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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네/친구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일환아!

아버지가 어렸을 적에 이런 훈화를 들은 일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 나라 왕께 무슨 죄를 지었다. 너무도 옛날에 들은 이야기이므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정 기억에 없으나, 마땅히 사형을 받을만한 중한 죄를 지었다.

왕은 노염이 대단하여 그 사람을 잡았다. 그리고 사형에 처하려 하였다.

그 사람은 잡혔다. 잡힌 이상에는 물론 사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의 병환이 매우 중하였다. 마땅히 죽을 몸이로되 죽기 전에 한 번 어머니에게 가 보고 싶었다. 중한 탈로 도저히 다시 희생할 가망이 없는 늙은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한 번 대면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정을 왕께 탄원하였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않았다. 그 사람은 다시 탄원하였다. 왕은 역시 듣지 않았다. 그 사람은 또 탄원하고 또 탄원하고, 이리하여 수없이 탄원하였다.

이 정성에 왕의 마음도 조금 돌아섰다. 드디어 왕에게서는 이런 조건이 내렸다.

「그러면 이 일의 기한을 줄 테니, 그 교환 조건으로 네 대신 네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을 이 옥으로 들여보내라. 그리고 네가 만약 이제부터 이십 일째 되는 그날 오정까지도 돌아오지 않으면 네 대신으로 옥에 있던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그 사람은 왕의 이 처분에는 만족하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이상 더 관대한 처분은 바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자기의 친구 가운데 그중 믿음직한 사람 하나를 옥으로 청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사정을 호소하였다.

그 호소를 듣고 잠시 생각한 뒤 친구는 승낙하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이었다.

왕은 그 친구를 불러서 물어보았다.

「네가 이 사람의 대신으로 옥에 갇히겠다지?」

「예.」

「이십 일이 지나서 이 사람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대신으로 너를 사형에 처한다. 그런 줄 아느냐?」

「예.」

「죽어도 좋으냐?」

친구는 눈을 들어 왕을 쳐다보았다.

「신은 저 친구의 목숨을 대신하여 옥에 갇힙니다. 이십일 후에 저 친구가 안돌아오면 신은 친구의 대신으로 사형을 받을 줄 저 사람도 잘 알고 있읍니다. 자기의 목숨을 대신하여 옥에 갇힌 사람을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 둘 몰인정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은 저 친구를 믿습니다.

「그래도 만약 안돌아왔다는?」

「신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상에는 죽은 무슨 한이 있사오리까? 어서 저 사람을 내어보내소서. 마지막 효도에 지장이 안생기도록 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왕은 죄수를 그냥 놓아주었다. 그리고 죄수의 대신으로 그의 친구를 옥에 가두었다.

「이십 일 이내에 꼭 다녀올께......」

「그런 걱정은 말고, 어서 자당이나 가서 뵈옵게.」

이리하여 죄수는 옥 밖으로, 친구는 옥 안으로 서로 작별을 하였다.

날이 번개같이 지났다.

닷새가 열흘이 되고, 열흘이 보름이 되고, 보름이 이십 일이 되었다. 죄수와 그의 친구가 왕께 약속한 이십 일이라는 날짜는 어언간 이르렀다.


「아직 오정이 안됐습니다.」

「오정이 되면 돌아올 듯싶으냐?」

친구는 왕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힘있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꼭 옵니다.」

「그럼 좀더 기다려 주마.」

이리하여 좀더 기다리기로 하였다.

오정이 가까왔다. 왕은 사형의 준비를 명하였다. 죄수는 아직 아니 돌아왔다. 망대(望臺)에 파수를 세워서 바라보았지만, 죄수가 돌아오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오정이 이르렀다. 죄수는 그냥 안돌아왔다.

「어떠냐?」

그러나 죄수의 친구는 대답 없이 머리를 푹 숙일 뿐이었다.

「이젠 너를 사형에 처한다.」

「예.」

모기소리와 같이 대답은 하였지만, 친구의 눈에서는 주먹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원통하냐?」

「예.」

「거 봐라? 죽는 것은 아무에게도 원통하니라. 너는 친구를 믿고 몸소 이곳에 들어왔지만, 그 사람도 역시 죽기는 싫을 것이다. 후회가 나지?」

「아니올시다. 신은 죽는 것이 원통해 그러는 것이 아니외다. 그 사람이 신(信)을 저버린 것이 원통해서 그럽니다. 일단 내어놓은 목숨 죽기야 무엇이 원통하리까만, 그 사람이 신의를 저버린 것은 죽음보다도 더 원통하옵니다.」

「할 수 없다.」

이리하여 마침내 사형은 시작되려 하였다.

「자, 마지막에 남겨 둘 말은 없느냐?

「감사하옵니다. 그러면 한 마디─ 신은 아직껏 그 사람을 믿습니다. 어떻게 다른 고장이 생겨서 늦어는 질지언정, 오늘로 꼭 오리라고 믿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만약 시간이 늦어서라도 그 사람이 돌아오기만 하거든, 신은 아무 불만도 없이 사형을 받았다고 전해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그리고 만약 만일에라도 그 사람이 안돌아오면 신은 그런 원통한 일이 없읍니다.」

「그럼 너는 아직도 믿느냐?」

「예, 신은 꼭 믿습니다.」

그리고 눈을 고즈너기 감고 번득이는 칼 아래 꿇어 앉았다.

칼은 높이 들렸다. 바야흐로 칼은 내려오려 하였다. 그때였다. 망대에 서 있던 파수가,

「옵니다!」

하고 고함을 쳤다. 동시에 말발굽소리로 요란스럽게 죄수는 사형장을 향하여 달려왔다. 그리고 내려오려는 칼 아래로 다가왔다.

「왔네. 자 비키게.」

친구는 머리를 들어서 죄수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자당은 어떠신가?」

「장례를 치르고 왔네. 길에 고장이 생겨서 하마터면 자네게 폐를 끼칠 뻔했네. 자, 비키게.」

그러나 친구는 머리를 저었다.

「온 것은 고맙네마는, 자네 시간은 이미 지나고 오정 이후에는 내 시간이니까 자네는 돌아가게.」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무슨 죄가 있......」

「죄 여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시간으로 자네 시간은 벌써 지나지 않았나? 좌우간 자네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죽어도 한이 없도록 기쁠세.」

이리하여 죄수와 그의 친구는 서로 죽기를 다투고 있었다. 왕은 가만히 그들의 양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왕이 입을 열었다. 먼저 죄수에게 향하여 물었다.

