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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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편집]

인천 월미도(月尾島) 해안에는 화려하고도 청아한 맛이 있어 보이는 근대식 별장이 하나 생겼다. 그집 현관에는 변원식이라고 쓴 문패가 붙어 있었다.

변원식이는 결혼식장에서 ST라는 정체모를 사람에게서 저격을 당한 후 마음이 끝없이 불안하였지만 명순이 만은 튼튼히 붙잡았다.

마음이 진정이 되지않는 명순이를 달래기 위하여 황금을 아끼지 않고 물쓰 듯 하였다. 동소문 안에 큰돈을 들여서 명순의 마음을 맞도록 문화주택을 건축하였고 명순이가 즐겨하는 피아노도 장만하였다. 그러고 명순의 마음을 위안시키기 위하여 신혼여행이라는 전제로 일본여행을 하였고 또 여름의 환락을 위하여 월미도에다가 거대한 돈을 들여서 별장을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몇달동안 결혼생활을 계속하여 왔지만 마음이 기쁜때가 한시간도 없었다. 변원식의 황금도 명순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되는대로 살아가자.” 명순이는 괴로울 때마다 이렇게 부르짓을 뿐이었다. 그러나 인천 해변에 온뒤로는 철하와 서호진해변에서 놀던 일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슬펐다.

명순이는 이곳에 와서 있으면서도 별장안에 꼭들어 앉았을 뿐이고 바같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변원식이가 함께 해수욕을 나가자고 강청을 하여도 그것만은 승락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세상사람을 보기가 부끄러웠던 까닭이고 또 변원식이와 함게 여러 사람 앞에 나갈 용기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다만 우룰한 마음을 못이겨서 사람이 적은 이른 아침이나 밤중에만은 해변가에 나가서 소요하였다. 그것도 변원시이와는 함께 나가지 않았다. 변원식이가 따라 나오는 눈치만 보이면 발을 돌려 도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혼자 나가야 조용한 곳에서 마음껏 가슴이 시원하게 될 때까지 울 수가 있는 까닭이었다.

명순이는 새벽마다 바닷가에 나가서 지내간 모든 과거를 회상하며 마음껏 울기를 일과로 삼었다. 수원에 있는 어린애 생각 또 철하가 지금은 출옥하여서 자기를 원망하고 있을 것 또 자기의 지금 생활이 모든 것을 생각하며 울고 또 울고 하였다.

삼복의 찌는 듯하던 더위도 홍로와 같은 해가 넘어가자 월미도 해안은 서늘하게 되었다. 명순이는 해안에 면하고 있는 문을 열어 제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려고 난간에 걸터 앉았다.

여름밤을 비최는 달이 엷은 구름에 잠겨서 우스런하게 넓은 바다위를 흐르고 있다. 변원식은 서울서 급한 볼일이 있다고 전보가 와서 낮차로 올라가고 달밤이라 마음도 심한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난간에 의지하여 울울한 심회를 시원한 바람에 씻어 볼까 하여 난간에 걸터 앉은 것이었다.

그러나 침울한 마음은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설음이 일시에 복바처서 눈물이 샘속 듯 솟아 오른다. 명순이는 반에 들어와서 쓸어지며 느끼여 울었다. 울어도 울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았다. 한참 울다가 큰 결심이나 한 듯이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명순이는 식모가 있는 방문앞에 가서 귀를 기우렸다.

식모가 곤하게 자는 콧소리가 들렸다.

“도망을 가자 이 기회를 놓지지 말고……” 명순이는 이렇게 부르짖고 현관문을 열었다. 명순이는 사방을 살펴보며 층층대로 내려 갈려고 할 때 저쪽편에서 청년남녀가 속삭이며 나라니 서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점점 이쪽으로 가까히 온다. 명순이는 속으로 그 사람들이 지내간 다음 어디로든지 도망을 하려고 생각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 청년 남녀가 문앞을 지내갈 때 명순이는 놀랐다.

명순이는 용기를 내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또아’를 열었다.

그 두남녀가 웃고 떠들며 지내간다. 명순이는 그들의 걸어가는 뒤를 따라 두어걸음 발을 옮겨 놓았다.

그 두남녀는 철하와 연순이었다.

명순이는 불붙듯 일어나는 질투에 이를 갈았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고 그들이 걸어가는 뒷모양을 부러웁게 바라보았다.

깨끗하고 온순한 비달기 한쌍이 걸어가는 것같이 보였다. 자기가 추측하였던 것이 추호도 틀리지 않고 들어 맞었다.

명순이는 또다시 두어걸음 걸어갔다. 철하에게 달려가서 그를 붙잡고 울고 싶었다. 그의 용서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를 따라가다가도 발을 멈추었다. 그들이 걸어가는 뒷모양만 바라보고 섰다.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철하의 앞에 참아 나설 염치가 없었던 까닭으로 눈물을 흘리며 철하의 뒷모양만 바라보았다. 그들이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가지의 희망은 완전히 파멸이 되었다. 명순이는 이이 이와같이 된 다음에야 도망을 하여도 소용이 없을 것을 아고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철하는 연순이와 밤늦도록 월미도 해변을 거닐다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해변에서는 사람의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철하는 신분에 넘치는 화려한 여관의 침대에 평안히 눕게 되니 자기가 지금 큰 죄를 짓고 있는 듯한 감상이 생겨나서 마음이 괴로웟다.

철하의 방은 동남쪽으로 향하여있는 이층이었으므로 여름밤 흐릿한 달빛이 유리창을 넘어서 넓은 방에 그득이 차고 있었다.

곁방에서는 연순의 청아한 독창 소리가 들려온다. 자기를 위하여 불러주는 노래에 마음속으로 연순이를 감사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모든 일이 우습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자기를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동정하여 주는 사람은 오직 연순이 하나 밖에는 없었다.

더욱이 병중에 있으니 연순의 일을 감사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하가 이쪽으로 오게 된 것은 유한자(有閑者)들의 소일과 같은 걸음이 아니라 연순의 지극한 권고에 병치료를 온 것이었다.

철하는 노동숙박소에서 나온 후 며칠 동안의 혹독한고민에 감옥에 있을 때부터 좋지 못하던 폐가 더욱 아프기 시작하였다. 역리는 제멋대로 오르고 기침은 쉬일 사이 없이 났다.

그러나 먹을 것을 위하여 노동을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괴로운 몸을 억제하면서 과도한 노동을 한 까닭으로 나중에는 각혈까지 하게 되었다.

피를 토하게 되자 철하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같이 생각이 되었다. 폐결핵! 그것은 불치의 병으로 알았던 까닭이었다.

먹을것이나 넉넉하였으면 정양(靜養)이라도 하여 볼 생각이 났지만 그것은 바라지 못할 공상 뿐이었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하였다.

철하는 몸저누워 않게 된 형편에 이르자 하는 수 없이 노동숙박소로 도로 들어갔던 것이다. 건강한 모같으면 어대로 가서 노숙이라도 할 수 가 있겠지만 깟딱하면 죽게 될 몸이라 그러지 못하고 경관들도 사람이 겠으니 병에 걸려 앓는 몸을 축출을 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퇴거명령을 당한 노동숙박소로 도로 들어간 것이었다.

노동숙박소로 들어간지 이틀 되던 날 밤에 연순이가 찾아왔던 것이여다.

연순이는 철하가 몸저누워 앓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철하에게 여관으로 같이 가기를 청하였다.

철하는 처음에는 거절을 하다가 연순이가 강청하는 바람에 그 여튿날 공신여관으로 옮아가게 된 된 것이었다.

공신여관으로 간 후부터는 연순의 친절한 간호에 많은 위안을 얻게 되었다.

연순이는 하루에 두번씩 친히 의사를 모셔다가 보이기도 하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주었다. 철하는 친누이 동생과 같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연순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폐결핵 정양법에 대한 책을 여거가지 사다가 보며 그 안에 시워있는 법대로 철하에게 가르처주고 그외의 일은 절대로 못하게 하였다.

철하가 이 월미도로 온 것도 연순의 요구로 오게 된 것이었다.

철하는 달빛에 마음이 심란하여서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동안 연순이가 여러 번 방에 들어 와서 살펴 보고 나갔다. 그럴 때 마다 철하는 단정하게 누워서 자는 체 하였다. 그것은 공신여관에서도 여러 번 하여 본 일이었다.

