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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길로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나는 자리 넓은 곳을 찾느라고 맨 꽁무니 찻간에 올랐다.

서로 먼저 오르려고 밀치고 달치며 정신없이 서두는 사람들 “리리…… 리리…… 고훙깐데이샤…… 군상젠슈호 멘노리까에……” 하며 입에다 나발통을 대고 악을 쓰며 외치는 역부들의 떠드는 소리…… 플랫포옴 앞에 그득히 들어선 검은 기차 옆에 모여서서 긴장이 되어 훤화와 혼잡을 이루는 광경은, 차로부터 척척 내리는 사람들의 범연한 시선과 가벼운 모양이며 차창으로부터 무심히 내어다보는 사람들의 고요하고 한가한 얼굴과 알맞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차 꽁무니로 해서 차 안에 막 들어서자 바로 문간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보얗게 선선하게 차린 여학생 하나에 선뜻 눈이 띄었다.

그가 썩 미인인 것도 아니요, 또 여학생이 아닌 다른 여자가 그 찻간에 타지 아니한 것도 아니었지만, ‘여학생’ 하면 웬일인지 시선과 귀가 이상하여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더우기 시골─이라 그런지 나에게 역시 그가 산뜻하게 눈에 띄었고, 또 그 찻간에 탄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호기심에서 우러나지 아니한다 할 수 없었다.

그 여학생은 얼굴이 넓고 두툼하고 몸과 수족도 큼직하고 마침 바깥을 내어다보며 무심코 “어디야?” 하는 그 말소리까지가 살이 진 듯이 두두룩해서 한번 보기에 어쩐지 육감적(肉感的) 기분이 그의 주위에 싸여 떠도는 듯하였다.

그는 적삼도 희고 치마도 희고 속옷도 희고 무릎까지 올라온 양말도 희고 분 바른 얼굴도 희고, 다만 뾰족한 뒷굽 높은 구두와 맵시 있게 늘쩡늘쩡 땋아내린 탐스러운 머리채만이 새까맸었다.

말하자면 시골 사람 말짝으로 ‘부자집 맏며느리감’이었었다. 그는 차의 진행하는 앞쪽으로 향하여 바른편 줄에 앉았고, 그의 앞에는 나이 오십쯤 되어 보이는 마나님─나는 그 마나님이 그 여학생의 어머니인 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 하나가 그와 마주 향하여 앉았었다.

그리고 그 마나님의 바로 등 뒤에는 전문학교 학생인지 어느 강습소 학생인지 교복을 입지 아니하였으므로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학생은 학생인 듯싶은 ─ 얄밉고 약게 생긴 얼굴 표정의 소유자인 나이 스물네댓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얼른 보기에도 좀 ‘젠체’ 하는 기분이 있어 보이게 하고 앉았었다.

그러고 그의 앞자리는 비었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사나이가 그 여학생과 친척 관계가 되거나 흑 그렇지 않더라도 동향 사람으로서 서울까지 동행하느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사나이의 그 여학생에게로 향하는 안정치 못한 교활한 시선으로 보아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인 것을 바로 알았다. 나는 그 사내의 앞 빈 자리로 가서 짐을 선반에 얹고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 웃저고리도 벗고 넥타이도 풀고 하면서 그 여학생을 한번 정면으로 치어다보았다.

그는 미리 나를 치어다보고 있었든지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무류하여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며 속맘으로 ‘왜 바라볼까?’ 하고 생각할 때에 ‘사람이 사람을 보는데 의미는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해석하였으나 나는 그 해석에 내 스스로가 불만족이었고 도리어 그에게 치어다보인 것이 무조건으로 기뻤다.

그러자 그 마나님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그 사내도, 또 건너편 줄에 앉은 중학생도 어느 시골 신사도 나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나는 좀 불안은 하였으나 승리자의 심리(心理) 같은 기쁨을 느꼈다.

아직도 차 탈 사람은 하나씩 둘씩 올라와 눈을 내두르며 앉을 자리를 찾고 플랫포옴은 여전히 요란하였다.

벤또 장사, 차장사, 무슨 장사 해서 모두 가까이 와 차창으로 대고 바쁘게 외웠다.

그 여학생은 그 마나님과 무어라고 몇 마디 소곤거리더니 돈지갑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나이도 그를 따라 벌떡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그 여학생은 벤또 둘을 사들고 들어오고, 그 사내는 아무것도 사지 아니하고 도로 들어와 곁눈으로 그 여학생을 흘끔흘끔 보며 제자리에 가 앉았다.

찌르르하고 발차 종소리가 나며 호각소리가 감감히 들리더니 우렁찬 기적소리와 아울러 피피 소리를 연해 내며 차는 슬그머니 움직였다.

찌걱찌걱하며 교차된 여러 선을 벗어나가는 기차는 귀치 아니한 것을 모두 털어버린 듯이 속력을 놓아 선선하게 달려갔다.