「너는 어째서 늦었느냐?」

「예, 길에서 뜻하지 않은 고장이 생겨서 늦어졌읍니다만 이 사람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니깐 마음이 놓입니다.」

왕은 이번엔 친구에게 물었다.

「죄인이 돌아온 이상에는 너는 왜 비키지 않느냐?」

「오정 전까지는 저 사람이 죄인이거니와 오정 이후에는 신이 죄인이올시다. 사내 한 번 약속한 일을 어이 어기겠읍니까?」

「그러면 원 죄인 너는 물러가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올시다. 죄는 신께 있지 저 사람에게야 무슨 죄가 있겠읍니까?」

이리하여 거기서는 서로 죽음을 다투는 논란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참을 다시 그 다툼을 바라보고 있던 왕의 안면은 만족으로 빛났다. 왕은 미소하였다.

「야, 듣거라! 오늘 너희 두터운 신의를 봐서 두 사람을 다 용서해 주마. 이후에도 그 신의만은 영구히 잊지 말아라. 자 용서해 주니 다 마음대로 물러가거라.」

이리하여 왕은 두 사람에게 후히 상까지 주어서 놓아 보냈다.


일환아!

너의 할아버님이 아버지를 위하여 이 이야기를 하실 때에 할아버님의 뜻은 〈신의〉라 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너에게 하는 연고는 신의 신의려니와 그보다도 더 〈두 사람의 두터운 우정〉을 너에게 알리게 하기 위해서다.

「내 대신으로 네가 옥에 들어가 다고, 이십 일 후에는 내가 돌아와서 너를 나가게 해 주마. 그 대신, 이십 일 후에는 내가 못 돌아오면 너는 내 대신 죽느니라.」

이러한 부탁을 받을 때에 선뜻 거기에 응할 친구가 세상에 쉽겠느냐? 여기 응낙한 그 우정은 얼마나 큰 것이냐? 이러한 두터운 정애로서 맞매인 친구의 사이기에 마지막에 또한 서로 그 죽음을 다투었으며, 이러한 두터운 우애를 보았기에 왕은 또한 두 친구를 다 그냥 놓아 보낼 뿐 아니라, 후히 상을 주어서 그 우애를 칭찬한 것이 아니냐.

일환아!

벗을 사귀기를 삼가라. 그 대신 일단 사귄 친구에게는 또한 네 온 마음을 내어주어라. 서로 믿고 서로 의지할만한 친구에게는 또한 서로 조금의 거침이 없도록 풀어 헤치고 지내는 사이가 되어라.

일환아!

이 세상은 외롭고 쓰리다. 창망한 바다에 뜬 한 척의 외로운 배─ 세상에 사는 사람은 마치 이와 같다. 그러면 이 외로운 세상에서 하소연 한 마디 사정 한 마디를 서로 통할만한 친구가 없이야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괴로운 일이 있을 때에는 구원을 청하고, 슬픈 일이 있을 때에는 위로를 청하고, 아픈 일이 있을 때에는 어루만져 주기를 청하고, 낙망 되는 일이 있을 때에는 뒤받들어 주기를 청할 만한 다정한 친구가 없이야 이 외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우애─ 이것은 이 외롭고 쓰린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진한 위무제의 하나로다 〈신의〉라 하는 것도 두터운 우애 가운데서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 일환아!

아버지는 이 아래 너를 위하여 한 가지의 이야기를 더 쓰겠다. 두 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애처롭고도 두터운 우애의 이야기를 너를 위하여 하나 더 쓰겠다.


귀남이라 하는 소년이 있었다.

막동이라 하는 소년이 있었다.

귀남이는 열 한 살이었다.

막동이는 열 두 살이었다.

귀남이는 부자집 외아들이었다.

어떤 도회의 교외─ 뒤로는 늙은 느티나무가 무성하였고, 옆으로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아름다운 곳에 커다란 저택이 있고, 그 저택에서 호화로이 자라나는 도련님이 귀남이었다. 열 한 살 난 어린 그에게 벌써 그의 놀이방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현대의 과학 문명을 자랑하는 온갖 정교한 장난감이며, 오락품이 구비되어 있고, 그 앞뜰에는 나무이며 그네며 철봉이며 이런 유희물 밖에, 그가 타고 놀러 다니라는 작은 아라비아말이며, 커다란 폭스테리어종의 개며, 그에게 전속된 늙은 하인이며, 조마사(調馬師)까지 가지고 있는 하인이며, 조마사(調馬師)까지 아주 호화로운 살림을 하는 소년이었다.

거기 반하여 막동이는 귀남이 사는 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빈민굴에,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의 역시 외아들이었다. 홀어머니가 푼푼이 벌어들이는 약소한 돈으로, 굶으며 이렇게 지내는 불쌍한 애였다.

이렇게 서로 환경이 대단히 다른 두 소년은 서로 알 까닭이 없었다. 막동이는 혹은 간간 길에서라도 부자집 아이로 귀남이를 유심히 본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귀남이는 설혹 길가에서 막동이를 본 일이 있었다 할지라도 기억할 리가 없었다.

이러한 두 소년이 어떠한 기회에 우연히 서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일기가 몹시 좋은 어떤 봄날이었다. 그 날은 일요일로서 학교를 쉬게 된 귀남이는 자기의 사랑하는 말 〈녹청〉을 타고 교외를 산책하고 있었다.

처음 한참은 교외의 큰 길을 거닐고 있던 귀남이는, 드디어 말을 협로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좀더 좁은 밭두렁길을 말이 비틀거리면서 가는 그 위에, 역시 자세 바르게 앉아서 가는 자기의 마술을 그윽이 만족히 여기면서 이 밭두렁에서 저 밭두렁으로 방향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의 말은 어떤 조그만 실개천 앞에 이르렀다. 천천히 걸어선들 그 실개천이야 못 건느랴만, 이는 그 실개천을 건너뛰어 볼 양으로 두어 걸음 말을 뒷걸음질시켰다가 몰아 나아가면서 건너뛰었다. 비록 몸집은 작으나, 이름 있는 말의 종자인 녹청은, 한 번 발을 구르고 거침없이 실개천을 건너뛰었다. 실개천 건너 보리밭에 무사히 건너뛴 말은 흥이 났던지 거기서 그냥 달음박질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벌써 꽤 자랐던 보리밭에 말 지나간 자리가 거칠게 났다.

