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국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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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보이느니 무덤들만 다닥다닥 박혀 있는 잔디 벌판이 빗밋이 산발을 타고 올라간 공동묘지.

바른편은 누르붉은 사석이 흉하게 드러난 못생긴 왜송이 듬성듬성 눌어붙은 산비탈.

이 사이를 좁다란 산협 소로가 꼬불꼬불 깔끄막져서 높다랗게 고개를 넘어갔다 . 소복히 자란 길 옆의 풀숲으로 입하(立夏) 지난 햇빛이 맑게 드리웠다.

풀포기 군데군데 간드러진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섰다. 제비꽃은 자주빛, 눈곱만씩한 괭이밥꽃은 노랗다. 하얀 무릇꽃도 한참이다.

대황도 꽃만은 곱다.

할미꽃은 다 늙게야 허리를 펴고 흰 머리털을 날린다.

구름이 지나가느라고 그늘이 한 떼 덮였다가 도로 밝아진다.

솔푸덕에서 놀란 꿩이 잘겁하게 울고 날아간다.

미럭쇠는 이 경사 급한 깔끄막길을 무거운 나뭇짐에 눌려 끙끙 어렵사리 올라가고 있다.

꾀는 없고 욕심만 많아, 마침 또 지난 장에 새로 베려온 곡괭이가 알심있이 손에 맞겠다, 한데 산림간수한테 오기는 있어, 들키면 경을 치기는 매일반이라서 들이 닥치는 대로 철쭉 등걸이야. 진달래 등걸이야 소나무 등걸이야 더러는 멀쩡한 옹근 솔까지 마구 작살을 낸 것이, 해놓고 보니 필경 짐에 넘치는 것을 제 기운만 믿고 짊어진 것까지는 좋았으나, 산에 내려오면서는 몇번이고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고 시방 이 길을 올라가는 데도 여간만 된 게 아니다.

게다가 사월의 긴긴 해에 한낮이 훨씬 겨워 거진 새때나 되었으니 안 먹은 점심이 시장하기까지 하다.

끙끙 힘을 쓰는 소리에 지게가 삐이득삐이득, 지게 밑에 매달린 밥바구니가 다그락다그락 서로 궁상맞게 대답을 한다.

중간에 한 번이나 두 번은 쉬었어야 할 것이지만, 고집이 그대로 떠받고 올라간다. 지게 밑으로 통통하니 알이 밴 새까만 두 다리가 퇴육살이 불끈불끈 터지기라도 할 것 같다.

고개 마루턱에 겨우겨우 올라서자 후유 휙 쟁그럽게 숨을 몰아 내쉬면서 한옆으로 나뭇지게를 받쳐놓고 일어선다.

“작것이! 나는 저 때문에 이렇기……”

미럭쇠는 공동묘지께를 흘끔 돌려다보고는 두런두런, 허리의 수건을 뽑아 땀 흐르는 얼굴을 쓰윽쓰윽 씻는다.

“……존 길루(길로) 편허게 갈 것두 이렇기 고생허는디……

작것이!”

시원한 바람이 한아름 고개 너머로 몰려든다. 바라다보이는 고개 밑은 또 하나 산이 가렸고 그놈을 넘어서 오릿길을 가야 집이다.

미럭쇠는 웬만큼 땀을 들인 뒤에 지게 밑에서 밥바구니를 떼어, 뒷짐 져 들고 어슬렁어슬렁 공동묘지로 걸어간다. 할미꽃 터럭이 눈 날리듯 허옇게 덮여 날린다.

공동묘지는 풀도 바스락 소리 않고 대낮이 밤처럼 조용하다.

여새겨 찾지 않아도 저편 산 밑으로 치우쳐 외따로 있는 게 안해의 무덤이다. 아직 잔디가 뿌리를 못 잡아 까칠하고, 뗏장 사이로는 검붉은 황토가 비죽비죽 비어져 나온다.

무덤 한옆으로 먹 자죽이 선명하게

 密陽[밀양] 朴氏之墓[박씨지묘]

라고 쓴 말뚝이 섰다. 한편짝에는 다시

 戊寅[무인] 四月二日[사월이일]

이라는 날짜를 썼다.

미럭쇠는 읽을 줄도 모르면서 말뚝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그 담에는 무덤을 한 바퀴 돈다.

뗏장도 벗겨진 데는 없고 구멍고 나지 않고 별일 없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는 무덤 앞에다가 밥바구니를 열고 숟갈을 꽂아 괴어놓는다. 밥이라야 뉘와 피가 절반이나 섞인 현미(玄米) 싸래기밥, 한옆으로 짠무김치를 몇 쪽 덧들인 것뿐이다.

