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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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과 哲學者 [철학자][편집]

1[편집]

전후 두 회에 걸친 임학준 교수의 ⌜연애 강좌⌟는 오늘로서 전 강의를 끝마치기로 되었다이날도 교실은 초만원이었다. 이석란은 오늘도 교실 맨뒤에서 담벼락을 등지고 서 있었고 오영심은 중간쯤에서 쓸쓸히 앉아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채 정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임지운과 최후의 작별을 한 채 정주로서는 이미 연애 강의에 대한 흥미를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날, 임교수는 플라톤의 이타적(利他的)인 정신주의의 연애론을 비롯하여 쇼오펜하우에르의 형이상학적인 연애론, 스탕달의 정열적인 연애론, 엘렌 케이의 인격적인 연애론 등 저명한 연애론자의 연애관을 쭉 소개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임교수의 자신의 연애관을 간단히 피력하였다.

『연애는 인생의 예술이요, 결혼은 인생의 기업(企業)이다. 이것이 연애와 결혼에 대한 나의 철학입니다.』

학생들이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임교수의 이 한 마디는 확실히 평 이하면서도 신선한 충동을 주는 효과적인 명제(命題)였다.

거기서 임교수는 인생과 예술에 대한 설명을 알기 쉽게 하였다. 그것을 요약하면,

『인생이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우리가 일생 동안에 경험해 온 기쁨과 슬픔과 노여움과 즐거움과 괴로움과 쓸쓸함과……그밖에 온갖 것을 통 털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임교수는 맨뒷줄에 서 있는 이석란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이 석란은 임교수에게 인생의 뜻을 질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란은 빙그레 마주 웃어 보였을 뿐, 저번날처럼 쓸데 없는 잡음은 넣지 않았다.

석란으로서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한 셈이니까, 끝까지 얌전히 듣고 있다가 오늘 저녁 약속대로 저녁을 대접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의 만찬에는 양편쪽 가족이 다 참석하기로 하자는 말을 어제 지운에게서 들은 석란이었다.

『예술이란 곱다, 이쁘다 하는 미의식(美意識)에서 발동하는 하나의 정서(情緖)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냉정한 계산 밑에서 영위(營爲)되는 소위 기업성과는 스스로 그 성질을 달리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연애와 부부애가 자연 발생적으로 그 성질을 달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절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서 우리들의 조상은 소위 연애라는 과정을 밟지 않고도 훌륭한 결혼 생활을 해 왔었고 한 쌍의 원앙 같은 부부애을 영위해 왔읍니다.』

이 마지막 한 마디는 저번날 밤, 이 석란의 성실한 남편이 되고자 하는 아들 지운에게서 들은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연애는 청춘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인생의 필수품은 아닌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성실한 부부애는 한 조각의 빵과도 같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필요한 것입니다. 연애 없는 인생은 있어도 결혼 없는 인생은 없읍니다. 예술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한 조각의 빵처럼 귀중하지는 않습니다. 마티스나 피카소의 회화가 없어도 사람은 삽니다. 차이코프스키나 베에토오벤의 음악이 없고 세익스피어나 지드의 작품이 없어도 사람은 삽니다. 이렇듯 예술이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한낱 장식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연애도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한낱 장식물 이상의 아무런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인생과 연애의 위치를 임교수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2[편집]

『그러나 여기에 인류의 이상이 한 가지 있읍니다.』

임교수는 다음과 같이 자기의 연애관의 결론을 지었다.

『인간은 빵만으로도 살 수는 있으나 예술이라는 하나의 문화재를 요구했읍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중매 결혼으로도 훌륭한 가정을 이룩할 수는 있으나 연애라는 하나의 과정을 하나의 정신식(精神食)으로서 희망하고 있읍니다. 따라서 학생 여러분, 연애를 위한 연애를 삼가합시다. 그것은 잘못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수포화할 것입니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연애로서 건실한 부부애를 건설하도록 노력합시다!』

임교수는 단을 내렸다. 박수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석란은 먼저 교실을 나와 교문 옆에서 임교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아, 저 차가 또 왔네.』

교문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지점에서 크리임색 자가용이 저번날처럼 자주 치마의 학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멀리 바라다보였다. 석란은 갑자기 그 자주 치마의 학생이 조금 부러워졌다.