외계(外界)는 끊이지 않고 변하며 차소리가 요란하여 정신이 암암한 반대로 여전히 한가한 듯이 낯에 익은 차 안의 안온한 기분에 나는 말 할 수 없는 친함을 느꼈다.

그 여학생은 그때야 산 벤또를 풀어놓고 그 마나님과 함께 입을 옴죽옴죽하며 먹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의 옴죽옴죽 옴죽거리는 입이 퍽도 귀여워서 한참이나 건너다 보고 있다가 마주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마주쳐 고개를 돌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보는 체하고 있으면서도 그가 지금 내 옆얼굴을 바라보려니 생각하니 마음에 썩 기뻤다.

그러자 내가 앉은 편으로 따가운 햇볕이 쪼이고 연기와 석탄가루가 몹시 날려 들어와서 좀 섭섭은 하였으나―그래서 그 자리에다 모자를 벗어놓고─ 저편 그늘지고 연기 들어오지 아니하는 줄로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곳에서 나는 그 여학생을 바로 측면으로 볼 수가 있었다. 얼마 아니하여 차는 또 정거장에 머물렀다.

차가 우뚝 서고 차바퀴가 뚝 그치자 안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가한 얼굴로 조용히 이야기하는 소리가 한꺼번에 고요히 일어났다.

몇 사람은 내리고 몇 사람은 타고 하느라고 잠깐 동안 동요가 생겼으나 그것도 그 차 안의 낯익은 기분과 지질한 공기에 동화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내는 이편 줄로 건너와서 어느 중학생─그는 그와 동행하는 듯 한데 내 앞에서 세넷 의자를 건너 나와 마주 보이게 향하고 앉았었다. ─ 옆으로 가 앉으며 곁눈으로 그 여학생을 흘끔 건너다보았다.

그는 잠깐 앉았다가 다시 일어서 바로 그 뒤에 앉은 어느 시골 신사―역시 그와 동행하는 듯싶은─에게 연필을 빌리고 그 중학생에게서는 종이를 빌어가지고 연필 끝에 침을 묻혀가며 무엇인지를 잠자코 쓰고 있었다.

나는 저 여학생한테 편지를 쓰지? …… 짐작하고 일부러 일어서서 지나가는 체하고 그 쓰는 것을 슬쩍 보았다.

나는 내 스스로 계면쩍은 미소를 하고 도로 내 자리에 앉았다.

그는 7.5 0.5 1.5 0.3 1.80.70.3하고 무슨 가법(加法) 운산을 죽 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는 아마 오면서 쓴 돈을 계산하여 보는 것 같았다. ─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 어쩐지 마음이 약간 앙앙하고 불쾌하였다.

그는 쓰던 종이를 싹싹 비벼 내버리고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고 폭폭 피웠다.

그 중학생도 담배를 피웠다.

그 사내는 그 중학생의 등을 턱 치며 허겁스러운 능라주(綾羅州) 사투리로

“음마, 중학생이 담배 막 묵네요……”라고 누구더러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소리를 높여 말을 하고, 그 중학생을 미소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곁눈으로는 흘금흘금 그 여학생을 건너다보았다.

그 중학생도 그 여학생을 곁눈으로 한번 건너다보고 나서 그 사내를 치어다보며

“체, 중학언 사람 아니당가……”

하고 불복한다는 듯이 입술을 뛰 내밀고 경멸하듯이 미소하였다.

그들은 한참 동안 무엇이라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의 시선은 끊이지 않고 동요하였다.

그 사내는 다시 일어서 그 여학생 옆으로 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곁눈질을 여전히 슬슬 하며 그 중학생에게 “이 근방도 농사가 말이 아니끼……” 하고 그 옆에 가 앉았다.

나는 그의 하는 짓을 모두 수탉이 암탉을 대할 때 그것처럼 보았다.

그 여학생은 물론 가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것을 기대하고 다시 마음의 열락을 ─ 더 나아가서는 직접의 교제까지도 기대하고 그러느니라 나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여학생이 그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는 다르게 나에게는 보였다.

그 여학생은 가지고 온 수박 한 통을 윗봉지를 뚝 따놓고 그 마나님과 둘이서 먹기 시작하였다.

그 수박이야말로 먹음직스러웠다.

늑신 익어 단물이 솟는 듯이 사근사근하여 보이는 새빨간 속에 까만 씨가 홱홱 돌아 소복소복 박힌 것이 그야말로 침이 넘어갈 듯하였다.

사실 나는─ 그다지 먹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 무의식중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멋들어지게 익어 설설 녹는 듯한 붉은 살을 칼로 한 점 한 점 도려내어 입에 넣고는 입을 오물뜨리고 새까만 씨만 쏙쏙 빼놓는 그의 입이야말로 썩 귀엽게 보였다.

그 사내는 벌린 입을 다물 줄도 모르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서 먼저 앉았던 자리로 가더니 차창을 열어놓고 몸을 반이나 밖으로 내어보내고 창가를 불렀다.

