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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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별명은 생철동이라도[편집]

본시 조용하진 못한 마나님인데 겸하여 역정이 난 참이고 보니 그 야단스런 품이 미상불 생철동이를 뚜드리는 만큼이나 자못 시끄럽다.

“아니 그래…… 어떡허면 그래……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동네가 벌컥 뒤집하게 목소리만 큰 것이 아니다. ‘절구통마나님’이라고도 또한 별명하는 그 육중스런 몸집을 연해 휘둘러싸면서 푸짐한 넋두리가(아들 준을 두고 하는 넋두리가) 한바탕 벌어지던 것이다.

“으응? 이 내 속에서 나온 자식이 그래…… 어떡허면 그래…… 고따위루 응? 고따위루……”

마침 메주를 쑤었다. 큰 가마솥에다 큰 대시루를 걸고 푸욱신 삶은 메주콩을 바가지로 퍼억퍽 큰 대소쿠리에다 퍼담는다. 허연 김이 뭉게뭉게 피어나오고 집 안팎으로 구수한 메주콩내가 흥건히 풍긴다.

마나님r13;강부인r13;은 일변 메주콩을 퍼 담으면서 일변 넋두리로 입은 쉴 새 없이 바쁘면서, 이윽고 소쿠리가 수북하게 차자 불끈 집어들고는 쭈르르 마당으로 달려나온다. 거뜬거뜬한 게 뚱뚱한 체집 보아서는 딴 사람 같다. 몸도 연가벽거니와 소쿠리 밑에서 메주물이 찌르르 함부로 쏟아지건만 그 한 방울도 치마 앞자락이나 버선등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새색시 적부터도 일솜씨 깔끔스럽기로도 고을 일판에서 소문 있던 부인이다. 나이 오십이로되 젊었을 적 솜씨가 여전하고 가시지 않는다.

마당에는 절구와 절굿대, 안반 등속 메주 찔 채비를 마침 다 차려놓았다.

“대체 어떡허다 이 내 속에서 그런 자식이 나왔드란 말인고? 으응?…… 천하 농통허구, 근경속 없구, 잔망스럽구……”

당자 준은 고사하고 옆에서 누구 한 사람(하다못해 귀덕어멈이라도) 듣고 있는 이조차 없건만, 그러니 매양 강 건너 눈흘기기요 혼자의 푸념이건만, 그런 건 다 상관 아니었다.

들고 온 메주콩을 메 소쿠리째 절구에다 엎는다.

“제발 좀 외탁을 하겠지? 외탁을 했으면야 사람녀석이 고대두룩야 농통스렀으리 ?…… 세상 주변성 없구, 고정하기만한 즈이 으런 승미 고대루 닮어가지구는…… 그 으런은 그래두 고집이나 없었지! 고집이나……”

좌우를 휘휘 둘러본다. 당연히 등대하고 있었을 귀덕어멈이 간 곳 없고 보이지 않는다.

“아 귀덕어머엄 ?”

불러도 대답하고 나오는 싹도 없다.

“방정이 그새 어디루 또 싸아나갔담 ?”

조금 역정이 더했고, 그 길에 절굿대를 치켜들려다가 또 생각이 나서 일단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시추뚜껑을 덮어놓는다.

“야숙한 놈! 천하에 모질구두 매정스런 놈!…… 그 놈이 비상보담두더 독한 놈이어든!…… 제가 그러구서두 복을 받을까?”

부엌을 다녀와서는 서슴지 않고 곧 절굿대를 집어들고 메주방아를 찧기 시작한다. 부자는 아니라도 오륙백 석 추수를 하여 쓰고 밀리는 성세요, 편안히 지내도 좋을 팔자이었지만,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 메주방아쯤 찧기를 주저치 않는다.

젊은 장정 못지 않게 절굿대가 기운차게 오르내린다.

“싯 싯.”

그리고 무딘 절구 소리가 그에 화할 뿐, 젉두리가 잠깐 끊긴다.

서향한 옆채의 처마 끝에 수정 발을 드리운 듯 주렁주렁이 매달린 고드름이 맑은 햇빛에 영롱히 번뜩인다.

높다란 ‘유지저리’ 꼭대기에서 긴 상모가 멋들어지게 나부낀다. 상모 끝으로 팔랑개비가 모형 비행기의 프로펠러처럼 이쁘게 돈다.

“후욱!”

소스라치게 외양간에서 암소가 한숨을 내쉰다.

“망헐 것!

강부인이 돌려다보고는 핀잔을 한다.

“너두 자식 못 쓸 것 두었드냐 ?…… 에미 쏙 썩히는 자식 두었어 ? 죄없는 안해 소박하는 자식 두구?”

마악 그럴 때에 건넌방으로부터 병색과 수심을 얼굴에 드리우고, 며느리가(방금 강부인이 하던 말로 하면 ‘죄 없이 소박 받는’ 준의 아낙이) 헝클어진 머리를 다지르면서 원기 없이 마당으로 내려오고 있다.

“왜 나오느냐? 누었들랑 않구서!”

강부인은 걱정을 한다는 양이, 하마 잡도리를 하려 든다.

고부간(姑婦間)이라고 하지만 시어머니 강부인이 쉰둘에 며느리r13;서씨가 열네 살 떨어지는 서른여덟이면 낼 모레가 마흔…… 여자 나이 마흔이면 벌써 늙음줄에 들어간 나이다. 서씨는 그런데다 심화와 부실한 건강으로, 볼성없이 바스러지고 조로를 하였다. 언뜻 사십이 훨씬 넘어보인다.

그와 반대로 시어머니 강부인은 이른바 노익장(老益壯)하여, 원 나이보다 네댓 살은 젊어보인다.

이 고부는 그래서 같이 늙어가는 터이고, 속 모르는 방물장사 붙이들이 일쑤 동서(同婿)끼리거니 하여 종종 망발을 하는 수가 있다.

사람은 저마다 제 팔자라는 것을, 즉 제 일생의 운명을 각지 제 얼굴에다 그려가지고 태어난다는 소위 상학(相學)의 주장이 일반으로는 족히 종작할 것이 못된다 치더라도 막상 이 서씨라는 여인에게만은 엔간히 들어맞았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가 없다.

노상 혼인하던 첫날밤 애기신랑에게 소박을 맞은 이래 이십 년은, 꼬박 생과부로 살아오는 여인이니라 하는 선입주견만으로가 아니다. 아무 내력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어딘지 불행하여 보인다. 추레하고 수심스러운 표정이야 그 자신의 항상 경황없고 슬픈 심정의 반영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말고도, 일종 선천적인 것으로 무엇인지 모를 불길스런 듯 박행스런 듯한 상모(相貌)다. 표정이 아니라 얼굴 원 바탕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인물이 잘생겼다 혹은 못생겼다 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속담에 일색 소박은 있어도 박색 소박은 없다고 하거니와 지금은 다 바스러졌을망정 일찌기 인물 축에 들면 들었었지 결코 박색은 아니었다.

남의 앞에 빠지지 않을 만큼 여자다운 매력도 지녔고 겸하여 그 갸름한 얼굴 바탕에 준한 듯한 코와 길게 째진 눈초리 등 자못 범키 어려운 위엄을 갖추어, 어디로 보나 인물을 가지고 하더라도 탈잡힐 구석이 별로이 없다. 항차 그의 아름다운 심성과 현숙한 부덕(婦德)이리요. 그러기에 노오 강부인이

‘제 따위 놈이 생전 어딜 그런 가숙을 천신을 해? 과분한 줄 모르고서!……’

이렇게 안타까와하는 것도 한갓 입에 붙은 말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시가 준이 아낙을 소박한 소연이 그 인물에 있는 것도 아니요, 심성이나 부덕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도 아니다. 또 열세 살에 든 장가라서 장성한 후 개성이 눈뜸을 좇아 자유결혼을 욕망하는 나머지 아낙에게 애정이 없다는 것을 구실로 명령결혼(命令結婚)에 대하여 의식적인 항거를 일삼고 있는 것이냐 하면 그역 아니다. 아울러 달리 침혹한r13;이를테면 연애를 하는r13;여자가 생겼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그와 더불어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할 사정…… 이런 사정의 유무는 우선 차치하고, 근본이 그런 데서 우러난 문제인 것도 또한 아니다. 오직 한가지 특별한 사유가 따로이 있던 것이다. 하되 그것은 맹랑하기 상식을 초월한것으로, 항용 이성이나 인간적인 노력으로 좀처럼 휘어잡기 어려운 마성(魔性)을 띠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십 전 생과부로(정히 처녀과부로) 사십고개를 넘고 있는 그 서씨였다.

강부인은 또 강부인으로, 일찌기 삼십에 남편을 여의고 혼자 된 이였다.

하나는 삼십과부, 하나는 처녀 적부터의 생과부…… 다같이 모과 영혼이 한량없이 고달픈 두 여인이었다. 자연 서로 동정하며 서로 위하고 의지하여 피차간 의좋고 정다울 수가 있는 고부끼리였다.

원래가 둘이 다 선비네 가문의 태생으로, 사람들이 점잖스러웠다. 또 직성이 잘 맞았다. 같은 성격이 아니라, 다르면서도 조화가 될 수 있는 성격이어서 직성이 맞는 것이다. 거기다 겸하여 팔자가 또한 그렇듯 비슷한 팔자요 하니, 본디야 남남끼리 모여진 고부간이라지만 부모 자식이란 윤기가 떳떳하겠다, 서로간 사이가 나쁘고 싶어도 나쁘지 못할 처지였다.

미상불 남이 부러울 만큼 고부는 정이 자별했다. 그런 중에도 강부인이 며느리 서씨를 연민(憐悶)하며 자애하는 애정은 예사 자기 친소생의 자녀에게도 미치기 어려운 깊고 곡진함이 있었다. 천품이 천품이라, 그 형식이 심히 퉁명스럽고 본치 없기는 하여도……

“왜 나와?”

강부인은 재차 이렇게 나무란다. 음성은 지금껏 혼자 넋두리를 하던대로 여전히 높은 음성이면서도, 그러나 판이하게 부드럽고 정이 듣는다. 얼굴도 그러하다.

서씨는 이 근년으로 더욱 성한 날보다 앓는 날이 많았고, 이번에도 그새 연 사흘째 몸져 누워 앓던 참이다.

시어머니가 성화를 하는 것을, 서씨는 그저 모호하게

“네에……” 하면서 심상히 그대로 걸어오더니, 붙임성 있이 절구 옆으로 다가선다.

“어머니는 들어가세요! 지가 찌께요!”

“! ……”

하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강부인은 절굿대를 올린 채 말없이 뻐언히 며느리를 건너다보다가 버럭

“냉큼 들어가 누었지 못하느냐?” 하면서 꽝 절굿대를 내려찧는다.

“걸 어떻게 찌신다구 그러세여?”

“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루 있다더냐?”

경우에 따라 아무나 예사로이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는 말이다. 동시에 듣는 사람도 심상히 듣자면 심상이 듣고 말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강부인에 있어서는

‘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로 있다더냐?’는 이 한마디로써 강부인이라는 여인의 사람 됨이랄지 생활이며 및 그 오십 평생을 잘 엿볼 수가 있는 것이다.

갓서른에, 그때 겨우 열한살난 아들 준을 데리고 혼자몸이 되었다. 손위로 어른도 다 없고 집안이 또한 몹시 고단한 집안이었다. 그 백씨를 닮아 지지리 주변성 없는 시숙r13;준의 삼촌 숙부r13;하나가 한 동네에서 살고 있을 뿐, 젊은 홀어머니 살림을 보살펴라도 줌직한 일가라곤 시가편으로든 친가편으로든 별로이 없었다.

잘하나 못하나 강부인은 그리하여, 내 스스로의 주견과 힘으로써 모든 것을 감당해 나가야만 했다. 집안과 살림살이의 짜장 주인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강부인은 요행으로 여장부 될 천품을 타고 났었다. 그런데다가 마침 환경이 그 천품을 발휘할 기회를 주었다.

‘허어a281;그 젊 괏댓이a281;…r9;’

사람사람이 눈을 홉뜨고 혀를 내저으면서 경탄하고 희한하여 하고 혹은 시기도 하고 하도록 강부인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그야말로 치마꼬리에서 바람이 획획 일 만큼 눈부신 활약을 했다.

‘호랑아씨’란 일찌기 이때부터 생긴 별명이다. 몸이 뚱뚱하대서 ‘절구통마나님’이니, 생철동이처럼 시끄럽대서 ‘생철동이’니 하는 별명은 오히려 사십이 넘어 이 근년에 탄 별명이다.

준의 부친 임규선씨까지 삼대째 물려내려오는, 한 오십 두락의 전장이 있었다. 선비네 집안답게 대대로 그것을 전부 소작을 내주어 그 추수 받은 것을 가지고 근근히 일 년 계량과 가용을 대어왔었다. 속담에 제 털 뽑아 제 구멍 메우기로, 백년 가야 그 재산 그 살림이었지 밭 한뙈기 늘 법이 없었다. 소중한 선영의 유업인지라 매양 축나지 않도록 대대이 고스란히 그대로 지키기에나 촉렴하였지 구태여 그것을 더 늘리자고, 나아가 서둘며 납뛰고 할 물욕도 주변도 통히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것을 강부인이 당가산을 하자 방침을 적극적인 것으로 일변을 하였다. 토지의 거의 전부를 소작을 떼어 자작을 했다. 머슴을 네다섯씩 두고, 고지(雇只)를 주고 해서, 논 오십 두락에다 이십 두락의 밭농사까지 지어냈다. 논밭 칠십 두락의 농사 감농을 하자면 연인원(延人員) 천명 이상의 놉을 휘잡아 부려야 한다. 천여 명의 놉을 휘잡아 부린다는 것 한가지만 하더라도 여간한 이력과 남다른 아귀힘이 없이는 제로라는 남자로도 능히 감당치 못하는 노릇이거늘, 강부인은 버젓이 그것을 해냈다. 그러고도 소를 몇 마리씩 먹이고 도야지를 기르고 닭을 치고 양잠을 하고 할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서 안팎으로 많이 손대가 있던 것이냐 하면, 며느리 서씨에게 식사와 의복 범절을 맡기고 귀덕 어멈에게 허드레일을 맡기고 그러고는 자기 혼잣손으로 시원시원히 다 치르어냈던 것이다.

논밭 농사의 수입만 하여도 넉넉 그 전의 삼 곱이나 되었다. 별반 쓰는 데는 없는데 수입은 매년 불어가니 무럭무럭 성세가 늘 수밖에 없었다.

강부인은 호랑아씨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또는 치마꼬리에서 바람이 획획 난다는 조롱을 받으면서, 세상 부라퀴로 납뛰어 재산을 모으기는 하면서도 이날 이때까지 누구를 등골을 쳐 먹는다든가 속임수를 써서 옭아맸었다든가 한 적은 없었다.

또 오푼변 돈놀이도 하지 않았고 장리도 놓지 않았다. 지주가 이삼월 한창 춘궁 무렵에 ㅇ양식 떨어진 작인들한테 벼를 풀어주었다가 그 가을 타작마당에서 한 섬 머리에 반 섬으로부터 한 섬까지씩의(五割a374;十割)의 변리를 쳐서 섬반이나 두 섬으로 받아내는 게 소위 장리라는 것이다. 시방은 물론 없어졌지만, 좀 들이껴서까지도 남방 농촌에서는 이 장리야말로 조무래기 지주들에게 아주 큰 치부거리요 부엉이집이었다.

강부인은 임씨 집안이 선대 이래로 일찌기 장리를 놓아먹은 법이 없는 청렴한 가풍을 존중해서뿐더러 자기 자신으로도 벼 한 섬을 주었다가 다직 여섯 달 만에 섬반이나 두 섬으로 받는 그 짓을 차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돈놀이는 그리고 더구나 인금까지 깍이는 노릇이라 하여 역시 손을 데려고도 하지 않았다.

강부인의 재산은 순전히 그러므로 농사를 짓고 여러 가지 가축을 쳐서, 또는 추수를 받아서 졸략히 쓰고 그 밀린 것으로 해마다 땅을 사고 사고 한 것이었다.

“내가 몇백석거리 성세를 내 손으로 장만을 했다만서도 하늘을 우러러보나 땅을 내려다보나 털끝만치도 마음에 죄를 진 두려운 생각은 없다.!”

강부인, 그래서 떳떳이 가끔 이런 큰소리도 하곤 한다.

젊은 과부댁의 손으로 그만큼이나 성세를 이루어놓게 된 데는 당처부터 얼마간의 재산적 기초가 있었던 덕분이 아님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기는 일에 대한(즉 생활에 대한) 사람 자신의 철저한 정성과 힘찬 실행력…… 이것이었다.

일에 대하여 빈틈없이 정성 있고 힘차게 실행하고, 이것이 곧 강부인의 생애요 생활 전부요 했다.

‘메주방아는 찧는 사람이 따로 있다드냐?’

이 말은 그러므로 조금도 과장이거나 내용 없는 지날말인 것이 아니라 가장 적절하게 강부인 그 자신의 생태(生態)를 단적으로 설명한 말이던 것이다.

내 앞에 당한 바 생활에 정성 있고 적극적이여 한, 즉 생활에 대하여 용감스러운 강부인, 그는 ‘집안’을 위해서나 이윽고는 천하를 위해서나 퍽도 미쁜 여인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하기야 강부인은 와락 ‘성공한 어머니’는 못될는지도 모른다. 아들 준이(둘도 아니요 단 하나밖에 없는 그가) 심히 여의치 못한 아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껏은 강부인으로 앉아서 보기에 준은 어머니의 뜻과 같은 아드리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준이 뜻과 같은 아들이 아닌 것은, 소위 운명이라고도 일컫는 불가항력의 탓일지언정 강부인의 단독 책임은 노상 아니다.

가령 너무 일찍 장가를 들인 것을 강부인의 잘못 생각이었다 하여, 준이 안해를 소박하는 일을 강부인에게다 씌우기로 든다면 그야 반드시 씌우지 못할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구태여 조혼을 했다고 해서 저마다 안해 소박을 하란 법은 없는 것이다. 있는 법이라면 우리네 선대들은 맨판 내외간 공방투성이였을터인데 사실이 어디 그런가, 그이들이야 개개 열 살이 갓 넘은 소년 적에 시집장가를 들었으면서도 요새날 연애결혼을 했다는 새시대의 부부들 못지 않이 금실이 좋지 않았던가, 또 새시대에 와서 구식의 조혼을 하고서도 금실 좋은 젊은 부부들이 조음 많은가.

조혼을 했기 때문에 부부간에 금실이 없다든가 안해를 소박한다든가 하는 것은 결국 그러므로 예외의 것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예외라는 옹이에 공교로이도 마디가 가서 닿은 것을 가지고

“어째서 일찍 장가를 들였단 말이오? 모두가 당신 책임이오!”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가혹한 책망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치게 엄히 굴었다는 것이 한가지 있는 외에, 불가항력으로 ‘실패한 어머니’가 된 것은 가려서 말하지 말기로 하고, 그 늠름한 여인임을 취하여, 역시 강부인 같은 여인은(좀 시끄럽더라도) 많이 있을수록에 좋고 고마운 노릇이다.

며느리 서씨는 더 말도 붙여볼 바를 몰라하고 섰다가, 마침 눈에 뜨이는 대로 안반에서 몽당주걱을 집어 든다. 메주방아를 우기기라도 하자 함이다.

“들어가래두 이르는 말 듣지 않는구나 ?……”

강부인은 이번에는 음성마저 순순히 하여 곰살갑게 달랜다.

“실섭허구 도지면 여러 날 또 고생 않느냐 어서 들어가 누었어!”

“네에!”

“찌면 내가 얼마나 그리 찧느냐? 좀 있으면 인제 귀덕어멈이 들와서 죄에다아 할 걸 가지구……”

강부인은 숨결이 차차로 가쁘다.

“그새 벌써 숨이 차니!……”

강부인은 혼잣말로 그러다가 후유 긴 숨을 내쉬고 나서

“인제는 속절없이 늙었다.!”

“………”

서씨는 잠자코 시어머니의 머리로 눈을 돌린다. 사 년 이짝 알아보게 머리가 많이 세기도 세었지만 오늘따라 그것이 새삼스레 눈에 띄었다.

오십 바로 저짝 몇 해 동안은 가끔 더러 담뱃대를 물고 잠시 한가로이 누워 며느리에게 흰머리를 뽑히곤 하기도 했었으나 이 그년 와서는 통히 없었다. 뽑을 정도의 흰머리가 이미 아니었던 것이다.

“쯧, 늙기두 할 테지! 오십이 넘었으니……”

“………”

“그러나마 맘이나 편했을 새 말이지!”

“………”

“몹쓸 놈!……” 하다가 문득 며느리를 건너다보고는 성화스럽게

“어서 들어가지 않구, 그러구 섰느냐 ?” 한다.

말이 채 떨어지기 전에 서씨는 돌아서서 천천히 저리로 걸어가고 있다.

‘몹쓸 놈!’

이 말은 또다시 아들에게 대한 넋두리의 시작이었다. 서씨는 언제고 옆에서 그것을 듣고 있기가 민망하고 속이 언짢았고, 그래서 되도록이면 자리를 피하곤 했었다.

강부인은 강부인대로. 며느리의 그러한 심정을 잘 헤아리는 터이라 매양 그가 있는 데서는 입을 참았고, 정히 참을 수가 없으면 무슨 핑계를 하든지 하여 쫓아버리고 했었다.

“그놈이, 꼭 그놈이 돈이 없었어야…… 꼭 돈이 없었어야만 내게 와서 항복을 할 텐데!”

강부인이 생각하기에는 준은 제 손으로 생활을 해서 제 맘대로 살아갈 주변이 없는 인물인즉 제 수중에 돈만 없고 보았으면 진작 와서 꿇어 엎드려

“어머니 잘못했읍니다! 인제부터는 가숙 소박도 않겠읍니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준은 돈을 적지않이 가지고 있다.

준의 외가, 즉 강부인의 친정이 준의 집안 이상으로 고단하여 아무도 없고, 준의 외조모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만만히 양자할 만한 자리도 없었거니와 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외손자 준을 끔직 사랑하면서, 부디 준의 손으로 외손봉사나 받고 말겠노라고 늘 말해 왔었다.

그 마나님이 지금으로부터 다섯 해 전, 마침내 세상을 떠나려면서, 임종에 동경 있는 준을 불러내대 앉히고, 너의 대까지만 외가 제사를ㄹ 모시게 하라는 유언과 더불어 수월치 않은 재산 전부를 물려주었다. 준은 그 전장을 죄다 팔아 사만여 원의 현금을 동경으로 가지고 가서 은행에 맡겨두고 공부를 다시 계속했다. 그리고 지금도 삼만 원 넘겨 남아 있다.

강부인은 이 돈과 그 사실만을 두고 하던 말이 아니었다.

준은 강부인의 “농사는 천하의 근본인즉 기위 공부를 하량이면 농사공부라야 한다……”는 이상과 방침에 좇아, 열네 살 적 장가들던 바로 그해에 보통학교를 마치자 곧 근처의 a336;a336;농업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것이 사실은 강부인의 오산 제일장(誤算第一章)이었던 것이다.

열여덟에 농업학교를 졸업한 준은 스물한 살까지 꼬박 삼 년을 아무튼 농사도 짓고 과수재배도 하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준의 체질, 성격, 취미, 재능 어디로 보든 전혀 상극진 방향이었다. 거기다 아낙 서씨와의 문제가 있고, 겸하여 모친 강부인의(준의 말을 빌면) 기승과 압박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벌역이었다.

그 벌역을 면할 겸, 오랜 경륜을 이룰 겸, 스물한 살 되던 해 봄 준은 마침내 집을 뛰쳐나가 동경으로 달리고 말았다.

강부인은 크게 노하여

“그놈 불효자식…… 내 자식 아니다! 나는 모른다!” 고 학비 대어주기를 거절함으로써 대항을 하러 들었다.



2. 까치가 우짖더니[편집]

준은 그러나 조금도 곤란을 받지 않았다. 외조모가 속살로 학비를 보내주었었다.

속살로라고 해도 이내 강부인이 그 눈치를 알아채었고, 그래서 번연한 비밀이었다.

강부인은 친정어머니와 같이 앉으면 간혹가다

“어머니는 무엇이 그리두 살뜰해서 그놈을 학비를 보내주시구 허시우? 눈물이 쑥쑥 빠지두룩 고생을 좀 허게스리, 모른 체허시들랑 않구서……” 하고 탓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다치면 노마나님은 천연덕스럽게

“학비는 무슨 학비어?…… 저업때 한번은 하두우 보구 싶어서, 생각난 길에 모치떡이나 사먹으라구 돈 겨우 백 냥인가 붙여준 걸!” 하고 둘러다 대는 것이었다.

그 말에 강부인은 웃으면서

“백 냥인다치면 그 녀석 자그만치 한 섬에치는 모치떡을 사먹었을 테니 외할머니 생각두 한 섬에치는 해드렸겠수!” 하고는 그 이상 더는 알은체를 하거나 참견하려고 하지를 않았다.

노인의 귀한 외손자놈 이뻐하고 위하는 재미인 것을, 부지없이 들어서 말릴 수도 없거니와 말릴 일도 아니었다.

또 그렇게 되기를 잘한 노릇이었다. 요행 저의 외조모가 계셔서 얼른 나서서 가로맡아 주었기망정이지 만일 계제가 그렇지 못했더라면, 크게 노하여

‘그놈 불효자식…… 내 자식 아니다! 나는 모른다!’ 하면서 그 대단하던 기운 다야 속절없고, 한 달이 못하여 슬며시 학비를 보내주고라야 말았을 터이니 말이다.

정녕코 부모 된 사람으로 보아 성화스런 자식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절대로 미운 자식이거나, 하찮고 마음에 범연하고 한 자식은 아니었다.

말로는 곧잘

‘그놈이 눈물이 쑥쑥 빠지도록 고생을 해야 하느니라.’고 큰소리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준이 가령 어쩌다 무순 고생이 되었던 정말로 고생을 한다고 하면, 그때에 짜장 눈물이 쑥쑥 빠질 사람은 도리에 강부인 자기 자신이었지 별수 없었다.

실은 고생까지고 갈 것이 없고, 전자에 더 가까이서 마침 그것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놈이, 꼭 그놈이 돈이 없었어야만, 꼭 돈이 없었어야만 내게 와서 항복을……”

장단맞추듯 꿍꿍 절구질을 하면서 마악 또 이렇게 넋두리는데(그것이 벌써 가슴속으로부터 아들 아쉬운 정이 간절히 솟아오르고 있는 사실을 자기도 모르고 은연중 말하던 것인데) 그럴 때에 별안간, 집 뒤 울안의 쭉나무에선지, 끼약끼약 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움칫, 그 소리에 강부인은 놀라는 듯하더니 얼굴이 차차로 흐려들다가 마침내 후유 한숨을 지으면서

“아무도 반간 사람 올 사람 없다.”

시름없이 목안으로 갈앉아 들어가는 음성이다.

그러고는 두어 번 그대로 절굿대를 드놓는 듯하더니 인하여 손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서 머언 하늘을 본다.

겨울 하늘은 흐리지 않았어도 어설퍼, 가뜩이나 보는 사람을 마음 막막케 한다.

멀리다 자녀를 두고 불현듯 보고 싶은 생각이 날 때, 그 부지할 바를 모르는 정을 어머니들은 흔히 ‘미칠 듯 보고 싶다’는 말로써 하거니와 강부인이 정히 지금 그런 마음이었다.

안타까이 그렇게 보고 싶은 깐으로 하면 선 자리에서 그대로 부르르 달려가기라도 할 것이었다. 그러나 아침에 조동하여 자동차r13;버스를 타고 다시 차를 갈아타고 저물게야 당도하는 육백리 먼 길이다. 보고 싶은 그 당장에 만나 보아지지가 않는 먼 길도 먼 길이려니와, 막상 또 허위단심 가서 만난댔자, 그립던 정이나 반가움은 접어놓고 드리단짝

“너 이놈! 죽일 놈 이놈!”하고 사뭇 이렇게 잡도릴 테니, 그리하여 준은 모자가 오손도손 이야기 한마디 나눌 기회조차 가지기를 피할 테니, 오히려 만나러 간 것이 부질없을 노릇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이 번번이 그러했던 것이다.

넋을 놓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강부인은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몹쓸 놈! 야숙한 놈!……”

입을 비죽비죽, 그러나 필경 끔쩍하는 눈에서 닭의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기쁨을 와락 그대로 기뻐하며 노함을 와락 그대로 노하되 주저를 하거나 참지 않음과 일반으로, 슬프면 와락 그대로 슬퍼해버렸지 꿀꺽 그것을 삼키는 성미도 체질도 아니었다.

“이 세상에 저, 이 세상에 저 하나 에미 나 하나, 그러구 제 가숙…… 단 그 셋밖에 누가 또 있다구!…… 몹쓸 놈! 야숙한 놈! 비상보담두 더 독한 놈!”

천하의 여장부도, 무서운 호랑아씨도 속절없고, 연해 메주방아에다 눈물을 질끔질끔 떨어뜨려 제물 간을 치면서, 마침 또 보는 이 듣는 이 아무도 없겠다, 마음 턱 놓고 목멘 소리로 서러운 사설이 서리서리 풀어져 나오려던 참인데, 그러자 대문 밖에 중이 와서 동냥을 청한다.

“동냥 안 내!”

강부인은 순간에 얼굴이 험악하여지면서 버럭 쏘아버린다.

이 세상 사람 치고 강부인의 제일 좋아하는 게 무어냐 하면 어린애와 병정이요, 제일 싫어하는 게 무어냐 하면 신여성과 중이다.

중도 여느 중은 아니고, 마을로 동냥 다니는 중 가운데 젊은 중 말이다.

송충이처럼 싫어하고 척진 사이처럼 미워한다. 이유인즉은 젊으나젊은놈이 사진육신이 멀쩡해 가지고 무얼 못해, 하필 남의 집 문전문전 돌아 다니면서 비럭질을 할까보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에이 보기만 해두 숭칙해! 능글능글허구 피둥피둥허구!…… 저마안침 지나가기만 해두 무슨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이렇게 일종 육체적인 불쾌를 느껴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수절과부의 관념적인 결벽(潔癖)으로부터 오는 신경성(神經性)의 것일는지도 모른다.

바깥에 온 중은 주인마나님이 그런 편성의 호랑아씨인 줄은 알턱이 없고, 대문이야 번듯하니 크겠다

“동냥 안 내!……”

이 소리 한번으로 곧 퇴각을 할 필요는 없었다.

“아 이에!……”

때댕땡 꽹과리를 두드리면서 멋들어지게 한바탕 내놓는다. 싱싱한 젊은 목소리다.

“………”

강부인은 재차 무어라고 벼락령을 놓으려다 말고 문득 고개를 꺄웃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자세히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가다가

“이 댁 자손이 부귀공명을 누리시고……”

이런 대문도 있고, 또

“수명장수하시고 다남다자손하시고……”

이런 대문도 있는가 하면

“아들을 나시면 호자충신이요, 딸을 나시면 정부열녀요……”

이런 대문도 있고, 그러고 또

“삼천극락 영생불사 연화대에 오르시고……”

이런 대문도 있고…… 아무튼지 제일 좋은 말로써 더할 수 없이 잘되어지이다 하는 축원이었다. 하되 이 댁 자손 이 댁 자손 그러니 준을 두고 하는 축원이요, 준이 받을 복이지 달리 있을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도 귀에 솔깃하고 마음에 안기는지! 그리고 고마운지!

물론 오늘 처음으로 이 집 문전에 중이 동냥을 오고, 염불을 외우고 하는 바는 아니었다. 종종 더러 있었고, 있었으나 강부인은 혼땜을 주어서 쫓기가 일이었지, 통히 귀담아 듣지를 않았을 따름이었다.

‘어느 누가 무엇이 내켜, 내 자식 잘되라고 축원을 할까보냐? 저를 난 제 에미도 때때로 저를 원망을 하고 욕을 하고 하지를 않았더냐!“

‘지나가는 중이 이름도 성도 모르고 아무 상관도 없고 한 내 집 문전에 발길을 멈추고 서서 내 자식 잘되라고 갖은 좋은 말로 축원을 해주니, 세상 그런 고마울 데가 있을까보냐?’

메주방아 찧던 절굿대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으면서, 거기 있는 안반보다 별로이 작지는 않은 뒤를 요란스럽게 내저으면 급히 달려가는 곳은 광이다.

뒤주를 열어젖히고 두 말도 넘겨 드는 옹퉁이에다 부우연 백미를 퍼억퍽 됫박으로 퍼담는다. 아낌없이 퍼억퍽 퍼담는다. 마음에 내키는 노릇이기도 했지만 손이 본시 그런 복성스런 손이다.

한동안 퍼담아 수북하게 쌀이 찬 옹통이를 불끈 치켜들고 쿵쿵 대문밖을 향해 달려나간다. 차면 안으로 들어서던 귀덕어멈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이 떡 벌어진다. 중이 동냥을 왔는데 마나님이 시주를 퍼내니 말이다.

“마님 웬일이세유?”

“내가 죽을려나보이!”

놀라하기는 귀덕어멈만이 아니다.

중이 동냥을 오면 쌀을 말쌀로 퍼내던 것은 벌써 이야기에나 남은 옛 풍속이다.

