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30장
아담과 이브의 結婚[결혼]
[편집]정주가 명동 「식도락」을 찻아갔을 때, 석란도 외출하고 없고 마담 로우즈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정주는 간단한 글월을 남겨놓고 돌아왔다. 글월에는 ―
『지운 선생의 「愛人[애인]」출판기념회의 광경을 보고하(려) 왔었지만 네가 없어서 섭섭히 돌아간다. 흥미있는 화제가 무척 많았어. 작품에 대한 정반대의 두 가지 비평, 임교수의 「연애강좌」에 출석했던 자주 치마의 꽃다발 증정등 내일은 내 생일 유 민호 변호사가 저녁을 한턱 한대나. 그래서 석란과 함께 저녁을 얻어 먹을 작정. 장소와 시간은 내일 다시 연락할테야.
채 정주 ―』
그보다 조금 전부터 석란은 박 준모와 함께 엘씨아이 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박 준모는 석란을 자기 애인이라고 부르면서 「식도락」 뒷문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나 석란은 자기가 필요할 때만 박 준모를 만났고 필요가 없을 때는 문밖에서 돌려보냈다. 석란이가 박 준모를 필요로 하는 것은 춤을 출 때 뿐이었다.
박 준모와 춤을 추면서도 석란은 가끔 감정의 공허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요즈음에 와서는 차차 심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석란은 지운과의 초야 하룻밤을 곧잘 생각했다.
그것이 사랑이냐고, 육체의 학대만을 확대하여 생각하던 애욕 행동의 살풍경에서 석란은 이따금 애정의 자태 같은 것을 발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일종의 역(逆) 코오스를 의미하고 있었다. 애정에서 애욕으로 발전한 정상적인 과정이 아니고 애욕에서 애정의 발아(發芽)를 석란은 발견한 것 같았다. 때때로 지운의 품 안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남녀 동권에 대한 이 석란의 논리를 무시하는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이 역 코오스를 밟는 애정의 자태는 비단 이 석란에게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었다. 오늘의 모든 화류계 여성들이 밟는 과정인 동시에 우리의 선조인 어머니나 할머니 들이 봉건적인 낡은 결혼 형태에서 발견한 애정도 역시 그러한 코오스를 밟았던 것이라고 석란은 현명하게도 자기 자신의 애정의 발아를 설명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발아를 본 애정이 한낱 폭발물 같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실까지를 깨달을 만큼 석란은 현명하지 못하였다. 이미 봉건적인 사상을 벗어나고 있는 이석란의 자유 사상은 그렇게 해서 발견한 애정에 화류 여성들의 그 것과 같은 돌발성을 부여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춤을 출 때만 필요한 박 준모라고, 관념적으로만 규정을 지어 놓은 석란의 척도(尺度)가 언제 어느 때 삐뚜러질는지, 석란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란씨는 내 인격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남녀의 정이란 인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탱고를 추면서 박 준모는 유혹을 한다.
『무엇에서 생겨요?』
『접촉에서 생기지요?』
『노우!』
석란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부정했다.
『노우가 아닙니다. 석란씨는 춤 출 때만 나를 필요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춤을 잘 추어서만이 아니고 결국은 내 품안이 그리 싫지 않다는 증거지요.』
『흥 ― 누구가……』
『석란씨가 자기 감정을 속이기는 쉽지만 이 박 준모를 속일 수 없는 것이요. 자기 감정에 충실합시다. 석란씨는 이미 자유로운 몸이니까요.』
『유혹이 그럴 듯해요.』
『그럴 듯한 유혹에 이미 석란씨는 걸려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노우!』
『부정의 말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은 마음이 그만큼 약화했다는 증거랍니다.』
『뻔뻔이스트!』
『그것도 다 민주주의 덕택이지요. 민주주의의 실천자가 되기 위해서는 뻔뻔해야만 된답니다. 수백만 수천만의 돈을 뿌려 가면서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국회의원 입후보자들을 못 보십니까? 자기 선전 없이 당선한 국회의원을 보셨읍니까? 연애나 결혼도 결국은 마찬가지예요. 체면만 지키다가는 일생 동안 여자의 손가락 하나 만져 못보고 죽지요.』
그러는데 유 민호가 마담 로우즈를 동반하고 홀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서 마시고 놀았는지 모르지만 유 민호와 마담 로우즈는 둘이가 다 얼굴이 붉그래하다.
