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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네/점순이의 이야기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일환아!

아버지는 이번에는 〈사람의 관찰(觀察)의 힘〉이라는 것을 가르치겠다. 세밀한 주의로 관찰하는 것─ 이것은 사람의 온갖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다.

그러면 여기 그 관찰의 힘에 대한 실례를 한두 가지 들어서 표본을 보여 준 뒤에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한 재미있는 옛말을 추려내어서 네게 들려 주겠다.

한 사람이 교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끄나불로 매어단 등이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손을 들어서 등을 툭 밀쳐 보았다. 끈에 늘어져 있던 등은 밀치는 바람에 저편으로 갔다. 그 편으로 갔던 등은 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등은 제자리에서 멎지 않고, 아까 갔던 방향과 반대의 방향으로 휙 왔다. 왔던 등은 다시 갔다. 갔던 등은 다시 왔다.

한참을 가고 오고 오고 가고 한 뒤에야 등은 제자리에 멎었다.

사람이 밀치기 때문에 등이 저 편으로 갔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갔던 등은 왜 즉시로 제자리에 돌아가지 않고 이번에는 반대의 방향까지 밀려 왔나? 가장 평범한 상식으로 생각하건대 등은 한 번 밀려 갔다가라도 즉시 제자리에서 멎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그렇거늘 등은 왜 멎지를 않고 이 편으로 흔들려 왔나?

여기서 문득 그 사람은 타력이라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무엇이든 넘치는 힘은 멎을 곳에서 멎지를 않고 좀더 이전까지 오게 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 힘에다가 조금 다른 힘을 가하면 그 늘어진 등을 영구히 좌우편으로 흔들흔들하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생각하고 생각한 결과 무거운 추를 달아서 그 추의 무거움을 이용하여 늘어진 물건이 영구히 흔들흔들할 수 있도록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여 시계라 하는 것을 만들어 내었다.

평범한 일이다. 너도 매일 너의 방에 늘어진 전등에서 볼 수가 있는 가장 평범한 일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일이라도 그것을 관찰할 때에 거기서는 귀중한 진리가 생겨나고 그 진리는 마침내 일상 생활에 없을 수 없는 〈시계〉라는 것을 낳지 않았느냐?

또 한 가지─

한 사람이 능금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바람이 약간 불었다. 나뭇가지가 약간 흔들렸다. 그때 잘 익은 커다란 능금 한 알이 땅에 툭 떨어졌다.

능금은 왜 떨어졌느냐?

가령 여기서 누가 네게 그런 질문을 할 것 같으면 너는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하겠지. 능금이 잘 익기 때문에, 능금의 꼭지가 작기 때문에, 능금이 커서 무거워지기 때문에, 능금꼭지가 말라서 약해지기 때문에, 바람이 불기 때문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기 때문에, 혹은 그 여러 가지의 까닭이 다 합한 때문에─

이런 수없는 대답이 네게서 나올 테지.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까지 너는 생각할 줄을 알겠느냐?

그 모든 것이 다 한 이유는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 때문에 능금 가지에서 능금 알이 떨어진다 하는 것은 설명이 되되, 능금은 왜 땅에까지 내려졌느냐? 능금이 땅에 내려질 까닭은 어디 있느냐? 능금 가지와 능금 알과는 서로 떨어졌다 하나, 거기서 떨어진 능금이 왜 위로 올라도 안가고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벋지도 않고, 혹은 그 자리에 그냥 멎어 있지도 않고 땅을 향하여 내려졌느냐?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의 온갖 물건은 왜 모두 놓은 자리에 그냥 있지 않고 땅을 향하여 내려오느냐? 내려올 필요는 어디 있으며 내려올 까닭은 어디 있느냐?

일환아! 너는 여기까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느냐? 네가 공을 가지고 놀다가 손에서 내려뜨린다. 그때 네 손을 떠난 공이 왜 그 자리에 있지 않고 땅을 향하여 떨어지느냐? 네가 공을 하늘로 올려칠지라도, 그 공은 얼마만큼 올라가다가는 왜 도로 땅을 향하여 내려오느냐?


그때에 능금나무 아래 앉았던 사람은 문득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가 창도한 것이 땅의 인력설(引力說)이었다. 땅의 중심은 물건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다.모든 물건이 땅을 향하여 내려오는 것은, 땅의 중심에 있는 인력에 끌려 그리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인력설이다. 우리가 매일 몇 백 번 몇 천 번 보면서도 세밀히 주의하지 않기 때문에 거저 넘기던 현상에서, 그 사람은 한 가지의 귀중한 힘을 발견한 것이다.

또 한 사람이 난로 앞에 앉아 있었다.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뜨거운 불에 주전자의 물은 잘 끓기 시작하였다. 주전자의 뚜껑은 연하여 들먹거렸다. 뚜껑이 들먹거릴 때마다 그 틈으로는 김이 훅훅 나왔다.

그 사람은 손을 들어서 주전자의 뚜껑을 눌러 보았다. 그러나 김이 올려 미는 힘은 얼마나 세든지, 손에 눌린 뚜껑도 들석들석하면서 그 틈으로는 여전히 김이 훅훅 몰려나왔다.

그 사람은 여기서 증기의 놀라운 힘을 알았다. 물이 끓어서 증기로 화할 때는 그 힘은 무척 커지는 것을 알았다.

이리하여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 증기 기관이라는 것을 발명하였다.

이십 세기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온갖 증기 기관도, 한 옛날 어떤 사람이 주전자를 희롱하며 앉아 있던 데서 나온 것이다. 그때에 만약 그 사람이 증기의 힘(그것은 가장 평범한 일로서, 우리 집에서도 매일 물을 끓이며 밥을 지을 때마다 보는 현상이다)을 허수로이 보았더면, 증기 기관의 발명이라는 것은 아직껏 되지 않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보다 썩 뒤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서야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일환아!