말이 그 보리밭을 짓밟으며 거의 그 밭을 다 횡단한 때에, 문득 말의 전면에 웬 소년 하나가 두 팔을 쩍 벌리고 막아섰다.

귀남이는 빨리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을 저어서 비키라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소년은 비키지 않고 오히려 더욱 팔을 벌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비켜! 비켜!」

고함을 쳐 보았으나 소년은 거기는 응하지 않고, 손을 들어서 말이 방금 통과해 온 자리를 가리켰다.

「저것 못 보느냐?」

귀남이는 돌아보았다. 말발에 거칠게 된 밭을 보기는 보았다. 그러나 자기의 앞에 딱 버티고 선 초라한 소년의 모양을 본 때문에 생긴 경멸감은, 귀남이로 하여금 다른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게 하였다.

「비켜라. 안비켰다는......」

「말께 내려라!」

초라한 소년은 다시 고함쳤다.

두 소년은 잠시 원수의 눈으로 서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한참을 서로 성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동안, 귀남이의 마음은 차차 격분으로 떨리기 시작하였다. 어디 거지 같은 애가 건방지게도 딱 버티고 마주 서 있다는 것이 아니꼽기가 짝이 없었다.

「비켜! 안비켰다는......」

떨리는 소리로 다시 한 번 부르짖은 귀남이는 말에서 후닥닥 뛰어내렸다. 그리고 채찍을 높이 들고 차차 소년에게로 가까이 갔다. 그러나 소년은 역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였다. 눈물이 가득한 소년의 눈은 귀남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채찍으로 때리고 싶으면 때려라. 그러나 네가 한 일을 생각해 봐라. 잘한 것 같으냐?」

귀남이는 소년의 눈을 보았다. 눈이 말하는 이런 말을 읽었다. 채찍은 비록 높이 들었으나 그 채찍을 내리칠 용기는 어느덧 없어졌다. 여기서 매우 싱겁게 된 귀남이는,

「비켜라! 네가 그냥 안비켰다는 나는 저리로 돌아가겠다.」

하고 그 자리에서 발을 떼려 하였다. 그러나 그때에 소년이 귀남이에게,

「아무 편으로 가든 보리는 밟지 말아라. 얼마나 공력이 든 줄 아니?」

돌아서는 귀남이의 등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 말을 못 들은 체하고 귀남이는 그곳을 떠났다. 말의 고삐를 끌고 보리밭에서 나올 때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듯이 하였지만, 할 수 있는 대로 보리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하였다.

이것이 귀남이와 막동이의 처음 대면이었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난 어떤 날이었다. 그날 아침은 몹시 날이 맑았으므로 귀남이는 아무 준비도 없이 학교에 갔었다. 그랬는데, 오후에 한바탕 소낙비가 쏟아져 내렸다.

한바탕 퍼부은 소낙비는 곧 개었다. 그리고 하학 때에는 도로 날이 맑아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 안에는 그다지 길이 길지 않았지만, 문 밖에 나서면서는 군데 군데 지독히도 진 곳이 있었다. 귀남이의 집에 거의 이르러 서 있는 한 군데는 특별히 질고, 질 뿐만 아니라 진흙이 한 두 자나 거기 괴어서, 신발을 신은 채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을 뿐더러, 신발을 벗는다 할지라도 귀남이의 짧은 다리는 온통 잠길 듯하였다.

거기서 귀남이는 딱 섰다. 신발을 벗기도 싫었거니와 벗는다 하여도 그렇듯 깊은 곳은 건널 듯싶지 않은 귀남이는, 한심한 듯이 물탕을 바라보고는 좌우편을 둘러보고 하였다.

이렇게 귀남이가 망설이고 있을 때에 누가 귀남이의 등을 툭 쳤다. 돌아다보니까 며칠 전의 그 소년이었다.

「못 건너서 그러니?」

소년은 이렇게 물었다. 귀남이는 그렇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끄덕 하였다.

「내 업어다 주련?」

이렇게 소년이 다시 물을 때에 며칠 전의 일로 몹시 열적게 된 귀남이는

「싫어!」

하면서 비슬비슬 발을 떼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어느덧 귀남이의 앞으로 와서 획 귀남이를 둘러업었다. 그리고 첨벙첨벙 물탕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몹시 질은 진흙이었다. 어떤 때는 소년은 발을 뽑지를 못하여 한참씩을 몸의 중심을 잡으며 애쓰고 하였다.

「이걸 너 혼자 건너? 혼자서는 건널 의사도 못 내겠다.」

장한 듯이 때때로 이런 말을 하면서─

진흙밭을 다 건너고는 귀남이를 내려놓고 〈잘 가거라〉 한 마디를 남기고, 소년은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렸다. 몹시 열적게 된 귀남이는 역시 뒤도 안돌아보고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이리하여 첫번 교제를 시작한 귀남이와 막동이는 그 뒤 날이 가고 날이 오는 동안 차차 차차 가깝게 되었다. 귀남이가 학교에 가는 길에 혹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때때로 만나게 되고, 만나는 동안 차차 가깝게 된 두 소년의 사이는 그 봄이 가고 여름이 이른 때는 매우 농밀하게 되었다.

소년들의 사귐은 빨랐다. 그리고 일단 사귀어 놓은 뒤에는 끝까지 믿었다. 조금이라도 저편을 의심한다든가 투기한다든가 하는 일이 없었다.

이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즉시로 자기의 놀잇방으로 가서 홀로 장난감이나 장난하며 개나 데리고 놀든가, 그렇지 않으면 녹청의 안장에 올라서 그 근처를 산책이나 하고 하던 귀남이가, 막동이와 사귄 뒤부터는 학교에서 돌아오기가 바쁘게 곧 집을 뛰쳐 나가곤 하였다. 어떤 때는 학교에서 바로 막동이와 놀려고 딴 길로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고 날이 저물어야 집으로 돌아오며 돌아올 때는 온몸이 통 흙투성이가 되곤 하였다.

「너의 동리는 거랑 동리라더구나.」

「부자들은 그런 소릴 하더라.」

「그래도 거랑 동리에도 거랑방이가 아닌 사람도 있다더라.」

미안한 듯이 이런 말을 주고받으면서 호화스런 옷을 입은 소년과 초라한 옷을 입은 소년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밭이며 언덕이며 돌아다니며 놀았다.

