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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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편집]

무엇을 사라고 외치는 소리가 멀리서 간간 들리는 것조차 없어지고 인제는 길에 늦은 술꾼들의 혀꼬부라진 소리만 간간 들리는 깊은 밤이었다.

아파트의 밤도 깊었다. 어느 방이라 사람의 깨어 있는 방이 있는 듯도 싶지 않았다. 홀에 있는 커단 시계는 벌써 두 시 반을 보고하였다.

그때였다.

인준의 방 이미 쇠를 잠근 문이 웬 셈인지 핸들이 조금 움직였다. 그러나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핸들이 움직인 뒤에는 문이 조금 열리기 비롯하였다.

인준이가 아까 잠그고 그 열쇠는 그대로 구녕에 꽂혀 있는 문이 열린다는 것은 기괴한 일이었다.

문은 조금씩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이만치까지 열렸다. 그런 뒤에는 더 열리지도 않고 더 닫기지도 않고 잠시를 그대로 지났다.

잠시 지났다. 먼저 권총 부리가 그 열린 문틈으로 들어왔다. 그런 뒤에는 사람의 얼굴이 문틈으로 나타났다.

나타난 사람은 잠시 사면을 살폈다. 밤에는 전등 커버를 씌운 채 끄지 않고 자는 인준의 방이라 방 안은 잘 보였다.

인준이는 침대 위에서 깊이 잠든 모양이었다. 침대의 이부자리가 가운데가 좀 들먹할 뿐 머리까지 묻은 모양으로 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을 엿본 뒤에 문밖에 있던 괴한은 비로소 문 안으로 들어왔다.

김소춘이었다.

소춘이는 들어와서 문을 도로 소리 안 나게 닫았다. 그리고 오른손에 잡았던 권총을 왼손으로 바꾸어 쥐었다. 오른손은 포켓에 꽤 기다란 단도를 꺼내어 쥐었다.

좌우 손에 무기를 잡았다. 자기가 침대까지 가기 전에 인준에게 발각이 되면 할 수 없이 권총을 사용하고 그렇지 않으면 단도를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으면 음향 높은 권총보다는 아무 소리도 없는 단도가 손쉬웠다.

한 걸음 한 걸음 침대 가까이 이른 소춘이는 침대 곁에까지 이르러서 잠시 머리를 기울였다. 머리까지 이불 속에 묻고 있는지라 혹은 서인준의 트릭에 걸리지나 않았나 의혹도 없지 않았다. 이불 아래는 다른 물건을 사람 모양으로 집어넣고 인준이는 어디 다른 데 숨어서 자기를 엿보지나 않나 하는 의심이 문득 났다.

그때였다. 이불 아래 뭉치가 약간 움직였다. 이불이 조금 벗겨졌다. 특징있는 넓은 서인준 박사의 이마가 이불 밑에서 나타났다.

한순간 소춘이는 몸을 흠칫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인준이의 잠꼬대에 지나지 못하였다. 인준이는 그렇듯 팔을 움직여서 머리를 조금 이불 밖으로 내어놓을 뿐 그냥 잠에서는 깨이지 않았다.

한순간 놀라서 뒤로 물러섰던 소춘이는 다시 소리 없이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가장 편리한 자리를 잡아 가지고 자기의 몸을 가장 편리하도록 세워가지고 드디어 일을 시작하였다.

자기며 몇 이 LC당의 내막을 너무도 정확이 아는 인준이를 죽여 없이하여 자기의 안전과 당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소춘이의 손(단도를 잡은)은 높이 들리었다. 그 높이 들리었던 손은 잠시 겨냥을 한 뒤에 인준이의 심장을 향하여 번개같이 내려왔다.

그러나 그 단도는 심장까지 찌르지 못하였다. 심장 위를 덮은 이불 있는데쯤에서 소춘이의 두 팔목은 다른 손에게 잡혔다.

인준이의 손이 어느덧 소춘의 손을 잡은 것이었다.

“김소춘 씨.”

얼굴을 덮었던 이불을 벗으며 인준이는 고요히 찾았다.

소춘이는 제 심장이 딱 멎는 듯하였다. 그동안 인준이는 소춘이의 손을 잡은 채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소춘이의 손목을 잡은 인준이의 압력은 차차 더하여 갔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으로 닦달한 놀라운 완력가. 서인준의 손에 잡힌 소춘이의 손목은 차차 검붉어 갔다. 드디어 잡았던 권총과 단도가 툭 이불 위에 내려졌다.

“김소춘 씨, 남자가 자기의 약속을 스스로 어기시오?”

인준이는 고요히 물었다.

김소춘이도 제이급 당원─ 잠시는 경악에 띠어 옴짝을 못했지만 비로소 여기서 대답하였다─.

“나는 약속을 어긴 일이 없소이다.”

“없어? 없으면 이게 무슨 일이오?”

