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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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姙娠)[편집]

명순이가 방장노의 집 가정교사로 들어간지도 이미 한달이 지났다. 활짝 웃는 봄도 자취없이 지나가고 신록을 성장하는 여름이 왔다. 명순이는 그 동안 아무런 고통도 없이 순탄한 생활을 하였다. 변교장도 그 사변이 일어난 뒤로는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었으므로 마치 풍랑 없는 잔잔한 바다를 떠가는 배와 같이 안온한 생활을 하였다. 그리하여 명순이는 방장노의 집으로 들어온 후로는 얼마쯤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방장노의 집안 식구라고는 방장노 부처와 그 아들 세식구 밖에 없는 단순한 가정이었다. 그러하므로 명순이는 한집안 식구와 같이 허물없이 지내였다. 아침 저녁의 식사도 한자리에서 하고 어디로 놀러 가더라도 의례히 굳이 끌고 가고 하였다. 이선생도 종종 찾어와서 늦도록 이야기를 하고는 돌아가기도 하고 명순이도 틈이 있으면 이선생을 찾어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 꿈결로 돌아갈려는지 명순이가 방장노의 집으로 들어온 후 얼마를 지난 때에 어쩐일인지 머리와 일신이 몹시 아프고 소화도 잘 되지 않으며 구역이 심하여 그것이 점점 심하여져서 나중에는 그만 병석에 누워 머렸다. 방장노는 친히 의사를 불러 오고 그 부인은 밤이 깊도록 간호도 하여 주어서 명순이는 이들의 애호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언제인가 명순이가 눈을 감고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여 고통을 잊어보려 할 때에 방장노가 그 부인을 보고 이르는 말을 들었다.

“위장병이라는구료 의사가 말하기를 위장병에는 연하고도 자양분이 많은 음식을 먹어야 된다니 이후에 김선생의 음식은 특별히 주의하여 만드시오”

명순이는 이 말에 진실로 맘으로 감사하였다. 이럴수록 명순이는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도타워지는 것이었다.

방장노가 자기를 자기의 아들 가정교사라는 조건으로만 사랑하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어느 때 두 부처가 주고 받는 이야기를 귓결에 들었던 까닭이다.

“이선생의 하시는 말을 들으면 김선생(명순)은 의지 할 데 없는 고독한 몸이라는구료”

“참 가엾은 신세지요 그러나 마음이 양순하여서 어디를 가던지 미움을 받지 않을만 해요 김선생은 정일여학교 교비생으로 있었던 관계로 그 전부터 잘 알고 있었는데 어릴 때에도 마음이 그렇게 착하여서 선생들의 사랑을 많이 받었지”

늙은 부부가 서로 마주 대하면 명순의 칭찬이 놀라웠다. 그래서 명순이는 그 늙은 부부에게 의탁을 하고 자기집 같이 모든 행동을 맘놓고 하였던 것이다.

생활의 안정을 명순이는 언제나 바라고 있었던 일이었으나 이리 와서는 조금씩 모든게 안저오디는 것 같았다.

지금은 오월―― 향그러운 신록의 시절이다. 앞으로 일곱달만 있으면 그의 최대의 소망을 일을 수 있는 때였다. 명순이는 일월이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지면서도 즐거웠다.

“십이월 이십오일! 오! 철하씨가 나오시는 날!”

명순이는 혼자 웨치고 기뻐 웃을 때도 많았다. 눈이 부실부실 내리는 이른 아침 붉은 벽돌로 담을 높이 쌓은 서대문 형무소의 정문을 여로고 나오는 철하의 모양! 철하를 보고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겨서 울며 기뻐하던 꿈을 늘 꾸었다.