귀남이의 부모는 처음에는 그것을 심상히 여겼다. 그러나 너무 돗수가 심하여지므로, 어느 날 귀남이에게 어디 가서 늘 그렇게 오래 놀며, 누구하고 노느냐고 물었다. 어른에게는 어른의 지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년에게는 또한 소년의 지혜가 있었다. 세상 사물 에 대하여 그다지 깊은 이해력은 못 가졌지마는, 왜 그런지 귀남이는 자기가 막동이와 놀러 다닌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리기가 싫었다. 알면 당장에 꾸중을 하고 이후에는 다시 그런 아이와 못 놀게 할 듯싶었다. 막동이의 사는 동리를 거랑 동리라 하여 늘 경멸하는 눈치를 보았는지라, 거랑 동리에 사는 아이와 친히 논다는 것을 부모에게 알게 하였다가는 무슨 결단이 날듯싶었다. 그래서 다만 혼자서 벌판에 나가서 놀며 뛰며 간혹은 동창생의 집을 찾아가노라고 이만큼 말하고, 게다가 선생이 방안에 꾹 박혀 있지 말고 좀 교외에 나다니며 놀라더란 거짓말까지 붙였다.

「그러면 괜찮거니와, 아예 이 근방의 근본 모르는 애들과는 놀지 말아라. 사람 버릴 뿐 아니라, 큰 망신을 하기 쉽다.」

이만하여 그 문제는 삭아졌다. 그리고 그 문제가 삭아졌는지라, 귀남이는 더욱 마음놓고 놀러 다녔다.

「야, 네 이름이 왜 하필 막동이냐?」

「네 이름은 왜 하필 귀남이야?」

「나야 귀하게 났다고 귀남이지마는, 왜 하필이면 막동이란 말이냐?」

이렇게 서로 꺾음내기와 같이 주고받으며 벌판으로 길로 돌아다니는 동안, 귀남이는 아직껏 알지 못하던 여러 가지의 취미를 막동이에게 배웠다. 일 전짜리 아이스크림을 사서 거리로 들고 가면서 먹는 재미며, 근처의 과수원에 들어가서 능금 알을 도적하여 먹는 재미며, 돈치기, 땅재먹기 등등의 놀이며, 많은 애들을 모아놓고 싸움을 하는 재미, 이런─ 아직 부자집 귀동이로 자라날 때에는 알지도 못하던 여러 가지의 재미를 맛보았다. 그리고 그런 일, 그런 재미를 함께 돌아다니며 맛보는 동안, 막동이와의 사이는 더 깊어졌다.

이리하여 두 소년의 사이에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우애라는 줄이 얽히어졌다.


어떤 날, 학교에서 돌아와서 막 책보를 내어던지고 또 막동이와 만나러 나가려던 귀남이는 대문간에서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어디 가느냐?」

「놀러요.」

「좀 이리로 온!」

귀남이는 아버지에게 가까이 갔다.

「따라온!」

아버지는 귀남이를 데리고 후원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후원에 있는 벤치에 가서 걸터 앉았다.

「너 이즈음 어디로 놀러 다니느냐?」

앉으면서 아버지가 먼저 물은 말이 이것이었다. 귀남이는 아버지의 음성에 놀랐다. 이전과 같이 자애로 찬 음성이 아니었다. 어디로 놀러 다니느냐고 묻는 아버지의 음성에는 심문하는 듯한 노염이 많이 섞이어 있었다.

「벌판으로......」

그러나 귀남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의 둘째 질문이 나왔다.

「벌로? 너 거짓말은 누구한테 배웠느냐?」

귀남이는 아버지를 쳐다보려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위엄에 눌리어 쳐다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머리를 푹 수그렸다.

「대답을 해라. 거짓말을 누구한테 배웠느냐? 내가 너의 어머니나 선생님이 너한테 거짓말하라고는 안가르쳤다. 거짓말은 누구한테 배웠느냐?」

귀남이는 직각적으로 자기가 막동이와 놀던 일이 발각이 된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고집 세게 대답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봐라, 거지 자식들하구 같이 다니니깐 벌써부터 거짓말을 배우지 않았나......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거지 자식들과 놀러 다닌단 말이냐? 게다가 그 위에 거짓말까지? 이번에는 여러 말을 안한다. 그리고 한 번은 용서해 주마. 그렇지만 이 뒤에 다시 그런 자식들과 같이 밀려 다녔다는 그때는 용서 못하겠다. 네 방으로 가서 이젠 공부나 해라.」

그리고 아버지는 홱 몸을 일으켜서 앞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버지가 간 뒤에 귀남이는 잠시 더 그 자리에 섰다가 초연히 자기의 놀이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기 있는 많은 장난감 가운데서 전기 기관차를 끌어 손으로 어루만졌다.

거기 용수를 틀어 보려 하였다. 그러나 틀 흥미가 안났다. 기관차를 레일 위에 갖다 놓으려 하였다. 그러나 갖다 놓을 흥미도 안생겼다.

눈앞에는 막동이와 같이 놀던 그림자가 어릿거렸다. 아이스크림을 들고 먹던 막동이가 보였다.

「이겼다, 이겼다! 백군 이겼다! 졌다, 졌다! 흑군 졌다!」

진싸움을 하던 백군 대장의 막동이가 보였다. 그리고 오늘 막동이와 함께 놀러 가려던 집 밖 개천의 아름답고 맑은 경치가 눈앞에 어릿거렸다. 물론 지금 저 앞 한 길에서는 막동이가 귀남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잠시 기관차를 어루만지고 눈이 멀찐멀찐 앉아 있던 귀남이는 마침내 결심하고 일어섰다. 뒷일은 어떻게 되든 좌우간 시재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막동이를 만나러 나가려는 결심이었다.

귀남이는 몰래 제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사면을 살핀 뒤에 그렇잖은 듯이 비슬비슬 담장 가까이로 갔다. 거기서 한번 더 살핀 뒤에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그러나 귀남이가 담을 넘어서서 몇 걸음 더 못가서 문득 뒤에서 사람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집 하인이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매 하인의 대답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귀남이를 따라온다 하는 것이었다.

귀남이는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부터는 귀남이에게 대한 아버지의 감시가 매우 엄하여졌다.