질항아리 깨뜨리는 듯한 목쉰 소리가 차소리에 섞여 감감히 들렸다.

어느 틈에 기차는 강경역에 닿았다.

오르고 내리는 속이 요란하였다.

마침 어느 나이 오십은 먹어 보이는 ─ 아무리 보아도 염집 부인 같지는 아니하나 의복은 썩 깨끔하게 입고 금가락지금비녀도 찌른 부인 하나가 올라와 그 마나님 옆에 앉았다. 빈 자리를 두고 굳이 좁게 앉는 것을 보면 말동무를 찾는 듯하였다.

과연 그 부인은 가져온 담뱃대에 수건에 싼 담배를 넣어 불을 붙이면서 어쩐지 영남 사투리로 구수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고 세상이라고 원 맘을 놓고 살 수가 있어야지……”

하고 말대껄을 청하는 듯이 그 마나님을 바라보았다.

권태에 싸인 근방 사람들의 시선은 새로운 자극을 탐내는 듯이 모두 그 부인에게로 모였다.

그 마나님은 “왜요? ……”라고 간단히 말대껄을 하였다. (23행 삭제─원주) 하고 그래도 곁눈으로는 그 여학생을 바라보며 코를 벌씸하였다.

그 마나님은 그의 하는 말에 감동이 되어 그를 장하게 보았던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어디까지 가시요?”

하고 물었다.

그 사내는 성났던 얼굴을 갑자기 고쳐 공순한 빛을 띠고 오히려 황송한 듯이

“예…… 저는 서울까지 갑니다…… 어디까지 가서요?”

하고 은근히 대답하고 묻기까지 하였다.

“나두 서울까지 가오…… 태전서 갈어타지요? ……”

“예…… 대전(그는 대전이라고 하였다)서 갈어타십니다…… 인제 이담이 논산, 연산, 두계, 가수원.”

하고 손가락을 꼽아 세다가

“인제 넷밖에 안 남었읍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의 빛이 완연히 떠올랐었다.

그의 욕망과 기대에 싸인 시선은 더욱 자주 그 여학생에게로 향하였다.

그 여학생도 호기심을 가지고 가끔 그를 바라보았다.

기차가 대전 정거장에 닿을 때가 되어 나는 먼저 앉았던 자리로 가서 짐을 챙겼다.

그 여학생은 나를 또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 나서 그대로 마주 바라보지 못한 것이 후회였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러할 때마다 그와 마주 바라보기가 계면쩍어 할 수 없이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었다.

돌리고 나서 생각하면 ‘마주 얼마든지 바라보았더면?’ 하는 궁금한 생각과 후회가 날 뿐이었었다.

차가 대전 정거장에서 자그마나님에게 부탁을 받은 그 사내는 아까보를 불러주기와 짐 날라주기에 매우 분주한 모양이었었다.

그 마나님 즉 그 여학생의 ─ 급행권도 사주고 경부선에 올라서는 자리도 골라 잡아주는 그를 나는 더욱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그들의 자리를 잡아주고 자기 자리도 그 가까운 곳으로 옮겨갔다.

나는 그네와 딴 찻간에 탔었다.

내 옆에 빈 자리가 많은 것을 나는 그네를 위하여 퍽 안타까왔다.

나는 그네가 탄 찻간을 찾아가서 슬쩍 보았다.

그 사내는 잡아놓은 자기 자리는 비워놓고 그 마나님 옆으로 가까이 가서 친밀스러운 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는 나를 마주 보다가 먼저 시선을 돌렸다.

내 마음에는 그 시선이 퍽 차진 것 같고 도리어 그 사내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따스한 듯하였다.

그 사내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과 얼굴에는 자기의 자랑과 나를 조롱하는 듯한 기운이 보이는 듯하였다.

나는 퍽 섭섭도 하고 노엽기도 하여 맥없이 내 자리로 돌아갔다.

내 자리로 돌아가서 그제야 꿈에서나 깬 듯이 얼음보다 찬 미소를 띠었다.

나는 어슬어슬 저물어가는 저녁해에 남대문정거장의 혼잡한 개찰구를 빠져나와 조용한 구석에 가 서서 그 여학생과 사내의 가는 길을 보았다.

그 여학생은 그 사내보다 먼저 나와 그 마나님과 함께 인력거를 타고 남대문 안으로 향하여 들어갔다.

급히 나오던 그 사내는 인력거 뒤만 한참이나 바라보고 섰다가 그 중학생과 함께 중국 사람 마차를 타고 서대문 전차길 난 곳으로 갔다.

나는 혼자 전차를 타고 용산으로 나아갔다.


그 이튿날 나는 거리에서 그 사내를 또 만났다.

나는 입안에 든 미소로 그에게 전암시(全暗示)를 주었다.

그 역시 빙그레 웃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