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해협/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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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해협[편집]

[편집]

"소희 사장실에서 불러요."

점원 감독의 말소리를 듣고 곧장 사장실로 발길을 돌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오늘은 또 어쩔려누?)

생각하며 가슴부터 두근거리는 걸 겨우 진정하고 섰노라니

(과히 괴롭지나 않수?)

하고 그는 빙그레 기름진 얼굴을 소희 편으로 돌린다.

"아뇨....."

"저어 그런데 오늘 나와 잠깐 어데 가야겠는데!"

"................"

"다른게 아니구 내집에 손님들이 오시는데 소희가 접대를 해 줘야겠어!"

"마침 집사람이 온천엘 갔어..... 미안허지만 여섯시꺼정 와 주어! 응?"

"네!"

소희는 불안 속에 다시 자기 처소로 돌아왔다. 점원들이 이상스러이 자기게로만 시선이 오는 것 같아서 얼굴이 공연 스레 붉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희는 돌아오는 길로 막 손님이 물건을 사자는데 정신이 팔려 이런 걸 생각할 여지 도 없이 되고 말았다.

두시, 세시 네시 시간이 흐름을 따라 소희의 마음은 다시 금 초조해졌다. 불안한 물결이 가슴을 헤치고 밀쳐 들어왔 다.

"소희!"

깜짝 놀라 돌아보니 사장실 급사 애다.

"................"

"저 사장께서 뒷문으로 나오시래는데요!"

"그래!"

대답을 해놓고 마음이 난처한 걸 점원감독에게 말을 한 뒤 소희는 총총걸음으로 뒷문께로 내려갔다. 거기는 자동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타십시오."

눈치 빠른 자동차 운전수가 또어를 열어 젖히고 자기를 기 다리고 섰는 걸 멍하지 보고 있노라니

"사장께서 모시구 오랍시는데요?"

하고 다시 모자를 벗어 든다.

"네에....."

소희는 못이겨 차에 올라 탔다.

소희가 사장댁에서 돌아온 날 밤은 혼자 자리에 엎드린체 늦어가는 봄밤을 혼자 새웠다. 돈으로 또는 지위로 자기를 얕잡아 보고 온다는 손님은 오지도 않고 건들하게 술이 취 해가지고 자기를 희롱하던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졌다. 요행히 몸은 더럽히지 않은채 빠져나왔지만 암만 해도 그 일을 오래 계속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뼈가 휘도 록 노동하는 것만도 괴롭고 눈물이 나는데 자기의 몸까지 농락하려는 그 악마성을 가진 사장의 행동에는 참을 수 없 이 가슴이 타고 눈물겨웠다. 더구나 시골로 보낸 어린애 생 각, 며칠전 상해로 연애 방랑을 떠나간 뒤 소식도 없는 영 숙이의 자비롭던 손, 그리고 행복스럽게 살 동경의 영철이!

이 가지가지를 생각할 때 소희의 가슴은 찢기었다.

(천하에 이렇게도 외롭고 설은 일이 어디 있을까?)

(저어 준걸씨나 찾아가 볼까?)

(꾸준히 날 동정해주고 뒤를 돌아봐주는 그이! 그런데 그이 는 어째 그새 한번도안 찾아올까? 그러나 내가 이곳(안국동) 으로 이사를 오구두 알리질 않었으니 아마 길야정 주소루 몇번을 찾아 온지두 몰라.....)

춘정에 타는 고양이 울음 소리에 밤이 새는 곤한 몸을 소 희는 자리에 눕힌채 잠 안오는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또 내일은 그 진저리 나는 일을 해야 하나?)

(일두 일이지만 그 사장녀석의 추근추근한 꼴을 또 어떻게 본담?)

생각하면 반생을 걸어온 길이 모두 가시 길이었다. 영철과 금강산을 갔을 때 그리고 그 겨울 영철의 품에 안기었을 때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라 할까? 그러나 그것도 결국 비극으 로 끝막는 일이 아니냐? 그 때문에 애비도 없는 애를 낳고 한 사내에게 버림을 당하고 나서 이 고생속에 지내는 가엾 은 꽃이 되지를 않았는가! 시들은 병인과도 같이 나날이 파 리해 가는 몸! 오! 저주할 인생의 가시 길이여!

그리하여 그에게는 오늘날 그렇게 믿어오던 하느님도 그 존재를 부인하게 까지 되었다.

(신의 권능이 있을진대 만일 신이 그를 믿는 이에게 구원 의 손길이 있을진대 이 죄없는 여성을 이같은 구렁덩이 속 에서 허덕이게 할 리는 없을거야! 그러면..... 암 그렇다 뿐일 까?)

이렇게 혼자 종알거리며 슬픈 때나 괴로운 때나 정성껏 드 리던 기도도 다 팽개치고 오직 허무한 비웃음과 때때로 흐 르는 눈물에 온 정신이 어지러울 뿐이었다.

눈물의 몇날이 흘러가는 동안 소희는 점점 마음이 괴로와 가고 몸이 쇠약해 갔다. 그러나 영숙이 조차 없어진 오늘날 에 노동을 하지 않으면 그에겐 빵이 돌아 오질 않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일터로 가야하고 저녁 늦게 돌아와선 한 술 저녁을 뜨고 잠자리에 드는 소희! 이 뼈저린 점원 생활 도 눈물 속에 또 한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오! 영철이!)

때때로 소희는 영철을 생각하였다. 차마 잊어 버릴 수 없 는 첫사랑의 남자! 그리고 그 귀여운 애의 아버지! 그러나 그것은 봄안개 같은 꿈이다. 아니 꿈은 꿈일는지 모르지만 영철도 무슨 인스피레슌을 감했는지 가정 싸움이 잦은 뒤로 부던 소희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다. 일년 반이 란 동안 그들의 생활은 난마와 같았다. 때로는 별거도 하고 때로는 다시 모여 살기도 하면서 그들은 때때로 싸움판이 벌어졌다. 물론 영철이의 과거가 나쁜 것도 그 이유의 하나 이지만 그 아내 명신은 결혼 전과는 따로이 교양 없고 예의 가 없고 이해가 없었다. 그 때문에 싸움이 잦게 되고 싸움 이 잦음에 따라 영철인 소희 생각을 더하게 되었다. 더구나 영숙이 편지로 악마같은 희준의 작희로 그리 됐다는 걸 안 뒤로 더한층 소희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는 법적으로 결 혼한 명신을 버릴 용기가 없었다. 용기가 없다는 것보담도 오늘날에 있어서는 시끄러운 여자 문제로서 귀여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의 법이론으로 보면 소희를 어떻게 처치할 길이 없는 오늘날 그것 때문에 명신이와 이혼 소송으로 떠들어 댈 필요도 없고, 또 여자란 마찬가지라는 한편 여성을 모욕하는 심적 태도도 있는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는 그는 마침내 그 소망의 목적을 달할 수가 있었다.