그러는데 그 자주 치마의 학생이 임교수와 함께 층층대를 교정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저이가 임교수와 무슨 이야길까?……』

날샌 세파드처럼 석란의 후각이 긴장을 하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주 치마의 학생은 무척 수줍어 하는 태도로 임교수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선생님.』

다가오는 임교수를 향하여 석란은 외치듯이 불렀다.

『아, 석란양 ―』

임교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석란도 빙그레 웃으면서,

『절더러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구……』

『누구가……지운이가?……』

『네, 지금 종로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요. 사모님도……』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하고 나온 임교수였다.

『석란양이 오늘은 어째서 그처럼 얌전히 강의를 들었을까?』

세 사람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임교수는 물었다.

『후훗 ―』

석란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자주 치마를 핼끔 바라보았다. 영심도 조용히 웃고 있었다. 자기의 웃음과는 대조가 되리만큼 조용한 웃음이었다.

『어제 지운씨에게 말을 들었어요.』

『뭐라고?』

『저는 조금도 가식없는 저를 선생님께 보이고 싶어서 그랬는데…… 좀 더 얌전했더랬음 좋았을 거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얌전히……』

『어, 허허헛……참, 석란양은……』

임교수는 유쾌해졌다.

『선생님이 반대를 하셨다면서요?』

『어, 허헛, 그런 말까지 들었소?』

『죄 듣고 있어요.』

『음 ―』

그러면서 세 사람이 크리임색차가 있는 지점까지 왔을 때,

『저 선생님 안국동이면 이 차 같이 타고 가시지요.』

하고 영심이가 임교수를 쳐다보았다.

『아 그럼 좀 신세를 질까? 우리는 종로까지만 가면 되니까……』

『그러셔요, 선생님.』

영심은 임교수와 석란을 차에 모시고 자기는 운전대 유민호 옆에 올라 타면서,

『저 오늘 강의를 해 주신 임선생님이예요.』

하고 유민호와 임교수를 소개하였다.

『아, 임선생님이십니까! 유민호올씨다. 그렇지 않아도 임선생을 한 번 찾아 뵙자고 하던 참인데……』『임학준입니다. 멀지않아 두 분의 경사가 계시다는 말, 지금 영심양에게서 들었읍니다.』

그러나 그때, 유민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자 석란은 적지않게 놀랐다.

『아, 이 사나이는……』

3[편집]

석란의 놀람에는 이유가 있었다. 석란은 이 사나이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석란은 채정주가 가정교사로 들어가 있는 청파동 유민호 변호사의 집을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다. 유변호사는 회사 일로 부산에 내려가고 없었다. 드넓은 집안에는 두 사람의 식모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보는 서생 두 사람과 금년 국민학교 이학년인 유민호의 딸이 있었다. 이 딸이 헤어진 전처가 남겨 두고 간 소생이었다. 채정주는 이 아이의 가정교사였다. 그때 석란은 안방에 걸려있는 유변호사의 사진을 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라면 석란의 놀람이 그리 클리는 없었다. 그 유번호사가 최근 어머니가 경영하는 명동 ⌜식도락⌟에 자주 나타났다. 어머니의 사생활과 경제면에는 통 눈을 감고 있는 석란으로서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으나 어머니의 침실에까지도 드나들 수 있는 유변호사의 모습을 석란은 수차나 목격한 일이 있다.

석란이가 있는 안채와 영업장소인 바깥채와는 쪽문 하나가 달린 검은 판자 담장으로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태반 영업장에서 살았고 하인들을 감독하기 위하여 침실도 바깥채에 두었다. 매듭이 뽕뽕 뚫려진 판자구멍으로 석란은 때때로 유흥의 세계를 넘겨다 본다.