밴드가 멎었다. 박 준모와 함께 식탁으로 걸어가다가 석란은 어머니를 유민호 옆에서 발견했다.
『어머니!』
양미를 조금 찌푸리며 석란은 마담을 불렀다.『너 또 여기 와 있었구나.』
어색한 표정은 마담에게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석란양을 인제야 보았군요.』
유 민호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왜 말로만 들어요! 저번 차 안에서 인사하지 않았어요?』
석란은 토라진 대답을 했다.
『아, 참 그랬군요!』
사진에서 본 석란에게서 차 안에서 인사한 석란을 연상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이처럼 예쁘고 똑똑한 따님을 두어서 마담은 행복하겠소.』
색의 눈초리로 유 민호는 석란의 얼굴을 대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러한 유민호의 눈초리를 마담과 박 준모는 똑같은 입장에서 발견하고 있었다.
『눈 좀 바로 떠 봐요.』
『아, 참 석란양은 마담의 따님이시지. 혈통 관계 깜박 깜박 잊어먹는 버릇이 내게는 있어서……』
『그 버릇 좀 고쳐요.』
그것은 마담이 아니고 석란이었다.
『허어, 역시 그 어머니에게 그 따님이었군. 총명한 현대 여성이야! 이분은 석란양의 애인……?』
유 민호는 박 준모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석란씨의 애인 박 준모올씨다.』
소개의 말이 필요가 없었다. 박 준모는 자진하여 자기 소개를 명확히 했다. 석란이가 쿡쿡 웃었다.
『아, 그렇습니까. 유 민호입니다.』
유 민호는 정중한 인사를 한 후에 마담을 가리키며,
『인사를 하시지요. 석란양의 어머니 되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까. 동시에 유 선생의 애인이시군요.』
그러면서 박 준모는 표정 하나 움직이지 않고 인사를 했다. 마담과 석란이가 동시에 쿡하고 웃었다.
『그저 술 친구쯤으로 알아 두시는 것이 간편하겠지요.』
『그렇습니다. 간편하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지요. 현대적 스피이드가 있어서요. 아메리카 영화적이고 비행접시의 스릴이 있으니까요.』
『허어. 그만하면 박형도 수양을 많이 쌓았군요.』
『웬걸요. 유선생에게는 연조가 있을 테니까.』말로는 박 준모를 당해내지 못할 우려가 다분히 있다.
『헤실픈 말들은 그만하고 춤이나 어서 추어요.』
밴드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마담은 말하고 나서 석란을 향하여 낮으막한 소리로,
『너 주의해라. 저런 녀석한테 걸려 들었다간 재미 없다!』
박 준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머닌 제 걱정이나 톡톡히 해요.』
그리고는,
『흥!』
하고 콧방구를 치며 박 준모와 함께 스텝을 밟았다.
유 민호는 마담과 춤을 추면서도 연방 석란 쪽을 돌아다보다.
『인제 눈동자가 삐뚤어 질라.』
그러면서 마담은 올려 놓았던 손으로 유 민호의 어깨를 힘껏 꼬집어 주었다.
『개운한 걸! 남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기에는 여성의 손가락이 지나치게 예쁘고 날씬해요. 그것이 조물주의 뜻이고 보면 그 손으로는 아예 밥도 짓지 말고 빨래도 하지 말고 오직 한가지 애무용으로 사용하도록 명심해요.』
『감사합니다, 애욕의 철학자!』
『석란양은 춤이 멋진 걸! 다음엔 내가 붙들어야지.』
『안돼, 안돼!』
『두 가지 다……』
『암만 봐도 괜찮아. 암사슴의 뒷다리처럼 쭉쭉 뻗었는 걸!』
『자아, 내 다리는 어때?』
『무 다리, 수통다리, 코끼리다리……』
『요것이?……』
『아야얏……』
곡이 또 불루우스로 바뀌였다. 유 민호는 마담의 충고를 무시하고 석란을 붙드는데 성공하였다. 비교적 순순히 붙들리운 석란이기도 했다. 하는 수 없이 딸 대신 어머니를 안은 박 준모 였고 하는 수 없이 딸의 애인 박 준모에게 안기울 마담 로우즈였다.