“주무실때에는 반듯하게 주무십시요”

“들창은 반쯤 열어 놓고 주무십시요”

이러한 주의를 몇번이나 받았는지 모른다. 이런 말들은 연순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순이는 밤중마다 들어와서 감시를 하고 나가기를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철하는 연순이가 주의를 시키는 말은 모다 자기를 위하여 하는 말이 었으므로 양순한 양과 같이 순종을 하엿다.

연순의 열정에 철하도 차차 본식대로 결핵의 자연치료를 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월미도 해안의 밤은 점점 깊어간다.

철하는 복잡한 경성에 있다가 고요한 해변의 첫밤을 맞이하게 되니 옛생각이 떠올라왔다. 그것들은 모두 지내간 날의 쓰라린 생활이었을 뿐이다.

어릴 때에 고생하던 일 동경에 건너가서 고생하던 일 복섬이가 죽은 일 감옥에서 학대를 받던 일 명순의 일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얽크러저서 번민은 병에 큰 해되는 줄을 알면서도 자연히 솟아오르는데는 어찌하는수가 없었다.

철하가 월미도로 온지도 십여일 넘은 어떤 날 새벽이었다.

철하는 전과같이 아침산보를 나섰다. 매일 새벽이면 연순이와 작반을 하고 다니었지만 어제 오늘 아침에는 혼자 나섰다. 그것은 연순이가 하기탑양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던 까닭이었다.

연수니와 함께 거닐 때에는 마음이 튼튼하고 위안을 얻는 듯 하던 것이 혼자 걸어가게 되니 승거운 생각이 났다.

그것은 연순이를 애모(愛慕)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친절히 위안을 하여주는 바람에 얼마의 의지가 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철하는 고독한 감회를 느끼면서 바닷가를 걸어갈 때 뒤에서 ‘철하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철하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곳에서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철하는 걸어가던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뜻도 하지 앟았던 명순이가 서 있었다. 철하는 꿈속 같이 정신이 아뜩하였다. 이러한 곳에서 명순이를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철하는 아무 말도 안하고 명순이를 바라보았다. 무에라고 할 말도 없거니와 할 필요도 없었다.

명순의 손에서는 새벽별보다 더 광채가 나는 ‘다이야’ 반지가 번쩍어리고 있었다. 속살이 들여다 보일 듯한 엷은 옷은 바람에 날라갈 듯이 새벽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훌륭한 귀부인이다. 몸집은 이전보다 여윈 것 같으나 호리호리한 것이 미인의 조건을 구비하였다.

그러나 명순의 가슴에는 찬피가 흐르고 있는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너도 사람이냐”

철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말 없이 선 명순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두줄기의 선을 그리며 그 눈물이 땅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철하는 그대로 서 있기도 승거운 일 같아서 몸을 돌려 가던 길을 도로 걸어갔다.

명순이는 뒤를 따라온다.

“철하씨 할 말이 있읍니다.. 잠깐만……”

“무슨 말입니까 얼른 하십시오”

철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말을 재촉하였다.

“철하씨!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명순이는 느끼여 울며 이렇게 말한다.

“용서!”

“…………”

“명순씨가 저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야 용서고 무어고 하지요. 저는 당신을 용서하여 줄만한 인과관계가 없읍니다.”

“저는 벌써 며칠전부터 철하씨가 이곳에 와서 계신줄을 알았읍니다. 기회가 있으면 저의 오늘날까지 지내온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늘 연순씨와 함게 다니시는 고로”

명순이는 울음이 복바쳐서 말끝도 맺지 못한다.

명순이는 마음을 진정시켜가지고 다시 말을 계속한다.

“ 아침마다 저녁마다 나는 당신들의 뒤를 따라 다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다행이도 단신이 혼자 나오신 것을 보고 더러운 입을 가지고 한 마디 이야기나마 시원하게 하고 싶어서…”

“지내간 이야기 말입니까. 저는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실 것입니다. 저는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철하씨가 저에게 침을 뱉는다 하더라도 저는 이야기를 하려고 결심을 하였어여”

“당신은 벌써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있으니까 그 남편에게나 충신한 마음을 다하여 드리십시오 그 외에 딴 사람들과는 별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철하는 간사한 명순이가 보기 싫었다. 극도의 신경질이 된 까닭으로 명순이를 괴롭게 할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러면 못들어 주시겠다는 말입니다그려”

“들을 필요가 없읍니다. 명순씨가 말하지 않아도 저는 벌써 다 알고 있읍니다. 언젠가 명순이가 경희를 욕하던 일이 생각이 나지요 만일 그 때의 명순이라면 저는 애를 쓰면서라도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

“변원식은 나의 원수니까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는 명순씨도 나의 원수가 될는지 모를 것입니다. 자 이만 실례합니다.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시요. 황금과 명예와 지위로 뚱뚱하여진 그 품안으로…….”

철하는 이렇게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철하씨! 철하씨!”

이렇게 부르는 소리도 못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못들은 척하고 그대로 돌아온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명순이를 너무 냉정하게 대하여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명순의 이야기를 들어나 보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났다. 철하는 자기가 확실히 신경질이 된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본성이 아니고 병적인 것을 알았다.

철하는 다시 명순이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마음을 위로 하여주고 싶은 생각이 났다.

대체로 본다면, 명순이가 자기를 버리고 변원식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이 고약하고 분하게 생각이 되었지만 옛날에 사랑하던 사람인고로 얼마쯤은 그에게 동정하여 주고 싶은 생각이 났다.

할 수 없는 운명을 당하여서 그와 같이 되었다고 생각하였던 까닭이었다.

명순이는 철하가 그렇게까지 냉대를 하여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자기의 지내간 사정을 이야기만하면 얼마쯤은 동정을 하여 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말소리 조차 듣기 싫여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조금도 철하를 원망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의 잘못으로 생긴 일이니 남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명순이는 쓰라린 가슴을 억제하면서 별장으로 돌아왔다. 변원식이는 아직도 코를 드르렁 드르렁 거리면서 자고 있었다.

“당신의 남편의 품으로 돌아가시오”

철하가 이렇게 말하던 소리가 귀에서 아직껏 살아지지 않고 쟁쟁하는 것 같았다.

“황금과 명예와 지위로 뚱뚱하여진 그 품속으로……”

철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것이 심중에 꼭 박혀서 살아지지 않았다.

“내가 과연 황금을 위하여 돈에 탐이 나서 변원식에게로 왔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의 명예와 지위에 마음이 끌려서 왔던가?”

명순이는 입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어보았다.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듯이 이렇게 추측을 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철하도 그렇게 추측을 할 것이며 그 외의 모든 사람들도 모두 이와 같이 할 것이며 그 외의 모든 사람들도 모두 이와 같이 추측을 하리라고 생각을 하였다.

또 철하가 자기의 지내간 사정을 들었다고 말할때 명순이는 연순이라는 연에게서 들었다는 것을 즉시로 추측을 하였다.

만일 철하가 연순에게서 들었다고 하면 자기의 사정을 잘못 알고 있을 것도 알았다.

원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연순이고 더욱이 철하를 제손에 넣기 위하여 거짓말을 꾸며서 말하였겠으니 철하가 바로 알고 있을 이치는 없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연순이라는 연! 창선이라는 놈의 사촌누이! 사랑의 적!

명순이는 연순이를 요망한 연이라고 하였다.

철하가 그렇게까지 말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생각하던 것을 곰곰 생각하여 보면 연순이라는 연이 중간에서 큰 연극을 꾸며서 철하의 마음이 돌아서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하였다.

어떻게 하였으면 원수를 갚을까.

명순이는 자기의 지내간 사정을 철하에게 일일히 고백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철하에게 자기의 가엾게 된 사정을 알면서 다시금 옛사랑을 받으려 하는 야비한 심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철하의 노염을 풀기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다만 자기의 사정을 알아달라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명순이는 서면으로 고백하기로 작정하고 붓을들었다.

명순이는 어미니께서 변원식에게로 시집을 가라고 졸림을 받던 일과 개성에서 봉변을 당하던 경로와 그 후 에 일어난 일을 하나도 빼여 놓지 않고 쓰기로 작정하여싿.

글씨를 보다 눈문이 앞을 서서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한 마디를 쓰고는 눈물을 싯고 또 한 마디를 쓰고는 눈물을 씻었다.

명순이는 한시간만에야 겨우 편지를 다 썼다.

처음부터 쭉 한번 읽어보았다. 명순이는 그것이 자기가 지내온 일 같이 않고, 어떤 소설의 슬픈 장면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생겼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한 비밀을 하나도 빼지 않고 쓴 것은 물론이려니와 조금도 거짓 사실을 적은게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 고대로 썻다.