명순이는 생활항 안전은 얻었다고 할 수 있으나 호사다마로 첫봄부터 든 병으로 신음하였으나 조금도 차도가 없이 병세가 위태한 지경까지 이르었다. 입맛이 붙지 않아서 음식을 먹을 수 가 없었다. 앉으나서나 조금만 몸을 충이면 세상이 모다 핑핑 도는 것 같아서 꼭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 앓았다. 이런 병을 알아보지 못한 명순이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죽을 병을 든 것 같았다. 얼굴을 겨울에 비추어 보아도 하루 이틀 지낼수록 더 상하여 가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몹시 몸이 아프면서도 그러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다. 방장노 내외에게 너무도 페를 끼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까닭이다. 아침 때에는 정신이 좀 나다가도 오정만 넘으면 열이 오르고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따. 그래서 너무도 아픈 떄는 정신을 잃기도 하였다. 자기집도 아니요 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앓게 되니 몸보다도 마음이 더 괴로워서 바눌방석에 누운 것 같았다. 요한(방장노의 아들)이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롱 때면 제일 몸이 괴로운 때니 마음대로 가르쳐줄 수도 없으나 참아가며 억지로 복습을 시키었다. 몸이 괴로우면 의사를 불러오겠다는 방장노의 말을 여러번 거절하였으나 오늘은 아무리 하여도 참을 수가 없으므로 의사를 불러달나고 할 수도 없어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기로 하였다. 명순이는 어지러운 몸을 억지로 끄을고 문을 열고 나섰다. 집안 사람들을 알리지 않고 슬쩍 갔다 오려고 하였던 것이 마당에서 화단(花檀) 의 꽃을 가꾸고 있는 방장노 부인에게 그만 들키고 말았다.

“아 저모양을 하고 어디로 가시랴우?”

나드리 옷을 입고 문을 열고나오는 명순이를 바라보며 깜짝 놀라서 외친다.

“가회동에를 좀 갔다 오랴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요 아픈 몸으로 어디를 가신단 말이요”

그러나 명순이는 억지로 용기를 내여보였다.

“관계찮습니다. 금방 갔다올걸요”

방장노 부인은 흙 묻은 손을 툭툭 털며 대문까지 따라나온다.

명순이는 이럴수록 미안한 생각만 난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곧 다녀오겠읍니다.

“그러면 조심해서 갔다오시오”

그 부인은 금심스러운 낯빛으로 명순의 비슬거리고 나가는 뒷모양을 바라보고 섰다.

명순이는 찬찬히 걸어서 골목을 굽이 돌아 나와 동대문행 전차에 올았다. 그는 몹시도 휘둘리는 것 같아서 전차에 오른쪽 가슴이 울렁거리고 혼도가 될 것 같았다. 일기가 차차로 더워옴을 따라 병도 차차 자라나는것 같았다. 이른 봄부터 몸은 다소 괴로웠지만 다른 번민으로 마음에 심화가 생겨서 몸이 아픈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전차가 탑동공원 앞에 이르렀을때 명순이는 전차에서 내려서 낙원동에 있는 ‘대제병원’ 으로 향하였다. 서대문정 가까운 곳에도 병원들이 많았지만 ‘대제병원’ 은 이전에 자주 다니던 병원이고 낯익은 의사들도 있으므로 괴로움을 무릅쓰고 낙원동까지 온 것이었다. 거리에는 제철이 왔다는 듯이 빙수점(氷水店) 의 깃발이 여기저기서 너펄거리고 있다. 아직은 좀 이른 듯하나 그래도 명순이는 그 놈의 빙수를 한 그릇만 먹었으면 살 것 같았다. 명순이는 빙수점으로 들어가려고 몇 번이나 망설었다. 구미를 잃은 후 아무것도 입맛이 당기지 아니하여 잘 먹지도 못하였지만 시원한 빙수를 한 그릇만 먹으면 어지러운 정신이 번쩍 날 것 같으며 답답한 가슴이 탁티울 것도 같았다. 쓱싹쓱싹 얼음가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상쾌하였다. 유리창 넘어로 보이는 유리컵에 차고 넘치게 담어논 빙수 샛발간 이찌고를 보기 좋게 뿌려논 빙수를 명순이는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십전이면 한잔을 사서 소원대로 먹을 수 있겠지만 여자의 체면으로 참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명순이는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걸음을 빨리 하여 병원앞에 이르렀다.

