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시대/5장
모녀(母女)
[편집]“이 애 왜 울고만 앉었니 이야기를 좀 해라”
어머니는 명순이가 울고만 있는 것이 안타까웁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아무 대답도 없이 흑흑 느끼여 울고만 있을 뿐이다.
명순의 어머니는 마음이 궁금하여 명순의 곁으로 바싹 닥아 앉으며
“그래 어떻게 되었니”
그 말에는 어머니로서의 인자한 맛이 흐르고 있었다.
“이년반 징역이랍니다”
어머니는 나즉한 목소리로
“누가?”
이렇게 물으니 명순이는 성가시다는 듯이
“누구는 누구예요 철하씨지요”
이렇게 명순이는 뽀르통 해서 짜증을 내며 대답을 하였다. 어머니는 명순이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다가 다시
“수길이는 어찌 되었니”
“그 사람은 일년이라우”
이렇게 대답하는 명순은 눈에 눈물이 글성글성 하여진다.
명순이가 오늘 아침 재판소에 방청을 갈 때는 속으로 ‘제일 많어야 일년이야 넘겠나’ 이렇게 생각하고 갔던 것이 이년반이라는 판결을 내릴때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말 동안 미결감에서 고생한 철하의 여윈 열굴을 볼 때 명순의 가슴이 얼마나 쓰리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철하가 방청석에 앉은 자기를 보고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목례를 할 때 명순의 마음은 이것이 만일 법정이 아니고 그리고 옆에 사람들이 없다면 당장에 달려가서 철하 가슴에 꽉 안기어 마음껏 울고 싶었다. 그러나 명순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 두고도 모든 형식적 그물에 얽매여 한마디의 말 조차 못하게 되는 것이 퍽이나 안타까웠다.
철하의 그 미소! 그것은 확실히 고소이었다. ‘이년반’ 명순이는 그 이년반이 몇백년 같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감옥으로 간 철하를 다시 맞날 것 같지도 않다. 아무 말ᄃ 없이 앉았던 어머니는 다정한 목소리로
“명순아 철하의 생각은 하지도 말어라 그렇게 된 사람을 생각한들 소용이 있니”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딴 생각이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데로 시집을 가도록 마음을 돌려라”
이 말을 들은 명순이는 벌떡 일어서서 입었던 외투를 와락 벗어던지며
“속상해 죽겠다는데 또 시집 말을 하서요 망녕을 부리서도 분수가 있지요”
“글쎄 그러지말고 앉어서 내 말을 차근차근이 들어봐라”
“들을말이 없읍니다. 시집은 죽어도 아니가요”
명순이는 책상 옆에 가 기대어 앉는다.
“감옥에 간사람을 기다리면 소용이 있니 설마 그 사람이 나온다고 하여도 세상에 나와서는 아무 일도 못하겠으니 무엇을 먹고 살겠니”
“굶어 죽어도 좋아요”
“글쎄 이애야 그런 철 없는 소리만 말고 어떻게 작정을 해라”
“안가기로 작정을 하였어요”
명순이는 성이 시퍼렇게 났다.
“혼담이 난 데가 없으면 모르나 그만큼 좋은 곳에서 혼담이 나지 않었니”
어머니는 명순의 과걱한 성미도 알았지만 사랑하는 딸의 장래를 위하여 간절이 권하였다.
그러나 명순이는 어머니의 말이 아니라면 침이라도 배앝고 거절을 하고 싶었다.
“경희를 봐요 그 놈의 자식이 결혼을 한다고 경희를 못쓰게 만들어 놓고 경희오빠가 자기 아버지 공장에 분규를 내었다고 경희를 학교에서 내여쫓는 즘생 같은 놈!”
그래도 어머니는
“이 애 말 말어라 그것도 경희에게 무슨 잘못이 있기 때문에 그러게 한 것이겠지――내 생각에는 변교장 같이 얌전한 사람은 없더라”
이렇게 침을 넘길 듯이 변원식을 칭찬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명순이 귀에는 이 모든 말이 바루들어가지 않았다.
