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14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14[편집]

형사 이필호의 활동을 중심으로 이필호의 그 새의 움직임을 좀 엿볼 필요가 있다.

서인준이는 이필호를 꼭 믿었다. 결코 자기를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며 자기의 지휘대로 일하는─ 말하자면 자기의 한 이용물로 믿었다.

그러나 이필호는 결코 속까지 인준이에게 주지 않았다. 인준이가 조선에 들어온 것이 무슨 중대한 임무를 띤 것이 틀림이 없는 이상에는 경찰관으로서의 책임상으로도 방심치를 않았다.

존경하는 학자로서 서인준이에게 결코 악의는 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인준이를 그대로 믿지도 않았다.

필호의 인준이에게 대한 감정은 기괴한 것이었다. 존경하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은 이상한 감정이었다.

인준이는 자기가 필호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동안 필호는 또한 인준이를 이용하는 셈으로 치고 있었다.

당이라 하는 거물이 LC 조선에 들어와 있는 이상 서인준과 같은 사람의 힘은 절대로 빌어 쓸 필요가 있었다. 인준이의 힘이 없이는 LC당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런지라 필호는 그런 필요상 인준이가 하라는 대로 다 하였다. 하라는 대로 한 덕에 인제 바야흐로 LC당을 검거할 기회는 이른 듯싶었다. 그러나 여기서 새로 생겨난 것은 LC당과는 관계 없는 문제였다.

필호도 종내 알아 내었다. 윤 백작 댁에서 거액의 공채가 감추여 있다는 점을… 이 점을 알아 내자 필호는 제 무릎을 탁 쳤다.

인준이의 목적을 알아 낸 것이었다. 인준이가 경성에 내리면서 제일 먼저 가 본 곳이 윤 백작 댁이었다. 그 뒤에 윤 백작 댁에 LC당이 관계하려는 것을 알자 머리를 싸매고 LC당과 경쟁하였다. 그러는 틈틈히 자주 윤찬두를 개인적으로 몰래 찾았다.

십여 명의 당원을 미리 들여보내고 그 뒤를 따라서 서인준 자기까지 들어 온 이상에는 무슨 곡절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을 알아 내었다.

여기서 필호의 마음은 두 갈래로 갈리었다.

하나는 서인준의 일파부터 잡아 올리느냐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서인준이를 이용하여 LC당을 들추어 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해득실을 여러가지로 생각한 결과 필호는 후자를 취하기로 하였다.

서인준이 일당보다 LC당이라는 것이 더 큰 고기라는 점도 필호로 하여금 이편을 취하게 한 큰 이유의 하나이지만 또 한가지는 자기가 스승으로 사숙하고 존경하는 인준이를 잡기가 얼마만치 마음에 꺼리었다.

인준이의 목적이 윤 백작 댁의 거액의 공채에 있으매 비밀히 그것을 든든히 지켜서 인준이로 하여금 범하지를 못하게 하여 법망에 걸리지 않게 하고 나아가서는 인준이를 이용하여 LC당을 잡아 올리려 작정하였다.

이것을 안 뒤부터 필호는 인준이의 위에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윤 백작 댁에는 철통같은 경관의 경계망을 쳤는지라 인준이도 어쩌지 못하리라 안심하고 있었다.

필호가 이때 바라던 것은 LC당에서 어서 윤 백작 댁 공채를 훔쳐 내어 그 공채의 존재가 공공히 드러나고 동시에 인준이의 힘으로 LC당을 검거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소위 서인준 피아노 강습소라는 데 모여드는 무리들이 모두 서인준의 수하의 인물인 것도 알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서 박사를 너무도 아끼기 때문에 서 박사로 하여금 법망에 걸릴 기회만 주지 않기에 전력을 다하였다.

이리하여 수일이 지났다.

그러는 동안에 이상한 일을 당하였다. 인준에게서

, 김소춘이를 눈감아 줄 것.

, 기회를 늦춰서 그냥 상해로 돌아가려 하니 간섭하지 말아 줄 것.

이 두 가지의 요구가 필호에게 제출되었다. 그 대상으로는 LC당 간부 및 보통 당원 전부를 잡을 수 있도록 주선하겠다는 것이었다.