“나는 윤 백작의 생명은 해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했지만 서인준 씨의 생명까지 해하지 않는다는 약속은 않았소이다.”

딴은 그럴듯하였다. 인준이도 그만 고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준이는 소춘이의 손에서 내려진 권총이며 단도를 모두 거두어 치우고 침대에 내려 걸터앉았다.

“김소춘 씨.”

“?”

“김소춘 씨가 어제며 오늘이며 이틀을 연해서 내 생명을 도모하러 오는 이상에는 나도 자위지책으로 소춘 씨를 경찰에 내맡기리까.”

소춘이는 대답치 않았다. 잠시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소춘 씨 생각으로는 소춘 씨를 내맡겼다가는 백작 댁내가 불안하니까 못하리라고 믿으시겠지요? 오해─ 오해─ 큰 오해외다. LC당의 간부는 죄다 내 손에 들었소이다.”

소춘이는 의아하다는 듯이 눈을 비스듬히 인준이를 보았다.

“이것도 거짓말 같지요. 그럼 내 조금 더 말하리까. 매켄지 대좌 매켄지 부인 이 사람의 처소도 알았으며 이미 내가 쓸 수단을 강구했소이다. 한 시간 이내로 체포케 할 수가 있소이다.”

소춘이의 얼굴에는 차차 공포의 표정이 나타났다. 매켄지 씨의 주소를 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로되 매켄지 씨를 LC당의 간부로 간파한 인준이의 눈에 소춘이는 놀랐다.

“뿐만 아니라 소춘 씨도 어젯밤에 당하셨거니와 내가 부리는 사람의 수효도 적지 않아, 그 사람 전부를 내세워서 지금 매켄지 씨 집에 출입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중이며 그 주소도 탐색중이니깐 내일 오후면 다 끝날 줄 믿습니다. LC당은 일망타진이외다. 그 가운데서 단 한 사람 김소춘 씨는 내가 이미 약속한 바가 있어서 경찰의 눈에서 감추어 드리려고 운동중인데 소춘 씨가 도리어 내게 이런 위해를 가하려니 웬 셈이외까.”

소춘이의 입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소춘 씨, 잠깐 이리로 오십쇼.”

인준이는 소춘이의 손을 잡고 끌어 가지고 행길로 향한 들창 앞에까지 이르렀다. 거기서 인준이는 회중전등을 꺼내어 길로 향하여 무슨 암호를 하였다.

잠시 기다렸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김소춘 씨, 내가 시방 한 암호는 밖에 기다리고 있는 제사급 당원에게 이리로 오라는 명령을 뜻하는 것이지요? 그건 소춘 씨가 더 잘 아시리다. 그런데 이 군호가 있으면 당연히 달려와야 할 제사급 당원이 왜 안 옵니까.”

소춘이는 그래도 대답치 않았다. 그러나 불안한 기분이 얼굴에 더 차차 농후하여 갔다.

“내 말을 들으시오. 밖에서 소춘 씨를 보호하던 제사급 당원은 이필호 형사가 붙들어 갔소이다. 내가 부탁했소이다. 소춘 씨는 인제는 내 손 속에 든 사람, 죽이든 살리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외다.”

이렇게 말하며 인준이는 소춘이를 끌고 도로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돌아와서 인준이는 다시 말하였다.

“김소춘 씨, 이 뜻을 이해하시겠읍니까? 이필호는 오늘 밤 김소춘 씨가 이곳에 오는 줄을 내가 알으켜 주어서 압니다. 그리고 내 지휘대로 밖에 있다가 제사급 당원을 잡아갔읍니다. 그러면서도 김소춘 씨를 그냥 버려 둔 의의를 아시겠읍니까. 경찰에서 눈이 벌겋게 돼서 찾아 내려는 완쇠 살해 범인을 이필호는 번히 알면서도 내버려 두었읍니다. 이 의의를 아시겠읍니까?”

“….”

“문제의 촛점이 거기 있읍니다. 나는 이필호 군과 약속한 일이 있읍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대상품을 제공할 터이니 소춘 씨를 눈감아 달라고 부탁을 한 게외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자면 인제 삼사 일 이내로 LC당의 간부급 이하 당원 전부의 거소를 알으켜 줄 테니 그 대신 소춘 씨뿐은 눈감아 달라고 말씀이외다. 왜 그렇게까지 소춘 씨를 보호해 주느냐는 말씀이지요? 다른 것이 아니라 일전 소춘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외다.”

소춘이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매켄지를 경찰에게 체포한다 하더라도 LC당의 간부라는 증거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외다.”

“있읍니다. 첫째 매켄지 씨의 있는 집에서 사용하는 타이프라이터의 글자의 특징이 그 새 내게 몇 번 보낸 협박장과 같소이다. 또 한가지 ×× × 군 (십칠호의 본명)이 증언을 할 것이외다. 세째 매켄지 부인인 미스 영이 증거물을 제공할 것이외다.”