“철없는 너도 생각을 해봐라 우리가 들고 사는 집도 세를 받지 않고 또 네 월급도 오르지 않었니? 그 뿐이냐 너하고는 말을 아니하였지만 네가 학교로 간 다음이면 때때로 와서 살림 걱정을 하여 주는구나 그보다 더 마음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옳아요 얌전하겠읍니다. 훌륭한 사람이지요”
명순이는 이렇게 빈정대고 나서
“죽으면 죽었지 그 놈에게로 시집을 가요?”
명순이는 그러지 않아도 경희가 학교에서 축출을 당한 다음 변교장의 행동이 이상한 것을 알았다. 무식한 어머니의 마음을 꾀어가지고 자기를 유혹을 하겠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거짓 얌전과 동정을 부려가며 만들어내는 연극이 퍽 우스웠다. 명순이는 어머니에게 이러한 졸림을 받는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무 것도 모르시는 어머니는 변교장이 냅다 풍을 떠는 바람에 넘어간 것이었다. 벌써 십여일 전부터 이러한 조림을 받아오는 것이고 아무리 말하여도 어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닫자곧자로 시집을 가라고 하므로 명순이도 나중에는 감정이났다.
“죽여봐요 내가 시집을 가는가”
명순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는 화를 벌컥 내인다.
“이 년아 집도 없고 거지 같은 놈에게 시집을 갈테냐 세상에는 사람이 없어 해필 감옥사리를 하는 전중에 여석한테로 시집을 간다니 이년아”
“좋아요 좋아요 아무 데로 가도 내 생각이지요”
“그 놈에게 시집가지 말고 종로에 있는 거지에게 가렴으나”
어머니와 딸의 싸움은 점점 커졌다.
명순이는 분하여서 울고 있따. 어머니는 담뱃대를 탁탁 털며
“참 세상도 별세상이다. 저게 공부하였다는 연들인가 거지 같은 놈에게 시집을 못가서 지랄을 치고 참 세상은 망했다. 망했어”
“어머니 어머니가 예배당을 잘못 다녔읍니다. 언제인가 어머니가 설경책을 보시다가 저더러 무에라고 하였읍니까”
명순이는 좋은 조건이나 생각하여 냈다는 듯이 의기양양하여 숨을 돌려가지고
“돈이 없어 근심하고 앉은 저를 보고 우에라고 하섰읍니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으지도 않고 걷으지도 않고 고깐에 쌓어 두지도 않을지라도 천부께서 기르시나니……라는 성경 구절을 외어주지 않으섰읍니까 거지가 어때요 마음만 튼튼하면 좋지요”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는 그 성경말을 찬양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에게서 하시던 말이니 그 말을 종을 잡어가지고 어머니를 이해시키려고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이 생각하다가 성을 낮추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애 명순아 그러나 오는 복을 어떻게 하겠니 너도 생각하여 봐라 변교장이라고 하면 서울 장안에서도 몇재 안 가는 부자의 아들이고 사람이 똑똑하고 착하니 누가 사위를 삼을 생각이 안나겠니”
이렇게 달래며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 그 사람은 아주 소행이 좋지 못합니다. 젊은 사람으로 아내를 다석번이나 이혼을 하였답니다”
“그것도 그 사람의 마음에 맞지 아니하는 짓을 하여서 그렇게 되었겠지 너만 행실을 잘 가져봐라 그럴 일이 있겠니”
어머니는 슬슬 구슬리라고만 한다.
“어머니 어머니가 그 사람의 달콤한 말에 넘어 갔읍니다. 매일 교제를 하여보는 내가 웨 그 사람 성품을 모르겠읍니까 날보고 다시는 그러한 말씀을랑 하시지도 마십시오”
명순이는 죽어가는 사람이 살려달라는 듯이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애원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뚝 잡아떼며
“어디 그만둬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변교장이 오면 나는 당장에 허혼을 하여 드릴터이다”
어머니와 딸은 왼 종일 말을 주고 받아 보았지만 그 말이 길수록 서로 갈등만 되는 말들이었고 어머니와 딸 사이의 정까지 끊어버릴 말들뿐이었다.