몇달전에 병원 신축공사를 시작한 것을 보고는 이번이 이 곳이 처음인데 그 사이에 깨끗하여 보이는 현대식 이층 양옥으로 변하였다. 나즉한 담과 좁은 뜰에 서있는 두어대의 상록수가 그 건물과 규격이 맞고 청아한 맛이 있어 보인다. ‘대제병원’ 은 나진(羅珍) 이라는 사람의 개인경영인 보잘 것 없는 소규모의 병원이었던 것이 나 의사가 박사학위를 얻은 뒤로는 내과의 명의로 이름이 일조에 올라갔으며 남녀 환자들이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낯 모를 젊은 의사가 복도로 분주히 도고 가고 하였다.

어린 아이의 웃음소리, 머리를 붕대로 감은 사람, 다리를 싸맨 사람, 한쪽 눈을 싸맨 학생, 손을 둘러멘 부인 병원안은 그야말로 살풍경이었다. 해부도를 쥐고 왔다갔다 하는 의사, 주사기구를 소독하는 조수, 약병울 들고 분주히 다니는 간호부 수술실에서 흘러 나오는 어린 아이의 외마디 울음 소리, 진찰실을 나아가는 사람, 들어 오는 부인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명순이는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신이 핑핑 돌았다. 왔다 갔다하는 사오명의 의사도 모두 모를 사람이고, 간호부도 그렇고 조수들도 알만한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것을 살펴보면 이전 대제병원보다 확연히 변하였다. 꾸며논 모든 기구가 굉장히 빛나는 새것이고 넓은 진찰실안이 기름이 핑핑 도는 것 같다. 의사도 다 젊은 청년들이었다.

진찰실 서쪽에는 연구실로 통하는 문이 있고 북쪽으로는 수술실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것은 문위에 붙어있는 대리석으로 만든 적은 문패에 씨어있는 글씨를보고도 알 수가 있었다.

명순이는 알음직한 사람이 보이는가 소독복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보두 처음 보는 사람들 뿐이었다.

명순이는 아무 말도 없이 멍하게 서 있는 자기의 모양을 자기가 보아도 우스웠다.

“나선생이 어디로 갔을까?”

“수술실로 들어갔는가?”

“외출을 했나?”

명순이는 속으로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명순이는 한 쪽 구석에 놓인 의자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서 정신을 기다듬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나의사가 나타나지 아니하므로 혹시 이것이 대제병원이 아닌가 의심도 하였다. 그러나 명순이는 이 병원으로 들오올 때 간판을 보아서 확실히 대제병원이라는 것을 안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의사는 이미 폐업을 하고 그 간판아래에 단 사람이 이 병원을 경영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의심하였다.

환자는 물밀듯이 모여든다. 의사들은 눈코뜰새 없을만치 분주하였다.

시계는 오후 두시를 친다. 명순이가 병원으로 들어온지도 삼십분이나 넘었다.

몸은 점점 괴로워 오는데다가 꼭 앉고만 있으려니 어쩔줄을 모르게 전신이 뒤틀린다.

더욱이나 환자들이 욱시굴 욱시굴하여 정신을 차릴 도리가 없었다.

명순이는 이렇게만 있을 수가 없어서 기왕 온 것이니 나의사가 없더라도 진찰이나 받아보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환자가 원체 많으니 그 차례를 기라리려면 아직도 먼 것 같다. 그러니 누구나 먼저 진찰을 받으려고 야단들이다.

명순이는 할 수 없이 도로 나오려고 할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간호부가 있었다.

그 간호부를 보니 자기가 친히 아는 간호부였다. 명순이는 이러한 중에서 친면이 있는 간호부를 만난 것이 몹시 반가웠다.

“오래간만이 올시다.”

명순이는 비슬거리는 몸을 일으키어 그 간호부의 손목을 떨리는 손으로 쥐며 이렇게 인사를 하였다.

“명순씨 이것 참 오래감만이예요. 그동안 어디계셨어요?”

“서울에 있었지요.”

“그런데 그렇게 만나뵈울 수가 없었담.”