소춘이는 눈을번쩍 들었다. 경악의 표정이 역연하였다.

“매켄지 부인이?”

“네. 어젯밤 소춘 씨가 이곳에 오셨을 적에 당연히 이 침대에서 잠자고 있을 줄 믿었던 내가 없었던 것이 웬일인지 아십니까? 매켄지 부인이 내 생명을 보호하고자 소춘 씨보다 먼저 와서 나를 데려 낸 것이외다. 나는 매켄지 부인으로 하여금 매켄지 씨가 LC당의 간부라는 증거를 제공케 할 만한 자신이 있읍니다.”

“그러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

“아니 증거를 내 손에 제공케 하고는 경찰의 힘이 미치기 전에 조선을 탈출케 할 예산이외다.”

너무도 자신 있는 말이었다. 소춘이는 먹먹하여 버렸다.

“김소춘 씨.”

“?”

“소춘 씨도 LC당과의 인연을 끊으시오.”

“?”

“끊은 뒤에 취할 길은 차차 강구하려니와 좌우간 먼저 끊으시오. 만약 그냥 끊지 않았다가는 나는 이전의 소춘 씨와의 약속을 어기게 될는지도 알 수 없소이다. 경찰의 손에서 보호해 드리마 했지만 소춘 씨가 그냥 LC당에 관계하는 동안은 내 생명도 위험하니까 혹은 미안하지만 소춘 씨를 완쇠 살해 범인으로 경찰에게 내어줄는지도 알 수 없소이다. 어떠세요? 잘 생각해 보십쇼.”

“….”

“자 대답을 해보세요.”

소춘이는 비로소 대답하였다.

“서인준 씨, 이 문제는 내게는 적지 않은 문제니까 즉답을 할 수가 없소이다.”

“그럼 언제쯤?”

“글쎄올시다. 내일이고 모레고….”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인준이는 두어 걸음 더 가서 담벽을 몇 번 두드렸다. 곁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십칠호를 부르는 것이었다.

십칠호가 이 방에 나타났다. 소춘이와 십칠호는 마주쳤다. 이전같이 LC당에 있을 때에 제이급과 삼급에 달려 있던 두 당원

“오래간만이외다.”

막연히 서 있는 소춘이에게 이전 상급 당원으로서 빙긋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 김소춘 씨를 좀 보호해 주시오.”

인준이는 십칠호에게 당부하였다. 말로는 보호하라 하나 보호가 아니라 감금하고 감시하라는 소춘이를 데리고 곁방으로 물러 갔다.

“자 한잠을 더 잘까.”

내일은 숱한 일을 치러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 잠을 자야겠다.

자리에 들어가서 방금 잠이 들려 할 때에 전화의 벨이 울렸다.

이 깊은 밤에 오는 전화는 필시 자기에게 올 것이다. 인준이는 뛰어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서 선생님.”

미스 영이었다.

“네, 인준이올시다.”

“아이고─.”

오히려 안심이라 할 만한 탄성─ 인준이는 알았다. 인제야 겨우 소춘이가 인준이를 암살하러 간 것 알고 너무 놀라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 서인준이는 무사한 것이었다.

“미스 영, 밤중에 왜 전화를 거셨읍니까? 또 산보를 가시렵니까?”

“서 선생님, 오늘 아침 당부는 안 잊으셨지요?”

혼자서 자지 말란 당부를 뜻함이었다.

“네. 친구 다섯 사람이 내 침대 머리에 앉아 있읍니다.”

“그걸 여쭈어 보려고 전화를 걸었읍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네 안녕히 주무세요. 아까도 전화했거니와 내일 오후 세시쯤 어디서 잠깐 뵙게 되면 좋겠읍니다.”

“그때 전화를 걸어 주세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인준이는 미스 영의 전화를 받고 비로소 한 가지 잊은 것을 알았다. 인준이는 곧 십칠호의 방으로 갔다.

“김소춘 씨.”

“네?”

“아까의 회답은 일이 일 안으로 듣겠거니와 그런데 미스터 매켄지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해두는 것은 내나 김소춘 씨나 다 필요한 일이니까 김소춘 씨 자신이 매켄지 씨에게 전화를 거십쇼. 서인준이는 아파트에서 자지를 않아서 또 헛길을 걸었노라고.”

LC당을 탈당을 할지 어쩔지 아직 채 자기의 거취를 작정치 못한 김소춘에게 있어서는 이런 전화는 좀 어려운 모양이었다. 소춘이는 주저하였다.

“주저할 것이 없소이다. 만약 소춘 씨가 전화를 안할 것 같으면 내가 대신으로 전화를 하리까. 나는 서인준인데 김소춘 씨를 설득을 시켜서 LC당을 탈당하도록 했으니 인젠 소춘 씨에게는 아무 기대도 말라고….”

