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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動亂[동란]의 거리[편집]

1[편집]

그무렵, 영심은 유민호와 허정욱에게 똑같은 청혼의 말을 여러차례 듣고 있었다.

더구나 일선 수비대로 있는 허대위로부터는 구혼의 편지가 자주 왔다. 그럴 적마다 영심은 자기의 건강이 결혼 생활에 적당하지 않다는 구실을 실제 이상으로 내세워 완곡하게 그것을 거절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유민호의 구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되어 있었다.

허정욱은 군인다운 솔직한 정열을 가지고 구혼해 온데 대하여 유민호는 어디까지나 신사의 예의를 잃지 않는 은근한 태도로 청해 왔었다.

재작년 유민호는 본처와 이혼을 했다. 그것은 영심이가 월남해오기 직전의 일이었다. 세 살짜리 아들은 아내가 데리고 나갔고 여섯 살 먹은 딸은 유민호가 맡았다. 이혼을 하고는 금방이라도 맞아 들이게 되어 있던 어떤 여자가 유민호에게 있었으나 어찌 된 셈인지, 영심을 한 번 눈여겨 보자, 벌써 일년이나 넘도록 독신 생활을 계속해 오는 유민호였다.

유민호는 내심 무척 초조했으나 그러나 그러한 심정은 절대로 영심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유유자적, 시기가 오면 능금은 제물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라고, 유민호는 자신이 있었다. 더구나 영심의 가족에게 경제적 원조를 하여 준다고 해서 결혼을 강요하는 것 같은 태도는 추호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오진국씨의 눈에도 좋았고 영심에게도 밉지 않았다. 시종 여일 하나의 젠틀맨십을 유민호는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영심 부녀의 눈에 비치인 유민호였고 허정욱 대위의 눈에 비치인 유민호는 아니었다. 퉁바리바위 위의 한 알의 사과를 남들처럼 미련하게 벌벌 기어 올라가서 집어먹을 유민호 변호사는 아니다.

유민호는 지금 오영심의 심장을 향하여 고무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허정욱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오진국씨 부녀에게 고자질을 할 허정욱은 못되었기 때문에 성심성의, 그는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히 오영심의 마음을 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오영심은 제물에 떨어지는 능금처럼 유민호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는 무렵에 육‧이도 동란이 왔다.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창경원 출입을 월여전부터 단념하고 있던 영심이 가 그날은 어쩐지 불쑥 금잉어가 보고 싶어서 몇시간 동안을 춘당지 연못가에서 보내고 창경원 문을 나서려는데 군인을 실은 지이프차 하나가 휙 지나가면서 라우드스피이카로 소리소리 쳤다.

『병사들에게 고함! 대한민국 병사들은 계급여하를 막론하고 즉각 원대로 복귀하라!』

지이프차 뒤로 병사를 만재한 트럭도 미아리고개를 향하여 달렸다. 창경원에서 뛰어나온 몇명의 병사가 달리는 트럭에 비호처럼 올라탔다.

『만세! 만세!』

달리는 트럭 위에서 총검을쳐들고 군인들이 흥분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그 뒤를 장갑차가 달리고 야포와 기관총을 실은 육중한 차량이 달렸다.

충동의 거리! 삼팔선 전선에 걸쳐 괴뢰군의 침공이 마침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아, 허대위는 지금……?』

그 순간 영심은 일선에서 이미 교전상태에 들어갔을 허정욱 대위를 후딱 머리에 그리며 명륜동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렸다.

2[편집]

『전면 전쟁!……』

삼팔선상에 늘상 있던 조그만 충돌 쯤으로 생각하고 있던 시민들은 전면 전쟁이라는 한 마디에 눈이 둥그래졌다.

거리는 뒤끓고 인심은 흉흉했다. 명륜동 입구에는 벌써 출정 병사들을 환송하는 시민의 행렬이 좌우에 쭉 늘어서 있었다.

『만세! 만세!』

흥분과 불안에 찬 표정들을 하고 사람들은 손벽을 치며 만세를 불렀다.

대한민국의 한낱 정신과민에서 오는 행동이기를 시민들은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은 마침내 허물어지고 이 강토에 시산을 쌓고 혈해를 이루운 실로 비참한 인류의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 영심씨가 아니요?』

창경원 담장을 끼고 명륜동으로 뛰어가고 있는 영심의 옆에서 지이프차 한 대가 욱하고 멎으며 뛰어내린 것은 허정욱 대위였다.