『마담, 잘 추십니다.』
석란의 나릇나릇한 몸매에 비하여 사십 대 여성의 성숙한 풍만감을 손길에 느끼며 박 준모는 말했다.『몸이 둔할 거야.』
술 냄새가 마담의 입에서 풍기어 나왔다.
『몸이 너무 가벼우면 매력이 없지요. 무거우면서도 가볍게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옳지 옳지!』
『오호호, 오호호……』
『뭐가 우스워요?』
『우스운 것이 있대요.』
『뭔대……?』
박 준모의 말씨가 차차 조잡해졌다. 그것은 석란의 어머니로서의 존경의 념을 대담하게 포기하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대한다는 선전 포고를 의미하고 있었다.
『옛날 같으면 죽일년, 죽일놈 하고 떠들어 댈거 아냐……?』
『뭐가요……?』
『딸과 어머니가 같은 사내의 품에 안긴다는 것.』
낡은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윤리이 개프(間隔[간격])가 엔간한 마담에게도 마음의 간지러움을 주는 모양이었다.
『시대가 다르지 않습니까?』
조잡해졌던 말씨가 다시금 근엄해지며 박 준모는 시치미를 딱 떼고,
『그래서 자유 민주주의가 좋다는 거지요. 딸의 자유를 어머니가 어떻걸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자유를 딸이 또한 어쩌지 못하는데 현대적 성격이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딸의 어머니고 어머니의 딸이지, 시대가 개명을 했다고 핏줄기가 끊어지지는 않을거 아냐?』
『핏줄기를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낡아빠진 것이라니까요. 혈통을 기초로 한 과거의 봉건적 사상이 우리의 조상들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핏줄기는 다만 과학적인 흐름(流[류])만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것으로서 개인의 자유가 속박 받을 필요는 조금도 없지요. 그러한 속박을 꾸며 놓은 것이 바로 우리의 조상이니까요. 그 조상의 후손인 우리들이 그러한 고루한 속박을 거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뭐가 나쁩니까?』
『아이구 머리가 아파. 어쨌든 서먹서먹한 것 만은 사실이야. 호호홋……』
생리와 윤리의 교차점에서 마담 로우즈의 웃음은 또 간지럽게 흘러나왔다.『마담에게 내가 톡톡히 교육을 시켜야겠읍니다. 그러한 어색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그러면서 박 준모는 휘익하고 리버스턴의 스텝을 밟으며 백 록크의 자세를 짙으게 취했다.
『아주 멋지네요.』
『이래두 웃을래?』
박 준모의 어조가 또 조잡해 졌다. 그 조잡한 말씨에 모를 내지 않았다.
웃음도 이젠 웃지 않았다. 마담의 머리에서 윤리는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록크가 제일 좋아.』
웃음 대신에 그런 말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크로샷세로 전통적인 로크를 박 준모는 다시 거듭하며
『저런 놈팽이는 떼버리고 인제부터는 나하고만 춤을 추어요.』
『어린 것이 유혹이 상당하네요.』
『마담에게 유혹이 없어지는 순간, 마담의 가치는 똥값이 되지요.』
『어마, 말 버릇도……?』
『석란을 내게 주어요.』
『안돼! 약혼자가 있다면서 무슨 말이야?』
『파혼을 하면 되지 않아요?』
『안돼! 절대로 안돼!』
그러고 나서 마담은,
『흥, 석란이가 말을 잘 안 듣는 모양이지? 누구의 딸이라구……』
『그러니까 마담의 충고(忠告)가 필요하다는 건데……』
『어머니가 무슨 상관이야? 어머니는 어머니고 딸은 딸이라면서……』
박 준모는 마침내 말 문이 막혀 버렸다.