음성은 온화하나마 협박이었다.

소춘이는 드디어 승낙하였다. 안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안하고 서인준이가 그 전화를 해놓으면 도리어 자기의 신변이 위험하므로….

메켄지 씨에게 전화를 다 할 동안 인준이는 꼭 붙어서서 감시하였다.

전화를 다한 소춘이를 다시 십칠호에게 맡기고 제 방으로 돌아온 인준이는 비로소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오늘 밤은 다시는 LC당에서 자기에게는 사람이 오지 않을 것이다.

잠시 누워서 뒹군 뒤에 인준이는 피곤한 잠에 빠졌다.

곁방에서는 십칠호와 김소춘이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소춘이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깊이 머리를 가슴에 묻고서….

이튿날─.

봄다운 기분이 유난히 나타나는 날이었다.

이 날 잠자리에서 나온 때는 인준이도 기분이 매우 상쾌하였다.

“오늘이다.”

사건의 전 복선을 오늘 안으로 꾸며 놓아야겠다. 사건은 종말을 못한다 할지라도 그 복선뿐은 오늘 안으로 지어 놓아야겠다.

오늘 비교적 복잡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또한 비교적 단순한 프로그램이었다.

돌아보건대 중대한 사명을 수행키 위하여 벌써 일을 시작한 지 몇 해─ 여러 당원을 잠입시켜서 일을 진행시킨 지도 벌써 일 년─ 자기 몸소 최후의 결말을 내기 위하여 들어온 지도 반 삭─ 그간 뚱딴지 LC당이라는 문제가 생겨서 어떻게 될까 하고 근심도 하였거니와 인제 LC당이 도리어 자기의 이용물이 되었다. LC당을 이용해 가지고 자기의 목적을 수행하고 경찰의 눈을 죄 LC당의 위에 부어 놓게 한 뒤에 자기네는 살짝 빠져서 돌아갈 그 계획도 오늘로써 복선은 끝이 날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 인준의 마음은 명랑하였다. 처음에 방해자로 알았던 것이 지금 도리어 보조자가 된 것도 희한한 일이려니와 그 방해자 LC당 때문에 경찰의 주의력이 거기 가하여져서 자기네의 행동을 감시하는 적극적 수단을 취하지 않게 된 것이 더 기이한 일이었다.

십칠호의 방에 가 보매 십칠호와 김소춘이는 꼭 마주 앉은 채로 딸깍 밤을 새워서 눈이 모두 벌겋게 되어 있었다.

“밤을 세웠구료.”

인준이가 이렇게 물으매 소춘이도 고소하고 십칠호도 고소하였다.

“자, 소춘 씨 오늘 저녁까지로 결심을 해주세요. 내가 할 일은 오늘 저녁으로 복선은 끝이 납니다. 그 뒤에는 LC당의 전부를 경찰에게 넘겨준다는 과정이 남이 있을 뿐이외다. 그러니까 소춘 씨도 오늘 안으로 거취를 작정해 주셔야겠소이다.”

소춘이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연화한 것이 분명하였다. 인준이는 이번은 십칠호에게 말하였다─.

“내 인제 강습소로 가서 다른 동무를 보낼 테니 김소춘 씨 보호는 그들에게 맡기고 한잠을 주무시오. 또 소춘 씨도 주무셔야지.”

“오늘 그 밖에 다른 일은 없읍니까?”

십칠호의 물음이었다.

“오늘 많소이다. LC당원이라 지목되는 사람들의 거소가 금명간 죄 판명이 될 터인데 그때는 ×× 씨가 일일이 감정을 하셔야겠소이다.”

“그 밖에는?”

“그 밖에는 수시로 통지해 드릴 테니 내 통지에 의지해서 일을 하십쇼. 좌우간 내가 외출하라기 전까지는 ×× 씨는 이 방에 꾹 박혀 있어야지─ 나다녔다는 위험하리다. 이 근처에는 LC당의 제삼사급 당원들이 우글우글할테니까 ×× 씨의 얼굴이 보였다가는 재미는 없을걸요….”

“나다니지 않지요.”

이만한 당부를 하고 인준이는 자기 방으로 와서 외출의를 바꾸어 입고 아파트를 나섰다.

보이는 인물이 모두 LC당원인 듯싶었다.

좋은 봄날─ 이 좋은 봄날에 교외에 산책도 못하고 바삐 돌아다녀야 할 자기의 신세를 스스로 고소하면서 인준이는 피아노 강습소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생각이 나서 이필호에게 전화를 걸어 보매 어젯밤 아파트 앞에서 제사급 LC당원 하나를 체포하였다는 것에 예를 하고 아울러 오늘 아침경찰서장에게 LC당으로부터 경고가 이르렀다는 점을 알았다.