일전박이 몇 푼 아니면, 기지개 쓰고 많아야 십전박이 한푼을 꽹과리 복판에다 땡그랑 떨어뜨려 주는 것이 요새날 그 공정가격보다 더 엄한 동냥시세다. 하되 그것이 백이면 아흔아홉까지가 마음 가운데 어느 한구석 중을 r13;중이라는 것을 통해 부처님을r13;존경할 줄 아는 신앙의식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요, 신앙의식은커녕 불도(佛道) 즉 종교에 대한 호의조차도 전혀 가짐이 없고, 단순히 그저 보통 걸인에게(그도 졸리기 성가시어서) 동냥을 주는 이와 추호 다름없는 뜻이요 태도요 하던 것이다.

뜻과 태도야 가령 어떠했거나, 그리고 약소야 하거나 말거나 그런대로 동냥을 주는 집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

믿지도 아니하는 예수를 꾸어다r13;신앙을 팔아가면서r13;그 박하고 실례스런 시주나마 내기를 피하는 부적으로 두고 쓰는 집을 왕왕이 본다.

그야 기독교의 신자의 집이란다면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라는 말로써 불교엣 사람인 중에게 동냥 주기를 거절하는 것도 괴이찮은 일일 것이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유난히 배타적이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모두가 사교요 이단인 것이다. 따라서 불교도 기독교가 보기엔 별수 없이 사교요 이단인 것이다.

일종의 결벽이랄까, 기독교의 이렇듯 배타적인 성격의 옳고 그른 것은 딴 문제요, 근본 성격이 그러한 이상 남을 용납하지 않게 되는 것은 피치 못할 필연할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일반이 기독교 신자의 집 문전에 중이 와서 동냥을 청하는 마당에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 하는 것은

‘우리 집은 예수를 믿는 집이라 중한테 동냥을 주지 않소’ 이런 말이요, 그 뜻인즉은

‘예수를 믿는 우리 집에서 어찌 이단인 중에게 시주를 하며, 써 사교인 불교에 동의를 할까보냐?“는 뜻이랄 수가 있다. 그리고 그가 착실한 기독교인이면 착실한 기독교인일수록 가장 진정에서 우러나는 가장 정직한 말일 것이다. 동시에 그에게는 동냥을 주는 돈이면 돈 쌀이면 쌀 그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이단에게 시주를 하지 않는 것이지 가난한 사람에게 동냥을 주기가 아까와서 주지 않는 것이 우선 아니다.

거기에 대하여 중은 중대로 대개 보면 떳떳하다.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 하게 되면 다시 두말 않고 돌아선다. 치사한 이교도의 시주를 받을 며리도 없고, 이교도를 발우너 축복할 며리도 없고 하다는, 역시 결벽이요 자존일 것이다.

개중에는 물론

‘그렇다면 만날 가야 동냥 나올 싹수는 글렀다!’ 싶어 그래 얼른 단념하는 중도 없진 않으리라. 또 그런 거절을 당코도 여전히 서서 염불을 외우며 조르는 중도 있을 것이요, 그러다가 귀찮다 못해 걸인에게 보내는 동정 셈 치고서,그러나 모멸하면서 몇 푼 던져 주는 걸 너풋 절하며 받는 중도 또한 없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러한 중은 어떠한 파계(破戒)보다도 가장 부끄러운 중이요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중일 것이다.

대개는 웬만큼 중다운 중은 역시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라는 소리가 나오기가 무섭게 곧 염불을 거두고 돌아선다.

이 남은 종교와 종교가 각기 순결과 존엄을 위한 신앙상의 실로 엄숙하고도 점잖은 말이요 태도요 효과요 한 것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야속히도 일전박이 몇 푼의 동냥 줄 돈을 아끼느라고 믿지도 듣지도 못한 예수이면서

“우리 집은 예수 믿어요!” 하고 표절을 하여 중을 쫓는 부적으로 이용을 하는 것이다.

적어도 부처님의 이름으로 시주를 청하는 중을 예사 걸인과 한가지로 대접하는 것이라든지 더우기 몇 푼의 돈을 아끼기 위하여 그 효과적인 주문을 외어 중을 쫓는 것이라든지…… 이런 짓은 매양 좀스럽고 박절한 백성이나 할 짓이지, 어질고 좋은 백성, 그리하여 존경스럽고 복받을 백성은 결코 아니하는 짓이다.

왕왕이 일부 백성 가운데 그 정신생활상 영양불량(營養不良)한 시대를 겪은 끝이면 그렇듯 상서롭지 못한 현상이 나타나는 수가 있다.

하기야 중이 오면 흔연히 시주를 할 줄도 알고, 입으로 염불을 외우고, 절을 찾아가서 부처님을 위하여 불공을 드리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일부에서는 야소교를 믿어 기도를 올리고 찬송가를 부르며 아멘 소리를 입에 내는 사람들도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백에 한두 사람을 말고는 전부가 타산적인 욕망을 이루자는 노릇이지, 진정으로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위하여 섬기는 마음은 아닌 것이다. 부처님이나 하나님은 아무래도 좋단다. 중에게 시주라도 하고 부처님께 불공이라도 올리고, 또는 교회당에 나아가 기도라도 드리고, 아멘과 찬송가라도 부르고, 그리함으로써 사후의 안락과 호강을 장만하면 그만인 것이다. r13;이것이 그러므로 물질r13;돈을 들여 부처님의 환심을 사서, 혹은 하나님께 아첨을 하여 극락세계면 극락세계, 천당이면 천당을 도모하려는 실로 매수행위에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일변으로 무당 판수를 불러다가 돈과 음식을 괴어놓고 귀신을 달래어 부자 되고 벼슬하고 자식 많이 낳고 오래 살고 하게 해달라고 비선을 하는 것과도 그닥 다름없는, 천박하고 무지한 미신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커다란 마나님이 큰 옹퉁이에다 옥 같은 백미를 수북이 담아 들고, 쿵쿵쿵 내닫는 광경을 본 중은 처음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랬고……

그 다음에 문득 절에서 듣던 옛이야기의 시절로 돌아간 듯 자못 감개무량함이 있던지, 부지중 두손 합장코 이마를 숙이면서 조용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고 중얼거린다.

“어느 절 시님이요?”

강부인은 쌀 옹통이를 내려놓고는 일변 치마끈의 귀주머니를 풀면서 묻는다.

“미륵사의 중이올습니다.”

“자 옜소!”

강부인은 주머니를 뒤져 집히는 대로 두어 장의 일원 지폐를 쌀 위에다 꾹 묻어 놓아준다. 그러면서 비로소 찬찬히 중의 행색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본다. 송낙 쓰고, 먹장삼 입고, 염주와 단주를 각기 목과 팔목에 걸고, 미투리에 누비버선을 신고, 크막한 바랑을 해서 지고, 두루 이렇게 요새날 보기 귀한 썩 중다운 중으로 차렸다.

그 중답게 차린 차림새와 겸하여 역시 중답게 겸허하고도 조용스런 언동이 강부인으로 하여금 재래 일반 탁발승에게 덮어놓고 느끼던 불쾌감을 저으기 잊어버리게 하던 것이다.

“바랑이나 넉넉허우?”

“네에!”

중은 바랑을 벗어 푼다.

“아따 그 나까오루래드냐 허는 벙거지에다 고동색 세루 두루마기랑 뺏데린 시체중들은, 바랑이나 아니나 쌀 서 되두 못 받을 걸 시늉만 해서 지구 다니게 말이요!”

“………”

중은 조심히 조금 웃을 뿐 저 할 일만 한다.

“짊어지구 절까지 올라가기 무겁구 성가시다구, 저 무엇이냐 주막집이다 주구서 막걸리나 실컷 자시구 헐 테믄야 차라리 돈으루다 시줄 허구?”

“온 그럴 리가 있겠읍니까! 다아참 농사지서서 그 소출, 그 쌀루 내시는 건 돈으로 시주하시느니보담 지극한 정성이신데요!…… 한 톨두 함부루 않구 이대루 올려다가 부처님께 바치겠읍니다!”

“오온 별 신통헌 시님 보겠어!”



3. 버젓한 안해가 있는 몸이[편집]

덕수궁 옆으로 서소문정 복판에 있는 a336;a336;아파트.

단층 벽돌 어두컴컴한 복도를 다 지나, 딴채로 올라가는 세 단짜리 층계 앞에 다다르면 바른편으로 매엔 끝엣방이 준의 거처다. 복도가 어두워와서 대낮에도 성냥불이나 켜대지 않고는 제팔호실이라는 패쪽과 그 밑에다 붙여둔 임준(林俊) 두 글자뿐의 낡은 명함을 알아볼 길이 없다. 준이 동경으로부터 돌아온 것이 그럭저럭 사오 년인데, 바로 그 해에 이방을 빌려 들면서 붙인 명함 한 장이나 엔간히 낡기도 했을 것이다.

(39a374;46페이지는 缺)

복도는 어두워도 방은 들어서면 남쪽과 서쪽으로 유리창이 나고, 그 밖이 빈터요 해서 환히 밝다.

뒷벽 앞으로 침대가 놓이고, 머리맡 저편 창 아래로는 차탁자와 찻장이 놓이고 남창 밑으로는 소파가 놓이고, 소파와 침대 사이의 공간에다 사무탁자를 두 개의 육중한 안락의자를 곁들여 배치하고, 양복장과 책장은 드나드는 문안 좌우쪽으로 각지 벌려놓이고……이렇게 거기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아파트살이의 홀아비 세간이요 그 차림새다.

세간도 그렇거니와 방안 역시 홀아비 살림답게, 책이며 옷이며 찻그릇하며가 여기저기 함부로 홑어져 있고 구석구석이 먼지가 수북하다.

석양 무렵이었다.

준은 사무탁 앞으로 안락의자에 가 걸터앉았고, 탁자 위에는 해어져빠진 사본(寫本)의 춘향전이 중간쯤 펼쳐진 채 놓여 있다. 오늘은 온종일 이걸 들이 파고 있던 차에 조금 아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던 것이다. 오늘은 온종일 이걸 들이 파고 있던 차에 조금 아까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던 것이다. 손님은 소파 한편 모로 폭신 파묻혀 앉아서 한가로이 담배를 피운다. 태평(吳太平)이라고 대학 때부터 절친하던 친구다. 원은 서울 태생이었으나 영남으로 낙향을 하여 지금은 통영(統營)서 서점 하나를 차려놓고 다른 것도 하고 하면서 지내는 중이다. 모처럼만에 너펄거리고 올라달았던 것이다. 대륙시찰을 가는 길이라면서.r13;

피차간 적조했던 인사를 비롯하여 이런 형편 저런 소식 진진한 이야기가 연해 풀려나왔고 하다가, 퍼뜩 어디만치선지 말이 잠깐 사이가 뜬 채 잠잠하고 있던 끝이다.

방안은 스팀이 들어오니 않아서 겨우 견딜 만큼 싸늘하다. 그런 방안을 서편 유리창으로 여위디여윈 저녁 햇살이 가물가물 꺼질 듯 사라질듯 을시년스럽게 비쳐든다.

하도 그 을씨년스런 햇살에 태평이, 그러자 무심코 주의가 가서 새삼스럽게 어깨를 오싹하며 추워한다. 그러다가 눈을 스팀으로 돌리면서

“대체 아파트 명색이 이리 춥어 어찌 사노?”한다. 억양과 말이 다 같이 영남 사투리가 제법 섞인다. 그 구수한 영남 말투가 넓죽주름하니 호인(好人)답고 야취(野趣) 있는 그의 생김새허며 표정, 음성과 꽤 잘 어울려 보인다.

이런 말하자면, 털털하고 시끄럽게 생긴 태평과는 전혀 반대로, 준은 소위 선비 타입의 맑고 가냘픈 체집이요 겸하여 명상적인 기사이어서 마주 앉았는 두 사람은 대조하기 매우 재미스럽다.

준은 빙그레 웃으면서 태평이 사투리 써서 말하는 입을 건너다보고 있더니

“자네두 인전 영남 사람이 건진 돼 가이그려?”

“허허허!……”

태평이 그러고서 다시

“멋이냐 전기나로라도 하나 좀 사놓든 않고!”

“몰라서 안 사놨겠나마는……”

“그런데?”

“명색이 문학께나 한다시구 남 보매 핀둥핀둥 놀구 먹는 배 다름없는 사람이, 호강은 호강대루 하러 들어서야 민망한 노릇일뿐더러……”

“허어! 우리 준이가 사람 된 소리 하는구나 야!”

“그런 말이 났으니 말인데, 난 도루 농부나 되러 갈까봐?”

“농부? 고향가서? 호랑마나님한테로 가서?”

다급히 이렇게 몰아쳐 묻는 태평은, 필요 이상으로 놀라는(보다도 혼란한)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그는 마악 또 사촌누이 나미(糯米)의 얼굴이 몇번째 또다시 눈앞에 얼찐거렸다.

준은 머리를 두어 번 흔든다.

“가직한 안양(安養)다 밭이나 몇천 평 사가지구서…… 이런 것 저런 것……”

“으응……”

태평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더니

“그럼? 살림은? …… 아무래도 가정을 가져야 않나?”

준이 막상 농부가 되겠다고 하는 데 대하여 태평으로서 응당 의견이면 의견, 비판이면 비판이 우선 없질 못했을 것이로되, 본시 좀 덤비는 사람이라, 종종 그렇게 선후나 인사를 곧잘 잊어버리곤 하던 것이다.

“가정이라?…… 쯧, 반드시 그러랄 법두 없겠지!”

한참만에야 준은 허전한 음성이면서 혼잣말같이 한다. 눈은 유리창 너머로 먼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다. 오랜 적부터 그는 무시로 하늘 바라다보는 버릇이 생겨졌었다. 담배나 그런 기호품(嗜好品)처럼 그는 하늘 바라다보기를 즐겨한다. 심중에 번뇌가 일 때도, 막막하든지 침울한 때도, 혹은 기쁜 생각을 하는 때도, 또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때도 으레 그는 하늘을 본다. 보고 있느라면 마음은 그때그때 따라 무엇인지 모르게 차악 가라앉아지고 위안이 되던 것이다.

태평은 준이 방심해 앉았는 옆볼을 이윽고 치어다본다.

훨씬 그러다, 입을 열어 천천히, 그러나 단정적으로

“일이 미상불 계제 좋게 잘 되기는 잘됐네!…… 기회가 마침 좋네!”

“………”

“허기야 모처럼 모처럼 용기를 내노라고 낸다는 게 하필 농부가 될 궁리라니 좀 미흡하기는 미흡하지마는, 한편 또 달리 생각하면 노상 그렇지도 않아! 자네 같은 문학이나 하는 사람한테다 경세적(經世的)인 그런 패기를 기대하는 건 오히려 무리한 일이겠으니말이지……”

“………”

“아무튼 농부 해롭잖아! 불가할 거 없어!…… 또오 임준이가 어떤 고집인데, 누구라 지끔 와서 그걸 만류하기로손 썩 귀담아 듣자 할 리도 없는 것…… 그러니 그걸랑 불문에 붙이기로 하고…… 그런데 말야…… 계제가 그쯤 된 이 계제에 말이지 응?”

“………”

“좌우간 이번 기회에 가정문제도 어떻게든지 구처를 내야 할 게 아닌가?”

“막설! 막설!……”

준은 급히 손을 내저으면서

“그런 갑갑한 이야길랑 막설하구…… 자아……” 하고 벌떡 일어선다.

“방두 춥구 허니 나가세. 오래간만에 온대지방서 온 나그네를 너무 얼려서야 도리가 되나! 나가서 저녁이나 모처럼 같이 먹구 할 겸……”

태평은 시계를 꺼내 들고 본다. 다섯시가 지났다.

“밥은 같이 묵을 시간이 없고오……”

“왜?”

“다섯시 반에 꼬옥 만나자 한 약속이 있다…… 낼 다시 만나서 밥도 묵고 술도 묵고 하자!……하고오……”

“낼은 낼이구!”

“아니다!…… 그리 말고 게 좀 앉자!”

“앉어서 이야기하는 새 나갔으면 도리 거 아냐?”

“시간이 없어!…… 낼은 그러고 자네가 싫다 해도 불가불 나는 자네를 만나야 할 일이 있으니 대접을 하겠거든 낼 해주고오……”

“글쎄 낼은 또 낼 아냐?”

태평은 그러나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겅중 뛰어서 밑도 끝도 없이

“우리 냄이 알지이?” 하고 묻는다.

준은 느닷없이 그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뻐언히 태평을 건너다본다.

“우리 냄이 몰라?”

“무어? 냄이?

“응!”

“그런데?”

“몰라?”

“누굴 가지구 그리는 거야, 대관절?”

태평은 고개를 까웃

“우리 냄이…… 냄이는 애명이고, 나미 말야…… 한번도 못 봤든가?”

“이런 답답!…… 덮어놓고 우리 냄이만 찾으니, 꿈에 떡 먹구서 그 떡 생시에 조르는 푼수지!……”

“으으 참 그렇든가아!……”

태평은 벌쭉 웃으면서, 그래도 고개는 한번 더 꺄웃한다.

준은 그제서야 문득, 전자에 태평에게서 냄이라든가 무어라든가 하는 이름의, 가까운 일가 누이가 있다는 것은(그것도 직접이 아니고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간접으로 말이 나와서)한두 번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이 생각되었다.

동시에 태평이 무슨 의사로 졸지에 그런 말을 꺼내는 뜻도 대강 짐작을 하겠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상히도, 진작에 한번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그 냄인지 나민지라는 여자, 태평의 몇촌 뻘 누이에게 대하여 더럭 흥미가 솟는 것이었었다.

전고에 없는 일이었다. 일찌기 그는 어떤 한 여자에게 대하여(모르는 여자는 고사하고 아는 여자라도) 이대도록 부전스럽고 엉뚱한 흥미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여자와의 굄이 전혀 없던 것은 물론 아니다. 누차의 전험(前驗)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흐리멍덩하고 시원스럽지가 못했었다. 매양 소극적이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인하여 늘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이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 더우기 의식적으로

‘이래서는 안된다. 나는 그럴 사람, 그럴 형편이 못된다.’ 하고 마음의 조갑지를 다물어 경계하며 삼가기를 마지않았었다. 자연 연애다운 연애랄 것이 제법 어우러질 수가 없을밖에 없었다. 그러던 사람이 친구의 누이의 이름만 듣고서 흥미가 솟아 별 생각을 다 하고 있으니 거짓말 같은 말이었다.

준은 연방 생각이었다.

퍽 총명하고 사랑스런 여자려니 싶었다.

그러나 이런 막연한 상상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어떤 또렷한 모습이 욕망되었다.

‘이마가 밝고, 그 밝은 이마에 가 총명이 어리었다.’

‘영롱하면서도 다분히 암상이 들어 있는 눈……’

‘품격 높은 코……’

‘갸름한 얼굴이 하관이 빠르고 입이 작다. 턱도 작다.’

‘날씬한 체집이 중길을 벗지 않는다. 해물의 은어처럼 발랄하다.’

‘스물한살 아니면 두살……’

‘한번 고집을 쓰기로 들면 지렛대로 떠밀어도 움쩍 않는다. 한번 성깔이 나면 불같이 맹렬하여 손도 댈 길이 없다. 그러나 여느때는 끔찍이 사근사근하다. 능히 사리를 밝힐 줄 안다.’

순식간에 골고루 이렇게 성격과 용모를 자상분명히 갖추어가지고 여자가r13;나미가 선연히 머릿속에 가 들어앉는다. 이 여자는 실상 준이 작품 가운데 항상 쓰고 싶어하던, 가장 그의 좋아하는 모습의 여자였다. 즉 창조한 상상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좋아하기는 하면서도 너무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수공적이어서ㅡ 인간감(人間感)과 현실감(現實感)이 없다하여 실지로 작품의 인물은 삼기를 피했었다.

가장 이상적인, 가장 좋아하는 여자를 그런데 현실(?)에서 발견한 것이다. 여간 반갑고 즐거운 게 아니었다.

준은 그와 마주 않아서 이야기를 한다.

둘이 나란히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같이 차를 타고 여행을 간다. 차에서 내려서 크고 호화스런 배를 갈아탄다.

꿈의 세계에서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동안이 겨우 몇초도 못 되는 시간이었다. 준은 태평이 어깨를 눌러 의자에다 주저앉히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퍼뜩 정신이 들어가지고 보니, 준은 제가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나미와(말하자면) 연애를 함빡 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 별……’

그는 하마 이렇게 두런거릴 뻔했다.

맹랑도 분수가 있고 치기(稚氣)도 나름이 있지, 눈 멀거니 뜨고 무슨 다 의젓지 못한 짓인가 싶었다.

그러나 일변 그러면서도 한번 일기 시작한 나미에의 흥미는 막상 갈앉지를 않는다.

머리는 나미의 생각으로 가득찼다. 두루 궁금하여 태평이 어서 더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하고 기다려진다.

“암만해도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자아 대강만 우선……”

그러면서 태평은 도로 소파로 가서 앉는다. 대단한 열심이다. 원체가 그는 호사객이요, 열심하기로 팔자를 타고 난 사람이었다.

“으음……”

태평은 어디서부터 말 허두를 낼 것인가 하여 잠깐 생각하더니

“그 안양으로 가서 농부 노릇 한다는 거 말야…… 아주 확정한 계획은 계획이겠다?”하고 차근히 묻는다.

“실상 아마……”

준의 대답이다.

“토지는 샀나?”

“거간하는 사람한테 부탁부탁 했으니깐…… 적당한 걸루 좀 사게 해달라구……”

“밭을 살 테라고? 무얼 경영할 건데?”

“포도원을 주장으로 해가면서, 걸루다 수지나 맞혀가면서…… 한편으루 특수식량(特殊食糧) 같은 걸 시험두 해보구……”

“으음…… 그런데…… 돈은? 현재로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된다?”

“한 삼만 원……”

“그새 사오 년 동안에 만 원이나 까묵었구나?”

“그런 심이지!”

“문딩이가!……”

“요샌 돈이 조옴 헤퍼야 말이지!”

“그래, 삼만 원 가지고 밑천은 자라나?”

“석수동(石水洞) 근처라면 한 오륙천 평은 살 테니깐……”

“고거 오륙천 평 가지고 무얼 하노?”

“쯧! 모자라두 할 수 없지!…… 지끔 호랑마나님더러 돈 좀 주시요했자 주실 리 만무하구.”

“영 모자란다면 내라도 조금 보태 주구?”

“무어! 영리를 바라자는 노릇이 아니니깐, 그거면 될 거야!”

“그렇다면 몰라도……”

태평은 생각생각 하면서 말을 더 느릿느릿

“아무턴지 농사하는 속에 들어서야 학력도 있고 경험도 있고 하니, 낭패 없이 잘 해갈 게고, 문제가 없을 테지만…… 그런데 말야…… 여봐 준?”

“응!”

“네 말은 결국 다른 말이 아니라, 그때 가서도 종시 가정은 없을 겐가 그 말야! 종시 홀애비로……”

“………”

준은 쓴웃음을 웃을 듯하다 말고, 문득 얼굴을 흐리면서 우두커니 한 눈팔이를 한다.

허왕하나따나, 또 일이 평소의 마음가짐에 비춰 떠떳하고 못한 것은 별 문제로 하고, 방금 나미라는 그 미지의 여자로 하여, 아무튼 가슴 가운데 전에 없는 동요가 인 것만은 사실인데, 그런 상태이면서, 그것과 뗄 수 없는 관련을 가지는 과거 이래의 가정 문제를 아울러 생각한다는 것은, 기존한 가정 문제만을 단독히 생각할 때와도 달라, 안팎 이중으로 막막하고 괴로운 노릇이었다.

“응” 반드시 무슨 도리든지 도리가 있어야 않나?“

태평이 재촉하듯 다시 묻던 것이나 준은 여전 그대로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머언 하늘만 바라다본다.

“여봐 준?”

“………”

준은 담배곽을 손 더듬어다 건성으로 한 개를 뽑아 물면서 그 침통한 기색과는 반대로 남의 말하듯 등한하게

“가정이란 것이야 나한테는 일평생 거주제한구역(居住制限區域)이 아닌가?”

태평은 이 딱한 벗을 무연히 건너다보고 앉아서 잠시 말을 잊어버린다.

준은 담뱃불을 붙여 물고 푸우 연기를 내뿜는다.

“여봐 준?”

“응!”

“내 말 듣고오…… 이 기회 결혼을 하도록 하자구?”

“………”

“응? 준?”

“………”

“여러 말 할것없이 결혼하도록 해애!”

준은 천천히 태평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버젓한 안해가 있는 몸이 결혼을 하다니?”

준의 얼굴은 어쩌면 엄숙한 듯한, 어쩌면 범연 무관심한 듯한, 또 어쩌면 자포적으로 냉소를 머금은 듯한 심히 복잡하여 얼른 포착키 어려운 표정이었다. 정히 그의 마음이 그와 같이 복잡하게 헝클어졌던 것이다.



4. 사실인 것과 진실인 것과[편집]

나미는 오도카니 혼자 앉아서 팔목의 시계만 거듭 보고 보고 한다.

그새 겨우 오분이 가고 다섯시 십오분이다. 아직도 사촌오래비 태평이 오마고 한 다섯시 반까지에는 십오 분이나 남았다. 그 십오 분 동안이 아무래도 어려울 모양 같았다.

아까 조금 전이었다. 오래비 윤평(允平)이 은행으로부터 돌아오는 기척이더니, 마당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 아낙더러

“나마 집에 있지?”하고 묻는 것이었었다.

나미는 건넌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도 뜨악하여 모른 체 잠자코 있었다.

여느때야 밖에서 돌아오면서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도록 긴히 누이를 찾는 오래비가 아니었다. (비단 누이만이 아니라, 물론 누구한테고 아기 자기하게 굴 줄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다 지난번에 남매 사이에 충돌이 있은 후로는 윤평은 마지못해 조석 상대하기는 하면서도, 완구히 서먹거려 하는 기미가(방금 온르 아침까지도) 가시지를 않았었다.

그러던 오래비가 저녁 때 들어오면서 불시로 그다지 긴하게 찾는 것이니 묻지 않아도 번연히 알조였다.

나미는 계제에 마침 태평이 올라오고 했으니 그와 조용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의견도 참작하여, 장차 앞으로의 태도며 거취를 작정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작정이 그렇게 서기까지의 이 하루이틀은 그 문제를 가지고 윤평과 더불어 이러니저러니 좌우간 말을 하기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선 당장 이 시간을 무사히 넘겨야 하겠고, 그러자면 어서 바삐 태평이 당도를 해서 종행간에 만나 저녁도 먹으며, 다른 이야기도 하고 하느라고 두루 겨를이 없어야만 할 것이었다.

옷을 갈아 입고 어쩌고 나느라면, 마악 요 때려니 생각하면서 또다시 시계를 들여다보는데 아니나다를까

“누님 그 방 춘데 일러루 건너오우?”하고 올케가 부른다. 보나 안보나 오래비가

‘나미 좀 불르우.’ 하는 것을 조심성 있고 능란한 올케는 말을 그렇게 바꾸어서 전갈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춥긴 무어가 추우?”

부질없은 줄 알면서도 나미는 한번 뭉개어 보자고 들던 것이나, 뒤미처 오래비가 직접

“좀 건너오느라!” 하는 데는 하릴없었다.

윤평은 마고자 받쳐 솜바지저고리에 대님까지 단정히 매고 아랫목으로 앉아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기름 발라 얌전히 빗어넘긴 머리는 머리카락 한 올인들 헝클어진 법 없다.

이 사람에게서 차림새나 행동사으로 무릇 단정치 못한 것을 찾아내기는 심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말쑥한 수염 자죽이며, 이상히 그 신경적으로 정갈하고도 해사스런 인상이 의사가 아닌 다음엔 갈데없이 계(係)의 주임쯤 가는 은행원이다.

나미는 이 오래비에게서 풍기는 차가움을 오늘이야 말고 유난히 더 느끼면서, 뒷벽 앞으로 가 쪼그리고 앉는다.

“태평이 올라왔드구나?”

“내애!”

괜한 문답이었다.

“건너방이 외풍이 그리 심하드냐?”

“아뇨!”

역시 무의미한 (차라리 무성의한) 문답이었다.

그러고는 또 덤덤하고 한참은 있더니 그제서야

“그래 그동안 좀 생각해 보았드냐?”

“………”

나미는 지금까지 바로 하고 있던 고개를 약간 수그릴 뿐 아무 소리도 없다. 그러나 뺨을 ㅂ룩히거나 하던 것은 아니다.

“응? 좀 생각해 보았어?”

“생각해 보나마나……”

“그래?……”

“접때 하더 ㄴ대루 그 말이지 다른 것 없어요.”

고개를 다시 들고 또렷또렷한 발음이다.

윤평은 발끈 벌써 귀밑때기가 달아올라 새빨갛다. 무론 누가 되었든지 간에 무슨 말이거나 그의 뜻을 거슬려 주는 일이 있으면 금새 곧 발끈하여 귀밑을 붉히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들은 그래서 ‘발끈거사’(居士)라고 그를 별명지어 부른다.

“장군 편에서는……”

발끈거사는 그 발끈 난 성미를 애써 누르느라고 이윽고 담배를 피우고 있더니 강잉하여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는 ㅁ라이다.

“여러 가지루 그럴 사정이 있구 허니 불가불 이번 삼월 안으루, 늦어두 사월 안으룬 예식을 거행해야만 하겠다는 희망야!”

“………”

나미는 들은 숭 만 숭 앉아서 앞문 문살을 속으로 센다.

“그러니 혼인을 아니할 테라면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바이면 가령 저편에서 그런 희망 조건이 없다구 하드래두 수이 어서 식을 치추두룩 하는 게 옳지 않어? 응?”

“그야 그렇죠!”

나미는 여전히 무관심한 태도이면서도 선뜻 이렇게 대꾸를 한다. 의외의 대답(긍정)인지라 윤평은 미심스러이 나미의 옆볼을 짯짯 건너다본다.

“그런데?”

“지금 오빠 말씀 짝으루 기왕 결혼을 하는 바이면 그게 옳아요!”

“………”

속고서는 그새 조금 갈앉았던 성미가 다시 또 발끈하여 귀밑이 도로 새빨개 오른다.

“이애?”

팽팽한 눈살로 누이를 쏘아보면서 버럭 거칠게 부른다.

“말씀허시우?”

“대관절 어떡헐 심으루, 네가 지금 이러는 거냐?”

“무얼 어떡허우?”

“장군허구 결혼 일사를 어떡헐 작정이냐?”

“안직 작정 없어요!”

“작정이 없다니?…… 그런 신의(信義)가 어디 있드냐?”

“신의라뇨?”

“그럼, 신의가 없잖구 무어란 말이냐?”

“내가 누구헌테 무슨 신의가 없우?”

“결혼하기루 약속 다 해놓구서, 지금 와서 아니하려구 드니, 그게 신의 없는 짓 아니구 무어냐?”

“결혼, 하기루?…… 약속요?”

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미는 천천히 그 말을 되받아 뇌면서, 윤평의 얼굴을 빤히 바라다본다.

“누가 누구허구 결혼을 하기루 약속을 허우?”

“장두식군허구 약속이지 누구허구 약소야?”

“착각하신 거 아니우?”

“사람이란 건 남녀노소를 물론하구 죽는 마당에 들어서두 신의를 지켜야 사람값에 가는법야!”

“아직꺼정 장두식씨한테 결혼하기루 약속은 고사허구, 그런 내색두 뵌일이 없어요! 목이 잘러져두요!”

“일방의 당자 네가 의사표시나 공공연한 약속은 했든 아니 했든 지끔 당해선 그런 건 문제가 아니야!”

“그럼?”

“네가 그동안 장군허구 가차이 추축을 해온 것이 사실이지?”

“가차이란 말은 빼시우!”

“그 사실이 장군과 너와 두 사람의 결혼 약속을 무언중에 말한 것이어든! 또 그랬기 때문에 일방의 당자 장두식군을 비롯해서 양편 가정이랄지 친구들이랄지 다아들 너이 둘이는 약혼을 한 것으루 인정을 하구 있는 또 한가지 사실이 엄연히 존재해 있거든! 그러니깐 과거에 네가 의식적으루 결혼 약속이나 의사를 표시하지 아니했드래두 너이 둘이는 약혼이 됐다는 게 움질일 숭 없는 기정사실이 아니냐 그 말야?”

“듣다가 첨 듣는 논법(論法)이우마는…… 그럼 눈으루 보기엔 해가 동쪽에서 떠가지구 서쪽으루 가서 지군 하니깐 지구는 가만히 있구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천동설(天動說)이 옳겠구료?”

“?……”

누이의 그 재치 있는 반박에 오래비는 섬뻑 대답할 바를 모른다.

“허긴 사실이 진실일 경우두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말이우……”

나미는 재차 이렇게 추궁을 (추궁이라기보다도 알아들으라고 설명을)한다.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 어떻게 죄다 진실이우?”

윤평은 끝끝내 몰리고 말진 않는다.

“네가 말하는 사실과 진실의 구별은 단순한 이론이;지 사람이 실제 생활을 해가는 데 들어선 진실이야 어디루 갔든, 사실이 으뜸인 걸 어떡허니? 사실이 가찹구 사실이 고맙구 또오 사실이 무섭구, 그래서 온갖 것을 사실이 좌우하는데야 어떡허니?”

“생활정신이 그렇게 순수하들 못하니깐 오빤 만날 은행원이죠!”

버르장머리없는 말버릇은 말버릇이었으나 무슨 적의를 머금은 독설은 아니었다. 배시기 웃는다.

윤평도 고소를 다 한다.

비교적 정이 도탑진 못한 그들 남매였었고 겸해서 방금 그와 같이 서로들 성정을 내어 말다툼을 하던 끝이요 했건만, 그러다가도 어느새 또 저절로 풀어져가지곤 흉허물없이 굴고 두루 그럴 수가 있는 것이 매양남 아닌 동기간의 동기간다운 즐거움이리라.

