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 뜨는 언덕/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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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불타는 질투심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왔을 때는 벌써 은주의 소문이 교내에 좌악 퍼져 있었다.

“이번 콩쿠르에는 1반의 서은주가 나간대.”

“아이, 어쩜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를까!”

“3반의 이영란도 잘 부른다지 않았어?

“그렇지만 서은주가 더 잘 부르지. 이영란은 성량이 은주보다 훨씬 못해.”

“특히 영란이는 건방져서 싫어.”

“같은 쌍둥이 자매라도 성격이 어쩌면 그렇게 다를까?”

이런 말이 운동장 여기저기에 흘러 다녔다. 그리고 그런 말이 영란의 귀에 안 들어갈 리가 없었다.

영란은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은주가 자기보다 노래를 더 잘 부른다는 그 한마디 가 가슴이 아프도록 싫었다.

“참, 아니꼬워서! 거지같은 것이 노래가 다 뭐야?”

영란은 혼잣말로 그렇게 종알거렸다. 다가오는 음악 콩쿠르를 불현듯 생각하니 영란은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제까짓 게 노래를 잘하면 얼마나 잘한다고?’

영란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영란이는 노래를 잘 부르니까, 커서 훌륭한 보컬리스트가 될 거야.’

영란은 이렇게 말해 주던 오 선생님의 말이 생각나자, 가슴이 한층 더 쑤시는 듯이 아팠다.

‘바로 그 오 선생님이 은주의 노래를 칭찬했다는 말이지?’

영란은 분하고 원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확실한 말은 안 했지만 오 선생님은 나를 콩쿠르에 내보낼 눈치였는데...... 그 거지 같은 것이 불쑥 뛰어드는 바람에...... 아이, 분해!’

영란은 울고 싶도록 분했다.

오후 맨 마지막 시간이 영란의 반인 3반의 음악 시간이었다.

오 선생은 3반에서도 〈보리수〉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역시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쯤 해서 오 선생이 영란을 불렀다.

“이영란.”

“네.”

영란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보리수〉를 한 번 더 해 봐요.”

그러면서 오 선생은 피아노 앞으로 가서 앉았다.

“네.”

영란은 대답을 하고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가슴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시작!”

영란은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은주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보다 나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란은 모든 역량을 다하여 정성껏 불렀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에나 찾아온 나무 밑, 찾아온 나무 밑.”

영란이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오 선생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봐도 은주에 비해 성량이 자꾸만 딸리는 것 같았다. 은주라면 여유를 가지고 넘길 수 있는 대목을 영란은 간신히 넘기는 것이다. 은주의 노래에는 자연스러운 맛이 있었지만, 영란의 노래에는 어딘지 모르게 인공적인 데가 자꾸만 섞여 있었다.

“됐어. 이영란, 앉아요.”

영란은 자리에 앉은 후, 선생님의 입에서 무슨 반가운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온 정신을 모아 가만히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는데, 누군가 영란을 대신하듯 오 선생에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이번 콩쿠르에는 이영란이 나가죠?”

“아, 그건 아직 결정이 안 됐다.”

“그럼 1반의 서은주가 나가요?”

또 다른 학생이 물었다.

“아, 그것도 아직 결정이 안 됐다.”

“그래도 서은주가 나간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다는데요?”

“그건 너희들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

그 때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오 선생은 영란에게 일렀다.

“이영란, 잠깐 음악실에 남아 있어요.”

“네.”

영란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다. 오 선생은 분명히 콩쿠르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라고, 눈치 빠르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 선생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영란, 1반에 가서 은주를 데리고 와요. 동생 은주를......”

뜻하지 않은 오선생의 말에 영란은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

“가서 은주를 데리고 와요.”

“네.”

영란은 하는 수 없이 대답을 하고 복도로 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 수가 없는 것보다는, 그 거지 같은 은주를 데리러 간다는 것이 영란은 죽기보다도 더 싫었다. 자존심이 깎이는 것 같아서 못 견디게 싫은 것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그런 생각도 불쑥 들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어서 영란은 뾰로통한 마음으로, 그러나 풀죽은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가 1반을 향해 걸어갔다.

은주는 그 때 아이들 맨 뒤에서 영순이와 함께 교실을 나오고 있었다.

“은주야, 네 언니 온다!”

은주는 주춤주춤 걸어오는 영란을 향해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오 선생님이 음악실에서 널 부르셔.”

영란은 쌜쭉한 얼굴로 그 한마디를 내던지고는 홱 돌아서서 오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언니!”

은주는 영란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영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더니 신발장에서 구두를 꺼내 신기가 바쁘게 깡충깡충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어머......”

은주는 하는 수 없이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교문 밖으로 뛰어가는 영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오 선생님이 나를 왜 부르실까?”

은주는 서글픈 마음을 억누르며 2층 음악실로 올라갔다. 영순이가 따라오면서 말했다.

“아마, 널 콩쿠르에 내보내려고 그러시는 걸 거야.”

“아니, 내가 어떻게......”

“아냐, 꼭 그럴 거야. 영란인 아마 퇴짜를 맞은 거야. 그러니까 화가 나서 뾰로통해 달아난 거지 뭐야. 하여튼 빨리빨리 올라가봐.”

영순이도 은주를 따라 음악실 문 밖까지 올라가서 문틈으로 가만히 음악실 안을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