“즉시 석방치 않으면 경찰서를 습격하겠답디다.”

필호는 전화기를 통하여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강습소에까지 인준이가 가매 어제 인준이가 명하여 두었던 일은 착착 실행되고 있었다.

그 새 매켄지 대좌를 찾은 사람들의 이름 성명과 주소가 모두 조사되어 있었다.

“김소춘이를 도로 잡았소.”

인준이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매 안 군은 놀랐다.

“어디서요?”

“어젯밤 또 왔읍디다그려. 한 손에는 권총 한 손에는 단도를 들고….”

“그래─.”

“기다리고 있던 터이라 무사히 잡았지요. 지금 십칠호가 상경해서 아파트내 곁방서 소춘이를 지키고 있으니까 누구 한 사람 보내서 조력토록 하시오. 지키고 지키우느라고 두 사람 다 밤잠을 못 잤으니까 다 좀 자게 하고 잘 지킬 만한 사람을 선택해서 보내시오.”

“오늘은?”

“오늘은 일이 많소이다. 어제 매켄지 씨 집을 출입한 사람들을 그냥 감시도 해야겠고 새로 출입하는 사람들도 그냥 알아 내야겠고 전원을 다 동원해야 할까 보이다.”

“그 밖에는?”

“그 밖에도 일이 많지요. 우리는 모두 수삼 일 내로 조선을 철퇴를 해야겠으니까 그 준비도 차차 해야겠고!”

“그럼 윤 백작댁 일은?”

“그게 끝이 나야지요. 그것을 수삼 일 내로 끝을 막으려는 예산이외다.”

안 군은 눈을 들어서 인준이를 쳐다보았다. 무론 자기는 인준이의 지휘에 의지해서 일을 할 사람이니 똑똑히 알 길은 없으나 사건은 결말을 지어 가는 듯싶었다.

“안 공.”

인준이가 적은 소리로 안 군을 찾았다.

“네?”

“우리가 돌아가는 데 대해서 경찰 측에서도 간섭을 안하게 양해가 될 모양이외다. 물론 형식은 탈출이지만 십중팔구는 무사히 돌아갈 듯싶소이다.”

사건을 어떻게 꾸미어 나아가는지는 모르지만 인준이로서 이만치 자신있게 말하는 이상에는 그럴 만한 근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인준이의 말로서 옳다 할진대 이런 파천황의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훔쳐 낼 것은 훔쳐 내고 그 위에 탈출에 대해서도 간섭을 안한다 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당원에게 맡기지 않고 서인준 박사 자기가 몸소 일을 꾸미러 들어온 이상 얼마만치 손쉽게 되리라고는 믿었지만 인준이의 말은 너무도 의외였다.

“그럼 수삼 일 내로 탈출한다는 형식으로 공공히 상해로 돌아가게 되겠읍니까?

“네.”

“할 일도 다 하고?”

“네. 그러기 위해서 양 공은 어젯저녁 인천으로 내려가지 않았읍니까? 배를 한 척 구해서 언제든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게 하도록 준비를 하기 위하여….”

“선생님!”

“개선이외다. 봄바다를 타고 상해를 갈 때의 생각을 해보시오. 개선장군이외다.

인준이는 거기서 조반을 먹었다.

아파트에 있는 십칠호와 김소춘이에게 안면을 주기 위해서 든든한 당원 한 사람이 아파트로 갔다.

아직 활동중인 당원─ 활동 후에 휴식하는 당원─ 십여 명의 당원의 운명을 걸머진 인준이는 조반을 끝내기가 바쁘게 일을 진행시키기 위하여 강습소를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공, 피아노 소리가 간간 내도록 하십시오.”

뒷일에 대하여 몇 가지 안 군에게 부탁을 하였다. 그런 뒤에 백작 노부인을 만나 보기 위해서 백작 댁으로 향하여 떠났다.

인준이는 백작 댁까지 이르렀다.

여전히 어마어마한 경계였다. 대문을 들어서려 할 때에 경관이 먼저 인준이를 막았다.

“어디 가시오?”

“윤찬두 씨를 좀 만나러 왔읍니다.”

“명함을 한 장 주시오.”

인준이는 명함을 꺼내어 주었다.

명함은 대문을 지키던 경관의 손에서 하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인은 그 명함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던 하인이 도로 나와서 경관에게 무슨 말을 하니까 비로소 입문의 허락이 났다.

찬두와의 회견은 간단하였다. 몇 마디의 인사가 사괴어졌다. 그런 뒤에 인준이는 용건을 꺼내었다─.

“자당께 잠깐 뵈올 수가 없읍니까?”

찬두는 의외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님은 왜 만나 보시렵니까?”

“저….”