험하고 서먹서먹하던 기운이 훨씬 가시고, 윤평은

“별수 없느니라!” 하면서 막상 그다지 알뜰살뜰한 구석은 없어도 안색이랄지 음성이 한결 안온하며 소탈스럽다.

“느인 아직 철이 들질 않구 세태가 무엇인지 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니깐 바루 그렇게 순수한 걸 찾구 진실을 떼메구 나서구 하지만, 너두 장차 인제 네 모가치의 실제 생활을 해야 할 날이 좌우간 불원했으니 그땔 당해 보렴? 사실과 거리가 먼 진실, 사실과 타협할 수 없는 진실, 그런 진실은 다아 주체스런 꿈이란다!”

“그래두 말이우 오빠? 아직꺼정은 팔팔한 기재(氣槪)가 어디 그렇수? 순수허구 싶은, 진실을 따르구 싶은 그런 욕심 그런 용기가 벌써버텀 없어지구 말아서야 무엇에 쓰우?”

“기집아이가…… 시집가서 살림살이허구ㅜ 자식 낳구 애미 노릇허구 해야 할 사람이 기개니 용기니 다아 주저넘은 소리야!”

“온 참! 결혼생활, 어머니 생활엔 진실허구 용기 있구 허믄 못쓰란 법두 있우?”

“암만 그러두 싶어두 그래지질 않는걸! 진실 용기 기개 순수 죄다 천리 밖으루 달아나구 마는걸!”

“안될 때 안도리망정이래두 지금 버텀 미리서 자겁할 건 무어 있우?”

“네가 어느 정도루 총명한 것만은 나두 모르는 배야 아니다! 해두 사람이 남녀간에 총명하다는 것허구 영리하다는 것허군 판히 다른 거다! 총명하기 때문에 되려 영리하들 못해서 큰 실퍄나 불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얼마나 있길래!”

윤평은 잠깐 말을 끊고 유심히 누이를 건너다보다가

“넌 더구나 승미가 유난하지 않으냐? 여자의 승미루 너무 지나치게 불같이 맹렬하단 말야! 그런 승미를 대사를 당해서 파탈이 생기지 않두룩 잘 누르구 조종허구 하자면 아무래두 너한텐 영리한 게 필요하니라! 단순한 총명보담두.”

무심히 하는 말이요 듣는 편에서도 예사로이 귀넘겨 들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일후 어느 고패엔 가서 나미는 이 말이 문득 생학힐 날이 있을 것이다.

마침 밖에서 손이 찾는 소리가 들렸다.

식모가 나갔다 들어오는 기척이더니 윤평의 아낙이 윗문을 열고 고개만 들이면서

“장두식씨 오섰어요!” 하는 내통이다.

“응, 일러루……”

윤평은 천연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러고는 나미더러 이른다.

“좌우간 너두 좀 만나보아라!…… 아침에 당도해서 곧장 송파(松坡) 현장으루 갔었는데 아마 너허구두 만나기두 할 겸, 게서 유하지 않구 일단 회정해 왔나보다.”

송파의 현장이란 윤평이 경영하는 사금광을 이름이다. 경영 이짜는 그러나 말뿐이요 재력이 달리어 흐지부지하고 있는 형편인데 장두식ㅇ르 출자자(出資者)로 끌어들이는 운동이 방금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은 바쁘다고 엄살해싸면서도 태평은 좀처럼 그 무거운 밑을 들지 않는다.

“이혼이 노상 불가능한 건 아니렷다!”

“글쎄……”

준의 덤덤한 대답이다.

“꾸준히 서둘러 오기는 서둘러 왔지!”

“………”

준은 말없이 고개만 가로 흔들고.

“그럼?”

“동경서 돌아오든 그 무렵부턴 일체……”

“서둘지두 안했다?”

“응.”

“건 어째?”

“………”

“단념인가? 영 가망이 없든가?”

그러면서 준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뒷짐 지고 고개는 숙이고 오락가락 거닐기 시작한다.

태평은 끌끌 혀를 차면서 지천하듯

“제이 문제고, 근대 와?”

“그러잘 며리가 없어!”

“며리?”

“명색이 장갈 든답시구 남의 집 귀한 규수를 데려오지 않었나? 내 의사든 아니든 간에 나라는 인위루 해서 내 집엘 내 안해루씨 그 사람은 온 것이니깐 결국 데려오기는 내가 데려온 거……”

“………”

“데려다 놓구서 손목 한번 잡은 일 없이 이십 년!…… 이십 년이요 그 사람은 낼 모리가 마흔! 곱다시 처녀루 마흔 살! 세상에 그 이상 원통할 노릇이 있을 리가 있나!”

“………”

“남을 청춘에 죽게 했다면 오히려 선량한 편이지! 산 채루 핝혀두구서 이십 년을 처녀루 늙혀 낼모리가 마흔이라니 잔인하다거나 야숙하단 말쯤 가지군 설명이 되질 않구!”

“………”

“그런 죄가 있나! 다시 없을 큰 죄지!”

준은 태평이 앉아 있는 앞에 가 바싹 발길을 멈춘다.

“내 죄가 크지?”

“크지!”

태평이 고개를 끄덕하면서 대답하던 것이나 준은 미처 기다리지도 들은 체도 않고 어느새 도로 돌아서서 뚜벅뚜벅 다시 걷고 있다.

“크구말구!…… 항차 그 죄만 해두 한량없이 크거든, 그 위에:250; 이혼을 하다니!……”

다시 걸으면서 혼잣말로 거기까지 ㅁ라하는 것을 태평이 급하게 가로막으며 강경히

“그러니깐 이혼을 해야지!”

“이십 년 소박을 하구서 처녀루 늙히구서 사십이 다 된 사람을 이혼을! 쫓기까지 해? 이중으로 죄를 져?”

“이혼을 않는 거야말로 이중의 죄가 되지, 단연!”

“단연?”

“단연!”

“………”

준은 주춤 멈춰 서서 태평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 설명을 하란 뜻이다.

“자네 말 짝으로 남의 집 귀한 규수를 장가든다고 데려오지 안했나?”

“그래서?”

“손목 한번 잡지 않고 처녀로 늙히지 안했나?”

“그래서?”

“앞으로 영 그 공방이 풀릴 여망은 없지 않은가?”

“아마도!……”

“없지?”

“없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해방을 시켜주는 게 옳지 않은가?”

“해방을?”

“시켜 주어야지!…… 그 부인도 인간 세상에 참례했다가 늦게나마 한 세상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자네가 그 부인한테 깊은 동정을 기울이고 있는 이상 그 부인이 인제부터라도 새 방면으로 행복을 개척한다는데 이의가 있을 까닭이야 없겠지?”

“그야 물론!”

“그러니 해방을 시켜 주어야 할 게 아닌가?”

“이혼을 해라 그 말이었다?”

“다른 사람, 좋은 사람 만나가지고 살게코롬……”

준은 쓸쓸히 미소하면서 고개를 흔든다.

“자네 같은 사실주의(寫實主義)라면…… 순수보다두 통속을 위주한다면……”

“와? 어째서?”

태평이 성급하게 묻는다.

준은 담배를 새로 붙여 물고 천천히

“첫째, 그런 고풍(古風)의 여자루, 이혼을 당하든지 혹은 과부가 돼가지구 쉽사리 팔잘 곤치는 예를 보았나?”

“드문 건 사실이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또오, 막상 팔잘 곤쳐서 새사람을 만난다 치드래두 좀처럼 행복되기란 어려운 것…… 첩경 남의 첩더기나 가지기루 들어가서 신세 거들내기가 마침이구……”

“하따 그 사람 칠월에 들은 머슴이 쥔네 아씨 배속곳 걱정하기라드니 그 소심머리스런 건 여전하고만? 저 천장 무너질까 버서 밤에 어찌 눈은 감고 잠 자노?”

타박을 듣고도 준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면서 빙긋이 웃을 뿐,

“그러구저러구 간에 그런 사람은 우선 이혼을 당한다는 그 사실이 죽음보다두 무엇보다두 더 두렵구 싫구 슬푸구 한 일이어든!…… 백번 팔잘 고칠 수가 있구 만번 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서 호랑이 발꿈치까지 치렁치렁 늘어지는 생활을 하게 된달값이라두 역시 그런 사람은 이혼당하지 않는 편이 나은 줄 여기거든! 이십 년 소박을 맞어왔을망정 평생을 장차 그대루 마칠지언정 제발 이혼만은 당하지 말기가, 쫓겨가지 말구서 소위 그 집 귀신 노릇을 하기가 소원이어든! 그것이 차라리 행복이요 절망스런 자랑이어든!”

“우리 준이 서방님의 그 선량 하나만은 내 언제나 가상히 여기지 않는배 아닐세! 그러나 부디 그런 공상적 독단(空想的獨斷) 켸켸묵은 인도주의 말끔 청장 내구서 어서 바삐 장가가게 해!”

“우리 집 호랑마나님 말씀따나 자네두 날더러 첩을 얻으란 말인가?”

“독신으로는 기껏 철이 나가지고 무얼 좀 해보겠다고 농부가 되네 어쩌네 하는 것도 다 무의미해! 독신은 반쪽 사람인데 하기는 무얼 하노? 자네가 푸죽은 반쪽 사람으로 언제까지고 있는 걸 보고 말 수가 없어! 단연코 용서 안할 테야!”

“이거 큰 떼거지 만났군!”

“가장 좋은 도리는 그 부인을 모셔오는 게 가장 좋은 도리지만…… 어때? 역시 절대 불가능인가?”

“내가 발광이 돼두 상관없다면……”

“그럼 여러 잔말 말고 다시 결혼을 해!…… 결혼을 하도히 이혼을 않고하면 이중결혼이요 첩질이니깐 우선 이혼을 하는 거야!?

“………”

“이혼이 수이 안될 누치거들랑 연애버텀 불이 번쩍 나게시니 한바탕하는 거야!”

“………”

“연애를 해서 열이 펄펄 올라서, 둘이 못살면 죽을 지경까지 이르러봐? 당장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혼을 해치우지 않나!”

“허! 좋은 훈수 한다!”

“농담으로 알지 마라! 더구나 나이 사십이 넘은 자네더러 장난삼아 연애유희를 하라고 권고할 법이 있는가!”

“참고루 들언 둠세!”

“좌우간……”

태평은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선다.

“낼…… 으음 어디가 좋을꼬?…… 으음, 본정 셈비끼야서 열한점에 만나자!”

“아무리나!”

“우리 냄이도 데리고 같이 오께시니……” 하다가 태평은 깜박

“오 참! 여지껏 혀가 닳도록 앉아서 이혼해라 결혼해라 했다고 우리 냄이 소개한다는 거 혹시 어찌 생각하면 안돼.”

“천하 박색을 내게다 떠안길 영으로 그런 복선공작을 했는지두 모르지!”

“허허허!…… 낼 만나보게마는 자네한테야 실상 좀 과분하느니!”

“그렇다면 삼가 나아가지 마는 거구!”

“또오 단순한 후보자로 소개하는 거지, 하필 그애를r13;이란 뜻은 천만에 아니니, 그 점두 잘 알아두어야 하고!”



5. 우리 집 창의 불빛[편집]

태평을 작별하고 나서……

심사가 두루 산란하여, 저녁식사도 하러 나갈 것을 잊어버리고, 고옴곰 소파에 가 지여 앉아 생각이 한만없는데, 용복어머니가 마침 왔다. 특별한 손님인 것은 아니요, 대놓고 빨래를 해다 주는 여인이었다.

소매를 스치고 지남도 전세의 인연이라고 불도에서는 이르거니와, 금년 바로 정월이었다. 아파트의 소제부로 있던 노인이, 전에 한 동에 이웃에서 살던 여인인데, 지내기가 어려워서 생활에 조금의 보탬이나마 삼을까 하여 그런 거라도 맡아다 하고자 한단다면서, 속옷가지의 빨래를 주어 달라는 청이었었다. 그러면서, 솜씨가 퍽 깔끔스런 이라 일은 얌전하게 할 것이고, 또 삯은 여느 세탁집보다 덜 주어도 하고, 한다는 말도 했었다.

삯 같은 것이야 어떠했던 가난한 사람이 그것으로써 생활에 보탬을 삼고자 한다는 데에 준은 두말없이 응답을 했다.

그런지 삼사일 후에 소제부 노인이 용복어머니라는 그 당자를 데리고 왔었고, 그 길에 와이샤쓰 벗은 것을 두 벌 맡아가지고 갔었다.

마흔댓이나 되었을까 말까, 의복이 초라하고 기상은 가난과 고생에 찌들고 지쳤음일시 분명하여, 몹시 초췌한 초로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 너붓하니 모나지 않고 부드러움을 간직한 얼굴은 겸하여 어딘지 모르게 품도 있어 보였다.

언어와 거동도 점잖스럽다. 나이 그만큼이나 되었으면서도 외간 남자의 앞이 조심스러 한편 옆으로 넌지시 비켜 서서 소제부 노인과 준과의 수작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고는 준이 빨래할 것을 챙겨 내놓아서야 비로소 한마디

“고맙습니다!” 하고 치하를 하면서 받아가지고 돌아가싿.

한갓 그저 빨래나 해다 주는 여인이요 아무 상관도 결연도 없는 존재이거니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러나 주은 한 사람의 끔직 온화하고 어질어 보이는 인물 하나를 발견한 것이, 그러고 세탁이라는 하찮은 관계를 통하여 그와 조그마한 생활의 교섭을 가지게 된 것이 실없이 마음에 즐거웠다.

그처럼 호감을 가진 때문이라기보다도 어떠한 거래에서든 셈을 또박또박 가린다거나 또는 인색히 굴지를 않는 성미일뿐더러

‘어려운 사람이 생활을 보탬을 삼으려고……’라던 말이 앞을 서, 두벌의 와이샤쓰 빨래에 이 원을 집어주었다.

처음 한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내 줄곧 그렇게 세탁집의 세탁값에 비하여 갑절이 넘는 정도로 후히 치르곤 했다.

빨래는 그런데 아무래도 전문하는 세탁집의 세탁을 따르지 못했다. 땟물이 곱질 ㅁ소하고 다림질이 서투르고 하여, 동대문 밖 ‘광나루’에서 산다고 들었는데 다른 것은 그다지 모르겠어도 와이샤쓰 다림질 하나만은 촌태가 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래서 일은 세탁집보다 낫고 값은 헐하고 하다던 소제부 노인의 말과는 반대로 된 모양이었으나 그것을 탓하잔 생각은 없었다. 도시에 의복이랄지 신변의 범절에 대하여 세밀한 관심을 가지며 구애할 줄을 그는 몰랐다.

이런 일도 있었다.

빨래한 것을 가지고 와 보자기를 풀어놓으면서

“저어 깃이 겉으루 해졌길래 뜯어서 뒤집어 댔는데……” 하고 잘못이나 저지른 듯이 어렵사릴 말을 하는 것이었었다.

“네에, 수고하셨읍니다!”

준은 짜장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건성으로 치하를 했다.

“실두 굵은실루 수웅숭 화서 맘에 안 드시믄 어떡허나 허구……”

용복어머니는 거듭 이런 걱정을 하면서 돌아갔다.

가타, 와이샤쓰의 깃이 해지면 뒤집어 대는 묘법이 있음을 비로소 안 준은 혼자 미소를 했다.

준은 깃을 뜯어 뒤집어 댄 그 바느질 자죽r13;미싱이 아니고, 또 실이 굵어서 뽄새는 없으나r13;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문득 가족적인 알뜰스럼이 그 바느질의 코코에 면면히 얽히어 있는 것 같아 부질없이 마음이 언짢았다.

어머니란, 무섭지 않은 어머니, 부드럽소 상냥하기만한 어머니이고 싶은 생각을 우연히 한 것도 이때였다.


노크라고 하는 풍속과는 아예 친해지질 않는 용복어머니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방문 밖에서

“기세요?” 하고 찾아

“네에!” 하고 대답 소리를 들은 후 살며시 문을 벙기고 들어선다.

“수고하십니다!”

준은 일어서면서 늘 두고 하는 말로 인사를 한다.

“너무 늦어서……”

용복어머니는 그러면서 보자기에 싸가지고 온 빨래를 풀어 탁자 위에 다 놓는다.

“기대리섰지요?”

“아뇨!”

그새 며칠 별루 허는 일두 없이 바빠서 고만

“………”

준은 일원짜리 지폐로 얼마의 돈의 꺼내서 탁자 위에다 놓아준다.

“약소합니다!”

“번번이 이렇게 후허게 주세서 하두……”

“별말씀을 다아!…… 빨래는 그리구, 아직 없나 봅니다. 이댐 길에나……”

“내에.”

돈도 내놓았고, 빨래는 아직 없다고 했고, 했건만서도 용복어머니는 전처럼 곧 물려가려 하지 않고, 추움춤 그대로 망설이고 섰다.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그러나 섬뻑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 입술만 달막거리다 말고 말고 한다.

준은 이내 그런 눈치를 채고

‘왜? 무슨 말이냐고……’

묻는 듯이 정면해 바라다보면서 말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는 시선을 만나서는, 더는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었던지, 용복어머니는 가까스로 기운을 짜

“저어, 다른 말씀이 아니구……” 하고 겨우 운을 따놓는다.

준은 십상 아마 돈 선하를 해달라는 교섭인가 보다고 생각하면서

“말씀하시지요?”

“저어 좀 염치 없는 청이 있어서……”

“………”

“두구 그 모가치 빨래두 해다 드리께시니, 저어……”

“네, 알았읍니다……”

준은 돈지갑을 다시 꺼내 들면서

“조금이라면 지금이라두 돌려 드리죠…… 얼마나?……”

“한 칠 원만……”

“칠 원요?”

막상 얼마라는 것은 짐작할 바이 없었어도 설마 돈 겨우 칠 원일 줄이야 듣고 나니 생각 밖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칠 원인 이의외로울 아무런 큰거도 없는 일이었다. 빨래삯으로 몇십 윈이고 백 원이고 선하를 청한다면 그야말로 의외로울 노릇이었다. 응은 하고 아니하고는 딴 문제라 치더라도……

돈이 모두 십원짜리뿐이었다. 준은 십원 한 장을 꺼내서 먼저와 같이 탁자 위에다 놓아준다.

용복어머니는 오늘치 빨래삯으로 처음에 내논 돈은 손을 대지 않고, 마침 그게 삼 원이었다. 나중의 십 원만 집는다.

“그럼 이걸랑 도루……”

“그대루 다아 가지구 가십시요!”

“칠 원 말씀을 했는데 더 주시니깐 미안해서……”

“십 원이나 칠 원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고맙기야 허시지만 갚을 일을 생각해서……”

“칠 원만 꼬옥 소용이 되십니까?”

“내애, 칠 원만 더 있으믄 오늘은……”

“………”

준은 이 여인의 차라리 그처럼 화폐의 열 단위(十單位) 미만의 단위를 가지고 그 범위 안에서 그 척도로써 빠득빠득이 생활을 자질하는 생활이야말로 오붓하니 군것의 침노할 빈틈과 딴 걸 돌아볼 여념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그 긴박(緊迫)하고 핍절스런 품이 ‘가장 내용이 알찐 생활’ ‘가장 생활적인 생활’이 아닐는지 싶었다. 더우기 화폐라는 것이 물자소비(物資消費)의 매개물일진댄 물자를 해피 할 수 없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한층 더 그러하리라 싶었다.

“그걸라컨 그럼 갚을라 마시구 댁의 야기들 무어 맛난 거래두……”

그러다가 준은 생각이 나서 묻는다.

“참 애기들은? 여럿 있으십니까?”

지날말 삼아서가 아니라 아주 긴하게 묻는다. 모친 강부인을(그 점 하나만은) 탁했든지 준도 역시 어린아이들ㅇ르 매우 좋아하였다.

“지끔 둘 있답니다!”

“네에!…… 그럼 남맨가요오?둘이 다아 아들애긴가요?”

“오뉘랍니다…… 토옹 셋을 두었다가 맨 큰아인 명색 출가라구 시키구…… 저업때……”

“혼인을 하섰어요? 그동안에?”

“내애 숭내만 냈죠!”

“온 소문두 없이!……”

준은 속으로 그런 줄 알았으면 무얼 부조라도 좀 했더라면 피차에 즐거웠을 걸 생각하면서

“국수나 먹으러 오라구 청하시는 게 아니라!” 하고 웃는다.

웃음엣말이었지만 일변 진정이기도 했다.

지극히 가난하게 시집을 가는 그 새악시, 그는 아마 어머니를 닮아서 퍽도 유순하고 얌전스럴 것이었었다. 이쁘게 생기진 않았어도 오래비가 누이동생이 이쁜 것처럼 그렇게 마음에 이쁠 것이었었다.

그러한 그를 위하여 경사로운 혼인날에 패물이 되었던 옷감이 되었던 가난하게 살아 가난하게 시집가는 그로서는 여지껏 가져보지도 못하고 가져볼 마음도 내지 못했을 무어나 화려하고 값진 선사를 가만히 손에 들고 가서 그를 즐겁게 해주며 행복하라고 축복을 해주고 간략하나 진심껏 권하는 두어 잔의 술과 국수를 대접받으면서 그들의 기뻐함을 함께 기뻐하고.

준은 이렇게 생각하면 당연히 할 노릇을 못하기나 한 것처럼 민망한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였다.

‘……소문도 없이 그동안에 혼인을 했느냐고. 국수나 먹으로 오라고 청할 것이지 그랬느냐고……’

이 두 마디 말의 효과는 매우 컸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그 말로써 그동안의 서로간 ‘노방엣사람’인 데서 오는 등한감(等閑感)과 수스럼이 일시에 풀리면서 훨씬 의(誼) 좋아지고 무관함을 느끼겠었다.

용복어머니는 저절로 미소를 드리우면서, 그러나 쓸쓸히

“아이, 혼인이나마 하두 참 무엇헌……” 하다가 말끝을 흐리고 만다.

“혼인은 다 일반인데 번화하게 차리지 못했다구서 경사스럽지 말란 법이야 있읍니까?”

“쯧, 그야 그럴 테죠만!”

“신랑은? 무얼 하시는 분이요?”

“내에…… 거저……”

“시굴인가요?”

“아뇨, 저어……”

용복어머니는 차차로 더 거기에 대한 여러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준은 막상 어떤 꺼리는 곡절이 특별히 있음인 줄은 알 바이 없고, 한갓 나의 궁졸함을 남에게 들추어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항용 가난한 사람네들의 일반 편심이거니 할 뿐이었다.

그렇든 저렇든 구태여 남을 괴롭힐 며리가 없는 것이라 준은 이내 화제를 돌리어

“그러구서 그 아래루 둘이 있으시군요?”

“내에.”

“학교는 보내시구요?”

“안직…… 명년에 둘째년을 들여보내구 내내명년에 또 막내녀석을 들여보내구 둘을 한꺼번에 보내야겠어서 큰 시방 걱정이랍니다! 큰아이 하나만 뚝섬 학굘 보내서 보통과 겨우 졸입시키게두 여섯 해 동안 뼈가 빠졌는데……”

“고생스러두 학굔 보내서야지 어떻게 합니까!”

“쯧, 그럴 생각은 생각이지만서두……”

“지금 그러니깐 여섯 살 네 살 그런가요?”

“일곱 살 다섯 살 그렇답니다.”

“한창 시방들 장난 많이 할 때루군요!”

오랜 이웃집 아주머니와 터놓고 이야기하듯 한다.

“애기들이 어머니 이른 말 잘 듣습니까?”

우스운 질문이나 저 자신의 어렸을 적을 여겨서 하던 말이었다.

준은 너무도 어머니의 이른 말을 잘 듣는 아이였었다.

어머니가 한번

‘이래라!’ 하면 곧 그대로 좇았다.

어머니가 한번

‘거기 꿇어앉았거라!’ 한다든지 혹은

‘거기 앉아서 글 읽어라!’ 한다든지 하면 밤새도록이라도 진종일이라도 꿇어앉았고 글을 읽고 했다.

어머니가 한번

‘그럼 못쓰느니라!’ 하면 꿈쩍 못하고 말았고, 무슨 일이 있든지 그에 거역을 하지 못했다.

비교적 내면적이요 명랑 쾌활하질 못하고 침울한 성질은 성질이었지만 그렇더라도 한참 자랄 무렵의 어린아이임엔 다름이 없었다. 거침없이 바깥으로 싸다니고 구들장이 꺼지도록 쾅당거리며 뛰놀고 소리지르고 모든 것을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보고 싶어하고 이런 선머슴이긴 일반이었다.

강부인은 그런 것이 다 쌍스럽고 호로스럽다 하여 어린 준을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어른처럼 의젓하게 버릇 가르치며 닦달하기로만 들었다.

이런 준은 사지를 결박지운 것같이 꼼짝할 수가 없고 답답했다. 늘 마음은 무겁고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어머니의 시키는 노릇이니 하릴없었다. 싫어서 싫어서 못견디면서도 억지로 억지로 그 영을 받들었다. 만일 일호 거역을 하고 보면 벼락 같은 꾸중과 사정없는 달초가 내리기 때문이었다.

‘무서운 어머니!’

준의 어렸을 적 모친 강부인에 대한 감정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좋은 어머니, 임의롭고 정다운 어머니, 자애스런 어머니, 이러한 어머니에의 즐겁고 행복된 기억은 별반 없었다.

장성한 후에야 준은 비로소 모친이 그와 같이 무서운 어머니로만 시종한 연유를 이해는 할 수가 있었다.

버릇이 없다든지 불량하다든지 학업을 게을리한다든지 그 밖에 좌우간 남의 눈에 거슬리고 벗는 행동을 하여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라 할 수 없다!’

‘홀에미 자식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

이런 평을 혹시라도 듣게 될까 저어해서, 그래 엄하고 준열히만 가르치며 단속을 했던 것이었다.

희마하나마 준은 부친이 작고하던 열한 살 이전과 이후의 기억을 더듬어 모친의 태도를 판단할 때에 역력히 그것을 깨우칠 수가 있었다. 부친의 생존 시절에도 부친보다는 모친이 준의 훈육과 교도를 주장하다시피 했었고 그때에도 부친에 비하여 모친이 훨씬 엄격하게 굴기는 굴었었다. 부친한테 종아리를 맞은 일은 없어도 모친한테는 가끔 있었다.

그러나 고만한 엄격쯤 부친의 별세 후로부터 시작된 엄격함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지 않은 걸로 얼마나 꾸지람을 들었으며 매를 맞고 했던고!

고옴곰 어떤 때 생각을 하노라면 한편으로는 남달리 깊은 애정이 없던 것이 아니면서도 그것을 억제하면서 한갓 엄격하게만 자식을 다루어오던 당시의 모친의 태도하며 심정이 일변 동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암만 이해와 동정은 할 수가 있어도 지금에 이르러 와락 그 모친에게 향하여 정이 솟는 줄은 모르겠었다. 철도 날 대로 났고 또 나의 자식 된 윤기상(倫氣上) 마음 가운데 모친을 범연히 여긴다거나 괄대를 하던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종시 탐탁하고 알뜰한 자식 노릇은 하여지질 않는 것이었었다.

‘무서운 어머니’를 ‘섬기기나’했지 어리광도 응석도 부리지 못하고 자란 준은 자연 그래서 순한 여인네를 보면

‘무섭지 않은 어머니렷다!’

‘저런 어머니한테 자라는 아이들은 어떤지 몰라?“ 하는 부러움과 호기심이 나곤 하던 것이었었다.

용복어머니는 준의 그런 돌연한 질문을 별로이 이상스러워하지 않고 천연히 대답한다.

“이른 말 잘 듯는 게 다아 무업니까! 당최……”

“더러 때려주구 하시나요?”

“어따 손 댈 데나 있어야 때려주구 말구 허죠?”

“………”

준은 이 여인다운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

“기집아인 둘을 다 성가시잖으게 길렀는데 끝엣것 사나이놈은 어디서 그런 별종이 생겼는지!…… 장난 심허구 고집 세구……”

“그래두 거져 내버려두시군요?”

“쯧, 그렇죠!”

“………”

“그러나마 즈이 아버지 되시는 이가 천하 용하디용한 양반이 돼서요…… 암만 어린놈이 말썽을 부리구 이른 말은 안 듣구 해두 죄외 받아주시지 좀초롬 이노옴 소리 한번 없답니다.

“………”

“그러시군, 노오 말씀이, 가난을 타서 남의 앞에 나간다치면 가뜩이나 추레해 뵈구 허는데, 무슨 탁에 집안에서꺼정 자식 길 꺾어줄까 보냐구…… 아주 질끔을 하시기 때문에, 더러 따끔하게 좀 때려주구 싶어두 못한답니다!”

“참, 바깥으런은 무얼 하시나요?”

“………”

용복어머니는 곧 대답을 않고, 빙긋이 웃더니

“금전판으 가 기신답니다!”

“금점, 요?”

“내애!”

“금광 말씀이죠?”

“내애!”

“금광을……걸 하시나요?”

“금광을 하기나 했으면 그래도 괜찮으라구요?”

“그럼?”

“덕대합니다!”

“덕대?”

“내애!”

금광의 덕대라면 준의 개념껏은 천하 우락부락하고, 소위 금일 충청도, 명일 전라도의 막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를 듣고 얻은 상상으로 하든지, 또 그 아낙인 용복어머니의 품 있고 쌍스럽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보든지, 노상 그런 사람일 것같이는 생각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 길에 종살 하섰나요?”

“아뇨. 한 칠 년 되는지 마는지……”

“그전엔?”

“이럭저럭 거저…… 장사두 허구, 더 들이껴선 월급생화루 지내기두 허구……”

그 말에 준은

‘……하다가, 돈이나 좀 잡아볼까 하구서?……’ 하고 묻는 대신

“금광이면 세월이 좋다지 않습니까?”

“만날 좋니 무슨 소용이 있나요?”

“?……”

“것두 내 손으로 금점을 헌다거나, 허다못해 분광이래두 헌다믄 술 바랄 수두 있구 허지만……”

“………”

“우리 집 그이가 허시는 건 ‘판띄기’ 덕대라구 일꾼들 데리구 남의 금캐주구서 일꾼 품삯 나오는 데서 한 깃 차례 얻어먹는 거래요!”

“………”

“세상 못해 먹을 건 금점판 판띄기 덕대라는데!……”

“………”

“행여 그러다가 누가 밑천이래두 대주면 분광이래두 한 구더기…… 존자리 눈익혀 두었다 한 구더기 파볼까 허구서…… 쯧!”

“………”

준은 속으로 역시 꿈이 있는 것이로다 하였다. 그러고 좌우간 흥미 있는 인물인 듯하니 종차 기회를 타서 한번 만나보리라 유념을 했다.

“아이, 날 좀 봐! 얌체없이 서서 얘길 늘어놓구!”

용복어머니는 그러면서 보자기와 돈을 챙겨 들고 한걸음 물러선다.

“주서서 자알 쓰겠읍니다만 이걸 갚아 드리자면……”

“용복아버지가 인제 금광으로 큰수 잡으시거들랑 갚으십시요그려?”

“하늘서 별 떨어지길 바라지, 어느 세월에……”


광화문 네거리를 향하고 걸어오면서 내내 용복어머니는 그 손님, 준을 두고 생각이다.

볼수록 얌전했다.

인정 있고……

점잖스럽기도 했다. 뉘 집 젊은인지 집안이 행신하는 집안인 성불렀다.

사세도 군색하지 않은 모양이고……

점순할아버지(천거해 준 소제부 노인)말이, 대학교 출신이고 하댔으니 훌륭한 자격자일 것이다. 서른은 좀더 되어 보이는데 어째 객지에서 혼자 그렇게만 늘 지낼까.

아직 장가 전인지, 그렇잖고서야 거기 와서 있은 지가 오 년이나 된다는데, 혹시 상처라도 했거나……

여기까지 저절로 생각이 미친 용복어머니는 필경

‘우리 용순이도!……’ 란 소리를, 거진 입밖에 내어 중얼거린다. 용순이란 요 전에 혼인을 했다는 맏딸이다.

이미 혼인을 하여 벌써 다 지나간 일이요, 또 그렇지 않더라도 처지가 서로 월등히 다르며 도시에 생각이나마 하는 것부터가 부질없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꿈을 이치와 사리(事理)대로만 꾸는 것은 아니었다.

용복어머니는 비각(碑閣) 앞에 가 충그리고 서서 무한 망설여쌓다가 이윽고 일단 지나친 정류장으로 도로 가서는 황금정행의 전차를 탄다.

용순이 청진동서 살고 있었다. 잠깐 들러서 보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번번이 그래오듯이 오늘도 역시

‘조금 더 참았다 떳떳이 시집으로 들어가거들랑……’

이렇게 단념을 하고 안 떨어지는 발길을 돌려놓던 것이었다.

왕십리 종점에서 전차를 내려 성동(城東) 정거장을 바라보고 종종걸음을 친다.

전자로 곧장 동대문으로 가서, 게서 바로 광나루(廣壯里) 궤도차(軌道車)를 타면 쉽고 편키는 하지만 차삯이 이십 전이 드는 대신, 왕십리와 성동 사이를 도보로 연락하면 오 전이 덜한, 십오 전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길바닥만 내려다보면서 부지런히 걷다가, 앞에서 밀고 오는 엿수레와 부딪칠 뻔했다.

몸을 비키면서 보니, 여러 가지 그득히 벌여놓은 엿들이 하도 소담스럽고 좋았다. 목침 덩이만씩한 검은 엿, 흐벅진 땅콩범벅, 팔서리 같은 깨엿, 모두 먹음직스럽다.