“서로 길이 달러노니까 자연 그렇게 된 것이지요 그것보다도 몸이 튼튼하고 병이 없었으니까 만나볼 기회가 적었었지요. 이제부터는 자주 만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가 편치 않으십니까? 얼굴이 퍽 수척하여 졌구먼..투실투실 하시던 팔목도!”

“그러길래 병원을 찾아왔지요? 그런데 나선생이 어디 계시나요?”

명순이는 그 간호부와 그렇게 친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중에서 알 사람을 만나니 일시에 친하던 것 같이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그 간호부는 그전 이 대제병원에 있던 간호부로 서로 면목을 알고 인사나 할만한 처지가 되었다.

“나선생님 말씀이오? 계십니다. 저 이층 내과실에 계세요”하며 간호부는 잠깐 실례를 하겠다고 인사를 하고 연구실문을 열고 들어간다. 명순이는 간호부의 말을 듣고, 이것이 외과실인것을 알았다.

“나도 꽤 정신이 없었구나” 하며 이제까지 앉아 기다린 것이 우스웠다. 명순이는 간호부가 나오기를 기다려 간호부의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응접실을 지나 그 다음 방이 내과실이었다. 명순이는 간호부와 함께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외과실보다 환자가 성그렀다. 실내도 장식하여 놓은 것이 외과실보다 더 훌륭하였다.

이 곳에도 양쪽으로 두 사람씩 늘어앉은 젊은 의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병자를 진찰하고있다. 크다란 회전의자에 앉아있는 나의사도 병자를 진찰하고 있다.

명순이는 나의사가 진찰을 마칠 때까지 그 앞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사는 진찰을 끝마치고 나더니 명순이를 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며

“명순씨 오래간만이 올시다. 왜 그렇게 보이지 않소?”

“그동안 아무런 병이 없었으니까요. 선생님으 와 뵈옵지 못하였지요.”

명순이는 피곤한 웃음을 생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나의사도 별로 큰 의미 없는 말이었지만 따라 웃는다.

“오늘은 어디가 편치 않아서 왔소?

“머리도 아프고 배와 가슴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몸이 몹시 괴로움을 느낄 때는 어지러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명순이는 병증세를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명순이는 나의사의 곁에 가서 마주 앉았다. 나의사는 먁과 체온등을 본 다음 가슴과 여러곳을 낱낱이 진찰을 하고 나서 의아한 낯으로 찡그리기도 하고 머리를 가로 흔들기도 한다.

명순이는 나의사가 재삼 진찰을 하는 것을 보고 병이 중하지나 아니한가고 속으로 퍽 걱정이 되었다. 나의사가 진찰을 마치고나서 묵묵히 배를 피우고 천정을 치어다보고 있는고로 이는 더욱 근심이 되었다.

“어떻습니까? 죽지는 않겠습니까?”

명순이는 너무도 안타까워서 물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이 담배만 푹푹피우고 있다. 명순이도 더 묻지 못하고 나의사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만 기다리고 앉아 있을밖에 없었다.

나의사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앉아서 무엇을 곰곰 생각하는 듯하다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무거운 어조로 “이리로 오십시오” 하며 그는 명순이가 오거나 말거나 혼자 <부인진찰실>이라고 써 붙인 방으로 들어간다. 명순이는 가벼운 공포를 느끼면서 의자에서 일어나서 나의사가 들어간 방으로 뒤따라 들어간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명순이는 나의사가 시키는데로 진찰 침대에 반듯이 누웠다. 나의사는 근 십오분동안이나 배를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하고 눌러보기도 하다가 또 다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서 물끄럼이 명순이만 바라본다. 명순이는 진찰이 끝난 것을 알고 일어나 앉아서 못을 바로 고쳐 입었다.

나의사는 이상한 눈초리로 명순이를 바라보다가 “결혼을 언제 하셨습니까?” 묻는다.

명순이의 마음에는 이상한 전광이 휙 지나가는 듯이 윗몸이 떨리었다.

“네?”

명순이의 말소리도 떨리었다. 눈은이상하게도 빛난다.

