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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해협/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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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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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가 S읍을 떠난 뒤 준걸의 마음은 끝없이 외로왔다. 정 거장까지 전송을 하며 어딘가 적막한 고독의 빛이 흐르는 소희를 붙들고 잊을 수 없는 하소를 눈물겨웁게 하였건만 끝끝내 소희는 듣지 않고 떠나버리고 말았다.

(피가 찬 동물! 그것은 지상에 있는 동물로는 파충류(爬蟲 類)가 아니냐? 제일 알기 쉬운 것으로 예를 들자면 뱀, 소희 는 뱀같이 차고 독한 여성이다!)

준걸은 이렇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소희의 가슴속엔 영철에게 대한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준걸은 이해 하지 못하였다. 정이 한곳에 있을진댄 다른 곳에는 찬 물결 밖에 있을 게 없다는 신조(信條), 한류(寒流)와 난류(暖流)가 한데로 합칠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진 소희는 준걸에게 대한 태도가 냉정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이조차 가버리었구나!)

안타까운 비련(悲戀)의 쓰린 상처를 안고 그는 방학동 안 밖에도 나가지 않고 문을 첩첩히 닫은 채 집안에 들어 앉아 만 있었다.

그러나 그 봄이 가고 여름이 또 가고 가을이 왔을 때 실연 의 쓰리고 아픈 상처를 안은 준걸에게 새 희망의 기쁜 소식 이 왔다. 그것은 독일에서 발행되는 과학 잡지에 '조선 곤충 의 특질(朝鮮昆蟲의 特質'이란 자기의 논물이 실린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 논문은 세계 학계에 커다란 파동을 주어 만 국 곤충 전람회에 조선 곤충 표본을 출품해 달라는 의뢰장 (依賴狀)까지 왔다. 물론 독일어를 알파벹이나 아는 그는 일 본말로 써가지고 그것을 번역을 전문하는 어떤 독일인에게 의뢰해서 작성한 논문이지만 어떻든 그것이 세계 학계에 큰 쎈세이션이 일어났다는 것은 준걸 자신으로도 기쁜 일이 아 닐 수 없었다. 더구나 자기의 채집한 곤충을 다음해 시월에 독일서 개최되는 세계 곤충전람회에 출품까지 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십여년 동안 닦아온 자기의 공적에 자기 스 스로 기쁨의 물결이 가슴 가득히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몇날이 가지 않아서 발행되는 각신문에서도 지국을 통하여 그것을 조사해 가더니 그 다음날 석간에 사단 기사로 '조선 과학의 세계적 승리'라느니 '각고근면 십여성상 고준걸씨의 경이연구'라느니 '만국 곤충전람회에 조선곤충이 진출'이니 각기 특색있는 제목으로 준걸의 공적을 칭송하여 주었다.

그런데 그 기사가 난지 이틀인가 지나서 준걸에겐 또다시 기쁜 소식이 왔다. 그것은 수월전에 치른 문검(文檢)에 파스 가 됐다는 것이다.

준걸의 기쁨은 끝이 없었다. 희열 흥분에서 오는 가슴의 고동! 준걸은 독일 잡지와 그 의뢰장이며 조선 신문에 게재 된 기사며 문검 파스 통지서며 번갈아 쥐어 보면서 혼자 희 열에 넘치는 웃음 속에 파묻혀 있었다.

거듭거듭 닥쳐오는 행복의 금풍(金風)은 성숙(成熟) 열매를 준걸의 온몸 가지가지에 열어 주었다. (이것이 내 일생의 행 복이 아니냐 내 일생의 사업이 아니냐!) 준걸은 외쳤다. 그러나 그 외침 속에는 고적과 애수의 안 개가 어려 있었다. 그것은 차고 쓰린 실연의 상처다.

(소희가 있었더면 만일 소희가 나를 사랑했더면 얼마나 좋 아할까?)

공상의 실마리가 기쁨의 물결을 헤치고 사르르 준걸의 가 슴에 스며들 때 준걸은 끝없이 울고 싶었다.

"준걸군 준걸군!"

"거 누군가?

밖에서 부르르 소리가 요란하다.

"거 누군가?"

"낼세!"

"나라니? 누구야!"

"나야!"

"들어오게!"

준걸은 반갑잖게 인사를 하였다.

들어오는 것은 변함없는 희준이었다.

"참 반갑네! 신문을 보니 매우 영광스럽네!"

한편 비웃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나 준걸은

"감사하네! 모두 여러 친구의 덕일세."

하고 감격된 듯이 굳은 악수를 하였다. 희준이도 그해 사 월 이곳으로 전임이 되어 왔다.