노상 그 앙징한 제 팔뚝을 쥐어잡아 보이면서, 용복이가

“엄마, 나, 이마한 엿!……” 하고 조르던 생각이 문득 났다. 그러면서 조금 아까 그 손님이r13;준ㅇ;

‘댁의 애기들, 무어 맛난 거나……’ 하던 말이 아울러 생각났다.

한 가락은 용복이 몫으로, 용옥이 몫도 한 가락 해서 두 가락을 샀다. 이십 전을 남용하는 셈이다. 그러나 차삯 오전보다 훨씬 아까운 줄을 몰랐다.

일곱시가 지나고 깜깜 어두워서야 겨우 광나루에 당도하여 집으로 향했다. 반달음질을 쳤다. 두 어린것이 어찌나 하고 있나 싶어 허둥거리며 정신없이 달려갔다.

이윽고 집 뒤창이 빤히 불에 비쳐 보였다.ㅏ 어떻게도 반갑고, 우선 마음이 뇌는지……

“용복아? 용옥아?”

거푸 부르면서, 싸리문도 없는 마당으로 들어선다.

“어머니이!”

용옥이가 앞문을 박차고 뛰어내려와서 아랫도리를 안고 늘어진다.

“무섰지?”

“응!”

“용복인?”

“어태 울다가 자!”

“절 으쩌니!”

용복이는 차디찬 방바닥에 가 새우처럼 꼬부라트리고 잠이 들었다. 눈물 자죽이 말라붙었다.

흔들어 꺠우는 바람에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일어나 앉더니, 저 누웠던 자리를 휘휘 둘러보면서

“내 엿!” 하고 칭얼댄다. 꿈을 꾼 것이었다.

“이마한 내 엿! 흐응!”

“오냐 엿 여깄다!”

용복어머니는 얼른 사가지고 온 엿을 손에다 들려준다. 그러면서 무엇이 아마 씌워대서 엿을 사게 됐던가 보다 싶고,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것이 가슴 뿌듯이 차올랐다.



6. 부질없은 우연[편집]

준은 약속한 시간 열한시에 태평과 나미를 만나러 마침내 셈비끼야엘가지 않고야 말았다. 그러고서 경성역으로 달려나가 고향 내려갈 차표를 사기까지에 성공을 했다.

실로 성공이라고 함직한 것이었다. 번연히 파탈과 비극이 전제된 떳떳치 못한 연애에의 모험을 탐하는 대신(그 유혹을 물리치고) 이십 년 소박하던 옛 안해를 아무튼 찾아가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간밤을 잠을 못 이루어가면서 나미와의 연애를 생각하며 지냈다. 가슴은 흡사히 이십 안팎의 어린 사람이기나 한 것처럼 설레었다. 그는 나미와의 연애가 벌써 말 짜듯이 다 짜놓은 기정 사실인 것같이 여겨졌었다.

그것이 즐거우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태평에게 한 말대로

‘버젓한 안해가 있는 몸이……’ 라는 생각이 엄연히 앞을 막곤 하던 것이었었다. 파탈이 전제된 연애, 그것은 번연히 알면서 죄와 비극을 장만함이었다. 단(甘味한) 비상을 마시기처럼 두려운 일이었다.

마시지 말잘 수도 없고, 그렇다고서 철없이 마셔버릴 수도 없고, 단 비상은 결국 슬펐다.

아침이 되자 일찌거니 일어나서 소쇄를 마치고, 아파트 식당에서 조반을 먹고, 그러고는 출입할 채비를 말끔히 차리고서, 하옇든 시간을 기다렸다. 진득이 있지를 못하여 방안을 오락가락 거닐기도 하고, 그러다간 소파에 가 잠깐 앉았는가 하면, 또 일어서서 창 앞으로 서성거리고 했다.

열시 반이 되었다.

‘천천히 나가 보나?’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진 못하고 망설이기만 했다.

거진거진 열한시가 되어왔다.

‘가?……’

‘가서……?’

‘으음…… 으음……’

‘필경엔 태평군 말짝으로 결혼을 아니하고는 죽을 지경까지 이르러!……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혼을 한다!……’

‘이혼? 이혼을 한다?’

준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이혼토록은! 이혼토록은! 나만 지금부터 행복되자고 이혼을 하다니? 영영 막가는 길이 아닌가! 오직 한가지의 불쌍한 위안조차 뺏는짓이 아닌가!’

거듭 머리를 커다랗게 흔들었다.

‘남의 청춘을 그대도록 야속히 짓밟아 주고서 인제 내일 모레가 사십인데!…… 사십이면, 여자로 나이 사십이면 그사람은, 그 사람의 청춘은, 인생은 영구히……’ 하다가 준은 별안간

“아!” 하고 소스라쳐 놀랐다.

안해 서씨의 나이 서른여덟에 불원 사십이요, 그리하여 속절없이 그대로 늙고 만다는 것을 지금 새삼스럽게 알았거나 깨달은 바는 아니었다.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태평과 더불어 그런 이야기를 했으되, 이다지는 결리며 아픈 줄을 몰랐었다.

했던 것이 오늘은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사실이 놀라왔다.

‘결혼 초야에 그 못당할 욕을 보여주어…… 처녀로 이십 년을 늙혀 와…… 완전히 무덤 속의 청춘이었다!’

‘무덤 속에서 청춘을 보내고 나이 서른여덟…… 올과 내년이 지나면 마흔…… 마흔으로 그 사람은 인생은 그만이다!…… 무덤 속에서 살아온 청춘이 무덤 속에서 마침내 인생을 지우고 만다!’

준은 모골이 송연함을 느꼈다. 도저히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 몸에서 무서운 불멸의 죄악이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방금 집이 황황 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마음 다급함과 공포에 푸르르 몸이 떨렸다.

나미도 연애도 태평도 죄다 없고

‘어떻게든 무슨 도리를 차려야!……’

이렇게 속으로 외치면서 방을 뛰쳐나왔다.

행구 하나 갖추어 들지 않고 경성역으로 달려나왔다.

열한시의 부산행(釜山行) 준급행을 행여 탈 수 있을까 했으나 많이 미급이었다.

그 다음 열한시 이십분의 대전행(大田行)은 완행도 완행이려니와 대전서 호남선과의 연락이 더디었다. 부득불 열두시 오십분의 급행을 기다려서 타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연락은 마찹지 못했으나 급행이어서 마음 산란한 이판에 속이라도 후련할 터이었다. 연락이 정히 불편하면 대전서 유성온천에 들러 하룻밤 유해 갈 셈치고 좌우간 이대로 떠나놓고 보는 것이라 했다.

시간이 한 시간 반 넘겨 남았는지라, 차표 사가지고 역 앞에 있는 찻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잊었던 나미와 태평이 비로소 생각키었다.

열한시 반이 채 못되었다. 시간 에누리를 하는 줄만 알고서 아직도 까막까막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거니 하매, 나중 일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사뭇 가보고 싶은 생각이 꿀안 같았다. 일껏 차례 돌아온 행복을 못본 체 외면을 하여 무단히 놓쳐버리기가 아까운 것도 같았다.

‘가?……’

그러나 일어서지는 못했다.

마침 축음기에서 「비창교향악」이 울려나왔다.

어렴풋이 그 곡조인 것만을 분간을 하나, 음악에 비교적 귀가 무딘 그는 곡의 내용에서라느니보다도 「비창교향악」의 명칭에서 방금 저 마음의 ‘비장’을 느꼈다.

전화라도 걸고 태평에게 무어라고든 가지 못하는 발명을 할까 하였으나, 그리고 적이나 그것이 친구를 대접하는 도리일까 하였으나 그러노라면 필경 붙잡히기가 십상일 터이니 난감스럽다.

못 받아볼 때 못 받아볼망정이라도 명함에다 간단히

“고향에서 급히 부르는 전보가 왔기로 총총히 내려가기에 언약을 지키지 못하노라.” 는 사연을 적어서 메신저에게 들려보내고 말았다.

찻간은 언제나 일반으로 붐벼 가까스로 한 자리를 얻어 앉았다.

차를 타고, 차가 드디어 떠나고 하니 그제서는 더럭 걱정이 솟는다.

어떻게든 무슨 도리를 차려야 하느니라고, 시방 허겁지겁 이렇게 내려는 간다지만 내려가기로소니, 가서 무슨 도리를 어떻게 차릴 것인지가 막연했다.

하기야 새로이 남편으로 돌아가 ‘이십 년 만에 비로소 그를 안해로써 찾는 것’이 오직 하나의 좋은 도리일 것이었다. 그렇것만 거기엔 도무지 자신이 나지가 않았다. 오히려 예의 공포증(恐怖症)이 어느새 벌써 돌지를 않는가. 보나마나 집에 당도하여 눈앞에 그가 얼찐만 하여도 가슴이 맞방망이를 치고 사족이 떨려 똑바로 한번 치어다보지도 못하고 말 참이었다. 그러니 정히 그럴 바이면 이 행보가 아무 소용도 없는 노릇이다싶고 후회스런 생각이 나기도 했다.

차가 수원역(水原驛)에서 잠깐 머무를새 준과 마주 앉았던 손이 내리고 자리가 비었다. 서서 가는 사람도 많아, 이내 양장으로 차린 여자가 들어앉았다.

무심코 그를 보는 준은 깜짝 놀랐다.

어쩌면 그다지도 같은지.

후리한 몸매……

시원하고도 총명이 어리어 있는 이마……

영롱한 눈초리가 좀 긴 듯하다.

도고하고 다분히 고집 세어 보이는 코……

갸름하니 하관이 빠르고 작은 입과 작은 턱……

어제 석양에 태평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미를 두고, 상상했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이상한 일도 있다고 신기스러워하다가 정말로 그는 놀라운 것을 보았다.

여자가 우선 들어다 놓는 조그마한 여행가방의 명함꽂이에 꽂힌 명함에가 또렷또렷이도 ‘吳奈眉’(오나미)라고 박여 있지를 않는가.


태평은 준이 설마 그런 딴전을 하고 있는 줄을 알 턱이 없고 셈비끼야에서 까맣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나미도 물론 데리고 같이 왔었다.

나미는 실상 아침에 갑자기 욕지도(欲知島)에 있는 그 부친이 병이 침중하다는 기별을 받고 열한시차로 떠나 통영으로 내려갈 예정이었었다.

그런 것을 태평이 열한시차나 열두시 오십오분차나 저기 가서 당도하기는 매일반이니 한 열차 늦게 떠나고,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행구까지 다 차리게 하여 데리고 왔었던 것이다.

열한시가 그대로 지나가고 십 분 다시 이십 분 다시 삼십 분, 삼십 분이 넘도록 감감소식이 없자 태평은 기다리다 못해 아파트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방문이 잠기고 나갔다는 대답이요 몇시에 나갔느냐고 물으니 아마 열한시 전에 나간 듯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벌써 두 번도 오고 남았을 겐데!”

태평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도로 자리에 와 앉는다.

새로 가져다 논 아이스크림을 뜨다 말고 나미가 건너다보면서 묻는다.

“누군데 그러우, 오빠?”

“내 친군데……”

“꼭 만나야 할 사람이우?”

“응…… 냄이두 성명은 혹시 알걸? 임준이라구……”

“임준?”

“소설 쓰는……”

“오오”

“아나?”

“작품 꼭 하나 읽었는데…… 토옹해서 셋인가밖엔 없대드만서두……”

“어떻든고?”

“하나만 읽구서 다안 말할 수 없지만, 예술이 그럴래선 고통이지 어디 낙(樂)이우?”

“흐음…… 사람은 착하고 참 좋니라!”

“………”

나미는 그저 귀넘겨 듣고 만다.

열한시 사십분이 되었다.

태평은 꺼내 보던 시계를 도로 넣으면서

“이 문딩이가 어디로 새버린 게로다…… 전차에 치어 죽었든지……” 하고 악담을 한다. 조금 짜증이 난 것이다.

그러나 곧

“그놈의 아아를 사촌매부를 좀 삼을까 했더니……” 하면서 싱그레 웃고 나미를 넘겨다본다.

“뭐유?”

“아니다! 내 혼자 하는 말이다!”

“………”

나미는 그제서야 비로소 태평이 이러는 속을 알았다.

“가자……”

태평은 벌떡 일어선다.

“가서 즘심이나 묵고……즘심 시켜 묵고 떠나자면 시간이 바쁘겠다!”

나미도 따라 일어섰다. 무엇인지 모를 조금 섭섭한 것 같았다.

둘이는 명치정의 뎀뿌라 집으로 향했다.

얼마 동안 말없이 걷다가 태평이 신칙하듯 일러들린다.

“가서 아버지 병관이나 잘해 드리고 있거라?…… 배편이 마침 없거들랑 가시끼리라도 해달라고 해서 내일 바로 건너가게 하고?”

“내애”

“아버지 병환 좀 우선하시다고 곧 도로 올라오지 말고오?”

“왜?”

“내 한 달 예정이니 다녀올 때까지 기대리고 있어!”

“아이 갑갑해!”

“그러고오…… 장두식군은 나는 절대 반대로다!”

“………”

“그 군이 한편 생각하면 믿음직스런 위인은 위인이지만 대체로 정치쟁이(政治家), 실업가(實業家)들이라껀 아낙을 밥은 배불리 먹여도 맘을 질겁게 해줄 줄은 모르느니라!”

“호호호! 오빤 그 정치쟁이 실업쟁이 아니우?”

“나야 사람 됨됨이가 근본적으로 우수하지 않나! 허허허허!”


나미는 시간 빠듯이 경성역에 당도해 나오느라고 자리를 잡지 못하고서 수원까지 선 채로 왔었다. 그러다 마침 가까이서 자리가 나는 것을 보고 와서 겨우 앉는다는 것이 하필 달아나다시피하는 사람과 마주 앉게 되었던 것이다.

준은 이건 필시 무엇이 시키는 노릇이로다 했다.

혹시 메신저에게 적어보낸 명함을 받아본 것이나 아닌지, 그러고서 넌지시 이렇게 따라보낸 것이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가사 그 명함을 받아보았다 치더라도 태평으로 앉아서 구차히 이런 아쉰 짓은 단정코 할 까닭이 없을 터이었었다. 태평 그 자신이 쫓아왔다면 그건 또 몰라도……

그러니 역시 우연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는데, 우연하고는 너무도 공교로운 우연이어서 ‘제삼의 의사’ (第三意思)라는 걸 느끼지 않지 못하겠었다.

한편으로는 성명이 같은 딴 사람이나 아닌가 하는 의혹도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진실로 위험한!) 가정은 일부러 돌아보지 않고 짐짓 외면을 했다.

여자는 조심하며 들어오더니 외투를 우선 벗고 걸어 가방으로부터 잡지를 꺼낸 후 커다란 과실 바구니서껀 선반 위에다 얹어놓고 하고는 비로소 자리에 앉는다. 앉으면서, 그러고 앉아서도 젊은 남자의 앞이라서 높이 드러나는 앞정강이를 조심하여 마지않는다.

그러는 사이 준의 시선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한번도 빗기지 않는다. 저 자신을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노릇이라 심히 체모가 아닌 줄도 또한 의식하지 못하던 것이다.

“시악시 보소, 어디까지 가는기요?”

나란히 앉은 노파가 묻는다. 그와 나란히는 이 노파가 앉았고 준의 옆에는 시골 영감이 앉았고 했었다.

여자는 마악 잡지를 펴려다가 고개를 돌린다. 그의 대답이 준에게는 매우 기대스럽다.

“저어 통영꺼정 가요.”

통영이면 태평이 있는 곳이다. 인제는 갈데없는 ‘그 나미’요 성명 같은 ‘딴 나미’는 적실히 아니었다. 준은 아주 안심이 되었다.

“그럼 데구(大邱) 지나가제에?”

노파가 다시 묻는다.

“내애.”

“아이고 십상 잘데었다! 데구 가거든 날로 부디 좀 일러 주소 잉?”

“내애, 알으켜 드리께요?”

고개를 까댁까댁하면서 상냥히 대답을 하는 양이 소녀같이 앳되고 어떻게도 귀염성스런지 몰랐다.

차는 가난한 정거장을 무시하고 호기롭게 달린다.

차창 바깥으로 연방 다가오는 전야(田野)와 산이며 언덕은 아직도 이월이라 한결같이 여위고 어설프다.

스팀이 포근한 관계도 있겠지만 차창으로 쬐어드는 햇살은 그러나 어디라 없이 맑고 보드라와 조금은 봄을 느끼게 한다.

여자는 맑은 그 햇빛을 손등에 받으면서 비스듬히 창을 향해 앉아서 잡지를 읽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다 어찌하여 고개를 돌리다가 준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준은 여전히 그를 ‘감상’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이내 잡지 위로 눈을 내렸으나 하도 위심턴 남자의 시선이 뒤 미처 마음에 좀 걸리든지 곧 되짚어 눈을 든다.

여전히 보고 있었다. 그러하되 항용 남의 여자를 보고 탐내어하는 그런 불쾌함이 없고 마치 애기가 무엇에 정신이 팔렸을 때와 같은 무사심한 눈이요 얼굴이요 했다.

이상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참만에 또 보니 또 그러고 있고……

여자는 이번엔 시선을 피하려고 않고 마주 언제까지고 눈겨룸을 한다.

그제서야 준은 저를 깨달았다. 그러나 갑자기 외면을 하여 시침을 딸수는 없었다.

여자가 발씬 웃을 듯하더니 입이 열린다.

“아마 심심하신가 본데…… 이거 잡지 빌려 드릴까요?”

“………”

준은 말없이 미소하면서 고개만 한번 끄덕인다. 재치r13;위트가 있고, 상당히 신랄(辛辣)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신랄했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너그럽고 일종 장난스러웠을지 언정 악의는 없었다.

웬만한 여자 같으면 이런 경우를 당장 살얼음 같은 새침한 내색을 드러내면서 ‘별 사내도 다 보겠네!’ 하는 듯이 포달스럽게 홱 돌아앉아 버렸을 것이었었다.

또, 제법 당돌하다는 여자라야 고작 정면으로 대놓고 모질게

“왜 남의 여자를 체통없이 그렇게 보아쌓는 거예요!” 하고 질책을 했을 것이었었다.

나미는 그러나 처음부터 이 낯모를 남자의 퍽, 그러면서도 아무런 불순한 티가 없어 보이는 데에 별로 불쾌한 생각이나 반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나미는 스스로가 남을 면대하여 함부로 그렇게 볼성없이 노골한 거조를 삼가기를 잊으려고 하지 않았다. 매양 좋은 교양에서 우러나는 침착이요 여유이었을 것이다.

나미는 웃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말끄러미 한참이나 치어다보고 있더니

‘자요?’ 하는 듯이 잡지를 내어민다.

준은 건성으로 잡지를 받으면서 몰례를 한다.

“남을, 더구나 여자를 너무 자꾸만 보시믄 점잖으신 이가 체모가 깎인다구 허잖어요?”

“………”

준은 잡지 표제로 잠깐 내렸던 얼굴을 도로 든다. 그새보다도 피식이 더 웃는다. 그러다가 한단 소리가

“갑재기, 통영은 어째 내려가시요?”

“내애?……”

나미는 더럭 이상해한다.

통영을 가는 줄은 방금 옆엣 노인과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 하겠지만

‘갑재기……’

그리고, 통영은

‘어째……’

내려가느냐고 하니, 예사엣말이 아니었다.

반드시 무슨 곡절이 있었다.

또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보아야 배젊은 사람이, 초면에 남더러

‘……내려가시요?’ 라니?

나미는 문득 전에 알던 사람인데 깜박 그만 몰라보았나 보다 하고, 고개를 연해 갸웃거려쌓는다.

그러나, 생김새하며 음성이며 암만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준은 그 눈치를 알아채고는, 하는 양이 재미스러서, 가만히 보고만 있다.

“누구시든가요?”

나미는 하다하다 못해 고즈너기 바로 대고 묻는다. 아는 사람을 몰라 본 소홀을 사(謝)하는 눈으로……

준은 그 실수를 곧 사할 줄 아는 솔직함이 또한 기뻤다.

바른 대로 대답을 해 줄 것이로되 준은 조금 더 짓궃게 굴고 싶었다.

“초면입니다!”

“초면요?”

“절 아시나 본데요?”

“아마……”

“지가 누군데요?”

“………”

준은 대답을 하는 대신 턱으로 시렁을 가리킨다. 가방에 매달린 명함 꽂이가 글자는 잘아서 물론 보이지 않아도 대롱대롱 잘 눈에 뜨인다.

준의 시선을 따르던 나미는 얼른 그것을 깨닫고

“오오!……” 하다가 도로 고개를 꺄웃

“그래두우?……” 하면서 준을 본다. 미리서 사람을 알고 있었어야 이름을 보고 그 사람인 줄을 알아챘을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나미는 어서 그것을 설명을 하라고 눈으로 재촉을 하며 기다린다.

준은 지금 이 상태인 채 끝없이 이대로 차가 달려가기만 하는 것이란다면 좋겠었다.

준은 일부러 유유히 담배를 피워 문다.

나미는 기다리기가 갑갑하여 이마가 저절로 찡그려진다.

그럴수록 준은 짐짓 더 딴청을 하느라고 아까 받아놓았던 잡지를 집어 돌려주면서

“인전 심심치 않군!”

“………”

좀 밉살머리스런 모양, 잡지를 홱 채듯 받더니 되는 대로 중간을 펼쳐 눈을 까라뜨고 앉아서 읽는 시늉을 한다.

그 뾰로통한 것도 준은 보기에 또한 즐거웠다.

차는 쉴 새 없이 줄기차게 달린다. 잘 달리니 시원하기는 해도 시간이 그만큼 빨리 졸아드는 일을 생각하면 속력이라는 것이 고맙지도 않았다.

“통영이면…… 어디서 갈아타지요?”

“전 몰라요?”

“몰르구 통영을 어떻게 가시요?”

“걱정 마세요!”

그러면서야, 속눈썹을 새까만 눈을 치뜨고 배깃이 웃는다.

“즘심 어떡허섰오.”

“………”

나미는, 점심이란 소리에 퍼뜩, 태평과 점심을 먹던 것으로부터 셈비끼야에서 들은 말이 생각이 났다.

‘혹시 이이가, 그…… 임씨라던 그인가?’

그러나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지, 비슷하게나마 그럴 듯싶은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식당차루 갑시다? 즘심 먹으면서 궁금증두 풀어 드리구 허께시니……”

“전 먹었어요.”

“차래두?……”

“혼자 다녀오세요.”

누군지 아직 알지도 못하면서, 또 가서 안 결과 별로 임의롭지도 신선치도 못한 면분일는지 모르는 터에, 속 차리는 여자라면 선뜻 응할 이치가 워너니 없을 것이라 하여 준은 다시 더 권하지 않았다.

시장기는 들고 그렇다고 혼자만 가지니 그동안의 시간이 아깝다.

차는 그새 벌써 평택을 지난다. 좀 있으면 천안은 정거를 하게 되니 벤또를 삼직하나 저 사람을 앞에다 앉혀놓고 그걸 쩍쩍 먹을 일이 자못 마음에 시장하다.

참기로 했다.

그러나 생각하니 재미있는 것이 있다. 시렁에 얹어둔 과실이다.

준은 한참이나 시렁을 올려다보고 나서 근천으로

“나, 저, 과실 한 개만 주시요? 배가 고파 죽겠소!”

나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잔뜩 오므려뜨리고 말도 못한다.

준은 평소엔 야속히 말주변 없고 심심하기로 호가 났으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수작이 능청스럽고 이야기도 잘 하고 하는 것인지 제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나미는 과실 바구니를 내려가지고 맨 걸 풀어서 우선 옆엣 노파와 또 시골 영감한테 각각 권한 후에 저도 배를 한 덩이 집고는 그대로 준에게 다 내맡긴다. 향기가 물큰 떠돈다.

싸가지를 보니 본정의 어떤 상점이다. 그렇다면 태평이 사 들려주었기가 십상일 것이었다.

준은 사과 한 알을 꺼내 들면서 묻는다.

“선사 소용인가요? 찻간에서 자실 소용인가요?”

“맘놓고 잡수세요…… 가면서 먹으라구 선사받었어요.”

“아아 그렇다면 나두 단단히 한몫 권리가 있군!”

“의무(義務)루다 드리는 건 아녜요!”

“의무가 있지요!”

“어째서요?”

“우리 태평군이 사서……”

말이 미처 맟기 전에 나미는 급히

“그럼 저, 임준씨……”

“………”

준은 벌씸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준다.

순간 나미는 질색해하는 소리로 그러나 낮게

“아이 어째애!” 하면서 얼굴은 그 전에 벌써 홍조가 화끈 치달았다.

가슴이 사뭇 두근거렸다. 얼굴은 건사하지 못해 잔뜩 턱을 어깨에다 오므려뜨리고 바로 하지 못한다.

중매장이는 어디로 빠져버리고 신랑감과(그런 줄도 모르고서) 단둘이 만나 일껏 다 맞선을 뵈고 한 모양쯤 된 것을 비로소 알고 난 누구네 집규수(閨秀)와 정히 같은 꼴이었었다.

잠깐 침묵이 흐른다.

준은 사과를 아직도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옆엣 시골 영감이 칼을 꺼내더니

“자아……” 하고 준에게 먼저 권한다. 수염이 허옇고 점잖스럽게 생긴 영감이었다.

“노인 먼점 벳기십시오!”

준이 사양을 하고, 영감은 한번 더

“먼저 벳기시지?”

“아닙니다! 노인 먼점……”

“그럼!”

영감은 배를 벗기기 시작하면서

“서울두 많이 변했는데요?” 하고 이야기를 청한다. 영감이 괜히 눈치도 모르고……

준이 영감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나미는 잠시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다.

‘이대지도 요란스럽게 부끄럼을 탈 일이 무엇일까?’

아까 본정을 걸으면서 태평 오빠가

“……사촌매부를 좀 삼을까 했더니?……” 라든 그가 바로 이이다.

모르면 몰라도 진작 미리서 둘이서 거기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한 것이 있었을 것이다. 한 것을 일껏 몰랐다가 알고 보았더니 그가 바로 이이다.

미혼 처녀답게 그 순간 부끄럼을 타 얼굴도 붉히고 함직한 노릇은 노릇이었다. 그러나 한갓 그러는 정도에 그쳐야 할 것이었다.

그러하건만 가슴은 사뭇 두근거리고 무엇인지 모를 이상한 흥분이 전신을 휘둘러놓고 있는 것이었었다.

이 상태는, 준에게 대하여 태연하며 담담한 마음이 들지 못하고, 감정은 급류처럼 벌써 어떤 방향으로 쏠려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고서는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미는 그것을 스스로 깨우치기에 오랜 시간이 필요치가 않았다.

그는 동시에, 그 사실이 싫거나 걱정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누가 알까 무섭게 가만히 재미가 나는 것 같았다.

준은 웬만큼 영감과의 이야기를 파하고 얼굴을 돌린다. 나미는 소곳이 고개를 숙여 비낀다. 그러나, 곧 속눈썹 새까만 눈을 치뜨고 바륵 웃으면서

“진작 알으켜 주시진 않구!…… 몰라요!”

“………”

준은 흡족하여 빙그레 웃고 있다가

“이 사과가 퍽 아름답지 않소?”

“………”

“이 새빨간 빛깔……광채…… 그리구 물크러진 향기……모두 좋지않소? 먹기 저에 우선 시각과 취각을 질겁게 해주는!……”

“몰라요!……실컨 놀려주시군!……”

“자아 먼점 쓰시요?”

준은 영감에게서 받아가지고 있던 칼을 건네어 준다.

“먼점 쓰세요!”

“참 태평군은 언제 떠난다구 헙디까?”

“낼 오후……”

“날 욕 아니헙디까?”

“욕은 아니래두……”

“그럼?”

“이 문딩이가……”

태평의 흉내를 내서 하다 제야 그만 까르르 웃는다.

준도 허허 웃는다.

“그래서?”

“이 문딩이가 전차에 치어죽은 게로다구……

둘이는 소리를 내어 유쾌하게 웃는다.

그러고 나서 나미는 준에게 눈을 정면을 하고 무엇을 기다린다. 왜 오지 않았느냐고 묻는 눈이다.

준은 거짓말로 둘러대기가 마음이 께림했으나 그렇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할 수는 더욱 없었다.

“별안간 그만 급한 일이 생겨서!……”

“어쩌믄!……”

나미는 희한해하면서 속으로 재미가 쏟아진다.

‘오늘은 들 급한 일만 생기기루 마련이든가 봐, 둘이 이렇게 한 차에 타구 같이 가구 하라구……’ 하다가 깜박

“참?……” 하고 긴하고도 재미스런 그 다음 생각이 났다.

나미는 얼굴이 빛나면서 그러나 어렵게

“저어 지끔…… 어디……” 하고 운만 뗀다.

운만 뗏어도(그러기 전부터 눈치로 벌써) 준은 지금 어디까지 가는 길이냐고 묻는 뜻을 알아들었다.

“부산.”

준은 저도 모르게 부산이란 소리가 나와졌다. 통영을 부산으로 해서 가거니 하는 생각이 어느 구석엔가 들어 있었가 때문이었다.

“부산?……”

나미는 넘치는 즐거움을 가리지 못하면서

“그럼…… 으음 그러엄……”

“그럼?”

“………”

나미는 딴속 있이 혼자 웃기만 한다.

“무얼요?”

“아녜요!…… 저어……”

“아니구 저어라 ?…… 북경 사람이 광동을 간 것만치나 알아듣기가 어려우니……”

“하하하!”

준은 문득 하나의 경이(驚異)를 발견했다. 처음과 중간을 건성 건너뛰어 이른바 연애의 어울릴 대로 훨씬 어울린 그 대문부터 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일종의 불로소득(不勞所得)이렷다!’

‘태평군의 덕이요!’

그러면서 준은 거듭 고개를 끄덕인다.

‘다아 익어가지고서 기다리고 있던 연애……’

‘쯧! 할 수 없지!……’

억지로가 아니라 도리어 느긋해하는 마음으로였다.

처음과 중간을 생략하고 춘분히 익은 대목엘 펄쩍 뛰어들었다는 것을 느끼기는 나미도 역시 일반이었다.

나미는 이번에는 다른 말 없이 식당차로 같이 갔다.

여기에도 넉넉한 것r13;불필요한 여유눈 있질 않아, 둘이는 한참이나 기다린 후에야 식탁이 나서 비로소 앉을 수가 있었다.

준은 나미가 파이를 청하는 것을 보고 a336;a336;여자전문을 나왔나보다 했다.

“학굔? 작년에?……”

“내애.”

“음악과?”

“아뇨!”

“가사과?”

“………”

나미는 고개를 흔든다.

“보육?”

“문과!”

“하필!”

“하필?……”

나미는 빠안히 준을 건너다본다. 그중 보통인 문과를 하필이라고 하는 뜻을 알 수가 없었다.

“하필 문과든고?”

“예사죠!”

“어째서?”

“음악엔 소질이 없구……”

“또?”

“가사관…… 식모공부(食母工夫)하기 같구……”

“옳아!…… 보육은 그럼 ‘애보이’ 연습 같구?”

“남은 건 문과 말구 또 있어예죠?”

“의전(醫學專門) 같은 데 청강이래두?……”

“청강생으루 여자가 끼믄 죄라나요?”

“?……”

“그런 동무가 하나 있는데 남학생들이 한눈을 파느라구 공불 잘 아년다구……”

“그 동무란 색시두 입이 엔간치 험하군!”

“공부 아녀게 해서 미안한 게 아니구, 섣부른 공부루다 어물어물 졸없허구 나가서 생사람 잡을 테니깐 그래 죄라나요?”

“그 말 곧이듣구서 의전 청강생 갈 거 고만두었소?”

“바로 접때 만나서 얘기 들은걸요!”

음식이 왔다.

나미는 빠알간 그 연한 우무를 떠올려, 빨간 입술로 먹고 먹고 한다.

마침 전무 차장이 옆을 지나갔다. 나미는 전무 차장을 보고는 다시 또 그 생각이 나서

“참 저어.”

하고 망설이다가 말을 고쳐

“부산 가시죠? 꼬옥?”

“………”

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제 차표두……”

“차표?”

“부산 거루……”

“부산 거루?”

“저두 부산으루 해 가게요!”

“?……”

준은 그래도 못 깨우친다.

“못써요? 부산꺼정 저두 가믄…… 못……”

철 죄끔 든 아이가 어른한테 눈치 보면서 조르듯 한다.

“삼랑진으루 해 가두 오늘 저녁은 마산서 자야 하니깐…… 부산으루 가서 이모아주먼네서 자구…… 낼 아침배루……”

준은 껄꺼얼 유쾌히 웃는다.

달리 웃을 일이 있어서 그러는 줄은 모르고 나미는 다시금 부끄럼을 타 얼굴이 붉는다. 그러면서 변명이

“낯모르는 데서 여관서 자는 거보담 아주먼네 집이 좋니깐 그리죠 머!”

“그뿐더러 강남은 반드시 동무만 따라서 가는 건 아니니깐?”

“몰라요! 전 그럼 삼랑진서 내릴걸!”

“난 어떡허라구?”

“안 데리구 가실 령으루 자꾸만 숭만 보시구, 머!”

“아무튼 거…… 멋이냐……”

준은 더듬다가

‘……연애라는 걸 하자면……’

어릿 소리는 뽑아버리고

“천하의 상식이 죄다 필요한 거로군!”

“왜요?”

“통영을 부산으루 해만 가거니 했으니!”

“여태 것두 모르섰에요?”