“처먹어라…… 너 생각허구서 배고푼 것두 안 먹구 애꼈다가 갖구 왔다!”

마치 산 사람한테 이야기하듯 중얼거린다.

밥바구니를 괴어놓아 주고, 운감하기를 기다리면서 멀거니 앞을 바라보고 앉아 한눈을 판다.

앞은 산 밑에서부터 훤하니 퍼져나간 들판, 들판이 다다른 곳에는 암암한 먼산이 그림 같다. 들 가운데 조그마한 산 모퉁이를 지나 기차가 장난감같이 아물아물 기어간다.

미럭쇠는 넋을 잃은 듯 손으로 잔디풀을 또옥똑 뜯고 앉았는 동안 어느 결에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한다.

“작것이 웨 죽어뻬맀어! …… 가만히 있으먼 갠찮을 틴디……

방정맞게 웨 죽어뻬리여! …… 작것이!”

목멘 소리로 두런두런 주먹을 쥐어다가 눈물을 씻는다.


바로 지나간 삼월 초생이었었다.

미럭쇠가 논에 두엄을 져내다가 점심을 먹으러 오는 길인데, 동리 우물의 동청나무 울타리 뒤에서 점례가 해뜩해뜩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눈치로 웃고 섰다.

“너 이 가시내, 웨 날 보고 웃냐?”

“망할 년의 자식이네! 이년의 자식아, 내 이름이 가시내냐?”

“너 이 가시내, 날만 보머넌 중둥이 시어서 해룽해룽허지?”

“애개개! 참 내 벨 꼴 다 보겄네! ……”

말로는 시뻐해도 속으로는 분명 아픈 자리를 건드렸던 것이다.

“……이년의 자식아, 내가 저 화상이 그리 좋아서? …… 아아나 옜다!”

“이 가시내야, 너 암만 그리두 네까짓 건 일없단다!”

“흥! 누구는 일 있다는디? 아이구 귀역질이 마구 나오네! …… 저 꼴에 그리두 새말 납순이한티 반히였다지? 참 똥싼 주제에 매화타령허네!”

“이년의 가시내, 주둥이를 찢어놀라! 내가 납순이한티 반했으니 네게 무슨 상관이여? 이년의 가시내!”

미럭쇠는 슬그머니 골이 나서 커다란 눈망울을 부라린다. 그러나 점례는 조금도 무서워하질 않는다.

“이년의 자식아, 누가 상관헌다냐? …… 그렇지만 되렌님! 속 좀 채리세유! 납순이한티는 암만 반히서 침을 지일질 흘리구 댕겨두 헛다방입니다요.”

“걱정 말어, 이 가시내야……”

“닭 쫓던 강아지는 지붕이나 치어다보지! 종수허구 죽자살자 허는 납순이한티 저 혼자 반헌 저 화상을 무얼 치어다볼랑고?”

“이 가시내야, 그짓말 허먼 호랭이가 물어간다!”

“미안허시겄네! 오늘두 납순이는 취 뜯으러 간다구 건너와서 뒷산으루 올라가구, 종수는 나무허러 가는 체 어실렁어실렁 뒤따러 갔답니다요…… 어떠냐? 헤쩍허지? 미이이.”

“참말이냐?”

“흥! 인제는 아숩지? …… 몰라 몰라!”

점례는 싹 돌아서서 두레박질을 시이시한다.

“빌어먹을 놈의 가시내! 샘에나 풍당 빠져 죽어라!”

미럭쇠는 내뱉으면서 흐느적흐느적 걸어간다. 걸어가면서 생각이다.

점례 가시내가 노상이 거짓말은 아니구 종수 자식이 워너니 눈치가 수상하기는 수상했어!

그러니 그놈의 새끼한테 납순이를 뺏기구 만담?

내가 요만할 적부터 내걸로 맡아두었는데 다 자란 뒤에 뺏겨!

사람이 화가 나서 살 수가 있나!

하기는 종수 자식이 나보다 얼굴이 밴조고롬하니 이쁘기는 이쁘겠다?

그거 원 참! ……

미럭쇠는 귀주머니에서 동강난 거울 조각을 꺼내 들고 제 얼굴을 들여다본다.

죽가래로 푹 찌른 것처럼 가로 째진 입, 길바닥에 떨어진 쇠똥같이 지 질펀펀한 코, 왕방울 같은 눈, 좁디좁은 이마, 부룩송아지 대가리처럼 노란 머리터럭이 곱슬곱슬 자지러붙은 대가리…… 등속.