『서양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것을 생각해 냈지요.』
유 민호는 또 유 민호대로 석란을 다루고 있었다.
『뭐가요?』
『땐사 말입니다.』
『땐사가 뭐 어쨌대요?』
『처음 보는 여자도 이처럼 안고 춤까지 추며 돌아갈 수가 있으니까요.』
『흥.』
석란은 대답 대신 코 웃음을 했다.
『확실히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보다 음흉하지요.』『뭐가요?』
『사교적 예의의 탈을 쓰고 남녀의 육체적 접근을 교묘히 꾀하고 있으니까요.』
『그건 유사장의 생각이 야비하고 불순한 탓이예요. 사교 땐스의 근본적 정신은 율동의 쾌락에 있는 거리까요.』
『그럴까요?』
석란의 어깨 위에서 유 민호의 얼굴이 빙글빙글 웃으며.
『그럼 왜. 땐스는 혼자 추지 못하고 둘이서 춥니까?』
『혼자서 추는 단조로움보다도 둘이서 추면 율동의 조화가 생기지 않아요?』
『율동의 조화는 동성간에도 생길텐데 왜 이성간에만 추어집니까?』
석란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석란 자신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오늘의 사교춤의 숨은 비밀 같은 것을 유 민호는 지금 대담하게 폭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교는 사교는 동성간에도 있을 법한데 이성간에만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나는 잘 모르고 있지요. 암맘해도 서양 사람은 음흉한 것 같아요.』
그 음흉한 감정이 유 민호에게는 확실히 있는 것이다. 야비건 불순이건, 어떠한 모욕적인 언사로 표현이 된다손치더라도 율동에의 매력보다도 이성에 의 매력이 앞장을 선다. 그것을 야비니 불순이니 하는 말로서 사교 땐스를 저스티화이(正當化[정당화])하고 있는 땐스 선생이나 땐스 교본의 편찬자 뿐일 것이라고 유 민호는 거스름 없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사장도 지금 서양 사람의 음흉한 생각을 갖고 추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렇지요. 율동보다도 석란양의 이 발란한 사지가 더 한층 매력이 있읍니다.』
『아이, 웃기네요. 체면은 다 어디다 내 동댕일 했어요?』
『체면……체면이 무엇입니까?』
『어머니에 대한 체면 쯤 있을 거 아냐요?』
『체면은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고 나는 지금 마음의 고백을 하고 있답니다. 내가 석란양에게 고백을 하고 있답니다. 어떻거면 내가 석란양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을는지 그 방법을 좀 가르쳐 주시요.』
『짐승 같은 말은 작작 해요.』
『인간의 본질은 결국에 있어서 짐승이지요. 나도 짐승이고 석란양도 짐승이고……』
『생각하는 짐승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그놈의 생각이 때때로 희미해 지는 군요. 더구나 석란양과 같이 젊고 예쁜 여성을 보는 때는……』
『정주 언니 잘 있어요.』
『예, 누구?……』
『채 정주 언니 말이예요.』
『아, 정주씨를 아십니까.』
『아는 게 뭐예요? 둘도 없는 언닌데……』
유 민호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지며 경계의 눈초리가 번쩍 빛났다.
『참 결혼을 한다던 그 오영심이라는 여자와는 왜 그만 두었어요? 자동차 안에서 임 교수에게 주례까지 부탁해 놓고……』
지운의 이야기로서 유 민호의 결혼이 파탄된 경위를 석란은 죄 알고 있으면서도 물은 것이다.
『아, 아…… 그건……』
유 민호는 허둥지둥 하며,
『그만뒀읍니다.』
『글쎄 왜 그만 두었나 말이예요.』
『사정이 좀 있어서요.』
『얌전한 사람이던데……채운 거 아냐요?』
『채워요?』
『짐승 같은 생각을 가끔 하니까……』
『차버린 것은 이 편이지요.』
『그래요?……』
『원래 애정이 없던 약혼 이었지요.』
『짐승에게도 애정 유무의 구별이 있었나요?』
『정주씨와는 요즘에도 만나십니까』
『가끔……』
『내게 대한 무슨 이야기는 없었읍니까?』
『별로……』
『내가 식도락에 가끔 오는 사실을 정주씨가 아는가요?』
『그런 추잡한 이야기는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도 할 필요 없잖아요?』
『아, 그렇습니까!』
유 민호가 안도의 가슴을 내려 쓰는데 춤은 또 한 차례 끝났다.