“연전에 태평군허구 동행해 나오는데 부산서 곧장 갑디다그려?”

“부산서여 그렇죠!”

“서울선 삼랑진서 마산으루 해 가는 법이구?”

“법꺼정은 아니래두……”

“옳아!…… 시간은?”

“아침찬 좀 빨라두 마산서 뻐슬 놓치게 되믄 마찬가지예요…… 뱃길이 그리구 경친 또 얼마나 존데!”

“어떻게 그렇게 자상히 아시우?”

“낳길 통영서 낳구, 늘 왔다갔다허구…… 부산은 이모아주먼네 집 통영은 태평오빠네 집……”

“우리 집은?”

“우리 집은…… 없구……”

“서울이구?”

“서울은 오빠네 집……”

“어머니 아버지네 집은?”

“아버지네 집만 저어 욕지도(欲知島) 섬에 있구……”

“섬에? 아버지네 집만?”

“아버지네 집만……”

“어머니네 집은?”

나미는 고개를 흔든다. 아까부터 조금씩 흐려 들던 얼굴이 와락 더 흐려진다.

일찍 어머니를 여웼거나 또는 아픈 곡절이 있는 가정인 게로다고, 그러다 보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입술을 다물었다.

준은 잘못하다 울려주나 보다고 얼른 말머리를 돌린다.

“사람이, 자주자주 발달 보구 바달 그 위루 다니구 한다는 건, 바다 없이 사는 사람에다 대면 크게 하나님의 은총 받은 백성야!”

“바다 좋아요?”

“무척!”

“저두!……”

나미는 섭쓸려서 이내 도로 얼굴의 흐림을 지우고 밝게 웃는다.

“고마운 바다가 보구퍼서, 우라 바다가 보구퍼서, 학교 다 빼먹으믄서 쭈루루 달려내려오군 한걸요! 한 학기에두 몇 번씩……”

“………”

“장난감 같은 조고만씩 조고만씩한 섬들이 얼마든지 자꾸만 자꾸만 있구!……”

“………”

“밸 타구 나가믄 수평선이 커다랗게 뵈구!…… 글러루 해서 뾰족뾰족 배가 넘어오구, 넘어가구!……”

“………”

“성이 난다 치믄, 웅웅 고함을 치믄서, 집채 같은 물너울을 몰아다 때리구, 아무것두 용설 안할 것처럼……”

“………”

“그러다가두 풍랑만 자구 나믄, 너그럽디너그런 마솔 하믄서 무어든지 죄에 다아 포용을 하구!”

“………”

“어머니가 가만가만 흔들어 주시는 요람처럼 소르르 잠이 오게 편안허구!……”

“………”

“………”

나미는 문득 말이 없다. 준을 똑바로 본다. 담대하게 본다. 고요한 격정(激情)을 간직한 위태런 눈이다. 동자 가론 이슬까지 알꽃이 어리었다. 하마 입에서

‘가! 우리 바다, 나허구 시방 함께 가요!’

이 말이 숨가쁘게 쏟쳐 나올 것 같다. 가슴 뛰는 양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하다.



7. 이미 정해진 분수건만(萬事分已定)[편집]

그 좋은 벌판을 심술 사나운 두더지처럼 함부로, 그 되 샅샅이 파뒤집어 놓았다. 평야 전면이 움푹움푹 파인 물웅덩이와 불쑥불쑥 솟은 소위 ‘벌흙더미’ 투성이다. 심히 보기 싫은 꼬락서니다.

그런 어떤 한 곳의 벌흙더미 위에 가 장두식과 박덕대와(이가 용복아버지란 사람이다) 그리고 광주 되는 윤평과 이렇게 셋이 올라서서 공론이 분분하다. 대상은 바로 그 아래로 파뒤집히지 않고 성한 채 남아 있는 네댓 이랑의 논이다.

장두식은 한 차례 설명을 듣고 나서 좀 미심하다는 듯이 이리 꺄웃 저리 꺄웃 거푸 고개를 꺄웃거린다.

아직 서른다섯밖에 안된 친구가 한 사십 먹은 사람처럼 몸태가 의젓스럽다. 둔중(鈍重)에 가깝다.

배를 일부러 내밀고 내밀고 한 노력이 헛되지 않아, 아쉰 대로 뚜웅 나오기는 나왔으나 그 대신 허리가 잘록 들어가서 체적상(體積上) 득실이 상쇄되었다는 비극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꽤 벗어진 빈대머리까지도 일부러(머리를 뽑아가며) 만든 건 아니다.

얼굴이 훤칠하고, 눈은 크고, 입도 크고, 음성도 크다. 보통 회화는 떠듬거려도 연설은 웅변이다. 그 좋은 신수로 연단에 올라서서, 그 큰 눈을 부리부리 주먹으로 탁자를 땅 치며 한마디

“여러분……” 하고 지르면, 흡사히 호랑이가 어흥 하는 것 같아 청중은 꼼짝도 못한다. 이어서 현하(懸河)의 열변이, 터뜨린 물꼬처럼 쏟아져 나오고, 발아래서는 박수 또 박수……

스물세 살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중등강습소 이 년은 경성서, 동경서는 a336;a336;대학 전문부로 자초지종 고학으로 마쳤었다. 하되 그 고학이 호야 만두나 영신환을 팔아서, 또는 신문배달이나 구즈이를 하면서 한 것이 아니라 유지들에게 학자를 타가며 했던 것이다.

암만 돈에 굳다는 유지라도 한번 장두식의 씩씩하고도 곡진하고도 뜨건 언변을 만나면 몇십 원 혹은 돈 백 원씩 내놓지 않는 장수가 없었다.

이런 일화가 있다.

한해 여름 방학을 기회로 전례에 좇아 여비 조달을 위하여 경성엘 와서 a336;a336;a336;씨를 찾아갔다.

주욱 일장의 설변을 듣고 난 a336;a336;a336;씨는

“약소하나마 여비나 보태여 쓰시요.” 하고 내놓는 것은 오원 지폐 한 장이었다.

눈이 방바닥의 오원 지폐 한 장으로부터 천천히 a336;a336;a336;씨의 얼굴로 옮아온 장두식이 기색은 자못 범키 어려운 바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가만히 또박또박 나오기를

“주인 a336;a336;a336;씨는 어데 출입하셨나요?”

이런 때에는 연단에서와 마찬가지로 결코 떠듬거리지 않는다. 또, 말도 억양만 영남 억양이지, 어휘나 발음은 단연 표준어다.

a336;a336;a336;씨는 a336;a336;a336;당자를 대하여 a336;a336;a336;이 어데 출입했는가 물으니 기가 막힐밖에……

“어떻게 하는 말이요?”

“당신, a336;a336;a336;씨 앞에서 일보는 서사 아니오?”

“허어! 이런 망신이 있나!”

“천만에!…… 일찌기 보입지는 못했어도, 간접으로 듣던 바의 a336;a336;a336;씨는 결단코 그런 분이 아니지요!…… 그 어룬으로서야 큰뜻을 품고 학업을 닦는 한 사람의 청년이 당신을 찾아와 약간의 학비를 청하는 마당에 과객이나 걸인 대접을 하실 리가 만무하지요!…… 만일 그러신 분이란다면 평소에 내가 존경하고 흠모한 것이 잘못 알고 한 것이지요!…… 절대로 a336;a336;a336;씨는 그렇지 않소이다! 당신은 정녕 이 댁 서산가 보이다! 이 다음 다시 와서 a336;a336;a336;씨를 보입기로 하겠소이다!”

늠름히 그러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a336;a336;a336;씨는 황망히 그의 소매를 잡아 만류하고 몰라보았노라 하면서 사과를 한후 백 원을 주었었다.

이런 장두식의 정열과 기개가(순수한 것일 시절에) 스무 살 이전의 소녀적 나미로 하여금 존경과 호의를 불소히 느끼게 했었던 것이었었다.

은으로 손잡이한 단장을 들어 앞을 가리키면서 장두식은 떼떼떼 말을한다.

“뺑하니 돌아가문서 죄외다 파묵고 예만 냉겨놨을 제는 별로 시언치 안해 그런 게 아닌가?”

“건 자네가 모르는 소리!……”

윤평이 대답이다.

“파먹을 줄 몰라 못 파먹은 게 아니라 저편 광구와 이편 광구와 경계선을 가지구 말썽이 생겼댔거든! 그래 저편에서 저기까지 파들어오다가던 못 팠구 이편에서두 못 파나가구 한 거야! 그러다가 나헌테루 광이 넘어오면서 이 자리가 이편에 따른 거루 탁방이 난 거지.”

“그렇다문 몰라도……”

장두식은 옆에 섰는 박덕대를 돌려다본다.

“어떻소 박덕대?…… 자신 있소?”

“글쎄올시다!……”

덕대란 부름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촌 샌님 같다. 조금 들이껴 촌서당 방엘 가면, 여승 박덕대처럼 고룩하고 얌전스런 훈장이 아랫목에 가앉아 있곤 했었다.

“허어! 덕대가 자신이 없어야, 어찌 맘놓고 돈을 내서 분광을 하오?”

장두식은 동경서 돌아온 이후, 불과 사오 년에 맨주먹 바람으로, 뜬 돈을 돈 십만 원이나 착실히 잡았다. 담보와 모험으로 그랬었다.

그러나 십만 원을 잡고 난 뒤로는 모험을 삼가고 견실하게 나가는 방침으로 방침을 고쳤다. 그러므로 나미의 오래비인 윤평의 권념이 아니었다면, 제아무리 성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금광 동업하잔 소리에 선뜻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었었다.

반승낙만 하고, 우선 성적을 시험키로 했었다. 광의 성적을 아는 데는 분광을 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윤평은 자진하여, 좋기로 소문 있어 오던 이 자리를 제공했다. 지주에게 무는 토지 사용료만 연상(連上 : 分鑛主)인 장두식이 부담하기로 하고 분철(分鐵料 : 分鑛)은 없이 했다.

이런 어수룩한 조건으로 장두식에게 분광을 주면서도 윤평은 도구(道具)의 여벌이 있었건만 빌려 준단 말을 일체 비치지 않았었다.

도구를 일습 새로 장만하자면 사오천 원은 든다. 사오천 원이나 들여서 도구까지 장만을 해가지고 분광을 시작한 터이매 가령 첫바닥에 약간의 손을 본다 치더라도 이내 그대로 물러서진 않을 것…… 몇 바닥 더 해보려고 덤빌 게 십상이요, 그러다 수를 잡든지 성적이 나든지 하면 그때는 동업 출자에도 응하리라는 생각으로였다.

덕대도 사람이 두고 보는 바 매우 착실타 하여 윤평이 박덕대를 뽑아서 장두식에서 천거한 것이었다.

박덕대는 덕대몫으로 이부(二分)를 받을 약속이었다.

이부쯤 푸달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성적 나름이다. 순이익이 만 원이 난다면 덕대 것이 이천 원이다. 이삼만 원만 나면 사오천 원은 앞채인다. 사오 천이면 한밑천 그런 대로 된다.

한밑천, 사오천 원…… 꿈은 박덕대의 가난스런 대망을 저버리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땅속 일을 장담이야 하겠읍니까마는……”

박덕대의 그 사람답게 겸손한 설명이다.

“제 소견 같어서는 이 자리가 무던할 상부릅니다!”

무던한 거로 셈이 되오? 금싸래기가 들입다 쏟아져 나와야 하지!“

“바루 저 아래가 양금(兩金)이 났던 자리니까요!”

“양금이 무어요?”

장두식은 금광 속에 들어서는 전혀 생내기였다.

“평당(坪當) 한냥쭝이란 뜻이랍니다.”

“한 평에?…… 아니 그럼, 천 평이문 천 냥쭝이라, 천 냥쭝이문 만 몸메?…… 만 몸매, 십오만 원 아니오?”

말을 하던 당자나, 듣고 있던 두 사람이나 다 같이 잠깐 황홀한다. 만 몸메의 금…… 십오만 원의 돈……이란 말 그것의 음향에서 마치, 언 몸메 뜨듯한 국물을 마시는 것처럼, 속 푸근함을 느끼겠던 것이다. 현실 가능 여부의 판단이나, 그것의 나와의 이해 상관이 어떻다는 타산을 하기 전, 조그마한 순간의 행복이었다.

윤평은 과연 곧 미소가 싸늘하다.

석혈(石穴 : 石金鑛)과도 달라 사금으로 그런 성적이란 좀처럼 쉽지가 못할뿐더러, 설혹 또 그와 같이 이 바닥 천 평에는 큰 금이 난다 치더라도 윤평으로서는 막상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십오만 원이 이 바닥 천 평에서 난다면 그 십오만 원으로 광을 개발할 자금이 넉넉하다. 십오만 원 잡은 김에 광일라컨 애를 써 개발하자고 들것이 없이 넌지시 뉘게다 팔아버려도 무방이다. 성적이 그쯤 크게 난 터 이매 이삼십만 원 족히 받을 것이다. 은행의 퇴직금을 볼모하여 빚을 얻고 안해의 돈을 옭아내고 해서 고작 일만삼천 원에 산 광이 아니었든가.

했던 것이 삼십만 원이면 안팎 곱쳐 근 오십만 원…… 하나님이 주신 횡재요 이상 더 바란대서야 천벌이 무서울 일이다.

문제의 천 평을 캐기엔 만 원 안짝의 작업비로 썼다 벗었다 할 터이다. 만 원쯤이야 집이라도 뚜드려 팔고 몇 군데서 돈 천 원씩 취대하고 하면 무리한 대로 변통을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히 이 자리 천 평에서 십오만 원r13;만 몸메r13;천 냥쭝이 나기만 날 것이란다면, 약간 무리가 있더라도 만 원을 마련하여 직접 내가 캐지를 않고서 장두식에게 분광을 주기가 대단 억울한 노릇이었다.

항차, 장두식이 어떤 흉물이길래? ‘운명의 천 평’에서 십오만 원 거머 쥐고는

‘예라, 이만하면 내 배는 불렀다!’고 나가 자빠진들 어따 대고 호소하리요. ‘발끈거사’가 발끈은 고사하고

‘이 도적놈!…… 우리 나미를 주나 보아라!’ 하고 이를 갈아붙인댔자 소용이 무엇이리요.

정히 그러할진대 장두식에게 분광을 시킨다는것이 매양 부질없은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의 망상이요, 윤평은 역시 냉철한 사실주의자(事實主義者)였다. 치밀한 계산가(計算家)였다.

윤평은 금광을 결코 천냥만냥판으로 알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계산에는 금광의 투기적 속성(投機的屬性)이 조금도 용납되어 있질 않았다. 그에게는 금광이란 마치 연초 소매상이 십전짜리 담배 한 갑을 팔면 칠 리가 남되(더도 덜도 아니요 반드시 칠 리가 남되, 칠 리는 반드시 남아, 열 갑이면 칠 전, 백 갑이면 칠십 전, 천 갑이면 칠 원이 생기는 묘리와 하등 다를 바가 없는 ‘장사’였다.

백만 편 가운데 소위 부광지대가 삼십만 평이다. 삼십만 평이라지만 실제로 채굴은 이십만 평만 잡아야 한다.

보링 기타의 시굴(試掘) 성적이, 평당 돈반(坪當一匆五分)이다. 금은 80도(金의 純粹度 80퍼센트)치고 최고 그 가격이 대략 18원이다.

18원이면 광구세(鑛區稅), 토지 사용료를 비롯하여 채굴비는 물론이요 사무소의 인건비까지, 또는 광구대금 일만삼천 원의 금리(金利)까지, 전비용을 합산해서 마침 수지상쇄가 된다. 금 나는 것을 가지고 전비용을 끌 수가 있는 것이다.

하고 나면 고스란히 떨어지는 것이 한돈쭝에 대하여 삼 원씩을 정부에서 내리는 산금장려금(産金獎勵金)이다. 이십만 평을 다만 산금시킨다면 그 장려금이 자그만치 구십만 원이다.

윤평의 계산은 무릇 이러하다. 그리고 그것만을 그는 믿는다.

어떤 한 자리 천 평쯤이 바가지로 퍼담도록 싯누런 금싸라기가 깔려서 단손에 십오만 원이 생기고 어쩌고 한다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가령 그러한 사실이 당장 생겼다 하더라도 우연과 가외의 소득으로 돌릴지언정 당연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을 사람이다.

윤평은 저 자신뿐만이 아니라 동업자로 끄는 중인 장두식으로 하여금도 부질없이 투기적 사행심을 가지고 나서는 태도를 피하게 하고 싶었다.

그것을 알아듣도록 설명하기에 그는 힘이 쓰였다.

윤평과 장두식이 나란히 앞을 서고 박덕대는 뒤를 따르고, 같이 사무실로 향하여 가는 길이다.

“아무튼지 오군(吳君) 말만 믿고 하기는 하는데…… 지금은 그래 얼마가 든다 했지?”

“건 덕대허구 상의해 할 일이지만…… 박덕대 어떡허시료? 첫바닥을?”

“많어두 안되구 적어두 안되구 사백 평이 꼬옥 적당하겠지요.”

“그 사백 평 비용은?”

장두식이 묻는다.

“세금비(洗金費) 알라 오천 원이면 됩니다.”

“오천 원! 으음…… 그러고 그 밖에?”

“토지사용료 천 평어치 천 원을 한목에 치러야 허구요.”

“우선 사백 평어치만 주믄 안 되오?”

“건, 안될걸요?”

“그럼, 육천 원하고…… 또?”

“그러군, 도구 장만하는 데 들 것이 오천 원 가량……”

“그렇게 드나?”

“들구말구!”

윤평의 대답이다. 대답하면서 윤평을 속으로

‘이렇게 버얼벌 떠니, 장차에 동업을 한다더라도 속 무던히 상하겠다!’ 고 뜨악했다.

“으음…… 도합 그럼, 일만천 원이라…… 근데? 작업은 언제쯤 시작케되오?”

“도구를 말끔 갖추자면, 빨리 서둘러두 보름은 걸려야 합니다.”

“그럼 삼월 들어서군?”

“그렇죠! 이럭저럭하면, 삼월 열흘께나 벽채를 걸게 되겠지요”

“그리구운……”

장두식은 두루 생각을 하면서 한동안 걷다가

“이렇게 하기로 하지 응? 오군?”

“응.”

“오늘 밤차로 내가 내려가서……”

“………”

“나는 아무래도 노백이로 예만 와서 붙어 있을 수는 없고, 내 대신 볼 사람이 하나 있어야 않나?”

“그야 있어야 하겠지!”

“그러니, 사람도 올려보내고 그편에 돈도 보내고 하지…… 돈은 우선 토지사용론가 그거하고 도구 장만할 거하고 육천 원만 먼첨에 보내문 되렷다?”

“쯧!……”

“작업비는 그리고 작업 시작하문서 내라도 가지고 오기로 하고?”

“아무리나!”

윤평은 장두식이 일일이 소심하게만 구는 것이 비위가 상하여 대답 소리가 제풀에 범연하다.

그러다 생각하니 너무 노골하게 그런 내색을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돈이 한꺼번에 전부 필요한 건 아니니깐……” 하고 뒤를 풀어준다.

벌판을 다 지나 동네 앞 밭두덕으로 올라섰다.

밭에는 어느덧 파아란 보리순이 소복소복이 자랐다.

그런 밭에서 노란 저고리 위에도 밭이랑 동네랑 잔디 언덕에도 맑은 봄볕이 한결로 내린다. 포근한 봄볕이다. 어디서 낮닭이 홰를 치며 꼬꾜오 우는 소리라도 들리듯 하면서 조용만 하다. 졸립게 조용하다. 봄이 가만한 무엇을 마련하기에 자지러졌느라고 깜박 아무 소리도 없나보다.

“건데, 냄이는 말이지……”

장두식이 나물 캐는 새악시를 보니, 나미가 절로 생각이 나던 모양, 박덕대에게 들리지 않도록 음성을 낮추어

“시체 그 연애라 하는 걸 하는 눈치든가?”

“아니!”

“암만해도, 내게 하는 태도가 전과 달라!”

“그런 것두 아냐!”

“내야말로, 동네 새악시 믿다가 장가 못가지 않나? 사십 총각이! 허어허허허……”

윤평도 빙긋이 같이 웃다가 속으로는 걱정이면서도 천연히

“저두 소견이 있겠지, 설마…… 자넬 설마……”

“아무튼 이번 내려간 기회에 내가 자주 섬에도 건너다니고 하문서, 적극적으로……”

“거 참, 날만 졸라쌓지 말구서, 자네두 즉접 공셀 좀 취하두룩 하게나?”



8. 이 날이 흐리기 전에[편집]

‘대체 영감이 날치야! 어디서 용힌 저렇게 새파란 색시를 또……’

화선은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 집 대문간으로 들어서다가 무심코 해끗 다시 돌려다본다. 홍주사와 그의 아낙?(이라는) 용순이 어께를 맞비빌 듯 나란히 그새 벌써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임바네스로 어깨를 싸고 솜버선에 슬리퍼 구두를 신고 아깃아깃 여덟팔자 걸음을 걷는 홍주사와 비단 양말에 쌘 몽실몽실한 두 종아리가 탄력 있이 두루마기 아랫자락을 차헤치는 걸음매만 하여도 우선 발랄한 젊음을 느끼게 하는 용순과…… 이 한 쌍이 바야흐로 시방 동부인이란 걸하고 나섰거니 하면 차마 정시(正視)하기도 민망스런 부조화가 아닐 수 없었다.

한 십여 일 전에 화선은 이 집으로 이사를 왔었다. 그리고 바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붕을 같이한 이웃이라 이사 온 인사를 갔더니 뜻밖에 저 두상이 딸 같은 색시와 새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주책망나니가! 라고 웃었으나 쯧 보통이지야고, 예사로 여겼고…… 그날부터 곧 화선은 용순과 친해졌다.

화선은 용순의 북실북실하니 심덕 무척 좋게 생긴 얼굴이 첫눈에 눈에 들었다. 두드러지게 어디가 이쁜 데는 없어도 그래도 이뻤다. 놀음 세월이 없어서 밤낮으로 그는 와서 놀며 살다시피 했었다. 그러면서 용순이 말하는 것, 마음 쓰는 것이 모두 어리석달 만큼 유순하고 모진 구석이 없는 데에 아주 그만 홀딱해버렸다.

용순도 화선이 실없이 좋았다. 홍주사의 말대로 하면, 기집이 좀 까불고 수선스럽기는 했으나 그 까불고 수선스럽고 한 것이 용순은 별로 성가신 줄도 싫은 줄도 모르겠었다. 저의 집 드난이나 행랑사람들에게 하는 것으로 보아 결기와 인정이 있어보였다. 그런 결기와 인정 있음이 더우기나 용순은 퍽 그를 따르고 싶게 좋았다.

“홍주사?”

화선은 둘이의 그렇듯 어울리지 않는 뒷모양을 빙그레 웃으면서 잠깐 바라보고 섰다가 갑자기 불러댄다.

홍주사와 용순이 한꺼번에 고개를 돌린다.

화선은 실상 홍주사더러

‘제발 좀 따로 떨어져서 가시오!’ 하고 조롱의 말을 하렸던 것이다. 그러나 용순의 그 젖애기처럼 무심히 웃는 얼굴을 보니 아무리 농담이라도(새겨 들으면 뼈 아파할)그런 소리는 하기가 안되었었다.

화선은 그래서 얼른 다른 말로 둘러대기를

“어쩌문 혼자만 재밀 보러 가시요?”

“혼자라니?”

홍주사는 도리어 다잡듯 그러면서 옆에 섰는 용순을 돌려다보고 벌씸 웃는다. 뚝뚜욱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싶고 사뭇 들이 귀여워 못하겠는 모양이다.

진정 홍주사는 용순이 귀여웠다. 들쳐 없고 덩실 한바탕 춤이라도 추고 싶도록 그는 이 어린 ‘색시’가 귀여웠다. 자연 기쁨이 흘러 넘치던 것이었다.

기쁘기는 용순도 기뻤다. 그는 홍주사가 저를 귀애하는 것처럼 저도 홍주사를 ‘사랑……’ 하는 건지 어쩐 건지 그것은 몰랐다. 아직껏 그런 생각은 해본 일도 없었다. 또 해보았자 모르기가 쉬웠을 것이었다.

단지 만족할 따름이었다. 홍주사의 해주는 모든 것이 만족했다. 그래서 기뻤다.

오래지 않아 시부모님의 승낙이 나면 떳떳이 그때는 시댁으로 들어갈 것을 그는 믿었다. 또한 만족이었다. 그래서 기뻤다.

장차는 친접집을 도와줄 것으로 홍주사의 언약이 있었다. 그것을 용순은 믿었고 더없이 만족했다. 그래서 기뻤다.

혼인 예식을 남몰래 속살로 한 것이라든가 남편 된 홍주사의 나이 오십이 가깝다든가 이런 등속의 미흡은 그러한 여러 가지 만족과 및 그 약속에다 대면 족히 문제삼을 것도 못되었다. 따라서 용순은 얼마든지 기뻐해도 좋았다.

기뻐할 줄만 알았지 한 불길한 그림자가 뒤를 밟는 줄은 그러나 모르고 둘이는 태연히 종로로 나왔다.

화신으로 향하던 길이었으나 우선 길 옆의 남양상점엘 들렀다. 둘이는 함께 종로를 나올 적이면 반드시 남양상점에 들러, 그들의 복받은 혼인 중매를 서준 이곳 주인 남주사에게 경의 를 표하기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남양상점의 남주사는 용순과 홍주사를 위하여 월하빙인 노릇을 했을뿐만 아니라 그전부터도 하나는 친구로서 각각 인연과 교분을 맺고 지내왔었다.

홍주사는 지물포 남양상점의 이층을 빌어 작년 늦은 가을까지 근 십 년 동안이나 건축삼누소를 내었다.

처음이야 단순히 집을 빌어쓰고 빌려주고 하는 주객 관계에 불과했으나 이윽고 둘이는 한가한 때의 이야기벗이 되었다. 나이가 서로 비슷비슷하여 이야기가 곧잘 어울리곤 했었다.

그 다음 점심때면 같이 식사를 하러 다녔다.

또 그 다음엔 종종 같이 술을 먹으러 다녔다. 같이 술을 먹으면서도 소위 지기상합하여 단단히 친구가 되었다. 그러기를 근 십 년 하고 나니 이만저만찮은 지기지우가 되고 말았다.

용순은 소학교를 마치고 내내 집어 들어앉았다가 다 늦게 작년 여름부터 남양상점의 여점원으로 와서 있었다. ‘여점원입용(女店員入用)’이라고 써붙인 것을 보고 마침 직업을 얻으려던 참이라 허실삼아 물어본 것이 당장 그 자리에서 남주사의 구두시문(口頭試問)에 무난 합격이 되었다. (무론 누가 당했어도 낙방이 될 염려가 없는 구두시문은 구두시문이었지만……)

남주사는 지인지감이 무던했던 싶어 현금을 만지는 레지스터로 여점원을 채용하려면서 그 부모와 당자더러만 신칙을 했을 따름 ‘유력한 자산가의……’ 보증도 받지 아니했었다.

겨우 반 년 남짓한 주객이었지만 남주사는 용순을 매우 신임하고 귀여워도 했다. 용순도 남주사를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이렇게 해서 맺어진 인연이었고 그 인연 그 주선으로 필경은 혼인까지 하게 되고 했던 것이다.

혼인이 되기 바로 십여 일 전이었었다. 가게를 파하고 돌아가는 용순을 남주사가 자기 집으로 조용히 불러, 마땅한 혼처가 있다면서 홍주사의 말을 내놓는 것이었었다. 연전에 상처를 했고 자녀간 소생은 없고 재산은 오륙십만 원 실하고 충청도의 양반이요, 사람이야 너도 가금 보아서 아는 바 더 말할 것도 없고, 오직 한가지 나이가 좀 많은 게 흠절이나 실상 남자 나이 마흔두 살쯤 별반 과하달 건 없고, 그러고 만일 혼인이 되기만 하면 너의 집안도 힘을 볼 것이고…… 대범 이러한 내용과 조건이었다.

용순은 부끄럼을 타기 말고도, 속히 어떻다고 할 수가 없었다.

‘마흔두 살이나 먹은 새서방? 이층에 들었던 바로 그 홍주사 으런? 그이가 새서방?’

이렇게 생각하면 까르르 웃음이 나올 것도 같았다. 그러나 또 어떻게 생각하면 상관없는 거도 같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좋은 자리로? 큰부자에 양반이요 한 그런 좋은 자리로?’

이상히 겁이 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미스런 것도 같았다.

다른 것은 이렇게 얼떨떨했으나 여부없이 귀에 차악 안기기는

‘……너의 집안도 힘을 볼 것이고……’ 라든 이 말이었다. 후취라는 것, 나이 많다는 것, 너무 분에 넘치어 겁이 난다는 것 등의 떠름함을 힘있게 배제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튿날 용순어머니는 남주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결과, 우선 가합한 줄로 대답했다.

그러나 박덕대r13;박재근은 아낙이 와서 그 상의를 하는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십이 넘어 오십줄에 앉은 사람에게 딸자식을 후취로 주기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었다. 항차, 그 덕을 보자고서야……

이러는 남편을 누누이 달래어 겨우 응락을 받았고, 혼인은 불일성지로 진행이 되었었다.

말이 나와가지고 결정이 되기까지 불과 사오 일이었는데, 그 사오 일 동안에, 신랑 홍주사는 나이를 한목 세 살이나 더 먹는다는 재주를 부렸다.

중매애비 남주사는 일껏 혼인이 다 작정이 되고 난 자리에서야

“참 홍주사가 올해 마흔둘인 줄 알았드니 병신생(丙申生) 마흔다섯이드군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난 말하듯 했다.

용순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마흔둘도 과한데 마흔다섯이라니!……’

마흔다섯이면 장모 될 자기보다 한살 위요 장인과는 같은 동갑이었다.

용순어머니는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의견이 어떻다기보다도 남편이 다시 반대를 할 터이어서 걱정이었다.

“말이 그렇지 갓 그저 마흔밖엔 안돼 보입넨다. 용순이도 늘 보는 배……”

“………”

“그러구저러구, 마흔둘이나 마흔다섯이나 얼마 상관이 아니니깐드루……”

“………”

세상일이란 둘러댈 따름이었다.

이십오 전이면 적당한 물건을 사십이 전에 흥정을 했다. 했는데 삼 전을 더 불러 사십오 전을 내라고 한다. 사람과 형편 따라 너무 비싸다고 파의를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히 아쉬우면

‘아따 기왕 비싼 줄 알고 해논 흥정…… 십칠 전 비싸나 이십 전 비싸나 삼 전 상관이니 쯧……’ 이라면서 그대로 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용순어머니는 딸에게만 알리고 남편에게는 숨기고서 닷새 앞으로 택일이 난 벼락혼인 준비를 부랴부랴 서둘렀다.

어물쩍 준비가 되고 내일이 혼인날인데 별안간 오늘 저녁에 큰 말썽이 뒤집어졌다. 말썽하고도 약간 요전날 신랑이 사오 일 동안에 나이를 서너살씩 집어먹은 따위가 아니었다.

홍주사의 양친이 원체 완고한 노인들이 되어서 소위 ‘신식 여학생 며느리를……’ 더우기나 종로바닥의 가겟방에 나와 앉아서, 뭇놈 눈청 쓰여가며 해뜩거리던 새악시를, 며느리로 맞아들이기를 절대 불응한다는 것이었었다. 십여 일 동안을 밤과 낮으로 혀가 닳도록 빌어도 종시 듣지를 않는다는 것이었었다.

용순어머니는 그만 앞이 캄캄했다.

지금 당하여 파혼을 할 수는 없었다. 또 놓치기가 아깝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집안을 주장하는 어른들이r13; 시부모가 막는 혼인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홍주사는 심히 울적하고도 근심스런 얼굴을 들었다 숙였다 할 뿐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 혼인을 부득불 파혼을 한다든가, 그런 절망적인 태도인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혼인을 하기는 할 터인데, 졸지에 마땅한 묘책이 없어 답답하고 초조하여 하는 눈치 같았다.

입맛을 쩌쩝쩝, 담배를 갈아 피우면서 궁리궁리하던 중매애비 남주사가 이윽한 한 꾀를 궁리해냈다.

예정대로 내일 예식을 그대로 치를 것…… 하되 단솔히 하여 소문 퍼지지 않도록 조심할 것…… 예식을 치르고 나서는 조용한 곳에서 당분간 딴살림을 차릴 것…… 한 반 년이고 일 년이고 그러면서 한편으로 서서히 노인들을 달래어 허락이 내리거든 비로소 그때는 큰댁으로 떳떳이 들어 갈 것…… 그러나 노인들의 허락이 있기 전에 탄로가 나게 되면 불고이취(不告而娶)에 대한 노염이 클 것이매 일이 더 각다분할 것인즉 들어가는 그날까지는 각별히 비밀을 지키도록 할 것……

무너진 하늘에 솟아날 궁리가 겨우 한 구멍 뚫린 형국이었다.

용순어머니는 이번에도 딸과만 짜고서, 일후에 불행히 무슨 파탈이 있으면, 남편과 딸 앞에 목숨으로써 사할 요량 잡고, 혼인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오직 딸의 행복을 위한 일념이요 그 모험이 어찌 막상 덕을 보자는 딴 궁량이 있었음은 아니었다.

남편 박덕대는 처음부터 와락 내키지 않는 혼인이라 일체를 아낙에게 미루고 알은체를 아니했거니와, 동갑 사위한테 절을 받기가 창피하다고 혼인날도 참례하기를 피했었다. 그래서 더구나 모험은 여의하게 진행이 되었고, 또 아직껏 탈도 없어오던 차이었다.