(변호사!)

그는 시험이 발표되는 날 합격된 것을 알자 혼자 몇번이나 외면서 빙그레 웃음을 웃었다.

(변호사! 당당히 법정에 나아가 떠들어 볼 수 있는 변호사)

그는 다시 어깨가 으쓱하였다.

칠월의 첫더위가 서울 거리에 용광로를 피우기 시작한 뒤 날은 점점 더워졌다. 때때로 소낙비 지나간 뒤에 날은 잠깐 시원해지지만 그것도 잠깐이요 더위는 점점 더해갈 뿐이다.

날도 더워가지만 소희는 날마다 당하는 육체적 고통과 정 신적 고통 때문에 몸은 나날이 파리해 갔다. 악마 같이 매 일 매일 달려 드는 사장의 색마적 농락을 피하려는 괴로움, 피가 마르는 점원생활! 소희는 요즈음 심신의 혼란과 함께 그만 몸져 눕게까지 되었다. 그러나 병든 그에게 간호 해줄 사람이 한 사람인들 있을 리가 만무하였다.

머리가 무겁고 팔 다리가 쑤시고 등골이 짜개는 것 같이 아프고 전신이 불 덩어리 같이 달아 올랐건만 찬 물수건 하 나 이마에 대주는 사람조차 없었다.

의사를 부르려고 해도 자기 같이 가난한 사람에겐 현금이 있어야 한다. 또 현금을 구할 수도 없지만 그걸 구한다기로 니 누가 약시중을 해주기나 하랴? 소희는 병도 병이려니와 서러운 자기 몸을 생각하고 혼자 눈물 속에 흐느껴 울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아! 준걸씨라두 오셨으며!)

생각나는 것은 그 옛날 서울 강습 왔을 때 자기를 극진히 간호해 주던 준걸이었다.

(그인 왜 한번두 안 오실까?)

(동경서 열린다는 무슨 학회(學會)에 가신다구 한번 데파트 로 찾아 오시구선 그 뒤론 안 오시니 아직 아니 오섰나?)

그 순진한 준걸이의 무거운 손이 소희겐 끝없이 그리웠다.

안타까이 그의 손길이, 그의 자비로운 눈이, 그의 믿음직한 말이 그리웠다. 그러나 그이도 오지 않았다.

눈물과 고열(高熱)의 사흘이 지나갔다.

해가 누엿누엿 저물었을 때 소희를 찾아온 손님! 그 이는 뜻밖에도 사장 김철수(金哲洙)였다.

"출근을 못 한다기에 알아 봤드니 병이 났다구! 그런데 병 이 어떻소?"

"................"

온 몸에 소름이 쭉 끼쳐 대답도 못하고 소희는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려고 하였다.

"가만히 누워 있어요. 병난 사람이 인사를 차릴 여지가 있 오?"

그는 아주 점잖은 태도였다.

(저 악마놈이 무슨일루 또 왔나?)

소희는 열에 타는 몸으로 원망하는 듯 그를 바라보았건만 그는 아주 점잖게

"의사나 와 보았요?"

하고 묻는다.

"네 와서 약을 먹었어요."

소희는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죽는 한이 있어도 그의 도 움과 친절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저렇게 열이 높은 모양이니!"

하고 그는 손을 내밀어 소희의 이마에 얹었다.

"아잇."

소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 누웠다.

"하 온.....""

그는 무료한 듯이 이렇게 외치곤 "그럼 몸조리 잘 하오!"

그가 간 뒤에 소희는 더한층 적막했다. 한편 시원도 했지 만 사람없는 자기 주위에 그 사람조차 가버리고 난 뒤엔 웬 셈인지 자기도 모르게 적막하였다.

(세상이 이같이도 차담!)

다시 몸을 돌이키어 한숨 질 때 전깃불이 들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편지요!"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소희는 열에 들떠 어지러운 신경을 귀로 모았다.

"김소희씨 서류야요!"

하고 소희 방 앞에서 다시 "도장 주세요." 한다.

(서류? 이상한 일이다)

하면서도 손은 미닫이 편으로 갔다.

"도장 주세요."

소리가 연거푸 나는데 따라 소희의 손은 다시 도장을 찾기 에 바빴다.

"무슨 서룰까?"

도장을 꺼내 들고 겨우 몸을 일으키었을 때 그것은 뜻밖에 준걸의 편지와 조그만 소포였다.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하고 의심 나는 손이 '?' 속에 봉투를 찢었다. 그 속엔 뜻 밖에도 이십원짜리 소위체 한 장과 어여쁜 핸드백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편지 사연은 눈물겨운 구절구절 가득 차 있었다.

'사모하옵는 소희씨!' 첫귀절을 읽고 소희 가슴은 떨렸다. 눈은 유성(流星)인 듯 다음 행간으로 줄달음 쳤다.

'뜻밖에 학회(學會)에 와서 오래 있게 되는 동안 하루 한때 나마 소희씨를 잊을 수 없었읍니다. 그 지난달 순정적인 저 의 가슴에 불질러 놓으신 소희씨가 오늘날 한 사내 때문에 버림을 당하고 눈물의 고생살이를 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저는 끝없는 동정과 피어린 눈물을 금하기 어려웠읍니다.

자주 찾아 가서 위로의 말씀이라도 드리고 싶었으나 저는 웬셈인지 소희씨만 뵈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말문이 막혔 읍니다. 그리하여 자주 뵈올 기회도 짓지 못하다가 제가 이 곳으로 온 동안 소희씨는 얼마나 고생살이를 하시는지 안타 깝습니다. 한발 가까운 서울에 있을 때도 항상 그리움과 동 정이 교차된 형언하기 어려운 정을 금할 수 없었지만 멀리 이역(異域)객사에 고달피 지내올 때, 더한층 소희씨가 그리 워 지나이다. 저는 원래 못난 사내라 소희씨를 사랑할 아무 런 자격도 없는 몸이오나 저는 어디까지나 소희씨를 아끼고 소희씨를 뒤돌아 보려는 그 순정만은 사라지지 않으렵니다.