학교에 갈 때는 반드시 하인을 달려 보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하인을 마중보냈다. 집에서도 한 사람의 하인은 반드시 귀남이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귀남아, 내가 너한테 이렇게 엄하게 감시를 붙이는 것은, 너도 알겠거니와 네가 미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너를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려고 그런다. 이 동리의 못된 놈들과 놀아서 사람 버리면 어떻게 하겠느냐? 쑥도 삼밭에 심으면 같이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못된 애라도 좋은 친구를 사면 좋은 애가 되거니와, 또 검은 물은 들기가 쉬운 것같이, 좋은 애라도 못된 애와 놀면 못된 애가 되느니라. 그러니깐 너도 첫째로 교우를 삼가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훈화를 붙여 가면서 아버지는 귀남이가 밖에 나다니는 것을 엄중히 감시하였다.

그러나 귀남이는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친구를 사는 것을 삼가라는 것은 알아듣겠지만 자기가 사던 애가 어떤 애인지 보지도 못하고 못된 애라고 단정하여 버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막동이는 가난한 집 애였다. 옷도 초라하였다. 거리에서 음식을 먹으며 다녔다. 그러나 그것으로 못된 애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귀남이는 수신 시간에 사람에게 친절하란 말을 배웠다. 막동이는 친절하였다. 의기가 있으라고 배웠다. 막동이는 의기가 있었다. 동정심이 많으라고 배웠다. 막동이는 동정심이 많았다. 굳세라고 배웠다. 막동이는 굳었다. 슬기로우라고 배웠다. 막동이는 슬기로왔다. 막동이의 어느 한 곳이라 나무랄 데가 없는데, 아버지는 막동이를 못된 애라 단정한다. 그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귀남이로서도 이 말에만은 머리를 수그릴 수가 없었다.

막동이와 놀 기회를 잃어버린 뒤부터, 귀남이는 생활의 흥미의 절반을 잃었다. 하인을 달고 학교에 가는 길에, 혹은 역시 하인을 달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때때로 막동이와 만나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귀남이는 정다운 표로 눈을 껌벅하여 보였다. 막동이는 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그뿐, 그들은 서로 말을 사괼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였다.

막동이와 교제를 끊게 한 뒤부터 아버지는 귀남이의 적적함을 풀게 하고자 새로운 많은 장난감을 사들였다. 한 쌍의 꾀꼬리가 귀남이의 놀이방 추녀에 걸렸다. 조그만 모터 사이클이 귀남이의 놀이방 앞에 등대하고 있었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가 마루에 깔렸다. 스위치를 누르면 혼자서 다니는 인형이 상 위에 놓였다.

이러한 새로운 장난감을 주면서 그 조종법까지 가르쳐 줄 때마다 귀남이는 기쁜 듯이 받았으나 일단 아버지에게서 받아서 자기 방에 옮긴 뒤에는 다시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서 뜰이나 비슬비슬 돌며 심심한 때는 조약돌을 주워서 나무 위에 앉은 까치에게 던지며, 그렇지 않으면 연못에서 뛰노는 잉어에게 모래를 뿌리며 놀았다. 얼굴은 나날이 초췌하여 갔다.

아버지도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마음도 알았다. 그러나 어린애의 일시적 마음─ 좀 지나면 변하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는 동안에 여름 방학이 이르렀다. 상한 외아들의 건강도 회복할 겸 놀기도 할 겸, 귀남이의 아버지는 집안 식구를 다 데리고 어떤 해수욕장을 찾아갔다. 이리하여 그들은 여름을 해수욕장에서 보냈다.


여름 동안 아버지며 어머니가 해수욕장에서 즐겁게 날을 보낼 때도 귀남이는 적적히 지냈다. 밝은 햇빛, 번득이는 물결, 뜨거운 모래밭, 거기서 해적이는 수없는 사람의 무리를 바라보면서 귀남이는 늘 외로이 혼자서 놀았다. 날아드는 갈매기 떼에 돌이나 던지며, 술렁거리는 바닷물에 모래나 뿌리며, 혼자서 비슬비슬 해안을 돌아다녔다.

해수욕장에서 기쁘게 날뛰는 많은 소년 소녀가 있었지만, 귀남이는 그들의 틈에 섞이어 노는 일이 없었다. 많은 애들을 보면 막동이의 생각이 다시금 더하곤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서 도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돌아다닐 모양을 머리에 그려 보고는 한숨짓곤 하였다.

방학 때가 다 지났다. 귀남이의 집안도 도회로 돌아왔다.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어떤 날 하학을 하고 집에 돌아왔던 귀남이는 잠시 복습을 한 뒤에 또 홀로 후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날은 웬일인지 늘 그에게 거머리와 같이 붙어다니던 늙은 하인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소리까지 내어서 두어 번 하인을 찾아보았지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귀남이의 가슴은 겨우 뛰놀기 시작하였다. 그는 좀더 두리번거리다가 발소리를 감추어 가지고 제 놀이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함을 뒤적여서 해수욕장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들 가운데서 이쁘게 생긴 것 몇 개를 꺼내어 주머니에 넣은 뒤에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길 모퉁이까지 가서는 달음박질하여 막동이가 있는 동리로 향하였다.

그러나, 그 동리로 가서 한 시간을 헤매다가 돌아올 때는, 귀남이의 얼굴에는 낙망의 표정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막동이네 모자는 한 달 전쯤 어디인가 이사를 간 것이었다. 그리고 빈민굴에 사는 그들인지라, 어디로 이사갔는지 그 동리에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귀한 보배를 잃은 듯한 외로움이 소년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소년은 제 아버지를 원망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의 마음이 아픈 것은 막동이를 잃었기 때문이요, 막동이의 거처를 잃은 것은 그 사이 막동이를 못 만난 때문이란 삼단 논법을 짓기까지 머리가 발달되지 못한 단순한 소년, 막동이를 잃었기 때문에 쓸쓸한 가슴을 품고 초연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넓은 도회에서 막동이를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는 생각은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막동이를 주려고 가지고 나갔던 조개껍데기는 모두 개천에 내어던졌다. 주인을 잃은 조개껍질을 도로 집으로 가지고 돌아오기가 싫었던 것이었다.

소년은 저녁을 안먹었다.

「왜 저녁을 적게 먹느냐?」

어머니가 이렇게 물을 때에, 소년을 쓸쓸히 머리를 가로젓고 일찌기 제 침실로 물러나 이에 왔다.

