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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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편집]

“노인장 춘추가 어떠세요?”

“쓸데없는 나이가 한 육십 되는가 봅니다.”

공주 읍내 어떤 여관이었다. 묻는 사람은 서인준 대답하는 사람은 그 여관의 늙은 주인─.

노백작─ 더구나 그의 부인의 과거에 관해서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 공주로 달려내려온 인준이었다.

“춘추에 비해서 아주 건강하시군요.”

“아직도 젊은이를 능가합니다.”

공주로 고로(古老)를 만나러 내려온 인준이는 여기저기 찾을 것이 없이 요행히 여관 주인인 노인을 만났다.

몇 마디의 인사가 왕래되었다. 그 뒤에 인준이는─

“노인장 좀 이상한 말씀을 묻습니다마는 혹은 노인장께서 옛날 관속 다니시던 이를 아시는 분이 안 계십니까?”

“나도 옛날에는 관속을 다녔소.”

더욱 요행이었다.

“언제쯤이오니까?”

“한 사십 년 전 되나 보외다.”

“저 윤 백작─ 윤×× 씨 말씀이올시다. 그 분이 감사로 계신 때쯤─.”

“네. 내가 꼭 그 분 감사로 계신 때 통인으로 있었소.”

인준이는 눈을 들었다. 며칠을 두고두고 알아보려던 일이 혹은 손쉽게 알게 될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럼 그때 영찰로 계시던 김봉덕이라는 어른을 혹은 짐작하십니까?”

“친히 지냈소이다.”

“그렇습니까? 그이에 관해서 좀 알아볼 일이 있어서 일부러 공주까지 왔읍니다.”

“어떤 일이외까?”

“그이가 생존해 계시면 금년 춘추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하고 동갑이니 금년이 환갑이외다.”

“그 이께 봉사손이라도 있읍니까.”

노인은 머리를 기울였다.

“미장가 전에 작고했으니까 없을걸요.”

“미장가 전이라 해도─.”

인준이는 빙긋이 웃었다.

“후사 못 둔다는 법이야 없지 않습니까.”

“글쎄 시속말에 어미와 외조모 밖에는 확실한 친척이 없다니 모르기는 하겠소마는….”

노인도 얼굴을 깨뜨려 가면서 미소하였다.

“아니 본떠서 세상말을 듣자면 어떤 기생과도─.”

“계월이 말씀이오?”

“지금 윤 백작부인 말씀이올시다.”

“그 이가 기명이 계월이외다.”

“그 분과의 새에도 소생이 없었읍니까?”

“없었소이다.”

“분명히 없었읍니까?”

노인은 머리를 기울이고 잠시 생각하였다. 그런 뒤에 입을 열었다.

“분명히 없었소, 나도 그때 이름있는 오입장이─ 기생이 애를 난 기생인지 아닌지 쯤은 모를 사람이 아니오. 그리고 그 사람─ 김 영찰이 작고한 게 스물한 살이고 김 영찰이 작고하기 한 달 전쯤부터 계월이는 사또께 수청을 들었으니까 김 영찰과 계월이의 새에는 분명히 소생이 없었소.”

이 너무도 자신있는 듯한 단언 앞에 인준이도 머리를 기울였다.

“지금 윤백작 부인의 춘추는 어떻게 됩니까?”

“지금 갓 예순 살.”

“김 영찰보다 한 살 아래올시다그려.”

“그렇소.”

“지금 그때 그 분의 동무되는 퇴기로 공주에 생존해 있는 분이 없습니까?”

“왜 없어요 많지요.”

“만날 수가 있을까요?”

“있다뿐이리까. 지금도 대개 기생어미 기생할미니까 노형 같은 하이칼라 청년이 가기만 하면 놓아 주지를 않으리다.”

노인과 인준이는 여기서 또 웃었다.

노인에게서는 예기했던 대답을 못 들었다. 인준이는 그때 기생이던 사람을 차례로 다 찾아 보기로 하였다.