김소춘의 문제는 자기만 눈감아 버리면 뒤탈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김소춘이 윤 백작에게 품은 원심의 내력도 짐작하며 그 위에 이후에는 다시 LC당에게 관계치 않겠다 하는 서인준의 맹서를 믿을진대 눈감아 버려도 괜찮다.

그러나 서인준의 당원 탈출 문제는 좀 곤란하였다. 물론 아직껏은 아무 범죄도 없었으니 문제도 안 되고 이 뒤라도 죄를 범치 않고 돌아간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동안에 무슨 일을 저질러 놓고 탈출하여 버리면 책임 문제다. 그래서‘사건을 만들지 않고 돌아간다면 간섭치 않도록 주선하겠다’ 고 조건부로 승낙하여 두었다. 그리고 그 조건부로 상부의 승낙도 얻었다.

그 뒤부터 필호의 할 일은 전력을 다하여서 인준 일파가 죄를 범치 않도록 예방하는 데 있었다.

LC당의 범하려는 죄는 서인준이가 방해하고 있다. 서인준이가 범하려는 죄는 필호가 전력을 다하여 예방하고 있었다.

인준이는 이런 점은 뜻도 안하였다.

그랬는데 서인준에게서 뜻밖에 또 다른 지휘가 내렸다.

, 명일 인천서 당원 전부가 출발하니 이전의 부탁대로 해줄 일.

, 윤 백작 댁의 경계는 인젠 필요가 없으니 풀어 줄 일.

, 사복 경관을 준비해 둘 것.

─ 이 세 가지였다.

여기서 필호는 생각하였다. 윤 백작 댁 공채는 아직껏은 안전하다. 그런데 서인준 일당이 내일 탈출한다는 일과 윤 백작 댁의 경계를 풀어 달라는 세가지의 일을 관련하여 생각하면 혹은 오늘 밤 경찰의 경계를 풀게 하고 그 틈에 공채를 훔쳐 내 가지고 명일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치 않을 수가 없었다.

필호는 두 가지를 다 승낙하였다. 승낙은 하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라도 윤 백작 댁 공채에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그때도 자기의 약속을 지킬 의무까지는 없었다.

문제는 차차 종말이 되어 가는 것이 분명하였다. 일양일 내로 LC당원 전부를 잡도록 해주마 하는 인준이의 말은 믿을 만한 말이매 LC당 문제는 일양일 내로 해결될 것이다.

서인준 일당은 내일 낮차로 상해로 돌아간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일도 행치 못하였다. 그런즉 내일 그들의 배가 인천 부두를 떠날 때까지만 지켜 두면 문제는 없어진다.

여기서 필호는 인준이의 그 세 가지의 의견을 다 듣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인제 하루나 이틀 동안이면 끝이 난다. 그 일양일 간을 무사히 지키려고 쓴 필호의 수단은 간단하였다.

표면 윤 백작 댁의 경계를 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뿐이었다. 이면으로는 자기 스스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윤 백작 댁에 가서 숨어 있었다. 무슨 사건만 생기면 직각으로 출동할 수 있도록 근처 파출소에 경관들을 배치해 두고서─.

이리하여 표면 경계가 풀린 윤 백작 댁에는 이필호 형사가 든든히 무장을 하고 지키고 있었다.

밤이 열시가 지났다. 그때에 윤 백작 댁에 두 사람의 방문객이 있었다. 서인준과 김소춘이었다.

필호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일이 바야흐로 벌어지려는 듯하였다. 크나큰 책임감 때문에 필호의 몸은 약간 떨리기까지 하였다.

이층 찬두의 침실 안에서 찬두와 인준과 소춘의 세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는 필호는 담을 기어올라서 찬두의 침실 밖에서 창틈으로 안을 엿보고 있었다.

한참 안에서는 이야기를 하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눈치로서 무슨 가족적 의론인 듯싶었다.

하인이 두어 번 왕래하였다. 그런 뒤에 찬두와 소춘의 두 사람은 나가버렸다. 그 침실 안에는 인준이 혼자 남아 있었다.

혼자 남아 있는 인준이는 잠시를 더 기다려서 귀를 기울여 동정을 엿본 뒤에 비로서 일어섰다.

먼저 방을 개략적으로 살폈다. 살핀 뒤에는 눈치로 구획을 긋는 모양이었다. 그 일까지 끝낸 뒤에는 방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민첩하고도 세밀한 그 뒤지는 방법─ 무엇보다도 밖에서 엿보는 필호는 교묘한 수색에 경탄하였다.