봉투에 넣은 후 겉봉을 쓰려고 할 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명순이는 깜짝 놀라 그 편지를 자리 밑에 감추어 버렸다. 변원식이가 들어왔다. 명순이는 가슴이 떨리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엇을 그렇게 열심이 쓰고 있오”

변원식이는 크다란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쓰면서 이렇게 물었다.

“동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려고”

명순의 말소리는 떨리었다.

변원식이가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만일 변원식이가 이 편지를 본다면 자기의 신변에 자미 없을 것을 알았다.

그것은 변원식에게서 버림을 받을까 하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의 추악면이 세상에 들어나게 될 것을 근심하였던 까닭이다.

그러지 않아도 변원식이와 결혼하던 날 일어난 사건이 세상의 이야기가 되고 있는데 이 사실까지 세상 사람들이 알기만 하면 코웃음을 치고 침을 배앝을 것을 새악하고 두려워 하였던 것이었다.

불행중 당행이라는 격으로 변원식이는 세수하러 나갔다.

명순이는 그 편지를 비밀한 곳에 감추어 두었다. 기회를 기다려 철하에게 전하려고 하였던 까닭이었다.

우편으로 부칠 생각이 있었지만 연순에게 들킬 것을 염녀하여 조용한 기회를 기다리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연순씨가 서울 가신 동안에는 몸이 좀 자유롭게 된 것 같더니”

철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연순이가 돌아온 것을 보고 인사 삼이 이렇게 말하고는 빙긋 웃었다.

“당신을 위하여 시끄럽게 말씀을 올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몇날동안이 되지 않었는데 웨 그렇게 낯이 상하였읍니까? 또 각혈이나 안하셨읍니까”

연순이는 침대 곁에 놓인 등의자에 앉으면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철하를 바라본다.

“각혈?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읍니다”

철하는 이렇게 말하였지만 오늘 새벽 명순이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각혈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연순이가 정성껏 간호를 하여 주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몸을 함부로 취급을 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연순이를 볼 면목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각혈을 안하셨는데 어찌하여 낯이 그렇게 상하여 보입니까”

“달밤이니까 아마도 낯이 상하여 보이는가 봅니다”

철하는 좋도록 말하였다.

“달빛이 흐르는 것과 낯빛이 창백하게 된 것은 다르지요 그런데 기침의 도수도 전보다 더 한 것 같읍니다”

연순이는 아무리 보아도 철하가 몇날동안 큰 고민을 한 까닭으로 병세가 심하게 된 것 같이 보였다.

연순이는 철하가 고민을 한다면 어떠한 일에 고민을 하고 있겠다는 것까지 추측을 할 수 가 있었다.

그것은 철하가 이 곳에서 명순이를 만나 보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고는 급격한 고노가 일어날리가 없을 것을 알았다.

연순이는 변원식이와 명순이가 이 곳에 와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철하에게는 병에 지장이 될까봐 그런 일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산보를 다닐 때에도 철하와 꼭 함께 다닌 것도 명순이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을 알았던 까닭이었다.

경성으로 올라갈 때에도 그 일 밖에 근심이 되는 것이 없었다.

연순이는 하루 더 있다가 내려오려고 하였지만 이 일이 근심이 되어서 곧 내려온 것이었다.

“철하씨 속이지 마시고 말씀을 하십시요 각혈을 하셨지요?”

“오늘 아침에 좀 하였읍니다.”

알고 묻는데는 속일 수가 없었다.

“인천 와서는 한번도 각혈을 안하시던 이가 어찌하여 각할을 하셨읍니까”

“어제 밤에 늦게 잤더니”

철하는 어물어물하게 대답하였다.

“누구를 맞났읍니까?”

연순이는 이 말을 묻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만난이 없읍니다. 이 곳에야 아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바로 말씀을 하십시요 다 알고 있읍니다”

“천만에! 맞날 사람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음악회에서 자미를 본 이야기나 하비시요 척 자미있었겠구먼----”

철하는 이야기를 다른데로 돌리려고 애를 썼다.

명순이를 맞났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자미없을 것을 알았던 까닭이었다.

영리한 연순이는 이 눈치를 알아차렸다. 철하가 어물어물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의심은 더욱 났다.

“음악회 이야기는 바쁘지 않습니다.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제가 묻는 말이나 바로 대여주십시요”

“누구를 만나 보았겠오”

철하는 성가시어서 다소 낯을 붉히며 말하였다.

“명순씨를 만나보았지요? 철하씨가 저를 속이려고 하여도 못속일 것입니다”

연순이는 조금도 불쾌한 빛을 보이지 않고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것은 철하의 마음이 흥분이 될까보아 그런 것이다.

“어디서 알었우? 아무도 모르는 줄 아는데---”

철하는 침대에서 반쯤 일어나며 이렇게 되물었다.

연순이가 어디서 알고 묻는 것 같았다.

연순이는 자기의 추측이 들어맞은 것을 신통하게 생각하였다.

이전 같으면 질투도 일어났겠지만 명순이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있고 철하를 다시 사랑하지 못할 것을 알았던 까닭으로 그렇게 질투도 일어나지 않았다.

“명순이를 만나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였읍니까?”

연순이는 태연하게 물었다. 철하도 연순의 태도가 아무 변동이 없는 것을 보고 오늘 아침 명순이가 처음 만나게 된 때의 경로와 명순이와 서로 이야기 하던 말을 조금도 숨김없이 말하고 나서 자기가 너무 냉대를 하여 미안한 생각까지 가지었다는 것을 들려 주었다.

“그러나 너무 흥분이 되섰던 모양이로구먼----각혈까지 하신것을 보면……”

“아닌게 아니라 처음 만나게 되니 몸이 떨려서 말도 잘 나가지 않었오 아마 나도 퍽 신경질이 된 모양인가 봅니다”

“철하씨가 물론 그러실 줄을 알었읍니다. 그러므로 명순이가 이 곳에 와 있는 것을 처음부터 알었지만 그런 말을 내지 않은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편ᄒ지 않으신 몸이니까요 앞날이 많으니 언제든지 말할 수 있지 않겠읍니까”

철하는 연순이가 다정하게 말하여 주는 것이 감사하였으나 한편으로 생각하면은 우습기도 하였다.

그것은 연순의 하는 말과 행하는 일이 거짓같이 보였던 까닭이다. 철하는 세상 여자를 명순이와 같이 볼 수 밖에 없었다.

철하는 다시는 여자에게 진정한 사랑을 던져주지 않으려고 결심을 하였던 것이었다.

철하는 연순이도 한동무로 밖에는 생각지 않았다. 자기가 지금 친한 동무의 동정을 받고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 떤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철하는 연순이를 한 친고로 생각하고 또 다정한 친구의 동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은 하면서도 어느 한편 구석에서는 황금에 희롱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연순의 앞에서 자기의 머리가 자연히 숙으러지는 것을 깨달았던 까닭이었다.

철하는 자기의 마음이 황금의 앞에서 약하여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생하지 못하였다.

“병!” 이것이 철하에게는 악마 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자기의 몸이 건강한 몸이라면 연순의 곁에서 구구한 생활을하지 않을 것이다.

연순이는 병을 빙자하여가지고 자기를 꼼짝 못하게 구는 것도 자세히 알았다.

알고 속는 생활처럼 속하하는 것이 없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이야기도 연순의 태도가 온화하였으므로 자세히 이야기한 것이다. 만일 연순이가 불쾌한 낯으로 물었다고 하면 철하는 대강 이야기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아니하였을 것이다. 즉 자기가 명순이를 그렇게까지 냉대를 한것이 후회된다는 말까지 한 것은 연순의 온화한 태도를 보고 말한 것이었다.

연순의 태도가 좋지 못하였다면 이런 말들은 모다 금물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연순이가 이러한 종류의 말을 듣고도 감정을 내지앟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을 하였던 것이었다. 연순이가 좋은 낯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철하도 안심이 되었고 만일 연순이가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눈치만 보이면 철하는 자기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게 일종의 공포심을 가지었던 것이었다.

“확실히 나는 돈에 농락을 당하고 있고나”

철하는 눈을 감으면서 입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철하는 오늘 처음 이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서울 공신여관에서 연순의 신세를 입게 될 때부터 이렇ᄂ 감상을 느끼었던 것이었다.