"그런데 준걸군!"

"응?"

"소희 소식 들었나?"

"모르는걸!"

준걸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혹시 이곳으로 오지 않았나 하 는 실낱같은 희망의 줄이 번뜩인 때문이다.

"그런데 소식은 알고 싶지?"

"................"

"준걸군 참 갸륵한 소식이 들려! 소희가 어린애를 낳었다는 군!"

"참말이야 어린애를 낳었대."

"어디서?"

"서울서!"

"동경은 안가구?"

"글쎄 그게 기막히거든, 그 애는 영철이 앤데 영철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해가지구 동경으로 갔더거든!"

"그게 웬 일일까?"

"글쎄 소희가 여기서 떠나가기 전에 벌써 영철이 애를 뱄 다거든, 그런데 동경으로 가던 길에 서울에 잠깐 내렸다나, 영철의 누이가 있잖어? 그랬는데 아마 못가게 붙든 모양이 지, 자기 오빠가 딴 여자와 결혼을 했으니 가게 할게야! 그 래가지구 서울서 지내게 한 모양이지, 그런데 옥동자 사생 아를 낳었데. 글쎄 그렇게 얌전하다구 자네가 반해서 죽을 둥 살둥 하던 소희가 사생아를 낳었대. 사생아를! 참말 영철 이두 나쁜 놈 소희도 겉으론 얌전한 체하구두 좋지 못한 년 이야!"

"그게 참말인가?"

"참말이지 요즘 세상이 어떻다구 거짓말을 헌단 말인가, 글 쎄 고 잘났다고 막 버티던 소희가 애비두 없는 사생아를 낳 었대. 학교에 다닐 때 조행에 갑만 맞구 학교에 선생노릇 할 때두 모두 얌전하다구 떠들던 그 잘난 소희가 사생아를 낳었다니 참말 세상일은 모를 일이거든?"

"그럴 리가 있나? 희준군 그건 자네가 잘못 들은겔세."

준걸은 그걸 믿지 않는 듯이 부인하려고 하자

"이걸 보게 거짓 말인가?"

하고 영숙이 편지를 꺼내 놓는다. 그 편지에는 그런 사연 이 적히어 있다. 자기 오빠가 소희게 편지를 보낸것두 소희 가 받아보지 못하구 소희가 한 편지두 영철이가 받아보질 못해서 오빠는 그걸 오해하구 소희게 버림 당한줄 알구서 그 반동으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며 소희가 서울 머물러 있게 된 일, 그리고 어린애를 낳았다는 일, 또 끝으 로 그 중간에 누가 어떻게 했길래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그 걸 알아야 어린애 문제도 해결되겠으니 좀 자세 알아 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준걸은 그걸 보자 가슴에 이상한 동요 를 일으키었다.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무엇을 생각하는 듯 하였다.

"준걸군! 이게 다 내 묘안이 거든, 자네가 애당초 날보구 소희를 자네손에 넣도록 해달랬으면 그거야 벌서 자네 아내 가 됐지. 왜 자넨 나를 도무지 사람 같잖게 여기나? 이런걸 좀 보게 어떤가? 기실 난 자네를 버리구 대학생이래서 또 돈이 많다해서 영철에게루 가는 소희가 미워서 모조리 그들 의 오고가는 편지를 이곳 우편소원을 시켜 압수하도록 했거 든. 그랬더니 그 효과로 영철이는 딴 여자를 하나 얻어살게 되구, 소희는 애비없는 어린애를 낳게 됐어!"

희준은 자랑삼아 말을 한다.

"엑기 이 사람아, 글쎄 남의 행복을 그렇게두 깨쳐주고 만 담?"

준걸의 말소리엔 노기가 있었다.

"자네를 위해서 한 일인데 되려 나를 욕하나?"

"누가 그렇게 해달라든가? 아무리 악한 사람이 기로니 남 의 약혼한 여성을 그렇게두 망쳐 준담. 난 자네와 말두 하 기 싫으이."

준걸은 책상 머리로 돌아앉고 만다.

"참 별사람 다 보겠네. 공연스레 흥분하는군 그래."

희준은 멋적은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그럼 난 가네."

하고 일어선다. 준걸은 가든 마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책상에 엎드린채 본체도 않고 있다가 문닫는 소리가 난 뒤에야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가엾은 소희는 끝내 불행하게 되었구나! 글쎄 그 영철이가 믿음직한 사내가 못 되거든, 그리 안절부절 따르더니 기어 코 제몸만 망치고 말었군 그래! 외론 사람이 수양이 부족하 면 그런 법이야!)

