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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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5년 전에 헤어진 쌍둥이

“앗, 은주야!”

민구가 깜짝 놀라 은주를 부르며 부리나케 달려갔을 때는 벌써 은주의 다람쥐 같은 발걸음이 쏜살 같이 달려오는 자동차를 향하고 있을 때였다.

“앗, 은주야!”

“빠앙”

그 순간, 날쌘 경적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달려오던 자동차가 “끼익―” 하고 급히 멈추면서 자동차 옆머리로 은주의 몸뚱이를 보기 좋게 떠밀어 던졌다.

그와 동시에 은주는 가벼운 지푸라기처럼 큰길 한복판에 나자빠지고 말았다.

“은주야, 은주야!”

민구가 한걸음에 달려와 은주의 몸뚱이를 잡아 일으켰다.

“은주야, 은주야!”

민구는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은주를 힘껏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은주는 대답이 없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은주는 죽은 사람처럼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은주의 머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어떻게 됐느냐?”

그 때 자동차 운전사와 손님으로 탔던 신사 한 사람이 뛰어오면서 외쳤다.

“아, 머리를 다쳤구나!”

신사와 운전사는 눈이 둥그레지며 민구의 품안에서 은주를 안아 일으켰다.

“빨리 병원으로.”

신사는 허둥대면서 운전사와 함께 은주를 부둥켜안고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네 동생이냐?”

신사는 얼굴빛이 새파래져서 물었다.

“아니에요.”

“그럼?”

“우리 옆집 아이예요.”

“음......”

자동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빨리 병원으로 갑시다.”

“네.”

“부앙―” 하고 운전사는 속력을 냈다.

신사는 은주를 자기 품안에 꽉 안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민구를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그런데 얘가 왜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들었을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둘이 같이 이야기하면서 왔는데, 갑자기 자동차 앞으로 뛰어들지 않겠어요? 저도 그만 깜짝 놀랐어요.”

“응.”

그러면서 신사는 은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추켜올리며 은주의 얼굴을 그제야 비로소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 부르짖었다.

“오오, 얘가...... 얘가......”

자기의 딸 영란이와 똑같은 얼굴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옷은 비록 남루하지만, 지금 머리에 상처를 입고 갑작스런 충격으로 죽은 듯이 정신을 잃고 있는 이 소녀의 얼굴 생김새가 마치 판에 박은 듯 자기의 딸 영란의 얼굴과 똑같았다.

“오오, 이 아이로구나! 바로 이 아이로구나!”

어제 영란이가 종로 4가에서 만났다는, 그 신문 팔던 아이가 바로 이 아이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내 딸!”

신사는 그 순간, 온몸을 흐뭇하게 적시는 아버지로서의 다사로운 애정을 느끼면서 은주의 상처 입은 몸뚱이를 힘껏 부여안았다.

“이 애 이름이 뭐지?”

신사는, 아니 영란의 아버지 이창훈 씨는 기쁨이 넘치는 얼굴을 번쩍 들면서 민구에게 물었다.

“은주예요.”

“은주?”

“네.”

“성은?”

“서 씨예요. 서은주.”

“서은주. 음......”

틀림없는 영란의 동생이었다.

이창훈 씨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또 하나의 자기 딸 은주를 꼭 껴안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그 캄캄한 망막 속에 물결처럼 흘러가버린 15년 전 어두운 과거의 한토막이 마치 영화 장면처럼 나타났다.

평양에서 남쪽으로 약 50리가량 떨어져 있는 뱃골이라는 동네에서 영란의 부모는 살고 있었다. 집은 가난하고 영란의 어머니는 몸이 무척 쇠약하여, 쌍둥이 영란이와 은주를 낳았을 때는 그 날 끼니조차 신통히 끓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병까지 얻어 몸져눕게 되자, 갓난애 둘을 먹일 젖이 나오지 않았다.

그 즈음 영란의 아버지는 돈벌이를 하러 몇 달씩 집을 비운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쌍둥이 아이를 낳았을 때도 아버지는 집에 없었다. 젖을 못 먹여서 자꾸만 울어 대는 가여운 두 어린 것을 들여다보며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면서 앓아누워 있었다.

그때, 낯선 여인네 한사람이 찾아와서 문득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두 애를 다 기르지 못할 것 같으니, 한 아이는 남에게 맡기는 게 어떻겠어요? 만일 그럴 생각이 있다면, 마침 좋은 자리가 하나 있으니 그 집에 주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어머니는 며칠 동안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는 수 없이 그 여인네의 말대로 동생 되는 아이를 눈물을 흘리면서 내주었다. 아이를 주면서 그 집이 어떤 집이냐고 물었을 때, 여인네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는 거요. 아이를 내주면 그 아이는 영영 그 집 아이가 될 것이니, 나중에 아이를 다시 찾아가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려거든 애초부터 아이를 내주지 말고,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다면 아이를 내주시오.”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그 여인네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머니로서는 그 여인네가 누구이며, 그녀가 아이를 갖다 준 집이 어떤 집인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만 알아 두세요. 이 아이를 데려가는 집은 아주 잘사는 집이라오. 사람들도 모두 착해서 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여기고 귀히 기를 것이니, 그것만은 걱정 마시오. 아들이 하나 있지만, 그 아들을 낳고는 애를 다신 못 낳게 됐다나 봐요. 그래서 딸자식 하나를 얻어다 기르려는 거랍니다.”

어머니는 흐느껴 울면서, 아직 이름도 없는 쌍둥이 중 동생을 내주며 영영 찾지 않기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데려가서 기르는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이름이 누군지 통 알 수 없었다.

그 후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 동안에 영란이 아버지는 차츰차츰 사업이 번성하여 해방 후에는 커다란 고무 공장을 경영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고 보니 집안 형편은 날로 좋아지고 살림도 풍족해졌지만, 자나 깨나 부모의 마음에 항상 걸리는 것은 영란이 동생의 소식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넉넉한 집안이라고 했으니까, 지금쯤은 영란이처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겠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어제 영란이의 말을 듣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깜짝 놀랐던 것이다. 아직 영란이에게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란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나, 마음속으로는 무척 놀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그 애가 남루한 옷을 입고 길거리에서 신문을 팔고 있더라는 말을 듣고는 부모 된 마음에 그만 애처롭고 가여워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 몰래 밤새도록 눈물을 홀렸다.

“여보, 내일 저녁엔 꼭 종로 4가에 가서 그 애를 만나보고 오세요. 이름이 뭔지, 어디서 사는지, 꼭 알아오세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부탁했다. 그래서 오늘 아버지는 영등포 공장에서 일찍 나와 신문 파는 아이를 만나기 위해 종로 4가로 택시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