다만 요사이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감상이 더 농후하여졌을 뿐이었다.

연순이가 병든 자기를 위하여 돈을 아끼지 않고 던져준다는 것만은 감사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 반면으로 자기의 몸이 돈에 점점 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끝없이 괴로웠다.

그러나 철하는 그러한 기색을 연순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한한 노력을 하여 왔다.

그러고는 속으로 늘

“내몸이 났기만하면 하루바삐 연순의 곁을 떠나겠다”

“연순이가 아끼지 않고 던져주던 돈을 한푼도 남기지 않고 나의 팔과 다리를 팔아서 갚어주고야 말겠다”

이렇게 부르짖었던 것이었다.

철하는 늘 병이 하루 바삐 나지기만 기다렸다. 병이 완치가 되여야 자기의 몸이 황금의 희롱을 당하지 않고 또 거짓 행동을 하지 않고 참된 생활을 할 것을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연순이가 돌아간 뒤 철하는 두번이나 각혈을 하였다.

한시라도 이곳에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 심히 고민을 하였던 까닭이었다.

두시가 넘고 세시가 지나도록 철하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디로든지 멀리 멀리 떠나가고 싶은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아무 꼴도 보지 않을 곳으로 피난을 하여 갔으면 하는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병으로 부자유하게 된 몸 그것은 감옥살이를 할 때보다 더 괴로웠다.

병이 얼른 났던지 그렇지 않으면 죽던지 얼른 결정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미미한 생활은 결코 하고 싶지 않았다.

철하는 날이 밝도록 고민을 하였다.

속모르는 연순이는 평시와 같이 아침 산보를 나가려고 철하의 방에 들어왔다.

철하는 연순이가 들어온 줄을 알면서도 눈도 뜨지 않고 자는 척하였다.

연순의 발자국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괴로웠다.

이전까지도 연순이가 방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마음이 튼튼한 것 같던 것이 지금은 그 마음이 어디론지 멀리 도망을 치고 연순이를 대하는 것이 도리어 괴로웠다.

돈! 그것으로 자기의 몸을 부자유하게 만들고는 돈으로 자기의 개성을 롱락하려고 하는 연순이와 같이 보였던 까닭이었다.

철하는 지내간밤 이와 같은 종류의 마음이 치밀어서 고민을 하였던 것이었다.

어저깨까지의 병에대한 공포심은 철하에게서 완전히 퇴치되었다.

병! 그것은 철하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철하는 이러한 급격한 심리변동으로 하루밤을 한잠도 자지 못하고 고민을 하였던 것이었다.

철하가 그렇게까지 급격한 심리변동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두가지가 있었다.

첫째로는 명순이를 만나게 된 까닭이었다.

명순이를 뜻 밖에 맞난 뒤 철하는 그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과 또한편으로는 가긍하게 보이는 마음이 뒤섞여 올러와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변원식의 아내인 명순-자기를 버리고 간 명순-철하는 명순이를 이렇게 볼 때에는 분노가 일시에 복받쳐서 명순이를 당장에 죽여 버릴 생각 밖에 나지 않았다. 실연자(失戀者!)철하는 자기가 실연을 당한 몸이니 마음의 고민도 고민이려니와 그 상대자인 명순이를 저주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금을 따라가는 명순의 더러운 마음!

몇시간전까지도 명순이를 냉대를 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지금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자기까지 어리석어 보였다.

또 둘째로 마음이 급격하게 변동이 된 원인은 황금의 세력으로 자기의 자유를 사로 잡으려고 하는 연순의 야비한 행동에 분개하였던 까닭이었다.

자유를 사로잡으려고 하는 그것보다도 자기가 현재 연순에게 자유를 잃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철하는 연순이가 여러 번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도 곤하게 자는 체하고 눈을 뜨지 않았다.

“철하씨 벌써 일곱 점이 가까웠읍니다. 얼른 일어나십시오”

연순이는 여러 번 불러보아도 아무 응수가 없는고로 철하의 몸을 흔들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철하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이 몸도 까딱하지 않았다.

“철하씨 어써 일어나십시오 웨 이렇게 산보를 게을리하십니까?”

평시 같으면 철하가 먼저 일어나서 자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 오늘 아침에는 평시시간보다 한시간이나 지내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것을 보고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더 깨울 용기도 나지 않았다. 철하가 암만하여도 명순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던 까닭이었다.

아무리 깊이 든 잠이라고 하더라도 그만큼이나 부르고 몸을 흔든다면 잠을 깨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하였다.

연순이는 철하가 잠을 깨고도 명순의 생각에 세상의 모든 것이 귀치 않아서 대답을 하지 앟는 것이라고 추측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가비여운 실망을 느끼면서 침대곁에 놓인 타구를 바라보았다.

타구안에는 어저께밤에 없던 피가 그득이 차고 있었다.

철하가 자기가 침실로 돌아간 다음 각혈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각혈한 것을 보면 철하가 몹시 고민을 하였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물론 명순에 대한 고민인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철하가 각혈까지 한것을 보면 지내간 밤에 들은 철하의 이야기를 바로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를 대하여 좋도록 꾸며대인 말같이 생각이 났다. 확실히 철하와 명순의 사이에 그들의 비극을 자아낸 한장면이 월미도해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연순이는 추측을 하였다.

지내간 밤에 철하가 주저하던 태도를 생각하여 보니 거짓말을 꿈여내느라고 그렇게 머뭇머뭇한 줄만 알았다.

연순이는 질투에 불붙는 마음을 진정을 못하였다. 자기가 정성껏 간호하여 준 것도 헛수고라고 생각하니 분하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러운 명순이를 철하가 꿈에도 생각지 않으리라고 추측하였던 것이 철하는 각혈까지 하도록 그를 생각하며 고민을 하고 잇다는 것을 알게 되니 질투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철하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무슨 큰 결심이나 한 듯이 등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철하씨!”

퉁명스럽게 불렀다.

“웨! 무슨 일이 생겼오”

철하는 연순의 흥분된 어조에 눈을 뜨면서 이렇게 물었다. 철하의 말씨도 연순의 어조만 못ᄒ지 않게 똑똑하였다.

연순이는 철하의 이 말씨를 듣고도 철하의 마음을 능히 추측을 할 수가 있었다. 어제밤까지 자기의 앞에서 언어행동에 온순하던 그가 음성과 태도까지 변한 것을 보아서도 그가 자기에게 대하여 어떠한 마음을 r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연순의 가슴은 서늘해졌다. 철하는 성낸 사자와 같이 연순이를 치어다보았다.

“철하씨 웨 그렇게 마음이 흥분 되었읍니까?”

연순이는 조금 눙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철하를 바라보았다. 연순이는 흥분된 태도를 억제하였다. 그것은 철하의 감정을 살까보아 염녀하였던 까닭이었다.

“흥분? 흥분이 되어도 내가 되었지 당신이 간섭할 필요가 있오?”

신경과민이 된철하는 연순에게 자기의 자유를 사로잡히지 않으려 하였다. 그보다도 황금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으려고 생명과 같이 중한 개성을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이렇게 말하였다.

연순이는 철하의 태도가 상상이외로 냉정하게 된 것을 알았다. 연순이는 실망을 하였다. 철하가 병든 것을 기회로 자기의 마음을 다하여 철하를 간호하여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였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어젯밤까지도 자기의 작전계획이 성취되여 가는 것을 기뻐하였던 것이 하루밤 사이에 모든 공상 탑은 문어지고 말었다.

“철하씨 웨 그렇게 자꾸만 성을 내시어 말씀을 하서요? 제가 철하씨께 대하여 잘못한 점이 있읍니까?”

“…………”

“저는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철하씨가 그렇게까지 흥분이 되실만한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은데요? 저는 마음과 힘을 다하여 단신을 간호하여 드닌것 밖에는 아무 일도 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니하니 당신은 당신방으로 돌아가십시오 나는 나대로 홀ᄅ 있고 싶읍니다. 간호도 아무 것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철하는 살기가 등등하여 이렇게 말하고는 들창이 있는 쪽으로 돌아 누웠다.

연순이는 철하의 너무도 냉정한 태도에 속으로 아니꼬운 생각이 났다. 연순이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돌아누운 철하의 뒷모양을 물끄럼이 바라 보았다.

철하의 호흡소리는 점점 높아간다. 극도로 흥분 된 것 같다.