불길한 그림자는 건너편 상점 앞에 가 지켜서서 홍주사와 용순의 거취를 망보고 있고……

둘이는 남양상점의 유리문을 밀고 나란히 들어선다.

점원들이 각기 인사를 하고 뒤미처서 방에서 남주사가 그 위대한 배를 손으로 슬슬 문대며 반겨 나온다.

“어이 우리 조카님들!”

“안녕하셌어요 아저씨?”

남주사와 용순이 서로 이렇게 인사의 말을 하고 홍주사는 눈을 흘기면서

“남주산 그새 사람이 된 줄 알았더니 종시 그 대종이시구료?”

“아니 이 조카님, 건 어떻게 하는 말씀요?”

“또! 또!”

“그럼 홍주사가 내 조카뻘이 아니 된단 말씀요?”

“술 한잔 자알 내께시니 제발 사람 좀 되슈!”

“허어허허허!……”

남주사는 큰 배를 흔들면서 전방이 떠나가게 한바탕 웃는다.

“건데 여보 홍주사!”

“무슨 버리장머리 없는 소릴 또 헐 영으루?”

“아니 이건 참 진정 말인데……”

남주사는 말하다 말고 홍주사의 얼굴을 유심스럽게 되씻어 보아쌓는다.

얼굴 본바탕이야 다시 보나마나 육장 보는 그 얼굴이었지 별다른 것이 없다. 강파른 살피에 쌍스럽달 만큼 두꺼운 입술에 철색(鐵色) 질린 살결에…… 무릇 일부일처(一夫一妻) 제도가 엄격한 고장에서는 살기가 매우 옹색스럴 그런 어떤 종류의 남자의 특징을 가진 여전한 그 얼굴이었다.

남주사가 지금 그와 같이 홍주사의 얼굴을 유의하여 보기는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그 점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가느다랗게 다듬에 세운 코밑 수염이 그린 듯 곱다. 웬만큼 잘 그렸다는 여자의 눈썹보다도 맵시가 난다.

면도를 정갈하게 했다.

여러 가지 화장수를 써서 닦달한 살결이 윤기 있고 매끄럽다.

이런 온갖 자상스런 치장으로 하여 훤하니 트인 그의 얼굴은 주름살이 많이 펴지고, 피부도 한결 타녉 있어 보인다.

남주사는 문득 거기에 주의가 갔던 것이다.

“아무튼지 사람이 젊은 색시하티루 장가두 한번 가구 볼 이량!”

일변 부러움까지 곁들여 남주사는 절절히 이렇게 감심을 한다.

“그럼 어디 이번일라컨 내가 남주살 중맬 설까?”

“열살투룩은 빈말이구, 외누리 없이 다섯 살 하난 젊어지섰소!”

“괜헌!”

“천만에!……”

남주사는 용순에게로 고개를 돌리면서

“어때?”

“………”

용순은 속으로는 귀에 솔깃한 말이나 대답은 할 줄 모른다.

“용순이조카 보게두 홍주사가 마흔다섯 살 자셔 보여?”

“………”

“응?”

“몰라요!”

“저거 보겠지! 허어허허허! 아무래두 중매턱 더 먹어야 할까봐?”

“중매턱이라니 말이지……”

홍주사가 거드는 것이다.

“석잔의 백곱장이해서 삼백잔은 자셨으리다? 그리구두 부족해서?”

“건 홍주사가 낸 거구…… 우리 용순이조칸 여태 없었으니깐드루……”

“그럼 여자니깐 떡이래두 듭씬 좀 해다 대접하나?”

“여잔 중매턱이 따루 있는 법이지!”

“무언구?”

“보선!”

조심하고 있던 점원들까지도 그만 참다 못해 와끄르르 웃어젖힌다.

용순은 부끄러워도 이런 조롱은 얼마든지 들었으면 좋게 싶게 즐거웠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운 것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이르나보다 했다.

화신으로 들어서니 봄 목도리가 선뜻 눈에 뜨인다.

봄 목도리가 두르기엔 아직 좀 일렀지만 여우목도리는 철이 벌써 아니었다. 그것을 알 줄을 모르는 용순은 여우목도리를 두르고 나왔었다.

철만 늦었을 뿐이 아니라 여우목도리는 세월도 이미 지날 대로 지났다고 한다. 이 근년은 미상불 안잠이 쇰직한 아씨네와 꼬부랑할머니가 여우목도리를 많이들 두른다. 내로라던 유행과 호사거리로부터 추레한 실용품으로 전락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땟국 묻은 옛날의 호화몽(豪華夢)을 부질없이 촌 술청 색시들의 은총에다 부치고 있고……

이러한 변천에 대하여 홍주사 또한 감각이 와락 날쌔진 못한 편이라 혼인 때에 목도리로는 가장 호사요 가장 으뜸가는 목도리를 사주느라고 사준 것이 그 여우목도리였었다.

용순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호사요 가장 으뜸가는 목도리가 여우목도리였기 때문에 목도리에 가장 으뜸가는 호사를 한 줄로 만족하고 즐거울수가 있었다.

이를테면 모름의 행복이란 것이겠는데, 진실로 우리는 그런 줄을 알았더라면 곧 기절을 할 재앙이나 불행도 아직 모르고 지나는 덕에 편안하고 호강인 수가 얼마나 많음이던가……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봄 목도리를 이걸 집었다 저걸 집었다 몇번이고 뒤적거리기만 하면서 용순은 하나 선뜻 골라잡지를 못한다.

그러다가 하다하다 못해

‘아이 어느 걸로 해요?’ 하고 구원을 청하는 듯이 걱정 잔뜩 난 얼굴로 옆에 섰는 홍주사를 조른다.

용순은 그 여러 가지의 목도리 가운데 어떤 색깔이나 어떤 모양이 나의 얼굴 생김새랄지 살빛이랄지 혹은 취미랄지에(이른바 개성에) 조화가 되는가?…… 이것을 신중히 고려하느라고 그래 선택에 고심을 하던 것이 아니었다.

용순은 저 자신의 개성에 대한 관념이 매우 빈약했다. 그는 얼굴이 너부스름하고 살결은 흰떡같이 희었다. 흰떡 같은 고로 살이 무르기도 했다.

열굴이 너부스름하고 살결이 희고 무르고 한 것까지는 저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을 개성으로서 인식할 줄은 몰랐다. 따라서 ‘내 얼굴에는……’ 머리를 어떻게 빗고 화장의 농담은 어떻게 하고 옷은 무슨 빛깔과 무늬와 본을 택하고 해야만 잘 어울린다는 것을 즉 ‘나의 개성이……’ 살며 발휘가 된다는 것을 그는 알 줄을 몰랐다. 그 대신 그는 저 자신의 개성과 조화야 되거나 말거나 값이 비싼 것이면 아름다우며 호사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혹은 알락달락 원시적인 극채색(極彩色)이면 아름다우며 호사로 생각할 따름이었다. 또는 옆의 사람이 좋다고 골라 주는 것이면 아름다우며 호사로 생각할 따름이곤 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화장한 것이며 의복 차림차리가 두루 어색하고 촌스럽디촌스럽다.

아직 소학교를 마친 학식이요 촌구석에서 가난히 살다가 겨우 한 반 년동안 먼지 퀴퀴한 지물포의 레지스터로 있으면서 속된 ‘거리의 호사……’를 어설피 약간 눈익힌 데 지나지 못하는 터이매, 오히려 무리 아닌 노릇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근본된 이유는 그가 제 얼굴 생긴 것처럼 맘씨도 무름하니 심덕 좋기나 했지 자주적일 수 있도록 옹골지고 영리하고 하진 못한 그의 천품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었다.

이렇듯 개성에 무감각하고 자주적이질 못하기는 비단 화장이나 의복에 들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든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전체가 즉 인간 그 자체가 마치 분에다 가꾸는 화초러럼 주장이 없고 수동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남주사가 좋다고 권을 하고 어머니가 가합하다고 하는 데 좇아 깊이 생각함도 없이 홍주사와 결혼을 했던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러는 것으로써 ‘좋은 것(善)을 느꼈던 것이었었다.

쳐서 말하자면 병신스럽다고 할 것이요, 좋게 보자면 어린 양같이 유순하다고 할 것이었다.

“그게 어때? 바루 그……”

홍주사는 용순의 손길 앞을 턱으로 가리킨다.

용순은 연분홍을 집어 보이며

“이거요?”

“응!…… 그러든지, 저기 저걸루 하든지.”

“어느 거?”

“아따 저 놀먐한 거……”

“이거요?”

“응, 응!”

용순은 양손에 하나식 치켜들고 홍주사의 얼굴 바로 가져다 보인다.

“값은 어는 게 많지?”

“분홍요.”

“그럼 분홍으루 해!”

홍주사 역시 값이 많은 것이면 더 아름다우며 호사인 줄로만 생각하는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

용순은 핸드백에서 돈지갑을 꺼내어 대문짝만한 백원짜리 값을 치른다. 오늘 흥정돈으로 아까 집에서 나오면서 홍주사가 손수 지갑에다 넣어준 것이었다.

좋은 목도리를 사고…… 그러면서 백원짜리로 값을 척 치르고…… 용순은 이중의 기쁨이었다.

남양상점에서 반 년이나 레지스터로 있는 동안 백원 지폐를 종종 만져 보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때의 백원 지폐는 용순에게는 단순한 종이조각에 지나지 못했었다.

시방은 그런데 백원짜리 ‘돈을……’ 용순은 쓰고 있던 것이다.

몇가지 흥정을 더해 꾸러미 꾸러미 나눠 들고 화신을 나왔다.

“오늘은 저녁일랑 밖에서 먹자구!”

“집이 가서 안 잡수시구?”

“허허허!…… 가만히 볼라치면 집에서 살림살일 하는 게 제일 재미가 나내 봐? 끼니대마다 얌전스럽구 맛있게 온갖 찬을 장만해설랑 오밀조밀하게 밥상을 차리구…… 깨끗이 집안을 닦달허구 세간을 손질허구…… 바누질을 허구…… 응?”

“………”

용순은 말을 아니해도 웃는 눈이 그렇다는 대답을 한다.

“아암, 여자라껀 다아 그래야 하는 법이구말구!……”

“………”

“그러니깐 마누라 그게 더구나 이뻐서 오늘은 내가 마누랄 위로할 겸 한탁 거얼게 쓸 테란 말야, 응?”

“아이 참 내!”

“허허허!……자아 무얼루다 한탁을 쓴다?…… 지나요리가 어떨꾸?”

“전 아무거래두 갠……”

“옳아 참! 지나요린 둘이서 겉이 먹으로 가긴 첨이지?”

“………”

“그리구 아직 진짜 지나요린 골고루 못 먹어봤을 거야?”

“………”

용순은 웃는다. 덴뿌라 잡채 탕수육 짜장면 만두 우동 이런 것을 어쩌다 한번씩 구경한 듯 먹어본 적밖에 없었다.

남촌의 일류 지나요리집으로 가기 위하여 전차를 기다리면서도 남주사는 지나가는 택시를 연해 물색한다.

“참 우편국은?……”

용순이 문득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네시꺼정이죠?”

“나두 깜박 잊었지!…… 네시 넘었을걸?”

둘이는 각기 시간을 본다. 아직 십분이 남았다.

“댕겨가세요? 늦일까요?”

“미급되지! 지끔 예서 광화문우편국까지 가자면……”

아까 집에서 홍주사가 백원짜리를 지갑에다 넣어주면서

“다아 써어 응?” 하는 것을 용순은

“냉겨서 저금해요!” 했었다.

“저금할 건 따로 주지!” 하는 것을 용순은

“다아 쓰기루 한 거 다아 안 쓰구 냉겨서 저금하믄 더 재밌잖아요?” 했었다.

사실 용순은 그동안 홍주사가 저금을 시켜주어서 한 것과 오늘처럼 다 쓰라는 돈에서 더얼 쓰고 저금을 한 것과 통 다 합하면 이백 원이 훨씬 넘는다. 저금이 차차로 늘어가는 재미 그것 또한 즐거움의 하나였다.

봄을 제법 머금은 햇볕이 여전히 맑다. 그러나 예의 불길한 그림자 역시 여전히 둘이의 뒤를 밟아 전차엘 따라 오른다.



9. 慶州[편집]

해운대(海雲臺) 어떤 여관의 객실에서…… 밤이 깊었다.

준은 맨 다다미 바닥에 가 아무렇게나 팔다리를 내던지 채 멀뚱히 천장을 올려다보고 누워 언제까지고 현실의 시간과 공간을 잊어버린다.

이러한 육체상의 정신상태와는 따로이 그의 머릿속은 한껏 동요되고 혼란했다. 여러 가지 헝클어진 상념(想念)이 가득차 겉잡을 수 없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훈련 없는 군중을 몰아다놓아 제마다 저를 주장하며 제각기 함부로 지껄이며 떠들고 하는 것처럼 무질서한 혼란이요 동요였다.

그러한 혼란 동요의 와중에서 준은 초초히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수습 정리하려 앨 쓰던 것이나 이내 그것은 뭇 어지러운 상념의 소음으로 하여 번번이 지워져버리고 말곤 하는 것이었었다.

멀리서 밤 바다를 건너 구슬픈 기적소리가 우웅! 길게 울려온다.

준은 기적소리에 무심코 바른손을 가만히 쥐어본다. 나미의 손길을 잡던 손이다. 아직도 따스하던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칼슘주사처럼 심장으로 화끈히 배어드는 것 같다.

아까 아침 일찍 나미는 부산서 배를 타고 통영으로 떠났다. 준은 여관에서 묵었다가 선창으로 나가서 그를 배웅하여 주었다.

시간이 되어와도 나미는 배에 오르고 싶어하지 않았다.

“부산선 언제 떠나시구?”

“지끔 곧……”

“어디루? 서울?”

“아아니!”

“그럼?”

“으음, 해운대루……”

“해운대?…… 아이 어째!”

“………”

“그러구” 해운대선?“

“으음, 경주루……”

“아이 참!……”

못견디어 그러면서

“어쩌믄 이런 때 병환이 나섰어!” 하다가 그제야 그만 턱을 오므리고 아랫입술을 문다.

나미나 준이나 다같이 둘이서 함께 통영으로 통영서 다시 섬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야 간절했었다. 그러나 서울이라면 혹시 몰라도 말많은 시골인데 아직 그토록 돌연히는 친척이랄지 아는이들 앞에 공공연하기가 자저로운 무엇이 없질 못했다.

승객이 탈 만큼 거진 다 탔는데 북적하던 선창이 엔간히 헤성헤성했다.

“어서 인전 타시요.”

“안 타요!”

“안 탄다?”

“………”

“그럼 찰 타구서 서울루 도루 가구!”

“아버진 어떡허구?”

“그럼 통영으루 가구!”

“………”

“자아 늦기 전에 어서……”

“경주서 서울룬 언제쯤?”

“쯧, 승지와 고적 찾아서 나선 사람이 돌아갈 기약이니 조만이 있소?”

“그래두!”

“수히 가긴 가겠지!”

배에서 쟁이 울렸다.

“………”

나미는 눈으로 가기를 고하고 한 걸음 물러서려다 잠깐 망설이는 듯하더니 선뜻 손을 내민다.

손 안에 담쏙 다 쥐어지는 안김성 보드라운 살결의 촉감과 배어드는 따스한 온기…… 그 순간 준은 전신이 푸르르 떨림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미와 만나 이때야 비로소 심장이 높이 뜀을 느꼈다.

나미는 주었던 손을 빼앗듯 도로 뽑으면서 그대로 배를 향해 달린다.

댓 걸음이나 그렇게 달려가다가 주춤하고 돌아보면서 고개를 까딱 기리고는

“아버지 병환 조금 나시면 곧 서울루 가요!”

“………”

준은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이튿날 준은 해운대를 떠나 경주로 가서 내처 보름 동안이나 두류했다.

많은 고적이 있고 그 고적이 모두가 멸치 않는 예술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고, 풀숲을 걸으면 함부로 굴러 있는 주춧돌이나 깨어진 기왓장에도 역사의 한 토막 한 조각씩이 어리어 있고…… 이런 그윽한 옛 도읍에 머무르면서 두루 배회하는 사이 준은 헝클어졌던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준은 경주가 초행인 것은 물론 아니었다.

누차 왔었다. 그러나 이번 길에 받은 심리상의 영향은(심리상태가 심리상태이었던만큼) 스스로 특이한 바가 있었다.

안압지(雁(232;池)로 계림((388;林)으로 혹은 포석정(鮑石亭)으루 무열왕릉(武烈王陵)으로 수없이 거닐고 다녔다.

박물관으로 가서 찬란한 금관(金冠)과졍교한 비취의 패물들과 봉덕종(奉德鐘)과 그 밖에 갖추갖추의 유물들을 보며 거듭 해를 지우곤 했다. 불국사(佛國寺)로 나가서는 사흘 나흘씩 묵으면서 청운교(靑雲橋)r8;백운교(白雲橋)를 무시로 오르락내리락 혹은 석가탑(釋迦塔)r8;다보탑(多寶塔)을 감돌며 혹은 함영루(涵影樓)에 지여 서서 세월 가는 줄을 잊어버리기가 몇번인지 몰랐다.

토함산(吐含山)에도 자주 올랐다. 석굴암(石窟菴)의 그 살아 있는 듯 자비로운 석가여래상(釋迦如來像) 앞에서는 가는 적마다 오래도록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석굴암에서는(바로 경주서 떠나던 그 전날인데) 문득 이런 생각도 했었다.r13;아주 예서 살았으면 하는……

조석으로 석여가래상을 우러러보며, 만일 할 수 있으면 염불도 외우면서 속세와 멀리하고 호올로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이미 속세r13;현실사회에서 그다지 생각 있는 한 사람이 아닐진대, 물러와서 차라리 부처님께 제도중생의 염불이나마 외우는 몸이 됨직도 할 것 같았다.

별로이 종교적 신앙을 가진 바도 아니요, 불교의 깊은 교리를 터득한 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직 정성이면 신앙심 이상일 수가 있을 것이요, 정성이면 교리는 아직 몰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유구한 역사와 생명 영원한 예술의 분위기에 흔연히 잠기어, 현실에 대한 관심이 대범하여진 소치라고 할는지, 아무튼 준은, 어떤 크고 부드러운 손길이 조용히 머리 쓸어주는 듯, 훨씬 안정된 상태에서 반성 결론 할 여유가 생겼다. 그것은 마치 밤낮으로 천문대에 들이박혀 천체(天體)의 관측과 연구에 몰두한 학자가 가정이랄지 일신의 신변사에 범연하고 등한키 쉬움과 흡사한 것이었었다.

마음이 일종 맑아진 것이라고 볼 것인데 한갓 일시적 현상일는지 또는 근본적인 변화일는지 그것은 아직 판단하기 어려운 노릇이나, 그러나 하옇든 그와 같이 마음이 맑고 대범하여진 당장의 결과로 나미에게 대한 그

‘어떻게 할 것인가?……’ 만은 수월히 대답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는 나미와의 사귐이 현재 이상 더 나아가서는 심히 불가함을 아프게 깨달았다. 따라서 이것으러써 마지막 한계를 삼고 이상 더는 나아가지 말리라 했다. 그리고 지금의 소위 ‘연애하는……’ 감정을 방향을 고치어 누이동생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미를 사랑하리라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를 당하여 모든 것을 토파하고……

하기야 시방 아주 피리어드(終止符)를 침이 가장 현명하고 군자다운 처사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미를 일체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 일지요, 또는 만나서 “버젓한 안해가……” 이 말을 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었다.

준은 그러나 은연한 미련이 있었음인지 미처 거기까지에는 생각이 이르지 못했다.



10. 童話의 傷處[편집]

날이 저물어 어슬어슬 땅거미가 질 녘에 준은 고향엘 당도했다. 아침 일찍 경주서 떠나서 오던 길이었다.

나미에게 대할 태도는(매양 그대로 실행이 되느냐, 안되느냐는 다음 문제요) 아무려나 그쯤 요량한 바가 있었다지만, 아낙 서씨에 대한 것은 종시 막연했다.

심히 절박하게

‘어떻게든 무슨 도리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만은 여전히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무슨 도리를 어떻게 차릴 것인지가 막연하기는 역시 일반이었다. 오직 하나의 좋은 도리r13;새로이 남편이 되어 ‘이십 년 만에……’ 비로소 그를 안해로서 찾아 줄 자신이 끝끝내 없었던 것이다.

결혼 초야에 나이 어린 신부가 몹시 놀란 것으로 인하여 그당장 영영 미치고 만다든가 가령 미치기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오래도록 새서방을 무서워한다든가 했다는 이야기는 흔히 있는 사실이다.

조금 돌이켜 신문의 지방통신에

‘소부가 방화……’ 라는 기사가 허다히 났고 그 내용인즉은 태반 이상이 어린 색시가 남편이 무서워서 시집살기를 면하려고 철없이 저지른 짓이곤 했다. 대개는 몽매한 하층계급에서 생기는 불상사였다. 스무 살이 훨씬 넘어 혹은 근삼십 된 장정이 겨우 열너댓 살, 심하면 열두어 살박이 소녀를 신부랍시고 데려오니 첩경 쉬운 일이었다. 빙허(憑虛 : 玄鎭健)의 「불」이라는 단편이 그러한 사실을 테마하여 매우 핍진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준의 경우는 그런데 사정이 그와 정반대였었다. 신부가 크고 신랑이 어리어 신랑이 놀랐었다. 직접 신부에게 놀란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그 밤에 한번 놀랐음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그는 아낙을 무서워하던 것인데, 물론 지극히 드문 일은 드문 일이었다.

이십일 년 전 준의 나이 열세 살 되던 정월이었다.

세안부터 매파가 들락날락하더니 선을 보러오고 보러가고 했다. 미구에 양가가 합의하여 정혼이 되고 곧 이어서 택일까지 났다. 사주단자와 납폐가 가고 집에서는 혼인 바느질이 벌어졌다. 한 삼십 리 상거요 외가와 바로 한 동네였다.

준의 외조모는 그 혼인을 와락 그리 내켜하지 않았다. 같은 한 동네라 소상하게 잘 아는만큼

“인물도 그만하면 무던하고 범백이 다 얌전스럽고 집안도 너이 임씨네만 못하든 않고 두루 그렇기는 하지만, 규수가 보매 이상히 청승스러 보이느니라! 여자가 그렇게 청승스러 보이면 영락없이 팔자가 센 법이여!”

그러면서 노마나님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첫눈에 규수를 탐탁히 본 강부인은 조금도 어디가 청승스러 보인다고는 생가지 않았다. 모두가 마음에 들 뿐이었다. 그래서 노마나님의 고만 반대의견 같은 것은 귓등으로 듣고 말았었다. 그러고서 후일 노마나님에게

“거 보려므나! 애초에 내가 무어라드냐?” 하고 누누이 탓을 들었다.

열세살박이 소년 준은 혼인 준비로 집안이 웅성거리는 것처럼 그의 마음도 설레었다.

장가를 간다는 것이 무슨 큰 무거운 것을 떠안기우는 것 같았다. 곧 힘에 부쳐 뒤로 쓰러질 것 같았다.

동무들이 놀려주어싸서 부끄럽고 괴로와 못하겠었다.

제발 그래서 장가를 고만두었으면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한 즐거운 기대가 솔깃이 기울었었다.

장가간 동무들의 하는 말을 들으면 색시가 무척 좋은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쁜 손수건도 만들어 주고 맛있는 군것질도 가만히 가져다 주고 한다는 것이었었다. 준은 군것질이나 손수건이 구태여 가지고 싶은것은 아니었다. 가만히 맛있는 군것질을 시켜주고 이쁜 손수건을 만들어 주고 한다는 것을 통하여 상상되는 ‘어머니다운……’ 상냥스럼에 대한 소년 준의 동경이었다. 엄하지도 무섭지도 않고 한갓 부드러우며 응석부릴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이……’에의 동경이었다. 소년은 이윽고 한조각 고운 꿈을 창작(創作)하였다.

새댁은 첫봄의 개나리꽃 같은 노랑 저고리에 진달래꽃잎 같은 연분홍 치마를 받쳐 입었다. 치마끈에 단 오색 수실 달린 노리개(佩物)를 찼다.

곱게 머리를 빗었다. 똑바로 탄 하얀 가리마가 참 곱다.

쪽이 날아갈 듯 맵시 있다. 여러 가지 비녀를 꽂아서 못 날아가고 날아 갈 듯 맵시만 난다.

시면하고 분바르고 이쁘게 단장했다. 도도록한 두 볼때기가 더 이쁘다.

보오얀 버선에 알쏭달쏭 수놓은 꽃당혜(花唐鞋)를 조그맣게 신었다. 그런 발등으로 연분홍 긴 치맛자락이 드리웠다. 드리운 치맛자락을 흰 발등으로 가만가만 헤치면서 걷는다.

소년 준은 인제 오래지 않아 와서 있을 새댁을 이렇게 상상했다. 혼자서 그런 상상을 하고 있을 적이면 저절로 빙그레 웃어지곤 했다.

새댁은 어른들이 계신 데서랑 남이 보는 데서는 고 새까만 속눈썹을 내리고 아주 못본 체한다. 그러나 단 둘이만 있을 때에는 내렸던 눈썹을 가만히 들고, 하얀 도도록한 볼때기로 방그레 웃는다.

준은, 무엇이 모두, 물어보고 싶어서 궁금해 못한다. 그러나 무슨 말을 물어야 할지는 모른다.

눈을 깜작깜작 한참 생각하다가 거우

“집이서 무어 했우?” 하고 묻는다.

새댁은 대답을 못하고 아까처럼 또 웃는다.

그렇게 웃는 웃음이, 준에게는 얼마든지 따르고 싶은 임의롭고 안심되는 웃음이다. 무슨 말을 하든지 어떠한 잘못을 하든지 나무람도 않고 노하지도 않고, 그저 다 받아주는 웃음인 것이다.

“응? 무엇 했수? 집이서.”

준은 또 묻는다.

새댁은 그제서야 아까보다 더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기는 무얼!…… 그냥 집이서……”

“으응!…… 그러구?”

“아이 참!”

“공부했수! 학교 댕기구 했수?”

“아뇨!”

“으응!……”

준은 또 한참 깜작깜작 생각하다가

“인전 집이 안 가우?” 하고 묻는다.

새댁은 호호 웃어지려는 것을 참고

“인전 여기가 집인걸!……”

“정말?”

“그럼!”

“으응!…… 집이 어머니 안 보구푸?”

“보구퍼두 어떻게!…… 인전 여기 어머니가 어머닌걸!”

여기 어머니가 어머니라니 준은 좀 모르겠었다. 그러나 그러는 것인가 보다 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놓이고 기쁘다

새댁은 정말 집으로 가지 않았다.

자고 깨어서 본다치면 그날도 그대로 있다.

학교에 갔다 오면서, 대문으로 들어서는 걸로

“어머니?” 하고 부른다치면, 으레 새댁이 방에서든 부엌에서든 먼저 나온다.

어머니한테라면, 꼭 꾸지람을 듣든지 달초를 당하든지 했을 일인데, 새댁은 하나도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듣든지 달초를 당하든지 하고, 울면서 건넌방으로 건너온다치면 조금 있다 새댁이 조용이 들어와 바투 다가앉아서 눈물을 닦아 주곤 한다. 그러면서 어떤 때에는 근심스럽게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흔히는 꺄웃하고 웃으면서 들여다 보아 준다.

준은 이내 울음이 그쳐지고 방금 당한 일도 씻은 듯 잊혀진다.

거의 병적으로 상상력이 강렬한 소년 준은 장차 새댁으로 더불어 있을 날과 날을 어떻게 그리면서 일찌기 없던 기쁨을 누리었다. 그러면서 빙그레 혼자 미소하기 또한 몇번이었던지 모른다.

드디어 사흘 앞으로 혼인날이 당했다.

그러나 한 악동이 있어 소년 준의 죄없는 ‘고운 꿈의 세계……’ 에다 부질없이 장난엣 돌을 던지어 큰 괴로움을 주고 마침내는 그로 인하여……

별명은 ‘째보’요 준과 사년급 같은 반이요 나이는 열아홉이요 시오리나 걸어서 촌에서 통학하는 아이 아범이었다.

놈이 능글맞고 전 익살꾸러기요 맨 장난 괴수였다.

새로 부임한 교원더러

“선생님! 제 딸년이 올해 여섯 살인데 어디 얌전한 사윗감 없을까요?” 란 소리를 해서 무렴을 준 일도 있었다. 그는 정말 여섯살박이 딸을 두었었다. 그리고 그 교원은 째보 저와 한동갑인 열아홉살짜리의 배애 어린 대용교원으로 하도 앳되고 이쁘장스런 것이, 제자 녀석한테 그런 소리도 들음직했었다.

모레 글피면 장가를 가게 된 오늘이었다. 준은 마침 소제 당번이 돌아와서 째보와 꾀쇠라는 아이와 이렇게 셋이 하학 후에 교실 소제를 했다.

콧노래를 불러가며 무건 걸상을 한손으로 번쩍번쩍 들어올려놓고 있던 째보가 무단히 또 놀려주느라고

“준이 너 참 색신 나이가 몇 살?” 하고 묻는다.

준은 얼굴이 빨개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하던 비질만 한다.

오늘도 벌써 열 번도 더 대가리 굵은 놈 조무래기 할 것 없이 뭇놈들한테 장가간는 놀림을 받으며 시달리고 난 참이었었다.

“몇살이냐?……열아홉이냐? 스물이냐?”

“………”

“난 아알지!”

꾀쇠가 까불면서 거들고 나서던 것이다.

“몇이라든?”

“열여덟 살!”

“이키!……”

그러고는 싱글싱글 준을 곁눈질해 보다가

“얘? 준아?”

“………”

“너 큰일났다!”

“………”

준은 무엇이 어째서 큰일이 났다는지 마음이 불안했다.

“당기풀일 한턱 자알 내문 알으켜 주지만……”

준은 속으로

‘집에 떡이랑 고기랑 많이 있는데……’ 하면서 저 꾀쇠한 아니라도 얼른

‘그럼 한턱 내께!……’ 하고 싶었다.

“응? 어떡헐늬?”

“………”

“오오 너 그랬담 봐라!”

“그러지 말구 친절허게 좀 알으켜 주지 무얼!……”

꾀쇠가 요놈이 실상은 제가 듣고 싶단 말은 않고r13;준보다는 두 살이나 위요 또 아이가 조달해서 그런 말이라면 귀가 반짝 뜨이던 것이다.

“월사금두 아니 받구 그렇게 쉽게?……”

“자세두 허네!”

“쯧!…… 알으켜 주랸? 준아?”

“………”

“조고 보겠지? 퍽 알구푼가 보지?”

“………”

“그래! 알으켜 주지!…… 그 대신 소제 남저진 느이 둘이서 마저 다아 해예지 돼애?”

“응!”

꾀쇠가 선선히 대답한다.

준도 이의가 없었다. 꼭 알아야 할 일이라면 소제는 열 번을 혼자 맡아서 해도 좋았다.

“그럼 소제하믄서 잘들 들어?”

째보는 그새 교단으로 올라가더니 두 팔로 교탁을 짚고 서서 저의 반 담임선생의 충청도 사투리와 음성을 흉내내어

“한눈팔지 마아구 똑똑이 들어!……”

그러고는 픽 웃으면서 잠깐 말을 끊는다.

운명이 안타까이도 비곡(否曲)되는 줄은 알 바가 없고 준은 귀에다 신경을 모아 침 삼키며 기다린다.

째보는 가장 그럴 듯이 큰일났다고 하고 무얼 알으켜 주마고 하고 하기는 했으나 실상은 남의 아이를 놀려먹기가 좋아서 띄어놓고 종작없이 그냥 지껄인 소리였을 따름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그렇게 말을 낸 이상) 지금부터 이야기를 만들어서 정말 큰일이 났다는 것을 꾸며대야 했다.

“새악시가 나일 열여덟 살이나 먹었을라치면 백에 아흔아홉꺼정은 벌써 성칠 못한 법여!……”

째보는 제야말로 아흔아홉까지는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째보의 하는 말을 아흔아홉까지는 곧이들었다.

준은 째보의 그 성칠 못하단 소리를 알아듣기엔 아직도 어렸다. 그러나 무엇인지는 몰라도 재미 없는 뜻인 줄은 거니챌 수가 있었다.

준은 마음이 언짢았다.

그 머리 곱게 빗고 이쁘게 단장하고 노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 입고 꽃당혜 신고 한 얌전스런 그가…… 속눈썹 가만히 들고 방긋 웃어주고 암만 잘못을 해도 노하지 않는 그가…… 어머니한테 달초당하고 건너와서 우노라면 살며시 들어와 눈물이랑 닦아주어 이내 마음이 풀리고 기쁘게 해주는 그가…… 이렇게도 좋은 그가 재미 없는 일이 무엇일까 싶어 구만 울고 싶게 걱정스럽다.

“우리 동네 한 놈두 장갈 갔는데 말야…… 색신 준이 느이 색시처럼 열여덟 살이구…… 그리구 기앤r13; 새서방은 으음…… 기애두 아마 준이 너허구 동갑이댔지?…… 준이 너 몇살이냐? 열둘? 하나?”

“………”

준은 아이가 원체 잔착해서 열세 살이라도 열한 살이나 두삭밖에 안 먹어 보였다. 사실 그때에 그는 만(滿)으로는 열두 살도 채 못되었었다.

“준이 몇살이지, 꾀쇠야?”

“열세 살.”