명순이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밤이 깊도록 잠이 안왔다. 변원식 놈때문에 집안에 풍파가 일어나게 된 것을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명순이는 나이 이십세가 넘도록 어머니의 말대답을 하여 본 적이 없었고 어머니에게서 ‘이년 저년’ 이라는 옥설도 오늘 처음 들었다. 그렇게 인자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가혹한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 변원식의 꾀임 때문인 것을 명순이는 알면 알수록 더욱 분하고 밉쌀스러웠다.
온 여름 철하와 그렇게 다정하게 이야기도 하고 걱정도 하여 주던 그 어머니와는 딴판이 되었다. 명순이는 속으로
“어머니를 공연히 서울로 모셔왔고나”
이렇게 후회도 하였다.
명순이는 어디든지 끝없이 끝없이 가고 싶었다.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보자고 암만 노력을 하여도 모두가 허사다.
학교에 가면 그 놈의 변교장이 보기 싫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의 성가시게 구는 것이 살을 어여내는 것 같고 게다가 감옥으로 간 철하의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하여 이중 삼중의 고통이 닥쳐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명순이는 아무리 생각하여 봐도 그대로 있을수는 없었다. 어디로 가던지 죽어버리던지 두가지 길 밖에 취할 도리가 없었다.
어머니의 생각도 무리가 아니라고 명순이는 생각하였다. 사랑하는 외딸을 잘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인 줄도 알았다. 그러나 변원식의 정체를 모르고 시집을 가라고 조르시는데는 퍽 답답하였다.
명순이는 배영학원에서 나오기로 결심하였다.
“내가 그 학원에서 나온다면 우리 어머니를 꾀일 기회도 없게 되겠으니”
이렇게 부르짖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직서를 써서 봉투에 넣어 겉봉까지 쓰고나서
“어디 가서 노동을 하여 먹기로 설마 모녀가 굶어 죽기야 하겠니”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어떻게 살아가던지 이년반만 참으면 된다”
“나도 철하씨 모양으로 그 놈의 밑에서 해방이 되자 돈가 권력의 노예가 되지 말자”
이렇게 작정하고나니 괴로웁던 마음이 얼마간 덜려진것 같으며 몸이 훨씬 자유로워진 것 같기도 하였다.
“경희도 학교에서 나간지 한달이 넘었으나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었으니”
“만일 어머니가 반대를 하면 그 때에는 어대로든지 가자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그때에는 오직 주검 밖에……”
명순이는 앞으로 닥칠 일을 점치면서 마음으로 굳게 결심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 늦게야 명순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의 이맛살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오늘도 학교에를 안 갈테냐”
명순이는 어떻게 대답을 하였으면 좋을는지 몰랐다. 만일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날에는 어머니는 자결이라도 할 듯한 기세로 꾸중을 하며 야단을 칠 것이다. 그러나 한번 결심한 일이나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오직 하나 밖에 없는 해결책 언제든지 어머니가 알고라야말 사실을 이제 와서 숨길 필요도 없었다.
“학교엔 안 갈 터입니다. 다른 곳에 취직을 하겠어요”
그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자 펄쩍 뛰며
“무엇이 어쩌고 어째? 학교도 안 가겠다고? 이년아! 네가 정신이 없다”
“싫은 일을 할 수가 있읍니까 다른 곳에 취직을 하면 그만 아니예요? 설마 굶어야 죽을나구요?”
“망했다 망해 이년아 네 이년아 어미를 이렇게 고생시키려고 서울로 끌로 왔니”
“어머니 말씀도 중하기는 하지요마는 내가 죽어도 싫은 일을 어떻게 해요 그 곳을 나온다고 하더라도 설마 어머니를 굶으시게야 하겠읍니까”
“미쳤다! 미쳐아무리 철딱선이 없는 년이기로 제 앞을 생각 않고 세상물종을 모르니 참 좋다 좋아”
어머니는 탄식을 하고 한숨을 길게 쉰다
명순이도 자기의 어머니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쓰리었다. 언제든지 어머니와 낯을 마주 대하고만 있으면 피차의 마음만 상하였지 별수가 없었다.
