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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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집]

청량리 어떤 드라이브 길─ 한 대의 자동차가 먼저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자동차인 듯하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 안에는 벌써 손님이 타고 있었다.

자동차 손님은 연방 시계만 꺼내어 보았다. 한 분에 서너 번씩 보았다. 세 시가 지나서 두 분 세 분 또 한대의 자동차가 저편에서 달려온다. 먼저 자동차를 주의하여 보았다. 차는 서로 가까이 이르렀다. 후에 이른 차 안에는 양장한 여인이 타고 있었다.

시계만 보고 있던 손님이 그 자동차를 향하여 손쳤다. 새 자동차는 기다리던 자동차 앞에 이르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인이 자동차에서 내렸다.

“이삼 분 늦었읍니다. 길을 수선하느라고 길이 나빠서….”

가벼운 말씨로 변명은 하나 얼굴에는 어떤 불안이 나돋쳐 있었다.

“이 차를 타십쇼. 미스 영.”

“네.”

여인은 미스 영 사내는 서인준─ 누가 보든 사랑하는 남녀의 드라이브이었다.

“미스 영, 며칠 전에 미스 영이 산보를 청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내가 산보를 청합니다.”

“……….”

“좀 먼 데까지 갑니다.”

“어디까지 갑니까.”

“어디까지라는 특별한 목적은 없읍니다. 가다가 내리고 싶으면 내리고 그냥 가고 싶으면 가고… 미스 영과 좀 말씀을 해볼 일이 있어서….”

“……….”

대답은 없었지만 승낙하는 뜻은 나타내었다. 그러나 무척이도 무엇이 마음에 꺼리는 듯하였다.

“선생님, 어디로 가실까요?”

자동차 운전수의 물음─ 운전수라 하나 인준이의 동지의 한 사람이었다.

“× 공 마음대로 남의 의심을 사지 않을 길로─ 평탄한 길로─ 그다지 번화하지 않은 길로─ 천천히 어디까지든….”

“네….”

자동차는 그 자리를 떠났다. 승객에게서 방향의 지정을 받지 못한 자동차는 운전수의 임의대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벌써 봄기운이 꽤 농후히 내돋친 들의 길이었다. 길가의 버드나무들도 벌써 윤기가 돌았다. 벚꽃은 봉오리가 꽤 커서 인제 며칠만 지나면 그 빛을 자랑할 듯하였다.

“선생님, 무슨 뜻이오니까?”

미스 영의 질문─

인준이는 머리를 숙였다. 발로써 몇 번 장단을 맞춰보았다. 그런 뒤에 대답하였다.

“미스 영, 내가 인제 생각하여서 물어 볼 일이 있는데 내가 묻기 전까지는 미스 영은 잠자코 계세요. 며칠 전의 인천 가도에서 미스영이 내게 당부하던 일을 오늘 여기서 내가 미스 영께 당부합니다. 아직은 아무 말도 묻지마셔요.”

영의 얼굴은 창백하여졌다. 그러나 인준이의 얼굴도 그다지 신색이 좋지못하였다. 둘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승객의 뜻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이 달릴 권한을 가진 자동차는 이리로 저리로 자동차가 갈 수 있을 만한 길을 골라 가면서 봄의 들을 달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는 이 자동차는 봄날의 들을 즐기는 애인끼리나 부부끼리의 산책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탄 두 사람은 다 마음이 무거운 듯이 말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준이는 인준이 자기의 생각 미스 영은 미스 영 자기의 생각에 잠겨서!…

세시를 조금 지나서 떠난 이 길은 어느덧 네시도 넘었다. 그러나 그냥 두 사람은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미스 영.”

드디어 인준이가 입을 열었다.

“네?”

“미스 영은 LC당의 어떤 급의 관계자입니까?”

예기하였던 질문인 듯싶었다. 그다지 놀라거나 당황하여 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러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미스 영.”

“……….”

“미스 영이 내게 호의를 가지신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며칠 전 밤만 해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산보로 끌어 낸 그 호의─ 무엇이라 드릴 말씀이 없읍니다. 그 호의를 알면서도 미스 영의 지위를 묻기는 가슴쓰립니다. 그러나 미스 영께서도 내게 그만치 과도한 주의를 시키신 이상에도 내가 짐작 못할 줄을 생각치 않으셨겠지요? 오늘 산보를 청할 때만 해도 미스 영은 벌써 내게서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을 예기하셨겠지요?”