가장 평범한 일이라도 그것을 세밀한 주의로서 관찰한다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일이냐? 네가 매일 학교에 가는 길에 혹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보고 듣는 평범한 일이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모든 사물에 대하여 관찰안을 부을 때는, 거기서 어떤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생겨날지 어찌 뜻이나 하겠느냐?

「관(觀)하는 사람은 견(見)하지 않는다.」

하는 말이 있다. 이 세상의 많고 많은 사물─ 그 가운데는 아직 우리 인생이 그 문조차 두드려 보지 못한 귀한 진리며 법칙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 모든 법칙이며 진리의 문은 오직 관(觀)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것이다.

눈을 가진 사람이면 다 견(見)은 하는 것이다. 그것을 〈견〉한 뒤에 〈관〉까지 하여야만 진리의 귀중한 문은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견(見)이요, 견한 바를 다시 마음의 눈으로 보고 생각하는 것이 관(觀)이로다.

너는 사물을 관하여라. 견한 사물 가운데서 관할 만한 재료를 추려내어서 다시 관하여라. 관은 사람에게 지식의 문을 열어 주는 한 열쇠니라.

그러면 아버지는 이 아래 〈아라비안 나이트〉 가운데서 한 재미 있는 이야기를 추려내어 가지고, 온갖 일을 세밀히 주의하여 보던 한 종이, 자기 주인집을 구해낸 말을 들려 주겠다.


옛날 일이로다.

어떤 장거리에 하서방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 장거리에서는 〈하서방같이 정직하라〉고 서로 말할 만큼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서방은 매우 가난하였다. 그날 그날을 살아가기 위하여, 온갖 노동을 다 하였다.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았다. 삯짐을 졌다. 막일이란 막일은 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서 일한다 할지라도 겨우 식구를 먹이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에게 흔히 있는 일과 같이 하서방에게는 식구가 많았다. 식구라야 딴 식구가 아니요 많은 아들딸을 둔 것이다.

어떤 날 하서방은 나무 하러 산에 갔다.

「하느님도 딱하시지, 왜 나 같은 사람에게 많은 자식을 주신담. 많은 자식을 주신 이상에는 먹을 것이나 넉넉히 주시지, 왜 먹을 것조차 부족히 주신담. 다 귀찮다! 노새 노세, 젊어서 노세, 나이가 들어서 백발이 되면 못노느니라─」

신세 한탄이며 소리를 연하여 하면서 하서방은 산에서 나무 부스러기들을 줍고 있었다. 차차 나무를 주우면서 돌아다니는 동안, 하서방은 어느덧 산 깊은 곳까지 이르렀다. 그 사이 주운 나무를 보니 벌써 그래도 한 지게가 거의 되었다.

「에라, 좀 쉬어서 하자. 이게 하루 종일 한 일이냐? 팔아야 한 냥어치도 될까 말까? 망할 놈의 일, 배만 고프구나.」

하서방은 나뭇짐을 거기 내려놓았다. 그리고 흐르는 땀을 웃소매로 씻으며 그곳에 주저 앉았다.

「에라, 만수로다. 노세 노세로다. 산악이 대명이로다. 배가 고프니깐 소리도 안나온다.」

하서방은 한참을 거기서 쉬었다. 그리고 땀도 다 걷은 뒤에 도로 일어섰다.

「아아! 이젠 또 좀더 해 가지고 집으로 갈까. 대체 여기가 어디쯤이나 되나? 꽤 깊이 들어온 것 같은데─」

그리고 얼마나 멀리 들어왔는가 하고 사면을 살피어 보았다. 그때에 하서방의 눈에는 저 편에서 이리로 향하여 오는 한 떼의 사람이 보였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 초부가 아닌 이상에는 사람이 다닐 까닭이 없었다. 게다가 한 사람도 아니요, 수십 명이 오는 것을 보고 하서방은 이상히 여겼다. 길도 없는 산골을 한 무리의 사람이, 더구나 이런 외딴 데를 향하여 올 이치가 없었다. 그러면 그것들은 혹은 도적 의 무리가 아닐까? 이 산 가운데는 산적의 소굴이 있단 말이 있다. 그러면 저놈들은 산적이 아닐까?

산적이면 어서 몸을 피해야 하겠다. 아무것도 가진 것은 없지만, 산적은 사람을 보면 곧 잡아죽인다니 곧 피하여야겠다. 이렇게 마음먹고 하서방은 거기 하여 놓은 나무를 얼른 들어서 수풀 가운데 감추어 놓았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그 무성한 잎 틈에 몸을 숨겼다.

이상한 사람의 무리는 점점 가까이 왔다. 차차 그들의 말소리도 들리게 되었다.

나무에 올라가 숨은 하서방은 가슴이 주먹만하여졌다. 자기 딴에는 잘 숨었노라고 하기는 했지만, 옷자락이나 발끝이나 어디 아래서 보이는 데나 없나? 자기의 숨소리가 아래까지 들리지나 않나? 나뭇가지에 숨은 그인지라, 어디라 더 피할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좀더 완전히 숨노라고 납작 엎디었다.

사람의 무리는 서방이 있는 나무 아래까지 이르렀다.

「자, 짐들을 내려놓아라.」

두목인 듯한 사람이 명령하였다.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짐을 내려놓았다.


두목인 듯한 사람은,

「이번에는 착실히 벌었다. 상도 이번에는 후히 주마.」

하면서 발을 높이 들었다가 땅을 두어 번 쿵쿵 내리찧었다. 그리고,

「열려라, 깨! 열려라, 깨! 열려라, 깨!」

하고 고함쳤다.