명순이는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밤부터 내리는 눈은 아직도 멈추지 않고 함박눈으로 내린다.
명순이는 그 날 어둘때까지 돌아다니며 취직 할 곳을 듣보았으나 쉬웁게 얻지 못하였다. 세상에는 명순이보다도 훨씬 재조가 있는 사람들도 취직을 못하여 쩔쩔매고 이는 것이다. 명순이는 아는 동무도 여러 사람을 찾아 보았지만 모두 취직을 못하고 있다.
“저 구렁이 같은 놈이 또 왔고나”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마당에 들어선채로 한 발자욱도 때여놓지 아니하였다.
변교장의 능글능글한 웃음소리 어머니와 맞장구치는 웃음 소리! 명순이는 분하였다.
딸자식은 먹을 석을 위하여 추운 겨울에 벌벌 떨며 돌아다니고 이는데 어머니는 그 밉쌀스러운 놈 모녀간에 풍파를 일으키여 논 놈과 소리 높여 웃으며 떠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퍽이나 분하였다.
명순이는 문을 박차고 들어가서 그 놈을 당장에 발길로라도 걷어차서 내여쫒고 싶었다.
“내가 죽는다면 그 애도 생각이 있겠지요”
“아직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것입니다”
“내가 승락을 하였으니 선생님도 그 애를 잘 달래서 마음을 진정시키도록 하십시오”
“저도 힘을 쓸대로 쓰고 있읍니다. 세상에서 장가를 갈라면 얼마든지 갈 수가 있지요마는 명순씨가 학식도 상당하고 사람이 똑똑하니 나도 청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집의 재산을 지탱하여 갈려면 아내부터 잘 얻어야 되지 않겠읍니까?”
변교장과 어머니의 주고받고 하는 말을 듣고 섰던 명순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곳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악마다 어머니는 확실히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었고나”
모든 것에 실망한 명순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이 마음이 쓰리고 아펐다.
“가자! 어디든지 가자!”
명순이는 이헐게 부르짖고 문 밖으로 나섰다. 눈은 조금도 끊지지 않고 눈을 뜰 수도 없이 쏟아진다. 집에서 나와서 정처도 없이 발길을 돌린 명순은 눈물이 방울방울 흐르는 것이었다.
“어머니 저는 갑니다. 괴로운 세상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불효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저의 장래의 행복을 위하여 닥쳐오는 고생도 달게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생리별을 하고 떠나가려는 명순이는 이렇게 입속으로 부르짖었다.
방안에서는 여전히 웃음 소리가 흘너저 나온다. 자기의 딸이 비통에 못이기여 밖에서 치위에 떨며 울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 어머니는 장래의 황금의 꿈을 꾸면서 딸을 팔려고 웃음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돈만 있으면 옷하는 일이 없다고 자신하는 변원식이란 놈 수 많은 처녀의 정조를 희롱하고도 오히려 만족지 못하다는 듯이 거짓과 그 더러운 이름을 팔며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 줄도 모르는 늙은 그 어머니를 꾀여서 그 말을 사려고 흥정을 하는 악마!
명순이는 그 놈의 웃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치가 떨린다. 명순이는 하늘을 우러러
“오! 주여 어머니의 머리 위에 성신이 입하옵소서 저 사탄이 무리를 이 세상에서 없애버려주옵소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방안에서 웃음 소리는 더욱 커질 뿐이고 명순에 얼굴에는 차다찬 눈만이 떨어질 뿐이었다.
황금 앞에는 무엇이든지 정복이 되고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신앙이 두텁던 어머니도 그렇게 인자하던 어머니도 황금의 앞에는 굴복이 되고 마니 명순이는 세상에 모든 것이 허무(虛無)하다는 것 밖에는 느낄 것이 없었다.