미안하오나 약간의 고생살이의 보조가 될까하여 원금 몇푼 을 보내오니 웃고 받으십시오. 다못 바라노니 이돈은 제가 어떤 잡지에 쓴 논문 원고료로서 정결한 정성의 한토막이라 는 것만 믿어주소서. 이곳 일은 한 일주일이면 끝나겠나이 다. 다시 뵈올 때까지 내내 안녕히 계서요. 그리고 부디 몸 조심 잘 하서요.

동경 객사에서 준걸상' 편지를 다 읽은 소희의 눈에서는 아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 이 양편 관자노리로 흘러 내리었다. 불타는 순정의 편지. 그 리고 그 값있는 원고료를 털어보내는 그 거룩한 마음! 열에 타는 머리가 끝없이 흥분이 되었다.

(오! 귀여운 편지! 그리고 돈! 그리고 선물!)

사실 하루에 일급 팔십전을 받는 소희게 그리고 의사 하나 부를 수 없는 가난한 소희게 그 돈 이십원은 큰 돈이었다.

그리고 바람벽 하나만이 그의 동무인 오늘날 준걸이가 보낸 피끊는 편지는 소희 마음에 영원히 잊지 못할 기념탑이었 다.

세상에 억만으로 세이는 돈이 오늘날 소희게 있어선 이돈 이십원을 당할 수 없을 것이요. 억천만권으로 세이는 시서 가 이 몇줄 안된는 편지보담 귀할 것이 못되는 것이다.

소희는 눈을 감고 준걸이를 생각해 보았다. 짓밟히고 천대 만 받고 자란 준걸이, 그 고생과 굴욕속에 삼십년을 지내온 준걸이, 그러면서도 독학으로 소학교 훈도가 되고 다시 중 학교 교원까지 된 그의 굳은 의지!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가 준걸이 앞에 설 면목도 없는 여자 같아서 그 돈과 그 편지 를 받는 것이 도리어 황송하고 미안하게 생각이 되었다. 사 오년간 꾸준히 한결같은 맘씨로 자기를 생각해 주는 그 순 정적인 심리, 타락에 울고, 고생속에 항상 자기 신변을 생각 해 주는 준걸이, 그이는 성인 이었다. 현대의 감정적인 그리 고 조삼모사로 변하는 이기주의자! 기회를 보아 이로울 곳 만으로 따르는 기회주의자! 여자의 처녀성과 미모와 신분과 재산만을 탐내는 사내들을 압도하고 초연히 높은 성터에 서 서 내려다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다.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부끄러움이 한데로 합 쳐 소희는 미친 사람같이 소리도 질러보고 엎드려 울기도 했다. 그러나 새록새록 가슴에 맺히는 건 영철이를 원망하 는 마음과 준걸이를 사모하는 생각에 마음은 두갈래로 흘렀 다.

준걸이가 예정한 대로 한 주일 뒤에 서울로 돌아 왔을 때, 뜻 안한 사건에 준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것은 소희가 경찰서에 살인죄로 심문을 받고 있다는 신 문 기사였다.

'미모의 여점원은 과연 사정을 죽였는가?

××사장 사택에서 일어난 괴사건 경찰은 극비 조사중' 이란 제목으로 혹은 '푸른 침실에서 맺어진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美貌의 女店員 含淚不答' 이란 제목으로 각 신문은 사단 길이로 사진까지 넣어서 흥 미 백퍼센트의 뉴우스를 제공하였다. 준걸은 꿈인 듯 몽롱 한 가운데 그 기사를 다 내려 읽었다.

이제 그 신문기사에 의하면 ××데파트의 여점원 김소희는 수월 전부터 그 데파트 사장 김철수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그날도 사장의 본처 김성실이가 온천 간 것을 기 회로 두 사람이 그의 사택 침실속에서 가진 향락을 다 하던 끝에 돌연히 사장 김철수는 어찌된 셈인지 죽었다는 것이 다. 그런데 사건의 내용을 경찰은 일체 비밀에 붙임으로 자 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으나 탐문한 바에 의하면 김소희는 원래 사범과 출신의 일종 훈도로서 ××공립보통학교에 다년 간 근무하던 중 그곳 모 부호의 아들을 유혹하여 어린애까 지 낳았지만 그 뒤로 웬 셈인지 그 남자는 소희를 일체 돌 아보지 않음으로 하는 수 없이 생활의 방도를 구하여 ××데 파트의 여점원으로 채용이 되었는데 그의 타고난 미모에 유 혹된 사장은 때때로 소희가 랑데부를 하는 동안 자기 아내 가 없을 때는 사택으로 데리고 다닌 일도 여러번이었다. 그 런데 최근 ××데파트가 수년내로 년년히 결손만 되던 것인 만큼 그 이면엔 무슨 복잡한 사정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소희는 경찰에서 아무 말도 대답잖으므로 그가 자살했는지 또는 소희가 무슨 사정으로 그를 독살했는 지 모른다는 것이 또 씌어 있었다.

준걸은 이 끝없이 윤락된 소희의 몸을 생각할 때 눈물부터 앞섰다. 과연 소희는 그렇게 더러운 여자던가? 그렇게도 불 건실한 여자던가? 그러나 준걸은 그걸 믿지 않았다. 천하 사람이 다 그리 생각한대도 준걸만은 그렇게 믿을 수가 없 었다. 물론 표면으로 보면 소희를 그렇게 추측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준걸로는 소희가 남을 유혹하거나 돈 때문에 자기 몸을 더럽히고 또 무슨 일로 그 남자를 독살하였으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년간 준걸이가 소희를 사모하던 그 순정에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된 품이 그럴 여 자는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엔 믿었던 사람이 상상 밖의 일을 하는 수도 많고 또 오해와 억측 때문에 부질없는 누명을 쓰는 것도 한 둘이 아닌 것임을 생각하고

(아무래도 소희는 그 남자와 그런 추악한 관계는 맺잖었을 거야. 그리고 그의 침실속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최후의 일 선만은 지켰을 거야)

하고 가지 가지로 그를 자기 혼자 변명도 해 보았다.