연순은 이것도 혹시 병적이나 아닌가고도 생각을 하였다. 명순을 맞났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있는 것이니 아무리 명순이가 간사한 말을 철하에게 하더라도 철하는 명순의 말을 바로 들을 이치가 없고 그로 말미암아 고민 할 것 같이 않으리라고 추측도 하여 보았다.

연순이는 이렇게도 생각하여 보고 저렇게도 생각하여 보았다.

철하가 시원시원하게 말하지 않으므로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까지 냉정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마음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발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가 등의자에도로 앉았다.

철하의 마음을 알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연순은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철하가 말하기를 싫여하는 것을 알았던 까닭이다.

철하의 호흡이 급하여가며 기침을 자주하더니 벌떡 일어나서 타구에 피를 뱉는다. 기침을 컹컹할 때마다 피가 쏟아져 나온다.

연순이는 철하의 이마를 손으로 받들었다. 철하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가엾어 보이는 마음이 앞서 나왔다.

철하는 연순이가 하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는 피를 토하고 나서는 도로 누웠다.

“괴로운 일이 계시더라도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몸을 돌보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연순이는 철하가 자리에 누운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가장 그를 위하는 체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연순이는 철하가 어떠한 태도로 자기를 대하던지 아무 관계도 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다소 불쾌한 점도 있었지만 그 마음도 오래 가지않았다. 연순이는 철하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히 생각하였다.

“제게 대하여 아니꼬운 일이 계시더라도 병나은 후에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런다면 저는 어떠한 책망이라도 감사히 받겠읍니다. 몸이 편ᄒ지 않으신데 고민까지 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그렇게 병세가 양호하여 가시던 것이 각혈을 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연순이는 애원하 듯이 말하였다.

“각혈! 나는 도리어 그러는 것이 좋아요! 시커먼 피를 토하는 것이 상쾌하여요 얼마든지 나는 피를 토하고 싶소 나의 가슴에서 끓는 이 피를 세상의 모든 것을 향하여 내뿌리고 싶어요”

철하는 연순이를 보지도 않고 돌아누운채로 이렇게 말하였다. 철하는 세상에 모든것을 저주하고 싶었다. 자기의 몸까지도 저주하고 싶었던 문제가 아니었다.

극도의 신경과민이 낳은 번뇌에는 주검도 두렵지 않았다. 도리어 죽는 것이 시원하게 생각이 되었다. 시커먼 피를 토하는 것이 통쾌하였다.

“연순씨 이방을 어서 떠나십시오 저는 세상사람과 관계를 끊으려고 합니다. 자 어서 나가 주세요 내가 지금 발을 옮겨놀 수 있다면 내가 이곳을 떠나겠으나 나는 이대로 피를 토하다가 죽을 사람이니까?"

철하는 하루밤 동안에 자기의 몸이 크게 상하여진 것을 깨달았다. 침대에서 내려올 수 도 없는 형편에 이른 것도 알았던 것이었다.

아침해는 방안에 비최었다. 해변가에서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철하는 그 사람들의 떠드는 말소리까지 듣기 싫였다. 웃는 웃음도 가슴을 날카로운 칼로 찌르는 것 같이 들리었다.

아침 햇빛 그것까지도 철하는 싫여서 괴로운 몸을 일으켜 ‘카아텐’을 내려 놓았다.

연순의 호흡 소리가 듣기 싫였던 것도 물론이었다.

“어서 나가십시오 어서”

철하는 나가지 않고 있는 연순이가 싫여져서 나가기를 독촉하였다.

그러나 연순이는 쉽게 나가지 않았다. 연순이는 점점 강경하여가는 철하의 태도를 이상하게 보았다. 한편으로는 분하고 또 한편으로는 락망을 하면서 하회를 보려고 나가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내야 나가나 안나가나 걱정을 마시고 마음이나 진정을 시키십시오”

연순이는 명령을 하다싶이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을 진정시키라구? 그것이 어떻게 하는 말이오 내가 미친 사람인 줄 아오 세상 사람과 오늘부터는 절교를 하기로 작정을 하였다는데 웨 나가지 않고 딴 말만 하오 당신은 돈으로 나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였지오 세상 사람들은 돈으로 세력을 쓰려고 하지만 소용이 없오 지금 나에게는 돈이 아니라 별것으로 노린다 하여도 나의 자유를 사로자비는 못할 것을 가오하오”

철하는 연순이가 앉은 쪽으로 돌아누우며 이렇게 말한다.

연순이는 그 말의 요령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철하가 정신이상이 생긴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극력으로 철하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한걱이 없었다. 그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철하가 극도의 신경과민으로 정신이상이 생긴것 같다.

연순이는 다만 철하의 사랑을 받으려고 돈도 아끼지 않고 그를 위하여 썼을 뿐이지 결코 금력으로 철하의 자유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다.

연순이는 자기으 생각한 바와 계획한 바를 변명을 하고 싶었으나 흥분된 철하에게는 그러한 말들이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을 알었던고로 아무말도 내지않았다. 도리어 철하의 악감을 더 살 것 같아서 원망스러운 눈으로 철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 어떻게 할 작정이오 당신이 나가지않는다면 내가 이 집을 나가버릴 것이오”

철하는 이렇게 말하고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도로 힘없이 누워 버린다.

연순이는 더 앉고 있을 수가 없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 나가지요 철하씨가 그렇게까지 하시는데 있을 수가 있읍니까 저는 오늘차로 상경을 하겠읍니다”

연순이는 철하의 대답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알기위하여 상경하겠다고 말하였다. 사실 철하를 이곳에 남겨놓고 상경할 생각은 없었다.

“어서 상경하시오 그러면 내 마음이 평안하겠오”

“당신이 이 곳에 홀로 계신다면 편ᄒ지 않으신 몸이니까 불편할 점이 없겠읍니까”

“그런 것은 당신이 걱정하실 필요가 없오 하루 바삐 가시오”

철하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는 더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머리를 자리 속에 파묻는다.

연순이는 정신빠진 사람 모양으로 한참 물끄럼이 섰다가 문을 열고 철하의 방을 나섰다.

연순이는 철하에게서 축출을 당하여 나오면서도 재작년 함흥에서 어떤 날 밤 철하에게서 축출을 당할 때와 같이는 그를 저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때와 같이 실망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철하의 태도가 모다 병적이라고 생각을 하였던 까닭이다.

함흥에서 당하였던 것보다 축출의 조건도 박약하다는 것을 깨다릉면서 연순이는 자기에 방으로 돌아왔다.

연순이는 그날 하루 적녁 때까지 철하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연순이는 여관 ‘뽀이’들과 내통을 하여가지고 철하의 태도를 감시를 하도록 하였다. 그러고는 철하가 자기의 일을 물으면 오늘 아침에 외출을 한채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라고 뽀이들에게 일러 두었다.

연순이는 언제든지 철하의 마음이 진정될 때 까지 철하의 방에 들어도 가지 않고 또 자기가 이 곳에 있다는 것도 알려 주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다.

‘뽀이’들의 전하는 말을 들으면 철하가 종일토록 혼자서 무에라고 입속말을 하며 일어나 앉아도보고 누워도 보고 눈을 딱 부릅뜨고 무엇을 흘겨보는 모양도 하여 보고 두 주먹을 힘있게 쥐고 침대를 내려 두들겨 보기도 하더라는 것을 알았다.

연순이는 철하의 신변에 대하여 근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까지 철하가 번민을 하다가는 필경 정신병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건강하던 찰하가 감옥에서 얻은 페병으로 또 극도의 고민으로 크다란 골격이 피부를 뚫고 나올 듯이 뼈마디가 내여 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수명도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

연순이는 어떻게 하든지 철하의 괴로운 병에서 살려내려고 하였으나 철하가 마으을 알아주지 아니하는고로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나중을 보려고 하였다.

연순이는 철하의 방으로 들어는 가지 못하고 낮이나 밤이나 가끔 철하의 방문앞에 가서 귀를 기우렸다.

처음 몇날 동안은 뽀이들 말과 같이 방안에서 크게 고민하는 거동이 보이던 것이 요지음에는 마음이 진정이 된 것 같았다.

그것은 연순이가 철하의 방문 앞에서 가 귀담아 듣고도 알았지만 뽀이들의 말을 들어도 음식도 전보다 더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아무 흥분된 기색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연순이는 철하의 마음이 다소 진정이 된 것을 알면서도 철하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겨우 진정이 된 마음이 자기로 말미암아 또 다시 흥분이 될까 하였던 것이다.

