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18장
탈출(脫出)
[편집]십이월십일 눈오는 밤이었다. 철하는 하숙으로 돌아가려고 철근사문을 나섰다. 밤이 늦지 않았으니 연순이를 찾아가려고 하였으나 내일 오후에 찾아가기로 하고 그대로 하숙으로 돌아가리고 하였다. 함박눈은 끊임없이 내린다. 거칠은 대지에 조금도 애낌없이 결백한 그 시체를 내려놓는다.
철하는 눈오는 밤길을 걸어가면서도 연순의 의식이 급격히 변동이 된데 대하여 감탄을 마지 않았다. 그는 전과 같은 돈 있는 놈들의 딸들의 행세를 하지 않았다. 모든 허영심과 자존심 그러고 철없는 짓을 버리고 발을 벗고 계급전선에 나선 그가 옛날의 연순이와는 사뭇 달랐다.
철하는 지나간 늦은여름 쓰라린 마음을 품고 인천을 떠나 상경은 하였으나 갈 곳이 없었다. 옛날에는 아는 동무도 많았지만 그들의 주소를 알지도 못하였거니와 구태여 알려고 하지않았다. 찾아볼만한 사람도 몇몇 사람 있었으나 그들의 대개는 감옥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해외로 떠나기도 하였다. 철하는 할 수 없이 철근사(鐵筋社)를 찾아갔다. 그것은 수길의 소식도 알겸 또 혹시 옛벗을 맞날 수나 있지 않을까 하여 팢아갔던 것이었다.
그 곳을 찾아는 갔으나 옛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곳에 찾아가서는 처음 대하는 친구의 권유로 철근사에서 일을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은 최상주(崔尙周)라는 사람인데 하르빈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아니한 동무이었다. 그 사람도 하르빈에서 수길이를 만나 몇달 동안 모든 고생을 함께 하다가 고국으로 돌아올 작정을 하고 수길이의 소개로 이 철근사에 있게 된 것이었다.
철하는 최상주에게서 수길의 소식을 자세이 자세이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수길이가 지금은 하르빈을 떠나 더 깊이 들어갔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고는 수길이가 상주에게 내지로 들어가면 철하라는 사람을 만나보라는 부탁까지 하고 서로 작별을 하였다는 것도 들었다. 철하는 이러한 관계로 철근사에 들어가게 되어 일을 보는 동안 병에 대한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철근사의 내용이 너무도 빈약한 것에 무한히 고민을 하였다.
철근사에서 일을 보고 있는 수명의 뜻이 같은 청년들의 분투와 노력도 돈 없는 까닭으로 저지되는 일이 많아졌다. 동인들의 유일한 활자전선인 월간잡지 ‘철근’ 검열도 용이ᄒ지 않았으나 인쇄비의 부족으로 어떤 달에는 중지도 하고 두달에 한번씩 합호로 발행하기도 하였다.
사랑을 노래하고 달콤한 이야기로 겉치레를 하는 잡지들은 소리를 높이 치며 날로 발전을 하고 있지만 ‘철근’ 만 호올로 불진상태에 있는 것을 본 철하는 마음으로 끝없이 울었으며 한심한 지경에 있는 콧노래에 도취된 사람들을 위하여 조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몰락이 되어가는 이 현상이 철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철하는 영리에만 몰두하여 달큼한 이야기와 울긋불긋한 치장으로 일반의 호기심을 끌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들의 상대로 자성의 거탄을 던지기로 하였다. 그러고 거기에 도취된 독자 중에게도 반성의 그 무엇을 주려고 결심을 하였다.
이것이 철하가 철근사에 들어가서 붓을 들고 일을 하여 나가려 할 때의 첫계획이었다. 철하는 연순이를 찾아가서 철근사를 위하여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연순이는 철하의 요구에 쾌이 승락을 하고 고향에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로 내려간 그 이튿날 철하는 연순에게서 일이 뜻과 같이 되었다는 전보를 받았던 것이었다.