인준이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저께 밤 김소춘 씨가 윤 선생께 왔다가 돌아가는 것을 제가 미리 사람을 지켜 세워 두었다가 저 있는 곳까지 오시리라고 해서 만나 본 일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때 김소춘과와 말해 본 결과 오늘 자당께 잠깐 뵈오러 왔읍니다.”

“?”

“윤 선생께는 말씀을 드리기 힘든 일─ 자당께 뵈옵고 몇 가지 의논할 일이 있읍니다.”

찬두는 잠시 생각하였다. 생각한 뒤에 대답하였다─.

“이 집에는 아버님께서 생존해 계시다 하나 제가 당주올시다. 제게는 말씀키 어렵고 어머님께만 말씀하시겠다는 일이 좀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아니올시다. 윤 선생께 비밀히 하자는 것이 아니라 윤 선생께서 아시면 도리어 불쾌히 여기시지 않을까 해서 자당만 잠깐 만나 뵈옵자는 게올시다.”

“몇 분 동안이나?”

“이십 분간이면 넉넉할 듯합니다.”

찬두는 또 생각하였다.

김소춘이는 자기의 어머니의 비밀한 아들이라 혹은 비밀히 전할 말이라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서인준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뜻은?

“윤 선생, 오해하지 마십쇼. 지금 김소춘 씨는 제가 보호중이올시다. 완쇠 살해 범인으로 경찰에서 눈이 벌겋게 되어서 행방을 찾는 인물이올시다. 자유로 나다닐 수 없는 인물이올시다. 김소춘 씨 직접 자당께 뵈옵고 말씀하고 싶기는 하겠지만 붙들리기만 하는 날이면 김소춘 씨도 김소춘 씨려니와 이 댁 가문의 명예에도 관계되는 일─ 그래서 제가 보호해두고 그 전갈할 말씀을 대신 가지고 왔읍니다.”

드디어─ 찬두는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그러시다면 만나 보시기는 하십쇼. 그렇지만 연로하신 어머님이라 흥분되실 말씀 같은 것은 좀 삼가 주십시오.”

“그거야 윤 선생이 당부하지 않으실지라도….”

“그러면 잠깐 들어가 만나 뵈세요.”

찬두는 하인을 불렀다. 그리고 그 하인에게 내당에 들어가서 어머님께 손님이 가리라는 것을 예통케 하였다. 그 하인이 돌아나온 뒤에 찬두는 인준이에게 들어가 보라고 하였다.

인준이는 하인을 따라서 내당으로 들어갔다. 이 노부인과의 회견에서 자기의 사명을 청산하려는 것이었다.

내당에 들어서면서 인준이는 보았다. 자기의 누님이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눈을 자기에게 던지는 것을… 서로 한 마디의 인사라도 사괴고 싶은 마음을 눌러 버리고 인준이는 하인의 인도로써 큰방으로 노부인께 뵈러 들어갔다.

“잠깐 잡인을 물리쳐 주실 수가 없읍니까?”

인준이가 노부인께 인사를 하고 이렇게 말할 때에 노부인은 의아하다는 듯이 이 청년을 보았다. 인준이가 뒤를 받았다.

“며칠 전에도 왔던 사람이올시다.”

노부인은 비로소 알아보았다. 그리고 하인들을 내보냈다.

하인들이 나가기를 기다려 서인준이는 버쩍 아랫목으로 다가 앉으며 처음 던진말이 이것이었다─.

“이 댁에 적지 않은 금액의 공채가 있는데 그게 어디 있읍니까?”

노부인은 깜짝 놀라는 모양이었다. 당황히 인준이를 바라보았다.

“부인, 지금 LC당이라는 무서운 강도당이 이 댁 공채를 엿보고 있읍니다. 그것을 내주지 않으면 불길한 일이 생겨날 듯싶습니다. 김소춘 씨도 LC당의 한 사람이올시다. 김소춘 씨가 댁에 대한 책임을 맡아 가지고 조선에 들어 왔읍니다. 그런데 부인도 아시다시피 김소춘이는 이 댁에서 완쇠를 죽였읍니다. 만약 김소춘이가 나다니다가는 경찰에 잡힐 근심이 있읍니다. 김소춘 씨를 구원키 위해서 제가 김소춘 씨를 아무도 모를 곳에 감추어 두었읍니다. 이제 이대로 이틀만 지나다가는 LC당에서는 김소춘 씨를 기다리다가 하릴 없이 직접으로 최후 수단을 쓰기가 쉽습니다. 부인께서 김소춘 씨를 구원해 내시고 겸해서 이 댁을 구원하시려면 자진해서 LC당에게 그 공채를 줄 밖에는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부인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무엇이라 하셨는지요.”

여기서 인준이는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떼어서 똑똑히 설명하여 주었다.

자기는 그 새 김소춘이를 만나서 노백작에게 가해치 않기로 맹서를 받은 것, 그 대신 김소춘이가 경찰에 잡히지 않도록 보호해 주기를 약속하고 지금 보호해 주는 중인 것.