만일 이 번만 또 다시 철하가 전과 같이 고민을 한다면 그의 운명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철하가 이 곳에서 운명을 하게 되면 자기에게도 큰 걱정이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연순이는 지금은 철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의 병에 대하여 근심이 된다는 것보다 철하가 잘 못된다면 자기에게 걱정이 돌아올 것을 근심하는 마음이 더 많았다. 그것이 마치 과실을 따먹으려고 험한 나무에 애쓰고 올라갔다가 과실도 따먹지 못하고 큰 구렁이를 맞난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철하는 그 동안 급격한 심리변동으로 몇날동안 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병은 점점 중하여 가고 고민는 고민을 낳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철하의 몸을 괴롭게 하는 병마와 고민 그것을은 철하를 못살게 굴었다.

이러한 것들은 철하의 사상을 허무주의로 인도하였다. 철하는 더 고민을 안하려고 하였다. 이렇게 지내다가 숨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려고 작정아르 하였다. 그런고로 철하는 더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며 며칠 동안 지내니 며칠 전에 연순이를 보고 성을 낸것이 우습게 생각이 되었다. 웨 그렇게까지 흥분이 되었는지 그 때의 마음을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였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날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냈다.

철하는 침대에 누워만 있으니 실증이 나서 들창 쪽으로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아서 창밖을 내여다 보았다.

바다는 어두움에 잠겨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늦은 여름밤을 애닯게 흔드는 듯 파도소리만이 어둠 속에서 들렸다 말았다 할 뿐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그 파도 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웨글데글하던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도 차차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새로 한시가 넘어서는 인기척이 바닷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월미도의 바닷가는 호적하기 끝이 없었다.

사람의 소리가 끊지고 사방이 죽은 듯이 고요하게 되자 철하는 자기가 지금 선경에 있는 것과 같은 감상이 생겼다. 아무 걱정과 근심이 없이 또 세상의 풍파도 겪은 것 같지 않게 그야말로 행복된 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감상이 일어났다.

“주검! 그것이 얼마나 행복을 의미한 말일까 주검이 이러할 것이니 이 세상보다 얼마나 좋을까”

철하는 이렇게 혼자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고는 철하는 이제야 자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달았다.

“사나이가 웨 죽어?”

“죽는 그 마음을 가지고 뜻하였던 일이나 힘써보자”

“싸우는 것이 남자의 할일이니 적은 일에 괴로워서 죽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싸워보자 싸와서 이기지 못하면 죽더라도……”

철하는 그 자들이 지살하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들 뿐이 아니었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생활곤란으로 자살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힘이 없는 약자라고 나무랬다. 자기가 웨 하루의 한끼의 밥이나마 변변히 얻어먹지 못하고 또 웨 그렇게 굶게 되는 이유도 알지 못하고 최후로 싸워도 보지 않고 그대로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무골충의 행동이라고 하였던 것이었다.

생활곤란을 당할수록 죽지 말고 그 대상과 싸우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실연하는 젊은 남녀들의 자살! 그것은 철하는 한푼의 평론할 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취급을 하고 코웃음을 쳤던 것이었다.

그 외에도 최근에 외서는 변태적 자살 혹 정사 이것들이 성행하는데 철하는 일종의 분개심을 느끼었다. 이것들은 모다 ‘뿌르조아’적 자살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까닭이었다. 즉 동성(同姓)의 정사 동정(同情) 정사 혹은 자살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이것을 세기말적인 인심의 산물로만 돌린다 거기에 대한 엄청한 비판을 내리우기보다 시대의 첨단을 지시하는 일종의 ‘모-던’행사로만 본다. 설사 비고나을 한다치더라도 일종 흥미기사를 만드는 감상으로 그들을 비판하는 것 뿐이고 대중에게 작그을 줄만한 비판은 하나도 없었다

철하는 죽는 사람이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보았던 것이었다.

세상은 험악하여 갈수록 우리는 싸워야 된다. 자살하는 사람은 패자이다. 철하는 이렇게 느끼고 있었던 까닭에 자살하는 사람을 무골충이라고 욕을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철하는 자기가 특이한 처지에 있고 또 호젓한 밤 아무 소리도 없는 밖을 내다보니 주검이 이러할 것 같으면 주검이 그리워졌다.

“죽는 사람들도 싸울 줄 몰라 죽는 것이 아니로구나”

철하는 부지중 이렇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철하는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도리어 우습게 보였다.

어디서인지 첫닭 울음 소리가 월미도 새벽의 적막을 깨뜨리며 청아하게 흘러온다.

철하는 그 소리가 어지러운 세상에 시끄러운 날이 온다는 선고와 같이 들렸다. 철하는 닭 우는 소리에 마음이 괴로워서 침대에 쓸어지며 귀를 막았다. 철하는 선경에서 쫓겨난 것 같은 감상이 났다.

얼마 후에 첫닭의 울음 소리는 끊지었다. 사방은 또 다시 고요하여졌다. 철하는 다시 몸을 일으켜서 캄캄한 밖을 내여다보았다.

처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을 내다고고 있은지가 십분도 못되여 시컴은 바다에 불빛이 비최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불빛은 적은 불빛이 었으나 캄캄한 밤인고로 똑똑이 보이었다.

처음에는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기선(汽船)에서 비최는 불빛인 줄로만 알고 그저 무관심하게 앉았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그 불빛이 점점 커지며 바다 일면에서 용솟음을 치듯이 사나운 기세로 어지럽게 그 불빛이 날뛰고 있었다. 그 불빛에 바다일면과 창밖에 환하여졌다. 철하가 있는 방까지도 그 불빛으로 환해졌다. 그러고는 나무타는 내음새와 연기가 몰려왔다.

“어디서 불이 붙는고나”

철하는 이렇게 입속으로 외이면서 들창을 열고 불길이 일어나는 쪽을 찾았다.

철하의 추측은 틀림이 없었다. 철하의 여관있는 데서부터 왼쳔으로 약 오백메돌 가량 되는 지점에서 불이 났다.

밖에서는 ‘불이야 불야’ 웨치며 불붙는 쪽으로 달음질을 치는 사람들이 큰 구경이나 났다는 듯이 달려간다.

침의를 입은 채로 달려가느 사람, 잠을 채 끼지 못하여다는 듯이 눈을 부비며 뛰여가는 신사? 옷고름을 매며 종종걸음을 치는 부인, 내려다 보는 철하는 속으로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무엇을 위하여 그러게까지 애를 쓰고 달음질을 치는지 자기들의 몸이 썩어가는 줄은 알지도 못하고 남의 일에 춤추는 것이 우스웠다. 있는 놈들의 별장이 불붙는 것쯤이야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불길은 점점 높아간다. 바다 일면에는 시뻘건 불길이 비최이고 있다. 피바다를 이룬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철하는 마음이 상쾌하였다.(中略)

철하가 들창 밖을 내다보며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에 자기의 뒤에서

“철하씨”

하고 황망하게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철하는 몸을 들창에 의지한대로 머리만 돌려서 돌아다보았다. 어디로 외출하였다던 연순이가 방안에 들어왔다. 언제 들어왔는지 철하는 알지 못하였다.

“변원식의 별장에서 불이 났읍니다”

연순이는 철하의 곁으로 가까히 가면서 말하였다. 그리고 들창 밖을 내다보며

“불을 끌 희망이 없는 것 같어요”

하고는 철하의 말을 기다리는 듯이 불붙는 곳을 내다보지도 않고 철하의 입만 치어다본다.

철하는 어던 돈 있는 사람의 별장이 불이 붙는 줄만 알았지 그 집 주인은 알지 못하였다가 연순의 말을 듣고야 그 집이 변원식이라는 놈의 별장인 것을 알았다.

“변원식이라는 놈의 별장? 그 도적놈의 집! 타라 그 놈의 벾다귀까지 죄다 타버려라”

철하는 두 주먹을 힘있게 쥐며 부르짖었다.

“불을 끌 희망이 다 무에야! 그런 놈의 집은 고사하고 그 놈의 몸까지 재가 되어 버려야 마땅하지!”

철하는 흥분이 되었다. 그리고 철하는 세상의 끝날이 온 것 같이 생각되었다.

불길이 공중에 높이 솟을 때마다 마음이 상쾌하였다.

“여보 연순씨 단신은 저 불길을 바라보오 돈있는 놈이 만들어 놓은 그의 환락장을 태워버리는 저 불길을! 저 불길 앞에는 아무 것도 소용이 없을 것을 알겠지요”

철하는 연순이를 바라보면서 연설을 하 듯이 이렇게 말하고는 불붙는 것을 바라다본다.