경비곤란으로 극도의 고민을 하고 있던 철근사동인들은 저윽이 활기를 얻었으며 연순이가 철근사를 위하여 무조건으로 이천원을 내여놓는다는데 대하여 감사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뿐이 아니라 연순이는 그후부터 일절 악단에 오르지 않기로 하고 철근사 동인이 되어 활약하는 한편 같은 설움에서 방황하는 여성을 위하여 어떠한 일이든지 헤아리지 않고 노력을 하였던 것이었다.
연순이가 급격히 사상변환이 된 것도 철하와 오래 교제하게 되자 허영심이 많은 그도 세상을 알게 되고 으식을 얻게 된 것이었다.
철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연순의 고문이 되어 주었다. 비록 연순이가 어떠한 수단으로 만들어 내는 연극인가 하고 철하자신도 반신반의를 하고 있었으나 어떻고 그를 이용하는 것이 그렇게 불리한 일은 아니었다.
철근사의 일을 주장하여 보다싶이 한지도 석달 동안이나 되었다. 그는 자신의 병도 돌보지 않았다. 목숨이 살아있는 동안까지 자기의 맡은 일을 하려고 하였다. 눈은 여전히 내린다. 철하는 어느듯 명치정 좁은고목에 들어섰다.
‘까페 따리아’ 앞을 지내려고 할 때 철하는 그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에 문득 발을 멈추었다. 그 노래는 자기가 명순이가 평양에 있을 때 보내여 준 시(時)를 명순이가 친히 작곡을 한 것이었다.
“화살에 맞은 참새 떨고 있는 그 모양
사람아 비웃지 말아라 네가슴에도
파멸의 화살이 가까왔으니
붉은 피 식기 전에 네 앞길을 바라보라”
이러한 노래가 피아노의 반주와 함께 따뜻한 ‘홀’ 안에서 눈오는 차디찬 거리로 새여 나왔다.
이 시는 철하가 동경에서 건너온 후 이 땅에서 처음 당하던 때에 느낌을 얻어 붓을 들고 쓴 것이었다.
이것을 쓸 때 시인(詩人)이 아닌 철하자신도 ‘리듬’이 어떠하며 시의 소질을 가추었다든가 하는 것은 철하의 생각 할 배가 아니었다. 다만 자기의 느끼는대로 쓴 것이었다.
그것이 자기의 마음의 노래이니 혼자 외이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명순에게도 어떠한 ‘힌트’를 주려고 그에게 보내준 것이었다.
명순이 밖에는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 카페에서까지 이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철하는 어떻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철하는 정신 없는 사람 모양으로 우두커니 서서 그 노래를 듣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찾아내려고 귀를 기우렸다. 노래는 떨리며 나온다. 금시에 울음이 쏟아질 듯이 흘러나온다. 그 노래를 듣고 선 철하의 마음도 아지 못하게 쓰리었다. 활동사진의 어떠한 슬픈 장면을 반주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명순이의 목소리와 같기는 하였으나 그는 돈있는 사람의 아내이니 이러한 곳에 와 있을이치도 없을 것이니 철하의 마음은 더욱 미국에서 더듬게 되었다. 철하는 케페 문에 바싹 대여서서 그 노래의 주인공을 알려고 할 때 소란한 축음기의 짜쓰 소리가 어지럽게 시작이 된다. 약한 그 목소리는숨이 죽고 말았다. 철하는 ‘또아’ 를 밀고 들어섰다.
카페에서는 먹을 것이나 난듯이 ‘이랏샤이’를 연겊어 부르며 ‘웨트레쓰’ 한 철하의 앞으로 가까이 온다. 철하는 자기가 어떻게 하여 이곳을 들어왔느지도 알지 못하였다. 듣고 있던 노래가 축음기 소리에 정복이 되어 살아지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문을 밀고 들어선 것이었다. 어떠한 생각과 계획은 물론 가지지 않았다. 더욱이나 이러한 곳이 처음이고 또 오기도 원ᄒ지 아니하던 철하는 멍하게 서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다만 노래를 부러던 여자를 찾아내려고 하였으나 조선 여자는 하나도 없고 피아노가 놓인 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저쪽 편에는 사오명의 일본 사람들이 식탁을 에워싸고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다. 일본여자들이 간간이 끼워 앉아서 웃음을 팔고 있다.