몇 차례 춤을 추고 난 네 사람은 한 식탁에 둘러 앉아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였다. 유민호의 권에 못이겨 석란도 한두 잔 받았다.석란과 정주의 사이를 안 유 민호는 아까처럼 노골적인 유혹된 말을 피하고 점잖은 신사로서의 호의와 견식을 은근히 보이고 있었다. 조급히 굴 필요는 조금도 없다. 호의만 끈기있게 보여 주면 그 호의의 대가가 언젠가 한 번은 자기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이 유 민호의 방법론이었다.
그와는 반대의 방법론을 박 준모는 갖고 있었다. 그것은 속결 속단주의였다. 처음 동래 온천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다소 예상이 어그러져 의외로 깔끔한 석란이었기 때문에 속결주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지금 대각선으로 마주 앉아 있는 마담 로우즈쯤은 단 이십 사시간의 여유조차 필요치 않았다. 그래서 깔끔한 석란은 당분간 제쳐놓고 박준모의 눈동자는 연방 마담의 시선만 붙들고 있었다.
유 민호와 박 준모 그것은 오늘날 이 거리에서 악의 즐거움을 사냥하는 두 개의 타이프를 의미하고 있었다. 유 민호의 계획성을 지닌 기회주의와 박 준모의 뻔뻔스런 바아바리즘(野蠻主義[야만주의])은 좋은 콘트라스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악의 즐거움에 대한 유혹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석란 모녀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정부로서 석란은 유 민호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증오감과는 별개로 자기에 대하여 무관심을 가져주는 유 민호가 싫지는 않았다. 그러한 심리의 발전 과정은 한 걸음 더 나가서 연애라는 관념을 초월하여 자기의 가치에 대한 찬미자를 반지나 핸드백과 같은 한낱 액세서리(附帶裝飾物 [부대 장식물])로서 몸치장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맥주를 권해오는 유 민호 변호사에게 석란은 유혹적인 웃음을 쿡쿡 웃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또한 애정의 도발이라 착각하는데 남성들의 오산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박 준모의 유혹에 대하여는 마담의 심리에도 비슷한 데가 있었다. 핏줄기의 윤리가 아무리 낡아 빠진 봉건적 유산이라고는 하여도 그리고 아무리 타락한 한낱 술집 마담이라고는 하여도 핏줄기의 속박을 박 준모나 유 민호처럼 무시하지 못하는데 오늘의 한국 여성들의 정조관념은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마담 로우즈의 요염한 모습과 유발적인 짙은 눈꼬리 웃음을 애욕의 선물이라고 박 준모가 생각한것은 전혀 착각이었다. 마담 역시 박 준모라는 하나의 데코레이션(裝飾[장식])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남성의 애정과 남성의 애욕이 쌍둥이처럼 얼굴이 똑같은 데서 여성의 비극은 탄생하는 것이라고 유 민호는 지난날 부산 대청동에서 김 옥영에게 설교를 했다. 그리고 그것과 꼭 같은 위치에서 남성들에 대한 여성의 호의가애정이냐, 장신구(裝身具)에 대한 욕망이냐? 꼭같은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그 쌍둥이의 얼굴에서 남성의 비극은 또한 탄생했다.
『남자들은 어쩌면 모두가 다 똑같은 짐승들이야!』
박 준모의 눈동자에서 마담은 짐승을 발견하고 웃음을 섞어 가면서 그런 말을 했다.
『여자들은 모두가 다 뱀이지요.』
자기더러 어머니에 대한 체면을 세우라던 석란이가 우발적인 웃음을 쿡쿡 웃는 모양을 보고 유 민호는 거기서 뱀의 생태(生態)를 본 것 같았다.