유변호사의 얼굴도 그래서 여러 차례 목격한 석란이었다.

그러한 비밀의 목격자가 지금 자기 등뒤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유민호는 차를 몰고 있는 것이다.

『임교수의 말로 추측을 하면 이 두 사람은 멀지 않아서 결혼을 하는 모양인데……』

석란은 갑자기 영심이라고 불리우는 이 여성이 측은해지는 것이다.

『아, 서로들 인사를 하고 지내야지.』

임교수는 석란과 영심을 서로 소개하여 주었다.

『이석란양은 정치외교과 졸업반이고 오영심양은 작년에 영문과를 졸업한분이고 ―』

『아, 그럼 오늘 강의에는 일부러 나오셨어요?』

반색을 하며 석란은 물었다.

『네 ―』

『아이유, 열심이셔!』

영심은 그저 웃기만 했다.

『유민호올씨다.』

유민호도 뒤를 돌아다보면서 인사를 하였으나 석란은 고개를 하나 까닥도 없이 유민호의 얼굴을 차겁게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민호는 핸들을 잡는데 정신이 팔려 석란의 그러한 차거운 태도에 관심을 둘 여유는 없었다. 종로에서 차가 멎으며 이교수와 석란은 내렸다.

『그럼 선생님 날짜가 결정되는 대로 찾아 뵙겠어요.』

영심과 유민호도 차에서 내려 정중한 인사를 하였다.

『그때는 임선생님, 수고를 좀 해 주셔야 겠읍니다.』

『잘은 할 줄 몰라도 성의껏 해보겠읍니다.』

이리하여 차는 다시금 명륜동 쪽으로 달려갔고 임교수와 석란은 지운의 모자가 기다리고 있는 ⌜꽃다방⌟을 향하여 전찻길을 건넜다.

『선생님더러 주례를 서 달라는 거 아냐요?』

『음, 별로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도……』

다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와 마주 앉아 있던 지운이가 다소 쑥스러운 표정으로 빙그래 웃으면서 몸을 일으키었다.

4[편집]

『아이유, 이처럼 얌전한 학생인데……』

지운의 소개로 인사를 하고 지운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석란을 바라보면서 임교수 부인은 칭찬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어머니. 말을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얌전하답니다.』

그 말에 석란은 지운의 옆얼굴에다 눈을 곱게 흘겨주었다.

『하하하핫……』

그것이 귀여워서 임교수 부부는 명랑하게 웃었다.

『어머니에게 선을 보이느라고 지금 최상급의 얌전을 빼고 있는 거야요.』

이번에는 입을 막으면서 석란은 쿡쿡 웃었다.

『어머니, 어떻습니까? 이만큼 얌전하면 파스가 되겠읍니까?』그 말에는 어지간한 석란이도 얼굴을 붉혔다.

『아이구, 말 말아 네게는 과분한 아가씬데……』

석란의 시선이 이번에는 임교수 부인의 얼굴을 곱게 흘겼다.

『어쩌면 눈매무시가 저렇게 고울까?』

『아이 사모님도!』

석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어, 허허헛……석란양이 부끄러워서 죽을 지경이로군.』

『아이, 선생님꺼정……』

손가락 사이로 이번에는 또 임교수를 흘겼다.

『촌색씨처럼 부끄러워 할줄을 다 알고……어머니, 이만했으면 제법이지요?』

『그저 네 맘엔 꼭 들어맞을 아가씨다.』

『잘 골랐지요?

『네 눈도 상당하다.』

『아이, 난 몰라요!』

석란은 몸부림을 쳤다. 정말 부끄러워서 손을 뗄 수가 없다.

이상한 일이다. 저번날 임교수를 대할 때는 별반 부끄럽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이처럼 정식으로 혼담이 버러진 자리에서 같은 여성인 임교수 부인을 대하고 보니 남성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그 무슨 여성들 만이 갖고 있는 비밀이 폭로 되는 것 같아서 정말로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 본래는 그리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르는 성품인데요. 요즈음에 흔한 서양 영화를 자꾸만 보고 나서부터는 저도 모르게 수양을 쌓아서…… 적당한 때 적당히 애교를 부리고 있는 거랍니다.』

『어머나?……』

석란은 후딱 손을 떼며 놀라는 표정을 크게 썼다.