“….”

“다시 묻습니다. 미스 영은 LC당의 어떤 계급의 관계자십니까?”

미스 영이 비로소 작다란─ 그러나 똑똑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LC당의 최고 고문─ 언제든 선생님께는 알리려던 일! …”

“최고 고문? 그럼 물론 간부급이시지요?”

“간부 이상 간부를 지휘하는 사람─.”

무얼? 물론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미스 영의 지위가 LC당에 있어서 너무도 높음에는 인준이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스터 매켄지는?”

“LC당 당수─.”

인준이는 깜짝 놀랐다. 매켄지도 간부의 한 사람쯤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LC당의 당수였다. 세계에서─ 세계에서뿐 아니라 LC당 안에서도 고급 간부 이외에는 당수를 아는 자가 없다더니 매켄지 씨가 그 당수였던가?

이 너무도 뜻밖의 사실에 인준이는 그 다음 던지려던 질문도 못해 보고 눈이 멍하니 미스 영의 측면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스 영은 푹 머리를 수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당수? 당수? 사십만 원이라 하면 그다지 LC당에 있어서는 큰 일도 아니거늘 당수 자신이 조선에까지 들어와서 직접 지휘하고 있었나?

“물론 사실이겠지요?”

“선생님께는 저는 거짓 말씀은 아니 여쭙니다.”

“매켄지 대좌가 LC당의 당수?”

“네 분명히.”

“그러면 미스 영은 당수의 부인.”

수그리고 있던 미스 영의 얼굴이 홱 돌아왔다. 눈이 인준이에게로 굴러왔다.

눈과 눈과의 거리는 세 치─ 입김 코김 심지어는 살의 온기까지 서로 감촉할 수 있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서 두 쌍의 눈은 서로 보았다.

“서 선생님.”

“네?”

“오늘 제가 여기까지 나온 이상에는 모두 선생님께 알려 드릴 결심으로 나온 것이올시다. 제 말씀은 한 마디도 거짓이 섞이지 않았읍니다. 믿고 들어주세요. 저는 매켄지 씨 안해가 아니올시다.”

긴장된 마음으로 질문해 오던 인준이는 이 미스 영의 단호한 대답에 일종의 쾌감과 아울러 희열까지 느꼈다. 이 여인은 매켄지의 안해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인처가 아니었다.

“일시 어떤 편의상 매켄지 씨의 안해로 호적에는 올라 있지마는 저는 아직 미스올시다. 마음과 몸이 자유로운 미스올시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말씀이지요? 그렇게 생각도 하시겠지만 제 말을 믿으셔요. 이 자리에서까지 거짓말로 선생님을 속일 천박한 계집이 아니올시다. 저를 믿으셔요.”

자동차는 바야흐로 어떤 송림의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미스 영.”

“네?”

“오늘 미스 영께 여러가지 물어 볼 일도 있고 당부할 일도 있어서 같이 산보를 가시자고 한 것입니다. 바쁘시지는 않겠지요.”

“여덟시까지 돌아가마 했읍니다.”

“잠깐 차에서 내려서 봄날 송림을 거닐어 볼까요?”

“좋을 대로 하시지요.”

인준이는 운전수를 불렀다.

“× 공 잠깐 멈추어 주시오.”

자동차는 멈췄다. 인준이는 먼저 내려서 미스 영을 부축하여 내렸다.

“여기서 기다리오. 이 근처를 좀 돌아다니다 올 터인데 딴 데 가지 말고 기다려 주시오.”

운전하는 × 군에게 당부를 하고 남녀는 송림 우거진 협로로 들어섰다.

“미스 영.”

“네.”

“내게는 너무도 기이하게 들립니다. 미스 영을 이전에도 늘 참말로 미스가 아닌가고 생각해 본 일이 없지는 않았읍니다마는 너무도 기이한 사실이외다. 설명해 주실 수가 있겠읍니까?”

“선생님 저기 저 바위까지 가셔요. 거기 앉아서 쉬면서 말씀하셔요.”

언덕 위에 보이는 바위를 향하여 두 남녀는 나란히하여 갔다.