철하의 곁으로 달려온 여자는 한쪽 손에 담배를 붙여들고 갖은 애교를 부리며 한편 구석에 놓인 비인 좌석에 가서 앉기를 청한다. 철하는 모자를 눌러쓰고 외투깃으로 낯을 쌌다. 그러고는 그 여자는 무에라고 떠들거나 말하거나 꼼짝도 하지 않고 조선 여자를 찾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 노래가 조선말로 부른 것을 들은 까닭이고 일본여자로는 그렇게 부를 수 없는 것을 안 까닭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눈에 띠우지 않았다. 철하는 그렇다고 도로 나갈 수도 없고 자리에 가서 앉을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철하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분을 횟벽같이 바른 그 여자는 철하의 외투소매를 끈다. 그 여자의 입에서는 술내음새가 코를 찌를 듯이 난다.
철하는 자기가 마굴에 빠져 헤매고 있는 것 같이 생각하였다. 철하는 그 여자가 잡아다니는 소매를 뿌리쳤다. 그러나 그 여자는 조금도 성내지 않고 또 다시 자리에 가 앉기를 청한다.
철하는 그들의 생활이면에 무한한 고민이 있다는 것을 모른 것도 아니다. 그러한 학대를 받으면서 자기들의 먹을 것을 위하여 애쓰는 꼴이 가긍하였다.
철하는 기왕 들어온 것이니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이나 알아내려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문밖에서 듣던 노래가 확실히 이곳에서 흘러나온 것이니 반듯이 이 안에 조선 여자가 섞여 있으리라고 추측을 하였다. 유유이 있으면 알리라 생각하고 마실 줄 모르는 술을 청하였다. 유리꼬라고 부르는 처음 자기를 안내하던 그 여자는 요리실로 술을 가질러갔다. 그 사이에 다른 여자가 와 앉는다.
철하는 모자와 외투를 벗어걸고 그 여자에게 말을 건네려고 하였다. 불안한 마음도 없지는않았으나 알고자하는 마음이 불안한 마음을 억제하였다. 그러나 철하의 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곳에 경험이 없는 철하에게는 모든 것이 서툴을 뿐이었다. 저쪽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제 세상이라는 듯이 야단을 치고 있다.
취흥이 도도하여 웃고 떠드는 소리 축음기의 노래소리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술취한 사람들 이 모든것을 바라보고 앉은 철하는 자기도 몰락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감상이 일어났다. 이곳으로 출몰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피끓는 청년들이었다. 위대한 포부로 앞날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또 중대한 사명을 가진 그들이 이렇게 익기도 전에 썩어가니 철하는 그들을 가엾게도 보았지만 분하기도 하였다.
철하는 마음이 조리조리하여 견디지 못하였다.
“내가 미쳤나”
“설사 이곳에서 명순이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작정인가?”
철하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자기로 자기마음을 물어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철하자시능로도 알지 못하였다. 이렇게까지 괴로움을 참아가며 명순이를 팢을 필요가 있는가를 생각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기가 승거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술까지 청하여 놓고 도로 나갈 수도 없고 그야말로 호미란방이었다.
“사끼 고고데 우다오 우닷다노와 다레?”
(아까 이곳에서 노래 부른 이가 누군가?)
철하는 참다못하야 얼른 알고 나가려고 이렇게 말하였다.
“유리고상요 우마갓다데쇼!”
(유리고라는 이예요 썩 잘 하였지요)
철하는 술 가지러간 여자를 기다렸다. 유리고가 그 여자라고 하니 다행이 생각하였다.
철하는 궁금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유리고가 오면 알 수가 있는고로 마음을 조리면서 그를 기다렸다. 요리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유리고’ 라는 여자가 술병과 요리를 담은 상을 들고 나온다.
그 여자는 철하가 앉은 곳으로 조심조심이 걸어와서 테불 위에 요리담은 쟁반을 놓으려고 하다가 깜짝 놀래는 듯이 상을 든 채로 두어 걸음 뒤르로 물러간다.
철하는 ‘유리고’라는 그 여자를 자세이 바라보았다. 똑똑이 바라보니 그것은 ‘유리고’의 가명을 가진 명순이 었다.