땅이 한 번 흔들린 뒤에 거기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겼다.

하서방은 그것을 보았다. 무서움 때문에 사지가 떨리는 가운데서도 이 이상한 일을 호기심으로 보았다.

「자 들어들 오너라.」

두목은 앞서서 그 구멍으로 들어갔다. 따라온 부하인 듯한 사람들은 제각기 짐을 들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다 들어간 뒤에 구멍 안에서는 두목의 목소리로,

「닫겨라, 소금! 닫겨라, 소금! 닫겨라, 소금!」

하는 것이 들렸다. 동시에 구멍은 다시 흔적도 없이 닫겼다.

그것은 산적의 소굴이 분명하였다. 각 곳으로 돌아다니며 빼앗아 온 재물들을 모두 갖다가 이곳에 감추어 두는 것이었다.

자기는 이제 어찌하여야 할지를 몰라서 한참을 그냥 나뭇가지에 딱 붙어 있던 서방, 한참 지나서 정신을 차렸다.

「자, 어서 도망하자. 그놈들의 눈에 띄기 전에 어서 도망가자.」

그리고 서방이 바야흐로 나무에서 내려오려 할 때에 다시 안에서는,

「열려라, 깨! 열려라, 깨! 열려라, 깨!」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기는 다시 구멍이 소리도 없이 생겼다.

몸을 조금 움직였던 하서방은 다시 납작 엎디었다. 그리고 숨소리를 죽였다.

산적들은 나왔다.

「자, 상을 후히 주었으니깐 이 뒤에도 또 잘들 일을 하란 말이다. 일만 잘 하면 언제든 후히 상은 준다.」

「두목 만세!」

「또 어디 큰 집을 찾아야겠다.」

「두목 만세!」

서로 이렇게 날뛰며 산적들은 온 길로 돌아갔다.

산적들이 보이지 않게 멀리 간 뒤에야 하서방은 겨우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숲에서 자기의 지게와 나무를 찾아 지고 도로 집으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이때 하서방의 마음에는 호기심이 무럭무럭 일어났다. 그는 한 번 그 구멍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어떤 보물을 얼마나 갖다가 감추었는지 한 번 보고 싶었다.

하서방은 짊어졌던 나무 지게를 도로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까 두목이 섰던 자리로 갔다. 거기서 아까 두목이 하던 바와 같이 발로 몇 번 땅을 쿵쿵 내리울렸다. 그런 뒤에,

「열려라, 깨! 열려라, 깨! 열려라, 깨!」

하고 고함쳤다.

땅에는 문득 커다란 구멍 하나가 생겼다. 굽어보니 그 구멍에는 아래로 내려가기 좋게 층계까지 있는 것이었다.

하서방은 사면을 살펴보았다. 그의 가슴은 무섭게 방망이질하였다. 지금 막 산적이 무슨 잊은 것이 있어서 이리로 달려오는 듯하였다. 머리털까지 쭈뼛쭈뼛 하늘로 올라갔다. 한참을 거기서 주저하며 몸만 떨고 있던 서방은 마침내 결심을 하고 단숨에 구멍에 뛰어들면서 층계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닫겨라, 소금! 닫겨라, 소금! 닫겨라, 소금!」

하고 아까 산적의 두목이 하던 말을 하여 보았다.

구멍은 감쪽같이 도로 감추어졌다.

도적질이란 못해 먹을 노릇이었다. 하서방은, 거기까지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 어둑신한 모퉁이마다 사람이 숨어 있어서 누구냐고 고함지르는 것 같아서 연하여 흠칫흠칫 놀랐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 하서방은 차차 깊이로 들어가 보았다. 곳간이 여럿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간 안에는 산적들이 훔쳐온 보화가 들어 있을 것이다.

빙빙 이리저리 돌며 그것을 구경하는 동안, 겁에 띄였던 하서방도 점점 대담하게 되었다. 대담하여 감에 따라서 곳간을 열어 보고 싶은 생각도 차차 났다.

하서방은 곳간을 열기에 한참을 주저하였다. 열기만 하면 그 안에서 파수가 뛰쳐나올 듯싶었다. 한참을 주저한 뒤에 하서방은 첫째 곳간문을 열어젖혔다. 문득 하서방의 눈은 황홀하여졌다. 그 큰 곳간은 금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찬란한 황금빛이 곳간을 여는 순간 하서방을 놀라게 하였다.

하서방은 넋이 너울너울 하늘로 떠오르는 듯하였다. 이런 많은 금전은, 보기는커녕 말로도 못 들었던 것이었다. 거기서 한참을 정신없이 서 있던 서방은 다음 곳간으로 가서 열었다. 거기는 은전이며 은그릇들이 가득 차 있었다. 또 그 다음 곳간에는 보석이 차 있었다. 비단필로 가득 찬 곳간도 있었다.

황홀한 눈으로 하서방은 한 곳간 한 곳간씩 다 보았다. 그러는 동안 서방의 마음은 차차 그 황금의 빛에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황금은 흑사심(黃金黑士心)이란 속담말이 있다. 정직함으로 이름났던 하서방도 이 많은 황금을 보매 저으기 마음이 움직였다. 그 황금이 가령 정당한 주인이 있는 것이라면 혹은 하서방은 그런 욕심까지 안내었을지 모르지만, 도적놈의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는 하 서방의 욕심이 꽤 동하였다. 어차피 정당한 주인의 것이 아닐진대, 내가 좀 가져간들 어떠랴 하는 변명조차 붙었다.