여러 가지로 보아 소희가 그 집에 있었던 것만은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부인할 아무런 자료도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는 또 뭐라고 자신을 변명할 수도 없었다.

(어쩌문 그동안 그리도 타락이 되었담?)

(어쩌문 그리 윤락의 길을 걷고 있었담?)

(........................)

생각에 목메인 준걸은 어쩔줄을 모르고 우두커니 책상에 엎드린채 무더운 여름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치장 속에 앉아 있을 소희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 약하고 고운 소희 몸이 그 더럽고 무더운 속에 있는 것이 준걸이로 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생각하면 비록 소희가 가난한 사람 이라지만 그의 지내온 생애는 그렇게 고생살이가 아니었다.

그러던 소희가 지금 생지옥 같은 유치장 속에 그 더러운 누 명을 쓰고 앉아 고민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생각하는 준 걸이 가슴도 용광로 속에서 볶이는 것처럼 답답하고 초조하 였다. 그리하여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길로 ××경찰 서 사법계로 달려갔다. 그러나 안타까운 준걸이 가슴에 던 져주는 한마디 말은 '면회 일체사절'이란 것이었다. 물론 형 사 피의자를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지만 그건 너무도 준걸이에게 뼈아픈 말이었다. 생각하면 벌써 수년전 아직도 소희가 처녀시절 의전병원에 영철이가 소희를 입원시켜 놓고 '면회 일체사절'이란 걸 써붙이더니 이번엔 경찰의 입으로 '면회사절'이란 것을 말할 때 또 무슨 불길한 일이나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준걸은 이마도 찡그리 었다.

(또 소희게 불행이 오려나?)

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겨우 사식 차입을 허락맡고 하숙 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흐르는 세월은 밤과 낮이 오고 가는 동안 어느덧 한달이 지났다. 벌써 서울의 더위는 한창이요 모두 도회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여 해수욕장으로 내려갈 준비에 바빴다. 학교도 방학이 되어 야심 많은 학생들의 귀향(歸鄕)도 바쁘고 향락 의 무리들이 피서지로 떠나는 길도 분주하게 되었다.

준걸의 수년래의 계획인 백두산 고산식물(高山植物)채집의 길도 떠날 시일이 되었건만 준걸은 차마 소희를 그대로 내 버려 두고 떠나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검사국으로 넘어 간다는 날 경찰서 앞에서 겨우 자동차 안에 앉은 소희의 모 양이나마 잠깐 보고 그는 다시 떠나려 하였으나 그것도 어 느틈에 호송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안고 멀리멀리 허공을 떠도는 것 같았다.

한여름의 더위도 거의 가고 아침 저녁으로 상냥한 가을 바 람이 흔들리는 구월 열흘날! 만인이 기다리던 흥미의 김소 희 살인사건 공판은 경성 지방법원 제×호 법정에서 열리었 다.

'미모의 죄수'라는 특이한 별명을 쓰고 법정에 선 소희, 용 수는 벗었지만 더벅머리에 푸른 죄수 옷을 입고 '조오리'를 신은 소희의 모양은 오랫동안 햇볕도 못 보는 감방 속에서 초조와 불안에 싸여 지낸 탓인지 창백하기 끝이 없다.

(온 저런..... 소희가 그새 저모양이 되다니)

방청석 한 구석에서 누군지 이런 한숨 섞인 소리가 들리었 다. 그것은 준걸이었다.

각 여학교에서 특별 방청을 온 생도며 장안의 각층 남녀가 모인 그 속에 한 자리를 잡고 그는 재판장을 향해 선 소희 의 초라한 뒷모양을 보고 몇번이나 가슴을 조이며 안타까운 마음에 달떴는지 모른다.

재판은 벌써 시작이 되어 차곡차곡 재판장이 심문을 한다.

어마어마하게 검사, 배석판사, 통역생, 서기 등, 육 칠인이 각기 제복을 입고 둘러앉은 높은 대를 향해 눈물 머금은 소 희의 말 소리가 가냘프게 들리었다. 마치 늦가을 시들은 잎 에 깃들인 나비와도 같이 소희의 모양은 힘이 없고 쇠잔하 였다.

주소 씨명 연령 전과 유무 등을 묻고 판사는 검사의 심문 조서에 의해서 다시 심리하기 시작한다.

"그래 어떻게 돼서 김철수집엘 그날 갔든가?"

그 말소리는 날카로왔다.

"사장이 부르시기에 갔어요."

"그럼 그전에도 수차 갔었는가?"

"두어번 갔어요."

"그럼 만나는 건 항상 사장 김철수의 집이었든가?"

"아아뇨. 별로 따로 만난 일은 없어요."

"그럼 그날은 어째 그집엘 갔든가?"

"사장이 부르시기에 갔었어요."

"어째서?"

"무슨 손님이 오신다고 접대를 하라기에 갔었어요."

"어째 그이 아내는 없든가?"

"어디 온천엘 갔었다나요!"

"그럼 넌 그 집에든 임시 주인이든가?"

"아뇨 그저 사장이 와서 일을 보라니깐 갔었을 따름이야 요."

"그런데 네가 앓고 있을 땐 그이가 너를 찾어갔었드라지!"

"네 왔었어요! 그렇지만 곧 갔어요!"

"그럼 그이와 정을 통하게 된 것은 언제부턴가?"

"정을 통한 일은 없어요!"

"그럼 왜 그전엔 그렇게 대답했나?"

"아냐요! 그저 그이가 죽게 된 날 전 그에게 끌어 안긴 것 뿐이야요."

"그럼 그전엔 왜 그이 집엘 갔나?"

"사장이니깐 그저 오라면 명령을 거역지 못해서 갔었을 뿐 야요!"

"그러면 그 전엔 그런 일이 없었나?"

"그전에도 여러번 그리는 걸 종시 거절했어요..... 그리다가 그 날은 어떻게 반항하다가도 이길 수가 없어서 끌어 안긴 채로 입술말....."

"그런데 넌 처녀가 아니라든걸!"

"네 어린애 하나를 낳었어요!"

"그건 누구거냐?"

"이영철씨라구 하는 분이야요."

"그인 뭘하누?"