만약 LC당에서 김소춘이를 기다리다가 김소춘이가 종시 행방불명이면 필시 직접 행동을 하게 되면 이 집에서는 여러 사람의 생명이 위험한 것.

그러니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 공채를 얼른 LC당에게 내어주는 것이 상책인 것.

이런 점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노부인은 다 들었다. 들은 뒤에 머리를 가로 저었다.

“이런 일은 찬두가 알 일이지 나는 모릅니다.”

“부인 저도 그 점은 모르는 바가 아니올시다. 그렇지만 찬두 씨는 아직 혈기 있는 청년이라 이 말에 승복치 않을 것이올시다. 끝까지 해본다고 할 것이올시다. 그러니까 부인께서 찬두 씨를 불러서 그렇게 하도록 명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노부인은 쉽게 승낙치 않았다.

인준이는 손쉽게 노부인이 승낙하리라고 믿었던 바가 아니었다. 최후에 반드시 자기가 승리를 할 별다른 계획을 품고 왔던 바이었다.

“부인.”

“….”

“부인께서 명하시면 찬두 씨는 거역치 않을 일이올시다. 댁내를 위해서 여러 생명을 위해서 부인께서 제 말씀 대로 하셔야 될 줄 믿습니다.”

“인제 늙은 내가 그런 일에 어떻게 참견을 하겠소?”

이것이 노부인의 대답이었다. 인준이가 곧 받았다.

“댁을 위해서 젊은 찬두 씨의 객기를 꺾으실 분은 부인 밖에는 안 계십니다.”

“나는 그런 말은 하기 싫소.”

노부인은 드디어 내어던졌다.

인준이는 단지 눈을 두어 번 껌벅이었다. 눈을 몇 번 뜻없이 껌벅거린 뒤에 인준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부인─.”

“?”

“LC당의 범죄를 방지해야겠읍니다. 방지할 유일의 방책이 그것이올시다. 지금 저는 LC당 사람들이 있는 곳을 조사하는 중인데 수삼 일 안으로는 다 알아지기는 하겠읍니다. 그것을 다 알기만 하면 경찰에 고발해서 체포케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알아 내기 전에 LC당에서 손을 먼저 쓰면 어쩝니까? 부인! 찬두 씨에게 권고를 하십쇼.”

“나는 그런 일에는 아직껏 참견해 본 적도 없거니와 더구나 대감 아직 생존해 계신데 여편네가 무어라고 이렇다 저렇다 하겠소?”

그냥 그 일에는 관계치 않겠노라는 노부인에게 인준이는 드디어 최후의 수단으로 협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부인께서 그 일에 간섭치 않으신다면 저도 이 일에 간섭치 않겠읍니다. 제가 보호중인 김소춘 씨를 완쇠 살해의 진범인으로 경찰 당국에 고발을 하겠읍니다.

노부인은 놀라는 눈치가 분명하였다. 이것을 보면서 인준이는 냉연히 제 말을 계속하였다.

“그 위에 부인까지도 공범으로 고발을 하겠읍니다.”

“그게─.”

“웬말이냐는 말씀이지요? 완쇠를 살해한 흉기가 저─.”

인준이는 손을 들어서 머리맡에 놓인 문갑을 가리켰다─.

“서랍 속에 들어 있던 송곳이 아닙니까. 그 송곳을 저는 가지고 있읍니다. 그 송곳은 김소춘이가 자유로 꺼낼 수 없는 물건이올시다. 뿐더러 그날 밤 그 시간쯤 김소춘이가 부인 방에 드나들었으며 의논을 많이 했다는 증인도 찾아낼 수가 있읍니다.”

이 최후의 거탄은 분명히 효력이 있었다. 냉담한 태도로 인준이가 이 말을 하는 동안 노부인은 허든 자기의 몸의 중심을 못 잡는 모양으로 양손으로 방바닥을 짚었다.

“제게 직접 관계가 없는 일에 왜 이다지도 간섭을 하느냐고 말씀하실는지 모르겠읍니다마는 인류 사회에 일어나려는 죄악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막을 의리와 의무가 있읍니다. 모르면여니와 이미 안 이상에는 버려둘 수가 없읍니다.”

“……….”

“자 그렇게까지 말씀드려도 부인께서는 그냥 이 일에는 간섭을 안하시겠노라고 하시겠읍니까?”

그러나 부인에게서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찬두 씨를 내당으로 들어오랄까요?”

“……….”

“들어오면 부인께서 그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

“그 공채를 내준다 하더라도 이삼 일 내로 LC당 관계자는 전부 경찰 당국에 체포될 터이니까 체포되면 공채는 다시 돌아올 것이올시다.”

노부인은 그냥 대답 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노부인의 사지가 떨리는 것은 남으로도 볼 수가 있었다.