온갖 빈곤을 다 맛보고 자란 하서방─ 더구나 그의 하루 종일의 벌이도 여기 있는 한 닢의 금전만도 못한 것을 생각할 때는 여기 이렇듯 가려 있는 황금을 자기가 좀 가져갈 권리가 있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렇게 생각한 서방은 비단 곳간에 가서 비단을 막 찢어서 커다란 자루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곳간 가운데서 그 중 값진 것이 들은 보석 곳간과 금전 곳간의 물건을 마음대로 움켜쥐어다가 자루에 가뜩이 담았다.

힘이 세고 든든한 하서방으로도 겨우 질만큼 자루는 금전과 보석으로 찼다. 그 뒤에 하서방은 또 비단을 찢어다가 멜빵을 만들어서 그 자루를 진 뒤에 굴 밖으로 나왔다. 그때는 이미 해는 서산으로 넘고 세상은 캄캄하게 어두운 때였다.

하서방은 그 보물을 지고 단숨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자식들은 하서방을 보고 왜 늦게 돌아오느냐고 물으면서 따라왔다. 그것을 사서방은,

「쉬, 쉬! 애들은 저리로 가라. 여보 마누라, 조용히 날 따라 들어오오.」

하면서 씨근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보, 이거 봐!」

하서방은 짐을 내려놓으며 소리를 낮추어 아내에게 말하였다.

「금 벼락! 보석 벼락!」

「그게 대체 뭐요? 나무는 못했소?」

「나무? 나무 십만 단 백만 단 했다. 이걸 보, 이걸 봐! 부자 됐어!」

하서방은 자루를 풀어놓았다. 즉 자루에서는 눈부시게 하는 황금 보옥이 쏟아져 나왔다.

아내는 눈이 둥그래졌다.

「이게 대체 웬 게요.」

「가만! 남 들을라. 좌우간 이것 담을 그릇이나─ 우리 집에 웬 그릇이나 있으리, 큰 보자기라도 펴놓고, 그리고 이걸 대체 어쩌나? 아, 수가 있다! 일일이 세일 수야 있다구. 형님네댁에 가서 말을 좀 얻어 오오. 몇 말이나 되는지 좀 되 봅시다.」


「대체 이야기나 해요. 이게 웬 게야요?」

거기서 하서방은 오늘 지낸 일을 다 제 아내에게 말하였다.

황금 앞에는 허리를 안굽히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에게서 오늘의 일을 들은 아내는 춤을 추다시피 하였다.

「그럼 내 가서 말빡을 얻어 오께─.」

그리고 달려가서 하서방의 형의 집에서 말을 하나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한 말, 두 말, 세 말, 에 시원치 않아!」

처음에는 좀 말로 되어 보았지만 마지막에는 그것도 시원치 않아서 그냥 보자기에 쏟아 버렸다.

가난한 자기네 집에 말을 오래 두었다가는 이 일이 발각될지도 모르겠다고, 말은 곧 형의 집에 돌려보냈다.

이렇게 말을 곧 돌려보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그 일은 형수에게 발각이 되고야 말았다.

하서방의 형 내외는 영리한 위에 욕심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닌 밤중에 동생네 집에서 말을 빌리러 온 것을 이상하게 본 것이었다. 쌀도 겨우 한 되 두 되씩 사다 먹던 동생네 집에서 갑자기 말을 얻어 간다 하는 것은 수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말을 내어 주기 전에 미리 말 안쪽에 진한 풀을 발라 두었다.

동생네 집에서 말을 도로 돌려보냈다. 그래서 바삐 검사하여 보니까 말 안에는 풀에 글 전 몇 닢과 보석 몇 개가 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과연 의외였다. 의외라기보다 오히려 경이(驚異)였다. 가난하던 동생네 집에 금전이며 보석이 생긴다는 것도 의외려니와, 보석이며 금전이 얼마나 많기에 일일이 세이지도 못하고 말로 되었나? 말 안에서 금전과 보석을 발견한 형 내외는 서로 어이없는 듯이 한참을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웬일이오?」

먼저 아내가 말했다.

「글쎄......」

「해가 서에서 떴구료!」

「아니 해가 땅에서 떴소.」

그리고, 다시 한참을 말을 들여다보고 있던 아내는 벌떡 일어섰다.

「내가 알아보지!」

그는 다시 앉아서 말에 붙은 금전이며 보석을 다 뜯었다. 그리고 그것을 찬찬히 종이에 싸 가지고 동생네 집으로 찾아갔다.

벌써 전부 정리를 하고 시치미를 떼고 있던 서방 내외는 밤중에 찾아오는 형수를 의외의 낮으로 맞았다.

「밤중에 어떻게 오세요?」

거기 대하여 형수는 간사히 웃으며 종이 뭉치를 내어 주었다.

「아니 다른 일이 아니라, 아까 말을 가져왔는데 거기 이게 붙었읍디다그려. 그래서 도로 주인한테 도로 돌려보내려......」

이 말에 동생 내외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추려던 일이 벌써 발각이 난 것이었다.

「한데, 동생님네는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부자가 됐소? 참 부럽기도 해. 금전을 손으로 세이게 되기만 해도 어려운 노릇인데 말로 되다니 어쩌면!」

이제는 더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을 것이다. 감추자면 더욱 의심을 살 테고, 의심을 사면 마음이 그다지 곱지 못한 형수는 어떤 소문을 낼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하서방은 하릴없이 오늘 지낸 일을 죄 제 형수에게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산적의 소굴을 본 이야기로 그 들어가는 방법까지 다 제 형수에게 말하였다.

「열려라, 깨! 열려라, 깨! 열려라, 깨!」

굴의 문을 여는 이 암호까지도 다 알려 주었다.