담벼락의 한 군데 마루의 한 군데 서랍의 하나 한 개의 책 갈피─ 인준이의 손이 안 가 본 곳이 없고 인준이의 눈이 안 가 본 것이 없었다.

이것을 들여다보면서 필호는 자기의 추측이 결코 틀리지 않은 데 만족한 웃음을 웃었다.

만약 이 방 안에 공채가 있어서 그것을 인준이가 훔쳐 냈더면─.

필호는 인준이라는 인물을 형무소에까지 잡아넣기는 싫었다. 만약 이 방안에 그 공채가 있기만 하였더면 반드시 인준이가 발견하였을 것이로되 발견해서 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하더라도 필호의 생각으로는 들어가서 고요히 그것을 도로 뺏어서 있던 자리에 넣고 인준이에게 경고를 한 뒤에 그 일을 단념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행인지 불행인지 찬두의 침실에는 인준이의 목적물이 없었다. 차근차근히 그 방을 다 두드려 보고 뒤지고 난 뒤에 도로 의자에 걸터앉을 때에는 물론 인준이는 낙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색도 없이 천연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궐련을 꺼내어 붙여 물었다.

‘다른 방도 또 뒤질 터인가?’

문밖에서 엿보고 있는 필호는 이런 생각도 하여보았지만 인준이는 의자에서 궐련만 먹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내당에 들어갔던 찬두와 소춘이가 다시 나왔다. 나와서 몇 마디 이야기가 있은 뒤에 소춘과 찬두는 또 그 방을 나갔다.

그러나 인준이는 그냥 여전히 아까의 모양대로 앉아 있었다.

드디어 인준이와 소춘이는 윤 백작 댁에서 나왔다. 필호는 뒤를 밟아 보았지만 아무 소득도 없었다. 아파트로 돌아가서 잘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본 뒤에 이필호는 다시 윤 백작 댁으로 돌아왔다.

필호가 인준이를 밟는 동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았나 하고 동정을 살펴 보았지만 아무 변동도 분명히 없는 모양이었다.

윤 백작 댁 어떤 나무 등걸 뒤에 숨어서 필호는 밤을 새웠다. 밤이 다 지나기까지 아무 변도 안 생겼다.

여기서 필호는 머리를 기울였다. 오늘 낮에는 서인준의 당원들은 모두 조선을 떠난다는데 떠나기까지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하지‘않음’인가 혹은 하지‘못함’인가.

좌우간 LC당은 서인준이가 맡아서 경계하는 중이니 자기는 서인준이만 경계하면 될 것이다. 오늘 오후에 서인준의 수하들이 조선을 출발해 버리면 경계할 범위가 썩 적어진다. 이리하여 필호는 다른 동료에게 백작 댁 경계를 맡기고 자기는 한잠을 자려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온 이필호 형사는 안해에게 시간을 작정하여 자기를 깨워주기를 부탁한 뒤에 하룻밤을 서서 새운 피곤한 몸을 자리에 눕혔다.

눕히면서 즉시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안해가 그를 깨웠다. 부탁했던 시간이 이름이었다.

세수도 되는대로 조반도 되는 대로 치러 버리고 잠깐 서에 들렀다가 필호는 정거장으로 뛰어나갔다. 서인준의 수하들이 정말로 출발하는지 어쩐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아까 서에 들른 기회에 전화로 알아보매 필호가 없는 동안에는 윤 백작 댁에는 한 사람도 출입이 없었다 한다.

마침 인천 가는 기차가 출발할 시간이 거의 가까웠다. 거기서 필호는 보았다. 가지각색의 형상을 한 십여 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들의 곁에는 서인준 박사가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도 제각기 친척이며 친지가 있겠거늘 자기의 임무 때문에 그 친척이 마음에 없는 형색을 하고 경성 시내를 몇 달간 배회하다가 LC당의 방해 때문에 그것조차 이루지 못하고 빈 손 들고 도로 상해로 돌아가는 양이 필호에게는 오히려 불쌍하게까지 보였다. 그 가운데는 세 명의 여자도 있었으며 더욱이 필호의 가슴을 유난히도 무섭게 한 것은 윤 백작 댁 내당의 하녀로 있던 사람도 있는 점이었다. 더구나 말눈치로 보아서 그 하녀는 서 박사의 누님인 것이 분명할 때에 필호는 그들의 심경을 외롭게 보았다. 그들로소 바른 환경에만 태어났더면 모두들 갈충보국을 하는 신사며 숙녀가 되었을 것이어늘 환경이 그렇지 못하여 오늘날 이런 적적한 꼴을 보게 된 것이다. 서 박사로 말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학자가 무슨 필요로 몸을 숨겨 가며 자기의 고향에 돌아오며 그의 누님은 또한 남의 집 살림까지 하였나?

