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22장
22. 믿을 수 없는 또 다른 어머니
자기의 피와 살과 애정을 고스란히 받고 나온 딸 은주가 세상의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고이 살아 있어 준, 그 운명의 고마움을 하늘에 감사하면서 부인은 울었다.
그러나 은주는 부인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온 그 한마디가 무슨 말인지를 처음엔 몰랐다. 그 때까지도 은주의 온 정신은 오빠 은철을 구하기 위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 친절한 부인 집에서 어린 아기도 돌봐주고 빨래도 해주려고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주는 부인의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부인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다가 겨우 생각난 듯 물었다.
“아주머니가...... 아주머니가 제 어머니라고요?”
“그래, 은주야. 내가...... 내가 바로 네 어머니란다.”
부인은 북받쳐 오르는 설움과 기쁨에 흐느껴 울면서 은주의 조그만 몸뚱이를 꽉 껴안았다.
“은주야! 내 딸 은주야!”
은주는 부인의 품에 꼭 안기어 숨이 막힐 듯했고, 눈앞이 어지러워 두 손으로 부인의 앞가슴을 힘껏 떠밀었다.
“아주머니! 놓아주세요! 저를 놓아주세요!”
“은주야, 네 사정이 그처럼 딱하고 가여운 줄도 모르고...... 그저 네가 부유한 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거라고 믿었던 것이...... 네가 오죽하면 죽음을 결심하고 지나가던 차에 뛰어들었겠니?”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대체 누구세요?”
“네 어머니야! 아주머니가 아니고 네 어머니라고!”
그러나 이 낯선 아주머니가 벌써 여러 번째 말하는, ‘네 어머니’라는 한마디가 은주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이었다.
“아주머니는 누구시기에...... 아주머니, 그게...... 그게 정말이세요?”
“정말이야, 은주야! 내가......이 어미가 인정머리가 없어서 너를...... 너를 그만 내 손으로 기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순간 은주는 온몸의 힘을 다해 부인의 가슴을 힘껏 떠밀면서 침대 위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헤아릴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이 은주의 연약한 마음을 무섭게 쳤다.
“다른 사람에게라고요? 아주머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아주머니, 울지만 마시고 좀 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네?”
이번에는 은주 편에서 부인의 손목을 힘껏 잡아 흔들었다.
이러한 광경을 보자 민구도 놀랐고, 이창훈 씨도 무척 당황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마. 네 몸이 좀 좋아지고 난 후에...... 네 아버지가 아까 자꾸만 막는 것을, 내가 마음이 약해서 부질없는 말을 먼저 해 버렸구나.”
부인은 남편을 쳐다보면서 약간 민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은주야. 이 분이 바로 네 아버지란다!”
부인은 그러면서 자기 남편 이창훈 씨를 쳐다보았다.
“어머나!”
하나의 허황된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은주의 표정은 깜짝깜짝 놀라면서 신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너는 바로 네 아버지가 탔던 차에 치인 거야. 이 분이 바로 너의 아버지란다.”
“은주야!”
신사는 그제야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너무 놀랄 것 같아서 이런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었는데, 그만 네 어머니가......”
그 순간, 은주는 어떤 헤아릴 수 없는 강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부인에게 잡혔던 손목을 힘껏 뿌리치며 발악을 하듯이 부르짖었다.
“아니에요! 거짓말이에요! 모두 다 거짓말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벌써 만주에서 돌아가셨어 요! 우리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는 지금 앓아누워 계세요. 불쌍한 우리 어머니는 지금 내가 돌아오기를...... 아아, 어머니!”
은주는 그 순간, 컴컴한 판잣집 안에서 신음하는 어머니의 여윈 모습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가슴이 쪼개질 것처럼 아파왔다. 빨리 가야 했다. 빨리 가지 않으면 그러잖아도 아프신 어머니가 걱정하실 것이 분명했다.
“아아, 어머니!”
은주는 몸을 벌떡 일으켜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그러나 휘청거리는 다리는 은주의 몸뚱이를 두 발자국도 옮겨 놓지 못한 채 부인의 품안으로 쓰러지게 했다.
“안 된다, 은주야! 진정해야지, 안 된다!”
이창훈 씨 내외는 정신을 잃은 은주의 몸을 급히 침대에 눕히고 나서 다시 의사를 불렀다.
“어린 마음에 충격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의사는 은주를 살펴 본 다음 주사를 한 대 놓고 나서, 이창훈 씨 내외를 쳐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