시동생의 이야기를 다 듣고, 형수는 몇 번을 시동생이 부자가 된 것을 치하하며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자기네는 수삼 일로 더 큰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든든히 먹었다.


동생의 집에서 돌아온 아내의 보고를 듣고는 이 욕심 많은 사나이의 마음은 여간 움직이지 않았다.

이튿날 이 욕심꾸러기 형은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곧 든든한 나귀 한 마리를 준비해 가지고 신으로 들어갔다.

「나귀 허리가 부러지도록 실어 오세요.」

아내는 이렇게 신신 당부하였다.

아우에게서 들은 바에 의지하여 찾은 결과 그 곳을 어렵잖게 찾았다. 그 곳까지 이르러

「열려라, 깨! 열려라, 깨! 열려라, 깨!」

하고 고함을 치매, 아니나 다를까 땅에는 문득 구멍이 생겼다.

그 사람은 굴로 뛰어들어갔다. 들어가 보매, 과연 각 곳간은 금은 보화로 차 있었다. 이 욕심꾸러기는 그 가운데서 금전과 보석만 연해 날랐다. 나귀의 허리가 거의 부러질 듯이 실었다.

이제는 도저히 더 실을 수가 없도록 많이 실은 뒤에 그래도 아직 태산같이 남아 있는 보화를 아까운 듯이 돌아보며 그는 제 집으로 돌아왔다.

종일토록 대문에서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맞받아 나오면서 첫번 물은 말이,

「이젠 없읍디까?」

하는 것이었다.

「없어? 아직도 여기 백 곱은 더 남아 있겠는데......」

「그럼 왜 그것만 가져왔수?」

「망할놈의 나귀새끼, 더 실을 수가 있어야지─」

「그럼 당신이라도 지고 오지─ 이젠 할 수 없으니 내일 또 가봐요. 내일은 두번 다녀 와요.」

이리하여 그날은 그대로 지나고 이튿날 또 나귀를 끌고 산골로 향하여 떠났다.

어제보다도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보화를 나귀에 실었다. 그리고 이날은 자기도 한 짐 기껏 진 뒤에 그 굴에서 돌아오려 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불행이란 어디서 생겨날지 예측도 못할 바다. 이 욕심꾸러기가 급히 돌아오려 할 때 그는 문득 구멍문을 여는 암호를 잊었다.

「가만 있자. 그─ 열려라 나비─ 가 아니라, 열려라 참새─ 아니, 그것도 아니야. 열려라, 열려라, 무에더라? 열려라─ 오라! 열려라,보리! 열려라, 보리!」

깨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몇 번을 보리라고 고함을 쳤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보리는 좁쌀이 되었다. 피쌀도 불러 보았다. 기장, 수수, 팥, 콩, 생각나는 대로 다 불러 보았지만 구멍문은 영 열리지 않았다.

그는 차차 등이 달았다. 오늘은 두 번을 왕복하려고 바쁘게 일을 했는데, 뜻밖에 이런 일 때문에 지체가 되면 두 번은 왕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곡식 이름은 생각나는 대로 다 불러 보았지만 그래도 열리지 않으므로, 그는 다시 이번은 과일을 차례로 불렀다. 능금, 배, 복숭아, 딸기, 닥치는 대로 불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때에 이 욕심꾸러기에게 가장 놀라운 일이 생겼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굴 밖에 사람의 기척(그것도 수십 명인 듯한)이 들린 것이다.

욕심꾸러기의 심장은 이 밖의 소리 때문에 딱 멎는 듯하였다. 정녕코 산적들이 돌아온 것이매, 이 굴 속, 어디라 피할 데도 없는 곳에 들어 있는 자기는 산적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하는 수 없이 들킬 것이다. 들키기만 하면 반드시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때에 욕심꾸러기는 온갖 보화보다도 목숨이 더 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어디든 몸을 숨겨 보려고 곳간 뒤로 향하여 달아났다.

「열려라 깨!」

밖에서는 두목의 고함이 들렸다. 동시에 굴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오늘은 두 번을 왕복하겠다고 떠나는 남편을 보낸 뒤에 아내는 종일을 대문에서 기다렸다.

오정이 썩 지났다. 두 번 왕복하려면 늦어도 이때는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을 저주하였다. 아직도 안돌아오는 것을 아까부터 대문에서 기다린 생각을 하면 분하였다.

「어디 가서 자빠져 있담!」

성이 끝없이 나는 것을 그대로 행여 올까 하고 대문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저녁때도 안돌아왔다.

저녁이 지나서 밤이 깊어서도 안돌아왔다. 이튿날 아침에도 안돌아왔다.

여기서 아내는 차차 근심되었다. 아침까지 안돌아오는 것을 보면 무슨 불길한 일이 생긴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안 돌아올 이치가 없다.

아내는 시아우한테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지난 일을 전부 시아우에게 말하였다.

하서방은 형수의 말을 듣고 머리를 기울였다.

「나귀에 한 번만 실어 와도 넉넉하고 남을 걸 왜 또 가셨어요? 좌우간 지난 일이니 이렇다 저렇다 하면 무얼 하겠읍니까? 가 보기나 합시다. 아마도 무슨 좋지 못한 일이 생겼나뵈다.」

하서방과 그의 형수는 산으로 향하여 떠났다.

하서방은 산적의 굴 앞에까지 가서 형수에게 가리켰다. 그리고 〈열려라 깨!〉를 불러서 굴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들은 들어서면서 보았다. 마치 이 후에라도 이 굴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경계하는 듯이, 하서방 형의 두 조각으로 난 몸집을 굴 문안에 걸어 두었다.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형수와 시아우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굴문에 그냥 서 있었다. 등골에는 소름이 쪽 끼쳤다.