언제인가 어머니가
“왜! 교회를 반대하느냐 교회를 다녀야 사람이 되는거란다”
이렇게 말하던 것이 생각이 난다. 명순이는 어릴 떄부터 교회당으로 다니는 어머니를 반대하였던 것이었으나 신앙에 진실하고 교회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던 어머니가 사랑하는 딸을 괴로운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명순에게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원망스러워다.
눈은 기세를 더하여 내린다. 앞길은 아득하다. 명순이는 황막한 세상의 엉겅퀴가 욱어진 벌판에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여놓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환락의 웃음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흐르는 눈물은 앞길을 가리워 버린다. 나오기는 하였지만 갈 곳이 없고 서울 장안에 입은 많았지만 명순이가 발 디려놀 곳은 없었다.
어느 사이에 그는 종로까지 걸어왔다. 눈이부시는 전등불들 풍우 같이 달리는 전차 자동차 쌍쌍이 어깨를 부비며 걸어가는 젊은 청년 남녀 종로에는 참으로 환락의 밤이 왔다. 눈 오는 거리로 몰려다니는 사람들 명순이는 그들이 끝없이 부러웠다. 활동사진관에서 울려대는 악대 모든 것이 살고 있는 것 같다. 평시에는 아무 것이고 귀에 걸리지 않던 것이 오늘 밤은 이상하게도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다 자기를 멸시하는 것같고 그들의 환락을 자랑하는 것 같다. 명순이의 다리에는 자연히 풀기가 없어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다리로 눈 쌓인 거리를 걷고 있다. 종로 네거리를 지나 광화문 앞에 왔을 그때이다. 별안간 뒤에서
“명순언니――”
하는 가냘픈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명순이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다보니 그는 뜻밖에 연순이었다. 명순이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움과 기쁨에 지내간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너 언제 왔니 참 이건 뜻 밖일구나 그래 언제 왔니 응 언 왔어?”
“서울에 온지가 일주일이나 된다우”
“그러면 왜 내게 찾아오지 않었니?”
명순이는 이렇게 노여운 듯한 낯빛으로 말하였다.
“찾아가지 않기는요 왜! 그저께 밤인가 가회동으로 갔더니 집을 옮아간지가 퍽 오래라고 하겠지요 어쩌면 그렇게 다른데로 옮아가고도 편지를 아니해요―”
연순이는 도리어 편지 안 한 것을 원망하였다.
“그런데 언니 어디로 가세요”
명순이는 그 말에 대답하기가 퍽 거북하였다. 정처없이 간다고 하기도 창피하고 또 가는 곳이 없으니 어디로 간다고 말 할 수도 없어 한참동안 망설다가
“별러 볼일은 없고 그저 심심하여서 동무집으로 찾아가는 길야”
“그러면 언니 우리 숙소로 갑시다 오해간만에 만났으니 이야기도 하고 싶으니요”
명순이는 못이기는체 하고서 연순이를 따라 그 여자의 숙소를 향하여 걸어갔다.
명순이는 속으로
“오늘밤 잘곳은 생겼고나”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고 아직도 세상의 고로를 겪어보지 못한 연순이가 부러웠다. 집에 돈푼이나 있는 덕분으로 공부도 마음대로 할대로 하고 몸치장한 것만 해도 명순이는 연순에게 비하면 몹시 너절하였다.