철하는 처음 그여자를 보았을 때에는 그가 명순이라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일본옷을 입고 또 화장도 이상하게 한 까닭으로 명순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또 그 때에는 그렇게 주시도 하지 낳았다. 다만 조선옷을 입은 여자만 찾으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리하였던 것이 착안을 하고 바라보니 명순이가 틀리지 않았다. 일본마로 서슴지 않고 유창하게 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법이 능란하고 게다가 입에서 술 내음새가 코를 찌르니 누가 그를 명순이로 볼까.
철하의 흥분된 마음도 마음이려니와 그와 밤낮없이 교제하는 사람들이 그를 만나본다고 하더라도 명순이로 알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명순이도 자기가 안내한 손님이 철하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모자를 눈낯까지 외투깃으로 낯을 가리웠던 까닭으로 철하인것을 알지 못하였다.
명순이는 지금도 그를 의심하였다. 모자를 벗고 외투도 벗고 의자에 걸터 앉은 그 사람을 들여다 보면서도 반신반의를 하였다. 철하는 확실히 철하인데 이러한 곳을 올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순이ᄂ는 자기가 이 곳에 와서 있다는 것을 철하에게 전할 사람도 없을 것을 알고 있는고로 철하가 알고 찾아올 이치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명순이는 정신없는 사람 모양으로 쟁반을 든채로 우두커니 섰다.
“마아 아나다 도오시다노”
(어 당신 그 웬일이오)
하고 철하와 마주앉은 ‘여급’ 이 명순이가 우두커니 서서 있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명순이는 떨리는 손을 억제 하면서 들었던 쟁반을 테불 위에 놓았다. 그러고 앉으려고도 아니하고 머리를 숙이고 섰다. 눈 앞에 앉아있는 이가 확실히 철하인 것을 알았던 까닭이다.
철하도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선 명순의 모양을 바라보고있다. 옆에 앉았던 일본여자는 철하와 명순이를 연갈아 치어다보다가
“유리고상 오나지미나노? 쟈마니나루가 시랑사 싯게이”
(유리고상 단짝 손님인가보그려? 방해될 것같군 자아 가겠오)
이렇게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굽벅꿉벅하며 저쪽으로 간다.
“앉으십시오”
철하는 눈치 빠른 일본여자가 떠나간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조심조심이 의자에 앉는다. 그러나 머리는 들지 않는다.
철하는 지금 명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알았다.
“명순씨가 아닙니까?”
철하는 그래도 의심이 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대답이 없다. 철하는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확실히 명순인 것을 알았다.
“명순씨가 어떻게 하다가 이런 곳에 와서있게 되었읍니까?”
철하의 이 말은 동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여자에게 냉정한 태돌르 가지고 있는 철하가 동정하는 마음으로 물을 이치도 없었다. 불상한 생각에 물은 것은 더욱 아니었다.
명순이가 어찌 된 사실도 변원식에게서 떨어져 나와 이런 곳에 와 있게 되었는가를 알고 싶었던 까닭으로 물었던 것이었다.
철하는 명순이가 이렇게 된 것이 오히려 상쾌하였다. 돈을 따르는 여자의 말로는 이렇다는 것을 명수니도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알아서 무엇하겠읍니까 술 마시러 오셨으면 술이나 마실 것이지요”
명순이는 머리를 들고 철하를 바라보며 쾌활하게 말하였다. 그러고 술 한잔을 따라서 쭉 드리마신다.
철하는 의외에도 명순의 태도가 쾌활하여진데 대하여 놀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철하는 무어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철하씨 그렇지 않습니까? 자 한잔 스십시오”
하고 명순이는 술잔을 들어 철하의 앞에 내민다.
철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명순이를 치어다 보기만 하였다.
명순의 눈에서는 눈물이 조금도 끊지지 않았다. 그가 태연하게 또 쾌활하게 말은 하나눈에서는 눈문이 흘러내렸던 것이었다.
명순이는 철하가 술잔을 받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싫으면 말라는 듯이 또 한잔 쭉 들어마신다.