『보세요, 어머니 배우의 소질도 풍부하답니다.』

『정말 그럼 난 갈테야요!』

석란은 홀랑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하……벌써부터 내외 쌈이야!』

임교수 부부는 유쾌히 웃었다.

그러나 지운의 이 한 마디에는 다소의 진리 같은 것이 있기는 있다고, 석란 자신도 자기의 부끄럼의 성질을 해부해 보며 일어서는데, 문이 열이며 ⌜식도락⌟의 여주인 마담로우즈의 화려한 자태가 다방 안에 나타났다.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리로 쏠릴만큼 마담로우즈의 모습은 화안하니빛나고 있었다. 스물 셋의 석란의 어머니이니까, 나이는 적어도 사십의 고개를 두서넛 넘어 섰을 계산이 되어 있으나 십년 쯤은 확실히 젊어 보이는 얼굴 모습이다.

흰 양단 반 회장 저고리를 금사로 수를 놓은 짙은 하늘빛 양단 치마, 적당히 풍부한 흰 손목에 커다란 악어백이 흔들리고 있었다.

생김 생김이 장미꽃 같다고 해서 구식 부모는 장화홍련전의 장화(薔花)를 이름으로 땄다고 했다. 그래서 손님들은 ⌜식도락⌟의 여주인을 장미부인이라고 불렀고 마담 로우즈라고 불렀다.

5[편집]

『어째 너 그러구 서 있니?』

샐쭉해서 서 있는 딸을 보고 마담로우즈는 걸어왔다.

『쌈을 했답니다.』

지운이가 웃으면서 마담을 맞이하였다.

『쌈은 누구하고?』

『저하구요.』

『왜?……』

『촌색시처럼 제법 수줍어 할 줄도 안다고 했더니만……』

『호호호홋……이런 때나 수줍어 봐야지, 수줍어 볼 기회가 있을라구?

……』

마담은 화려하게 웃었다.

『어쩌면……어머니꺼정 저쪽 편이슈?』

석란의 눈흘김이 이번에는 어머니에게로 달려왔다.

『저쪽편이라고?……』

그러다가 마담은 우서 죽겠다는 듯이,

『오, 호호홋……옳지! 널 혼자라고, 지운씨가 막 학대를 했었구나!』

『하하하핫……』

지운이는 유쾌히 웃으며 마담로우즈를 양친에게 소개하였다. 인사를 바꾸고 나서 마담은 임교수 내외를 향하여,

『보시는 바와 같이 철이라고는 하나도 없답니다. 과부자식은 쓸모가 없다는데, 저런걸 데려다 무엇에다 쓸려고……미스터 지운도 애는 좀 먹을 거야.』

『어, 허허……귀여운 따님인데 무슨 말씀을……』『귀엽다고 보아 주시는 것만이 다행이지만도……저어……』

마담은 임교수 부인을 향하여,

『저 사모님, 오늘은 적당한 장소로 모실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왕이면 저희들이 사는 꼬락서니도 보실겸 제 집에다 다소의 준비를 시켜 놓고 왔읍니다. 그리아시고……』

『무슨 그런 염려까지……그저 이렇게 서로 한 번 만나 보면 되지요.』

『자아, 그럼……』

일동은 꽃다방을 나서서 택시 한 대를 불러 타고 명동 ⌜식도락⌟으로 달려갔다.

시공관 근처에 ⌜식도락⌟은 있었다. 아래층은 대중식당이고 좌석 손님들은 이층으로 모시게 되어 있었다. 보이들과 쿡과 접대부들을 합치면 삼십여 명의 커다란 세대를 혼자서 통솔해야만 하는 마담이었다.