“자, 앉으시지요.”

인준이는 미스 영을 위하여 손수건을 꺼내어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하여 앉았다.

“선생님.”

“네?”

“저는 매켄지 씨와 결혼식을 거행했읍니다. 형식상의 결혼식을… 매켄지 씨는 제 은인이올시다. 제 아버님과 친구올시다.”

“또?”

“또? 네, 또 제가 제 길에 자립하기까지는 보호해 주기로 약속한 분이올시다. 흉포무쌍한 깽단 LC당의 당수라 하지만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올시다.”

“무슨 필요상 매켄지 씨의 집에 입적을 하셨읍니까?”

“LC당의 최고 고문으로 그저 매켄지 씨와의 교제가 잦았다는 남의 의심을 살 우려가 없지 않으므로 형식상 부처라는 명목 아래 같은 지붕 아래 거처하며 일을 같이 계획했읍니다.”

“협박에 의지한 바가 아니오니까?”

“결코 아니올시다.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매켄지 부인이라는 명목을 자진하여 취한 바올시다.”

“어떤 종류의 은인이오니까.”

“선생님, 저는 고아(孤兒)올시다. 아직껏의 이 교육은 전혀 매켄지 씨의 덕이올시다. 아버님은 제가 세상에 나오자 돌아가셨읍니다. 돌아가실 때 친구 매켄지 씨에게 장래를 위탁하셨읍니다.”

여기서 인준이는 미스 영의 과거─ 아니 미스 영의 아버지의 과거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참 이것도 전부터 기회만 있으면 알아보려던 일이올시다. 미스 영의 아버님께서는 무얼 하시던 분이오니까. 미스 영의 출생지는 어디오니까?

“제 아버님은 늙은 마도로스, 매켄지 씨는 저의 아버님 아래서 일하던 역시 수부(水夫), 제 출생지는 런던 매켄지 씨 댁, 제 어머님도 역시 조선 사람으로 산후가 좋지 못해서 세상을 떠나셨읍니다.”

가련한 고아와 이 고아를 아직껏 기르고 보호해 준 중로(中老)의 수부─.

황혼의 송림에서 인준이는 이 기박한 과거를 가진 아리따운 여인의 과거담을 긴장된 마음으로 들었다.

아직도 알아볼 일이 많았다. 그 알아볼 일을 모두 차례로 물을 순서를 생각하면서도 인준이는 자기의 하는 일을 스스로 쓰다 여겼다. 이 일을 미스 영에게 모두 묻기가 괴로웠다.

“미스 영, 또 물을 일이 있읍니다. LC당이 조선에 들어온 것은 단지 윤 백작 사십만 원의 공채를 목적한 것뿐입니까?”

“네.”

이것이 인준이의 의심점이었다.

“적지는 않은 금액입니다. 그렇지만 그맛 일은 보통 간부급만 들어와도 될 일인데 간부 이상─ 즉 최고 고문 되시는 미스 영도 들어오시고 그 위에 당수 매켄지 씨까지 들어온 까닭은?”

“매켄지 씨는 제가 왔으니 뒤따라 온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윤 백작에게 혐의도 있고 고국 산천을 한 번 구경해 보고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네….”

“어떤?”

“말씀드리지요. 저의 아버님께서 고국을 등지시고 일생을 수부로 표박 생활을 하시게 된 동기가 윤 백작에게 있읍니다. 저의 아버님도 조정에서 윤 백작과 갑을을 다투던 권문… 이것을 꺼리어서 윤 백작이 저의 아버님을 역모로 몰았읍니다. 먼저 눈치채고 몸을 피하셨기에 생명이 남았지 그렇지만 않았더면 멸족을 당할 뻔했읍니다. 그 뒤 오십 년간을 이전에는 한 나라의 권문이 이름도 없는 수부(水夫)로서 고해를 헤엄치시다가 런던서 마지막 길을 떠나셨읍니다. 윤 백작은 제게는 개인적으로도 원수─ 그 지난날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몸소 들어왔읍니다.”

알았다.

“김소춘이는?”

“김소춘이의 개인적 비밀도 제가 알아냈읍니다. 그리고 이번에 이용을 하기로 했읍니다.”