인준이는 그 뒤 사흘을 그냥 공주에 묵어 가면서 노백작이 공주 감사시대에 기생 노릇을 하던 노파며 그때 관속이던 사람으로서 현존한 사람은 죄 찾아 보았다. 한 가지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 김 영찰과 계월이의 새에 사내 소생이 있다. 계월이가 윤 백작의 소실이 되기 전에 애를 낳은 것이 있다. 이 한 마디를 얻어 듣기 위해서 짐작갈 만한 곳은 모두 돌아다녔다. 그러나 모두 그것을 부인하였다. 사람이 애를 배고 낳는다 하는 것은 하루나 이틀 동안에 되는 일이 아니고 적어도 근 십개월이 걸려야 되는 것이매 그 때의 기생 계월이로서 만약 김봉덕과의 새에 소생이 있다 할진대 이것을 아무도 모를 까닭이 없을 터이다.

지금 윤 백작 댁에 비밀히 출입을 하며 하인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노부인을 만나는 형적이 있으며 나아가서는 충복 완쇠를 살해한 범인을 혹은 김봉덕과 백작부인 새의 비밀의 자식의 행동인지도 알 수 없다 하여 그 일을 알아보려 내려왔던 인준이는 실망하였다.

생각해 보건대 LC당의 일원이며 겸하여 백작 댁에 출입하는 그 괴한이 단지 한 개의 LC당원뿐에 그친다면 머리를 끄떡이지 못할 일이 많다. 그 괴한을 김봉덕과 백작부인 새의 소생이라고 추단한 인준이의 추측에는 여러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로 노백작의 비상한 공포였다. 그 공포는 도적에게 대한 부자(富者)의 공포가 아니요 분명히 어떤 사사로운 복수에 대한 공포였다.

둘째로는 백작부인의 태도였다. 여러번 괴상한 인물이 백작부인을 방문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여 백작부인은 그 인물을 두려워하면서도 또한 거절치 못하는 태도가 그 괴한과 백작부인의 새에 무슨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세째로는 완쇠 살해 사건이었다.

인준이가 완쇠를 심문하여 완쇠의 입에서 김봉덕이라 하는 이름을 찾아 내고 인제 바야흐로 또 다시 추구하여 백작부인에게 관한 비밀을 탐사하여 보렬 임시에 완쇠가 살해를 당한 것이었다.

그것이 단지 LC당의 돈을 탐내는 일이라면 완쇠는 살해할 가치가 없는 인물일 것이다.

한 개의 하인에 지나지 못하는 인물인 완쇠를 살해한다 하는 것은 머리를 끄떡이지 못할 일이다. 완쇠를 그냥 살려 두었다가는 어떤 비밀이 탄로될 염려가 있기에 분명히 살해한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완쇠 같은 하인에게까지는 흉수가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몇 가지의 점으로 보아서 인준이는 이번의 범해의 하수인을 김봉덕의 아들로 인정하였던 것이다. 김봉덕의 아들이요 또한 백작부인의 아들인 괴한이 그 새 상해에서 LC당의 일원으로 있다가 이번 LC당에서 조선 윤 백작 집 재물에 착안을 하게 됨을 기회로써 당의 임무도 겸 복수도 겸해서 잠입한 것으로 알았다. 사십 년 전에 자기의 아버지 김봉덕이가 당시 공주 감사이던 윤 백작에게 당한 그 비분한 사건에 대하여 김봉덕이의 아들로서 당연히 들어야 할 복수의 손을 윤 백작의 위해 가하기 위해서 잠입한 것으로 알았다. 인제는 법률로써 갚지 못할 원수를 자기의 손으로 갚으려고 잠입해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랬더니 공주에 와서 알아보니 김봉덕이고 계월이고 간의 모두 소생이 없었다 한다.

김봉덕이고 계월이고 소생이 없다손치면 이번 사건에 대한 인준 자기의 추단은 근본적으로 꺾어져 나가는 것이다.