"모르죠. 벌써 수년이 됐으니깐요."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그런데 어떻게 어린애꺼정 낳고 헤어졌나? 결혼은 했었 나?"

"아뇨..... 약혼만 해놓고 결혼하기 전에 그이는 딴 여자 허 구 결혼했어요."

"어째서?"

"그건 모르죠! 그렇지만 그건 오해때문이야요....."

"무슨 오핸가?"

"중간에 어떤이가 작희를 했어요....."

변호사 석에 앉은 영철의 얼굴이 붉었다 푸르렀다 소희 말 소리를 따라 변하고 있었다. 영철은 지나간 모든 잘못을 속 죄하려고 지금 소희를 변호하기 위해서 오늘 여기 왔던 것 이다.

물론 영철이는 소희게 그러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았다. 아 니 당연히 있었다. 소중한 처녀를 더럽히고 그 몸에서 어린 애까지 낳게한 그로서 그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 래서 그 사실을 알자 곧 소희를 미결감으로 방문하고 자기 가 그것을 말하고 자신 오늘 출정한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눈앞에 초라하게 선 소희를 끝없는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아니 오해보담두 내가 성의가 없었거든. 아무리 별별 흉계 를 다 쓴대두 내가 진심으루 사랑하는 그이를 왜 조금치나 오해하고 못 믿었을까?)

(에잇..... 내가 왜 소희를 버렸담! 그렇게 순결하고 성실한 그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어린애꺼정 빼앗기고 생활상 곤란으로 직업을 붙들었다 저 모양까지 된 소희...)

영철은 멍하니 그편만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머 리도 짙은 듯 이리저리 흐트러지고 통통하던 몸이 살이 다 빠진 듯! 서 있는 뒷모양이 너무도 파리하고 가엾어 보였다.

(아! 내가 다시 구하자! 그인 확실히 죄인이 아닐테니)

(아무렴! 그이는 죄를 짓지 않었을 거야.....)

(불쌍한 고아, 차마 말 못하는 그이의 꼭 다문 입수..... 힐 끈 자기 편을 한번 바라보고 눈물이 어려 다시는 바라보지 못하는 그 눈! 코 앙상한 말라진 입술! 야윈 볼 뾰족한 턱!)

그는 눈이 빠지도록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간 날의 추억과 함께 양심의 가책 때문에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는 걸 참고 앉아 있었다. 만일에 자기가 변호할 책임만 없다면 어디로 달아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를 독살했누?"

"결코 전 안죽였어요!"

"뭐? 네가 죽였다고 경찰에서도 고백을 했고 검사 앞에서 도 허잖었나?"

"경찰서선 너무도 때리니깐 그저 죽였다고 했지오..... 그렇 지만 검사국선 제가 죽였다고는 말 하잖었어요."

"그럼 어쨌느냐?"

"전 한번 그 일을 당할 뻔한 뒤 그래도 못살게 달려 드는 걸 겨우 달래가지고 수면제로 잠들라고 먹인거야요. 그게 그렇게 될 줄은 전연 몰랐어요....."

"어떻게 그 약을 구했누? 그집에 있었든가?"

"네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집엘 갔을 때마다 그이는 나 를 못살게 굴었어요. 그리다가 내가 끝내 듣지를 않으면 너 때문에 잠을 못잤으니 날 잠만 들여주면 그러잖을테니 자 찬장에 있는 약병엣 걸 꺼내서 내입에 넣어주고 물을 마시 도록만 해달래서 두 번이나 드린 일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약을 그날도 먹였단 말이지?"

"네 그 약병의 걸 좀 많이 드렸을 뿐이야요....."

"그럼 목은 왜 노끈으로 동겼나?"

"노끈이 아니고 제 옷고름으로 동쳤어요....."

"그건 어째서?"

"하두 못살게 달려들기에 어쩔 수가 없어 내 허리를 끌어 아는 그이 목을 그만 저고리 고름으로 동쳤어요....."

"그럼 그 고름으루 동겨 죽인거지?"

"아니오 처음에 내가 그걸루 동쳐매니깐 그인 지독한 여자 야! 하고 이내 꼭 껴안었든 허리를 풀어 주겠죠..... 그리구선 자꾸 잠을 들여 달라겠지나요. 그래 그옆에 잇는 장에서 약 병을 꺼내서 얼른 잠이 들라고 조금 분량을 많이 먹인거야 요! 그랬는데 얼마 있다보니 그이 얼굴빛이 이상해지구 아 주 막 고민을 허겠지오? 웬일일까 허구 그이를 잡아 흔들면 서 그일 깨워두 점점 기운이 없어지겠지오? 그래 깜짝 놀라 의사를 불렀죠. 곧장 의사가 오기는 했지만 그땐 벌써 절명 이 거의 된 때야요....."

"그렇지만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술이 취한데 수면제를 먹 이고 잠든 틈을 타서 목을 끈으로 동쳐 죽인거라고 감정서 에 썼는데!"

"그건 거짓말이야요..... 그건 참으로 거짓말이야요..."

"거짓이 아냐, 네가 그이 돈을 탐내서 죽인 것이지?"

"................"

그 순간 소희는 정신이 아찔하여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 다.

"그게 사실이지?"

"................"

"참말 그랬었지?"

"아니요......"

숨이 막힌 듯 그 말소리는 무거운 한숨 속에 떨리었다.

"어째서?"

"제겐 큰 돈이 필요찮아요! 그저 먹을 것만 있으면 그만이 야요. 세상이 돈 때문에 모두 허덕허덕 하지만 전 돈을 숭 배하는 배금 주의자는 아니니깐요. 그러기에 더구나 돈 때 문에 그일 죽였다는 건 제게 큰 치욕이야요! 모욕이야요."

"?"

"그러니까 차라리 그이를 인간적으로 밀살스러워서 그중에 타는 불길이 그를 죽였다고나 해주서요, 그러면 외려 제 가 슴이나 아프잖겠어요....."

"?"

"사람은 공연히 남을 미워하고 남을 욕하고 또 의심하지만 그것 같이 더러운건 세상에 없어요. 재판장이 절 보구 아무 렇대두 좋습니다. 그렇지만 전 그 더러운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누명을 쓰기는 죽기보담두 싫어요...... 나는 내 몸 을 짓밟던 그이가 미워서 죽였어요....."

