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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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편집]

윤찬두가 인준이와 소춘의 방문을 받은 것은 밤 열시가 썩 지나서였다.

벌써 침실에 든 찬두에게 하인이 내객을 보할 때는 찬두는 귀찮아서 거절하였다. 하인은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서인준이라는 이와 김소춘이라는 이가 꼭 만나뵐 일이 있답니다.”

서인준과 김소춘? 김소춘이를 서인준이가 감추어 두었다는 점은 인준이에게서 이미 들은 바였다. 그 두 사람이 소매를 마주 잡고 함께 찾아왔다는 것은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다. 찬두는 비로소 손님을 침실로 안내하기를 명하였다.

“밤도 초저녁도 아닌데 미안합니다.”

인준이가 이런 인사를 하면서 먼저 들어왔다. 김소춘이는 그 뒤를 따라서 들어왔다. 세 사람은 자리를 잡고 마주 앉았다.

“윤 선생.”

인준이가 찾았다.

“네?”

“자당께서는 벌써 주무시겠지요?”

“네?”

“아니 다른 게 아니라 우리는 내일 도로 상해로 돌아갑니다. 어떤 교환조건으로 우린 돌아가는데 경찰 당국에서도 눈을 감기로 했읍니다. 그런 좋은 기회에 김소춘 씨도 함께 조선을 떠나기로 했는데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당께 뵙고 하직이라도 하고 싶으시다는 소춘 씨의 의견으로 말미암아 지금 윤 선생을 찾게 됐읍니다. 범상치 못한 인물이라 낮에 찾아오기도 어떻게 그래서 밤이 들기를 기다려서 지금이야 찾아왔읍니다.”

“네…….”

대답은 하였으나 꺼림칙한 일이었다.

김소춘이는 비록 모계(母系)를 같이한 형이라 하나 왜 그런지 찬두에게는 시원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늙으신 어머님과 대면을 한댔자 마지막 고별의 인사 외에는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만나게 하기가 실쭉하였다.

찬두의 주저하는 기색을 살피고 인준이가 가로 나섰다.

“윤 선생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다른 것은 다 둘째로 미루고 김소춘 씨가 아무 말도 없이 상해로 돌아가 버리신다면 자당께서는 얼마나 서운해 하실지 이 점뿐이라도 생각해 보십쇼. 연로하신 어머님께 대한 호의라도 여기 이렇다 저렇다 할 게 아니외다.”

“내일로 떠나십니까?”

“네.”

“어느 차로?”

“아니 배로… 배의 준비도 다 되고 지금 탈 사람이 타기만 기다리고 있읍니다.”

“LC당 관계의 일은?”

“가만 계십쇼. 이제 소춘 씨가 자당께 들어가신 뒤에 의론을 하오리다.”

찬두는 하릴없이 승낙하였다. 먼저 하인을 들여보내서 내당의 동정을 보게 하였다.

아직 노부인은 자리에 들지 않았다. 수심을 많이 가진 노부인은 자리에 들 생각도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직 안 주무신다니 그럼 잠깐 들어가 뵈시지요.”

“응 잠깐 들어가 볼까. 그럼 서 박사는 여기서 기다리시겠읍니까.”

“네 기다리지요. 하직의 인사 마음껏 하십시오.”

이리하여 소춘이는 찬두의 침실을 나섰다.

하인이 길을 인도하려 하는 것을 소춘이는 막았다.

“나도 잘 아네.”

무론 잘 안다. 소춘이는 하인의 인도를 거절하고 어머니께 하직을 고하러 내당으로 들어갔다.

소춘이가 내당으로 들어간 뒤에 인준이와 찬두는 마주 앉았다. 잠시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드디어 인준이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윤 선생!”

“?”

“내일 아마 LC당에서 오리다. 준비해 두십쇼.”

“그 뒷 준비는?”

“뒷 준비는 다 됐읍니다. 전부 알아 두었읍니다. 여기서 공채를 가져가는 것과 동시에 체포케 되리다.

찬두는 머리를 기울였다.

“만약 다 아셨다면 공채가 일단 나갔다가 돌아올 필요가 어디 있읍니까?”

이 당연한 질문 앞에 인준이는 한순간 주저하면서도 교모히 대답을 하였다.