“부인 제가 하인을 부를 테니 부인께서 그 하인에게 찬두 씨를 내당으로 좀 부르십시오.”

그리고 인준이는 큰 소리로 이리 오너라고 하인을 불렀다.

하인이 이르렀다.

“자 말씀하세요.”

인제는 하릴이 없었다. 노부인은 하인에게 양관에 나가서 아들을 불러오기를 명하였다.

“일은 순서대로 해야 하는 게올시다. 공채는 임시 준다 하더라도 도로 돌아올 줄 믿습니다. 찬두 씨가 들어오시거든 명백히 부인의 뜻을 말씀하십시오. 주저하시든가 해서는 안 됩니다.”

인준이는 다짐까지 받아 놓았다.

공채 전부를 LC당에게 내어주라는 어머니의 명령을 찬두는 경악의 마음으로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준이가 곁에 있다가 설명하였다.

“윤 선생, 먼젓번 뵈올 적에도 말씀드렸거니와 가문의 명예와 위험을 막기 위해서 감행하십쇼. 윤 선생도 부인의 혈육이시지만 김소춘 씨도 혈육이십니다. 어머님의 마음 그 뜻을 아십쇼.”

“그러면 김소춘 씨는?”

“네 제가 절대로 책임지고 보호하겠읍니다. 사정이 사정이요, 신분이 신분인만치 당분간은 조선에 머물러 계시지는 못하지만 김소춘 씨의 신상은 제가 절대로 책임지고 보호하리다.”

인준이는 여기서 처음으로 자기의 본 명함을 찬두에게 주었다. 그 명함은 인준 자기가 속해 있는 단체의 이름이며 그 단체에서의 인준의 지위까지 박힌 명함이었다.

“책임 없는 말을 할 사람이 아니올시다. 아직껏 찬두 씨는 저를 모르시겠지만 제가 속해 있는 단체에 대해서는 짐작도 하실 줄 믿습니다.”

“서 박사 알았읍니다. 그러면 김소춘 씨가 있는 이상에는 어떤 방식으로 LC당과 연락을 해서 그 공채를 주리까?”

“제가 지금 조사중입니다. 당 간부의 주소는 알았읍니다. 그리고 제가 통지를 하여드리지요. 위험이 이르기 전에 삭혀 버릴 수만 있다면 그 방책을 취하는 것이 제일 양책이겠지요. 조선 들어와 있는 LC당원의 주소가 전부 판명만 되면 즉시 고발을 하겠읍니다. 이미 판명된 LC당원에게는 제가 엄중한 감시를 붓고 있읍니다. 전부의 주소가 판명되기 전에 조선을 탈출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 자부터 미리 체포되도록 하겠읍니다. 지금 LC당 간부의 주소는 알아 내고도 아직 경찰 당국에 고발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당원까지 전부 일망타진케 할 계획이니까 제 생각 같아서는 찬두 씨가 공채를 내어주신다 하더라도 수일간 빌려 주시는 것뿐이지 도로 그대로 찬두 씨에게로 돌아올 줄 압니다.”

“조선 들어온 LC당원이 총계 몇 명이나 됩니까?”

“주소까지 안 것이 이미 열세 명, 경찰에 잡힌 것이 세 명, 그 밖에는 지금 조사중이올시다.”

“모두 그게 우리 집 공채를 위해서 들어왔읍니까?”

“그런 모양이올시다.”

LC당원뿐이 아니었다. 인준이 자기의 지휘 아래 움직이는 동지들도 모두 그 공채를 위하여 들어온 것이었다.‘그런 모양이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스스로 우스웠다.

노부인이 가운데 나서기 때문에 공채를 LC당에게 넘겨준다는 크나큰 일은 비교적 쉽게 해결되었다.

“좌우간 제가 가운데 나서서 일이 되도록 공채는 안 주도록 천연시킬 수 있을 만치 밀어나아가 보다가 할 수 없으면 주기로 하십시다. 준대야 십중팔구는 임시로 빌리는 것에 지나지 못할 것이요 안 주었다가는 자칫하면 큰 일이 생길 터이니까….”

“그럼 서 박사께 잘 부탁합니다.”

이리하여 공채 문제는 인준이의 지휘대로 하기로 작정을 하고 인준이와 찬두는 내당에서 나왔다.

양관 앞에 이르러서 찬두는 인준이를 잠깐 들어와 쉬어 가라고 권하였지만 오늘 일이 매우 바쁜 인준이는 그것을 사절하고 백작 집을 나섰다.

인제는 공채를 은닉 장소에서 끌어 내기까지는 하였다. 인제 남은 과정은 그 끌어 낸 공채를 제 손 속에 넣는다는 일과 넣은 뒤에 무사히 상해로 돌아간다는 일이다.

인준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백작 집을 나서서 봄날 한가로운 길을 담배를 피워 물고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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