“네?”

명순의 눈에는 눈물이 그럼그렁 하였다.

“결혼을 언제 하셨읍니까”

“결혼을요?”

명순의 말소리는 더욱 떨렸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여 그 다음 말을 못내놓았다.

“결혼을?……”

명순이는 거의 미친 사람 모양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언제부터 몸이 편ᄒ지 않으섰읍니까?”

명순의 눈치를 알아차린 나의사는 슬쩍 말귀를 돌려서 물어본다.

“지내간 봅부터 조금씩 앓기를 시작하였읍니다”

“냉이 자꾸 치올라오지요?”

“네 그렀읍니다. 그게 무슨 병이예요?”

“아니 그렇게 중하지는 않습니다마는”

나의사는 흥분된 명순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딴청을 하고는 바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죽어도 좋습니다. 병명이나 알으켜 주십시오 무슨 병이예요”

나의사의 태도를 이상하게 보면 볼수록 자기의 병명이 궁금하였다. 나의사가 결혼을 언제 하였는가고 묻는 그 말에 명순이도 자기의병명의 십분지 구는 알아 채렸지만 하도 그 말이 두려우니 행여나 다른 병이라 하였으면 했다.

“예? 무슨병이예요?”

“아마도 소화불량이겠지요”

나의사는 명순의 태도가 상서러웁지 않으므로 어름어름 대답을 하였다.

영리항 명순이는 소화불량이라는 대답이 거짓으로 꾸며대는 말로 알았다.

명순이는 중대한 문제가 눈 앞에 가로 놓였으믈 깨달았다.

그것은 최후인 주검과 삶이다.

“선생님 웨 바로 말씀을 안하십니까 웨 저를 속이십니까?”

명순은 울음이 기어코 터지고 말았다. 그는 침대에 쓸어져 체면불고하고서 느껴운다. 마치 어린 아이 모양으로 흑흑 느끼어 우는 것이다. 솟아오르는 울음을 억지로 참어가며 느끼어 우는 명순이를 나의사는 물끄럼이 바라보고 앉았다.

“선생님 바로 말씀을 하여 주십시요 예”

명순이는 울던 울음을 끊지고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읍니다 다만 소화불량입니다”

“그런데 웨 결혼한 것을 물으셨어요”

명순이를 살리고 죽이기에는 이 대답에 달린 것이다. 명순이는 이 말대답의 결과를 알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도 이 말대답의 결과가 자기의 운명을 좌우할 절대의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사도 그 말에 대답은 괴로웠다. 의사는 이러한 경험을 여러번 겪었지만 순진해 보이는 명순이로서는 물론 결혼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명순에게 기뿐 소식을 알리려고 삼사차나 상세히 진찰을 하여 보았던 것인데 도리어 그에게 큰 고통을 던져 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어안이 벙벙하였다. 언제든지 필연적으로 알려질 것이나 어쩐지 명순이가 자기로 말미암아 큰 불행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것은 자기가 처음 진찰을 하여서 그런 것을 발견하여낸 까닭으로 더욱이 미안하였다. 그는 인자한 마음씨를 가진 의사였으므로 그에게는 인정이라는 것이 의사로서도 남아 있었다.

“예? 말씀을 하여 주세요”

“결혼한 것을 물은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물은 것은 아니올시다. 우연히 말이 나온것이지요”

“아니올시다. 운연히 나올 말씀이 아니예요 바로 말씀해 주세요”

의사는 탈이 없도록 말 할 묘책이 없었다.

언제든지 명순이가 스스로 알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안타까웁게 묻는데는 알려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던 말던 지금에 와서 알려주지아니하는 것은 그에게 더 큰 번민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묻는 것을 대답하신다면 나도 대답하지요”

“물으십시오? 무엇이던 대답해 들이지요”

“그러면 묻겠읍니다. 결혼을 하섰읍니까? 네? 결혼은……”

명순은 어떠한 선고를 받을 재판 같아서 가슴이 덜렁하였다.

명순이는 나의사에게서 그러한 말이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자기가 죄악의 저주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쩃든 시원하게 알아보랴고 그는 대답을 하였다.