“그러면 나는 일에서 십까지 미스 영의 일에 방해를 한 셈이외다그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방해를 하신다더라도 저는 선생님의 하시는 일에는 탓하지 않읍니다.”

“미스 영의 내게 대한 지식은?”

“물론 알아보려면 넉넉히 알아볼 수가 있읍니다. 간부급 사람들도 모두 알아보기를 채근했읍니다. 그렇지만 제가 금했읍니다. 필요가 없다고. 서 박사쯤이 방해를 한대야 그다지 영향이 없다고 서 박사의 뒤를 알아보자는 것을 금했읍니다.”

“그것까지는 몰랐지만 미스 영이 애쓰셔서 내 생명이 안전히 있는 것은 압니다. 그 사례를 여기서 드립니다.”

“천만에….”

인준이의 머리는 차차 혼란되어 갔다.

인준이의 플랜으로는 미스 영은 뽑아 내고 그 밖에 매켄지 이하 LC당원 전부는 경찰에 고발을 하여 체포케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미스 영과 매켄지 씨의 개인적 은의를 생각할 때에 미스 영에게 관심을 가진 인준이로서는 매켄지를 덜컥 경찰에게 넘기어 주기도 좀 마음이 불안하였다.

“미스 영.”

“네?”

“매켄지 씨가 경찰 당국에 체포되면 미스 영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읍니까.”

미스 영은 머리를 숙였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한참 뒤에 고민하는 듯한 눈을 인준이에게 던졌다.

“서 선생님.”

“네?”

“어려운 문제올시다. 물론 저는 매켄지 씨의 하는 일에 찬성치 않습니다. 전신이 만들어 주니만치 흉포잔악한 일을 많이 합니다. 그 점은 저도 늘 반대했읍니다. 그것은 저도 찬성치를 못합니다. 죄에 대해서 반드시 벌이 있는 거라면 매켄지 씨는 당연히 그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으로는 적지 않은 은혜를 입은 사람, 얼른 결단하기 힘든 문제올시다.”

물론 그럴 것이다.

고민하는 듯한 미스 영의 눈을 정면으로 받고 이번은 인준이가 눈을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인준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스 영─.”

“?”

“한 가지 부탁이 있읍니다.”

“말씀하셔요.”

“매켄지 씨를 오늘 밤차로 상해로 돌아가라고 권고를 하십쇼.”

“……….”

“매켄지 씨는 미스 영을 어떤 정도로 신임하십니까?”

“절대로.”

“그럼 내 말대로 권하십쇼. LC당은 이삼 일 내로 전부 체포됩니다. 매켄지 씨가 있었다는 매켄지 씨도 체포됩니다. 매켄지 씨가 체포되는 것은 관계없지만 체포되면 미스 영이 걱정하실 걸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상해로 돌려보내십쇼.”

“네.”

“나도 수삼 일 내로 상해로 가겠읍니다. 거기서 매켄지 씨를 만나서 LC당을 해체하기를 권하겠읍니다. 사내와 사내 단 두 사람에서 마주 앉아서 권고해서 안 들으면 그때 최후 수단을 쓰겠읍니다. 그때 최후 수단을 쓴다면 그때는 미스 영도 원망치 않으시겠지요.”

미스 영은 곧 대답치 않았다. 잠시 뒤에야 대답하였다.

“그때가 아니라 지금일지라도 선생님의 뜻으로 그 사람을 체포케 한다면 영은 결코 원망치 않습니다.”

“매켄지 씨의 은혜보다도 인준이에게 더욱 마음을 두노라는 뜻이 분명하였다.

“미스 영.”

“네?”

인준이는 수첩을 꺼내었다.

“이걸 보십쇼. 이건 그 새 내가 조사한 것인데 매켄지 씨에게 출입한 사람의 이름들이외다. 이 가운데는 혹은 상용도 있겠고 당 관계자도 있을 터인데 누구누구가 LC당 관계자입니까?”

미스 영은 수첩을 받아 쥐었다. 그리고 제 백에서 연필을 꺼내었다. 열 세 사람 적힌 중에서 세 사람의 이름을 지웠다. 그리고 그 대신 일곱 사람을 더 적어 넣었다. 그런 뒤에 그 아래는 모두 계급을 써 넣었다.