준걸은 소희가 몹시도 가엾이 생각되었다. 한편 생각하면 자기 품에서 떠나간 소희가 행복스럽다는 것보다도 웬셈인 지 준걸의 가솜속엔 소희의 불행이 몹시도 아프게 찔리었 다.

(어린애를 낳었다니 어떻게 지내누? 그리구 지금 오해를 사구 있으니 그 누명대메 얼마나 고통을 당하구 있누?)

문득 준걸은 소희가 영철에게 오해를 받아 결혼도 못하고 낳은 어린애조차 영철이 것이 아니라고 따는 모양을 생각하 고 소희의 그 애타는 지금의 경우를 속히 벗겨주고 싶은 충 동이 가슴 속에 용솟음 쳤다.

(속히 소희게 알려 주자! 그리구 그애를 영철에게 주도록 하고서 소희는 무에든 딴 직업을 구해서 자립시킬 도리를 강구해 보자!)

이렇게 생각을 한 준걸은 영숙에게 곧장 편지를 썼다. 그 것은 아까 희준에게서 들은 그대로를 자세히 쓴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에 영숙이게서 회답이 왔다. 낯 익은 글씨 가 퍽 반갑게 생각되었다. 더구나 그 편지엔 그런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 외에 지나간 날 모든 잘못 을 용서해 달라는 말까지 써 있었다.

고독한 물결이 가슴 가득히 밀리고 있는 준걸에게 그것은 퍽 반가운 글발이었다. 더구나 자기 말을 그대로 믿어주고 희준을 욕하는 영숙이 태도를 보면 영숙도 순진한 여자로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또 자기 오빠가 끼친 죄악(?)을 누이 된 책임으로 보다도 참된 인간적 순정에서 소희를 위해 애 쓰는 영숙이가 거룩해 뵈었다.

(그 말괄량이 같은 영숙이게도 참된 우정이 숨어 있는가?

그 팔팔스런 성격에도 섬세하고 보드런 순정의 실마리가 맺 혀있는가?)

생각하면 할수록 영숙의 지금의 그 마음이 크고 넓고 따뜻 하게 생각이 되었다.

(결국 사람에겐 정이란 것이 가장 크고 높은 것이거든 참 된 순정! 그것은 아무런 권세와 아무런 귀한 보배 보다도 몇 배나 더 소중한 것이거든, 나는 비록 소희게 버림당한 사람이지만 소희를 사랑했던 그 순정을 의리로 돌려가지구 그를 구원해 보자, 비록 육체는 버렸지만 그 마음만은 어떻 게 깨끗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어두운 마음의 들창 을 열어 줄 사람은 오직 나 하나가 아니냐?)

준걸은 열병난 사람 모양으로 온 몸이 화끈하였다.

그 다음해 사월 준걸은 어떤 유력한 선배의 추천으로 서울 모 사립고등보통학교 교원이 되어 S읍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학교 가까운 혜화동에 조그마한 하숙을 얻어 자리 를 잡고 그는 새 희망에 불탄 가슴으로 매일매일 학교에 출 근하는 일방 동식물에 대한 재료 수집이며 실험 연구에 게 으르지 않고 있었다.

개나리 꽃이 피고 살구 꾳망울이 앉는 이른 봄날 준걸이의 쓸쓸한 하숙에 어떤 신여성 두 사람이 준걸을 찾아 왔다.

그것은 영숙이와 소희였다. 준걸은 이 두사람의 만남이 다 시없이 반가왔다. 거의 일년 반이나 못만나던 그들, 더구나 영숙은 한때 서로 사랑하던 사이요, 소희는 짝사랑에 불타 는 여자니만큼 준걸로는 말할 수 없는 희열에서 그들을 맞 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째 서울로 영전되신 선생님을 축복합니다. 그리구 지난 날은 여러 가지루 감사해요!"

영숙이가 입을 열자

"천만에요 여러분 덕택으루!"

하고 준걸은 얼굴이 뻘겋게 상기되어 수줍은 태도로 대답 을 했다.

"오신지 퍽 오래 되섰죠?"

"네 인제 한보름 됩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찾아 가려구는 하면서두 길두 잘 모르구 또 새로 와서 분주두 하구 해서 대단 미안합니다. 그런데 대체 제 하숙을 어떻게 알구 찾아 오섰어요?"

"××신문 인사 소식난을 보구요!"

"네 참!"

"그걸 보구 선생님이 그 학교루 오시게 된 줄을 알구 학교 에 전화를 걸어 주소를 알었죠!"

"참!"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띄우고 한편에 앉아 있었다.

"지금은 어디 계서요? 아직두 평동 어디 계서요?"