“오오 열세 살이지!…… 그래 참 기애두 열세 살이댔서! 마참 너허구 한 동갑이댔서! 차돌이라구 허는 아인데……”

준은 올랐던 걸상을 하나씩 하나씩 힘들여가며 내려놓기 시작한다. 째보가 하는 말을 놓치지 않으려고 조용조용 조심해 내려놓는다.

“아 그래 차돌이놈이 장갈 갔는데…… 처억 첫날밤에 색시가 들오는데 열여덟 살 먹은 색시가 말야, 준이 느이 색시처럼 말야…… 아 색시가 들오는데 참! 무섭드래!”

준은 가슴이 섬뜩하면서 걸상 내리려든 손을 움칫한다.

“키가 어쨌든 훠얼씬 크구 파랑 낭갑사 치마에다 시뻘건 자주 저구릴 입구 그 위단 울듯불긋한 원삼을 입구 응?……”

무심히 최면에 걸려든 줄은 모르고 준은 아닌게아니라 옷을 그렇게 입고서 큰 새악시가 야밤중에 푸시시 들어오면 정말 참 무서울 것 같았다.

제발 ‘그는……’ 옷을 그렇게 입지 말았으면 싶어졌다.

“아 그리굴랑 얼굴은 어떤고 허니 말야……횟박 쓴 거매니루 허옇게 분을 바르굴람 이마에다 볼때기에다 턱에다 딜입다 시뻘겋게 연지 찍구 곤지 찍구…… 무섭지? 준아?”

“………”

준은 돌아선 채 스스로 눈을 감는다.

“그리군 또 머리단 족도릴 쓰구!…… 아 그렇게 무섭게 차리굴람 처억 들와선 새치임허구 앉었겠다!…… 차돌이놈은 조막막한 놈이 무서서 죽을 지경이지! 간이 콩만허구 가슴이 두군거리구! 준이 너처럼 말야! 응? 준아?”

“………”

준은 차라리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차돌이놈은, 준이 너보담은 쬐꼼 그래두 당돌했든 모양야!…… 첫날 밤에 색시 옷 벳긴단 말은 들었겠다, 놈이 잔뜩 무선 걸 참군 살그머니 한손을 가져다 댔드래나?…… 그랬더니 어태 그 새치임허구 앉었든 색시가 빙긋 웃드래요…… 에구 요고사! 그런 뜻야……가소롭다구…… 그럴 거 아냐? 거미만한 게 새서방이라시구 덤비니깐……”

꾀쇠는 저마저 소제는 거들려고도 않고 맨 앞줄의 책상에 가 대롱대롱 걸터앉아서 이야기에만 정신이 팔렸다.

준은 건성으로 걸상을 내려놓아가고 놓아오고 하고 있다.

“아 그런데 말야!…… 준이 똑똑이 잘 들어! 예서버틈이 정말 요긴헌 대목야!”

준은 일부러 꽝 소리를 내여 걸상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한번뿐이지 더는 못한다. 괴로와도 끝까지 가만히 다 듣지 않고는 못배겼다.

“그렇게 참 색시년이 시쁘다구 빙깃 그렇게 웃는데 마악 그럴 때 말야! 별안간 등뒤서 철그덩 하더니 벽장문이 열리겠다? 아랫묵 벽장문이!…… 그러믄서 꿍허구 웬 덜머리진 총각놈이 뛰내려오드래! 신방으로! 눈이 왕방울 같구 키가 구척 장신에 수염이 시꺼먼 총각놈이! 손에단 시퍼런 칼을 들구!…… 으응.”

째보는 신바람이 나서 본시로 구성진 입담이겠다, 억양과 왼속을 휘청휘청 주어가며 그 긴장한 장면을 눈에 서언히 보이도록 그려낸다.

준은 숨이 탁탁 막혔다. 전신에 힘이 빠져 책상을 의지하고 가까스로 몸을 지탱한다.

“아 그래놨으니 고놈 차돌이놈이 무어가 됐겠니? 준이 너 곁으믄 당장 그 자리서 까물쳤다! 까물쳤어요! 차돌이놈이나 허니깐 까물치든 않구 바들바들 떨구만 있었지!…… 너 참 정신 차례예지 헌다? 정신 바짝 차리구 있다가 총각놈이 꿍 허구 내려뒤거들랑 째보형니임 날 살려 주우 허구 고함을 쳐요! 그럼 내 마침 밖에서 기다리다가 끼눔! 호령을 허구 쫓어 들어가께시니……”

꾀쇠가 준을 돌려다보면서 까르르 먼저 웃는다.

이어서 째보도 껄꺼얼 웃어젖힌다.

준은 그러나 머리가 후끈후끈 귀속이 왱 울고 정신이 얼떨떨하여 어째서 그들이 웃는 것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흥 넌 좋구나!…… 총각놈이 색시년더러 하는 소리야! 그러니깐 색시년은 한단 소리가, 왜 이래요 이건! 남 속상허느만!…… 척 이렇게 받어넹기드라나! 아무튼 술이나 한잔 먹자꾸나! 너 시집가는데 내가 한잔 아니 먹을 수 있느냐?…… 그러니깐 색시년이 병풍 뒤에다 ㅊ아려놨던 술상을 내놓는 거야. 총각놈이 술을 한 동일 동이째 들군 벌컥벌컥 단숨에 다아 마시더니 칼루다 돼지다릴 두 토막에 쓱 잘라서 한입에 넣군 으득으득 씹어먹겠다!…… 그러군 술 더 없니? 허니깐 색시년이 헌닷 소리가 술이야 없을랍디까마는 조골 어여 처질 해에죠! 허니깐 총각놈 대답이 토막을 쳐서 술안줄 헐까? 색시년 말이 어떡허자구 방에서 피비린낼 풍길 양으루 허우? 총각놈 말이, 그렇기두 해! 그럼 내 집어가지구 나가서 없애버리구 오께시니…… 아 그러더니 글쎄 다아 죽어가는 새서방을, 차돌이놈을 말야, 괭이새끼 한 마리 집어들듯이 두 손꾸락으루다 집어들군 바깥으루 나가는 거야! 동동 요로케 집어들구…… 얘?

준아? 여길 좀 봐요!“

“………”

“차돌이놈은 몸핀 죄끔 커서 괭이새끼 한마리 집어들기 같았지만 준이 넌 아마 엔간한 쥐 한 마리 집어드는 푼수밖은 안될 게다? 응? 준아?”

“………”

꾀쇠가 끝이 궁금해서 기다리다 못해

“새서방을 집어들구 나가선 그리군 어떡했느냐니깐?”

“응!…… 아 그렇게 집어들구 나가선 으싯한 뒤꼍 울타리 밀으루 가더니 글쎄 무우나 그런 것 동강 치듯이 말야 허릴, 허리토말을 응? 썩둑! 한칼에……”

‘으악!’

이 소리가 쏟쳐 나오는 것을 겨우 삼키고 두 손으로 얼굴을 싸면서 준은 펄썩 주저앉았다.

소년 준은 째보의 하던 이야기사(싫어도) 그대로 죄다 믿어졌다. 그런 일이 꼭 있을 것만 싶었다.

그날 밤부터 우선 공포의 밤이 시작되었다.

초저녁 일찌감치 불을 끄고 누워 보았다. 어둠은 더 무서웠다. 도로 불을 켰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감은 눈에는 ‘그것……’이 서언히 보였다.

거기는 어느덧 신방이었다.

벽장 있는 신방이었다. 병풍을 둘러치고 금침을 펴놓았다. 한쌍 촛불을 밝혔다. 촛불은 화안히 너울거려 준을 가뜩이나 더 무섭게 한다. 준은 오도카니 혼자 앉아서 작은 가슴을 졸이고 있다.

밤이 깊었다.

마침내 신부가 들어왔다. 족도리 쓰고 원삼 입고 남치마 입고 키가 훨씬 크다.

부옇게 분을 발랐다. 이마에다도 볼에다도 턱에다도 시뻘겋게 연지 찍었다.

비스듬히 웃목을 향해 새침하고 앉아 있다.

준은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인제 좀 있으면 빙긋 웃을 참이었다. 이제나저제나 하고 준은 기다린다. 간이 콩만해서 기다린다.

암만 기다려도 그러나 소식이 없다. 무심코 할끗 곁눈질해 신부를 본다. 그러다 신부와 눈이 마주쳤다.

신부는 얼른 도로 눈을 내린다. 내리면서 빙긋 웃느다.

그 순간 준은 머리끝이 쭈뼛하고 더럭 가슴이 내려앉느다. 하는데 그때다. 덜커덩하고 벽장문이 열리면서 연달아 꿍, 뛰어내리는 소리!

‘악!……’

놀라면서 준은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휘휘 방안을 둘러본다. 아무것도 그러나 없다. 신부도 없고 총각놈도 없다. 없고서 제가 공부하는 책상과 손궤짝과 벽에 붙은 그림과 남포불과…… 이런 것들만 차례로 보인다. 비로소 첫날밤도 신방도 아니요 저는 아직 그대로 집에 있음을 안다. 가슴을 쓸면서 길게 한숨 내쉬고 도로 눕는다.

그러나 현실의 인식과 안도는 잠깐이요 어느 겨를에 다시 망상에 사로 잡히고 만다. 병적으로 상상력이 강렬한 그는 고삐 뗀 말처럼 방분히 달리는 공상을 막고 어거할 기력이 없었던 것이다.

눈이 왕방울 같고 수염이 시꺼멓고 키가 구척 장신의 덜머리진 총각놈이다. 손에서 시퍼런 칼이 번쩍번쩍한다.

준은 전신에 맥이 풀려 바르르 떨지도 못한다. 거진 다 까물쳤다.

총각놈이 신부더러r13; 흥 너는 좋구나 한다. 신부가 뾰로통해서r13; 이건 왜 이래요 남 속상하느만r13;한다.

총각놈이r13; 아무튼 술이나 한잔 먹자꾸나r13;한다. 신부가 병풍 뒤에서 술상을 내다 놓는다. 총각놈이 술을 동이째 들고 단숨에 들이켠다. 도야지다리를 칼로 쓱 잘라서 으득으득 씹어먹는다.

총각놈이 술 더 없느냐고 한다. 신부가 저걸 어서 쳐치해버리라고 한다.

총각놈이, 그럼 동강을 쳐서 술안주를 할까r13;한다. 신부가 찡그리면서r13;어떡허자구 방안에서 피비린내를 풍기요r13;한다.

총각놈이 달려들어 웬만한 쥐 한 마리 집어들듯이 두 손가락으로 동동 집어들고 나간다.

뒤꼍 으슥한 울타리 밑으로 왔다. 썩둑 허리를 동강쳐 내던진다.

‘으읏!……’

신음소리와 더불어 진저리를 치면서 준은 화닥닥 뛰쳐 일어난다. 휘휘 둘러본다. 제 몸뚱이가 피를 뿜으면서 웃도리 각각 아랫도리 각각 풀쩍풀쩍 뛰는 모양이 공부하는 책상과 손궤짝과 벽에 붙인 그림과 남포불과 이런 것들과 함께 이중노출(二重露出)되어 어른거린다.

허리를 만져보는데 무엇이 치근하여 움칫 놀란다.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피는 아니고 여느 물이다. 땀이 그렇게 난 것이다.

비로소 허리는 동강나지 않고 성하고 저는 아직도 무사히 집에 있음을 안다.

그러나 미구엔 또다시 같은 망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 짓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꼬바기 밤을 밝혔다.

밝는 날 아침 강부인은 하룻밤 사이에 준이 중병 앓고 난 아이처럼 죽을 상이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디가 아프냐고 성화가 나서 몇번이고 물으나 준은 고개만 저을 따름이었다.

조반은 뜨는 시늉만 하고 학교로 갔다.

낮에는 망상과 공포는 없었다. 그러나 공포 못지 않게 아픈 것이 있으니 낙망과 슬픔이 그것이었다.

첫봄에 개나리꽃 같은 노랑 저고리에 진달래꽃잎 같은 연분홍 치마 받쳐 입고 노리개 차고 꽃당혜 신고 조용조용히 치맛자락을 헤치면서 걷는 아담스런 그가 아니었던가.

머리 곱게 빗고 단장 곱게 하고 새까만 속눈썹을 들어 방긋이 웃는 이쁘디이쁜 그가 아니었던가.

암만 잘못을 했어도 나무라지도 노하지도 않고 어머니한테 달초를 당하고 우노라면 가만히 뒤따라 들어와서 눈물 닦아주며 곧 마음 풀리게 하여주는 알뜰스런 그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두루 즐겁고 재미있고 좋고 한 그가 아니었던가.

이러한 그가 어째서 아니고서 그 무서운……

준은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솟아오르는 설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 솔버덩에 앉아서 울었다. 울고 또 울고 얼마든지 울어지는 대로 울었다.

눈이 부어서 학교로 내려오고 싶어도 못 내려왔다. 내처 산에서 울다가 생각하다가 하면서 오후의 반일을 지웠다.

그러고는 밤이 되자 다시 또 망상과 공포의 한밤을 겪었다.

연거푸 그렇게 이틀밤 하루낮을 부대끼고 난 준은 가뜩이나 약질이 심신이 함께 지칠 대로 지쳤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머리가 횡 어지러우면서 눈앞이 깜깜했다.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쏟아졌다.

집안이 발끈 뒤집혔다.

강부인은 첫마디부터 어디가 아픈데 말을 아니하느냐고 나무라기로만 들었다.

숙부와 숙모가 번갈아 달래어 물었으나 준은 종시 고개만 흔들었다.

의원 영감을 청해다 맥을 보였다. 별 탈은 없고 기혈 부족이라면서 약을 쓰면 곧 원기 회복이 될 것으로 말했다.

강부인은 학교를 쉬게 하는 일변 약을 지어다 먹이며 조섭을 시켰다.

인삼과 우황 등의 약덕으로 준은 얼마간 원기를 추어가지고 이튿날 마침내 혼인길을 떠났다.

준이 조금만 더얼 내찬 소년이었거나 혹은 강부인이 조금만 더얼 엄한 어머니였거나 했었다면 준은 진작 벌써

‘아따 어머니 큰 색시한테로 어린아이가 장가를 가면 이러이러하고 이러이러한다는데 나는무서 장가 가는 거 싫여!……’ 하고 응석삼아 제 속에 있는 말을 했을 것이었었다.

그러면 어머니 된 이는 웃으면서

‘온 그게 어디 당한 소리냐? 시방 세상에…… 그건 저어 옛날 이야기란다! 개명한 학도가 그런 옛말을 곧이듣고 무서해? 오온!’ 하는 것으로 족히 그 공포심과 의혹을 훨씬 풀어줄 수가 있었을 것이었었다.

그러나 준은 모친을 대하여서나 또는 다른 누구를 대하여서나 제 마음의 의혹이면 의혹 고민이면 고민을 토파할 줄 아는 소년이 아니었다. 도리어 누가 알까 저어할지언정…… 그러면서 안으로 안으로 더 깊이 더 골똘히 파고들기나 할 따름이지……

그뿐더러 가령 토파하고싶은 생각이 혹시 난다고 하더라도 막상 그는 모친인 호랑아씨는 물론이요 그 밖에 아무도 마땅히 그럼직한 누가 있다고 여기지를 않는 아이였었다.

오직 한 사람 외조모를 지극히 따르며 귀염받고 하기는 하면서도 그러는 외조모에게조차 그는 저의 마음속을 헤쳐 보일 생각은 할 줄 몰랐었다.

외가에서 중화(中火)하여 거기서 혼인길을 차렸다.

준은 사모 쓰고 관대 띠고 사선(紗扇)으로 입 가리고 커다란 백마 등에 조그맣게 높이 앉히워서 갔다.

일산은 드높고 견마성도 양양히 높았다. 안부는 말타고 함 지고 앞에서 가고 후행과 수모는 교군 타고 뒤따랐다. 눈 녹이는 따사한 날이 햇빛은 눈부시게 맑았다.

고샅고샅이 여인제들이 팔짱 끼고 모여서서 구경을 했다.

신랑이 의젓하느니 퍽 잔착하느니 과부댁 외아들이라믄서야고 그래도 탁신한 부자란다고, 그렇기나 하길래 저만큼이나 기구가 좋지야고…… 이렇게들 부러워도 하고 혹은 칭찬도 하며 더러는 폄도 했다.

아이들이 좋아라고 앞과 두로 좌우 옆으로 패 지어 따르며 달리며 했다.

남들은 이렇게 모두들 저를 구경하며 재미있어 하건만 정작 저는 어디서 시방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냥 건성이었다. 그것은 흡사히 눈 멀뚱히 뜨고 대낮에 앉아 꿈을 꾸는 이와 같았다.

그는 견마성 소리를 듣기는 들었다. 그리고 견마성 소린 줄까지는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뿐이었다.

아이들이 달리고 여인제들이 나섰고 한 것을 보기는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구경을 나온 줄가지는 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뿐이었다. 즉 그는 감각만은 했으나 인식이랄지 관념은 하지를 못했다. 말하자면 허탈된 정신상태이었던 것이다.

제발 그

‘개나리꽃 같은 노오랑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 꽃당혜…… 머리 곱게 빗고…… 이쁘게 웃고…… 상냥하게 눈물 닦아주고……’ 하던 그이기를 바라는 일념과 한편으로는

‘벽장문 있는 신방의…… 키 크고 옷 끔찍스럽게 입고 연지 찍고…… 새침하고 앉았다 빙긋 웃는…… 덜크덩 꿍 하고 뛰어내리는 덜머리진 총각놈……’ 하던 공포심과 이 두 가지 생각에 우환중 골똘해 있느라고 가뜩이나 정신이 없었던 것이었었다.

준은 모든 것을 아무 정신없이 치렀다.

비단 준이 아니라 고만 낫세의 소년이면 아무가 되었든지 장가를 드는 날이니 소년답게 우선 흥분하고 얼떨떨해서 정신없이 일을 치르기가 차라리 당연한 노릇일 것이었다. 그럴 터인데다 준은 따로이 그러한 곡절이 있어놓아서 더우기가 정신이 아니 없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준은 정신없이 말께 앉히워 와서 정신없이 초례청으로 이끌리어 들어갔다.

아찔아찔 현기증을 느낄 뿐 정신없이 성례를 지냈다. 그런 중에도 앨써 의식을 가다듬어 신부를 보아보려는 경황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원삼 소매로 잔뜩 가린 얼굴이야 물론 보이지도 않았지만 차림새도 한번 언뜻 본 것으로는 그것조차 어떠했던가를 역력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 여러 우수들에게 옹위되어 있는 그 키가 완구히 솟는 것만은 적실했었다.

‘……키가 훨씬 크고……’

망상 가운데의 신부의 모양은 우선 키가 큰 것에서부터 일치가 발견이 된 것이었다.

큰 상을 어떻게 받았으며 장인이라는 이는 수염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몰랐다.

이윽고 후행으로 왔던 숙부가 돌아갔다. 따라온 하인들도 같이 돌아갔다. 공포와 불안의 이 집에다 오직 수모 한 사람을 준에게 남겨주고서 다들 돌아간 것이었다.

날이 저뭇했다. 그만큼 밤은 벌써 가까와 온 것이다.

준은 외조모를 까맣게 기다렸다. 아까 혼인길을 떠나보내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나 이따가 가마아? 느짓해 가서 잠깐 들여다보아 주고 오마아?…… 첫날도 안 지나서 새 사돈네를 가서 예법은 아니다만서두 쯧 동네 이웃간이니 숭허물이야 할라드냐!”

준은 외조모가 꼭 올 것으로 믿고 기다렸다.

석양 무렵이 되어서야 노마님은 왔다. 그러나 오자 이내 돌아갔다.

준은 그만 낙심이 되었다.

대문 밖에까지 배웅을 나와서 다r13;함께 나온 장모라는 이만 사위와 같이 들어가려고 저만치서 대문 기둥에 지어 기다리고 섰고, 가까이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노마나님은, 어서 인젠 들어가란 말을 하려고, 주령을 짚고 멈추어 서면서 준의 등을 어루만진다.

준은 와락 메달리고 늘어질 듯이 그러면서 안타까이 외조모를 올려다 본다. 곧 울상한 얼굴을 해가지고 비실비실 몸을 꼬면서 그러는 양이(입에다 손가락만 물지 않았지) 얼뚱애기 그대로의 거동이다.

노인은 귀를 대주듯 하면서 묻는다.

“왜? 응?”

“………”

“응? 준아?”

“할머니?”

“오냐?”

“가지 마아!”

“오오! 날더러 가지 말라구! 너허구 같이 있구 가지 말라구! 호호호!…… 온 이 일 어쩌나!”

노인은 외손주를 끌어당기어 뚝뚜욱 등을 두드려 주면서 혼잣말같이

“할미가 그려서! 이 알뜰한 외할미가 그저어 딸리구 그려서, 한번이나 보믄 그마안 이렇게 떨어지기가 싫어서! 쯔쯧!…… 몹쓸 에미가 하두 불호랑이처럼 엄하게만 잡두릴 허구 헤싸니깐, 어린것이 연한 정을 어따 붙일 데가 없어서! 쯔쯧!”

“………”

“아가 준아!”

“응?”

“할머니 낼 또 오마아?”

“………”

“아, 느이 장모님이 널 조옴 귀여구 이뻐허실까? 업어래두 주구퍼 허실 건데!…… 아 또 느이 이이쁜 새댁이 있구!…… 아무려면 이 푸달진 외할미만침 널 못 귀여들 해줄까? 호호호!”

“………”

“저봐라! 느이 장모님이 저기서 저러구 널 기대리시잖느냐? 어서 뫼시구 들어가거라!”

“………”

“할머닌 그러구 갔다가 낼 또 오께시니 응?”

“………”

준은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하고 돌아섰다.

그러구러 해가 지고 인하여 밤이 들었다.

준은 드디어 신방으로 인도하여다 앉힌 바 되었다. 벽장 있는 신방으로!

준은 벽장이 없기를 얼마나 바랐던고. 그러나 벽장은 기어코 있었다. 들어서면서 준은 그것을 먼저 여새겨 보았던 것인데 역시 벽장은 있었다.

벽장을 보는 순간 준은 가슴이 섬뜩했으나 벽장이 있는 그 사실이 의외는 아니었다. 응당 있어야 할 것으로 미리서 여겨졌던 것이요, 그래서 반드시 있을 줄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랫목으로 벽에 바싹 대어 춤 얕은 반병(半屛)을 쳤고 그 위로 벽장이 보인다.

벽장은 문에다, 새로이 도배하면서 난초를 한 폭씩 붙이어 하얀 벽 바탕에서 더 잘 벽장인 것이 눈에 뜨인다.

문은 닫기었으나 더얼 닫았음인지 이가 맞지 않는지 방긋이 조금 틈이 벙그러졌다.

고리도 걸리지 않았다. 네모진 백통고리요 돌쩌귀도 박혀 있고 하다. 그러나 안에서 내어밀면 걸렸어도 열리는, 그래서 걸으나마나한 고리다. 자물쇠로 해 잠글 때나 소용이 되는 고리인 것이다.

신부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거미만한 신랑 준은 오도카니 혼자 앉아서 벽장문을 거듭 올려다보고 올려다보고 한다. 무엇인지를 할 듯 할 듯 별러싸면서……

놋촛대에서 팔서리 같은 쌍촛불이 간단없이 너울춤을 춘다. 방안은 그럴 때마다 무싯한 그림자가 얼찐얼찐 커다랗게 얼찐거린다.

웃목으로는 칸 질러서 높다란 병풍을 쳤다. 그 너머 웃칸은 어둠…… 어둠 속에서는 찬바람이 돈다.

바깥은 조금 아까까지도 우세두세 소란하던 것이 어느 사이 그치고 고요하다. 간간이 신발소리와 한두 마디씩 조용조용한 말소리만 들리다 말곤 한다.

이 침정에서 준은 인제 오래지 않아 신부가 들어올 것을 예감한다.

‘들어오기 전에……’

그러면서 준은 고개를 돌리어 무서운 것을 또 올려다본다. 방긋이 틈이 조금 벙그러지고 고리는 걸리지 않고 한 벽장문을…… 그것을 꼭 밀어닫고 고리로 걸고 했으면 싶어서 하던 것이다.

준은 알고는 있다. 저런 벽장문은 암만 밖에서 고리를 걸어도(꼬챙이 같은 걸 꽂아놓든지, 자물쇠를 채우든지 한다면 몰라도) 그냥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집의 벽장문이 죄다 그러고, 삼촌네니 외할먼네니 동무 아이들네니, 벽장문이란 벽장문은 다 보아야 다 그랬다. 암만 밖에서 고리를 걸었어도 잡아당기든지, 누가 그 안에 있다가 내어밀든지 하면 저절로 열려지게 죄다가 마련이었다.

그러나 준은 그런 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래도 저 느슨히 벙그러진 것을 꼭 밀어 닫고 고리도 걸고 하지 말 수가 없었다.

준은 몸을 도사리면서 잠깐 귀를 기울인다. 깜박 아뭇 소리도 없다.

기회는 이때다. 그 순간 준은 이를 악물면서 벌덕 일어선다. 일어서면서 그대로 사풋사풋 두어 걸음 내딛다가, 한 도약(一跳躍) 날쌔게r13;쥐를 노리던 고양이처럼 날쌔게 고리와 돌쩌귀 얼러, 벽장문에다 덥석 두 손을 짚는다. 짚으면서 딸꼭 고리를 걸고는, 그러고는 얼른 도로 물러나와 앉았던 자리께만치 가 털썩 주저앉는다. 한 삼 초나 사 초 밖에 안되는 동안인데 준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내솟았다.

무의식코 이마의 땀을 손바닥으로 씻으면서 준은 찬찬히 방금 한 일을 살펴본다. 고리는 걸리고, 틈 벙그러졌던 것도 잘 이가 맞고 했다. 조금 속이 가뿐했다. 아무 소용도 없는 노릇이면서도, 그래도 속은 가뿐했다.

신부가 들어왔다.

준이 향하고 앉은 앞문 밖에서 문득 소곤거리는 소리와 비단 옷결 스치는 소리가 어지러이 일더니, 이윽고 문이 열리면서 수모의 부축을 받으며 조용히 신부가 들어온다.

준은 보지 않고 싶어도 저절로 눈이 그리로 끌려가서 보지 말 수가 없었다.

벌어지는 원삼 앞자락 밑으로 눈이 아프게 짙은 남치맛자락a281;

치맛자락을 씻어 올라가기 한차만인 듯하여서야 겨우 키가 다하고 비로소 얼굴이 보이는 그 어마어마 큰 키a281;

부옇게 분을 더깨 앉힌 얼굴에다 턱으로 볼때기로 이마로 꾹꾹 다니며 찍은 시뻘건 연지a281;족도리 쓰고a281;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죄다 고대로 맞았다. 그러고 그렇게 참 무섭고……

준은 소름이 쪽 끼쳐 오싹 어깨를 떨면서 스르르 눈을 감는다.

자리잡아 앉히느라고 바삭거리는 옷결 소리만 잠시 계속된다.

그러나 별안간 무엇이 드르릉 한다.

준은 하마 소리를 지를 번하고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수모가 웃목의 병풍을 한끝을 미는 소리였었다.

수모는 웃칸으로 가 금침을 날아다 놓는다. 준은 기가 질리게 크고 두껍고 한 요와 이불이다.

아랫목으로 온통 그들먹하게 금침이 펼쳐진다. 초록 동정에 선지빛같이 징그러운 자주이불이다. 이 이불에서 준은 신부가 원삼 밑에 입고 있을 진자주 저고리를 연상한다.

“우리 새서방님 고단하시겠서어!……”

수모는 외짝눈으로 두목애교를 떨면서 물러나 앉는다.

동네서는 세상 보기 싫던 애꾸눈이 이 계집이었지만 오늘 밤 이 자리서는 보기 싫기는커녕 도리어 정답고 살아왔다.

“자아……인전 어서 지무시지!……”

“……”

“새서방님은 좋아서 잠두 아니 오시나바? 눈이 초랑초랑허시구! 호호호!”

“……”

“새서방님?”

“……”

“새아씨 이쁘시죠?”

“……”

“호호호!……”

“……”

준은 놀려먹는 건 얼마든지 제멋대로 놀려먹고, 같이 밤새도록 있어만주었으면 좋겠었다. 그러나 가망 없는 노릇이매 바라지도 않았다.

“자아 그럼 편아안히 지무세요……”

수모는 일어섰다.

“새아씨 너무 오라두록 앉혀 두지 마시구우? 저럭허구 앉이셔서 조옴고개두 아프구 하시겠다구요? 이쁜 새아씨가 가엾잖아요? 그렇죠? 새서방님?”

수모는 두루 서성거리며 자리끼랑 그 밖에 미비한 것이 없나 방안을 한번 둘러보다가 병풍도 좀 손을 대고 그러고는 또 한번 편안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한 후에 조용히 물러나간다.

얼마가 지났는지 가늠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밤은 어디서 바스락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죽은 듯 괴괴하다.

방안도 죽은 듯 고요하다. 선지빛 자주이불에 보오얀 분성적에다 함부로 시뻘겋게 연지 찍은 신부의 얼굴에 얼쑹덜쑹한 원삼 자락에 짙은 남치마 자락에……색채는 이렇게 모두가 끔찍끔찍스러도 소리는 먼지만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하다.

준은 살며시 눈을 치떠 벽장문을 본다. 이윽고 그러다가 그 눈을 그대로 살며시 신부에게로 돌린다. 신부는 비스듬히 웃목을 향해 그린 듯 앉아 있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눈썹 하나 까딱 않고 앉아 있다. 만들어다 앉힌 것처럼……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준은 꼴깍 침을 삼킨다. 그러고는 얼마 후에 또다시 살며시 눈을 치떠 벅장문을 보다간 신부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신부는 여전히 그러고만 있다. 준은 침을 꼴깍 또 삼키고……

이렇게 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동안 극도로 긴장했던 준은 필경엔 신경이 그를 지탱치 못하자 피로와 졸음이 일시에 엄습해 왔다. 겉잡을 수 없이 일시에 급격히 엄습하여 왔다.

몸은 파근히 노그라지고 머릿속은 안개 같은 것이 자옥이 찼다. 무엇을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하기도 대견했다. 무서운 줄도 모르겠었다.

깜박 졸았다.

그 졸아지면서 고개가 앞으로 꾸벅 떨어지는 바람에 놀라 번쩍 얼굴을 들며 눈을 떴다.

뜨는데 눈이 신부와 딱 마주쳤다. (이때에 신부가 아무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요 목석이었을 것이다.)

방긋 신부는 웃었다. 그 웃는 것을 보는 순간 준은 퍼뜩 정신이 들어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로 그때다. 또렷한 소기라 ‘따그락……’하고 벽장문에서 났다. 나자 준은 기절할 듯

“으악!”하고 울음 섞인 소리를 치면서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가고……모두가 일순간의 일이었다.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다. 수모가 물러나간 지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한 시간은 좀 못 되었을까 그랬었다. 아무튼 얌전을 내고 곧잘 앉아 있었다. 그러자 어쩌다 눈을 들어 가만히 보았더니 꾸벅하고 졸고 있었다. 얼뚱애기처럼 꾸벅하고……

보기에 민망했을밖에! 한편으로는 또 귀엽기도 했을밖에! 무심코 방긋 저절로 웃어졌을밖에!

물론 마음 같아서는 얼른 옆으로 가서 두루마기도 벗겨주고(신부가 뎁다 신랑을 말이었다!) 그래서 자리에 잘 뉘어도 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신랑이 어리기로손 나이 차기 아냐 더한 무엇이라도 첫날밤 신부로서 어떻게 그렇게 번접스럴 법이야 없는 노릇이엇다.

그건 그렇다고……

그래 꾸벅 조는 것을 보고 무심코 방긋 웃는데 마침 눈을 번쩍 떴다.

번적 눈을 뜨더니 글쎄 느닷없이

‘으악!’ 하고 놀란 소리를 치면서 방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던 것이었었다.

그 서슬에 신부가 정신을 놓칠 뻔하게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곧잘 앉아 있던 신랑이 꾸벅하고 졸다간 별안간 경풍하듯 그렇게 뛰어나가니 세상에 이런 기가 막힐 일이라곤 없었다.

어인 영문이나 알면 속이나 시원하지 대관절 무엇에 놀랐기에 그다지도 요란히 놀라며 항차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기까지 하다니!

첫날밤의 신부의 망신으로도 이만저만찮은 망신이었다.

부모랄지 남의 앞에 신부의 입장이 대단히 곤란했다.

모친이 경황중에도 조용히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나 신부는 변변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수모가 물러나간 뒤에 내내 천연스럽게 앉았더니 꾸벅하고 졸다가 눈을 뜨면서 으악 소리를 치고 뛰쳐나갔오.’

사실대로 이렇게밖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벽장문에서 따그락 소리가 난 것……이것은 신부도 귓결에 듣기는 들었었다. 그러나 그것과 이것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으리라곤 생각할수가 없었기 때문에 거리에단 통히 고려도 두지를 아니했다. 따라서 그 소리를 들은 감각조차, 그 순간 이후엔 기억으로부터 영영 침적(沈澱)이 되고 말았다.

신방을 엿듣고 있던 일가집 아주머니와 동네집 여인 두 사람도 신부의 말과 꼭같은 말을 했다. 이 여러 사람의 말과 신부의 말과의 일치는, 가지가지 불온당한 억측과 재미롭지 못한 치의로부터 신부를 구해주는 다행한 증언이었다.