거기 의지하면 최고 고문이 미스 영 이외에 또 한사람, 간부급 네 사람, 제이급에서 사급까지가 열 두 사람.

이미 경찰에 잡힌 세 사람까지 해서 도합(미스 영 매켄지 김소춘은 제하고) 스무 사람─.

“이 밖에 누구?”

“없읍니다. 언제 고발하십니까?”

“거기 대해서 미스 영과 협의할 일이 있읍니다.”

“?”

“매켄지 씨는 오늘로 상해로 가도록 권고하시겠지요.”

“하지요.”

“김소춘이는 내가 보호해서 우리 당원과 함께 보내겠읍니다.”

“선생님은?”

“나는 당원을 먼저 안전 지대로 보내고.”

“저는?”

인준이는 대답 대신으로 영의 얼굴을 한참 보았다. 그런 뒤에야 대답하였다─.”

“나하고 함께 안 가시렵니까.”

한순간 영의 눈 속이 붉어졌다. 그 뒤에 대답하였다. 듣기 힘든 작은 소리로.

“제가 바라던 바올시다.”

“그러면 이삼 일 내로 같이 가십시다.”

“선생님의 용무는?”

“?”

“사십만 원의 공채는?”

“?”

인제는 더 감출 필요도 없다.

“거기 대해서도 미스 영과 의론을 할 일이 있읍니다. 미스 영의 힘을 빌어야 하겠읍니다.”

“?”

“물론 승낙하실 줄 알고 플랜을 말씀하겠읍니다.”

“하십시오.”

두 사람은 한참을 잠잠하여 버렸다. 봄날 저녁 바람이 그들의 옷자락을 날렸다. 그것을 막느라고 손으로 옷자락을 누른 채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미스 영. 물론 미스 영도 짐작하시겠지요? 내가 무엇하러 조선에 들어왔는지.”

“물론 압니다.”

“만약 LC당에서 그 목적을 얻어 내면 누가 그것을 맡아 가지고 상해로 돌아갈 예정이었읍니까?”

“매켄지 씨가….”

“매켄지 씨가 먼저 상해로 가시면?”

“매켄지 씨가 지정하는 사람─ 최고 고문의 한 사람이….”

“그럼 십중팔구는 미스 영이 맡으시게 되겠읍니다그려.”

“그렇게 되기 쉽겠지요.”

“그걸 나를 주시오.”

미스 영은 눈을 들었다. 약간 미소가 그의 눈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 손에 안 든 것을 어떻게 선생님께 드립니까?”

“윤찬두 씨가 그 공채를 LC당에게 내어맡기마 했읍니다.”

“네?”

“나한테 그 점을 맹서했읍니다.”

“그것이 만약 제 손으로 들어오기만 한다면, 저는 두말 없이 선생님께 드리겠읍니다. 이번 조선에 들어와서 선생님을 만나 뵈옵고 선생님의 속뜻을 짐작한 뒤에 벌써 그렇게 생각했읍니다. 사사 원수나 갚고 그 공채는 선생님께 드리고 도망해 버리려고….”

“또 한가지 김소춘이에게도 누누히 말해서 설복시켜읍니다마는 사사 혐의를 버리시지 못하겠읍니까? 윤 백작은 벌써 팔순이 지난 노인─ 여생이 얼마 안 남은 노인에게 해를 가하면 무얼 합니까? 사사 혐의를 버리십시오.”

“선생님의 명이시라면….”

무엇이든 순종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네.”

“만약 미스 영의 마음이 자유시라면 그─.”

뒤를 말하지 못하였다.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순간 미스 영의 얼굴은 주홍빛이 되었다. 알아들은 것이었다.

“그….”

“…….”

“미세스 서가 되어 주십쇼.”

드디어 나온 이 말─ 미스 영은 주홍빛이 된 제 얼굴을 탁 무릎에 묻어버렸다.

“승낙하십니까?”

“네…….”

모기 소리와 같은 소리.

그 뒤에도 한참을 더 의론하였다. 그동안 인준이가 놀란 것은 LC당의 너무도 어마어마한 탈출 계획이었다.