"그럼 확실히 죽였는가? 술취한 그이를 수면제를 먹이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아무렇게 해석해두 좋아요. 죽였다구 하는 걸 애써 번명할 필요는 없어요....."

소희는 자포적 태도였다.

"그럼 그게 사실이라면 피고에겐 더 심문할 게 없으니깐 변호인!"

하고 재판장은 변호사 석을 바라본다.

"네....."

영철이가 흥분된 얼굴로 일어섰다.

장내의 시선은 영철에게로 몰리었다. 그 중에도 증오에 타 는 준걸이의 두 눈, 그러나 준걸은 뻔뻔스러이 변호사 석에 일어선 영철이지만 소희를 위해 변호하려고 오늘 이 법정에 온 영철이가 한편 양심적인 것 같아서 고맙게도 생각이 되 었다. 또 한편 일종의 질투에 가까운 그 무엇이 가슴 속에 서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철은 초공한 태도로 일어서서 열번을 토하고 있었다.

"피고 김소희에 대한 유리한 몇 말씀을 드려 나는 피고가 절대로 사장 김철수를 죽이지 않었다는 것을 역설하려는 바 입니다. 이제 그것을 반증할 몇 조건을 들어 재판장의 선처 를 요구합니다.

첫째 피고 김소희는 사장 김철수를 죽일 조건이 하나도 없 는 것입니다. 소위 돈을 탐내어 죽였다고 하나 그것은 조금 도 입증할 조건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는 소희 는 사장이 갖고 있는 돈에 욕심낼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 다. 그것은 소희의 지금 답변한 돈 때문에 그일 죽였다는건 제게 치욕이니깐 차라리 인간적으로 미워 죽였다고 해주세 요 하는 일언으로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법률은 물적 증거를 치중합니다. 그러나 순정적인 그 소희가 한 사 내게 버림을 받고도 꾸준히 생을 유지하며 직장에서 양심있 게 노동하던 것을 보아도 그가 아주 마음이 순결한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다만 지금 그가 죽였다고 피고가 답변한 것은 뜻밖에도 그런 누명을 쓰게되니깐 그 자포적 태도에서 '네 죽였어요 미워서 죽였어요'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둘째로 는 술취해 가지고 수욕에 찬 그가 끝없이 흥분된 때 다량의 수면제를 먹였으니 그것은 의학상으로 보아 혈관마비가 되 어 당연히 죽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는 그 사장이 술을 먹 지 않었다고 저편에선 주장하나 그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첫째 그는 술먹는 사람인 것이 틀림이 없고, 또 그집엔 양주병이 얼마든지 있었읍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여자를 희롱하려고 할 때 똑똑한 정신으로 그러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장이란 지위로 보더라도 나중에 변명할 길은 술이 취해서 그랬노라고 도피(逃避)할 길이 있 는 때문입니다. 이는 뭇사내가 연약한 여성의 정조를 뺏으 랴는 때 취하는 수단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피고가 사장의 목을 졸라죽였다고 하지마는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술이 취했다 하더라도 연약한 여자가 목 을 졸라매도록 가만히 있을 사내가 첫째 없을 것이고, 둘째 잠든 틈을 타서 그 사내의 목을 졸라 죽였다고 했지만 피고 의 심리상태로 보아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만 일 돈을 탐내었다면 피고에게 벌써 거기 놓여 있던 돈이 있 어야 할 것인데 그가 돈을 갖고 있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넉넉히 그가 돈을 탐내지 않었던 것은 확증됩니다. 더구나 그에겐 가족도 없고 남편도 없읍니다. 그에겐 그 큰 돈을 갖고 싶어 할 아무런 욕망도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을 죽이고 돈을 뺏을 그런 흉악한 심리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피고가 그 사내를 죽이지 않었다 는 것이 넉넉히 증명 되었다고 봅니다. 더구나 설사 피고가 그를 죽였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귀한 정조를 유린하려고 달 려드는 사내를 막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면 정당방위라는 의 미에서 당연히 무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철은 열변을 토하고 자리에 앉았다. 장내는 삼엄한 사벨 소리만 이따금 들릴 뿐 쥐죽은 듯 고요하였다. 긴장된 공기 가 터질 듯 장내에 흐르고 있었다.

조금 있다 검사가 일어섰다.

"본직은 피고가 김철수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인 뒤 그가 잠든 틈을 타서 돈을 뺏어갈 목적으로 목을 노끈으로 졸라 죽인 것이 확실함을 인증하여 형법 제 일백 구십 구조에 의 해서 사형을 구형함."

하고 앞에 놓인 서류를 들고 일어서자 재판장이며 배석판 사 통역생 서기 등도 모두 서류를 들고 뒷문으로 나가버린 다. 그러자 피고는 간수에게 끌려 나가고 방청객들도 모두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온 소희가 사형에......)

그의 미모 때문인가 또는 무슨 인연으로 그러는가 모두 동 정에 찬 말귀절이 여기저기서 들리었다.

준걸도 영철도 우울한 낯으로 법정을 나섰다. 준걸은 비록 검사가 사형은 구형했을망정 변호하기에 애쓴 영철일 찾아 가서 그가 변호한 공을 치하하고도 싶었으나 어쩐지 내켜 지지를 않아 다시 돌아서고 말았다.

[편집]

재판소에서 돌아온 영철은 그날 끝없이 흥분이 되어 자리 에 그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 법정에서 소희가 하던 말 '저는 어린애꺼정 낳었어 요' '결혼하기 전에 그 어떤 오해가 생겨서.....' '어떤 사람의 작희로 그리 됐어요....' 영철은 이미 그 사실을 영숙이의 편지로 잘 안다. 그리고 평소의 소희의 소행과 인격을 믿고 그것이 사실인 것을 자 기도 확인했다. 그러나 그때 영철은 신혼의 단 꿈속에 깃들 었었고 또 일방 변호사 시험 준비에 바쁘던 때라 야심 많은 그로서 그때 소희 문제 같은 건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고 말았다. 그러기 때문에 가슴에 어린 가지가지 추억이 그를 괴롭히긴 했어도 그만 그걸 죽여버리고 학업에 정진하 여 오늘의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오늘 법정에서 소희를 대하고 자기의 지난 일을 생 각할 때 자기 때문에 한 여성이 윤락되어 그런 누명까지 쓰 게 된 걸 생각하면 자기 일생을 통해서 속죄를 한다 하더라 도 그것을 갚을 길이 전연 없는 것 같이 생각이 되었다. 그 래서 그는 '소희가 꼭 무죄는 될테니깐 난 그이와 결혼할테다'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흥분된 두 분을 부릅떴다.