“공채를 훔쳐갔다는 중대한 사건 밖에는 LC당 당원을 체포할 이유가 없읍니다. 세상에 해를 끼치는 LC당이매 반드시 잡아 없이하여 버리기는 해야 할 것인데 조선에 들어와서는 공채 사건 이외에는 이렇다 할 죄를 범하지 않았읍니다.”

“완쇠는?”

“완쇠를 죽인 사람은 김소춘 씨, 김소춘 씨를 구해 내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미어 내는 게 아닙니까?”

그럴듯하였다.

“공채는 반드시 돌아오리까?”

“십중팔구는 돌아오리다. 릴레이식으로 뽑아들여서 행방을 알 수가 없게 되면여니와 그렇지 않은 이상에는 돌아오리다.”

“뒤탈은?”

“공채가 돌아오거든 도로 팔아서 토지로 바꾸십시오.”

“서 박사, 저는 암만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공채가 남의 손에 일단이라도 넘어가면 영구히 다시 안 돌아올 것같이 생각됩니다. 넉넉히 돌아오리까?”

이렇게까지 캐어서 물을 때에는 인준이로서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아마 돌아오겠지요.”

이만치 어렴풋이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버렸다.

“그것은 그렇다 하고 김소춘 씨의 문제에 관해서도 오늘 좀 윤 선생과 의논할 일이 있읍니다.”

“무에오니까?”

“부계(父系)를 존중하는 조선서는 비록 김소춘 씨가 윤 선생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 하지만 그래도 내막을 캐자면 같은 피를 물려받은 형제 분이 아니오니까? 윤 선생도 괄시를 못할 분─ 그 위에 자당께서는 맏아드님으로서 소춘 씨에게 많이 근심하십니다. 연로하신 자당을 보셔서라도 소춘 씨를 너무 소홀히 대접은 마십시오.”

“소홀히 대접은 안합니다.”

“아니 지금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제가 임시로 상해로 같이 가기는 하지만 자당의 의향으로는 언제까지든 슬하에 두 시고 싶어하는 모양이 분명하니까 문제만 좀 가라앉을 만한 때면 조선으로 돌려보낼 심산입니다. 그때의 일을 윤 선생께 부탁하고자….”

찬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근심은 없었다. 그러나 소춘이라는 인물은 제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은 인물 지금 비록 일시적으로 삭히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영구히 갈 것인가.

소춘이가 제 아버지에게 원심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아무리 모계의 형이라 하나 이 집안에 끌어들일 수는 없는 배다.

거기는 의리 문제가 있고 인정 문제가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잘 들어맞으면 다른 일이 없거니와 잘 맞지 않으면 처치하기 곤란한 문제였다. 찬두는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인준이의 말도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자기의 입장도 또한 입장이었다. 일이 잘 들어맞지 않는 두 가지의 문제를 어떻게 들어맞출까 하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인준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윤 선생.”

“?”

“저는 일찍기 어버이를 잃었읍니다. 아버님 어머님 모두 제가 아직 철도 모를 적에 세상을 떠나셨읍니다. 그러니깐 부모님의 애정을 모르는 사람이외다. 저는 아직 총각─ 자식도 없는 사람이외다. 자식에게 대한 애정도 모르는 사람이외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듣고 보고 읽은 바로서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정이 얼마나 두터운 것인지는 짐작합니다. 지금 김소춘 씨에게 대해서 좀 과한 권고를 하는 것은 김소춘 씨를 위해서보다 연로하신 자당을 위해서외다. 또 윤 선생도 아시다시피 김소춘 씨로 말씀하더라도 잔포한 단체의 제이급 당원이요 조선 들어오기는 이 집안을 잔멸케 할 목적으로 들어 온 게 아닙니까. 일단 자당을 만나 뵌 뒤에는 태도가 일변해서 당무보다도 사정을 중히 여기고 전신이 댁에 내리려는 LC당의 흉수를 막아 온 것이 어떤 이유입니까. 이게 모두 혈족 관계라 하는 기묘한 줄이 얽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닙니까. 이런 모든 점을 생각해서 김소춘 씨의 장래를 보장하십시오. 완쇠를 죽인 무서운 범인지이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윤 선생과 이필호 형사와 나─ 이렇게 네 사람뿐입니다. 이 형사는 눈감아 주기로 약속했읍니다. 장래 문제가 좀 식은 뒤에 김소춘 씨가 돌아오게 되면 다른 복잡한 문제는 없을 테니까 윤 선생이 김소춘 씨를 형으로 대접만 해주시면 넉넉할 줄 압니다.”