“술을 아니마시고야 살아갈 자미가 있읍니까. 나는 저녁마다 이렇게 마신답니다. 세상만사 모 꿈 같으로 참 좋은 물건이지요”
“여자의 몸으로 그렇게 술을 마시고야 되겠오”
철하는 명순이가 타락을 한것을 알고 속으로 가엾이 보이는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명순이를 이러한 곳에서 건저내여야 하겠다고 하였다. 명순이는 첫사랑을 던져주던 여자이다. 그 동안 그에게 대한 반감이 불붙듯 일어나서 그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에 명순의 태도를 바라볼 때 그의 신세가 가없어 보였다.
“철하씨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연순이와 같은 정결한 여자에게 적합한 말이지요. 나 같은 여자들에게는 그런 말이 금물입니다. 술이 아니면 살 수가 없는것이니까요”
명순의 눈에서는 눈물이 더욱 흐른다. 그는 손수근을 끄내어 눈물을 씻고 또다시 술을 따라서 단목에 마시었다.
“철하씨 그렇지 않겠읍니까 보시오 내가 당신의 앞에서 당신의 낮을 치어다보며 말을 하고 있는 것도 술이라는 것이 아니면 못할 것이죠. 술을 마시지 않었다면 저는 이만한 행복도 가지지 못할 것이니까요”
명순이는 말을 마치고 또 술을 마시려고 술병을 쥐려고 할 때 철하의 손이 그 술병을 빼앗어 갔다.
“술별을 주서요 저는 세상에 친구라고는 술 밖에는 없는데요”
하고 명순이는 손을 내민다.
“더마시지 않어도 그만하면 넉넉합니다 이야기 할 말이 있으니 더 마시지 마십시요”
철하는 명순이가 술마시는 것이 과연 괴로웠다. 그런고로 이야기가 있다고 핑게를 하고 술병을 주지 않았다.
“이야기도 듣기원ᄒ지 않습니다. 술병만 주십시요. 저같은 사람과도 할 이야기가 있겠읍니까?”
“그렇게 생각지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켜서 내말을 들어보시오”
“마음을 진정시키라구요? 저의 마음은 언제든지 진정이 되고 있읍니다. 지내간 여름 월미도 해변에서 당신에게서 냉대를 받던 그때부터 저의 마음은 진정이 되고 있읍니다. 만일 그 때에 나의 마음이 진정이 아니되었다면 바다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지요”
명순이는 모든 말을 서슴지 않고 내여 놓는다. 명순이 말을 듣는 철하도 명순이가 술취한 김에 함부로 내갈기는 말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가슴 속에 깊이 새겨 두었던 말을 끄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철하씨 그 때에 침을 뱉고 돌아갔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고 돌아가는 당신을 보고 조금도 원망을 하지 않었읍니다. 모두가 나의 잘못이니까요. 누구를 원망하겠읍니까”
하고 명순이도 한숨을 내쉬고 나서 또 다시 말을 잇는다.
“저는 그때에 별말을 하려고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지내간 사정을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저의 지내간 사정의 이야기를 하여 당신의 용서를 얻으려고 하였던것도 아니었읍니다. 다만 나의 사정을 말하여드리려고 하였던 까닭입니다.”
“지금이니까 말이지요 저도 그때 웨 그렇게 갑자기 흥분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였읍니다. 여관에 돌아와서 곧 후회를 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후부터 이 더러운 몸이었으나 당신을 생각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던 것입니다. 감히 당신을 치어다보지도 못할 정도의 몸으로 당신을 상각하고 있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같아서 단념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마음속으로 당신과 연순의 장래행복을 위하여 축복을 하였을 뿐이었읍니다.”
“연순이와 나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오”
“관계가 없으시다면 없겠지요. 그러나 저는 아침저녁 월미도 해안에서 당신들이 동반을 하여가지고 다니실 때 속으로 부러운 생각이 납디아요”
명순이는 어구어구마다 힘있게 말하고는 정신없는 웃음을 내 웃는다.
철하는 변명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변명을 할 필요도 가지지 않았다.
“철하씨 월미도에서 맞났을 때 저를 보고 당신의 원수인 변원식을 사랑하고 있다고 침을 배으섰지요? 당신은 어찌하야 저의 원수인 연순이를 사랑하고 있읍니까?”