“아직 안하였어요”

말을 마친 명순의 그렇게 창백하던 낯빛은 불시에 빨개졌다. 나의사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숙일 때의 입속으로는 ‘옛! 더러운 년!’하고 욕을 삼키는 듯하였다.

명순은 그 말을 해놓고는 자기의 몸을 어느곳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괴로웠다. 자기는 이미 자기의 입으로 단 한마디의 말로써 폭로하지 않았는가?

나의사도 이 말을 몰라서 물어본 것도 아니었지만 명순의 티도를 암만 보아도 그러할여자같지는 않으므로 정체를 캐여보려고 물었던 것이다.

“결혼은 안하셨더라도 약혼한 남자야 계시겠지요”

나의사는 명순이가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알아차리고 더 한술 떠서 물어보았다.

명순이는 입이 열이더라도 대답을 못할 말이었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내었다.

“나선생님! 저의 병이 무슨 병입니까? 시원하게 말씀이나 하여주세요 그것만!”

명순이는 아무런 경우에서라도 그것만은 확실히 알고 싶었다. 자기로도 절반 이상은 추측을 한 것이지만 죽어야 할 말이라도 시원하게 듣고나 볼 일이었다.

“예? 선생님 어떠한 말씀을 하시더라도 관계없읍니다. 말씀을 하여 주십시오 대체 무슨병입니까”

“아무 병도 아닙니다. 그저 소화불량증입니다”

나의사는 한참 침묵을 하였다가 할 수 없이 진찰한 결과대로 말하였다.

“바로 말씀하자면 임신중이 올시다. 이미 사개월이나 되염즉한데요 어떠한 감촉이 없읍디까? 그만 때면 알만도 한데요”

명순이는 자기가 추측한데에 조금도 틀리지 않음을 확실히 알았다.

“예? 임신중예요”

이렇게 부르짖고는 의사의 손목을 쥐고 미칠듯이 몸부림을 치며 운다.

“선생님 다시 좀 더 자세히 보아주세요? 예 선생님 그짓 말씀입니다. 그럴리가 있나요”

“자세히 보았읍니다. 조금도 틀림 없읍니다”

나의사는 말을 마친 후 바쁘다는 핑계를 하고서 나가버렸다.

홀로 남어 있는 명순이는 침대에 쓸어저 다시 느끼어 운다.

이러한 일에 경험이 없는 그는 의사의 말이 모두가 거짓말이요 진단을 잘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개성에서 변을 당하던 그 때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꼽아보니 그렇다면 사개월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과연 의사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명순이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어찌 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랐다.

창선이라는 놈! 그 놈의 꾀에 빠져서 이렇게 인생으로서의 파멸을 여지없이 당하게 되니 진실로 원통하고 분하였다.

일시적 저의 야욕을 채우려고 전정이 구만리인 처녀를 망처논 그놈! 즘생 같은 그 놈! 참으로 치가 떨리는 일이었다.

“내가 약하였었다”

“내가 못난 년이다”

명순이는 두 주먹을 부르쥐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딱 버티고 서서 부르짖었다.

“웨 내가 그 때에 그러한 추행을 당하고도 그자리에서 그 놈을 그냥 두었던가? 그리고 웨 오늘까지 남성에게 항거를 못하였던가? 나는 그때에 죽을 힘을 다하여 항거를 하고 소리를 질렀더면 그런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못난 년이다. 죽일 년이다”

그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침대에 다시 쓸어져 버렸다.

“어리석은 년이다 철하씨를 만나서 사죄를 하겠다구? 이 못나고 더러운 몸을 철하에게 바치겠다고……”

명순이는 한 줄기의 희망이나마 얻으려고 그 후에도 무한한 고통과 번뇌를 참아온 것이 우스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감옥에 보내놓고 그 동안을 기다리지 못하여 그 더러운 행동을 하였다고 세상이 자기를 비웃을 것을 생각하니 앞길이 아득하였다.

이제는 철하고 무에고 모든게 절망이었다.