미상불 제가 보아도 그다지 출 수는 없는 인물이다.

제엔장맞을! 워너니 이 화상을 누가 좋아한담! 눈깔이 삔 점례가 시내 나 건짜로 반해서 그 지랄이지.

원 어쩌면 요렇게 빌어먹게 갖다가 만들어놓더람!

가만 있자. 이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잘못이겠다? 옳아! 아버지는 죽었으니 할 수 없고 어머니를 졸라야지.

아 그래도 내가 기운은 세고, 또 사내자식이 머 인물 뜯어먹고 사나?

빌어먹을 것, 들이대 본다…… 눈 멀뚱멀뚱 뜨고서 뺏겨? ……

미럭쇠는 허둥지둥 집으로 달려들더니 저의 모친더러, 시방 얼른 새말 납순네 집에 건너가서 혼인하자는 말을 하라고, 만일 납순이한테 장가를 못 가는 날이면 목을 매달고 죽는다고, 어머니가 나를 이렇게 못나게 낳아놓았으니까 그 대신 꼭 납순이한테 장가를 들여주어야 한다고, 마치 미친 놈 납뛰듯 주워섬기고서는 도로 부리나케 뒷산으로 올라간다.

온 산을 다 매고 다니던 끝에 으슥한 골짜구니의 양지바른 언덕 밑에서 둘이 나란히 누워 있는 종수와 납순이를 찾아냈다.

납순이는 질겁하게 놀라 달아나고, 그러나 저만치 가 서서 거취를 보고 있고, 종수는 여느때 같으면 눈만 부릅떠도 비슬비슬 피하던 것이, 오늘은 눈살이 패앵팽 해가지고 아기똥하니 버티고 서서 있다.

미럭쇠는 그놈에 비위가 더 상했다.

“너 이놈의 새끼!”

미럭쇠는 눈을 불끈불끈 그 잘난 코를 벌씸벌씸, 내리 으끄러버릴 듯이 바싹 다가선다.

“그리서?”

말소리며 몸은 떨려도 종수의 대답은 다부지다.

“아, 요것 보게!”

“웨? 어찌서 그리어? 늬가 무슨 상관이여?”

“웨 상관이 없어? 내가 맡어논 지집애를 늬가 웨 건디려? 그리두 상관이 없어?”

“머, 밭두덕의 개똥참외더냐? 맡어놓구 어쩌구 허게? 그녀러 자식, 생긴 것허구 넉살두 좋네!”

“아, 요년의 새끼가! ……”

말로는 암만해야 달리고, 미럭쇠는 종수의 멱살을 움켜쥔다. 실상 진작에 그럴 것이었었다.

종수도 마주 멱살을 잡는다.

“그리여? 어찌여?”

“요, 싹둥머리 없는 놈의 새끼! 사알살 돌아댕기면서 남의 집 지집애나 바람맞히구! …… 죽어봐!”

와락 잡아 낚으는데 종수는 허깨비같이 휘둘리면서도

“웬 상관이여? 내가 늬미를 후려냈더냐? 네 할미를 후려냈더냐?”

고 입은 끄은히 놀린다.

그러나 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둘이는 어우러져 딩군다.

말은 없고 잠시 동안 식식거리면서 엎치락뒤치락했지만, 악으로 덤빈 종수는 다 같은 스물한살박이 장정이라도 미럭쇠의 황소 같은 힘을 당해내는 수가 없었다.

미럭쇠는 종수의 배를 타고 앉아서 주먹으로 가슴패기를 짓찧는다.

“요놈의 새끼, 다시두?”

“오냐, 헐 대루 히여라!”

“요것이 그리두 잔소리여!”

미럭쇠는 종수의 목을 내리누른다. 종수는 캑캑, 눈을 헤번덕헤번덕 얼굴에 푸른 핏대가 선다.

그러자 마침 그때다. 등 뒤에서 작대기가 따악하더니 미럭쇠의 정수리를 보기 좋게 후려갈긴다.

“아이쿠!”

미럭쇠는 정신이 아찔해서 앞으로 넙치려고 하는데 재우쳐 한번 더 따악 내리갈긴다.

미럭쇠는 그대로 정신을 놓고 쓰러지고 납순이는 달려들어 종수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가지고 달아난다.


납순네는, 계집애가 못된 종수 녀석과 좋잖은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대서 걱정을 하던 판이라 미럭쇠네가 청혼을 하니까 얼씨구나 좋다고 납채 삼십 원에 선뜻 혼인을 승낙했다.