저녁 무렵이라, 아래층은 벌써 손님들이 절반 이상이나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층 좌석에서는 남녀 합창인 ⌜목포에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벽 소리도 들렸다.

임교수 내외는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 보았다.

『호호, 사모님과 선생님, 다소 놀라신 모양이셔!』

그 말에 임교수 내외는 후딱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금 엄숙한 얼굴을 지었다.

『석란아, 선생님과 사모님은 뒷문으로 모셔야 한다.⌟ 마담은 그러면서 손님들이 들끓는 대중식당으로 들어가고 임교수 내외와 지운은 석란을 따라 옆골 목으로 해서 ⌜식도락⌟ 뒷문을 들어섰다.

여기가 소위 석란이가 거처하는 ⌜식도락⌟의 안채다. 영업장인 바깥채와는 검은 판자 담장으로 막혀 있었다. 그러나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오는 이층은 여기서도 담장 위로 올려다 보였다.

『어서 이리좀 올라오세요.』

조그만 쪽문으로 마담이 나타났다.

이 안채에는 두 방이 있었다. 육조 온돌은 석란의 침실이요, 팔조 다다미는 석란의 공부방이다. 온돌에는 침대가 놓여있었고 팔조 다다미에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흑칠의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 피아노 앞에 호화로운 요리상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선생님, 철학 사전에 ⌜목포의 눈물⌟은 적혀있지 않습죠?』

그런 재치 있는 말로서 이 가정의 소란한 분위기를 마담은 변명해 보이는 것이다.

6[편집]

그러나 불행이도 임교수는 마담로우즈의 한 마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층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무슨 저속하고 추잡한 유행가인 줄만 짐작했지만 그것이 ⌜목포의 눈물⌟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예, 철학사전에 목포의 눈물이라고요?』

그 말에 임교수 부인은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아이, 지금 이층에서 부르는 저 노래 말이예요.』

하고 속삭이듯이 일러주며 얼굴을 후딱 찌푸렸다.

『아, 난 또……』

그래서 그때는 이미 마담로우즈의 감정은 차차 삐둘어져 가고 있었다.

임교수 부인이 남편의 옆구리를 쿡 찌루며 얼굴을 찌푸리던 광경을 마담은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과 사모님을 일부러 제집으로 모신 거야요. 후일에 이르러 실망이 없으시도록 저희들의 생활을 미리 알아 두십사고……』

석란은 불안을 느꼈다. 얼핏 듣기에는 허심탄회한 인사말 같았으나 녹녹치 않은 어머니의 과격한 성미를 석란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활 양식이 전연 다른 두 가정이었다.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색채와 분위기를 달리하는 양쪽 감정이 부딪히기가 쉽다. 석란과 지운은 그것을 걱정하였다.

좌석에는 순 일본식으로 된 진수성찬이 벌여져 있었다. 도미의 ⌜아라다끼 ⌟를 중심으로 식탁 위에는 ⌜식도락⌟의 일등 쿡이 발휘한 성의 있는 솜씨가 밤하늘에 기라성처럼 수두룩 널려져 있었다. 보이는 연방 쪽문으로 드나들었고 ⌜목포의 눈물⌟은 이미 ⌜나를 두고 가시는 님⌟으로 변해 있었다.

그럴 적마다 임교수 내외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고 그것이 웃읍다고 마담은 웃었으나 그 화려한 웃음의 한 껍질 밑바닥에서 상처를 입은 마담의 자존심이 점점 이그러지고 있었다.

『변변치 못한 음식이나 많이 잡수세요.』

『많이 먹습니다.』

『주위가 소란해서……』

『괜찮습니다.』

『선생님과 사모님의 조용하고 평화스런 가정에 비하면……』

『원 무슨 말씀을……』술을 따를 적마다 마담로우즈의 적당히 살찐 흰 손목이 백금 팔지와 함께 임 교수 내외의 독실한 가정 생활을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캐럿 삼부 오리의 다이야 반지가 임교수 부인의 초라한 금가락지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아서 지나치게 눈이 부시다.