“연순이가 당신의 원수라니요?”
철하는 연순이를 사랑하지 아니하였다는 변명의 말보다 이 말을 먼저 Rm내었다. 지내간 날에는 그렇게까지 친절하던 두 여자가 어떠한 이유로 원수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연순이가 저의 원수지요 틀림없는 원수지요. 저의 일생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은 연순이니까. 원수가아니되고 무엇이 되겠읍니까? 네”
“물론이지요”
하고, 명순이는 철하가 감옥으로 들어간 후에 일어난 일을 하나도 배여놓지 않고 이야기를 하였다.
어머니의 졸림에 못이기여서 출가를 하였다가 연순이를 만난 일-연순의 소개로 그 사촌오빠인 창선이를 알게 된 후 개성에서 당한 일 수원에 도망을 간일- 변원식이와 결혼을 하게된 이유 결혼식장에서 일어난 일까지 조금도 숨김없이 말하였다.
“연순이가 아니면 제가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었을 것입니다. 그의 사촌오빠에게서 상처를 당하였던 까닭으로……”
명순이는 느끼여운다. 철하는 명순의 지내간 날의 아야기를 듣고 가슴이 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순이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명순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황금의 독소다. 황금에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저주를 당하고 있는 그 형식이 다르기는 하나 황금에 저주를 받고 있기는 자기와 똑 같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뿐이 아니라 복섬이와도 같다고 생각하였다.
변원식이라는 놈의 황금은 자기의 애인까지 빼앗은 것을 알았다.
철하가 전일 명순이를 저주하고 싶었던 생각은 자기의 잘못된 생각이라고 깨달았다.
그 다음 명순이를 유혹산 창선이라는 놈이 죽었다고 하니 그만이지 만일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당장에 쫓아가 죽여 버렸을 것이다.
철하는 명순이를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또 명순이를 내버려두었다는 것이었다. 월미도에서 그를 너무도 학대를 하였다는 것이었다.
명순이가 자기보다 몇배이상의 고생을 하였고 지금도 고초를 겪는 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에는 연순의 일이다.
명순의 말고 연순의 평시행동을 추상하여 본다고 하더라도 연순이가 자기의 오빠를 이용하여 명순이를 타락시킨 것이라 하였다.
그것은 연순이가 명순에게 대한 추한 점을 여지없이 들어내는 것을 철하가 들었지만 그의 오빠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더라도 그 안에는 큰 내막이 있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처음에 명순이가 어떠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가 변원식에게로 시집을 갔다고 할 뿐이고 어떤 사람의 이름을 감추어버리고 말하던 것을 회상하니 연순이를 의심하는 마음은 더욱 높았다.
연순이가 진실로 요마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연순이는 지금 대중을 위하여 몸을 버리고 일하고 있지 아니한가? 힘있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느냐?”
철하는 괴로웠다. 명순의 신변을 위하여서는 연순에게 끝없는 증오심을 느끼었으나 그 반면으로 대중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러한 마음도 어리석은 것같았다.
연순이가 지금은 밤잠도 바로 자지 않고 분투하는 것이 결코 일시적 체면을 위한 행동이 아닌 것을 철하는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리 연순이가 지내간 날에 명순이를 저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연순이를 욕할 생가긍 나지 않았다.
명순이는 한 여자이다. 그러나 연순이는 대중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 아니한가?
철하는 큰 것을 위하여서는 거은 것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알았다.
“무엇무엇하여도 황금이라는 놈의 악희이니까요. 황금앞에서 마음이 굳지 않고는 일신을 망치기가 쉽지요”
하고 철하는 술을 따라서 한잔을 힘차게 마셨다. 철하가 술을 마셔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음이 괴로워서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였다.
“철하씨 저를 보고 지금 설교를 하십니까? 황금앞에서 마음이 강하면 어떻게 강하겠읍니까? 누구든지 말로는 잘 떠들지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아직도 세상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행복이라고 할 수가 있읍니다. 만일 괴로운 경우를 당하여 본다고 하면 그런 말을 다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명순이는 흥분이 되어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대대로 내려오던 옥도양전을 팔아 눈물을 흘리며 외국으로 유리(流離)하여가는 사람들도 마음이 약하여서 그렇겠읍니까? 마음은 강하게 가지려고 노력은 하나 독사와 같은 황금이 입을 벌리고 따라다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은 당하여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명순의 말은 힘있게 나왔다.