찬두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버님 문제가 있읍니다.”

“그것도 압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쩔지 모르지만 춘추가 너무 높으신 분이라 언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읍니다. 춘부장께는 비밀히 김소춘씨를 두호해 주십시오. 제 본시 계획으로는 김소춘 씨를 상해로 데리고 가서 우리 당에 가입시키려 했었는데 아침에 자당을 만나 뵙고 그 생각을 번복했읍니다. 남도 모자지간의 정을 짐작하거늘 같은 어머님의 소생이신 윤 선생이 그것을 반대하시면 되겠읍니까?”

찬두는 다시 잠잠하여 버렸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귀한 집 귀한 자식으로 태어난 찬두, 김소춘이 같은 인물을 형으로 섬기기 꺼림칙하였다. 그러나 그러는 일면으로는 당연한 모계(母系)의 동생으로서 의무감은 막연하나마 생겼다.

만약 이게 한 번 더 서인준이가 단단히 권고하였더면 찬두는 머리를 끄덕이었을 것이었다.

잠시 두 사람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서로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하면서 서로 하지 않고 있었다.

이때에 누구가 이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라 해서 보매 내당 하인이었다.

“왜?”

“마님께서 잠깐 들어오시라고 분부하십니다.”

“나를?”

“네. 손님은 그냥 기다리시고 혼자서 들어오시라고요.”

인준이가 가로 나섰다.

“윤 선생, 들어가 보십시오. 자당께서 무슨 분부가 계신 모양이외다. 나는 혼자서 기다릴께 잠깐 들어가 보십시오. 두 분을 가지런히 앞에 앉히시면 얼마나 기쁘실지.”

찬두는 일어섰다.

“그럼 서 박사, 실례올시다만 잠깐 다녀오리다.”

“암만이고 오래 말씀하세요. 제가 주선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면 외려 더 기쁘겠읍니다.”

“그럼 다녀서 오리다.”

이리하여 찬두는 인준이를 침실로 남겨 두고 혼자서 내당으로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당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온 찬두는 멀찍이 웃목에 앉았다.

“거기는 차겠다. 좀더 아래로 오너라.”

하는 어머니의 말에 대하여 찬두는

“차지 않습니다.”

하고 잠잠하여 버렸다.

세 사람은 다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계통으로 보자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 어머니 편으로 보자면 같은 배에서 나온─ 이 기괴한 형제는 서먹서먹히 어머니에게서 무슨 말만 나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도 먼저 말을 못하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으로는 비록 아비끼리는 원수라 하나 다 같은 자기의 자식이라 찬두의 입에서 소춘에게 향하여 형님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한참 뒤에 하릴없이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찬두야. 너 이 사람이 누군지 알지.”

“…….”

“응.”

“네.”

그뿐이었다. 무엇이라 대답할까. 김소춘 씨라 하기는 어려웠다. 형님이라 하기는 싫었다. 단지“네”이외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소춘아.”

“네.”

“네 동생이로다.”

“네.”

그래도 찬두의 입에서는 소춘이에게 형이란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찬두야.”

“네?”

“네 형이로다. 부끄러운 말이나 네 형이로다.”

“…….”

역시 대답이 없었다.

또 잠잠하여 버렸다.

모두들 입을 열기를 꺼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장이 괴로웠다.

네번째 어머니의 말─.

“찬두야.”

“네?”

“네─.”

말을 끊었다. 네 입으로 형이라고 한 마디 말하여 다고 이렇게 말하려 하였다. 그러나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또 침묵….

또 먼저 어머니가 이 침묵을 깨드렸다.

“그렇게 서로 멀리 앉아 있으니 내 마음이 괴롭다. 찬두 너 좀더 아랫목으로 내려오너라.”

찬두는 대답 대신으로 무릎 걸음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여전히 소춘이와 가까이 앉지 않았다. 또 침묵….

문득 소춘이가 몸을 일으켰다.