알아볼껏 알아보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인준이는 그만 맥이 빠졌다. 이번의 공주 여행은 인준 자기에게는 한낱 허사였던가.

“허사로다.”

공주에 와서 탐지하여 보아서 괴한의 정체를 알아 가지고 자기의 방해자에게 대한 대책을 세우려던 인준이는 사흘을 알아보고 그만 나흘째는 도로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대었다.

그때에 마침 인준이는 새로운 한 개의 뉴스를 얻었다. 지금의 백작 노부인이요 당시의 계월이란 사람과 형야 아우야 하면 친히 지내고 계월이가 감사의 소실이 된 뒤에도 그냥 교제를 계속하였다는 노파가 공주읍에서 한 십리쯤 떨어져 있는 K동이라는 데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었다.

서울로 가려던 인준이는 서울을 그만두고 즉시로 K동으로 그 노파를 찾아갔다. 농촌에서의 양복장이의 위력은 당당하였다. 그 노파는 인준이를 형사로라도 인정하였는지 치를 떨면서 자기의 아는껏 대답하였다.

드디어 인준이는 거기서 알았다. 자기의 생각이 결코 그릇된 생각이 아니었던 것을….

노파의 말은 대략 이러하였다─.

봉덕이가 계월이와 친한 죄로 횡사를 한 때는 계월이는 태중이었다. 물론 봉덕이의 씨였다.

감사도 계월이가 태중임은 몰랐다. 감사의 소실이 되어 좀 살다가 차차 배가 불러 가매 계월이는 하릴없이 자기는 태중임을 감사께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신병이 있어서 온천을 간다고 속인 뒤에 산골 어떤 친척의 집으로 나아가서 몸을 풀었다. 몸을 푼 뒤에 다시 윤 백작에게로 돌아갔다.

윤 사또의 체면상 감쪽같이 세상을 속였는지라 세상에는 누구라 계월이가 애를 낳은 줄을 몰랐다.

김봉덕이의 유복자는 어떤 산골 자기의 외가 친척 되는 집에서 열 살이 넘도록 자랐다. 열 살이 훨씬 넘어서 어느 기회에 우연히 자기를 길러준 노인에게서 자기의 비밀을 다 안 뒤에는 종적이 없어지고 말았다.

계월이의 몸에서 난 김봉덕이의 유복자의 이름은 그때는 김소춘이라 불렀다. 그의 종적이 사라져 없어진 것이 지금부터 이십 오륙 년 전이다.

─ 이만한 사실이었다.

인준이의 추측이 틀림이 없었다. 처음에 인준이가 서울에 들어서는 그 새벽에 노백작을 찾았다가 권총 세례를 받고 달아난 괴한은 김소춘─ 말하자면 노백작의 아들 되는 윤찬두와는 아비 다른 동생일 것이었다.

완쇠는 처음에는 단지 물건을 탐내는 도적으로 알았을 것이었다. 그날 밤 소춘이는 노백작에게 자기의 정체를 말하였을 것이다. 정체를 듣고 노백작이 질겁을 해서 권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도망갔지만 그 뒤에도 내실로 간간 자기의 친어머니 되는 백작부인을 찾아 다닌 형적이 분명하였다.

아들 하나를 외딴 산골에 낳아 두고 사십 년간을 소식조차 모르던 어머니의 마음, 그 아들이 지금 자라서 흉한의 한 사람이 되어서 자기의 남편을 위협하러 온 때에 받을 어머니의 충동─ 호소할 곳이 없는 노부인, 그때 사정을 짐작을 하는 완쇠를 불러서 그 말을 다하고 자기의 심정을 알렸을 것이다.

그런 비밀을 알게 되기 때문에 완쇠는 또한 소춘이에게 피살을 당했을 것이다.

