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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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딘가 이상한 오빠

은철이가 신사의 뒤를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민구의 덕택이었다. 민구는 비록 장난이 심해서 아이들을 곧잘 울리곤 하지만, 본바탕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심술궂은 편이지만 성질이 아주 단순했다.

그러나 민구는 열일곱, 깨알곰보 봉팔이는 열아홉 살이다. 아무리 기를 써 봤댔자 봉팔이를 당해 낼 수가 없어서 민구는 마침내 나자빠지고 말았다.

“어머나, 민구 오빠!”

넘어진 민구를 은주는 달려가서 잡아 일으키며 외쳤다.

바로 그 순간, 몸을 일으킨 봉팔이는 민구의 따귀를 무섭게 내갈겼다.

“이 자식! 너 때문에 도둑을 놓쳤잖아! 너도 은철이와 같이 붙잡혀 갈 줄 알아라!”

봉팔이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치자 민구와 은주는 깜짝 놀랐다.

“뭐, 은철이가 도둑이라고?”

“그래, 남의 가방에서 돈을 훔쳤으면 도둑이지 뭐야?”

“그럴 리가!”

은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딱 벌렸다.

“오빠가 남의 돈을 훔치다니......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오빠는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오빠야.”

은주는 주먹을 부르쥐고 봉팔이에게 대들었다.

“알지 못하면 잠자코 있어! 신사의 가방에서 2만원을 꺼낸 게 누군 줄 알아?”

은주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가 돈을 훔쳤다니, 하늘같이 믿고 있던 오빠가 아니었던가! 은주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야. 은철이는 그런 나쁜 애가 아니야!”

“따악!”

민구가 은철이를 편들자 봉팔이의 손이 또 한 번 민구의 따귀를 갈겼다.

“내일 보자. 내일이 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거야. 경찰에게 잡혀가서 자백을 하나 안 하나, 두고 보면 알 것 아냐?”

봉팔이는 그렇게 말하며 민구를 땅 위에 탁 밀어 버렸다.

은주와 민구는 하는 수 없이 은철이의 구두 닦는 도구를 챙겨 가지고 돈암동행 전차를 탔다.

“은주야, 울지 마. 은철이는 절대로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아니까, 염려 마.”

민구는 은주를 위로했으나 은주의 눈에서는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래도 오빠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오빠가 왜 도망을 쳤을까?”

“응, 그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하여튼 집에 가서 물어보도록 하자.”

은주와 민구는 삼선교 역에서 내려 오른편으로 개천을 끼고 한참 걸어가다가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 언덕에는 일제 시대에 방공굴로 팠던 구멍이 뻥 돌아가며 예닐곱 개 뚫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방공굴에는 모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가마니를 붙여 놓은 문틈으로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저녁 먹고, 너의 집에 갈게.”

민구가 그렇게 말하면서 세 번째 방공굴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갔다.

바로 그 민구네 방공굴 옆으로 좁다란 길이 언덕 위로 하나 뻗어 있다. 그리고 그 길이 뻗어 올라간 언덕 위에는 판잣집이 세 채 서 있다. 그 세 채 가운데 한 채가 은주네 집이다.

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이 있는 집이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오빠야?”

은주는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오, 은주냐?”

뜻밖에도 그것은 방 안에 누워 계셔야 할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아니!”

은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머니, 왜 또 부엌에 나오세요?”

은주는 눈시울이 젖는다.

“나는 괜찮다. 배 많이 고프지?”

어머니는 성냥개비같이 가는 장작불을 냄비 밑에서 살리고 있었다.

“어머니, 몸도 챙기지 못하시면서 부엌엔 왜 나오세요? 어서 들어가 누우세요.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늦었어요.”

은주는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 고맙고 가여워서 어머니를 아궁이 앞에서 잡아 일으켰다.

“글쎄, 한 번만 내가 밥을 끓여 보자꾸나! 한 달째 가만히 누워서 너희들만 자꾸 부려먹으니, 어린 몸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럽겠니!”

“어머니도 참...... 괜히 그런 쓸데없는 생각 마시고 얼른 들어가 누우세요.”

은주는 억지로 어머니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모셨다.

“제가 늦은 것은 잘못이에요. 다음부터는 꼭 일찍 돌아올게요. 어머니, 시장하셨지요?”

“아니다, 너희들이 시장하지. 나야 가만히 누워만 있는 사람이니 시장할 리가 있니? 오빠는 아직도 안 왔느냐?”

“네.”

은주는 짧게 대답하고 부엌으로 나갔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장작을 지피면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오빠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은주는 오빠가 자꾸만 걱정스러워졌다.

밥을 안치고 나서 은주는 된장을 풀어 호박찌개를 끓이고 밥상을 차렸다. 등잔불을 켜고, 은주는 어머니 앞에 밥상을 가져왔다.

“어머니, 어서 드세요.”

“그래, 너도 같이 먹자. 그런데 은철이가 너무 늦는구나!”

“곧 돌아오겠지요.”

그 때 문 밖에 발자국 소리가 나며 은철이가 돌아왔다.

“너 늦었구나!”

“네, 조금 늦었습니다. 어머니, 좀 어떠세요?”

“그저 그만그만하다. 어서 저녁 먹어라.”

“네.”

그러면서 은철이는 동생 은주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다가 그만 마음이 찔리는지 시선을 무릎 위에 떨어뜨렸다. 은주는 잠자코 밥을 먹으면서 때때로 오빠의 얼굴빛을 가만히 살폈다. 아무래도 어딘가 좀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