철하는 명순의 말을 부인하지 못하였다. 사실이다. 황금은 인생을 농락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었다. 그런고로 철하는 명순에게서 총공격을 당하면서도 한 마디의 답변도 못하였다.
“철하씨 모든 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소용이 없어요. 술이나 마시며 그날 그날의 찰라적위안을 얻는 것으로 만족을 삼읍시다. 저는 벌써부터 그렇게 작정을 하였어요”
하고 명순이는 철하의 앞에 놓인 술병을 가져다가 잔에 따라서 한잔을 마시었다.
“일본청주는 돗수가 약하여서 뿌란데에를 가져오지요”
하고 명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요리장으로 간다.
철하는 말리지도 않고 물끄럼이 앉아서 걸어가는 명순의 뒷모양을 바라보았다.
“명순이가 저렇게 될 줄이야”
철하는 혼자 입속말을 하였다.
어떻게 하든지 명순이를 건저내고 싶은 생각이 났다. 생각 뿐이 아니라 그것이 자기의 마땅히 취할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건저내고야 말겠다”
“명순이를 구하여 내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철하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명순이가 뿌란데에라는 술을 가져왔다.
컵이 넘치도록 따라서 마신다.
“명순씨 웨 그러십니까 명순씨가 저를 맞난고로 술을 그렇게 마시는 것 같읍니다. 그러다면 저는 가겠읍니다”
하고 철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명순이가 술을 마시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수단을 부린것이었다.
“하하하……벌써 한시가 지냈군, 집에서 연순씨가 기다리시겠읍니다. 어서 돌아가십시오”
“명순씨?”
“철하씨를 맞난고로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지요. 그럴 필요가 있겠읍니까? 당신께는 훌륭한 애인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천한 몸입니다. 전느 저녁마다 마실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마십니다. 오늘 저녁만 마시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밤이오기만 기다립니다. 저녁이 와야 손님들이 와서 공술을 얻어 마실 수가 있지 않겠어요”
하고는 또 술을 마신다.
“명순씨 내가 연순이를 사랑하고 있는 줄로 압니까?”
“그것은 당신들의 자유이니까 제앞에서는 시치미를 따라 말할 필요가 있읍니까”
“잘못 생각하였읍니다. 저는 연순이는 고사하고 어떠한 여자이든지 사랑하지 않기로 작정한지가 오래였읍니다. 연순이와 월미도에 가있게 된 것도 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간것이지요”
철하는 명순이가 자기를 오해하는 것이 자미가 없어서 애쓰고 변명한 것은 아니었다. 명순의 사랑을 다시 받기위하여 말한 것은 더욱 아니엇다. 다만 자긔에게 업는 말을 하는 까닭으로 마음이 괴로웟든 것이다.
명순이는 취하여 머리를 들지를 못하고 테불에 업대여 눗기여 울기만 한다.
“철하씨 저는 외로운 몸예요 세상에 나는 나의 친구라고는 나의 그림자 하나박게 업서요. 그러나 저는 그것을 설워하지 안습니다. 아! 경희! 경희의 무서운 얼골!”
하고는 또다시 머릴ᄅ 테불우에 내진다. 그러고 눗기여 운다.
“명순씨 그러케 우시기만 하면 엇더케 하시겟습니까 아즉도 압길이 만흔 녀자의 몸으로”
“호호호호 압길이 만흔 여자? 저는 여자의 밟어올길은 다 밟어왓습니다. 여자의 고로는 고대로 당하여보앗습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길이야요. 나는 나의 어린이를 위하야서만 살라고 애를 씀니다. 그러치 안엇으면 변원식의 집을 동망질을 하여 나오늘 날 죽어버려슬 것이니지요. 이곳에서 큰 석달이 넘도록 변원식의 눈을 피하야 와잇스면서 이런 노릇을 하는 것도 나의 사랑하는 애기를 위하야 이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나에게는 아모것도 업슴니다. 바라지도 안씀니다.”