신부 당자를 비롯해서 부모와 친척이나 남들이나, 그리고 그 후에 이르러 시가(媤家) 편에서나, 결국 그리하여

‘신랑이 졸고 앉았다가 깜박 그때 무슨 무서운 꿈을 꾸고, 그렇게 놀란 것이다……’고 한가지로들 해석을 하게 되었다. 가장 근리한 해석인 동시에 달리는 아무 그럴싸한 재료가 없으매 유일한 해석이 아닐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이십여 년이 지나도록 공방이 풀리지 않는다는 중대한 결과의 옆에 서서도 종시 그 이상은 다른 해석을 할 길이 없었다. 준이 오늘날까지 그 비밀을 아무에게도 한번도 발설을 하지 아니했기 때문이었다.

첫날밤 신방에서 신랑을 잃어버린 혼가의 낭패와 소동은 유로 형용할바가 없었고 즉시 불을 켜잡고 찾아나섰다.

저의 외가집 대문 밖에서 신랑은 곹 발견이 되었다. 그러나 기절하여 쓰러져 있었다.

그제서야 노마님과 하인들이 소동을 듣고 쫓아나왔고 거듭 놀라 준을 안아들여다가 사족을 주무른다, 우황청심환을 흘려넣는다 하며 서둘렀다.

이윽고 준은 정신이 깨어났다. 그러나 다시 그 집r13;처가로 가기를 한사코 마다했다. 벌벌 떨면서 외조모의 치마폭을 부여잡고 놓지 않았다.



11. 이십일 년 된 신부[편집]

장가 간 첫날밤을 신랑 준은 외조모의 품에서 잤다. 그러고는 날이 밝아서야 만단으로 달래는 외조모를 따라 처가로 가서 외조모와 함께 있으면서 신랑 노릇을 하는 시늉하며 하루를 겨우 보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외조모와 떨어져 저 혼자만 신방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알자 또다시 외가로 달리어 와버렸다. 그러고서 이튿날 신행길을 차려 신부를 뒤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래 이십일 년, 준은 아낙의 옆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채로 지내왔다.

철이 든 뒤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째보의 한 이야기가 도대체 허황한 고담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맘을 곧이듣고 암시에 걸려 터무니없는 망상을 함부로 한 것이었다.

신부가 키가 커보인 것은 족도리를 쓰고 자락이 길게 늘어진 원삼 때문이었다. 남치마와 연지가 조금 과했음은 우연한 일치였었다. 벽장이야 아무 집이건 안방이면 으례 있는 것 반병(半甁)을 쳐 눈에 뜨이도록 되었던 것이 그 역시 우연이었다.

꼬마신랑이 앉아서 애기처럼 그렇게 조는 것을 보았으니 부처님이 신부였더라도 그야 방긋하고(빙깃……이 아니라 방긋하고) 아니 웃을 신부도 드물 노릇이었다. 아니 웃었다면 정말 그는 새침데기였을 것이다.

벽장문이 따그락하던 소리……이것은 과연 벽장문에서 난 소린지 아닌지도 실상 의문이었다. 그러나 정녕 벽장문에서 난 것이라면 이가 잘 맞지 않아 언제든지 그렇게 조금 벙그러져 가지고 있기로 마련이던 것인데 부전스레 꽉 갖다가 눌러놓았기 때문에 이윽고 그것이 전대로 도로벙그러지는 바람에 걸린 고리에서 따그락 소리가 났음일지 분명한 것이었다. 그러되 하필 꾸벅 졸다가 놀라 깨어 때마침 신부가 보고서 방긋 웃는 그 순간에(운명적으로) 그것이 일치되었던 것이었었다.

장성한 준은 이렇게 정당히 판단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생리(生理)란 그의 지혜(智慧)에만 복종하는 것은 아니었다. 준은 암만 이성(理性)으로써 해도 아낙에 대한 공포증r13;얼찐하면 벌써 가슴이 떨리고 꼼짝 못하겠는 ‘병’을 끝끝내 어찌하지 못해 왔었다.

오랜 과거를 오랠수록 그러나 기억은 항상 역력한 당시의 그런 일을 곰곰 회상하면서 준은 동구 밖 정류소로부터 천천히 걸어 집으로 들어왔다.

날은 그럭저럭 다 어두웠다.

안마당을 지나 뚜벅뚜벅 대뜰 앞까지 이르러도 마침 아무도 눈에 뜨이지 않고 부엌에서만 인기척이 났었다.

“어머니?” 불렀으나, 전처럼 안방 밀창이 드르릉 열리면서

“이놈, 왜 오느냐?” 하는 모친의 왁살스런 환영도 웬일인지 없다.

그러자, 부엌으로부터

“에그머니 정말 참!……”하고 짓우는 소리로 반기면서 귀덕어멈이 쫓아나온다. 아낙 서씨도 같이 부엌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님 안 가서?”

“내애! 에구 어떻게 애!”

“무얼 그래?”

“아네요! 새서방님이 오섰는데 마님은 나들일 가시구 아니 기시구!……”

“어린앤가 머?……”

“그래두유!”

“타관에 가섰어?”

“모래멀 가신걸유! 오세두 낼이나 오실걸인데유!”

모래멀이란 준의 외가요 처가요 한 곳이다.


준은 사랑방으로 나왔다. 쓰지 않는 방이었지만, 소쇄가 정갈하고 바닥도 과히 차지 않다. 일 년에 두어 번 올까말까하는 아들을 기다려, 강부인은 이 사랑을 매일같이 소쇄를 시키고, 겨울이면 하루 걸러큼 군불을 때게 하고 하던 것이다. 준은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귀덕어멈이 석유좌등(石油坐燈)에다 불을 켜놓고 나간다. 준의 부친적부터 쓰던 이 고풍(古風)한 석유좌등은 켜면 여느 램프보다 유난히 밝아 육장 전등불 아래서만 지나던 도회지 사람 준에게도 눈에 별반 침침하지가 않았다.

고풍하기는 이 석유좌등만이 아니다. 방안의 차림새와 놓임새가 죄다 그렇지 아니한 것이 없다. 도배할 때마다 내놓고 바르고 내놓고 바르고 하여 까맣게 찌든 준의 조부의 친필이라는 주련들이 그러하고 추사(秋史)의 죽병(竹屛), 소치(小痴)의 모란족자(牡丹簇子)가 그러하다. 연상(硯床)과 문갑이 그러하고, 문갑 위로 선반 위로 그득그득이 쌓인 한서(漢書)가 역시 그러하다. 심지어 아랫목에 편 보료까지도 잇는 갈았으나마 준의 부친이 깔던 유품이다.

이 방은 그래서 이름난 학자나 예술가가 생전에 쓰던 서재를 그대로 기념 보존하여 둔 것처럼 모든 것이 준의 부친 적 고대로 보존이 되어 그윽한 고풍을 잘 간직하고 있다. 방이 그렇게 옛 풍모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음으로 해서 자연 그 부친과 더불어 한때씩 이 방에서 지내던 소년 시절의 일을 생각케 된다.

칠팔 세 그 무렵의 기억이 가장 역력하다. 그때에 부친은 밤이나 낮이나 이방에서 누워서 지냈다. 약그릇이 옆을 떠날 날이 없고 의원이 노박이로 드나들었다. 공의(公醫)도 몇 차례 왔었다. 한번인가는 교군을 차려 타고 먼 타관(××의 慈惠病院 : 現 道立病院)에도 다녀왔었다. 준은 그때에 부친이 영영 어디로 가서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아 어떻게도 슬펐던지 모른다.

노상 밭은기침을 하고 담을 뱉었다. 수족은 앙상하고 핏기 없이 해쓱한 얼굴에 퀭하니 눈만 컸다. 그러나 안색 가짐이랄지 음성이 끔직 부드럽고 조용했다. 준을 데리고 있을 때에는 더욱 그랬다. 준은 부친이 노한것을 본 기억이 없다.

준은 그러는 부친과 함께 있으며 놀기를 퍽 좋아했다. 모친 강부인은 늘 그것이 마땅치 않아했다. (준은 훨씬 자라서 부친이 폐결핵이었다는 것과 필경 그 빌미로 조세를 했단 말을 듣고서야 비로서 모친이 그러던 속사정을 깨달았었다.)

준의 부친은 그도 준이 사랑엘 나올 때마다

“밖에 나가서 놀아라!”하든지 하기는 하면서도 그 이상 더는 막지 아니했다. 그러고서 옆에 와 앉으면 머리도 어루만지고 손도 주무르고 하면서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양을 빙그레 웃으며 듣곤 했다. 어떤 때에는 말이 없이 오래도록 얼굴만 바라다보다가 길게 한숨 내어쉬면서 외면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준은 괜히 마음이 언짢아서 곧 울어지려고 하곤 했었다.

귀덕어멈이 저녁상을 내와서 준은 정신이 들었다.

귀덕어멈은 준의 앞에다 밥상을 놓으면서 천생 그 짓우는 소리로

“무셋날이라 고기두 없구……진지가 이렇게 으설퍼 어떡헤세유!……닭은 잘 잡숫지두 아녀시구……”

준은 어려서부터 집에서 그 이시로 닭을 잡아 음식에 해주는 것을 별로이 먹는 법이 없었다. 방금 닭을 죽이던 일이 질리어 먹지 못하던 것이다.

××농업학교에 다닐 때였다.

하숙집에서 닭을 잡아 미역국에 두어 끓인 것을, 닭 잡은 줄까지는 알았어도 미역국에다 둔 줄은 몰랐다가 숟갈로 한번 젓는데 하필 또 대가리가 차례에 갔던 모양, 눈을 헤멀끔 절반만 감은 그놈이 둥실 떠올라, 아이구머니 소리를 지르고 숟갈을 내동댕이쳤었다. 그날 온종일 비위가 뒤집혀서 밥도 못 먹고 지냈었다.

이렇게 지지리 약비한 신경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귀덕어멈의 엄살하고는 달라 밥상은 고기만 없을 따름이지 원체가 규모 있고 짙은 살림이라 한다는 귀객 앞에 내놓아도 과히 초라하지 않은 찬수였다. 옛날 수라상에도 이맘때면 오르기 어려운 게장이 놓이지를 않았는가.

초라하지 않은 것도 않은 것이려니와 모든 것이, 가령 속대로 골라서 김치 한 보시기를 썰어서 논 솜씨까지도 두루 알뜰살뜰했다. 그리고 반주 곁들이기를 또한 잊어버리지 않았고 해서 이 밥상을 분별한 사람의 정성을 은연히 엿볼 수가 있는 것 같았다.

모친 강부인이 만일 나들이를 아니했었다면 전과 마찬가지로 준은 무심하고 말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모친은 있지를 않고 그렇다고 귀덕어멈이 제 주작대로 이러고저러고 했을 이치도 없는 것(솜씨가 벌써 그런 솜씨가 아니었다) 전혀 이것은 아낙 서씨의 분별임에 틀림없었다. 그러하되 단순히 인삿상으로 솜씨나 얌전히 부린 것이 아니라 진심한 정성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었다. (……라고 준은 절절히 생가했다.)

이 밥상 분별의 형식을 통하여 느껴지는 아낙 서씨의 슬픈 정성이 준은 괴로왔다. 지나가는 나그네와 진배없는 명색의 남편을 위해 남과 진배없는 안해건만 그래도 안해다운 정성이 우러나기로 마련이든가 하면 일변 옷깃을 바로해야 할 듯 엄숙한 마음이기도 했다.

밥상이 갖추 알뜰하게 차려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연인의 얌전한 솜씨 이상의 것으로 이른바 안해다운 정성토록을 느끼고 한다는 것은 매양 지나친 천착에 잡치운 바 된 한낱 환상(幻想)이 아닐는지……

병적으로 남의 암시에 대한 감응성이 예민한 그는 그리하여 항상 착각독단에서 출발하여 환상r8;과장을 거쳐 으례 오산(誤算)의 피안(彼岸)에 가 닿곤 하던 것이었었다.

귀덕어멈이 은잔에다 조르르 술을 따른다.

그것을 보고 준은 불시에

‘술이나 취하도록 많이 좀 먹고서?……’하는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내 곧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한때 술의 힘을 빌어(도다도 취한 핑계를 하고) 없는 강단을 내었자 결국 스스로를 속이며 남을 속이는 짓일 따른이었다. 겸하여 일시적인 그림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되나 못되나 알콜 등속에 의한 흥분이면 흥분, 마취면 마취가 되지 않고 일점의 흐림이 없는 새맑은 정신으로써 이 밤을 시련함이 떳떳하고, 따라서 그 결과가(이것이든 저것이든) 좌우간 정한 것이리라 했다.

“나 술 먹지 않겠어……”

준은 그러면서 수저를 집어든다.

귀덕어멈은 좀 의외로운 얼굴로

“왜유?……악주 질겨하스믄서……한잔만이래두……”

준은 그 말엔 대답치 않고

“마님은, 그새 근력은 조시구?”

“내애! 마님께서야 참, 일년 내에 고뿔 한번 참……”

“……”

“한잔만 드실걸!……”

“그리구……아씬?……지금두 늘 그렇게 앓으시구?”

“내애? 아씨유우? 아씨 말씀이세유우?……내애내, 아씬 저, 저 거시키 아씬……”

새서방님이 어덯허다 글쎄 아씨 말을 묻다니, 이건 하늘이 쩍 갈라진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이건 너무 반가와서 기절을 하여도 좋을 일이었다.

“그러믄유! 아씬 참, 노오 참, 앓구 지나시는걸유. 심화가 있으신깐……심화가 있으신깐, 노오 참 앓기만 허시구!……”

“……”

“에구 인전 그 지긋지긋헌 살이 제발 좀, 제발 좀 풀려주세여지! 쯧쯧! 민망허구 애차라!……”

귀덕어멈이 천방지축으로 달려들어와 숨이 턱까지 차 하면서 옮기는 그의외엣 말을 듣는 순간 서씨는 그도 역시 놀람이 컸다.

울컥 가슴이 높이 뛰고 정신은 잡아 흔드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그러나 이상한 일로는 순간 후에는 씻은 듯 그것이 전정이 되는 것이었었다. 그러면서 마음은 물같이 담담(淡淡)하여지는 것이었었다. 반가운 줄도 기쁜 줄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기쁨에 겨워 설움이 새로운 것도 아니요 오직 물같이 담담할 따른이었다. 이십일 년ㅇ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 급기야 온 순간이 아니었던가?

서씨는 차분히 되짚어 생각이었다.

이십일 년 동안을 처녀로 지나면서 남편이 회심키를 바라며 하루같이 기다렸었다. 하던 것이 오늘이야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이었다.

‘아씨는? 지금두 늘 그렇게 앓으시구?’

이것은 남편이 저으기 마음 돌린 바가 없이는 나왔을 말이 정녕코 아니었다.

분명히 남편은 마음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남편은 마음을 돌리고 그리하여 이에 비로소 부부의 금실은 누릴 때가 오고……

그러나 서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와락 내키지도 달갑지도 않았다. 차라리 부질없는 노릇 같았다.

‘……보다는 이대로 영영……’

새삼스럽게 시방 당해서야 부부니 금실이니 하여 번잡을 떠느니보다는 이십일 년도 참고 혼자 살아왔으랴더냐, 내일 모레가 사십이거든 낙을 보면 며칠을 보며 그 낙이 하상 대단스런 낙이리요. 차라리 이대로(처녀의 몸인 채로 깨끗한 채로) 영영 늙고 마느니만 같지 못하지……

얼마나 그러함이 몸과 직성에 맞고 그래서 편안하고 할 것인가 싶었다.

결코 앙앙(怏怏)한 반감으로 자기학대에 의한 보복수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즐겨서 하는 체념(諦念)이었다. 따라서 그의 마음은 하루 아침 도를 얻은 고승(僧高)토록은 아니라도 번뇌에 대해서나 즐거움을 보고서나 한가지로 조용히 맞이하며 조용히 흘리어보낼 수 있을 만큼 능히 초연코 담담할 수가 있었다.

서씨의 이와 같은 심히 돌발적이요 급격한 심경의 변화는 그러하되 단순한 우연이나 아무런 근거와 이유가 없이 생겨진 변화인 것은 노상 아니었다.

최근 이삼 년 이래로 서씨는 남편의 회심을 바라며 기다리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차차로 차차로 덜 골똘하여 왔었다.

그러면서 종종

‘쯧! 지금 새삼스럽게 무슨!……’하는 생각이 나기도 했고

‘부부는 무어며 금실은 다아 무어리!……’하는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고 또

‘이십일 년도 혼자 살았을라드냐. 내일 모레가 사십인데 무슨 그다지!……’

‘그 낙이 하상 그리 대단스런 낙일까 봐서…… 쯧, 차라리 곱다시 이대로 늙고 말지!……

‘혼자 살다가, 혼자 늙어, 혼자 죽고……오죽 마음 편코, 몸 편한 노릇이리!……’하는 생각이 나기도 했다.

토막토막이 단편적으로 두서없이 나는 생각들이었다. 이것이 트기 시작한 체념의 싹이었었다. 이십 년 가까이 기다렸으니 지치기도 했으려니와 나이로도 그럭저럭 청춘을(청춘에 누리지 못한 바를)단념할 나이였었다.

서씨 스스로는 미처 그것을 체념으로써 인식은 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오늘밤에 비로소 ‘공방이 풀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당하여, 그반동으로, 토막토막이었던 체념의 싹은 일순간, 한데 뭉치어 한개의 뚜렷한 각오로써 의식의 전면에 등장을 한 것이었었다.

서씨는 밤이 과히 깊기 전에 귀덕어멈을 시켜 밤참 내보내기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원은 술상을 차려 내보냈을 것이나 저녁 밥상의 반주도 입에 대지 않았단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럼 군입거리로 정과와 밤과 건시 등속을 해서 내보냈다.

이런 밤참 분별도 시어머니 강부인이 하던 것을 충실히 대신하여 한것일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강부인의 며느리로서 할 일을 한 것이지 알뜰한 저녁 밥상이나 이 밤참이나가 다같이 준이 생각던 바 소위 안해다운 정성인 것은 무릇 아니었다. 한갓 귀한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는 정성이 라면이거니와 일찌기 남의 안해이었던 일이 없고, 따라서 남편을 섬겨본 적이 없는 여인으로서, 안해다운 정성 운운의 형용이 도시에 당치 아니한 말이었다. 오히려 애먼 소리라 할 것이었다.

밤참을 가지고 나갔던 귀덕어멈은 또다시 호들갑을 떨며 들어왔다.

“아씨a292;아씨a281;……”

마르에서부터 소리를 짓눌러 황급히 부르면서, 웃는 셈인지 우는 셈인지 분간이 어려운 사을 하여 가지고, 허둥지둥 안방으로 달려드는 것이었었다.

“아따a292;아씨이!……”

“………”

서씨는 바느질로부터 천천히 고개를 든다.

“저요오a281; 새서방님께서요오!……에구 숨차, 휘유우!……”

“………”

서씨는 들었던 고개를 도로 내리고 바느질손을 놀린다.

“나오십사구요! 아씰, 요! 사랑으루, 요!…… 휘유우, 숨차!…… 아따 절더러 그리시겠죠? 아씨 아직 안 지무시거든 잠깐 다녀 들어가시라구 여쭈어, 그리시겠죠!”

“…………”

“네? 아씨이!”

“………”

서씨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 좀처럼 동하려는 기색이 없다.

귀덕어멈은 아씨가, 아주 모른 체하고 말지나 않는 것인가 하여 마음을 졸이며 기다린다.

이윽고 서씨는 바느질을 내려놓고 일어선다.

손으로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 그러고는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옷을 갈아 입었다. 위아래를 하이얀 소복으로 입었다. 무심중 그렇게 입어졌었다.

이러는 동안에, 바야흐로 남편을 대하여(남편이야 어떠한 태도와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나는 나로써 따로이) 가질 바 태도와 및 몇 마디의 할 말을 염량하여 두었다.

신발 소리를 내며 사랑 뒷문 밖에 이르러 연한 밭은기침을 한 후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문고리에 손을 대었다.

대는데 손끝이 바르르 떨리면서 가슴은 차분히 갈앉았던 것이 약간 설레이려고 했다. 이때에 문득 이십일 년 전 그 첫날밤, 신부로 신방 들어 가던 일이 생각났다. 수모에게 부축되어 들어가느라고 손수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때에도 몸은 떨리고 가슴 설레이고 했다.

그러고서 그날 밤 그 일이 있었고, 그런지 이십일 년…… 이십일 년 만에 비로소 다시 남편이 있는 방을 지금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갑자기 무엇인지 모를 뿌듯한 것이 뭉클 가슴이 치받치었다. 그러면서 문고리를 잡은 채 푹 그대로 울고 엎드러지려고 했다.

슬픈 것도 아니:250;. 기쁜 것도 아니었다. 원망은 더구나 아니었다. 다만 감회(感懷)라 이름할밖에 없는 것이었다.

서씨는 울고 엎드리지 않고 곧 평온함을 회복했다.

그러자 다시 또

‘……그러고 일로써 아마 마지막이고……’ 하는 생각이 났다.

그런 첫날밤 이후 이십일 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이 있는 방을 한번 더 들어가고 그러고는 영영 그걸로써 마지막이고……이 생각은 감회를 돕는 것이 아니요 도리어 마음을 갈앉게 했다.

조용히 문을 여닫고 방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면서 가장 자연스럽게 보내어지는 남편에의 일별(一瞥)을 구태여 사리지 아니했다. 그러고는 얼굴을 들어 마주 보는 남편보다 먼저 눈을 내리는 겸손 또한 잊어버리지 아니했다.

순순히 서로 한번 마주보는 것 이것으로써 이 경우의 이 부부는 피차간 수인사가 족하였다.

서씨는 넌지시 뒷벽 앞에 가 비스듬히 앞문을 향해 한 무릎 뉘이고 한 무릎 세워 두 팔 내려서 앉는 듯하고 앉았다. 눈은 저만치 문갑 모서리에 가 멎어 있다.

이렇게 하고 서씨는 천연스러이 앉았었다.

준은 이 밤과 이 자리가 그에게도 역시 멀리 그 이십일 년 전의 첫날밤이 생각키는 것이어서 이른바 만감이 교지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공연히 무섭고 가슴 울렁거리는 증세가 나고 하였다. 그러나 마음을 단단히 도사려 먹은 덕인지는 몰라도 생각더니보다는 그대도록 심하지가 않았다. 전에야 이렇게 같이 앉았기는 고사하고(앉아본 일도 없었지만) 아낙이 가까이 얼찐만 하여도 머리끝이 쭈뼛, 가슴은 터질 듯 울렁거리지를 않았던가……

아무튼 다행이다 싶고, 장차는 완전히 그것이 나수어질 수도 없지 않으리라 하여 더욱 다행스러웠다.

거기에 기운을 얻어, 대담히 아낙의 얼굴을 똑바로 건너다보았다. 아까 처음에처럼 언뜻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짯짯이 대고 보았다.

짯짯이 그렇게 보고는 놀랐다. 그것은 여태까지의 무서움도 가슴 울렁거리는 것도 그리고 여러 가지로 솟았던 감회도 죄다 잊어버리고, 깜박 정신이 쏠리도록 황홀한 것이었다.

‘어쩌면 저다지도 맑고 고요할 수가 있을 것인고!’

첫날밤 그와 같은 파탈이 있고서, 이에 이십일 년, 그 이십일 년 만에 비로소 남편에게 부름을 받은 터이었다. 그런, 이 운명의 자리에서 남편의 입으로부터 어떠한 말이 나올 것인지는 하여간에 어쨌든 겉잡을 수 없는 동요와 흥분과 긴장에 휩싸여 있지 아니치 못할 이 밤이었다.

그러나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를 않았다. 슬픔이고 기쁨이고를 물론하고 통히 동요되고 흥분 긴장된 빛이 추호도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고서, 단지 고요했다. 얼굴을 비롯하여 앉음앉음이, 안정된 시선이, 심지어 버선등에 드리운 손길 하나까지도 다 그러했다.

오로지 마음의 반영이었다. 아무런 번뇌도 욕망도 기뻐함도 의구도 없는 맑고 담담한 마음의 반영이었다.

이, 그러한 마음이 반영되는 얼굴은 퍽도 아름다왔다. 티끌없이 맑고 고요한, 한 특이한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지상적(地上的)임과 인간임을 초탈한 아름다움이어서, 감히 손대며 범키 어려운 것이었다.

아낙의 이와 같은 맑고 고요한 아름다움에 대한 경이(驚異)와 황홀감…… 그 다음에 오는 것은, 하도 지상적이요 인간적인 저 자신의 속스럼의 발견이었다. 탁하고 번거로운 저 자신의 지저분함의 발견이었다.

준은 이 밤에 아낙을, 그 침방(寢房)으로 찾지 않고, 이렇게 나오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아낙과 저와의 사이는 그새까지의 평면적이던 거리가 졸지에 입체적인 거리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그새까지는 같은 땅위에서 둘이가 서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 시방은 아낙은 공중에 가 높다랗게 솟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깨끗이 아름다운 아낙을 때묻은 손을 뻗쳐 지상으로 끌어내린다는 것은 차마 모독스런 일이었다. 또 하고자 해도 감히 못할 것 같았다.

‘저 사람은 피가 어떨꼬? 여느 사람처럼 붉고 진할까? 저다지도 담담한 사람이……’

준은 문득 이런 생각을 그 끝에 하던 것인데 그러다『수호지(水滸志)』의 한 대문이 연상되었다. 흑선풍 이규((657;旋風 李逵)가 무슨 진인(眞人)이라더냐 하는 신선을 도끼로 찍었더니 피가 붉지 않고 마알개서 이상히 여기는 대문이었다.

‘피가 마알간!…… 아마 그런지도 몰라? 저 사람도 그렇게 피가 안 붉고 마알갈는지 몰라?’

준은 무심코 고개가 끄덕이어졌다. 혹시 그런 것이나 아닌가 싶었다. 아아니 정녕 그런 것이어야 할 듯싶었다.

‘피가 붉지 않은…… 물처럼 마알간한……’

절실히 그런 것 같았다.

보도록새 저 고요함 담담함 초현실적(超現實的)인 깨긋한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기에는 아무리하여도 그 피가 붉지 않고 물처럼 마알간한 사람……이라는 개념으로써 아니하고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냉혈(冷血) 혹은 냉담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직 청징(淸澄)을 의미하는 것이요, 하되 한 개의 상징적(象徵的)인 관념이었다.

붉지 않고 물처럼 맑은 피가 생각키도록 너무도 청징하기만한 사람일 때에 준은 그에게서 ‘안해’라는 것을 어느덧 느낄 수가 없었다. 안해는 고사하고 단순히 여자라는 느낌조차 좀처럼 나지 않았다. 이것은 결국 아낙과의 사이에다 부지중 또 한 개의 새로운 장벽을 쌓은 것이 된 셈이었다. 이리하여 준은 가까와지고자 했던 아낙과의 거리는 정신적으로 더욱더 멀어지기만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준은 이 밤에 저 자신의 근일의 심경을r13;이를테면 성의랄 것을 어떠한 방법으로써 아낙 서씨에게 피력할 것인가 하는 데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보았었다. 그러나 방법은 여러 가지로 있었지만 가장 정중하고도 무난히 실행할 수 있는 것으로는 그를 사랑으로 나오도록 청하는 밖에 없었다.

그것만도 실상은 대단한 용단이었고 그래서 아무튼 밥상 실부름을 나온 귀덕어멈에게 그 전갈을 들여보냈었다. 그러고는 앉아서 생각이었다.

이십여 년을 불고하던 남편이 천만 꿈 밖에 건강을 묻더라더니 그 다음엔 사랑으로 부르기까지 한다는 전갈을 들을 때 그것으로써 넉넉히 전과 같은 마음이 아닌 것이 은연중 아낙에게 통하여질 수가 우선 있을 것이었다.

화해를 마다하고, 쾌히 나오지 않는다면 무가내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선선히 나와 준다면 벌써, 무언한 가운데 이편의 뜻에 동의를 한 것으로 보아 무방하였다.

이렇게 준은 심히 단순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미구에 서씨는 나왔던 것이고 그리하여 준은 아낙이 나의 뜻에 흔연히 동의를 한 것으로 되풀이 생각을 다시 할 여부도 없었다.

다만 필요한 것은 한두 마디의 위로 비슷한 말이었다.

그것도 간단하게 가령

‘얼마나 고생스럽소?’ 한다든지, 혹은

‘몸이 노상 그렇게 충실치 못해 어떡헌단 말이요!’ 한다든지 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었다. 중언부언 수다한 사설을 늘어놓느니보다도 오히려 자연스러울 터이었었다.

그러나 준은 그런 것 저런 것 죄다 잊어버리고서 딴청을 하고 있었다.

자리를 같이하여 아낙과 대하기가 공포증이 나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할 것쯤은 처음부터 각오했던 바이지만 아낙이 막상 그와 같이 담담하고 천연스럴 줄은 생각 밖이었었다. 아낙의 이 생각지 못한 태도에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가지고 헛되이 천착은 과장을 낳아 이중 삼중으로 비현실적인 환상을 아낙에게서 느꼈던 것이고, 그러한 결과 지금까지에 없던 새로운 장벽을 스스로 만들어놓고 만 것이었었다.

이십일 년 만에 만나는 신부와 신랑은 벙어리가 된 채 언제까지고 말이 없다. 고풍한 방안은 고풍한 석유좌등이 부질없이 불만 화안히 밝히고 있어 무료함을 한결 더하게 한다.

밤은, 사람의 시간의식을 떠나 호올로 갚느다. 하향의 밤은 태고와 같이 교교하다.

어쩌다 생각난 듯, 먼데 개짖는 소리가 감감히 들려온다. 그러다 이내 꿈결같이 사라지고, 무한한 침정만이 다시 이어나간다.

준은, 내렸던 눈을 또 들어 아낙을 본다. 여전히 그렇게 고요하고 담담하다. 여전히 그렇게 고요하고 담담한 표정의 태(態)를 하고서, 까딱없이 앉아 있다. 숨도 쉬지 않는 듯 그림같이 ㅣ곱게 앉아 있다.

‘언제적부터 저렇게, 그린 듯이 앉아서 까딱 않고 있어 온 것일꼬?’

퍽도 오랜 것 같았다. 오랬어야 할 것 같았다. 이십일 년 전 그날 밤 그 첫날밤부터인 것 같았다. 시방 그날 밤부터 이십일 년 동안을 저렇게 그린 듯이 앉아서 까딱 않고 잇어온 것만 같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준은 가슴이 섬뜩했다. 곧 땅재주를 훌쩍 넘는 듯 넘는 듯 어흐응하며 호랑이로 둔갑을 하는 듯 하는 듯…… 기괴한 환각의 공포가 엄습한 것이었었다.

들녘 도령이 산중으로 장가를 갔다. 첫날밤 신랑이 측간(便所)엘 가려고 했다. 신부가 범이 두렵다면서 나가지 말라고 햇다. 신랑은 범이 무슨 범일까보냐고 부득부득 나가려고 했다. 신부는 거듭거듭 만류했다. 그러나 신랑은 고집을 세우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는데 쾌자 자락이 방문의 문 돌쩌귀에 가 걸렸다. 신랑은 신부가 붙잡은 것인 줄 알고 노했다. 요망스럽게 장부의 하는 일을 어찌 막을까 보냐면서 고름에 찬 은장도(銀粧刀)를 뽑아 쾌자 자락 붙잡힌 데를(실상 걸린 데를) 도려버렸다. 그러고는 그 길로 본가로 돌아와 십 년을 신부를 찾지 않았다.

십 년이 지나서야 오해가 풀렸다. 신랑은 뉘우치고 신부를 데리러 갔다. 신부는 그때부터 십 년 동안을 그냥 고대로 그 자리에 가 앉아 있었다.

새로이 신방과 첫날밤을 차렸다. 밤이 이윽고 깊었다. 그러자 신부가 별안간 땅재주를 훌쩍 넘더니 호랑이로 둔갑을 해가지고 어흥하면서 신랑 앞에 가 앉았다. 앉아서는 신랑을 수죄(數罪)했다. 신랑은 빌었다. 그러는 동안에 닭이 꼬꾜하고 울었다. 호랑이로 둔갑한 신부는 한숨을 후유, 십 년 치성(致誠)이 허사로다 하면서 다시 땅재주를 넘어 도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산 신부가 이니요 매미처럼 껍질만 남은 그 등신이었다.r13;는 옛 이야기였었다.

준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눈 멀뚱히 뜨고 앉아서 말이 없다. 그러면서 하마…… 하마…… 하고 연달아 아낙을 곁눈하여 보는 것이었었다.

그럴 때에 마침 서씨는(땅재주를 넘어 호랑으로 둔갑하는 대신) 입이 열리었다.

“사람을……”

그러다가 가볍게 목을 가다듬에 가지고

“사람을 얻으시지요!……”

표정이나 태(態)와 마찬가지로 음성도 그렇게 고요하고 담담했다.

준은 비로소 정신이 들어 목전의 현실에다 주의를 기울였다.

서씨는 조금 사이를 두어

“여자야 평생은 말구서 더래두 혼자서 못 살아가리까마는…… 장부는……”

“………”

“열 스물두 여자를 거느리기루 마련인데 구태여……”

“………”

“그리구 민적은 정히 갈르세야 하시겠으면 쯧!…… 갈르세두 그만이시구! 어머님께서만 허락하신다면……”

“만적을 갈르기로서니 지금 어디루 머리 두르구 갈 곳이나 있어요! 이대루 어머님이나 뫼시구 있게 해주시면 큰 덕으루 알구 한평생……”

퍼뜩 말이 끊긴다. 그러고는 잠깐 그대로 잠잠히 있더니 인하여 손끝을 짚으면서 조용히 몸을 일으킨다. (前編 終)

<博文出版社,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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