단지 재물만을 빼앗기 위해서도 수많은 피를 흘리기를 주저치 않는 LC당이다. 지금 복수와 이용과 두 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조선에 들어왔으매 얼만한 잔혹한 일을 행할지 예측도 할 수 없다.

사건의 대략을 짐작한 뒤에 인준이는 몸을 떨었다. 그 노파에게 향해서는 이 뒤에는 누구에게든 일체 그 말을 다시 하지 말라고 엄하게 당부를 한 뒤에 인준이는 달음박질하다시피 하여 공주 읍내로 돌아왔다.

읍내로 돌아온 인준이는 우편소로 달려가서 이필호에게 전보를 쳤다. 경찰력을 다하여 백작 댁을 보호하라, 사건 이면은 복잡하다. 밤차로 상경한다.

이런 뜻의 전보였다.

지금 백작부인의 심경은 어떠할까, 사십 년 전에는 어떤 산골에 낳아 둘 뿐 그 소식도 모르던 아들이 눈앞에 나타났으매 이것을 반가이 여길까?

혹은 그 아들이 흉악한 악당이 되어 자기네 집안을 파괴키 위하여 나타난데 대하여 밉게 여길 것인가.

무론 김소춘이도 백작부인 자기의 몸을 아프게 하여가면서 낳은 자식이다.

소춘이의 아버지 되는 김봉덕에게는 (그 새 들은 바의 의지하건대) 여간 정이 들지 않았었다 한다. 그러면 그 흉한의 위에도 모성애는 내려 부어질 것인가?

윤찬두도 또는 백작부인의 입장으로 보자면 자기의 몸으로 낳은 사랑하는 자식이다. 지금 그 사랑하는 자식의 위에 박해의 손이 가하여지려 하며 박해자는 다른 사람도 아니요 역시 자기의 자식이매 백작부인의 지금의 마음은 어떠할까.

김소춘이의 입장으로 보자면 윤찬두는 자기와 아비를 달리한 형제라 하기는 하지만 또한 자기 아버지의 원수의 자식일 것이다. 더구나 윤 백작은 자기와는 아무 혈통상의 연락도 없는 단지 불구대천의 원수일 따름이다. 그 뒤에 지금 복수의 날개를 펴려 함에 있어서 결과를 위하여는 결코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첫 희생자로서 벌써 완쇠가 나타났다. 그러나 완쇠 사건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지 심리적으로 혹독한 복수 행동이 아니다. 윤 백작에게 대해서는 그런 단순한 행동만 취할 것이 아니다. 더 혹독한 수단─ 윤 백작의 집안을 박멸시키는 다른 수단을 취할 것이다.

윤 백작 집에 감추여 있는 거대한 재물이 원 목적이고, 김소춘이의 복수는 한 개의 부수단에 지나지 못하는지 혹은 복수가 원 목적인지 이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당원이 바야흐로 올리려는 피제사뿐은 이미 방지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조선 사람이라는 의미로보다 인류(人類)의 한사람으로서 이 인류 사회의 인제 생기려는 비도덕적 복수 사건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여관으로 돌아오매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은 빙글빙글 웃으면서

“그래 알아보셨읍니까.”

고 하며 마주 나온다.

“알아보아야 별다른 것이 없읍디다.”

이만치 대답하여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에 주인은,

“편지 왔읍디다.”

하면서 편지를 내어맡긴다.

보매 안(安)에게서 온 편지였다. 안의 편지는 간단하였다.

‘이런 것이 선생 침대에 놓여 있읍디다.’

이 한 마디뿐이고 그 침대에 놓여 있더라는 물건을 동봉했다.

또 협박장이었다.

‘제삼경고

필요없는 일에 관계치 마오. 귀공이 만약 귀공의 생명을 중히 여긴다면…. LC’

그렇다. 자기에게는 직접 필요는 없다. 윤 백작 대 재물을 훔친다는 데는 서로 이해관계가 있을지 모르나 김봉덕 사건에는 자기는 관계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일단 착수했으며 범죄 과학자로서 아직껏 연구해 오던 LC당이 행하는 일인 이상에는 중도에 끊을 수가 없다.