자기의 경관이라는 직책으로서는 당연히 그들의 하려는 일을 말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십여 명의 끌끌한 사람들이 밀려들어 왔다가 빈 손으로 도로 초연히 상해로 돌아가는 양을 볼 때는 인정으로서 또한 적적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필호는 그 인원의 수효를 세어 보았다. 그리고 정거장에서 순사에게 그 사람들이 전부 기차를 타는지 혹은 도로 빠지는 사람이 있는지를 명심해서 보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일을 끝내고 필호는 경찰서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인준의 일행이 서인준 한 사람만 LC당 관계 사무를 결말을 맺고자 남아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금 인천차로 떠난다는 것을 보고하고 겸하여 인천 경찰에 부탁하여 여기서 특별한 다른 부탁이 있기 전에는 그 사람들이 떠나는데 그냥 두어 달라는 당부를 서장에게 부탁하였다.

한 가지의 의문이 아직 필호의 머리에 남아 있었다.

자기가 모르는 틈에 서인준 일파에서 그 공채를 훔쳐 내지나 않았나 하는 의문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벌써 철퇴한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였다. 경찰의 힘으로 LC당의 방해를 제거해 버리고 그런 뒤에 그 공채까지 훔쳐 내는 것이 당연하거늘 미리 철퇴해 버린다 하는 것은 너무도 기괴하였다.

경성서 인천까지 기차가 달아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서 필호는 윤찬두에게 그 공채가 분명히 아직 안재한지 어쩐지를 알아보려 하였다. 그리고 그 공채가 안재치 못하다면 그것이 LC당의 소위건 서인준의 소위건 좌우간 인천 역두에서 서인준 일행을 붙들어 도로 경성으로 끌어오도록 하려 하였다.

경찰서를 나선 필호는 즉시로 윤찬두를 찾았다.

마주 앉으며 첫번으로 물은 말이 그 공채에 관한 일이었다.

“윤 선생님 좀 이상한 말씀을 묻습니다마는 이 댁에 거액의 외국 공채가 있지 않습니까. 아니 놀라실 것이 없읍니다. 경찰관의 책임상 그만 일쯤은 알고 있읍니다. 한데 그 공채가 지금도 분명히 댁내에 있읍니까?”

찬두는 잠시 주저하였다. 이 사람이 형사인 것은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 공채에는 너무도 지금 까닭이 많이 붙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주저하였다.

“경관으로서 묻습니다. 분명히 그 공채는 아직 댁내에 있읍니까.”

“네 분명히 있읍니다.”

찬두는 드디어 단언하였다.

“언제 보셨읍니까?”

“어제.”

“아니 제 말씀은 현재를 가리키는 말씀이올시다. 어제는 과거가 아닙니까. 현재도 분명히 있읍니까?

“아마 있겠지요. 그건 왜 물으셔요?”

“다른 게 아니라 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서인준 박사 말씀이외다. 서 박사가 그 새 당원 십여 명을 인솔하고 조선에 들어와 활동한 것은 전혀 그것이 목적이었읍니다. 그런데 서 박사의 일행은 오늘 지금 인천으로 출발해서 인천서 오늘 오후 선편으로 상해로 돌아가려 합니다. 아직 그 일행이 기차 안에 있으니까 만약 공채에 이상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어떻게든지 할 수가 있기에 말씀이올시다.

찬두는 깜작 놀라는 모양이었다. 서인준이도 그것을 목적하고 있었다는 것이 뜻밖인 모양이었다.

“어디 잠깐 가 보실 수가 없을까요?”

“가만, 그렇다면 잠깐 기다리세요.”

찬두는 필호를 남겨 두고 그 방을 나갔다. 불안한 표정이 분명히 그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난 일단 나갔던 찬두는 한 칠팔 분 뒤에 도로 돌아왔다.