하고 또 술 하나잔을 마시고나서 말을 잇는다.
“‘판데-누’가 그의 사랑하는 ‘알-엣트’ 를 ‘데날데이’ 부처에게 맥겨둔것 갓치 저도 저의 사랑하는 ‘알-엣트’를 엇던 부처에게 맥겨두고 그를 그리워하고 잇습니다. 그의 양육비를 엇기 위하야 이러한 고생을 하며서 변원식이라는 놈은 나를 애쓰고 치저다니겠지요. 그러나 명순이라는 여자는 이세상에서 업서젓습니다. ‘기꾸꼬’가 명순이라는 것을 누가 알겟습니다.저는 완전이 산송장이 되엇습니다. 철하씨가 엇더케 알고 오섯는지는 알지 못하겟스나 세상에서는 내가 이곳에 와잇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엇습니다”
명순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안코 말하엿다. 철하도 명순이가 속직하게 말하는 것을 알엇다. 명순이가 화류계에 발을 들여노흔것도 그의 사랑하는 애기를 위하야 이곳에 오게된 것을 알엇고 그가 애기를 위하여서만 살어가는 것을 알엇다. 위대한 모성애! 그 압헤는 불도 물도 아모것도 헤아릴 것이 무엇이 잇슬까?
“애기를 위한다면 웨이러케까지 술만 마심니까”
“술이요? 애기에게는 양육비만 보내만 그암입니다. 그 다음에는 할일이 업스니까 술박게야”
하고 명순이는 철하의 낯을 물끄럼이 바라보다가
“제가 이곳에 잇다는 것을 엇더케 아시고 오섯습니까”
하고 철하의 대답을 기다리려고 철하의 입이 열리기만 바라보고 있다.
“당신의 노래부르는 소리를 듯고 왓습니다”
명순이는 철하의 말을 듯고 겨우 안심을 하엿다. 그러고 속으로 노래부른 것을 후회하였다. 그것도 철하가 아니고는 그 노래를 알어듯지 못할것을 알엇던고로 옛날의 감회를 못니겨 부른 것이엇다.
철하가 노래를 듯고 들어올줄은 꿈에도 생각지 안엇다.
손님이 온다고 하더라도 일본 손님들뿐만 흔히 오는 ‘카페’임으로 마음을 노코 불은 것이엇다.
시계는 세시를 친다.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던 손님들은 술에 도취되어 쓸어지고 있다.
어떤 ‘여급’이 치는 것인지는 보이지 않으나 고도의 멸망(古都의 滅亡)이라는 곡조가 처량하게 흘러온다. 피아노의 건은 낮고 가늘게 떨린다.’
철하와 명순이는 말 없이 앉았다. 방안은 끝없이 침울하였다. 이따금 명순이가 느끼어우는 소리가 들렸다. 애처러운 피아노소리와 섞여서 사라진다.
철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외투를 입고 모자를 썼다. 그리고 쓸어져 있는 명순이를 물끄럼이 바라보다가 발길을 고요이 고요이 문있는 쪽으로 옮겨 놓았다. 철하는 꿈속 길을 걷는 듯한 감상이 떠올랐다.
철하는 카페’따리아’ 문밖을 나섰다. 눈은 끊이지 않고 한박 같이 쏟아진다.
철하는 눈오는 밤길을 걸어가면서 끝 없는 고민에 다리가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명순의 가엾게 된 모양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어떻게 하여서던지 명순의 마음을 돌리게 하려고 생각을 하여 보았다.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철하는 명순이를 그러한 곳에서 만나자 자기가 명순이를 그러한 곳에 집어 넣은 것 같은 감상을 가지었다.
그렇게 고약스럽고 저주하고 싶던 명순이었지만 그의 지내온 이야기를 듣고 또 그가 타락을 하고 있는 것을 본 뒤로는 전까지 가지였던 마음은 봄눈 같이 사라지고 도리어 그를 구하여 낼 생각이 났던 것이었다.
철하는 하숙으로 돌아간 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명순이를 구해낼 도리를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