사랑하는 외아들이 저녁도 안먹고 물러가기 때문에 몹시 걱정되어 어머니가 귀남이의 방으로 찾아왔을 때는, 귀남이는 벌써 자리에 들어서 머리까지 이불을 쓰고 있을 때였다.

「어디 몸이 편찮으냐?

한두 번 이렇게 물어보았지만 대답도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벌써 잠이 든 줄 알고 돌아갔다. 그러나 귀남이는 잠이 든 것이 아니었다. 소리까지는 내지 않았지만, 눈물이 연하여 흘러서 그의 베개를 적었다. 세상이 모두 눈앞에서 사라진 듯이 외로왔다. 그 눈물을 안보이기 위하여 이불을 머리까지 쓰고 있던 것이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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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도 절반이 갔다.

사람의 마음을 외롭고 무섭게 하는 가을철─ 친구를 잃어버린 이 소년은 쓸쓸히 이 나무 아래서 저 나무 아래로 방황하면서 날을 보냈다.

학과도 재미가 없었다.

비록 학교는 서로 다르다 하나 같은 연급인 관계상, 이전 막동이와 서로 알 때에는 모르는 것은 서로 의논해서 하였다. 그때에 친한 친구와 의논하며 하던 공부를 지금 혼자 하려니 아무 재미도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을 그냥 내버려 둘 뿐 이튿날 아침까지 책보를 끄르는 일조차 없었다. 이전에 막동이와 같이 놀던 한길을 혼자 책가방을 둘러메고 비슬비슬 돌아올 때는, 귀남이는 어떤 때는 통곡하고 싶기까지 하였다.

어떤 날 저녁, 이 날도 역시 귀남이는 뒤뜰 느티나무 아래서 돌팔매를 하며 혼자 놀고 있었다. 그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작은 소리로,

「귀남아!」

하고 찾는 소리가 났다. 귀남이는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알아들었다.

그는 몸을 떨었다. 정신까지 아득해지려 하였다. 휙 돌아보니까, 저 뒤 어떤 나무 뒤에서 작다란 손이 하나 나와서, 귀남이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귀남이는 그리로 향하여 뛰어갔다. 다음 순간 두 소년은 반 년만에 굳게 서로 쓸어안았다.

「야!」.

「야!」

「너 어떻게 왔느냐?」

「야, 이것 받아라! 너 먹으라고 가져왔다. 능금이다.」

두 소년은 힘있게 다시 쓸어안았다. 그리고 사람의 눈을 피하며 뒤 숲으로 들어갔다.

「야, 너의 집 이사갔더구나?」

「응, 가 보았느냐?」

「어디로 갔느냐?」

막동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딴 말을 꺼내었다.

「야,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왜?」

「어머님이 탈이 중하셔서......」

「어머님이 탈이 중하시면 네가 학교엘 못 가느냐?

초라한 소년은 부자집 소년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머님이 돈을 벌으시댔는데 어머님이 탈이 나셨으니깐 누가 돈을 벌겠느냐? 내가 지금 돈을 벌러 다닌다.」

「네가?」

귀남이의 눈은 둥그렇게 되었다.

「네가 돈을 벌어? 어떻게 버느냐?

「다른 것으로야 벌겠느냐. 능금을 광주리에 담아 가지고 팔러 다닌다. 하루에 잘 팔리면 삼사십 전은 남는다.」

「그럼 이 능금도 네가 팔던 게로구나?」

「팔던 게면 왜─ 아 가만 있어. 내 어머님께 돈 달래다가 주께.」

귀남이는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나 막동이가 귀남이의 소매를 잡았다.

「야, 내가 너한테야 팔려고 그러겠느냐? 오늘은 좀 비싸게 팔아서 이것쯤 너한테 줘도 좋다. 너한테는 돈은 안받겠다.」

「야, 좌우간 오래간만이다. 그 새─ 그 새─ 막동아, 난 갑갑했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두 소년은 같은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오래간만에 만나는 상봉을 즐겼다. 해가 거의 서산으로 넘게 되어서야 막동이는 돌아갔다.

「또 언제 오련? 곧 오너라. 난 이즈음 못 나다닌다. 오거든 저 나무 뒤에 숨어서 기다려라.」

귀남이는 돌아가는 막동이를 따라가면서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하였다. 그리고 그의 그림자가 안보이기까지 담장 위에서 바래주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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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오후, 귀남이의 어머니가 방 밖에 나왔다가 이상한 일을 보았다. 아직껏 학교에서 돌아오면 뒤뜰에 나가서 놀던 귀남이가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무슨 장난을 부슬부슬 하고 있었다. 거기 호기심을 일으킨 어머니가 가까이 가서 보매, 뜻밖에도 귀남이는 어머니의 구두를 내어다가 닦고 있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았다.

「너 무얼 하느냐?

이 소리에 귀남아는 쳐다보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듯이 장하게 구두를 들어 보였다.

「이거 닦아요」

어머니는 미소하였다. 그리고 귀여운 듯이 내려다보았다.

「그게야 네가 안닦은들 닦을 사람이 없겠느냐? 그냥 두어라.」

「그래도 오늘 선생님이 애들에게, 집에 돌아가거든 장난이나 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유익한 일을 하라고 그러시던데요.」

「그렇지만 그런 건 닦을 사람이 따로 있으니깐 그만둬라.」

그러나 귀남이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더욱 손 빨리, 더욱 열심히 닦았다. 그것을 다 닦은 뒤에는 또 다른 어머니의 구두를 내어 왔다.

어머니는 한참을 서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빙긋이 웃고 도로 들어갔다.

구두를 세 컬레나 다 닦은 뒤에, 귀남이는 장한 듯이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호령을 하여 물을 가져오래서 손을 씻었다.

손을 씻고 아랫목으로 내려오는 사랑하는 아들을 어머니는 귀여운 듯이 보았다.

「일을 하는 것은 좋다. 선생님의 말씀은 옳은 말씀이다. 그렇지만 구두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괜찮다. 더구나 손이 더럽고 옷이 더럽지 않느냐? 구두 닦을 사람이 얼마가 되기에......」

「어머니, 난 어머니 구두가 닦아 보고 싶어요.」

이 귀여운 말에 어머니의 입은 더욱 벌어졌다.