준걸이가 소희를 향해 물었건만 소희는 그대루 머리를 숙 인채 대답을 못한다.

"저와 같이 길야정(吉野町)에 있어요. 저두 기숙사에서 나 왔어요!

"네! 그럼 어린앤?"

"시골 우리집에 갖다뒀죠."

"네!"

소희는 더한층 얼굴 빛이 발개가지고 아무 말이 없이 앉아 있다.

"그럼 소희씨는 지금 뭘루 소일을 하시나요?"

"S백화점에를 다니죠."

그것도 영숙이의 말이었다.

"굳이 다니지말구 그저 집이나 보구 있으래두 제가 할 일 은 해야 헌다구 기어이 취직을 해가지구 다니죠. 아침 여덟 시에 가서 밤 열한시에나 돌아오는 그런 호된 직업을 글쎄!

그래서 집에만 돌아오면 그냥 죽지오. 오늘두 몸이 피곤해 견딜 수 없다는걸 일요일 날두 산보를 못허면 어떡허느냐구 제가 막 끌구 나왔죠."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은 꽃과도 같이 애달픈 애수가 약간 떠올라 있고 가는 실 오라기와 같은 잔 주름이 또한 얼굴에 끼어있음을 볼 수가 있었다.

"약하신 몸으루 그렇게 과로하시면 되나요?"

"................"

소희의 얼굴은 여전히 빨갛게 상기가 되어 있고 입은 다문 그대로였다. 방안의 공기는 이상히 긴장된 채로 풀리지 않 았다.

끝끝내 소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영숙이 일 어사자 자기도 따라 일어서 가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간 뒤 준걸은 오히려 만나지 않았던 것보담도 더 한층 가슴이 쓸쓸하였다. 의외로 영숙이의 성숙된 태도 그 리고 아무말도 없이 얼굴을 붉히고만 앉았다 돌아간 소희의 애처로운 모양을 준걸은 어지러운 가슴에 손을 대고 일년반 동안에 그렇게도 변해진 그들의 세계를 멍하니 생각하고 있 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소희의 비참한 행로가 몹시도 가 슴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 어느날이었다! 그것은 소희와 영숙이가 다녀간지 한 보 름이 지난날 싹트던 잎이 이제는 제법 푸르러 망울망울 꽃 송이가 보드런 향기를 뿜는 사월도 그믐께!

준걸은 학교일도 다소 익숙하게되자 길야정(吉野町) 영숙이 집을 찾았다. 마침 일요일이 돼서 그들과 같이 교외의 산보 라도 갈 양으로 그들이 있는 집번지를 찾았을 땐 문에는 자 물쇠가 동그라니 걸리어 있었다.

(앗참 편지로 약속이라두 하구 올걸.....)

준걸은 후회했으나 그러나 어떡할 길이 없었다. 명함을 꺼 내 다녀갔단 걸 간단히 써놓고 그는 다시 휘청휘청 전차 길 로 내려오고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떠 오르는 두 개의 환영! 그것은 소희의 애련한 얼굴과 영숙이의 옛날과는 딴판 달라진 성인(成人)같 은 태도였다.

한 여성을 자기가 죽자고 따라다니고 또 한 여성은 자기를 희롱하려 따라다니던 지나간 일! 지금 그 소희는 끝없는 불 행에 울고 있고, 그 영숙이는 이제 성숙된 처녀로서 그 점 잖은 게 숙녀같다. 이리하여 자욱자욱 봄 아지랑이를 헤치 고 떠오르는 두 여성의 모양은 안타까이도 순정적인 그의 마음을 가지가지로 어지럽게만 하였다.

(각가지루 윤락된 소희!)

(광명을 등진 그의 앞길!)

준걸은 불행에 우는 소희가 다시금 아프게 생각되었다.

(이제 만일 내가 소희를 사랑한다면 그이는 나를 사랑해 줄건가! 나와 결혼해 줄건가?)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순정적인 첫사랑이 영철에게 있고 그의 애까지 낳은 소희 가 다시 딴 남성과 사랑을 하거나 결혼을 할 리가 있나!)

이런 생각 속에 머리를 써도 보고

(그럼 영숙이와 난 결혼을 할게? 그 희준이 녀석과는 헤어 졌다니까)

이런 생각 속에 멍하니 가던 걸음을 멈추기도 하면서 경성 역전 전차 정류장까지 왔다.

구슬픈 기적 소리가 당나귀 울음처럼 처량하게 봄 하늘에 퍼져간다. 소란한 사람의 물결이 와글와글 떠든다.

"어데로 갈까?"

그는 발을 멈추고 안전지대(安全地帶)에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