LC당에서는 어떤 장소에 비행기를 한 대 감추어 두었다. 당수나 최고 고문의 지휘만 있으면 언제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한가지 윤 백작 댁과 LC당과의 연락사이던 김소춘이가 어젯밤 이래로 행방이 불명케 되었으므로 좀더 기다려 보고는 직접으로 윤 백작 댁을 습격하기로 결정되었다. LC당의 기관총 세 대가 조선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장래 자기네가 취할 방침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협의를 한 뒤에 그 바위에서 일어날 때는 꽤 긴 봄날 해도 거의 산마루를 넘으려 하는 때이었다.

“매켄지 씨는 오늘 밤차로 꼭 떠나게 하세요.”

“담당하리다.”

“내일 오전 열시에 전화를 또 걸겠읍니다.”

“기다리지요.”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동차 기달리워 둔 곳까지 이르렀다.

자동차는 두 사람을 싣고 다시 번화한 시내로 돌아왔다.

젊은 남녀의 상춘으로 알고 히야까시(ひやかし─ 놀림)를 던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인준이와 미스 영은 시내로 돌아와서 각기 저 갈 곳으로 헤어졌다. 회견의 결과가 만족히 되기 때문에 인준이의 마음은 더욱 가벼웠다.

미스 영과 작별을 하고 아파트로 돌아와 보니까 김소춘이며 십칠호도 이제 깨어서 지키는 사람과 함께 저녁을 나누는 중이었다.

“소춘 씨 어떠시오?”

가비여운 마음으로 이렇게 물어 보매 이때는 소춘의 마음도 저으기 가볍게 되었던지 같이 미소로써 인준이를 쳐다보았다.

“소춘 씨, 저녁 다 잡숫거든 잠깐 내 방으로 와 주시오.”

이 말을 남기고 인준이는 제 방으로 돌아왔다.

좀 뒤에 소춘이가 왔다.

“다 잡수셨읍니까?”

“네.”

“거기 앉으시오.”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인준이는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으로 몇 번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가야 입을 열었다.

“소춘 씨 아침에 한 권고를 들으시겠지요?”

소춘이는 대답이 없었다.

“인제는 소춘 씨는 듣지 않을 수가 없게 됐나 보이다.”

인준이는 자기의 수첩을 꺼내어 보았다.

“이것 보시오. 여기 적힌 이름 전부 소춘 씨는 짐작하시겠지요? 여기 적힌 사람 외에는 매켄지 씨와 매켄지 부인과 김소춘 씨─ 이미 경찰에 잡힌 세사람 도합 스물 세 사람이 조선 안에 들어온 LC당의 전원이라는 것이 조사가 끝났읍니다. 이 필적도 짐작하시겠지요? 매켄지 부인의 자시필이외다. 이만한 증거뿐 아니라 이것은 소춘 씨도 모르시는 일이지만 매켄지 대좌가 보통 간부급이 아니요. LC당의 당수라는 점까지 알고 그 증거까지 얻어 내었읍니다. 이만한 이상에는 소춘 씨도 버티어야 인젠 쓸데없을 줄은 짐작하시겠지요? 아침에도 권고한 바와 같이 탈당을 하십쇼. 탈당뿐 아니라 LC당 자체가 수일 내로는 자연 소멸이 될 겁니다. 오늘 밤차로 매켄지 씨는 상해로 돌아가라고 권했읍니다. 돌아가서 LC당이라는 것을 해체해 버리라고 권했읍니다. 그 권고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고 매켄지 씨는 돌아가기로 되었읍니다. 그 밖에 이 수첩에 이름 적힌 사람들은 명일로 전부 경찰 당국에 체포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탈당을 않으려야 않을 수도 없지만 미리 탈당을 하고 피신을 하십쇼. 자 내 권고를 들으시겠지요.”

벌써 절반 이상은 마음이 번복되었던 소춘이는 이 인준이의 말에 드디어 결심을 하였다.

“명령대로 하리다.”

“내가 인솔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일 오후에 인천서 상해로 향해서 출발을 하는데 거기 대해서는 경찰도 간섭치를 않기로 양해가 됐읍니다. 그 배에 소춘 씨도 같이 타고 가십쇼.”

“네…….”

“그러면 오늘밤 소춘 씨는 잠깐 자당께 가서 하직 문안을 드리겠읍니까?”

“그것을 허락해 주시겠읍니까?”