인준이는 그 안 군의 편지는 불살라 버리고 협박장뿐을 장래의 무슨 참고거리라도 될까 하여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이전 인준이가 받은 협박장과 같은 타이프라이터로 찍은 것이었다.

저녁 직행차에 인준이는 타게 되었다. 보통 삼등차를 대개 타던 인준이가 이번에는 일등차를 탔다.

인준이의 맞은 편에는 웬 서양 사람 하나가 신문을 넓게 펴고 읽고 있다.

인준이는 잠시 밖에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맞은편 서양인이 신문을 뒤집는 바람에 눈을 그리로 굴렸다.

아는 사람이었다. 아직 서로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으나 상해에서 어떤 구락부에서 간간 보던 사람이었다.

상해에서는 비록 모르는 체했지만 갑자기 이 기차 안에서 만나매 인준이도 좀 반가웠다.

그 사람도 같은 모양이었다.

둘은 서로 간단히 목례(目禮)를 하였다.

인준이가 먼저 영어로 물었다─.

“여행차세요?”

“네 노형은?”

“나도 여행이외다, 상해서 돌아가시는 길이오?”

“아니 경성까지 갑니다, 노형은?”

“나도 경성까지.”

“여기서 만나니 반갑소이다.”

“네, 참 반갑소이다. 나는 이학 박사 서인준이라는 사람이외다. 이 뒤 상해서 다시 뵐 때도 교제를 하십시다.”

“고맙습니다. 나는 해군 대좌 L M 매켄지.”

무얼? 창졸간이라도 표정에까지는 안 나타냈지만 인준이는 눈을 들어서 매켄지 대좌를 보았다. 나이는 오십이 조금 넘었을 듯하며 군인다이 쾌활스러우면서도 어디인지 음험한 기운을 띤 얼굴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미세스 매켄지인 미스 영의 남편으로는(인준이의 눈에는) 좀 부족히 보였다.

“아 노형이 매켄지 대좌세요? 부인과는 어떤 기회에 서로 압니다마는….”

“네. 안해는 나보다 먼저 서울 와 있읍니다.”

이 인물이 미스 영의 남편이었던가? 그 쾌활하고 슬기롭고 아리따운 미스 영의 남편이었던가?

“노형은 조선 분이었소이다그려.”

“네.”

“나는 상해서 봤기에 중국 사람으로만 알았더니… 내 안해도 조선 사람─ 고국 산천을 구경하겠다고 너무 그러기에 조선에 오기로 했읍니다.”

잠시 조선 산천에 대한 외국 여행자로서의 감상담이 교환되었다.

그러는 새에도 인준이의 마음은 연하여 무엇이 부족한 듯이 생각되었다. 생각 안하려 하여도 연하여 미스 영의 생각이 인준이의 머리에 왕래하였다. 그리고 거기 따라서 그 정체 잡기 힘든 여인의 과거까지 연하여 생각났다.

오스트리아의 궁전 댄스라고 스스로 자랑하던 인준 자기의 댄스를 ‘파리에 가면 시골뜨기라고 웃기웁니다’고 교정하여 주던 댄서 미스 영─.

다시 올라서서는 북평 ×× 대학 화학 교실에서 교편을 들고 명쾌한 어조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대학 교수 미스 영─.

다시 돌아와서는 누런 털의 탈을 쓰고 스테이지에 나서서(일류 가수에게 지지 않을 만한 명랑한 솜씨로) 하바네라를 부르던 미세스 매켄지─.

시인의 무덤 앞에 꽃다발을 들고 서서 눈물을 흘렸노라는 감상적인 여인 미스 영─.

과거에 본 일이 있는 가지각색의 미스 영의 형용이며 미스 영의 말솜씨가 회상되어 인준이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였다.

“미스터 매켄지는 며칠이나 경성 계시렵니까?”