(그럼 지금 있는 아내는?)

(?)

(?)

(?)

(그러나 나는 소희를 구할 의무가 있지 않는가? 내게 그의 순결한 정조를 바치고 내 아들을 않고 그리고도 나와는 살 수가 없게 되어 그는 마음의 괴로움과 물질적 고생을 하면 서도 그래도 살려고 애쓰지를 않았던가? 영숙이가 도와주는 것도 받기가 어렵다고 데파트에서 노동을 하지 않었던가! 그러다가 결국 그런 누명을 쓰게 되지를 않었던가?)

(그러니깐 나는 그를 구원할 의무가 있고. 나는 그와 결혼 하여 내 지난 동안의 죄를 씻을 의무도 있다. 그러니깐 말 일 그가 무사히 나오는 날 나는 그와 결혼을 하여 그가 가 진 반생의 고생을 이제부터 오는 행복된 반생으로 바꾸어 보자.....)

그는 그밤을 뜬 눈으로 새우고 그 다음날 시간을 기다려 담임 판사의 허가를 얻어가지고 ××형무소로 소희를 면회하 러 갔다. 면회는 곧 허락이 되었다.

푸른 옷을 입고 一三一三이란 보기에도 싫증 나는 번호를 붙인 소희의 초라한 모양이 창구멍으로 보였다.

"소희! 어제는 감사합니다. 법정에서 현재 내가 어떤 신분 의 인간이란 걸 말해주지 않은 그 공로를 첫째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내게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나 는 소희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읍니다......"

"?................"

둥그런 소희의 눈이 의심스럽게 빛났다.

"나는 지나간 날의 모든 오해..... 모든 잘못을 당신께 용서 해달라고 오늘 이 자리에 찾아온 겁니다."

그의 말은 명석한 법률가이언만 두서가 없었다.

"내 양심으로 고백하자면 나는 진심으로 소희를 사랑하고 소희를 내 아내로 삼으려구 했어요. 그렇지만 운명의 신의 작희라할까 나는 그만 딴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됐어요. 피눈 물 엉킨 소희와의 그 사랑! 그 사랑도 그때의 오해로는 어 떻게 다시 인연을 계속할 수는 없었거든요. 소희! 용서해요.

그리구 나와 결혼을 해주어요....."

"................"

소희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소희..... 대답을 해줘요....."

"......이선생! 저 같은 게 다시 세상에 나갈 수도 없을게고 또 선생은 벌써 결혼하신 어른이 아냐요....."

소희는 눈물을 머금고 어디까지나 얌전스런 태도로 한마디 씩 차곡차곡 하고는 눈을 내려 감은채 아무 말이 없다.

"그럼 소희씨는 내 죄를 용서해주지 못하겠어요? 그리구 내 고민하는 마음의 날개를 끝내 상처난 그대로 두시겠어 요?"

"................"

"소희씨!"

"네?"

"아냐요. 그러실 건 없어요. 저는 이미 버린 몸이니까 염려 마세요. 그리구 난 또 생각하는 게 있으니깐요!"

"무슨 생각입니까? 무슨 계획입니까?"

"그건 지금 말할 순 없어요."

"그럼 소희씬 절 조금두 생각잖으세요?"

"생각은 해 뭣 하나요?"

"................"

영철은 가슴이 막히었다.

"그럼 전 영원히 한 개의 여성을 짓밟은 악마가 돼야 하나 요? 회한의 눈물 속에 이 마음을 다시 깨끗이 씻을 순 없나 요?"

"................"

소희는 머리를 숙인채 대답 없이 서 있었다.

그때

"시간이오!"

하는 간수의 부리부리한 눈초리가 두 사람의 얼굴을 쏘았 다.

"그럼 가겠어요. 부디 안녕히 계서요! 언도는 구월 삼십일 이니깐 그럼 그동안 몸조심 하세요?"

소희는 자기가 경찰서로부터 지금 미결감으로 넘어 온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가 왔나 하고 마음의 푸른 날개를 돋치고서 그의 굳건한 정의를 생각하고 나왔었는데 뜻밖에 찾아온 영철이의 엄청 난 태도에 소희는 어쩔줄을 몰랐다.

"준걸군! 참 한번 만난 일은 있어도 잘 모르겠어요!"

영철은 아직도 준걸이를 격멸하는 태도로 대답했다. 소희 는 그게 못마땅해서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하고 다시 발길을 돌이키었다.

컴컴한 감방 안은 여전히 어두워 잠깐이나마 볕을 본 그의 가슴에 다시 검고 슬픈 그림자를 서리어 주었다.

소희는 문득 '고오리키'의 '룸펜窟'이란 희곡을 조선 어느 극연구회에서 상연하려고 번역했던 것을 걸자 동무가 가지 고 와서 읽던 걸 생각하였다. 그리고 문득 그 노래의 몇구 절이 생각났다.

해가 지나 해가 뜨나 監獄 속은 어둡네 밤낮으로 아귀놈이 아! 아! 아! 아! 아!

鐵窓으로 넘겨보네 네멋대로 넘겨보렴 담은 넘지 못하고 自由에 목말라도 아! 아! 아! 아! 아!

쇠사슬은 못끊네 아! 무거운 이 쇠사슬 아! 아! 아! 아!

아귀놈의 줄기찬 監視 아무래도 끊진 못하여 너를 解放 못하네 소희는 혼자 조를 맞춰 노래를 입속으로 불러봤다. 구슬프 고 우울한 곡조이다. 입으로 고요히 부르는 그 노래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아지 못하게 떠오르는 두 개의 환영! 하나는 영철이, 하나는 준걸이......

소희 생각엔 영철이가 찾아 오기전까지는 준걸이만 허락한 다면 자기의 반생을 그 의지 굳은 준걸에게 맡겨 지나간 날 의 불행을 청산하고 행복스러이 살고도 싶었다. 그 굳고 줄 기찬 정신! 무엇이나 끝까지 관철하고야 마는 그 굳은 신념!