“허락뿐 아니라 보호까지 해드리지요.”

“그럼 부탁합니다.”

“이것 보십쇼.”

인준이는 아까 아파트로 들어오면서 받은 편지를 내어 소춘이에게 보였다.

그것은 인천으로 내려간 양 군이 지휘대로 하여 모든 준비는 벌써 다 되어있다는 편지였다.

“경찰의 묵인 아래 조선 땅을 출발하는 배니까 이만치 안전한 기관이 더 없으리다. 내일 오후 아마 떠나게 되리다.”

그리고 인준이는 십칠호를 불러서 소춘이와 함께 피아노 강습소에 가서 지금 각곳에 헤어져 활동하는 당원 전부를 소집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당부를 하였다. 자기는 한 시간쯤 뒤에 갈 터이니 그때까지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죄 모이도록 하여놓고….

그리고 자기는 자기의 볼 일을 보기 위하여 한 걸음 앞서서 아파트를 나섰다.

아파트를 나선 인준이는 잠시 뒤에 이필호 형사와 함께 어떤 조용한 음식점에 모양을 나타내었다.

“선생님 오늘 종일 선생님을 찾았읍니다.”

“오늘 좀 바쁜 일이 있어서….”

“그 결과는?”

“그보다 먼저 나 찾던 용건은.”

“그건 다른 것이 아니라 어제 선생님 하시던 말씀요. 무론 김소춘이 건은 상부에 말할 수 없어 저 혼자 마음속에 감추어 둘 일이지만 선생님에 동지들이 상해로 돌아가는 일에 관해서는 양해를 얻었읍니다. 아무 범죄사건도 없었으니까 그저 곱다랗게 아무 간섭도 없이 돌려보내기로─ 즉 묵인하기로 했읍니다. 그것을 선생님께 알리려고….”

“고맙소이다.”

무론 아직껏은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은지라 이 양해쯤은 성립되리라 믿었다.

“선생님, 그 대신 LC당 사건에 관한 교환 조건은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도 오늘 그 일 때문에 돌아다녔소이다. 조선에 들어온 LC당 관계자가 최고 고문 영국인 한 사람 간부급 다섯 사람 그 중 조선 사람 둘 외국인 셋 그 이하 당원 열두 명─ 이만치외다.”

무론 매켄지와 미스 영과 김소춘이는 제한 수이었다.

“선생님 그걸 알으켜 주세요.”

“내일─ 늦어도 모레까지만 기다리시오. 아직 주소를 다 알지 못했는데 섣불리 일을 시작하다가는 인명만 공연히 손해날지도 모르겠으니까 모두 다 알아 가지고 일망타진으로 없이해야 좋을 것 같소이다. 지금 그 주소를 최선의 수단으로 탐색중이니까 명일쯤은 다 알아 낼 수가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는 우리 당원 전부는 그만 탈출을 시킬 테니까 그만치 알아 주십쇼.”

“그러면─.”

“당원만 하루 미리 보내고 나는 하루 더 남아서 LC당원을 잡는데 조력이나 좀 한 뒤에 갈까 합니다.”

“그럼 선생님도 곧 가시는군요.”

“가야지요. 일 없이 그냥 있을 필요도 없고 내가 있으면 경찰에서도 귀찮기만 하고─ 가 버리는 편이 좋겠지요. 한데 저 윤 백작 댁의 경계는 오늘밤으로 해제해 버리는 편이 좋을 듯하외다.”

“왜요?”

“인젠 필요가 없어. LC당에서도 지금 김소춘이를 잃어버리고 쩔쩔매는 중이니까 김소춘이의 행방이 판명되기까지는 일양일간 무사할 것이고 그동안에는 모두 잡을 계획도 설 것이니까 필요 없는 경계는 해제해 버리는 편이 좋을 듯하외다.”

오늘밤 김소춘이가 제 생모 노부인에게 하직을 고하러 가는데 그 편의를 돕기 위해서 경계 해제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해제치 않는다 할지라도 다른 방법도 강구할 수 없는 바는 아니지만 윤 백작 댁에 내리려는 무서운 죄악을 미리 막기 위하여 강구하였던 방법인지라 인제는 필요가 없었다.

“그럼 그렇게 서장께 말씀해 보겠읍니다.”