하서방이 먼저 제 정신을 차렸다.

「아주머니, 이러구 서 있을 때가 아니외다. 어서 이 시체를 거두어 가지고 돌아가야지, 여기서 어름거리다가 그놈들이 또 오면 우리까지 봉변을 하겠읍니다. 자 어서 돌아갈 준비나 합시다.」

그리고 굴 안으로 달려들어가서 비단 한 필을 꺼내어다가 형의 시체를 싸서 그렇지 않은 듯이 만들어서 자기가 지고 형수를 독촉해 가지고 동리로 내려왔다.

내려는 왔지만 형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것이 문제였다. 두 조각에 난 몸집을 그냥 두었다가 관리에게라도 알게 되면 안될 것이었다. 그때 풍속으로, 죽은 사람은 관리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두 조각이 난 몸을 하서방의 재간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리저리 궁리한 결과 한 가지의 방책을 얻어 내었다.

하서방은 금전을 한 주머니 넣어 가지고 어떤 가죽일 하는 사람을 찾아갔다. 그리고 말없이 그 돈을 주머니째 그 사람의 앞에 놓았다. 영문을 모르는 그 사람이 눈을 둥그렇게 할 때에 하서방은,

「내 일을 한 가지만 해 주시오. 이걸 드릴께─」

금전이란 것은 구경도 못하던 가죽장인지라, 이 금전 주머니에 욕심이 안날 까닭이 없었다.

「이걸 주신다면 내 딸의 가죽이라도 벗겨 달라면 드리리다.」

하서방은 그 가죽장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금전을 한 주머니 받은 가죽장이는 능란한 솜씨로 두 조각이 난 시체를 깜쪽같이 꿰매었다.

이리하여 그 시체는 무사히 장례를 치렀다.


산적의 무리는 며칠 동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도적질을 하였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자기네 소굴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뜻밖에도 소굴 안에 걸어 두었던 송장이 없어졌다.

두목은 성이 났다.

「너희들이 어떻게 했느냐?」

그는 부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두목님, 우리는 아직 두목님하고 같이 돌아다니지 않았읍니까? 우리가 어느 틈에 그것을 처치하겠읍니까?」

「그럼, 그 죽은 놈 외에도 여기 들어오는 방법을 아는 놈이 있구나?」

여기 들어오는 군호를 아는 사람이 있다 하는 것은 산적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자기네밖에는 드나들 사람이 없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던 이 소굴에 한 사람이 들어온 것을 보고 잡아 죽였거늘, 여기 또 그 송장을 도적해 낸 사람이 있는 것을 보니 죽은 사람 밖에도 또 이 소굴을 아는 사람이 있다. 더구나 여기까지 와서 다른 것은 안훔쳐 가고 송장만 가져간 것을 보니, 이것은 정녕코 죽은 사람의 일가거나 부하거나 그럴 것이다.

이 안의 재물이 꽤 도둑맞았다. 거기 대한 원수도 갚을 겸 이 소굴을 아는 자를 없이 하기도 할 겸 그 자는 반드시 찾아내어 죽여야겠다. 죽이지 않았다가는 자기네의 생활이 위협된다.

이리하여 산적들은 이 소굴을 아는 사람을 잡아서 꼭 죽이기로 협의하였다. 그리고 두목은 그 자리에서 몇 사람 부하를 뽑아서 동리로 내려보냈다. 동리에서 되는껏 탐정을 해서 그 원수를 알아 가지고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몇 사람의 산적은 자기네의 소굴을 아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하여 장거리로 향해 내려왔다.

그때는 하서방은 산적의 소굴에서 훔쳐온 돈으로 한 자그마한 부자가 되어서, 집도 거릿 집을 사서 이사 나오고, 남종 여종도 몇 사람 두어 남부럽지 않은 살림을 하던 때였다. 산적의 부하들은 마을로 내려왔다. 그리고 제각기 헤어져서 그 소굴을 아는 사람을 찾아내려고 사방으로 탐지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한 부하는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가장 편리하게 그 괴한을 찾아낼 방책을 알아내었다.

죽은 사람을 장사를 하자면 반드시 관리의 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러면 그때 자기네의 소굴 문의 안에 걸었던 송장도 장사를 지내려면 반드시 관리의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검시를 받으려면 그 시체에 수상한 상처가 없어야 할 것이다. 만약 수상한 상처가 있으면 장사에 마새가 생길 테니까─ 그러나 그 송장은 그때 두 토막 난 송장을 무사히 검시를 받으려면 감쪽같이 꿰매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꿰맨 사람만 발견하면 그 뒷일은 쉽게 알 것이다.

이리하여 그 부하는 각 가죽장이를 찾아다니며 등떠 보고 넘겨짚어 보고 위협해 본 결과, 얼마 전에 두 토막난 시체를 꿰매었다는 가죽장이를 마침내 발견하였다. 그 가죽장이를 앞세우고 돌아다닌 결과, 이미 집은 이사하였지만 가죽장이는 그때 그 사람의 모습을 기억했는지라, 그 사람의 집까지 알아낼 수가 있었다.

부하는 마침내 하서방의 집을 알아내었다. 하서방의 집을 알아낸 부하는 이후에 다시 올 때라도 찾아내기 쉽도록 그 집 대문에 조그맣게 십자를 하나 그렸다. 그리고 원수의 집을 발견하였다는 것을 두목에게 보고하고자 산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려는 점순이라는 종이 무대에 나타난다. 온갖 일을 무심히 넘기지 않기 때문에 주인집의 위험을 구한 소녀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다.


10

[편집]

하서방의 집 하녀 점순이는 저녁 저자를 보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막 대문으로 들어서려 하였다.

