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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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찻길로 뛰어들다

입학식이 끝나자, 신입생들이 홍수처럼 교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용품이나 교과서를 사기 위해 짝을 지어 종로나 진고개로 제각기 흩어져 갔다.

은주가 교문을 막 나섰을 때였다.

“야, 은주야!”

어디선가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돌아보니 정문 밖에서 민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민구 오빠. 어떻게 여길 왔어?”

“너 보러 왔다. 이리 좀 와.”

은주는 민구와 나란히 걸어가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생겼어?”

“봉팔이 자식이 말이지. 그 깨알곰보 말이야, 그 자식이 오늘 내 뺨을 한 번 후려갈기고 하는 말이, 너도 도둑놈의 편을 들었으니 같은 도둑놈이라고 하면서 은철이하고 나를 경찰에 고소하겠다는 거야.”

“고소?”

은주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응, 고소한다는 거야. 은철이가 분명히 가방에서 2만 원을 꺼내 가졌다면서. 그것을 전봇대 뒤에 서서 봉팔이 자식이 분명히 보았다는 거야.”

“아니, 그게 정말이야?”

은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은철이가 좀 수상하긴 수상해! 봉팔이의 말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서, 그 길로 나는 부리나케 너의 집으로 뛰어갔어.”

“그래, 오빤 뭐래?”

은주는 마음 졸이며 민구의 입술만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가 뭐라고 대답했을까? 오빠의 대답 여하에 따라, 은주의 앞길은 캄캄해지기도 할 것이고 밝아지기도 할 것이다.

“응, 그게 말이야, 부엌에서 미음을 끓이고 있던 은철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는 나를 흘끗 한 번 바라보더니, 내가 미처 말도 하기 전에 ‘뭐야 무슨 일이 생겼어? 봉팔이가 뭐라고 그러더나?’하고,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하면서 외치는 거야.”

그렇다. 수상하다. 암만 해도 수상하다.

“그래서 봉팔이가 경찰에 고소한다는 말을 했더니만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니야, 그 돈은 빌린 거야. 그 신사가 분명히 사례로 준 거야.’ 하고 부르짖는 거야. 그런데, 그게 분명치가 않으니까 걱정이야. 주었다고도 하고 꾸었다고도 하고......”

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그처럼 사랑하고 믿고 아끼던 하나밖에 없는 자기 오빠가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경찰의 손에 붙들려 간다면, 학교가 다 뭐냐! 학교에 못 다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남의 돈을 훔쳐서까지 학교에 가고 싶은 은주가 아니었다.

‘오빠, 오빠! 나의 사랑하는 오빠! 오빠는 왜 은주의 마음을 그처럼 몰라주는 거야?

은주는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려 견딜 수가 없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은철 오빠를 내가 무서운 죄인으로 만들어 버렸구나! 내가 없었다면......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우리 오빠는 그처럼 무서운 죄를 짓지 않았을 게 아닌가! 그냥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죽어 버리면 오빠는 나 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 불쌍한 우리 오빠! 가여운 오빠!’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은주는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으며, 민구의 뒤를 따라 전차 정류장까지 나갔다.

“울지 마, 울어서 될 일이 아니니까, 울지 마라.”

민구는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은철이가 하는 말이, 은주 너한테 가서 오늘은 종로 4가에서 신문을 팔지 말고 진고개 입구로 가서 팔라고 하는 거야. 자기도 오늘부터 진고개로 나가겠다고 하면서, 날더러 꼭 전해 달래. 그래서 내가 지금 온 거야. 그런데, 그런 말이 다 수상하지 않아? 무서운 것이 정말 없다면, 정말 죄가 없다면 자리를 진고개로 옮길 필요가 있겠니? 봉팔이를 그처럼 무서워하고 피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수상하긴 수상해.”

“민구 오빠.”

“응?”

“나도 죽고 싶어. 정말로 죽고 싶어. 나 때문에 모두들 고생하는 걸 보면,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야!”

은주는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야?”

그러나 은주는 정말 죽고 싶어졌다. 자기 하나만 죽어 버리면 어머니의 고생도 덜어질 것 같았고, 오빠의 고생도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은주는 한강 다리 밑의 푸른 물결을 생각했다. 기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기찻길도 생각했다. 양잿물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바로 그 때, 남대문 거리에서 쏜살같이 달려오는 한 대의 택시가 은주의 시선을 번개같이 붙잡았다.

‘그래, 죽어 버리자! 눈 딱 감고 죽어 버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거야.’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민구의 옆을 휙 하고 떠나자마자 은주는 눈을 딱 감고 쏜살같이 달려오는 자동차 바퀴를 향해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