『어마 정욱씨가……?』허대위의 늠름한 키가 영심의 옆으로 뛰어왔다. 손가방 하나를 달랑 들은 몸이었다.

『일선서 언제 오셨어요?』

『어제 저녁에 왔읍니다. 사흘 동안 휴가를 얻어가지고……어젯밤은 친구의 집에서 유하고 오늘 저녁 쯤 선생님을 찾아 뵈려 했었던 것이……』

허대위는 그러다가 기다리는 지이프차를 향하여 고함을 쳤다.

『뒤로 곧 갈테니, 먼저 가!』

지이프차는 병사 둘을 더 실어 가지고 휙 떠나갔다.

『자아, 영심씨, 빨리 갑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선생님을 잠깐 찾아 뵙고 갈라고……』

둘이는 달렸다. 명륜동 입구를 왼 쪽으로 접어들며 경학원을 향하여 쏜살같이 뛰어갔다.

『탁, 탁, 탁, 탁……』

『톡, 톡, 톡, 톡……』

허대위의 무거운 군화 소리와 영심의 구두 소리가 주위의 혼잡을 누비며 말없이 자꾸만 달렸다.

넓은 이마에 입은 한일자로 꽉 다물고 있었다. 이글이글한 눈과, 굵다란 눈썹, 완강한 체구에 키는 후리후리 컸다.

『전면 공략이라는 건 확실한 정본가요?』

『틀림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되는 걸까요.』

『어떻게 된다구……언젠가 한 번은 있어야 할 일이니까요.』

둘이는 그냥 달리며,

『영심씨의 건강은?……』

『덕택으로……』

『영심씨의 회답은 확실히 받아 봤읍니다.』

『………』

영심은 숨도 가빴지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허정욱의 구혼을 거절한 희답이던 까닭에 ──

『유 군은 자주 댁에 들리는가요?』

유민호의 방문에 허정욱은 신경을 쓰는 것이다.

『회사 일로 홍콩을 간다고, 잠깐 집에 들렸어요. 한 주일 전에……』

영심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도 벌써 소식을 듣고 있었다. 허대위가 전하는 정보를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음, 틀림 없을 거야.』

그리고는 또 잠깐 말을 끊었다가,

『죽음 속에서 생을 찾을 각오를 해야겠는데……』

『선생님, 그 각오는 벌써부터 되어 있읍니다.』

그러면서 허대위는 그 굵다란 눈썹을 들어 소그듬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영심의 얼굴을 물끄러미 쏘아보았다.

3[편집]

『그럼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요. 시간이 없어서 저는 떠나야겠읍니다.』

허정욱은 조모와 아버지에게 무릎을 꿇고 정중히 작별의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몸조심 잘 하라구!』

월남, 이후 유민호와 함께 친 손자처럼 생각하던 허정욱이었다. 조모는 글썽글썽 눈물을 흘리면서 허정욱의 가방에서 더렵혀진 양말짝을 꺼내 놓고 아들의 새 양말 두 켤레를 대신 넣어 주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허정욱은 조모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 잡았다.

『할머니, 싸움터에 나간다고 다 죽는건 아닙니다.』

『글쎄, 그래 주었으면 오죽이나……』

『저는 지금까지도 전투의 경험이 많은 몸이랍니다. 전쟁이나 국부 전투나, 총알이 날아오긴 마찬가지니까요.』

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허 정욱에게 있어서 서울에 오기만 하면 제 집처럼 안이하게 드나드는 이 가정이었다.

『그래도……』

유 민호나 허 정욱이나, 둘 중에 하나는 영심의 남편이 될는지도 모를 사람이라고, 이것은 조모만이 아니라 오 진국씨도 마음속으로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염려마시래두?…… 그놈의 총알들이 어찌나 영리한지 글쎄, 저를 살살 피해만 다닌답니다. 요 머리 위로 어깨 옆으로 살살 날아만 가지요.』

눈물을 흘리면서 조모는 쓸쓸히 웃었다.

『어머니, 허군은 이미 철저한 생사관(生死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대로 내버려두셔요.』아버지가 조모를 만류하였다.