그때에 온갖 일에 눈 밝고 주의 깊은 점순이의 눈에는, 대문에 아까 산적의 부하가 그려 둔 십자가가 보였다.

(이게 뭐냐?)

이것은 낮에도 분명히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절로 묻은 흠도 아니다. 게다가 그 위치로 보아서 아이들의 장난으로도 볼 수가 없었다. 꽤 높은 자리에 똑똑히 표적을 하느라고 그린 것으로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점순이는 들어가서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주인도 알지를 못하였다. 점순이는 나와서 근처의 집들을 모두 돌아가면서 검사하여 보았다. 그러나 십자를 그린 집은 제 주인 집밖에는 없었다.

여기서 점순이는 와락 의심이 났다. 더구나 주인집의 비밀의 내용을 짐작하는 점순이는, 그 표적을 매우 불길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점순이는 집에 돌아와서 붓을 가지고 나가서, 그 근처의 집 한 이십여 호를 모두 자기 주인집과 마찬가지로 대문에 십자 표시를 하여 놓았다. 모두 거릿집, 집 모양이 비슷한지라 표적만 같은 것을 하여 놓으면 얼른 그 집을 찾아내기가 힘들 것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점순이는 한길을 주의하였다. 문을 쳐다보는 사람을 일일이 주의하여 보았다.

이튿날 낮쯤 하여 점순이는 수상한 사람의 일행을 발견하였다. 한 험상궂은 사람에게 인솔된 이십 명의 일행이었다. 그들은 이 거리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집의 대문을 검분하기 시작하였다.

매집 대문을 검사하면서 오던 그 일행은 어떤 집 대문 앞에 섰다. 그리고 서로 무엇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 집이란 점순이가 표적을 한 마지막 집이었다.

일행의 한 사람이 다음 집으로 가서 대문을 보았다. 그리고 일행을 향하여 무엇이라 말하였다. 일행은 다 그 집 앞으로 몰려갔다. 그 집 앞에서 인솔자와 다른 한 사람의 사이에 한참 무슨 말이 있었다. 일행은 각각 헤어졌다. 그리고 그 근처의 매집 대문을 다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은 하서방의 집 앞에도 왔다.

「여기도 표적이 있군!」

하서방 집 대문을 쳐다보면서 그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음 집으로 갔다.

헤어졌던 일행은 도로 모였다. 그리고 거기서 한참을 무슨 의논을 하였다. 그런 뒤에는 갑자기 일행의 한 사람을 결박지어 놓았다.

그 일행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기까지 다 본 뒤에, 집안으로 들어온 점순이는 숨을 기다랗게 내어쉬었다.

자기의 짐작이 헛짐작이 아니었다. 주인집 대문의 표적은 이 집을 기억해 두기 위하여 나쁜 사람들이 한 표적이 분명하였다. 그 표적을 자기가 발견하고 근처 일대에 모두 비슷한 표적을 해 두었기에 무사하였지, 그렇지 않았더면 주인 집은 오늘 그 일행에게 무슨 욕 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이 오늘은 헛되이 돌아는 갔다. 그러나 오늘은 헛되이 돌아갔다 하나, 이제 다시 탐지해 가지고 이 집에 다시 올 것은 정한 일이다. 한 번 집을 못 알았다고 그냥 단념하여 버릴 그들은 아닐 것이다.

「오기만 해라. 내가 너희를 못 알아볼 것이냐?」

영리한 점순이는 혼자서 빙긋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반드시 다시 올 악한들을 감시하기 위하여 점순이는 잠시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 길을 다니는 사람들의 조그만 행동에까지 점순이의 감시의 눈은 늘 부어졌다.


11

[편집]

산적들은 처음은 헛길을 걷고 돌아갔다.

이번은 두목이 몸소 내려와서 자기의 원수집을 알아보려 하였다. 먼젓번 부하의 방식을 따라서 두목은 가죽장이를 찾았다. 거기서 그때 그 사람의 집을 알았다. 먼젓번 표적을 하였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두목은 자기의 눈으로 자세히 집을 보아 두었다.

다시 산으로 올라온 두목은 원수 갚을 방책을 강구하였다. 그들은 먼저 기름을 몇 부대 구해 들였다. 그런 뒤에 빈 부대를 여러 개 구하였다. 두목은 기름장수로 변장을 하고, 부하들을 빈 기름 부대에 넣어 가지고 서방의 집에 들어가서 하루를 묵으며, 밤 깊기를 기다려서 부하들의 부대를 열어 주어, 한꺼번에 뛰어들어가서 하서방의 집안을 몰살시키는 것이었다.

준비는 끝이 났다. 두목은 기름장수로 몸을 변장하고 말 몇 마리에 기름 부대(부하들이 들어 있는)를 다 실어 가지고 동리로 내려갔다.

두목은 미리 보아 두었던 하서방의 집으로 갔다.

그는 하서방을 찾아 가지고,

「집도 좋고 방도 많기도 하다. 여보 주인님, 어쩌면 이런 좋은 집을 쓰고 계시오?」

하면서 먼저 집 칭찬을 한 뒤에, 자기는 기름 행상인데 지금 기름을 팔러 다니는 길로 이 동리에는 이 많은 기름 부대를 둘 만큼 뜰이 넓은 집이 없으니, 하룻밤만 지내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본시 마음 좋은 서방은 달갑게 승낙을 하였다. 이리하여 두목과 부하(기름 부대에 든)는 서방의 집에 들게 되었다.