“죽어버리자 깨끗하게 죽어버리자 뱃속에 든것이 세상에 나온다고 해도 그 인간은 세상이 얼마나 학대를 할 것이냐 그렇다 죽자!”

이제는 과거기고 미래가 없다 다만 지금 이순간이 있을뿐이었다.

그러나 철하는 잊지 못할 존재였다. 최후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는 아타까웁게도 철하가 그리웠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나온다 하여도 자기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는 주검외에 더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그 무서운 주검을 선택하자― 생각만 하여도 슬픈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주검 밖에 더 평안한 것이 없었다.

명순이는 흩어진 머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비슬비슬 하면서 문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문고리를 쥔 명순의 손은 문을 열만한 힘을 가지지 못하였다. 힘보다도 용기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것은 진찰실에서 흘러나오는 의사와 간호부들이 떠드는 말소리와 웃음 소리가 마치 자기의 이야기를 지꺼리고 비웃는 것 같이생각이 되었던 까닭이었다. 명순이는 부끄러워서 참아 낯을 들고 나갈수가 없었다.

그는 몸을 돌이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다른대로는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없었다. 진찰실을 통해야만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층이 아니면 들창으로라도 뛰어나갈 생각이 났으나 할 수 없이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와서 주저 앉았다. 그러자 네시를 치는 괘종소리가 진찰실로부터 흘러나왔다.

명순이는 어느 때까지나 이 모양으로 그대로 있을수가 없어 마음은 달래로 달았다. 네시를 친지 십분도 못되어 간호부가 유리컵에다 무엇을 담아가지고 들어왔다.

“퍽 괴롭습니까 그것 참 안되었읍니다”

명순이는 간호부가 이렇게 인사 삼아 말하는 것도 모두가 자기를 조롱하는 말과 같이 생각하였다.

그것은 비단 목전에 있는 간호부만이 아니고 자기의 정체를 아는 나의사가 진찰실에 나가서 광고를 하 듯이 이야기한 것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을 좀 마시십시오 탄산수(炭酸水)입니다”

“싫어요 마시고 싶지 않어요”

“나선생이 갖다 드리라고 하셔서 가저 온 것입니다. 그까진 위장병으로 그렇게 비관하실거야 있어요”

간호부가 위장병이라고 하는 말도 명순이에게는 더 지독한 조롱으로 들렸다.

“나선생이 위장병이라고 말씀하십디까”

“네! 내가 물어 보았지요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고 하서요”

명순이는 이제서야 나의사가 비밀을 지키여준줄을 알았다.

자기가 죽더라도 세상에서 이 일을 알게만 되면 처녀로 아이를 배인 것이 양심에 거리끼여 죽었다고 할 것이므로 죽어도 자기는 부정 여자임은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영원히 나의사가 이 비밀을 지켜 준다면 자기의 주검은 한 수수꺼끼로 돌아가고 이 괴로운 세상에서 피난하는 셈이 될 것이다.

명순이는 탄산수를 받아서 한 목음에 흘쩍 마시었다. 불이 타오르는 듯하던 가슴이 얼마간 시원한 듯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계속될 것이 아니었다.

명순이는 자유로운 기회나 얻은 듯이 간호부의 뒤를 따라 진찰실로 나왔다.

그러나 나의사를 대하기가 어려워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 병원을 나왔다.

이렇게 되니 명순이는 갈 곳이 없었다. 방장노의 집은 더욱이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주검의 안식터를 찾기 위하여 병원 대문앞에 한참 동안 정신 없이 서서 맘속으로 그 길을 찾았다. 그의 눈앞에는 길게 누워 흐르는 강물이 보였다.

“한강! 한강으로 가자―”

그는 주검의 적당한 장소가 한강 밖에 없다고 언듯 생각하였다.

그는 이 세상이 자기의 마지막 길을 그리로 선정해준 것이라 하였다.

그보다도 자기의 더러운 몸을 매장하기 위하여 깨끗이 청산해 버리기 위하여 쓰라린 가슴을 억제하면서 한강을 향하여 발을 떼여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