광화문 넓은 거리를 지나 적선동 어둠 컴컴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명순이는 적선동에 연순의 삼촌댁이 있는 줄을 알고 있었다. 연순이가 서울에 있을 때에 여러번 그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너의 삼촌이 있으면 자비 없더라 사람을 자꾸 놀리기만 해서”
명순이는 그 전에 놀러갔을 때에 연순의 삼촌이 ‘내딸년 내딸년’ 하면 놀려주던 것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우리 아저씨말이지 언니 지금 끔을 꾸고 있우 어저씨가 지내간 가을에 돌아가셨다우”
명순이는 처음 듣는 말이다 ‘마음좋은 사람이더니’ 명순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걸어가는 사이에 어느듯 연순의 삼촌의 집앞에 이르렀다. 대문과 중문을 지나서 연순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연순이는 자리에 앉으며
“언니 웨 그렇게 낯이 홀쭉하여졌우”
연수이는 ᄂ근심되는 말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명순이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요사이 좀 앓고 났더니”
“아마 그 감기통에 걸리섰던 모양이로군요 나도 전번에 어떻게 혹독히 앓었는지 그런데 철하씨도 안녕합니까”
명순이는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가슴이 쓰리었따. 그리고 법정에서 보던 철하를 눈앞에 그리였다.
“웨 신문 못보아니 철하씨가 감옥으로 가셨단다”
“아 감옥으로요!”
이렇게 말하는 연순이는 가비여운 실망을 느끼었다. 마음이 텅 비인 것 같이 멍하여졌다.
연순이는 이 소식이 처음이다. 동경으로 건너간지 한달도 못되여 몸이 아프다는 핑게로 서울로 온것도 철하를 마자려고 한 것이었다.
“어떻게 되여서 감옥으로 들어가셨어요”
“호일고무공장 동맹파업을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명순이는 눈물이 나올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잠시 방안은 조용하여졌다. 명순이와 연순이는 제각기 생각에 잠겼다.
“몇달 동안이나 증역사리를 하기게 되었나요”
“몇달이 무에냐 이년반이란다”
명순은 쓰라린 나머지 지금은 냉정하게 되었다.
“이년반!”
연순이는 이렇게 받아 말하였다. 명순의 눈앞은 아득하였다. 이 모양이 될줄 알었더면 서울로 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온 것을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연순이는 자기의 마음도 괴로웠지만 그렇게 가이엾게 된 명순이를 보니 측은한 생각이 났다.
“언니 생각하지 마세요 기왕 그렇게 대신 이를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읍니까 감옥에 게시더라도 몸만 건강하시라고 축원을 하십시오 번개같이 달음질치는 세월이니 이년반이라는 긴 날짜도 눈깜박 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요”
이렇게 위로하는 연순이는 사실은 자기가 자기마음을 위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연순이는 그 말을 하고 나니 가슴이 시원한 것 같다.
“철하씨도 철하씨려니와 나는 지금 그보다도 더 큰 고민을 받고 있단다”
명순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연순이는 눈이 동그래저서 명순이를 바라보다가
“그보다 더 큰 일이라니 또 무슨 일이예요”
연순에게는 동정하는 맘보다 알고자 하는 호기심이 더 많았다.
“결혼 문제란다”
“결혼문제?”
연순이는 바짝 닥아 앉으며 명순의 입에서 그 다음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학교 변교장 말이다. 그 놈이 어머니를 뀌여가지고”
예까지 말하고는 한숨을 휘 쉬고나서
“우리 어머니는 그 꾀임에 넘어가서 날보고 시집을 안 간다고 야단이란다”
연순이는 속으로 명순이가 병교장에게 시집을 갔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그렇가면 철하는 틀림없이 자기의 것이 되고 말 것을 아 까닭이다. 그러나 연순이는 명순이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고로 그러한 기색을 내지 않았다.
“참 얼마나 속상하시겠우”
“며칠동안 어머니를 달래 보았으나 아주 넘어가서 그 놈의 비행기에 그래 나는 집을 나왔다. 아무리 하여도 할 수 없어 집으로부터 아주 나왔어……”
명순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와 같이 흐른다. 연순이도 따라 울며
“그래 지금 어디가 있우”
“오늘밤에 나왔다. 동무집으로 놀러간다는 것도 거짓말이야 너를 만나지 않었더면 어디가서 이 밤을 새웠을는지――”
세상을 원망하는 듯한 어조 연순이는 우정에 넘치는 감회를 금치 못하였다.
