 괴상한 장난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요전날 저녁에 일어난 일이 있지 아니한가? 익선동 으슥한 골목에 ‘ST’ 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일장 활극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명순이는 그 편지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명순이는 자기가 어떠한 미궁(迷宮) 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현실 같지 아니한 일이다. 그러나 그 편지의 글씨를 보나 무엇을 보더라도 몹시도 침착한 것을 보아서는 그렇게 헡은 수작으로만 알일도 아니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활실이 어떠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명수니는 그러한 편지를 받으니 한편으로는 현재와 같은 곤경에 있는 때에 그것이 일시 사나이의 장난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목숨을 내놓고 도와주겠다는 그 말만이라도 사막 같은 이세상에서 목마른 때의 한 표주박의 물 같았다. 명순이는 이후에 일어날 일을 몹시도 흥미를 느끼면서도 또 당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자기가 이후에 만일 곤경을 당하게 되면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구하여 주는가를 두고 보기로 하였다. 명순이는 이 사간을 절대의 비밀에 붙이기로 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심변에 관계도 될 뿐아니라 상서럽지 못한 자기의 앞길에 얼마의 도움이나마 될까하여 아무에게도 루설ᄒ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고 정체모를 그 인물을 알고 싶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이러한 생각이 명순의호기심을 자아내었다.

“내가 좋은 기회를 맞날 때면 그도 나의 앞에 나타나겠지”

이렇게 흥미 절반으로 생각하였다.

누구든지 참정소설 첫장을 읽어보고 그 다음 사실을 알기 위하여 궁금한 생각을 두는 것과 같이 명순이도 ‘ST’ 의 정체를 알기 위하여 그러한 심리로 하회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인물은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찾어낼 수 없는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다.

명순이는 저녁밥을 먹고 이선생을 찾어가서 늦도록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내일부터 방장노집으로 가기를 약속하고 하숙에 돌아왔다. 솜같이 피는 피로한 몸 자리에 누워서 잠이 어렴풋이 들락말락 할 때에 마당에서 뒤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명순이는 정신을 차려서 들어보니 그것은 대문깐에서 떠드는 주인영감의 목소리였다. 명순이는 잠옷을 입은 채로 뛰여 나갔다. 사오명의 중학생들도 자다가 뛰여 나왔다. 주인영감은 혼자서 떠들고 있었다. 명순이는 주인영감 곁으로 분주히 갔다.

“웨 그러십니까? 사람도 없는데 홀로 서서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때에야 주인 영감은 침을 탁탁 배앝으며 떠들던 말을 끊지고 안으로 들어와 마루에걸터 앉는다.

“하마터면 큰일이 날뻔하였읍니다”

주인영감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또 침을 탁 배앝는다.

중학생들도 팔장을 끼고 서서 주인영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큰 일이라니요?”

“도적을 마질번하였오”

“도적?”

“전번에도 학생들의 구두와 책들을 도적을 맞었는데 오늘 저녁에 온 놈도 그 놈 같어요 늙으니 병신이지요 내가 조금만 기운이 있었더면 어디까지던지 그 놈을 따라가서 붙잡었을 터인데……”

헐떡이며 숨찬 언성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얼마쯤은 따라 갔다온 것이라고 명순이는 생각하였다.

“그 놈이 집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알었읍니까?”

명순이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물었다. 도적놈이라는 그것이 혹시 ‘ST’ 나 아닌가고 의심하였다. 그러나 명순이는 이산한 편지를 받은 것은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주인영감ᄋ 이야기를 듣고서야 ‘ST’ 인지? 참도적놈인지? 그것이나 알려고 하였다.

“늙어가는 몸이라 초저녁에 좀 자고 났더니 잠이 오지 아니하여 침침한 방안에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어 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더니 명순씨의 방문 앞에 시커먼 것이 우두커니 서서 있읍디다그려”

주인영감은 숨을 좀 돌리고나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처음에는 대문도 걸었는데 다른 사람이 들어왔으리라고는 생각지 않고 다만 집안학생들이 나왔는가 하고 생각하였지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꼼짝달삭 아니하고 섯겠지요 그래서 나는 한 편으로 무시무시한 생각도 있었지만 나즉한 목소리로 ‘누군가’ 물어보았구료”

“그러니 무에라고 합데까?”

“무에라고 대답하기는 고사하고 내가 그렇게 물으니까 쏜살 같이 대문 밖으로 달어나가요 그 때에야 나는 도적인 줄알고 ‘도적이야’ 소리를 지르고 쫒아 나갔더니 그대로 가버렸는지 종적이 있어야지요 그러한 대담한 놈은 처음 보았오”

“어디로 들어왔으까요?”

“대문을 열고 들어왔지요 이 집에는 저 대문이 걱정이라우 대문이라는 것이 손이 들어가게 틈이 났으니 밖에서 빗장을 밀고 열기야 쉬운 일이지요 내일은 당장에 변통을 하여야지 무시무시해서 밤잠을 편히 잘 수가 있어야지요”

이 말을 들으니 옛날에 찰하와 같이 반이 깊도록 놀러다니다가 늦게 돌아와서 잠겨버린 대문을 철하가 대문틈으로 손을 넣어서 열어주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딴청으로 불시에 그 때가 그리워졌다. 세상의 아무런 물정도 모르고 다만 사랑에 도취되어 행복된 날을 보내던 그 때가 끝없이 그리웠다.