“있읍니다.”

안심한 모양이었다.

“분명히 있읍디까?”

“네, 한 장도 틀림이 없이….”

필호는 비로소 안심하였다. 서인준 박사는 무위히 돌아가는 것이다. 이름있는 학자 존경하고 사숙하던 스승─ 그 사람은 아무 탈 없이 인제 LC당만 경찰에게 내어주고는 돌아갈 것이다. 그 사람의 어깨 위에 손을 얹기가 차마 어려웠거늘 인제는, 인제는 서 박사가 출발할 때에 공공히 서 박사를 전송할 수도 있다.

“윤 선생님, 그 말씀을 듣고 저도 안심했읍니다. 첫째로는 범죄 사건이 생기지 않은 것이 경관으로 안심할 점이고 둘째로는 사실을 말씀하자면 저는 서 박사를 숭배하는 사람이올시다. 서 박사가 법망에 걸려서 이 손으로써 박사를 체포할 날이 이르면 그런 가슴 아픈 일이 어디 다시 있겠읍니까? 그 공채가 안재하다는 말씀을 들으니 저는 두 가지 이유로써 반갑습니다.”

사실이었다.

만약 서인준으로서 그 공채에 손을 대기만 하였더면 필호는 욱어지는 가슴을 감추고 서 박사를 체포치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런 곤란한 문제가 없어지고 보니 가슴이 매우 가벼웠다.

인제는 LC당을 검거한다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서인준의 말눈치로 LC당의 조선 잠입한 당원 전부를 인제는 알아 낸 모양이었다. 오늘 오후 늦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전부를 잡아 낼 것이다.

“무사히들 상해로 돌아가십쇼.”

풍랑 심하기로 유명한 황해 바다를 조그만 범선을 타고 돌아갈 서 박사의 수하 십여 명에 대하여 필호는 개인으로서 그들이 무사히 상해까지 가기를 심축하였다.

“이 형사.”

“네?”

“대체 서인준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오?”

“상해 ×× 단의 영수올시다.”

“그건 압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범죄 과학자!”

“이번 우리 집에서 공채를 가져가면 물론 ×× 단에 갖다 바치겠지요?”

“물론입니다.”

찬두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 한참을 무슨 생각을 하였다.

그 생각하는 뜻은 짐작할 수가 없으나 무슨 어지러운 문제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드디어 찬두가 말했다─.

“서 박사 혼자 남고 다른 사람은 다 오늘 떠납니까?”

“네.”

“그─.”

김소춘이도 떠났느냐 묻고 싶었으나 형사에게 묻기가 어려운 이름이라 중지하였다. 필호가 그 뜻을 알아채었다.

“김소춘 씨도 오늘 같이 떠났읍니다.”

“경찰에서는?”

“경찰에서는 간섭 않기로 됐읍니다.”

“LC당은?”

“서 박사만 귀경하면 즉시로 착수할 셈이올시다.”

“그래도 서 박사는 그 공채를 일단 LC당에게 주었다가 체포된 뒤에 다시 회수하는 편이 좋겠다고 하는데요?”

“?”

“김소춘 씨가 행방불명이 된 것이 분명해지기만 하면 LC당에서는 즉시로 직접 행동을 취하기 쉬우니까 그러다가는 많은 인명만 손하겠고 하니 그런 참변이 생기기 전에 LC당에게 내어주라고… 그 알선은 자기가 하마고….”

“?”

순간 필호는 알아채었다.

서인준이가 당원들을 미리 돌려보낸 그 뜻도 알았다.

서인준이가 도로혀 LC당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었다. 공채의 은닉 장소는 공공히 가택 수색을 하기 전에는 알아 낼 수가 없고 본시의 계획으로는 권총쯤으로 위협을 해서 빼갈 계획이었겠으나 뚱딴지 LC당이 가운데 뛰쳐들어서 경찰의 주의가 이 집에 집중된 이상에는 그런 방책도 쓸 수 없고 하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LC당의 힘으로 그 공채를 뺏어 내게 하고 자기는 LC당에게서 재차로 그것을 뺏을 계획일 것이다.