영심은 허대위의 가방을 들고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럼 영심씨도 안녕히 계십시오. 부디 몸조심 하셔서 하루바삐 건강을 회복하시도록…』

『감사합니다.』

영심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허리만 굽혔다.

『그럼 영심씨, 그 가방을 이리 주시요.』

『제가 저기까지……』

격렬한 감정이 한 줄기 뭉클하고 영심에게 왔다. 자기에 대한 극심한 정열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 둔 채, 이 대범한 사나이는 나무램 한 마디 남겨 놓지 않고 저처럼 담담한 태도로 죽음의 터전을 향하여 묵묵히 떠나려는 것이다.

『자아, 인제 나오지 마시요.』

현관 앞까지 나와서 허정욱은 가방을 받아 들었다.

『인제 가시면 언제 또?……』

영심의 말꼬리가 자꾸만 떨린다. 사람의 관계란 이처럼도 까다로운 것일까? 자기가 한 마디만 입을 떼면 이 사나이는 그야말로 얼마나 기뻐할 것이랴! 그 기뻐서 날뛰는 그대로의 자태로 싸움의 터전으로 내보낼 수는 없는가?……

『언제라고……기약할 수 있는 길이 못되지만……그렇지만 영심씨, 반드시 돌아오겠읍니다! 영심씨의 건강한 자태를 보기 위해서라도 꼭 돌아와야만 하지 않겠읍니까?』

『그래도 어떻게 꼭이라고……』

『영심씨!』

아까처럼 담담한 어조가 아니었다. 뭉클하고 영심의 가슴을 찌르는 한 마디였다.

『네?……』

『한 마디만 약속을 해 주시요!』

『약속이라고?……』

영심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허정욱의 무거운 입술을 오들오들 쳐다 보았다.

4[편집]

무슨 약속인지 모르지만 생명의 단석을 기리지 못하는 이 경우에 있어서의 허대위의 약속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 주어야만 하였다.

『영심씨, 내가 죽지 않고 돌아오는 날을 영심씨는 기다려 주시겠지요?』

엄숙할이만큼 무게를 지닌 말이었다.

『거야……거야 뭐 새삼스럽게……』

영심이가 다음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있는데, 커다란 손길이 덤썩 왔다.

『영심씨가……』

커다랗고 완강한 손길 속에서 영심의 조그만 손이 자꾸만 떨린다.

『영심씨가 기다려 준다면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명을 세우고 반드시 돌아오겠읍니다.』

『그때까지도 영심씨의 건강이 좋지 못하다면 좋아질 때까지 오 년이고 십 년이고 나는 기다리겠읍니다.』

⌜아아 ── ⌟영심은 비틀비틀 쓰러지 듯이 기둥 하나를 잡아 쥐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 지긋이 감은 눈시울 위에 피어 오르는 검화(瞼花)한 떨기!

『약속을 했는데……그이와 먼저 약속을 했는데……』

그 한 마디를 영심은 마음으로 수없이 되풀이하며, 머나먼 남쪽하늘 초록별 밑에서 살고 있던 고독한 소년의 모습을 눈시울 속에 그려 보았다.

『자아, 그럼 영심씨……안녕히!』

허정욱은 후딱 영심의 손을 놓았다.

영심이가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허정욱의 폭 넓은 등골이 경학원 마당을 무서운 기세로 달리고 있었다.

『탁, 탁, 탁, 탁……탁, 탁, 탁, 탁……』

영심도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영심의 걸음으로는 어림도 없다. 허리에 찬 권총 케이스를 곽 붙들고 허정욱 대위는 달렸다.

『죽을 지도 모른다! 다시는 못만날 지도 모른다!』

영심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한 마디 명확한 대답을 끝끝내 하지 못한 자신이 악독한 죄인인 양 가슴을 쳐왔다.

손뼉 소리와 만세 소리가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전찻길에는 이미 출정 병사를 환송하는 군중으로 말미암아 꽉 차 있었다.

영심이가 흥분한 군중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는 이미 허정욱의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트럭이 가고 지이프차가 가고 장갑차가 간다. 흥분 속에서 진행되는 삼엄한 행렬이었다.

그때, 십여간 거리나 떨어진 오른 쪽 군중 틈에서 군인 하나가 한길 한 복판으로 튀어나갔다.