“어머님, 저는 가겠읍니다. 언제 다시 뵈올는지 알 수 없읍니다. 찬두도 잘 있거라.”

바야흐로 발을 옮기려 할 때에 노부인이 급히 말을 하였다.

“소춘아, 잠깐 섰거라.”

그리고 찬두를 불렀다.

“찬두야.”

“네?”

“한 마디─ 내 입으로는 청하기 어려운 말이요 네 입으로도 하기 어려운 말이로나 그러나 한 마디 늙은 어미를 위해서 말해라. 소춘이에게 형이라고….”

“…….”

“응? 어미의 소청.”

늙은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였다.

찬두는 드디어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고요히 말했다.

“모계로는 당당한 형님 왜 형이라 못 부르리까? 그 대신 아버님께 대한 원한은 온전히 버리셨읍니까?”

“소춘이 자기 말로 원한을 버렸노라고 아까 말하더라. 걱정 말아라.”

“아버님께 대한 원한만 버리시면 왜 형이라 못 부르리까.”

“응, 찬두야 너와 소춘이는 형제로다. 서로 의 상하지 않도록….”

늙음 때문인지 감격 때문인지 기쁨 때문인지 노부인의 눈 좌우로는 눈물이 흘렀다.

“소춘이 앉아라.”

울음 섞인 소리로 노부인이 이렇게 말하매 일어섰던 소춘이는 다시 앉았다.

“자, 그럼 좀더 가까이 앉아라.”

이번에는 찬두는 서슴지 않고 소춘이의 가까이 가 앉았다.

이 형제를 가지런히 앉히고 바라볼 때에 노부인도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잠시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볼 따름이었다.

“찬두야.”

“네?”

“너의 형은 내일 상해로 간다는구나.”

“네, 서 박사에게 들었읍니다.”

“삼사 년 후에나 다시 온다누나.”

“네….”

형으로 여기마 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찬두의 속마음으로는 형답지 않았다.

이런 기괴한 장면을 눈앞에 보면서도 노부인은 기뻤다. 생사도 불명턴 아들이 나타났으며 그 나타난 아들이 인젠 악한당에서 탈퇴를 하였다 하며 그 위에 아비는 다르다 하나 어미를 같이한 형제가 가지런히 제 앞에 앉아 있는 모양이 유쾌하였다.

─ 안 갈 수는 없는냐. 상해로 가지 않고 배겨날 수는 없느냐─ 이것을 묻고 싶기는 하였지만 불가능한 줄 아는 일이라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

“찬두.”

소춘이가 찾았다.

“네?”

“무엇보다도 어머님이 만족해 하신 게 기쁘구나.”

말하지 않을지라도 이것은 찬두도 속으로 기쁘게 여기고 있던 중이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위하여 하인에게 명하여 같은 상에 과육을 차려 내오게 하였다. 양관 찬두의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준이에게도 내보내게 하였다.

한상에서 음식을 나누는 형제─ 하인들은 영문을 모르고 기이하게 여겼지만 어머니는 만족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야 소춘아.”

“네?”

“너 대감께 잠깐 뵙고 갈 수가 없느냐?”

“네?”

모자지간이요 형제지간이니 서로 만나서 즐길 수가 있다손치나 노백작을 만난다는 일은 그 뜻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찬두가 그 뜻을 짐작하였다.

“잠깐 뵙고 가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첫번 다녀가신 이래로 아버님께서는 지금 공포증에 걸리셔서─ 더우기나 완쇠가 죽은 뒤에는 비상한 공포증에 걸리셔서 밤에 편히 주무시지도 못하는 형편이니까 잠깐 가서 뵙고 노인께 안심해 드리는 편이 좋을 듯싶습니다.”

불구대천의 원수─ 이번 조선 들어오기만 하면 끝장을 반드시 내려던 원수─ 그것을 인준이의 중재와 위협으로 단념은 하였지만 가서 안심까지 시킨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소춘이는 즉답치 못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늙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근심을 생각할 때에 소춘이도 이를 승낙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잠깐 뵙고 가지요. 찬두가 그 말씀을 먼저 드려서 제가 가는 뜻을 미리 알게 해야지 덜컥 들어갔다가는 도리어 놀라시기 쉬우니까 그것은 찬두에게 맡기네.”

“네….”