“내 안해의 처분대로, 미스터 서는?”

“언제까지 있을는지 똑똑히 알 수 없소이다.”

“할 수만 있으면 함께 돌아갔으면!”

“그랬으면 좋겠소이다.”

평범한 인사가 왕복되었다.

“미스터 서, 수원이라는 곳이 어디오니까.”

수원에 거진 이르러서 매켄지는 인준에게 물었다.

“인제 오륙 분만 더 가면 수원이지요.”

“네 그래요? 미세스 메켄지가 수원까지 나오는데.”

“아….”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인준이에게는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 듯이 생각되었다. 미스 영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니만큼 그의 남편 되는 매켄지에게는 무엇이 부족한 느낌만 연하여 났다.

기차는 수원역 폼에 들어섰다.

매켄지는 안해를 맞으려 인준이는 친구를 맞으려 기차 승강대에 나섰다.

“아!”

“아!”

기차가 멈춘 뒤에 부부 새에 사괴어진 인사─.

당연히 부등켜 안고 키스를 할 것을 예기하고 그것을 자기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경우를 딱하게 생각하던 인준이는 이 너무도 간단한 인사에 도로혀 경이의 눈을 던졌다.

안해가 기차에 오르는 것을 매켄지는 손을 붙들어서 조력하여 주었다. 남편에게 손을 잡히어 승강대에 오른 미스 영은 즉시로 인준이에게 향하였다─.

“선생님은?”

“어디 갔다 오는 길에 요행히 매켄지 대좌와 같은 차를 타게 됐읍니다.”

“어디를 가셨읍니까?”

“공주라는 땅이지만 부인이야 공주가 어디 붙은 곳인지 아시겠읍니까?”

“공주?”

당황해 하는 기색을 미스 영은 감추지를 못하였다.

“나흘 전에 가셨지요?”

영의 질문

“네.”

“그새껏 공주 계셨읍니까?”

“네.”

이때에 매켄지 대좌가 비로소 새에 들어왔다.

“좌우간 승강대에 있을 게 아니라 들어를 갑시다.”

셋은 차실 안으로 들어왔다. 예의상 맨 뒤에 끌려들어온 인준이는 미스 영의 어깨의 태도로써 그의 마음의 불안을 보고 이상히 여기었다. 차실 안에까지 들어온 인준이는 자기 자리에 놓인 자기의 모자를 집었다.

“저 차에 친구가 하나 있어서 실례하겠읍니다.”

예의상 오래간만에 만나는 부처의 새에 끼여 앉기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를 만나 보시고는 곧 이리로 도로 오세요.”

오히려 고뇌하는 듯한 표정을 얼굴에 나타내어 가지고 인준이를 보내는 미스 영─.

인준이는 일등실을 나왔다. 머리를 푹 가슴에 묻은 채 이등실로 지났다. 그리고 삼등 객차까지 이르러서 그 난잡한 차실의 모양이 전개될 때야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어쩐지 자기로도 형용할 수가 없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번뇌라 할까 고민이라 할까 스스로 알 수 없는 무거운 마음이었다.

만원 된 삼등 차실을 앉을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한 삼십 분가 세면대 앞에 서 있다가 다시 매켄지 부처가 타고 있는 일등 객실로 돌아갔다.

문을 열면서 걸핏 보매 매켄지 부처는 머리를 모으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그 지아비와 안해─ 의논보다도 먼저 상봉을 즐겨야 할 것이어늘 이 부처는 웬 셈인가.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한 이로서 여기는 저으기 의아한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뿐더러 아까 수원역에서 만날때도 한 번의 키스도 없이 서로 “아!”의 한 마디로서 인사를 끝내지 않았나.

인준이는 매켄지 부처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부러 덜컥 하니 소리가 크게 나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부처의 눈이 자기에게로 올 때에 얼굴에 미소를 나타내며 모자를 벗으면서 부처의 가까이로 갔다.