『스톱!』

병사를 만재한 트럭 한 대가 군인 옆에서 속력을 늦추었다.

『아 저이다!』

허대위가 뛰어오르는 것과 영심이가 외친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그것을 보자 군중이 또 손벽을 쳤다.

트럭은 다시금 속력을 내어 영심의 눈앞 사오간 길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휙 지나갔다.

『아, 정욱씨!』

영심은 소리를 치며 한길로 튀어나갔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잘못을 범한 것 같아서 영심의 달음박질은 멎을 줄을 몰랐다.

『정, 욱, 씨 ──』

그러나 트럭 위의 허대위는 이미 병사들 틈사리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영심은 마침내 교통 순경의 제지를 받는 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5[편집]

육․이오 삼개 월을 서울서 겪고 구․이팔이 되어 국군의 북진은 파죽지세로 감행되고 있을 무렵 평양을 점령한 허정욱 소령이 인편 한 사람을 보내어 영심의 가정의 안부를 한 번 물어온 적이 있을 뿐, 일․사 후퇴가 오면서부터 소식은 통 두절되고 말았다. 장진 후퇴의 참상으로 보아 죽었을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일· 사 후퇴 때 죽어도 남아서 아버지와 같이 죽겠다는 영심을 아버지는 몰아치듯이 하여 외숙을 따라 대전으로 내려 보냈다. 대전에는 외숙의 친지가 있었기 때문에 유민호만 홍콩서 돌아왔어도 병신인 아버지와 조모를 어떻게 해서라도 피난을 시켰을 것이다.

사월 중순, 서울이 재수복 되자 영심은 외숙과 함께 결사적으로 죽음의 도시 서울로 찾아 들어왔다. 다행히도 아버지와 조모는 죽지 않고 연명 해 있었다.

유민호가 홍콩에서 돌아온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영심의 일가는 다시금 유민호의 원조로 살았다. 외숙은 자기 가족도 다 지탕하지 못할이만큼 완전히 몰락해 있었다.

허정욱 소령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중동부 일선에서 연대장이 되어 있었다. 가끔 안부의 편지가 날아왔다.『할머니, 글쎄 고놈의 총알이 귀밑으로 살살 피해만 댕긴답니다.』

편지에는 그런 말도 씌어 있었다.

이듬해 봄 허정욱 연대장은 중령이 되어 영심을 한 번 찾아왔다. 그러나 다시는 구혼의 말을 입밖에 내지 않고 영심의 옆을 떠나갔다.

그 동안 영심은 서울 종합 대학에 쭉 적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창경원에서 한 번 헤어진 그 학생은 통 만나지 못했다. 일․사 후퇴와 함께 임 지운은 쭉 부산으로 내려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심이가 마침내 십년 동안에 걸친 환영을 단념하고 유민호의 끈기있는 청혼을 승낙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넉달 전 휴전협정이 되어 정부가 환도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허정욱 중령에게서는 통 서신이 오지 않았다. 온대도 문안편지는 아버지에게만 왔다. 그러던 것이 오늘 처음으로 영심에게 직접 글월을 보내온 허정욱 중령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오영심과 임지운이가 같은 서울의 별을 이고 산 것은 육․이 오 동란을 전후한 수개월과 환도 후에 있어서의 두 달 동안, 기껏 잡아 보아도 육개 월 이상의 시일을 계산하지 못한다. 그리고 시민의 행동이 극도로 부자유하던 적 치하의 육․이오 삼개 월을 제하고 보면 불과 석달 남짓한 시일을 같은 별 밑에서 산 셈이 되는 것이다.

오늘밤, 소설가 임 지운은 이석란의 성실한 남편이 되고자 과거의 환영을 청산하는 마당에서 인간의 운명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운명의 하나로서 지역적인 운명을 생각하였다.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객관적인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한, 인간의 의욕만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했고 그 객관적인 조건을 조물주는 필연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늘밤, 오영심이가 누워있는 명륜동과 임지운이가누워있는 안국동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이 얼마 되지 않는 거리가 객관적인 어떠한 조건 밑에서 점점 혹은 갑자기 좁아질는지, 또는 반대로 더한층 멀어질는지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의욕과는 추호의 관련성도 없는 대자연의 섭리(攝理)만이 알고 있는 신비로운 비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