“그럼 오늘 밤? 내일?”

“오늘 밤─ 밤 남의 이목이 없는 때가 좋겠지요. 인제 나가시는 길에.”

“좋도록 하지.”

아버지를 달리한 형제는 한 시간 남아를 어머니 앞에 마주 앉아 있었다.

돌아가렴에 임하여 노부인은 자기의 손궤에서 돈 한 뭉치를 꺼내어 소춘이에게 주었다. 외로운 만리타향서 불편이 많을 터이니 조금의 보탬이라도 하라는 어머니로서의 호의였다.

“그럼 어머님 안녕히 계십시오.”

작별에 임하여 소춘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날 듯하였다.

“잘 가거라 언제 다시 오려느냐?”

언제? 알 수 없는 일이다. 육순이 넘은 어머니를 두고 타향에 떠나는 소춘이의 마음도 좋지 못하였다.

작별을 한 뒤에 양관으로 돌어와 보매 인준이는 안락의자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서 박사 미안합니다.”

찬두가 이렇게 미안하다는 뜻을 말하매 인준이는 빙긋이 웃으면서

“내보내 주신 것 잘 먹었읍니다.”

고 감사하였다.

찬두는 아버지의 방의 동정을 엿보았다. 벌써 거의 열두 시가 되었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침대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준이는 아버지의 방으로 들아갔다.

“아버님!”

“응? 아직 안 잤느냐?”

“아버님께 한 말씀 여쭈러 왔읍니다.”

“무에냐?”

“아버님도 아시는 바 김소춘 씨가 지금 왔는데 잠깐 만나 주시면 좋겠읍니다.”

아들의 입에서 나온 이 뜻밖의 말에 아버지는 눈을 둥그렇게 하고 아들을 보았다.

“모든 원함을 잊고 내일 낮배로 상해로 돌아간답니다. 원함을 잊은 이상 아버님을 만나 뵙고 떠나고 싶답니다.”

찬두는 여러 말로 아버지께 권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김소춘이를 그럼 잠깐 부르라는 명령이 내렸다.

김소춘과 노백작의 대면─ 한때는 노백작의 생명을 도모하려던 흉한─ 지금은 단지 한 개의 범인(凡人)으로 노백작을 찾은 김소춘.

회견은 길지않았다.

“미안하옵니다.”

김소춘이가 허리를 구부리며 이렇게 인사를 할 때에 노백작은 경계하는 듯한 눈초리를 잠시 소춘의 위에 부웃고 있다가 드디어

“내가 미안하네. 젊은 혈기에 한 일 다 서로 잊고 말자.”

하였다.

“내일 조선을 떠나겠읍니다.”

“상해로 가느냐?”

“네.”

“몸조심해라.”

“감사하옵니다.”

이만한 지극히 간단한 회견이었다.

“서인준이라는 괴한이 가운데 뛰쳐들어서 댁내에 중대한 문제를 무사히 해결케 했으니 한턱을 잘 하셔야겠소이다.”

노백작의 앞을 물러나온 두 사람에게 인준이는 이런 농을 던졌다.

“자, 형제분끼리도 작별을 하십시오. 몇 해간 서로 격해 계실 형제분, 손이나 한 번 마주 잡고 작별을 하시지요.”

이렇게 윤 백작 댁 댁내의 사건을 무사히 해결을 시키고 인준이는 소춘이와 함께 그 집을 나섰다.

만월에 가까운 달 때문에 달 아래서 움직이는 자기의 그림자를 굽어보면서 무슨 생각에 깊이 잠겨서 길을 걷는 소춘이와 사건이 모두 순조로이 진척되므로 명랑한 기분으로 길을 걷는 인준이의 두 사람은 그들의 침소인 아파트를 향하여 천천히 걸었다.

“김소춘 씨.”

“네?”

“깽단에 가입해 있을 때의 기분과 지금의 기분이 어떠시오?”

“!……”

“유쾌히 명랑히 이 세상을 살 것─ 이것이 내 표어외다. 소춘 씨도 배우시오.”

“배우지요.”

“이리하여 그들은 잠깐 강습소에 들렀다가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날 밤 소춘이는 인준이와 한 침대에서 잤다. 어젯날의 원수 오늘에는 같은 침대에 나란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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