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6장
출옥후
[편집]칠월 오일의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한 경성의 거리에는 하루밤의 안식에 만족을 얻었다는 듯이 거대한 과학의 괴물들이 이상한 음향을 지르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공장으로다니는 직공들 만은 오히려 단잠을 깨인 것이 안타깝다는 듯이 어깨를 움추리고 눈을 부비며 동으로 서으로 달음질을 치고 있다.
전차 자동차들은 볼이 바쁘다느 듯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한다. 시간이 갈수록 그 수효는 늘어간다.
상정 은행 회사 등의 굳게 닫히었던 문들도 열리기 시작한다.
“여보 운전수 서대문 형무소까지-”
연순이는 자동차에 오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자동차는 아침 안개를 뚫고 서대문 형무소를 향하여 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연순이는 지금 가는길이 끝 없이 즐거웠다. 사파세계에서 늘 동경하건 “파라다이쓰”를 향하여 가는 듯한감상이 생겼다.
그는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자기가 살아온 것이 오늘을 바라보고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밤잠을 자지않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시간이 되지 않은 줄을 알면서도 한시가 바뻐서 여관방에 있지 못하고 자동차를 몰아가지고 서대문 감옥으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연순이는 춤이라고 추고 싶었다 너무도 좋아서 혼자 웃기도 하였다.
자동차는 어느 사이에 서대문 형무소 앞에 이르렀다.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붉은 벽돌로 울타리를한 담벽 그 안은 이 세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크달나 철문이 무거웁게 닫혀 있다.
연순이는 조리조리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철하가 나오기를 기다리었다. 여덟시 아홉시 열시가 넘어도 나오지 않는다.
열두시가 넘어도 나오지 않는다. 연순이는 철하를 기다리는 기쁨에 공복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연순에게는 아무 것도 생각할 여우가 없었다. 그러고 연순의 눈은 대문쪽에서 떠나지 않았다. 철하가 나오는 것만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후 한시반 굳게 닫히었던 문이 열리더니 안으로부터 한명의 청년이 머리를 숙이고 나온다.
그것은 연순이가 이른 아침부너 애쓰고 기다리고 있던 철하이었다.
연순이는 힘없이 걸어나오는 철하를 보고 그 앞으로 어린애들 모양으로 달음박질을 하여갔다.
“철하씨 얼마나 고생하셨읍니까?”
철하는 연순의 말에 겨우 정신을 처리였다 갑작이 웬 여자가 반가히 인사를 하여 주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서 그를 치어다보았다. 뜻도하지 않았던 연순이가 왔다. 그 외에는 아무도 와서 기다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철하는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사면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한대의 자동차와 운전수가 있을뿐이고 아무도 없었다.
철하의 마음은 무너지는 듯하였다. 명순이와 수길이가 와서 기다려줄 줄을 알았던 것이 그 사람들은 그리자도 보이지 않았다.
철하는 속으로 퍽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꼭 와서 기다려 줄 그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니 마음이 섭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가 와서 기다려 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출옥하는 줄을 알지 못하여 나오지 않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로 갔는지? 몸이 편하지를 아니한지? 철하의 마음은 참으로 갑갑하였다.
“이와같이 나와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명순씨는 어디로 가섰읍니까. 수길씨도......”
철하는 인사의 대답겸 명순이와 수길의 사정을 알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씨 말씀입니까 명순의 말씀은 더 묻지 마십시오”
연순이는 큰 승리나 한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예에? 어떻게 되어서 명순씨말은더 묻지 말라고 하십니까?”
철하는 가슴이 서늘하였다. 연순의 말하는 어조와 표정을 보더라도 명순의 불길을 전하는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차차 이야기 하지요 자아 저 자동차를 타고 갑시다”
철하는 마음이 더욱 갑갑하였다. 한시라도 속히 명순의 소식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더 묻지도 못하고 연순이가 권하는대로 자동차에 올랐다.
철하는 감옥에서 나와서 자유로운 몸은 되었으나 반가운 마음은 없었다.
부모나 있으면 자기를 다정하게 맞아줄 것인데도 부모는 고사하고 단 한간의 집도 가지지못한 몸이 고 더욱이 명순이 맞우 나와 주지 않었으므로 마음이 쓰라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하는 한 마디의 말도 못하고 연순의 입에서 명순의 말이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연순의 입에서는 명순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
철하는 연순이와 함께 종로 네거리에 와서 자동차에서 내렸다.
철하는 연순의 뒤를 따라 관철동 좁은 골목을 굽이 돌아서 공신여관으로 들어갔다.
철하는 방에 들어가 앉기도 급하게 명순의 일을 알고 싶어서 명순의 말을 끄내었다.
“명순씨가 지금 어디 계십니까?”