철하의 낯에는 만족한 빛이 돌았다.

연순이는 철하가 감옥에서 나온 후 그에게서 이러한 만족하고도 희열에 넘치는 표정을 처음 보았다.

“참으로 불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 천원이나 들여 지은 집을 저렇게 사정도 없이 태워버리는 것을 보면-”

연순이는 철하에게서 축출을 당한 후 그에게 한 마디의 말은 고사하고 이방 출입도 못하였던 것이 우연한 기회로 말미암아 이 방에 들어오고 자기가 말을 건늬여도 아무 불쾌한 감회를 가지지 않는 철하를 보고 망므속으로 기뻐하면서 그는 환호하 듯이 말하였다.

“불이 무서웁다기보다 공평한 것이지요 또 용감한 물건이지요 만일 없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렇게 용감하다면(略) 그러나 썩어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그러한지 모두가 무골충들 뿐이니까”

철하는 낙망하듯이 이렇게 말끝을 맺고 한숨을 쉰다.

불은 점점 맹열하게 붙고 구경꾼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소방대원들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며 진화에 노력하고 있다. 발화한지 한시간되 채못되어 변원식의 별장은 전소가 되어 버렸다.

“불길이 차차 내리는 것을 보니 죄다 타버린 모양이로군”

불길이 내리는 것을 보고 섰던 철하는 이렇게 말하며 침대에 쓸어진다. 그리고는 한숨을 ‘휘-’ 내쉬는 것이었다.

철하는 변원식의 별장이 전소가 된 것을 알았지만 가슴을 시원하게 하던 기둥 같은 불길이 사라저가는 것을 보고 섭섭함을 느끼었다.(中略)

“어찌하여 변원식의 별장이 전소가 된 것을 보고 그렇게 낙망을 하십니까"

연순이도 철하의 거동을 보고 철하의 마음이 지금 어떠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반이나 추측을 하였지만 철하의 말이라도 한번 더 들어 보겠다는 욕심으로 이렇게 물었다.

“그 놈의 별장이 전소될 것이야 예측하였던 바이지만 그놈의 뼈다귀가 재가루가 되지 아니한 것이 마음에 부족하야……”

연순이는 그 말에 놀랐다. 그러나 그는 철하의 마음을 상할까 하여 아무 말도 아니했다.

“모다 불에 타 죽어버려야 되지요 당산은 무엇을 위하여 살려고 애를 쓰고 있오”

“…………”

“연순씨는 돈 있는 가정에서 자라났으니 세상에 대한 애착시이 강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만일 거지가 되여 본다고 합시다. 그 때에는 아마도 당신도 세상을 저주하고 싶은 생각이 날 것입니다.”

연순이는 아무 대답할 말도 없었다. 대답할 수도 없거니와 함부로 말하였다가 신경과민이 된 철하의 반감이나 살까하여 못하였다. 이 방에서 축출을당하였다가 변원식의 별장이 불붙는 것을 기회로 들어오게 된 것이니 모든 것을 주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순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철하의 눈치만 슬금슬금 보았다.

“웨 대답이 없읍니까? 내 말을 알어듣지 못하겠지요 그보다 미친 사람의 헡은 소리로 들으시겠지요! 돈 있는 덕분에 고생을 못하여 본 몸이니까 그렇게 들을 것도 당연하지요 그러나 당신들이 돈으로 환락한 살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루에 한기의 밥도 없어 굶주린 창자를 움켜안고 울음으로 세상을 보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나도 그러니까 그러한 생각이 나지 않을 이치가 있겠오?”

철하는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을 하나 그러나 전일보다는 과도하지 않았다. 연순이는 아침해가 동창에 올르 때까지 철하의 감정을 상하지 아니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어제까지, 변교장의 황금을 자랑하고 있던 화려한 별장은 뼈만 안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고 여화가 연기를 무럭무럭 내고 있을 뿐이었다.

철하는 마음속으로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그렇게 많은 별장과 가옥들 중에 변원식의 별장이 불이 난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하는 불붙은 뒤에 소식을 알고 싶었다. 그것은 혹 명순이가 방화나 하지 않았는가 의심하였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연순에게서 밖에 알 길이 없는데 그도 외출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밖에 나가서 알고 오라고 할 수도 없어 궁금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날 밤 철하는 신문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변원식의 별장화제 기사가 반듯이 실리었으리라고 믿었던 까닭이었다. 철하가 침대에 누워서 오늘 새벽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이었다. 그것은 연순이었다.

“신문이 아직 안왔오?”

철하는 연순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침대에서 나는 듯이 몸을 일으켜 걸터앉으며 이렇게 물었다.

“벌써 왔어요”

“좀 빌려주시오 변원식 별정의 화재기사가 안났읍데까?”

“저는 보지도 않고 받어 두었어요”

하고 연순이는 자기방에서 나가서 신문을 가지고 들어왔다. 철하는 알고싶은 호기시메 연순의 손에서 빼앗는 듯이 신문을 받아들고 이면기사를 보려고 신문을 급하게 폈다.

‘월미도 화재’라는 제목이 눈에 언뜻하였다. 철하는 예기한 바와 같이 화재기사가 있는 것을 황겁하게 그 기사를 내려보았다.

그러나 철하는 얼마 내려보지 못하고 신문을 찟어버릴 듯이 힘있게 쥐었다. 그러고 흥분이 되어서 호흡이 급하여가며 자리에 쓸어질 듯이 누워버린다. 연순이도 철하의 태도에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하씨 웨 그러십니까? 신문에 어떠한 사실이 있읍니까"

철하는 쓸어진 채로 아무 대답도 없다가 손에 쥐었던 신문을 던졌다. 연순이는 급하게 그 신문을 줏어보았다. 어떠한 이유로 철하가 갑자기 흥분이 되었는가 함이었다.

“……실연당항 강경희가 방화……”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

연순이는 철하가 이러한 기사를 보고 흥분 된 것을 알았다. 변원식의 결혼식장에 나타나서 일대 희비극활극을 일으키던 경희가 또다시 나타나서 무서운 범행을 하였다는 것을 아게 되니 연순이는 경희가 얼마나 그들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경희의 굳은 마음에 연순이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ᄒ지 못하였다.

“연순씨 자세히 보시오 강경희가 옳지오 변원식의 별장에 불지른 사람이”

철하는 쓸어진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옳습니다. 강경희씨가 틀림 없읍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동성동명도 있으니까요 수길씨의 누이동생인 경희가 옳은지요”

연순이는 철하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변원식의 별장에 불지른 사람이라면 수길의 누이동생인 경희가 옳습니다. 그는 틀림없는 수길씨의 누이동생일 것입니다”

하고 철하는 또다시 두 주먹을 힘있게 쥐인다.

“강경희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요?”

“없는 사람이라고 너무 없인여기지 마십시오 아무리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원수를 갚기 위하여서는 몇천리 몇만리라도 따라가는 용맹한 마음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제가 한 말은 아니올시다. 변원식이가 옧에 온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하는 말예요”

하고 연순이는 자기의 말을 잘못알아 들었다는 듯이 말한다.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방심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그만한 것쯤이야 모르고 지내겠오”

이렇게 말하는 철하도 속으로는 경희의 마음에 감동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하는 언제인가 명순에게서 변원식와 경희가 비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평소에 경희의 온화한 성질을 미루어보더라도 지금에 와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천군중이 모은 변원식의 결혼식장에 조금도 꺼리김 없이 나섰고 또 그들의 ‘스위트홈?’ 에 방화까지 할 여자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었다.

철하는 그날 밤 한잠도 이루지 못하였다. 경희가 경찰의 손에 붙들려서 엄중한 취조를 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않았다.

그러고 철하는 자기의 마음이 약한 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병으로 말미암아 이런 곳에 와서 있기는 있지마은 그래도 자기가 무골충과 같이 있는 꼴이 보기가 싫였다. 경희로 하여서 그는 자극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희는 원수와 생명을 애끼지 않고 싸우는 것이로 구나”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았다.

철하는 명순이와 연순이와 그러고 경희 세 여성을 대조해 보았다. 오직 경희만이 자기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여성이었다.

명순이와 연순이는 고사하고 철하 자신도 그와 비교해볼 때 어리석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경희를 죄인을 만들어 버리니 철하의 가슴은 더욱 쓰리었다.