“언니가 집을 나오신다면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가시라고요 마음을 잘 돌려서 집으로 다시 들어가시도록 생각하세야지오”
“나도 여러번 생각하였지만 오직하면 나왔겠니”
명순이는 어제와 오늘에 일어난 일이 눈앞에 활동사진 모양으로 나타났다.
“나는 거지노릇을 하더라도 이년반 동안을 집으로 아주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을 하였단다. 철하씨가 나오는 날까지 어떻게 하든지”
명순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로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의 눈빛이 빛나고 말에 힘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연순의 마음은 아지 못하게도 질투의 불길이 일어났따. 그것은 명순의 마음이 철하에게 대하야 너무도 강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명순이가 찰하를 잊었으면 하는 생각이 났지만 명순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명순의 마음은 굳고 굳었다. 사랑을 위하여서는 목숨이라도 바칠만한 용기를 가진 것이었다.
연순이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없이 앉았다가
“어머니 속이 얼마나 상하겠우 연니의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어머니가 살어가실 것도 생각하여야 되지 않겠어요? 생각을 잘 돌리셔서 앞날에 아무런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사람이 살면은 얼마나 살겠다구 그런 고생을 하시랴고 하시는 것이예요”
이렇게 말하였다. 명순이를 보고 직접 좋은 대로 시집을 가라는 말은 못하고
“앞날에 아무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엄벙덤벙 말하였다. 연순의 마음은 전에 명순이를 대할 때의 마음과는 아주 달랐다. 속은 딴판이었다. 얼른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던지 타락을 하던지 어떻게든지 못쓰게되어 철하가 요구하지 아니하는 여자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속 모르는 명순이는 옛날에 친하게 지내던 연순인 줄만 알고 하소연 삼아 자기의 모든 사정을 하나도 숨기지 않고 하소하였다.
“둘도 없는 친한 동무이니까 나의 곤경을 들으면 돈이 있는 연순이니까 다소의 동정이라도 하여주겠지”
명순이는 이것이 야비한 생각인 줄은 알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으나 연순의 말티는 자기가 먹었던 마음과는 전혀다른 곁길로 달아나고 있었다.
“인제 와서는 나는 어머니도 없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였으면 이러한 길을 나섰겠니 웨! 너마저 그런 말을 자꾸만 하니”
명순의 이 말에는 불쾌한 빛이 보였다. 명순의 신경은 어제 오늘 갑자기 예민하여져서 몹시도 날카러워진 것이었다.
연순이는 자기가 한 말을 명순이가 알어차린줄 알고 무안하여 아무 말도 못하였다.
“어디보자 어떻게 되나”
연순이는 속으로 이렇게만 생각하고 앞으로 명순이가 어떻게든지 되어가는 것을 보려고 하였다.
열두시가 넘은 때이다. 연순이와 명순이는 딴 이야기를 하고 있을 지음 별안간 중문을 발로 차며 열어제치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왔나보다 누굴까”
연순이는 손짓을 하며
“쉐! 떠들지 마세요 사촌오빠가 술이 취하여 들어오시는 모양입니다”
명순이와 연순이는 숨도 크게 못쉬고 앉았다.
연순의 사촌 오빠라고 하는 사람을 혼자 무에라고 중얼거리며 안마당에 들어서더니 연순이의 방앞에 와서
“연순이 있니”
하고 문을 와락 열어제친다.
“오빠 웨 이러세요 손님이 오셨는데――”
그 사람은 명순이를 보더니
“아― 아― 이것 실례하였읍니다”
이렇게 혀가 꼬부라지는 말을 하고는 문을 후닥딱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쪼구리고 앚았던 명순이는
“젊은 청년이 어쩌면 저렇게 술이 취하여 다니실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집안도 말이 아니랍니다. 그렇게 얌전하던이가……”
연순이는 그 다음 말을 할까말까 하다가 그대로 말을 끊어버리고 만다.
명순이도 더 묻지 않고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세상이 하도 얄궂으니까 나도 마음이 극도로 괴로울 떄는 세상만사가 다 귀치 않더라”
이렇게 탄식하였다.
명순이와 연순이는 이렁저렁 늦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전등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