“명순씨 말씁입니까? 지금쯤은 신호에 있을는지 명고옥에 있을느지요?”
“예? 일본으로 가셨단 말입니까?”
“일본 중요 도시를 여행을 한답니다.”
연순이는 명순이를 비웃을대로 비웃고 싶었다.
“일본 여행요?”
“네 신혼여행이랍니다”
“신혼여행이라니요?”
철하의 두 눈은 이상하게도 빛났다. 그러고 정신이 아뜩하였다.
“명순씨는 벌써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지가 오래였읍니다”
“누구와 결혼을 하섰읍니까?”
“변원식이와 결혼을 하섰답니다”
“변원식이와?”
찰하는 이렇게 부르짖고 나서 분에 못이겨 펄펄 뛰고 있었다.
철석 같이 믿었던 명순이가 자기가 감옥으로 간 후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는 것을 생각하니 자기가 명순이를 믿어온 것이 어리석은 것 같았다.
명순이도 약한 여자다. 황금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의 원수에게 시집을 간 그가 끝 없이 미웠다.
“지금까지도 이 경성안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전체에서 변원식이와 김명순의 결혼에 대해여 큰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읍니다. 바로 지나간 삼월 이십칠일인데요 그 두사람의 결혼식이 중앙공회당에서 열리었는데 경희라는 여자말입니다. 그 이가 나타나서 결혼식에 풍파를 일으키였던 것이랍니다.”
연순이는 결혼식장에서 풍파가 일어난 이야기며 구 후 신문에 기재되어 괸장한 이야기거리가 되고 있다는 말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죄다 이야기하였다.
명순이가 문제중의 인물이 되어 있고 기로에서 해매고 있는 것이니 연순이는 될수 있는데로 철하의 마음이 명순에게서 멀어지도록 없는 말 있는말을 함부로 하였다.
“돈! 돈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돈에 눈이 어두웠다고 하더라도 애인이 감옥으로 간 후에 그런 사람으로 감이 하지 몽할 일을 하는 법이 어디 있겠읍니까 철하씨 보세요 그런 여자를 믿고 살 수가 있겠어요?”
연순이는 의기양양하였다. 전년 함흥에서 당하던 모욕의 성풀이를 하였다.
“철하씨는 명순이를 믿어 오셨지만 명순이는 마음이 아직도 고정하지 못한 여가가 아닙니까. 오늘은 이 사람을 사랑하다가는 내일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간사한 여자라고 볼 수가 있지 않어요?”
철하는 한 마디의 대답도 못하였다.
다만 모든 일에 승리를 얻었다는 듯한 연순이가 떠들고 있는 것을 듣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명순에게 대한 중오도 증오려니와다른 사람의 약점을 들어서 비평을 하고 있는 연순의 꼴도 보기 싫였다.
“철하씨 그렇게 거짓사랑을 꿈여서 사람을 속이는 명순이를 믿어온 것이 우습지 않습니까 나는 죽으면 죽을지언정 애인을 버리고 돈을 따러갈 생각은 없읍니다. 그러고야 살아갈 자미가 무엇이여요”
“그러나 사람을 함부로 비평을 하지는 못할 것이지요 명순이도 어떠한 면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되였을테지요”
연순이가 의기 등등하여 말하는 꼴이 보기 싫여서 철하는 일부러 비꼬아 보았다.
그러고 명순의 일이 분하기는 끝 없이 분하였지만 그래도 명순이를 보고 싶었다.
“사정이요? 그렇게도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순이는 참으로 방탕한 여자입니다.변원식이와 결혼하기 전에는 다른 남자와 비단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 손을 거처서 두 남자에게로 넘어간 세음이지요”
연순이는 이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철하가 아직도 명순이를 생각하고 있는 눈치가 보이므로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또 다른 남자와?”
“예해! 광장하지요 이년도 못디는 사이에 두 남자나 사랑하고......”
연순이는 빈정데는 어조로 말하였다.
“누구와?”
철하의 태도는 분하다기보다 냉정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일러들여도 아지 못할 사람이고 또 지금은 이 세상에 있지 않는 사람인고로 말하지 않겠어요”
연순이는 그 사람이 이름을 대여 주는 것이 자기에게 불리하므로 말하지 않았다. 만일 창선의 이름을 대여주어 자기에게 해로운 점이 없다면 그는 대번에 말하엿을 것이다.
철하도 더 묻고 싶지 않았다. 들으면 병만 되고 속만 상하는고로 모든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명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자기의 심혈을 어지럽게 하는 비극 같이 들렸다.
“수길의 소식을 알수가 없읍니까?”‘
철하는 일부러 말을 다른데로 돌렸다.