경찰과 경계와 위협과 보호가 필요할 때에는 많은 동지도 있어야겠지만 지금 당에게서 살짝 뽑아 LC 내려는 데는 많은 동지가 필요치 않을 뿐더러 여차하는 날에는 희생자만 많이 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동지들은 먼저 다 상해로 돌려보내고 자기 혼자만 남았을 것이다.

인제 인준이가 행하려는 플랜도 필호는 알아 내었다.

오늘 밤이고 내일이고 LC당에게 통지하여 윤 백작 댁 공채를 뺏어 내게 할 것이다. 그러나 LC당에서 뺏어 낸 공채는 즉시로 또 다시 서인준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LC당에게서 빼 낼지 그 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인준에게는 그만한 성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LC당에게서 공채를 뺏어 낸 뒤에는 즉시로 경찰의 힘과 아울러서 경성 있는 LC당원을 전부 잡아낼 것이다.

경찰에서는 LC당이라는 거물을 잡아 내기 때문에 들썩해 돌아간 동안─그리고 따라서 자연히 다른 데는 주의력이 감해질 동안 공채를 손에 넣은 인준이는 국경을 넘어서 몸을 피할 것이다.

경찰에서‘LC당이 공채를 뺏었다.’는 점과‘그 뺏었던 공채를 다시 서인준이가 뺏었다.’는 것을 알 때쯤은 인준이는 상해에서 동지들과 축배를 들고 있을 것이다.

이만한 인준이의 플랜을 직각한 필호는 먼저 놀랐다. 그리고 탄복하였다.

윤찬두의 말을 듣고 경악에 잠겨서 잠시 말없이 있은 뒤에 필호는 입을 열었다.

“윤 선생님, 알았읍니다. 놀라운 계획이올시다.”

“네? 놀라운 계획이란?”

그러나 기밀상 이 이상은 말할 수가 없었다.

“윤 선생님 그 공채를 잘 보관해 두십쇼. 아무리 서 박사가 그런 말을 했다 해도 우리는 자신이 있읍니다. 그 공채가 LC당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LC당원 전부를 잡아 내겠읍니다.”

“네, 넉넉히?”

서인준이의 조력이 없이도 하겠느냐는 뜻이었다.

“부끄럽습니다마는 이번 세계적 깽단에 대해서는 세계적 범죄 과학자인 서박사의 조력이 필요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 공채뿐은 깽단의 손에 넘기 전에 LC당 전원을 체포하도록 서 박사를 움직이겠읍니다.”

LC당원 전부의 거소를 서인준이가 잘 알고 있는 것도 짐작이 가는데 인준이 자기는‘아직 좀더 알아보아야겠다’고 유예하던 까닭도 인제는 짐작이 갔다.

인제는 별다른 방책이 없었다. 서인준이를 엄중히 감시하는 뿐이었다. 비록 서인준이와 LC당 사이에 교섭이 이미 끝나서 그 공채를 LC당에서 훔쳐낼 수단까지 강구되었다 하더라도 서인준이만 엄중히 감시하면 공채는 LC당에게서 경찰로 도로 거두어 올리고 그 뒤에는 주인 윤 백작 댁에 도로 내줄 수가 있을 것이다.

인준이 한 사람에게 대해서만 엄중한 감시를 하면 공채는 다른 데로는 갈 곳이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필호는 인준이를 엄중히 감시하기로 작정하였다.

“공채를 경찰 당국에서 보관해 주었으면….”

찬두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필호가 반대하였다.

“그러다가 불행히 당국의 감시가 미처 및지 못할 때에 LC당에서 공채를 가지러 이리로 왔다가는 뜻 아니한 참변이 생기기도 쉬우니까 그냥 감추어 두세요. 그리고 우리의 눈을 피해서 LC당에서 이리로 온다 할지라도 마음 놓고 공채를 내어주세요. 결코 놓치지 않을 만한 자신이 있읍니다. 조선의 경찰은 고등 경찰만 밝지 사법 경찰은 어둡다고 세상이 비웃지만 이 LC당뿐은 결코 놓치지 않을 만한 안(案)이 서 있읍니다.”

자신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라기보다 오히려 서인준이의 힘을 믿는 것이었다. 서인준이를 감시하여 간접으로 LC당을 감시하자는 것이었다.

“서 박사는 물론 체포되거나 하지 않겠지요?”

“아직 아무 범죄도 없으니까….”