미럭쇠네는 작년에 저의 부친이 제 장가 밑천으로 장만해 놓고 죽은 송아지가 중소나 된 것을 오십 원에 팔고, 또 양돝 새끼 여섯 마리를 삼십 원에 팔고 해서 납채 삼십 원을 보내고 나머지 오십 원으로 혼인을 치렀다.

그게 바로 미럭쇠가 납순이한테 작대기를 맞던 날부터 겨우 열흘 만이다.

혼인을 한 첫날밤.

미럭쇠는 달리느라고 맞은 발바닥이 아파 절름절름 신방으로 들어온다.

생전 처음으로 촛불이 환하니 켜져 있는 신방에는 불보다 더 환하게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분단장한 신부 납순이가 소곳하니 앉아 있다.

미럭쇠는 가뜩이나 큰 입이 귀밑까지 째져, 느긋해라고 한참이나 웃고 섰다가 신부 앞에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히히, 작것, 늬가 작대기루 날 때맀지?”

납순이는 마치 눈이 오려는 겨울날처럼 새촘해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눈썹 한 개도 까땍 않는다.

“그때 혼났다 야! …… 원 그렇기두 사정없이 때린단 말이냐?

히히.”

“………”

“그리두 나는 늬가 이뻐서 이렇기 네한티루 장개를 가잖었냐?

그렇지? 히히히히.”

“………”

“그러닝개루……”

미럭쇠는 납순이의 두 손을 덤쑥 쥔다.

그 손은 얼음같이 찼다.

“……너두 그전 일을 죄다 잊어뻬리구서 인재버텀은 우리 각시닝개루, 응? 내 말 잘 듣구 그리라, 응?”

이렇게 첫날밤은 지냈다.

미럭쇠는 노염이 다 풀려서 이제는 종수를 죽이지 않는다고 말을 냈고, 그래서 종수는 며칠 만에 도로 동네로 돌아왔고, 납순이는 그대로 까땍없이 눈 오려는 겨울날처럼 새촘한 채 그날 그날을 보내고.

그리한 지 보름이 되는 어느 날 석양.

미럭쇠가 등 너머 봄보리밭에 소매(小便肥料)를 져내고 있노라니까, 난데없이 점례가 미럭쇠, 미럭쇠, 불러대면서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미럭쇠는 웬일인지 가슴이 서늘해서 밭두둑으로 쫓아나오는데 점례는 가빠하는 체하고 쓰러질 듯 팔에 가 매달린다.

“저어……”

“웨 그리여?”

“저어, 시방 오다가 어머니더러두 일러주었어……”

“무얼?”

“저어, 납순이가아……”

“납순이가! ……”

“내가 망을 보닝개루 우……”

“그리서?”

“종수가 아……?”

“종수가? ……”

“응, 종수허구 우, 납순이허구 우, 방으루우……”

“멋?”

미럭쇠는 점례를 떠다 박지르고 소처럼 내리뛴다.

등을 넘어서자 이녀언 이년, 모친의 게목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단걸음에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모친은 납순이의 머리채를 감아 쥐고 마당 가운데서 이리저리 개 끌듯 끌어 동댕이를 치고 있다.

조그마한 보따리가 한편으로 굴러져 있다.

“어서 오니라……”

노파는 더욱 기광이 나서 허덕허덕 들렌다.

“……이년이, 이년이 대낮에 응…… 대낮에 그러구서……

그러구서두 그놈허구 도망을 갈라구 보따리를 싸구…… 이년! 돈 사백 냥(80圓) 내누아라! 이년, 이 찢어죽일 년!”

미럭쇠는 잡아 먹을 듯 험한 얼굴을 휘휘 두르다가 토방으로 우르르, 절굿공이를 집어 들고 납순이게로 달려든다.

“이년을!”

방아 찧듯 절굿공이를 번쩍 쳐들어, 단번에 골통을 칵 내리 바수려는 순간, 납순이와 딱 눈이 마주친다. 그것은 미럭쇠 제가 이뻐하는 납순이의 얼굴! 마주 말끄러미 올려다보는 그 눈이 어떻게도 액색한지 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퍽.”

내리치는 절굿공이에 애매하게시리 굳은 마당 바닥이 움푹 팬다.

“이년을 이렇게 쳐죽일 참인디…… 가만 있자……”

미럭쇠는 절굿공이를 내던지고 허둥지둥 둘러본다.