“수길시 말씁입니까 몇달 전에 만나보고는 그 후에는 소식도 듣지 못하엿어요”
연순이는 수길이라는 말을 듣고 몇달전 이방에서 그와 담화를 하고 였을 때 봉변을 당하뎐 일을 회상하였다.
그러고 마음 한 구석에서 가비어둔 불안이 떠도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창선이가 자기의 사촌오빠라는 이유이었다.
“만일 수길이가 경성에 있다면 오늘 감옥으로 오지 않을 이치가 없겠는데”
철하는 매우 궁금하였다.
“경성안에는 있는 것 같지 않어요 요전달인가 제가 우연한 기회에 ‘철근’이라는 잡지를 보았읍니다. 그 ‘철근’ 에서 수길씨가 쓴시 한 편을 보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경성안은 고사하고 조선안에도 있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면 수길씨가 해외로 가셨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렇세 생각하였읍니다.
..............
흘러가는 강가에 발을 멈추고
다시금 몸을 돌려
내 살던 강산을 바라보니
설음에 솟는 눈물 앞을 가리워
님의 얼굴 못보고 강을 넘노라
................
이 시(時)를 보더라도 그가 해외로 갔다는 것을 분명이 알수가 잇지 않습니까”
연순이는 그 유창한 목소리로 이렇게 시를 읆으며 말하였다.
연순이는 수길의 시를 외이게 된 것도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수길이와 언쟁을 할 때 수길이가 선언을 하던 말이 무서워서 수길이가 이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철하가 출옥한 다음 철하를 완전한 자기의 소유물을 만들 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오던 중 우연이 잡지에서 수길이 시 한편을 읽어 보고서 그 내용이 먼 해외로 떠나가면서 쓴 것같아야 여러 번 읽어보고 읽어보는 사이에 자연이 암송을 하게까지 되었던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무에라고 씨웠읍디가”
철하는 그 다음 절구를 알아가직 수길의 사정을 추측하여 보려고한 것이다.
“님이여! 이 몸은
님위하여 바친 몸이오니
병신된 님의 얼굴 보고
내 어이 안 싸오리까
◇
님이여! 청춘의 붉은 피는
“삷”을 위한 피오니
임의 임종을 보고
내 어이 믉은 이 피를
임께 안 드리오리까
임이여! 험준한 이 강도
임 위하여 건느노니
비수 고민에
내 어이 가던 길을 멈추오리까”
◇
“이것이 그 다음 구절입니다. 수길씨에게는 아마도 남다른 설음이 있는가 봅니다”
연순이는 속으로 수길이가 끝없이 미웠지만 철하의 앞에서 그러한 기색을 나타내는 것이 자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수길에게 가장 동정하는 체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고는 철하의 낯을 치어다보았다.
철하는 연순이가 칭아할 목소리로 줄줄 내려 외이는 수길의 시(時)를 듣고 연순의 말과 같이 수길이가 해외로 떠나 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경희씨는 어떻게 되었나요?”
“경희의 소식은 알수가 없읍니다. 삼월 이십 칠일에 결혼식장에 나타났다가 살아진 후에는 행방불명이 된 모양인가 봅니다”
철하는 자기가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모든 사건이 급격하게 변동이 되고 있는것에 대하여 놀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그 대보다 더욱 험하여 진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마음 붙일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 근심과 걱정이 없는 감옥이 이 세상보다 오히려 나은 것 같이 생각이되었다.
이제부터 철하는 생활문제도 큰 문제였다.먹을 것은 고사하고 단 한간의 움집이나마 없으니 가로에서 지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연순이가 아무리 보기 싫엿지만 그마저 감사히 맞아주지 앉았더면 철하는 출옥한 뒤 갈 곳이 없어 가로에서 방활하였을 것이었다.
철하는 연순의덕에 여관에서 저녁을 얻어 먹고 그대로 여관에 있기도 승거워서 여관문을 나왔다.
인제는 무엇보다도 내일부터는 먹을 것을위하여 활동하지 아니하면 안될 형편에 이르렸다.
연관문을 나선 철하는 소격동에 있는 이전에 세를 얻어 있던 집을 향하여 발을 옮겨놓았다. 그것은 그 집을 찾아가서 하루밤의 안식아나마 얻으려고 생각하였던 까닭이었다. 물론 영원이 그 집에 잇으리라고는 미디 않았다. 전번의 지세도 두달치나 밀리였으니 그 집 주인이 그 집에 있기를 승락을 하지 않을 것ᄋ르 잘 알고 있었다.
철하는 옛집문앞에 이르렸다. 그러나 그 집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을 집안에서 단락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을 들었던 까닭이었다.
집주인은 철하를 위하여 집을 비워놓았을리가 만무하였다. 이미 다른 사람이 세를 들어 있는 것이다.