“다행이외다. 나도 몇 번 만나 보았지만 옥에 가둬 두기는 아까운 사람입디다.”

아까운 줄은 필호가 더 잘 아는 바다. 그래서 서 박사로 하여금 국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지금 애를 쓰는 것이다. 만약 순조로운 환경에 태어나기만 했더면 청년 학구로서 만인의 존경을 받을 사람이 자기의 난 땅에도 몰래 들어왔다가 인제 또한 몰래 빠져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필호와 찬두는 서인준의 인물에 대하여 몇 마디 더 사괴었다. 그런 뒤에 필호는 윤 백작 댁을 나섰다.

필호는 다시 찬두를 불러 내었다.

“이 댁에 그 당원이 어떻게 숨어 온다 할지라도 결코 반항하거나 하시지 마십쇼. 하라는 대로 하십쇼. 뒷일은 경찰에서 맡을 터이니까 아무 염려 마시고….”

“그럽시다.”

이런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윤 백작 댁을 나선 필호는 곧 자기의 소속한 경찰서로 달려 돌아왔다.

경찰서로 돌아오매 주임이 필호에게

“아 여보게. 이십여 명의 사복 경관을 준비해 두었는데 대체 언제 쓴단 말인가.”

고 채근하였다.

“저도 똑똑히 모르겠읍니다. 아마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에 쓰게 될 모양이올시다.”

“LC당 전부를?”

“네 전부를.”

그리고 그는 즉시로 경비 전화로서 인천 경찰서로 알아보았다.

추측하였던 바와 마찬가지였다. 서인준이의 말에 거짓이 없었다.

한 척의 범선이 미리 준비되어 있었고 여기서 부탁한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자 즉시로 모두 그 배로 갔다. 전원이 다 배에 오른 뒤에 축배인지 이별배인지 배에서 한 잔씩 포도주를 나누고는 그 가운데서 가장 두목인 듯한 신사는 배에서 내렸다.

그 신사가 내린 뒤에 배는 즉각으로 황해 바다로 떠나갔다. 부두에서 보내는 신사와 배에 오른 사람들 사이에는 손수건으로 작별의 인사가 사괴어졌다.

배가 안 보이게까지 된 뒤에 신사는 도로 인천역으로 갔다. 인천역에서 기다리다가 경성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차표는 경성역까지 샀다. 지금 경성으로 가는 도중이다─ 인천에서의 대답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못하고 서 박사와 수하 십여 명은 고국을 등지고 다시 상해로 갔다. 서 박사는 다시 지금 경성으로 향하여 돌아오는 도중이다.

필호는 시계를 꺼내어 보고 기차 시간표를 보았다.

인제 사십 분쯤 뒤면 서 박사는 다시 경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필호는 자기의 그 새 안 바의 모든 비밀을 자기의 가슴속에만 깊이 감추었다. 서인준이로 하여금 국법에만 걸리지 않게 하자. 그리하여 곱다랗게 도로 상해로 돌아가게 하자. 죄를 범하기만 하면 책임상 반드시 체포해야 할 필호는 자기의 존경하고 사숙하던 이름있는 학자를 잡아 가두기가 싫었다.

필호는 서장실에 들어갔다.

“서장.”

“응?”

“서 박사가 지금 인천서 서울로 돌아옵니다. 저는 이제부터는 서 박사와 꼭 붙어 LC당 검거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읍니다. 어제부터 배치해 둔 사복 경관들은 필요에 응해서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해 두 시기를 바랍니다.”

“그건 무론 그렇게 하겠지만 따로이 각 도로 연변에 경관을 배치할 필요까지는 없겠나?”

“그건 아마 필요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각곳에 헤어져 있는 LC당원의 주소는 서 박사가 아마 죄다 알아 낸 모양이니까 보통 방문객같이 차리고 찾아서 모두 살짝살짝 잡아 올리면 저편에서도 손쓸 틈도 없으리다.”

“좌우간 이번 일의 지휘는 자네에게 일임했으니까….”

“그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읍니다.”

그리고 필호는 서장실을 물러 나왔다.

보매 시간도 인젠 꼭 알맞게 되었다.

필호는 다시경찰서를 나섰다. 정거장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인천서 돌아오는 인준이를 꼭 뒤를 밟아서 인준이를 엄중히 감시하자는 것이었다.