그것은 확실히 석란의 깔끔한 성미로서는 애정이나 또는 애욕의 발판을 갖추고 나온 웃음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계산된 의미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뱀?……어째서 여성들이 뱀이예요?』
토라진 어조로 석란은 날새게 대들어 왔다.
『유선생, 답변을 잘 해야겠읍니다. 잘못하면 마담과 석란씨 만이 사람 노릇을 하고 우리 둘이는 곰이나 돼지 급으로 자천을 당할 테니까요.』
『박형, 염려마시요. 뱀도 짐승의 한 종류고 보면 좌천을 당해도 같이 당하게 되겠지요.』
『마음이 든든합니다.』
일동은 웃었다.
『여자가 온순한 양이람 또 모르지만 어째서 뱀이 돼야 한다는 말이예요?』
석란은 연거퍼 따져왔다.
유 민호는 석란의 얼굴을 핥는 듯이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다가,
『나도 처음에는 온순한 양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다소 경험을 쌓고 보니 뱀이드군요.』
『참 어이 없는 이예요.』
『남성에게 수성(獸性)이 있다면 여성에게는 사성(蛇性)이지요. 이 수성과 사성은 오랜 역사에 걸쳐서 투쟁을 해 왔읍니다.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의 시대부터 그러했으니까요.』
『아담과 이브가 뭐 어쨌다는 말이에요.』
『아담과 이브가 결혼을 했다는 말입니다.』
『애정이 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담과 이브의 결혼을 애정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은 석란양과 같은 애숭이나,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철부지 순정파들 뿐이지요.』
『무슨 뜻이예요?』
『나는 그처럼 달콤하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아담에게는 애정보다 더 절실한 욕망이 있었으니까요.』
『그게 뭔대요?』
『소위 곰이나 돼지 같은 수성이었지요.』
『어머나?……』
『놀랄 필요는 조금도 없읍니다. 우리들에게 짐승이라는 렛델를 붙인 것이 누구신데요?』
『짓사이!(참 내)……』
『그런데 이브에게도 애정 같은 건 문제도 되지 않을 만큼 절박한 욕망이 있었답니다.』
『그게 소위 사성이예요?』
『말하자면 그렇지요. 아담은 힘이 세고 이브는 힘이 약했읍니다. 아담의 절실한 욕망은 이브의 정복에 있었지만 힘이 약한 이브의 절박한 소원은 신변 보호와 방어에 있었읍니다.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의 습격도 무서웠지만 잘못 반항하다가는 맹수는 고사하고 아담에게 매맞아 죽을 것만 같았지요.』
『후후훗……』
아담과 석란은 동시에 웃음을 깨물었다.
『눈으로 보고 온 것 같으네요.』
『보고 온 것 이상이지요. 지혜의 과실이라 하여 아담과 이브가 깨물어 먹은 한 알의 사과에다 오늘의 인간의 온갖 죄원(罪源)을 돌려 보내고 있지만, 배가 고파서 씹어 먹은 사과에 무슨 죄가 있읍니까?』
『하하하하……』
박 준모는 유쾌히 웃었다.