「그런데 어머니!」

「왜?」

귀남이는 뒷말을 곧 하지 못하였다. 입을 움찔하였다. 얼굴을 붉혔다. 머리를 수그렸다.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왜 그래?」

「네, 나─ 돈─ 일 원만 주세요.」

「돈 일 원? 써야 할 돈이면 일 원 아니라 십 원이라도 주겠지만, 대체 뭘 하려느냐?」

귀남이는 대답을 주저하였다. 오늘만큼 아첨을 했으면 달라기만 하면 곧 줄 줄 알았지, 무엇에 쓰겠느냐고 질문이 나올 줄은 뜻도 안하였다. 그래서 거기 대한 대답의 준비가 없었다.

「무엇에 쓰겠느냐?」

「예? 저 거시키─ 학교에서 회비─ 후원회─ 응원대 저 그 회비 일 원씩을 가져오래.」


「무슨 회비?」

「응원대 회비─」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쓸 게면 주지.」

하고는 즉시 일원을 꺼내어 주었다.

이튿날은 귀남이는 아버지를 속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를 귀남이는 대문에서 기다리다가 맞받아 나가서 지팡이와 모자를 받아들고 들어와서, 친목회 회비라는 명목으로 이 원을 따내었다.

이리하여, 삼 원이라 하는 돈을 만든 귀남이는 그 뒤부터는 막동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주머니 속에 넣은 돈을 겉으로 두드려 보면서 귀남이는 하학한 뒤에는 곧 집 후원으로 돌아가서 막동이와 약속한 나무 뒤에 가서 기다리곤 하였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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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능금 안가져왔느냐?」

며칠 뒤 막동이를 만난 이는 첫번으로 이말부터 물었다.

「아니, 오늘은 못 가져왔다. 왜?」

「능금이 먹고 싶구나.」

「이번 올 때 갖다 주지. 너는 그런 능금은 잘 안먹을 줄 알고 오늘은 안가져왔다.」

「그런데 막동아!」

「왜?」

귀남이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꽁꽁 싸서 준비해 두었던 돈을 꺼내었다. 몹시 미안한 듯한 얼굴로 귀남이는 그 돈을 슬며시 막동이에게 쥐어 주었다.

「얘, 이상하게 알지 말아라. 능금 값이야, 받아 줘. 받아 안주면......」

귀남이는 제풀에 울먹울먹하였다. 눈물 괸 낮을 막동이의 얼굴을 향하여 쳐들었다. 그러나 눈을 들던 귀남이는 막동이의 뒤에 우뚝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막동이의 뒤에는 귀남이의 아버지가 우뚝 서서 두 소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남아!」

귀남이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게 돈이냐? 돈 이리로 가져온!」

귀남이는 머리를 푹 숙였다. 막동이도 머리를 푹 숙이며 방금 받았던 돈을 얼른 귀남이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두 소년의 사이로 커다란 손이 내려와서 돈을 집었다. 그리고 또 한 손은 막동이의 뒷덜미를 움켜쥐어서 일으켜 세웠다.

「커다란 자식이 어린앨 속여서 돈을 빼앗느냐?」

성난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막동이는 입을 움직였다. 그러나 들리게까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얼? 무슨 말이냐? 가거라! 네 집이 어딘지 네 집으로 가거라.」

막동이는 변명 비슷이 무엇을 중얼중얼하면서 초연히 저편으로 갔다.

저편으로 가는 막동이의 등을 귀남이는 바라보았다. 귀남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괴었다. 귀남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던 눈을 아버지에게로 돌릴 때는 소년의 눈에는 맹렬한 노염이 불붙었다.

「자, 들어가거라. 못된 자식들한테 속아서 돈을─ 에익!」

「아버지!」

소년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저 애는 못된 애가 아니에요.」

「무얼? 말대답이야? 그럼 못되지 않은 자식이 널 속여서 돈을 뺏으렸느냐?」

「저 애가 빼으련 게 아니고 제가 주렸읍니다.」

「옳지! 그래서 애비 어미를 속여서 돈을 내라 해 가지고─ 게다가 부모에게 딱딱 말대답을 하고─ 못된 자식들과 놀더니 별별 못된 버릇을 다 배웠구나! 썩 들어가거라. 그리고 이 뒤에는 다시는 그런 자식들과 놀았다는 당장에 이 집에서 내 보낸다. 다시는 네 꼴을 안보겠다.」

소년은 어깨를 들먹하였다. 아직껏 아버지에게는 절대로 복종하던 귀남이도 오늘의 이 말에만은 한 마디의 대답일망정 안할 수가 없었다.

「응원회비다 친목회비다 부모를 속여서 돈을 따내 가지고 그런 거지 자식들에게 줄랬느냐? 음 고약한 자식!」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꾸중을 한 뒤에, 귀남이를 앞에 몰고 도로 앞으로 돌아왔다.

귀남이에게 대한 감시는 다시 엄중하여졌다. 그 뒤부터는 한 때도 귀남이의 몸 곁에서 하인이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감시 아래서 귀남이는 때때로 어린 마음에도 제 아버지의 그때의 행동 때문에 얼굴을 붉혔다. 아무 죄도 없는 막동이가 무안해서 초연히 돌아가던 모양이 때때로 눈앞에 나타나서, 귀남이로 하여금 얼굴을 붉히게 하였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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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이르렀다.

어떤 바람 몹시 부는 날 밤, 귀남이의 집에서는 불이 났다. 불은 바람에 불어서 삽시간에 집 전체를 둘러쌌다. 밤 깊은 때 난 불이라, 불이 꽤 크게 되기까지는 아무도 안 사람이 없었다.

「불야!」

이 소리에 단꿈을 깨어, 귀남이의 부모가 자리옷 채로 뛰쳐나온 때는 벌써 집은 통 불로 싸인 때였다.

바지만 겨우 움켜 입은 하인들이 어쩔 줄을 모르고 앞뒤로 헤매고 있었다. 소방대는 아직 올 날이 멀었다. 그러는 동안에 불은 더욱 맹렬히 타올랐다.

귀남이가 안 보이는 것을 안 것은 귀남이의 부모가 뛰쳐 나온 뒤에도 얼마가 지나서였다. 먼저 어머니가 귀남이를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하인마다 붙들고 물어보았다. 어떤 하인은 분명히 도련님을 밖에서 보았다. 어떤 하인은 못 보았다 하였다. 귀남이가 아직도 불붙는 방안에 있는지 밖으로 피하였는지는 옳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미칠 듯이 날뛰었다. 아버지도 날뛰었다.

