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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 뜨는 언덕/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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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은주의 성적표

은주와 영란이의 이상한 사이에 궁금증을 느끼면서 오 선생은 교무실로 들어갔다. 교무실로 가면서 오 선생은 5월 초순에 열릴 시내 중학교 음악 콩쿠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5월 초순이면 이제부터 약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한 학교에서 기악과 성악 부문 각 한 명씩 두 사람을 내보내게 되어 있었다.

오 선생은 기악에서는 피아노를 잘 치는 3학년의 김경숙을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성악에서는 1학년의 이영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영란은 성량에 약간 여유가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른 적당한 학생은 없는지, 이 애 저 애 마음속으로 열심히 물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영란이가 성악을 잘하니까, 혹시 같은 핏줄을 받은 은주도 성악에 소질이 있을지 모른다.’

오 선생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교무실로 들어가서, 곧 서류함에서 신입생의 성적표를 찾아 조사하기 시작했다. 입학 원서와 함께 초등학교에서 첨부해 온 은주의 성적표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 여기 있다!”

오 선생은 은주의 성적표를 손에 들고 무슨 기적이라도 바라는 사람처럼 국어, 수학, 과학, 미술, 체육 등의 성적을 쭉 훑어보다가 마치 고함을 치듯이 중얼거렸다. 음악에서 99점이란, 말하자면 최고 점수였기 때문이다.

“아, 음악 99점?”

오 선생의 막연한 기대는 조금도 틀리지 않고 들어맞았다. 더구나 비고란에 적혀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을 때, 오 선생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이 학생은 다른 과목도 우수하지만, 특히 성악에는 천재적 소질을 가진 학생임을 음악 평론가인 신채영 선생님이 증명했음.

이와 같은 글을 보자 오 선생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더구나 자기의 육감이 들어맞은 것이 너무나 기뻤다. 오 선생은 음악 평론가로 이름이 높은 신채영 선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은주에 대한 기대가 한층 더 커졌다.

“됐다!”

무슨 귀중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오 선생은 무척 흥분했다.

“오늘은 1학년 음악시간이 있지!”

3교시가 1반 음악 시간이다. 2반과 3반은 모두 오후 시간이었다. 오 선생은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은주네 반의 음악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운동장에서 영란이가 흘긴 그 날카로운 눈초리는 온순하고 착한 은주의 마음을 또다시 슬프게 했다.

‘나는 언니가 너무 반갑고 좋은데, 언니는 왜 나를 자꾸만 꺼리고 싫어할까? 아아, 그 무서운 눈초리!’

은주는 자꾸만 슬퍼졌다. 2교시 수업이 끝나고 모두가 운동장으로 뛰쳐나갔으나, 은주는 홀로 텅 빈 교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은주와 영란이가 쌍둥이라는 소문이 나자 창 밖 너머로 얼굴을 구경하러 오는 학생이 많았다.

“아이, 어쩌면 저렇게 똑같을까!”

모두들 이렇게 한마디씩 던지고는 지나갔다.

“야, 참 귀엽게도 생겼다. 내 동생 삼을까?”

그러면서 킥킥 웃으며 지나가는 상급생들도 있었다.

“은주야.”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영순이가 뛰어 들어왔다.

“응?”

은주는 머리를 돌려 영순이를 쳐다보았다.

“네게 언제 언니가 있었니? 지금 밖에서는 야단법석이야. 나도 방금 가보고 왔는데, 3반에 있는 영란이라는 아이가 어쩌면 그렇게 너와 똑같이 생겼니?”

은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기와 자매라는 것을 그렇게도 싫어하는 영란이를 자기의 언니라고 말하기가 거북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개한테 쌍둥이 자매냐고 물어봤더니, 개도 너처럼 대답을 않고 ‘별것이 다 따라다니면서 사람 못살게 군다’고 그랬다더라.”

영순이는 마음은 착하지만 주책없는 말을 곧잘 하는 아이였다.

“근데 어쩌면 자기 동생을 그렇게 말하니? 건방지다고, 그 반에선 모두들 개를 싫어한다더라.”

은주는 그래도 대답이 없더니, 이윽고 쓸쓸한 얼굴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어쩌냐?”

“그래도 얘, 그런 법이 어디 있니? 한어머니 배에서 꼭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나온 친자매인데...... 아니, 제 동생이 가엾지도 않나 봐?”

“애도 참, 가엾긴 뭐가 가엾니?”

말은 비록 그렇게 했으나, 은주는 점점 서글퍼졌다.

‘별것이 다 따라다니면서 못살게 군다고?’

이 한마디가 착한 은주의 마음을 몹시 찔렀다. 그처럼 안 가겠다는 은주를 억지로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학교에 보낸 오빠의 고마운 마음은 은주를 기쁘게 하기보다는 아프게 했다.

자기를 낳아 준 친부모를 만난 것도 은주를 기쁘게 하기보다는 자꾸 더 슬프게 했다.

그 때 종이 울렸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학생들이 음악실로 밀려들어갔다.

“은주야, 종쳤어. 음악실로 가자.”

영순이는 멍하니 앉아 있는 은주의 손목을 잡고 음악실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