점순이는 이 기름장수가 주인과 이야기할 동안 밖에서 들어왔다. 점순이는 두목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히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며칠 전에 문간의 표적을 보러 다니던 사람과 비슷한 점을 두목의 얼굴에서 발견한 점순이는, 두목이 집에 들어온 뒤로 두목의 행동을 남몰래 주의하여 보았다. 험상궂은 얼굴, 목 뒤의 꽤 큰 사마귀, 커다란 눈, 어느 모로 보아도 심상치 않았다. 더구나 기름 부대를 뜰로 옮길 때에 점순이에게 제일 의심난 것은 부대를 너무도 조심히 다루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뜰에 들여온 부대를 모두 꼿꼿이 앉혀 놓았다.

이런 점으로 와락 의심이 난 점순이는 저녁 뒤 날이 어두운 다음에 몰래 부대 있는 곁에 가서 웅크리고 앉아서 동정을 엿보고 있었다. 날이 캄캄히 어두웠다. 그때 문득 한 부대가 다른 부대에게 말을 건넸다.

「여보게, 이젠 어두웠을걸?」

「좀 있으면 두목이 열어 주겠지!」

점순이의 짐작은 맞았다. 점순이는 발소리 안나게 일어나서 주인에게로 갔다. 그리고 보고 들은 바를 다 주인에게 말하였다.

하서방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점순이와 의논을 한 결과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많이 사다가 쩔쩔 끓여서 그 뜨거운 기름을 퍼 가지고, 하서방과 점순이 둘이서 몰래 기름 부대 위에 모두 부어 주었다. 부대에 들었던 부하들은 꼼짝 못하고 모두 전멸되었다.

밤이 깊은 뒤에 두목은 그런 변이 있는 줄은 모르고, 몰래 나와서 기름 부대를 모두 열었다.

「자 나가자!」

그러나 부대 안의 부하에게서는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을 부르고 부르다가 성이 나서 부대에 손을 넣어 보니, 부하들은 모두 송장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 두목은 자기 계획이 발각된 줄을 알고 그 집에서 도망했다.


12

[편집]

두목은 도망은 하였지만 서방에게 대한 원한은 더욱 커졌다. 날이 가면 갈수록 분한 생각은 더하여 갔다. 아무런 수단으로라도 이 원수 갚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에는 비수를 하나 품고, 단신 서방의 집에 찾아왔다. 얼굴에는 수염을 붙이고 머리에는 탈을 쓰고 입 속에는 솜까지 넣어서 아무리 보아도 두목으로는 볼 수가 없도록 잘 변장을 하였다. 하서방을 찾아 가지고, 지나가던 무역상인데 하룻밤을 묵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하서방은 역시 의심치 않고 묵여 주기로 하였다.

그날 저녁밥을 먹을 때였다. 상을 들고 들어갔던 점순이는 이 손님의 뒷덜미에서 커다란 사마귀를 발견하였다. 사마귀를 발견한 점순이는 의아히 여기서 밖으로 나와서 몰래 문 틈으로 들여다보았다. 얼굴에는 수염이 나고, 몸이 부대하고 한 그 손님이지만, 자세히 보니 어딘지 전날의 산적 두목의 모습이 분명히 있었다. 더욱 그 커다랗고 광채나는 눈은 점순이의 기억에 있는 분명한 산적 두목의 눈이었다. 때때로 남의 눈을 기이며 주인 하서방의 동정을 엿보는 눈치가 무슨 해를 입히려는 것이 분명하였다.

여기서 점순이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점순이는 자기 방으로 나왔다. 벽장을 뒤적여 두 자루의 칼을 꺼내었다. 잘 간 칼은 불빛에 번쩍번쩍 광이 났다. 그 칼을 가지고 점순이는 주인과 손님이 식사를 하는 방으로 갔다.

하서방은 이 점순이의 모양을 보고 의아한 듯이 쳐다만 보았다. 그때에 점순이는,

「식사의 흥이라도 도웁고자 검무라도 한 번 추어 보겠읍니다. 서툴다고 웃지 말아 주십시오.」

한 뒤에, 이 뚱딴지 행동에 눈이 둥그렇게 되는 주인을 못 본 체 검무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매 주인도 하릴없이 가만히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님, 어떻습니까? 서투른 재간이지만 웃어 주셔요.」

「네 아주 잘 춥니다.」

이런 동안, 점순이는 칼을 놀리며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기회만 보고 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춤을 추며 돌아가던 점순이는 어떤 기회를 엿보아 가지고 손님의 등 뒤로 돌아왔다가 실수하여 미끄러지는 듯이 넘어지며 칼을 손님의 등에 박았다.

손님은 그 자리에 넘어졌다. 하서방은 깜짝 놀랐다.

「이게 웬일이냐? 큰일났구나!」

주인이 야단을 하는 동안, 점순이는 일어나며 번개같이 손을 들어서 손님의 수염을 잡아 나꾸었다. 수염은 뜯어져 나갔다. 머리칼을 잡아 나꾸었다. 탈이 벗어져 나갔다. 수염이 떨어지고 탈이 벗어진 그 아래는 이 집안에는 낮익은 산적 두목의 얼굴이 나타났다.

「주인님 보세요. 산적이올시다.」

그러나 주인은 정신을 못 차리는지 멍하니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한참 들여다보고만 있던 주인은 마침내 지금의 일이 어떤 일인지 안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휙 돌이키며 점순이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착하다! 장하다! 너 아니더면 큰일이 날 뻔했구나! 네 은혜 잊지 못하겠다.」

산적의 몸을 뒤지매 비수 한 자루가 나왔다. 하마터면 이 비수에 하서방의 집은 함몰할 뻔한 것이다.

이리하여 주의 깊은 점순이의 덕에, 하서방의 집은 산적의 손에서 벗어나서 편안히 일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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