「귀남아! 귀남아!」

부르며 부르짖으며 야단을 하였지만, 귀남이는 어디 있는지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현상을 하였다.

「백 원─ 아니 천 원─ 만 원 줄 테니, 누구 저 방안에 들어갈 사람은 없느냐?」

안타까움에 날뛰는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부르짖어 보았지만, 이미 불로 통 에워싸인 불구덩이에 뛰어들어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였다. 웬 새까맣고 조그만 뭉치가 하나, 저편에서 달려왔다. 그리고 그 뭉치는 불문곡절하고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어갔다.

「저게 뭐냐? 저게 미친놈이로구나!」

귀남이의 부모며 하인들이 놀라서 야단할 동안, 그 뭉치는 불 가운데 사라져버렸다. 좀 뒤에 불길 사이로 웬 조그만 얼굴 하나가 걸핏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아이구, 귀남이 저게 있구려! 이걸 어쩌오!」

그 얼굴을 보고 귀남이의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그 조그만 얼굴을 보는 순간 귀남이의 아버지의 안면 근육은 뻣뻣하여졌다.

「귀남이가 아니다.」

기계적으로 이렇게 말은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방망이질하듯 두근거렸다.

귀남이의 아버지는 불길 가운데 걸핏 나타났다가 사라진 얼굴에서 며칠 전 후원에 귀남이와 함께 앉았던 소년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소년의 모양은 이편 다른 방 불길 가운데서 걸핏 나타났다. 그때는 소년의 입은 옷에 불이 당기어 타오르는 것까지 보였다.

「귀남이도 귀남이려니와 저 애─ 누구든 저 애를 구해낼 사람은 없느냐? 상금은 귀남이와 같다!」

귀남이의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이렇게 부르짖을 때에 소년의 모양은 또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거기서 나타난 소년은 이번은 밖을 향하여 뛰쳐나왔다. 뛰쳐나오는 소년의 팔에는 무슨 커다란 봇짐 비슷한 것이 들리어 있었다.

소년은 불 밖으로 뛰쳐나왔다. 팔에 들었던 봇짐을 앞으로 내어던졌다. 입으로는 무엇이라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에는 소년은 활활 타오르는 옷을 입은 채로 그 자리에 거꾸러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와 하니 모두 그리로 몰려 왔다.


14

[편집]

귀남이의 집 근처가 불붙는 것을 보고 달려왔던 막동이는 귀남이가 아직도 불붙는 방 안에 있는 듯하다는 말을 듣고, 맹화를 무릅쓰고 뛰쳐들어간 것이었다. 자식에게 대한 부모의 애정으로도 능히 뛰쳐들어가지 못한 무서운 불길, 만 원이라는 상금에도 감히 뛰쳐 들어가지 못한 무서운 불길─ 이것을 이 소년은 단지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겠다는 정성으로 뛰쳐들어간 것이었다.

귀남이는 데이지도 않고 무사히 막동이에게 구원당했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기절을 하고 이불을 쓴 채 막동이에게 구원을 받은 귀남이는 한 군데도 상하지 않고 무사히 피해났다.

거기 반하여 막동이는 생명이 위태하도록 중상을 입었다. 불 구덩이 속에서는 친구를 구원하여야겠다는 정성으로 정신을 모르고 돌아다녔지만, 그의 껍질 한 겹은 온통 불에 탔다. 이불에 싸인 귀남이를 붙안고 나와서,

「귀남이 여기 있소.」

하고 귀남이를 앞으로 내어던진 뿐, 이 소년은 그 자리에 넘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귀남이의 부모는 즉시 이 소년을 입원을 시켰다. 며칠 전에는 못된 자식이라고 귀남이에게 선사로 받았던 삼 원의 돈까지 도로 걷어 올렸던 귀남이의 아버지는, 의사를 향하여 비용은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이 애를 살아나도록만 하게 해 달라고 빌다시피 하였다.

의사는 연하여 머리를 기울였다.

「힘껏 해 보기는 하겠읍니다마는, 아직도 연골인데다가 상처가 너무 과해서......」

그리고 의사는 힘을 다하여 막동이를 치료하였다. 막동이는 만 이틀 동안을 정신없이 지냈다. 헛소리만 연하여 하였다.

「불이야! 뜨겁다!」

「어머니! 능금 팔었소?」

「귀남이 너 어디 갔니?」

이런 헛소리를 끊임없이 하였다. 그동안에 탈났던 그의 어머니도 이 병원으로 데려왔다.

이틀이 지나서 막동이는 정신이 들면서 눈을 겨우 뜨다가, 거기서 귀남이의 아버지를 발견한 막동이는 첫 마디로,

「귀남이 살았읍니까?」

고 물었다. 귀남이의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살았다! 네 덕에 살았다. 하마터면 죽을 걸 친구의 덕에 살았다.」

「네? 살았읍니까! 아아! 그때 불구덩이에 들어가니깐 도대체 어디 귀남이가 있는지 알겠어야지요. 그저 막 이리저리 다니노라니깐 발에 무에 뭉클─ 뭉─ 뭉─ 클」

소년은 숨찬 듯이 여기서 말을 끊었다.

「그래서......」

「고맙다! 너 아니더면 꼭 죽을 걸......」

「아 그래서......」

「응 알겠다. 이야기는 이 후에라도 할 수가 있으니까 편안히 누워 있거라! 감사하다. 훌륭─ 아주 훌륭한 애로다.」

그때에 뒤에서 귀남이가 쑥 나왔다.

「아버지! 막동이 훌륭한 애예요?」

「응 그렇다!」

「못된 애 아니에요?」

아버지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못된 애가─ 왜 못된 애겠느냐.」

「그럼, 그 애하구 놀아도 괜찮아요?」

「괜찮다 마다!」

이리하여 귀남이의 아버지는 아직껏 막동이에게 품고 있던 관념을 고쳤다.

귀남이를 구해낸 상금은 막동이가 받았다. 그 돈으로 그는 어머니와 자그마한 집을 하나 사서, 거기서 아주 아담한 살림을 하였다. 막동이와 귀남이의 우정은 더욱 깊어 갔다. 그것은 이해 관계를 떠난 맑은 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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