인준이는 그 곁에까지는 갔지만 방해자가 되는 것을 꺼리어서 좀 멀리 앉으려 하는 것을 미스 영이 굳이 가까이 오라고 권하였다.

부부는 같은 의자에 앉고 인준이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세 사람의 대좌가 이상하였다. 세 사람이 다 제각기 기분이 어그러진 것 같은 느낌때문에 유쾌한 담소가 계속되지 못하였다. 한 사람이 한 마디 하면 다른 사람이 대답하고 그 뒤에는 다시 이야기가 끊어지고 하였다. 기차는 드디어 경성역에 도착하였다. 기차에서 내리면서 인준이는 매켄지 부처와 작별을 하고 두리두리 살펴보았다. 혹은 이필호가 나왔을지도 알 수 없으므로….

인준이의 예측대로 이필호는 인준이를 맞으러 나와 있었다. 필호는 인준이를 발견하고 인준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그때였다 인준이는 기괴한 일을 당하였다.

기차에서 내려서 짐을 아까보(あかぽろ─ 정거장에서 수하물을 나르는 짐꾼)에게 맡기느라고 꿈질거리고 있던 미스 영─ 미세스 매켄지가 작은 소리로 제 남편에게 향하여

“저 사람이 이필호라는 형사여요.”

하고 소근거리는 것을 들었다.

이것을 단지 무심히 들을 일일까.

인준이는 필호에게 가까이 갔다. 매켄지 부처는 자기의 갈 곳으로 갔다.

“윤 백작 댁 보호책은?”

인준이는 이것부터 물었다.

“최상의 책을 썼읍니다.”

“수단은?”

“정사복 경관 삼십 명을 주야 교대해서 지키도록.”

“수상한 사람의 출입을 금케 하고?”

“네. 한데 대체 어떤 일이오니까?”

“문제는 복잡하외다. 어디 조용히 이야기할 데로 갑시다.”

둘이서는 정거장을 나왔다. 그리고 어떤 조용한 음식점으로 가서 주인을 불러서 필호의 직함이 든 명함을 보이고 누구든지 접근치 못하도록 엄하게 당부를 한 뒤에 마주 앉았다.

사십 년 전 공주에서 생긴 일에서 비롯하여 그때의 김봉덕의 아들이 지금 LC당의 한 사람으로 되어 옛날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잠입한 그 내력을 인준이는 필호에게 말하여 주었다.

LC당에서 원수를 갚으려는 이상 어떤 수단을 취할지 알 수가 없으니 윤 백작 집 가족의 생명을 최상의 수단으로 써서 강구하며 일변으로는 LC당이 장차 취하려는 수단을 알아 내어 가지고 그 방비책을 강구하기로 의논을 하고 인준이는 혹은 장래 다른 사건으로는 경찰과 대립이 될는지도 모르지만 LC당 행동 방어에 대하여는 경찰의 비공식 고문이 되기까지 약속하였다.

“첫째로 LC당의 본거를 알아 내야 할 것이외다. 나는 개인에 지나지 못하고 배경도 없으니. 이 방면에 관해서는 이 공에게 부탁합니다. 그 방법은 인제 연구해 봐서 생각되는껏 이 공께 코치할 테니 경찰은 경찰로서 인제 조선 안에서 생기려는 중대한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기에 전력을 가해야 합니다.”

이 인준이의 말에 대하여 필호는 머리를 조았다─.

“박사만 믿습니다. 조선 경찰에서는 아직 LC당이라는 것은 모릅니다. 박사의 지도만 기다립니다.”

근 한 시간을 인준이는 필호와 밀의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필호가

“선생은 위험치 않으십니까? 혹 필요하시다면 선생도 경찰에서 보호토록 할까요.”

할 때에 인준이는 웃으면서

“그만두십쇼. 보호는 좋거니와 나는 또 나대로 경찰에 비밀히 할 일도 있으니….”

하고 필호와 작별하고 자기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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