“내가 그 때에 나오지만 않았더면 그 놈이 또 무엇을 품처갔을 것이지! 대낮에라도 코를 베어갈 세상이니까……”

주인영감은 자랑 삼아 혼자 뒤떠든다.

그러나 명순이는 그것이 도적으로만 생각이 되지 않았다. ‘ST’ 라는 그 사람이 아닌가 하였다. 어쨌든 정체 모를 사람이면 ‘ST’ 로 돌릴 밖에 없었다.

명순이는 어떻게 하였으면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낼까! 하였다.

“그 사람이 키가 커요?”

“그렇게 큰 키는 아니고 보통키나 다부지게 된 놈이던데”

“몸집은?”

“뚱뚱한 편인데 어두운데서 보아도 도적놈은 도적놈 같어요”

이 말을 하고는 그는 껄껄대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는다. 명순이는 주인영감이 말끝마다 ‘놈’ ‘도적놈’ 하는 것이 어쩐 일인지 불쾌하였다. 그것은 ‘ST’ 로 추측을 한 까닭이었다. 자기의 은인을 ‘놈’ ‘도적놈’ 하는 것이 자기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 없이 마음에 거림직하였다. 명순이는 극도의 신경질로 변하여진 것을 자기 스스로 우습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영감앞에서 이상한 기색을 나타내는 것이 자기의 신변을 돌아보아 자미 없는 일인고로 시치미를 따고서 마주 웃었다.

“옷은 무엇을 입었읍디까”

“양복을 입었는데 회색양복 같어 보이던가 모자는 캡이던가 게딱지 모자라던가 하는 것을 푹 눌러 써서 아무리 어두운데서라도 낯이나 바라볼까 하였으나 웬걸 뵈어야지”

명순이는 영감이 말로는 잘 설명하지 못하는 고로 마음이 탄다. 더 들어가 물으면 의심이나 받지 않을까 하여 더 묻지도 않았다. 중학생들은 들을 만한 이야기는 다 들었다는 듯이 하나씩 둘씩 제방으로 들어간다.

명순이는 (더 있으면 알게 되겠지?) 하고서 조으름도 오고 하여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온 명순이는 전기불을 끄려고 할때 방문 앞에 난데없는 봉투편지 한장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명순이는 나는 듯이 그 편지를 집었다. 그 편지를 쥐인 명순의 두손은 떨리었다. 정신을 잃은 사람 모양으로 멍하게 서서 무엇을 생각하는 듯 마는 듯하다가 그 편지봉투에 다시 눈을 떨어뜨렸다. 이 편지로 하여서 명순이는 도적놈이라는 사람이 ‘ST’ 인 것을 의심 없이 알았다. 확실히 ‘ST’ 가 문틈으로 들여보낸 편지라 하였다. 명순이는 주인 영감이 떠들 때 황겁하게 뛰어나갔으므로 그 편지를 보지 못했을 것이가. 그 편지는 주인 영감이 야단을 치기 전에 벌써 이 망에 들어와 명순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도적놈! 명순이는 지금에 다시 생각하면 도리어 주인 영감이 그렇게 해석하여준 것이 다행하였다.

명순이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떼었다. 봉투안에는 먼젓번에 받은 편지와 같이 적은 종이조각이 들어 있었다. 명순이는 봉투 속에 든 편지를 끄내였다.

“또 실례를 합니다. 이것은 절대의 비밀이니 누구에게든지 말씀마십시오 지금은 당신도 나의 정체를 모르실 것이나 언제든지 아실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중대한 일 이외에는 일체 편지를 올리지 않겠읍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너무 근심ᄒ지 마십시요 ST”

이와 같이 그 편지의 내용은 별로히 신기한 것은 없었다. 그래서 명순이는 처음에 예기한 바와는 조그만 실망을 얻었을 뿐이었다. 또 처음 받었던 편지의 글씨와 지금에 받은 편지의 글씨가 사뭇 다른데 그는 의아한 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ST’ 가 두 사람이 아닐 것이므로‘ST’ 라는 사람이 다른가람에게 대필을 시키지나 않았나 생각하였다. 그러나 절대의 비밀을 지켜 달라는 사람이 대필을 시킬리가 만무하겠고 혹시 글씨체를 변해 쓴 것이 아닌가 하였다. 의문의 ‘ST’ 를 명순이는 상상하여 보았다. 회색양복에 캡을 쓴 ‘ST’ 그는 쾌활하고 재능이 넘치고 의협심 많은 사나이요 생김생김도 심각하게 생긴 사나이리라 하였다. 그러나 그 ‘ST’ 가 어느 때까지나 자기 정체를 감추고 있을 것인가?

또 그는 자기를 구원하여 준다고 하였으니 어떠한 방법으로 자기를 구원하여 어떠한 방향으로 자기를 지도할 것인가 마치 자기는 탐정소설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이도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