“이놈은? 이놈허구 한티다가 묶어놓구서 한꺼번에 놈년을 쳐죽여야 헐 틴디이…… 놈을 잡어와야지, 이놈을…… 어머니! 그년 놓치지 말구 꼭 붙들구 있수…… 내 이놈마저 잡어갖구 올 티닝개루……”

이르고는 쭈르르 사립문께로 달려나간다. 사립문 밖에서는 동리 아이들이 진을 치고 구경을 하다가 양편으로 좍 길을 터준다.

점례가 마침 배슥이 웃고 서서 눈을 찌긋째긋한다.

미럭쇠는 짐짓 제 몸뚱이로 점례를 칵 떠받아, 그것은 방금 납순이를 절굿공이로 내리찌려던 그 옹심과 꼭 같았다. 그렇게 죽어라고 떠받아 나동그라뜨리고서 휭하니 뛰어간다.

종수를 잡는다고 선불맞은 범처럼 뛰어나간 미럭쇠는 그 길로 용머리의 술집으로 가서 밤이 늦도록 술을 먹고, 그대로 쓰러져 잤다.

이튿날 새벽에야 철럭거리고 집으로 돌아온 미럭쇠는, 납순이가 부엌 서까래에 목을 매고 늘어진 시체를 제 손으로 풀어 내려놓아야 했었다.

노파가 밤새도록 붙들고 지키다가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든 사이에 납순이는 빠져나가서 그 거조를 냈던 것이다.

서방 미럭쇠가 돌아오는 날이면 맞아 죽고 말 것, 가령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병신이 될 만큼 얻어맞을 것(아까 내리치던 그 무서운 절굿공이!) 그러고서도 평생을 맘없이 매달려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진작 죽는 것만 못하다고, 그래 자결을 하고 만 것이다.

“그년을 꼭 내 손으루 쳐죽일랬더니, 에잉 분히여!”

미럭쇠는 동리 사람들이 모여 섰는 데서 이렇게 장담을 하고 못내 분해하는 체했다.

눈물까지 쏟아졌다. 모두들 분해서 그러는 줄만 알았지, 미럭쇠의 정말 슬픈 심정은 알아채지 못했다.


안해 납순이의 무덤 옆에 넋을 놓고 앉았던 미럭쇠는 이윽고 정신이 들어 무덤으로 고개를 돌린다.

숟갈을 꽂아 괴어 논 밥바구니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파리가 서너 마리나 엉기었다.

“쪼깨 먹었냐?”

미럭쇠는 중얼거리면서 밥구니를 집어든다.

“물이 없는디, 목 마처서 어쩌꺼나!”

마디지게 한숨을 내쉰다.

“작것이 웨 죽어뻬리여! …… 가만히 있으면 갠찮얼 틴디……

방정맞게 웨 죽어뻬리여! …… 작것이!”

두런두런, 눈물을 찔끔찔끔 밥바구니를 차고 앉아서 숟갈을 뽑아든다.

“꼬시레.”

조금 떠서 앞으로 던지고, 또 한번은 뒤로 던지면서

“꼬시레.”

양편 옆으로 한번씩

“꼬시레.”

“꼬시레.”

골고루 고사를 한다.

할 때에 마침 등 뒤의 산허리께서

“쑥꾸욱.”

“쑥꾸욱.”

쑥국새(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미럭쇠는 막 밥을 먹으려던 숟갈을 멈추고 끌리듯 고개를 돌린다.

“쑥꾸욱.”

“쑥꾸욱.”

형체는 안 보이고 울음소리만 들린다.

“쑥꾸욱.”

“쑥 쑥꾸욱.”

산을 돌아 넘어가는지 소리가 감감하니 멀어간다.

미럭쇠는 옛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며느리가 해산을 했는데 야속한 시에미가 미역국을 안 끓여주고 쑥국만 끓여주었다. 며느리는 피가 걷히지 않고 속이 쓰리다 못해 삼칠일 만에 그만 죽었다.

그 며느리가 죽어 혼이 새가 되었는데 쑥국에 원한이 잦아져 그래서 밤낮 쑥꾸욱 쑥꾸욱 운다고 한다.

“우리 납순이는 죽어서 무엇이 되었으꼬? …… 쑥국새나 되었으머는 우는 소리나 듣지.”

미럭쇠는 쑥꾹새 우는 곳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소스라쳐 한숨을 내쉰다.

“쑥꾸욱.”

“쑥 쑥꾸욱.”

마지막 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더니 그 다음은 잠잠하다.

미럭쇠는 밥 먹기도 잊고 도로 넋이 나가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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