만일 앞에서 자기의 허물만 가리우면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흉악한 일을 하는 무리들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벌도 주지아니하니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하는 날이 밝아오기만 기다렸다. 그것은 이 여관을 나가기로 결심하였연 까닭이었다.

그대로 이러한 환락한 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철하의 마음이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철하는 방안을 걸어보았다. 처음에는 다소 괴로웠지만 차차 나어졌다. 다리가 좀 후리후리 하였지만 넘어 지지 않고 걸어갈 수는 있었다. 이 여관만 나가면 그만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날은 밝았다. 월미도의 아침은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다. 철하는 연순이가 강경하게 만류하는 것도 듣지 않고 여관문을 나섰다. 연순의 간절한 권고도 철하는 우습게 들었다.

여관을 나서기만 하여도 철하는 자기 몸이 자유스러워진 것 같이 생각하였다. 황금의 구렁에서 완전이 해방 된 것 같이 생각하였다. 월미도를 떠난 철하는 인천경찰서 문앞에 이르렀다. 철하의 발길이 자연이 그 쪽으로 향하였던 것이었다. 철하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사법실로 들어갔다.

“볼일이 있어 들어왔는데 들어 주시겠는지요”

하고 철하는 사법주임앞에 가서 앉으면서 말하였다.

“무슨 볼일인가?”

“면회를 하러 왔는데요?”

“누구를?”

“강경희를 좀 만나보고 싶은데 어떨까요?”

“못해 안돼--”

“아니 잠깐만 면회할 일이 있으니 어떻게 면회를 시켜주시오”

철하는 사법주임의 뚝 잡아떼는 말도 상관을 하지 않고 면회를 시켜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철하는 경희를 꼭 맞날만한 필요를 자기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였다. 설사 주임이 면회를 허락하여 준다고 하더라도 할만한 말이 없는 것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 이곳에 들어와서 청구한 것이니까 거절을 한다고 그대로 나갈 수가 없어 면회를 조른 것이었다. 철하가 당초에 경찰서에 들어온 것도 중요한 볼일이 있어 들어온 것도 아니고 다만 경희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슬픔을 당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게 하여 경찰서에 가서어떻게 어떻게 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쑥 들어온 것이었다. 주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글만 쓰고 앉았다.

“어떻게 면회를 시켜줄 수가 없오?”

철하의 언성은 다소 흥분이 되었다.

“안된다는데 웨 잔소리야 나가--”

“생각을 좀 돌려보시오”

“시끄러워 나가지 않을테야?”

주임은 성낸 어조로 위협을 한다.

“변원식의 별장에 불을 붙여 좋은 진범은 재니까 나를 가두어 주시오 경희는 아무 죄도 없으니까”

철하는 분한김에 이렇게 말하였다. 경희를 구하여 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주임이 축출을 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닌가?”

“정신병자요?”

철하는 성을 벌컥 냈다.

“그 여자는 벌써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증거까지 있는데 그런 딴소리를 하니 정신병자로 볼 수 밖에 없지”

주임은 이렇게 말하고 옆에 앉은 순사를 보고 내쫓으라고 명령을 한다. 철하는 분을 못이겨서 반항을 하였으나 순사가 무리하게 잡아꺼는 바람에 밖으로 끌려나왔다.

철하는 주임의 말과 같이 자기가 정신병자같이 보였다. 이러한 꼴을 당할 줄을 알면서도 그 곳에 들어간 것이 제정신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같이 생각이 되었다. 철하는 분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후리후리한 다리를 옮겨 놓았다.

“내가 이러한 꼴을 당하는 것도 변원식이라는 놈때문이다”

“그 놈을 죽여버리지?”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인천정거장을 향하여 발을 옮겨 놓았다.

철하는 변원식의 뼈까지 가라마시고 싶었다. 너무 흥분이 되어 걸음도 잘 걸리지 않었다. 철하가 인천정거장에 이르러 서울가는 찻시간을 먼저 치어다보았다. 아직도 한시간이나 기다려야 차를 탈 수가 있었다. 철하는 괴로운 몸을 대합실 뺀취에 의지하였다. 철하가 정가장에 이른지 오분되 되지 못하여 연순이가 들어왔다.

“정거장에 나와 계신 것을! 나는 얼마나 찾았는지 몰랐읍니다”

연순이는 철하의 곁에 와 앉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연순이는 철하를 찾아다니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철하가 여관을 나설 때부터 연순이는 철하에게 들키지 않게 그 뒤를 따랐던 것이다. 철하가 인천경차러에 들어갔다가 온것도 알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체하고 말하였다.

“저도 지금 자료 상경을 하려고 합니다”

연순이는 철하가 아무 말도 없이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무색하여 또다시 이렇게 말을 끄내어 보았다. 그러나 철하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조는 것 같기도 하였다.

철하는 이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을 생각하였다. 서울 올라가서 살아갈 것과 또 어떠어떠한 일을 하겠다는 작전계획을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연순이와도 절교를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니 그의 말에 응할 필요가 없었던고로 아무 말도 안하고 혼자 지꺼리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차떠날 시간은 점점 가까워 온다. 승객들은 한씩 둘씩 들어간다. 모여드는 승객들의 대부분은 소위 중류이상? 이라고 할만한 남녀들이었다.

“바다를 떠나니 섭섭해요”

“나는 늘 바다에서 살알으면!”

“명년에 또 오지요”

그들의 대화의 대개는 이러하였다. 여름이 늦어가니 바다를 떠나가는 배부른 자들의 콧노래들이 었다. 철하는 이러한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떨리었다. 그들은 바다를 떠나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빈궁에 몰리여 간도로 이사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저씨 먼저 가셔서 형편을 보시고 곧 편지를 하십시오. 명년봄에는 저도 그곳으로 이사를 가겠읍니다”

“귀돌어머니 울지마루 그곳은 살기가 좋답디다”

“아버지 어디를 가오”

대합실 한편 구석에서는 고국을 등지는 무리들과 그들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처참한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철하는 이 모순된 세상을 바라볼 때 마음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곳곳마다 이러한 처참한 지경을 당하게 되니 철하의 마음은 조금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철하는 차라리 소경이 되어서 이러한 꼴을 보지 아니한 것만 같지못하다고 까지 생각하였다. 기차 시간이 오분가량 남았을 때이다.

한대의 자동차가 역전에 외서 스텁을 하더니 자동차에서 변원식의 부부가 내린다.

철하는 변원식이와 명순이가 나란이 서서 대합실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자기도 알지 못하게 뻰취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 두주먹을 힘있게 쥐었다.

철하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들을 흘겨보다가 도로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변원식이와 명순이가 대합실에 들어서자 여러 남녀신사들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화재에 대한 인사를 한다.

“무얼 화재보험에 들어 손해는 없읍니다”

변원식은 아무 염녀도 없다는 듯이 배통을 내밀며 말한다. 남자들은 변원식을 에워싸고 여자들은 명순이를 에워싸고 떠들며 이천지에는 저들 밖에 없다는 듯이 야단을 친다. 확실히 그들의 세상 같이 보였다. 그들이 떠드는 바람에 대합실에 모였던 사람들은 물끄럼이 그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철하는 그꼴을 보기가 싫여서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철하는 변원식의 웃음소리보다 명순의 간사한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당장에 그를 날카로운 칼로라도 찔러죽이고 싶었다. 철하의 전신은 분노에 떨렸다. 실연을 당한 비애보다 황금의 헡은 장난에 가슴이 떨리었다.

옛날의 명순이를 생각하고 지금의 명순이를 생각하여 보니천양의 차가 있었다. 지나간 날에 명순에게 힘있게 교양을 한 것도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황금과 명예와 지위를 따라가게 되였다. 지금은 그 때의 말을 코웃음칠 것도 알았다. 개찰구로 나갈 때 명순이는 철하와 연순이를 처음 보았다.

철하도 명순이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쪽으로는 눈도 까딱하지 않고 개찰구를 나가서 차에 올랐다. 변원식의 일행이 이등차에오르는 것도 철하는 알았다. 기차는 ‘싸이링’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철하는 같은 궤도 위를 달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그들과 자기가 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금은 어디서던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엄정히 갈라 놓는 것이었다.

“복수 오직 복수가 있을 뿐이다. 언제든지 복수를 하고야 말 것이다”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기차는 달음질을 친다. 사나운 기세로 소란한 음향을 지르고 끊임없이 달아난다. 철하는 언제든지 이러한 음향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장쾌하였다. 자기도 이러한 기세로 복수의 칼을 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