철하가 감옥으로 가기전에 이 집에 남겨놓고 간 가구와 옷궤짝도 있었지만 그것을 찾는다면 줄리도 만무하였고 준대도 처치할 곳도 없었다.
철하는 그대로 발을 돌려서 나오는쓰라린 마음에 철하는 눈물이 고였다.
철하는 자기가 완전이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얄궃은 세상에 마음도 붙지 않았다.
불연듯이 그는 세상르 저주하고 싶었다.
철하는 갈곳이 없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철하는 노동숙박소에 가서 그 날 밤을 지내고 그 이튿날부터는 노동시장으로 돌아다니며 먹을 것ᄋ르 위하여 노동을 하였다
밤이면 노동숙박소에 돌아와서 여러 동무들에게 XX사상의 강의를 하는것으로 유일의 락을 삼았다. 물론 상대자들이 한글도 잘 알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들 뿐인 까닭에 알아듣기 쉽게 아야기 하였다.
철하는 노동, 강의, 잠 이것 밖에는 락을 사지 않았다.
명순이도 사랑도 그까짓것들은 생가지 않기로 작정을 하엿다.
다만 잘곳을 얻고 먹을 수가 있게 된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날 그날의 살림을 계속하였다.
그 외에는 별다른 생활의 변동이 없엇다. 매일 판으로박은 듯한 꼭 같은 생활을 계속하였다.
가끔 저녁이면 연순이가 찾아오지만 생활의식이 서로 다르므로 이야기할 자미는 없고 또 그러한 뿌르조아의 영양?과 서로 교제를 한다는것이 곁에 있는 동무들의 낯을 보기에 부끄러워서 연순이가 찾아올 때마다 외출을 하였다고 다른 동무에게 전하여 달라고 하고는 면회를 회피하였다.
같은 설음에서 사는 동무들과 함께 덕고 함께 자는 것 밖에는 외인과는 일체 교제를 끊어버리였다.
철하가 노동숙박소에 들어온지 두어 주일 넘은 어떤 오후이었다. 철하가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일터에서 돌아오니 낯익을 종로서 형사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철하는 수건으로 비지땀을 씻으면서 속으로 또 무슨 일이 생겨서 형사가 온 줄로 생각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형사는 철하가 자리에 앉는 것을 기다려서 무슨 말을 하려고 기침을 한다.
“웨 이름을 고치였오”
형사는 낯을 찡그리며 말한다.
“이름을 고치는것까지 간섭할 필요가 있읍니까”
철하는 말을 마치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라고 하더라도 이쪽의 편리도 보아 주어야 되지 않겠오”
“편리라니요?”
철하는 반이나 짐작을 하면서도 모르는체하고 이렇게 말하엿다.
“당신이 출옥한 다음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여 펄 찾었오”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었나요?”
“..............”
형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저는 출옥한 날 밤부터 이곳에와서 있엇는데요”
“이 곳에 와있는것을 어저께야 알었오 그러나 섭섭한 말 같으나 오늘 밤부터 이곳에 있지 마시오”
“예헤! 웨요?”
“당신 같은 사람이 이 곳에 있는것이 자미 없으니까 다른 데로 가라는 말이오”
“갈 데가 있으면 오늘 밤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나가겠지마는 집도 돈도 없는 모이니 갑작이 어디로 나가겠읍니까?”
철하는 자기가 퇴거명령을 당하고 있는 줄을 알았다. 아무리 말하여도 소용이 없을 줄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갈데가 있고 없고 그것은 지금 말할 것이 아니오 이곳이 아니라도 노동만 충실히하면 아무 데라도 가서 유숙할 수가 있으니까”
“적은 노동임금을 받어가지고 어디 가서 살란 말이요”
철하는 사정이 딱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경성에서 살 수가 없으면 인심이 후한 시골에 내려가서 사시구려 유족한 살림을 하려면 시골로 가야 되지요 이놈의 경성바닥에서야 제것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니까요 나도 농촌에 가서 농업에 종사할 생각이 날대가 많은데요”
철하는 형사의 달래는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철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말한들 입만 아팠지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을 알고 다만 오늘 밤만 이곳에서 숙박하기를 겨우 승락을 얻었다.
철하는 형사가 돌아간 다음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내일 갈 속을 생각하였다.
암만 생각였지만 앞길이 아득하였다. 수길이 모양으로 해외르 갈 생각도 하였지만 노비문제로 마음 뿌니고 그렇게도 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철하는 가장 신망이 있어 보이는 동무에게 이전부터 서로 이야기 하고 있던 “자유노동자 연맹”조직에 대한 여러 가지 것을 자서히 이야기하여 주고 초안을 하여 두었던 규약도 전하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철하는 여러 동무들과 작별을 하고 노동숙박소 문을 나섰다.
가는 곳마다 축출을 당하고 갈 곳이 없으니 앞길이 아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