“또 한가지 사복 경관을 좀 준비해 두십쇼. 언제든 필요에 응해서 출동할 수 있을 만치 준비해 둘 필요가 있읍니다. 내 생각 같아서는 내일로는 전부 판명이 될 듯한데 내일 오후부터 모레 저녁까지 사복 경관 한 이십여 명을 소집해 두도록 마련하십시오.”

“그러지요.”

이리하여 몇 가지의 당부할 일을 당부하고 들을 일을 들은 뒤에 인준이는 필호와 작별을 하였다.

이제는 피아노 강습소로 가서 당원을 만나 보아야 할 것이다.

필호와 작별을 하고 인준이가 피아노 강습소에 이르러 보매 당원 간부가 벌써 모여 있었다. 가지각색의 행색을 한 십여 명의 당원이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은 기관(奇觀)이었다.

뿐더러 자기의 누님까지 당원의 한 사람으로 거기 참석하였다. 아까 인준이는 누님께 전화로써 급한 일이 있어서 귀향한다고 하고 짐을 다 가지고 이 강습소로 와 달라고 말해 두었던 것이었다.

이십여 명의 당원의 지도자인 인준이가 들어오매 인준이의 앉을 자리가 저절로 났다. 인준이는 거기 가서 앉았다.

만찬회─ 만찬회라야 남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 간단한 음식상을 놓고 십여 명은 둘러앉았다.

거기서 인준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술을 금하는 좌석이라 술은 없지만 축배를 드는 뜻으로 잡수어 주십쇼.”

당원들은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의아하다는 듯이 인준이를 쳐다보았다.

“양×× 씨가 어제 인천으로 내려가서 배를 한 척 준비했읍니다. 여러분 내일로 그 배로 상해를 향해서 떠나 주십쇼.”

맞은편에 앉았던 당원 한 사람이 물었다.

“일은 다 됐읍니까?”

“된 게나 다름이 없읍니다.”

“그러면 박사께서도 함께 가십니까?”

“나는 따로.”

의외의 말이었다. 일이 되었으면 함께 가야 할 것이며 아직도 안 되었으면 온 당원이 힘을 같이 해서 성사토록 해야 할 것이다.

인준이가 설명하였다.

“일은 아직 채 끝은 맺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읍니다. 안 공 한 분만 나하고 같이 남아서 결말을 맺고 다른 분들은 먼저 들어가십쇼. 뒷일은 걱정 말고….”

“그러나─.”

“그러나가 아니라 일이 끝난 뒤에 한꺼번에 돌아가다가는 도로혀 위험하고 하나씩 하나씩 가자면 여러 날이 걸려야겠고 하니까 여러분께 먼저 가 달라는 게올시다. 이제는 여러분의 협력이 없어도 넉넉히 될이만치 간단하게 된 이상에는 여러분이 계시다는 것은 도로혀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이니까 먼저 가 주십쇼.”

“그럼 박사께서는 언제 가시렵니까?”

“하루 늦추어 모레─ 그러나 아마 상해는 여러분보다 먼저 도착될 듯싶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LC당이 가로 들어서서 일이 끝나면 탈출하려고 준비해 두었던 비행기를 압수해 두었읍니다. 그 비행기가 아마 우리 이용물이 될까 봅니다.”

최고 지휘자의 지휘라 불안키는 하지만 반대할 수가 없어서 모두 잠잠하여 버렸다.

인준이는 김소춘이를 소개하였다.

“본시 LC당의 제이급 당원 윤 백작과 LC당과의 사이에 연락을 취하시던 분이올시다. 여러분과 같은 배로 돌아가게 되었읍니다.”

소춘이가 머리를 수그리고 인사하였다.

간단한 음식이나마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동지들은 서로 환담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도 축나지 않고 더구나 한 사람도 경찰의 주의조차 받아 보지 않고 곱게 있다가 또한 곱게 돌아가게 된 일에 대하여 서로 축하하였다. 경찰 당국에서도 자기네들이 상해로 돌아가는 데 대해서 간섭치 않기로 하였다는 말을 듣고 모든 당원들은 더욱 기뻐하였다.

아직 결말은 나지 않았지만 서인준이가 그만치 단언하는 일이라 무론 성공할 줄로 믿고 서로 축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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