사실 임교수 내외는 이 가정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소란하고 추잡하게 들떠있는 주위의 시산한 분위기가 생리적으로 싫었고 따라서 아들의 혼담을 경솔하게 승낙한 것이 뉘우처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눈치를 마담은 채고, 그래서 한 발을 더 뜨면서 냉큼 술병을 들고,

『사모님, 어쩐지 기분이 나빠 보이시는데, 술 한 잔 드시고 기분 좀 내세요.』

했다.

『아이, 나는 술은 못합니다.』

남편과 단둘이서는 서너 잔 술은 하는 부인이다.

『그래도 한 잔이야 못하시겠어요?』

『나는 정말로 한 잔도……』

술 뿐이 아니었다. 기라성처럼 널려진 식탁 위의 음식물 전체가 추잡의 보수와도 같아서 구역질이 나기 시작하였다.

『호호, 정말로 얌전하신 사모님이셔! 성실한 가정부인으로선 안성마춤이야! 오, 호호홋……』

『어머니도, 어쩌면……?』

뺑하는 목소리와 함께 석란의 눈흘김이 달려왔다.

그러나 마담로우즈의 대결 정신은 좀처럼 누그러질 줄을 모르는 듯이,

『오, 호홋……오, 호홋……』

를 그냥 계속하고 있었다.

7[편집]

성질을 달리하는 두 개의 생활 감정이 정면으로 딱 마주쳐 버렸다. 임 교수 부인은 마담을 경멸하였고 마담은 그러한 부인을 한 발 더 떠가면서 비웃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그건 실례야요. 누구나가 다 어머니 처럼 술을 잡수시는 줄 아세요?』

그러시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어머니였다. 모욕을 느끼고 어리둥절해 있는 임교수 부인을 바라보기가 석란은 딱했다.『오, 호홋……그처럼 얌전하신 사모님이니까, 선생님이 애처가로서도 이름을 날릴 수밖에……』

『어머니 말씀 삼가해요! 여기가 이층 술좌석인줄 아세요?』

『얘 글쎄 그렇지 않느냐? 이런 기쁜 자리에서 그 술 한 잔 못 받는다면 모를 것도 알법한 일이지 뭐냐? 누가 술에 독약을 탔다드냐?』

『어머나? ―』

석란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임교수 내외는 또 한 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술군이니까, 술 한 잔에도 감정을 상하지만……』

『그래 나는 술군이다! 술 파는 집 마담이다!』

보다 못해 임교수는 부인을 향하여,

『여보, 한 잔 받구려.』

했다.

『싫어요! 그렇게도 보기가 딱하면 당신이 받아 자시구려!』

부인은 또 부인대로 뺑하니 소리쳤다.

『허어, 이거 참 큰일났군!』

참으로 난처한 일이다. 보통 좌석 같아도 모르겠는데 적어도 양가의 경사스러운 혼담이 맺어지려는 자리가 아닌가. 임교수는 정말로 딱하기 짝이 없다.

『자아, 그럼 그 잔을 내가 받지요. 그대신 벌주로 석잔을 연거퍼 받겠읍니다.』

그랬더니 마담로우즈는 허리를 꼬며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오, 호호……그러다 보니, 정말로 애처가셔!』

『어 허헛……그 편이 그저 무난하담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짝 잃은 외기러기 앞에서 너무 농후하지는 마세요. 호호홋……』

『어머니, 뭐야요?……』

석란의 외침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먼저 갈테다!』

임교수 부인이 발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어머니, 조금만 더 앉았다가 같이 가세요.』

지운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만류하였다.

『아니다. 뭣 때문에 내가 어울리지도 않는 자리에 그냥 앉아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냐?』『아, 글쎄 어머니, 잠깐만……』

그리고는 마담을 향하여,

『어째서 이런 장면이 버러지게 됐는지 모르지만……서로 조금씩만 양보를 합시다.』

『흥, 미스터 지운은 술집 사위가 못될 것 같애 겁이 나서 그러는 거야?』

『아이고, 어머니는 입도 빠르지!』

『넌 왜 또 그러지? 철학자의 며느리가 못될까봐서 그러느냐?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네 결혼 문제 때문에 내 생활이 비판 받기는 싫어!』

『글쎄 누구가 어머니를……』

석란은 울먹울먹 하였다.

