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해항도
폐선(廢船)처럼 기울어진 고물상옥(古物商屋)에서는 늙은 선원(船員)이 추억(追憶)을 매매(賣買)하였다. 우중중─한 가로수(街路樹)와 목이 굵은 당견(唐犬)이 있는 충충한 해항(海港)의 거리는 지저분한 크레용의 그림처럼, 끝이 무디고. 시꺼먼 바다에는 여러 바다를 거쳐온 화물선(貨物船)이 정박(碇泊)하였다.
값싼 반지요 골통같이 굵다란 파이프. 바다 바람을 쏘여 얼굴이 검푸러진 늙은 선원(船員)은 곧─잘 뱀을 놀린다. 한참 싸울 때에는 저 파이프로도 무기(武器)를 삼아왔다. 그러게 모자(帽子)를 쓰지 않는 항시(港市)의 청년(靑年)은 늙은 선원(船員)을 요지경처럼 싸고 두른다.
나폴리(Naples)와 아든(Aden)과 싱가포르(Singapore). 늙은 선원(船員)은 항해표(航海表)와 같은 기억(記憶)을 더듬어본다. 해항(海港)의 가지가지 백색(白色), 청색(靑色) 작은 신호(信號)와, 영사관(領事館), 조계(租界)의 각가지 깃(旗)발을. 그리고 제 나라 말보다는 남의 나라 말에 능통(能通)하는 세관(稅關)의 젊은 관리(官吏)를. 바람에 날리는 흰 깃(旗)발처럼 Naples. Aden. Singapore. 그 항구(港口) 그 바―의 계집은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망명(亡命)한 귀족(貴族)에 어울려 풍성(豊盛)한 도박(賭博). 컴컴한 골목 뒤에선 눈자위가 시푸른 청인(淸人)이 괴춤을 훔칫거리면 길 밖으로 달리어간다. 홍등녀(紅燈女)의 교소(嬌笑), 간들어지기야. 생명수(生命水)! 생명수(生命水)! 과연(果然) 너는 아편(阿片)을 가졌다. 항시(港市)의 청년(靑年)들은 연기(煙氣)를 한숨처럼 품으며 억세인 손을 들어 타락(墮落)을 스스로히 술처럼 마신다.
영양(榮養)이 생선(生鮮)가시처럼 달갑지 않는 해항(海港)의 밤이다. 늙은이야! 너도 수부(水夫)이냐? 나도 선원(船員)이다. 자─한 잔, 한 잔, 배에 있으면 육지(陸地)가 그립고, 뭍에선 바다가 그립다. 몹시도 컴컴하고 질척거리는 해항(海港)의 밤이다. 점점 깊은 숲속에 올빼미의 눈처럼 광채(光彩)가 생(生)하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