경성역에 도착하매 마침 인천서의 기차가 도착하여 승객들은 출찰구로 몰려 나오는 즈음이었다. 인준이를 놓치지 않으려 필호는 출찰구로 달려갔다.

거기서 불행인지 요행인지 필호는 방금 정거장 구내에서 나서는 인준이와 딱 마주쳤다.

“아, 이 공.”

몰래 뒤를 밟으려다가 정면으로 마주친 필호는 그만 싱겁게 웃어 버렸다.

어젯밤 김소춘과 한 침대에서 하룻밤을 보낸 인준이의 뒤를 우리는 밟아보자.

이튿날 아침에 아파트에서 김소춘이와 함께 조반을 나누었다.

오늘 오전 열시에 반드시 전화를 걸고 미스 영과 약속한 일이 있는 인준이는 열시를 기다려서 미스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인준이올시다.”

“안녕하세요?”

수화기를 통하여 들리는 고혹적인 영의 목소리는 인준이에게는 여전히 상쾌하였다.

“편히 잘 잤읍니다. 미스터 매켄지는?”

“어젯밤 직행차로 상해로 떠났읍니다.”

“당원들의 반대는 없었읍니까?”

“당수의 행하는 일에는 당원은 용훼를 못합니다.”

“수고하셨읍니다.”

어떤 핑계로 보냈는지도 알 수 없으나 매켄지를 도로 상해로 돌려보낸 미스 영의 힘은 경탄할 만하였다.

인준이가 다시 물었다─.

“누구 곁에 사람이 없읍니까?”

“전화하시마 한 시간이 됐기에 모두 멀리 보냈읍니다.”

“그럼 말씀하리다. 윤 백작 댁 공채 문제는 LC당에서 가기만 하면 내어주기로 승낙이 됐읍니다. 오늘 밤 열두 시쯤 가도록 마련하실 수가 있겠읍니까?”

“그건 쉬운 일이지요.”

“그게 당원의 손에 들어가면 누가 그걸 맡기로 됐읍니까?”

“미스터 메켄지가 떠나시기 전에 지정했읍니다. 제가 맡아 가지고 상해로 돌아오라고….”

안심하였다.

인제는 목적물이 자기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형사 이필호가 자기의 위에 감시의 눈을 부웃고 있는 줄은 짐작도 못한 인준이는 공채는 벌써 자기의 것으로 여기었다.

“그럼 미스 영.”

“네?”

“우리의 플랜을 이렇게 세웁시다.”

“어떻게요?”

“LC당의 기관총 세 대는 모두 어디 있읍니까.”

“이 집에….”

“그럼 문제가 안 됩니다. 오늘밤 공채가 손에 들기만 하면 미스 영은 즉시로 비행기 감추어 둔 곳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그리고 자동차를(그 미스 영이 가신 곳을 아는 운전수를 말씀이외다) 그 자동차를 ×× 정 ○○빌딩 앞에 내일 오전 열시로부터 열두 시까지 기다리고 있게 해주세요. 나는 경관들을 데리고 LC당원 전부를 일시에 체포케 한 뒤에 안 군과 함께 그 자동차를 타고 즉시로 미스 영 계신 곳으로 가겠읍니다. 거기서 비행기로 상해를 향해서 즉시로 출발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세요.”

“넉넉히 되겠읍니까?”

“LC당 최고 고문의 한 사람인 미세스 매켄지의 권병으로 명령해 주십쇼. 내일 오전 열시까지는 아무도 외출치 말고 자기 숙소에 박혀 있고 그 뒤에는 자유 행동을 취하고 밤차로 각각 남북으로 갈리어서 만주 경유와 나가사끼 경유로 상해로 돌아오라고….”

“그러기 전에─.”

“무론 전부 체포가 될 겁니다. 내일 오전 열시까지는 결코 외출치 말라고 엄명만 해주세요.”

“그건 그러겠읍니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는 비행기 감춘 장소로 오시겠읍니다그려.”

“별다른 착오만 생기지 않으면….”

“그럼 내일 꼭요. 어김없이…. 선생님 당원들은 오늘 떠납니까?”

“네, 오늘 낮 인천서 떠납니다.”

이리하여 미스 영과 단단히 약속을 하고 인준이는 전화를 끊었다.

일이 모두 자기의 뜻대로 진행되는 듯싶다.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