8[편집]

울먹울먹하는 딸을 마담로우즈는 쏘아보며,

『너는 왜 또 이러는 거야? 누구 말처럼 너도 저쪽 편이냐?』

『글쎄 어머니……』

『너도 내 생활을 비판할려고 그러는 거냐? 철학자의 생활이 떳떳한 것처럼 마담로우즈의 생활도 떳떳한 거야!』

그래서 어머니의 생활에는 통 눈을 감고온 석란이었다.

『글쎄 어머니더러 누가 뭐라고 했어요?』

『그만한 눈치도 모르는 것이 시집만 가고 싶음 제일이야? 아니꼽게들……』

『어마나? ―』

석란은 마침내 눈물이 핑 돌았다.

『손님을 청해 놓고 이게 무슨 실례야요? 쌈을 할려고 선생님을 청했어요?』

『할 때는 해야지! 너는 지운이만 좋음 제일이지만도, 나는 내 생활이 제일이야. 멋도 모르고 시집을 갔다가 일생을 두고 술집 딸 소리를 들어도 좋아?』

『그건 어머니가 제멋대로 삐뚤어져서 하는 말이지 누가 글쎄 어머니의 생활을……』

『사람은 눈치가 빨라야 하는 거야. 흥, 임교수에게 철학이 있다면 너 어미에게도 그만한 철학은 있는 줄만 알아 둬!』

그때는 이미 임교수 부인은 방을 나와 뜰로 내려서고 있었다. 지운이와 석란이가 따라나왔다.

『사모님, 용서하세요!』

뒷문밖까지 따라나오면서 석란은 울었다.

『용서는 무슨……』

싸움을 하지 않고 그대로 나온 자기자신을 부인은 결국 잘됐다고 생각하며 그것도 전혀 자기의 교양과 남편의 인격에서 받은 영향이라고 믿었다.

『나쁜 어머니는 아니지만, 워낙 자존심이 세서……』

『자존심이야 누구나가 있겠지만도……』

그러다가 후딱 석란을 바라보며,

『그래 너 우리 지운이가 정말로 좋으냐?』

그러면서 부인은 석란의 들먹거리는 어깨에다 손 하나를 올려 놓았다.

『그런건 어머니, 물어 볼 필요도 없다니까요.』

지운은 그리고 나서 석란의 숙인 얼굴을 기웃하고 들여다 보면서,

『좋지?』

『몰라이!』

『석란, 어머니 앞에서 똑똑히 대답을 해야만 되는 것이야.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이 단계에 있어서 어머니의 그 한 마디는 대단한 중대성을 띄고 있는 물음이니까 말이요. 좋지?……』

『모른다니까 ―』

『싫어?……』

석란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좋은 거지 뭐야! 좋지?……』

석란은 머리를 끄덕끄덕해 보였다.

『자아, 어머니, 석란이가 명확한 대답을 했읍니다.』

『그랬으면 되는 거지 뭐. 부모네들이 결혼하는 건 아니니까 ―』

『야아, 멋드러진 어머니다! 그러니까 제가 어머니를 존경하는 거야요!』

『애도 참……』

『석란!』

『응?……』

『우리 어머니, 멋이 쿡 들지?

『우리 엄마도 삐뚤어지지만 않음 멋두 있대요.』

『오우케이! 만사 형통이다!』

지운은 주먹으로 허공을 치며,

『어머니 조금 기다리세요. 마담에게 인사를 하고 아버지를 모셔 올께요.』

지운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는 님의 허리를 시름없이 안고 가지만 말라고 생야단을 치네 ―』

이층에서 취객들의 잦은 난봉가가 흘러나왔다. 부인은 얼굴을 또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