차디찬 이지! 그러나 용광로와 같이 한번 달면 꺼질 줄 모 르는 뜨겁고 무거운 준걸! 그것을 소희는 오랫동안 사귀어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지난날의 준걸일 경멸하던 그 생각 에서 지금은 그를 끝없이 존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불행한 소희를 끝까지 돌봐주는 그 순정에 소 희는 준걸이와 일생을 같이 하면서 그를 받들고 그를 도와 그의 일생을 빛나게 해주고 싶었었다. 그런데 오늘 영철이 의 돌연한 결혼 신입에 소희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사랑의 애인이오, 또 그이의 씨를 낳은 자기 몸임을 생각 할 때 그이의 결혼 신입도 한 말로 거절해 버릴 수는 없었 다.

(그렇지만 영철인 아내가 있지를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그는 영철이에 대한 희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혼을 하고 내가 구혼을 하면 어떡허구? 그인 모든 걸 희생한댔으니깐--)

(그땐.......)

하고 소희는 얼굴을 붉힌채로 가슴에서 물결치는 혈조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같은 게 살 수가 있을라구?.....)

비록 자기 마음으론 그런 무서운 범죄 사실을 부정할 수 있지만 세상엔 증거 때문에 자기가 누명을 쓰고 징역하는 일도 또 사형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를 생각하면 가슴 이 조이고 온 몸이 불속에 든 벌레처럼 안타까왔다.

그러나 올 날은 오고야 말았다. 구얼 이십일 날 열리려던 공판은 예정과 같이 오전 열시부터 ×호 법정에서 열리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이 공판을 앞두고 소희는 얼마나 울었는 지 모른다. 더럽고 무서운 죄명으로 기소가 되어 고생하는 이 부끄러움이 첫째 자기 자신을 모욕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만인 방척객중에 이런 죄명을 쓰고 나서기가 죽음 보담 더 부끄러웠다. 그러나 소희는 그날도 여전히 법정에 나섰다.

(어떻게 되려노?--)

소희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법정에 나갔다.

변호사의 변호한 덕인가? 또는 사실 심리에서 얻은 정확한 판단이었던가? 소희는 무죄석방이 되었다.

그동안 영철 변호사가 제출한 가지가지 유리한 재료에 의 하여 조사한 결과 소희의 범행은 인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평소 소행이 좋지 못한 사장 김철수에 대한 불신임 이 더욱 소희를 무죄의 길로 이끌게 되었다.

소희는 몇날이 안되어 광명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검사의 공소권 포기로 인하여 더구나 속히 소희는 그 어둡고 음울 한 형무소를 나와 다시 햇볕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소희는 갈 곳이 막연하였다.

(원문에서 글자판독 불가능) 는 천애의 고아 소희는 철문을 나서기 전부터 앞길이 캄캄 하였다. 드디어 소희는 철문을 나섰다. 뜻밖에 -- 마음속에 는 물론 기다리던 것이었지만 -- 준걸이가 기다리고 있었 다. 또 영철이도 더구나 영철인 언제 데려왔는지 어린애 -- 그것은 소희가 낳은 애였다 -- 까지 데리고 왔다. 그밖에도 주인집 아주머니와 데파아트 동무들 몇 명이 와 있었다.

"소희야!"

"소희야!"

하는 소리에 섞여 뜻밖에

"엄마!"

하고 달려드는 상진(相珍)이의 소리! 그동안 떨어져 있었건 만 그애는 용하게도 엄마를 알아 보았다. 그것은 영철이가 어린앨 시킨 모양이었다.

소희는 가슴이 산란해 견딜 수가 없었다.

영철이와 상진이! 준걸이! 주인 아주머니, 이 세상 사람 중 에 그 누구를 따라갈까 아득하였다. 상진이 생각을 하면 영 철이를 따라가고도 싶었지만 그리 가기는 자기의 양심이 허 락찮고 준걸이를 따라가자고 할진댄 어쩐지 준걸에게 미안 한 것만 같았다.

영철은 더구나 자동차까지 가지고 와서 상진이를 시켜

"엄마 나허구 가."

하고 이끌었건만 소희는 들은체도 않고 주인집 아주머니를 따라 뻐쓰를 타고 서대문가지 오게 되었다. 그동안 소희의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설레기만 하였다.

사흘이 지나갔다. 준걸이가 찾아 왔다. 벌써 세 번째 온 것 이다. 그는 그의 순정을 다 바쳐 소희게 구혼하였다. 평생의 반려자로 소희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게 준걸이의 진정이었 다. 물론 소희 자신도 준걸이의 순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 다. 처녀 시절부터 윤락이 된 오늘까지도 조금도 변하지 않 고 따라 다니는 준걸일 생각할 때 지금도 더구나 영달한 몸 이건만 자기를 변치 않고 사랑함을 볼 때 소희는 자기같은 몸으로 그의 아내가 된다는게 너무나 그를 불행하게 하는 것 같아서 곧 예스 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밤낮으로 찾아 와서 자기의 지난 허물을 용서해 주는 의미에서 그리고 일 시 오해 때문에 이렇게까지 된 두 사이를 다시 원만히 하기 위해서 곧 결혼하자는 영철이의 진정한 고백을 들을 때 소 희는 어쩔줄을 몰랐다. 사실 영철의 말에도 진정이 없는 것 은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던 아내까지 보내고 상진이를 데 리고 와서 조르는 것을 보면 그의 과거의 일시적 잘못을 진 심으로 후회하고 앞날의 행복된 생활을 가지려는 양심이 있 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소희는 다시 영철이와 결혼해 살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감정이, 기분이 그곳으로 향하질 않았 다.

그해 가을! 시월도 늦어가는 이십팔일! 일은 일사천리로 진 행이 되어 경성 부민관 작은 홀에서 고준걸(高俊傑)과 김소 희(金素喜)와의 화촉의 성전이 평화롭게 거행되었다. 슬픈 과거를 가지고 굳게 살려는 그들의 발길은 유량한 웨딩마취 에 맞춰 한걸음 두걸음 옮겨졌다.

푸르고 붉은 테프에 싸인 그들의 축복 받은 앞길을 힘차게 걸어 갔다.

이등 침대에 나란히 탄 그들! 바로 그날밤 신랑신부는 신 혼 여행의 길을 상해로 떠나게 되어 경부선에 몸을 실었다.

차는 애련한 철롯길을 타고 남으로 남으로 달음질 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