『남녀간에 생기는 온갖 비극은 아담과 이브 자신들이 지닌 수성과 사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 뭐가 이브의 사성이란 말이예요?』
『이브의 계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협을 말하는 것입니다. 약빠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위협을 무마하는 동시에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계산 밑에서 취해진 신변 보장책이 애정이라는 탈을 쓰고 아담의 수성과 타협을 한 것이 바로 그들의 결혼이었다는 말입니다.』『일리가 있기는 있다 얘.』
아담로우즈가 우선 찬의를 표하며,
『사랑이니 애정이니 하지만 그런 것 보다도 남자의 보호를 받고 싶어하는 생각이 여자들의 결혼 심리에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안다는 격으로 내가 현재 그러니까 말이다.』
『남자에게 무슨 보호를 받아요? 있는 건 오만 뿐이지 뭐예요?』
말로는 그러면서도 남성의 보호가 결핍되어 있는 자신의 허술함이 석란으로 하여금 지운을 후딱 생각하게 하였다. 애정이고 사랑이고 아무것도 없어도 임 지운이라는 담벼락만 있으면 이처럼 마음속이 허술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애정의 가면을 쓴 남성의 야욕이 폭로 될 때 여성들은 그 남자를 짐승 같은 놈이라고 욕을 했고 애정의 탈을 쓴 여성의 물욕이나 보호책이 탄로날 때, 남성들은 그 여자를 뱀 같은 계집이라고 분노 하지요.』
『유선생, 남성의 약점을 너무 폭로하는 건 좀 재미가 없을 것 같은 데요.』
『박형 걱정마시요. 이처럼 툭 터 놓고 이야기하는데 또한 색다른 매력을 여성들은 느끼는 수가 있으니까요. 끈기 있게 그 때를 한 번 기다려 봅시다요.』
『아이구, 목이 말라요.』
『마담, 인제 저와 단둘이서만 춤을 추러 와요.』
홀을 나서서 네 사람이 밖으로 나오면서 박 준모는 몰래 마담에게 속삭여 보았다. 마담의 반응을 정확하게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마담은 힐끔 눈을 흘기고 나서,
『춤 쯤 무방하지만…… 석란에게 손을 댔다가는 죽을 줄 알아! 석란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 누군데?……』
『석란씨는 깔끔해서 당분간 희망 포기입니다.』
유 민호는 또 유 민호 대로 석란과 함께 앞장을 서서 나오며,
『언제 조용히 석란양을 한 번 모시겠읍니다.』
채 정주와의 관계가 탄로날 것이 무서워서 어쨌든 석란의 호의만은 사 두어야만 했다.
『정주 언니도 가끔 조용히 모셨겠군요?』
빈 틈 없는 대답을 석란은 곧잘 한다. 영심이나 정주와는 다소 다른 데가 있는 석란이라고 유 민호는 마음의 허리띠를 조심스럽게 잘라 매며,
『그 분은 원체 착실한 사람이어서……』『석란양처럼 후랍바가 아니어서 어지간히 힘들거예요.』
『무슨 말을 석란양은……』
『그렇지만 다소 위험해요.』
『뭐가요?』
『호랑이 굴속에 태연하게 앉아 있는 정주 언니 말예요.』
『입버릇이 대단히 곱군요.』
『누구의 따님이라구 입버릇이 밉겠어요.』
『인제 내가 결혼을 하게되면 석란양과 할 수 밖에……』
『스탕달리앙은 우리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답니다.』
『뭐요?』
『스탕달 신봉자 말이예요. 법률책만 읽으셨군.』
『그 스탈달리앙이 어쨌다는 말입니까?』
『그런 연애 쾌락 주의자, 근친혼(近親婚)의 긍정자는 인기가 없다는 말이예요.』
『음 ―.』
『보세요, 한국의 남성들의 얼굴을! 모두가 다 공자님의 수제자 같이 점잖은 걸요. 매맞아 죽기가 싫음 아예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명동까지 차로 모셔다 주겠다는 유 민호의 말을 사양하고 석란 모녀는 밤거리를 걷기로 했다.
『석란씨, 내일 또 모시러 가겠읍니다.』
헤어질 무렵에 박준모는 그런 말을 했다.
『당분간 니이드날(필요 없어) ―』
『이이구 추워!』
엄동설한이라 날씨도 찼지만 석란의 대답은 한층 더 차갑다. 박 준모는 부르르 몸을 떨어 보였다.
『그리고 유 사장도 아담이즘만 발휘하지 마시고 좀 근신하세요.』
했다.
『아, 하하핫……』
유 민호의 웃음 소리를 차 안에 남겨 놓고 석란 모녀는 홀가분히 사라졌다.
향락의 뒤에 오는 삭막한 공허가 두 여인의 마음속에 똑같이 깃들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확실히 자유의 공허를 의미하고 있었다.
그처럼 귀중하던 자유가 이처럼도 인간에게 공허감을 줄 줄은 통 몰랐다.이 어머니와 이 딸은 둘이가 다 남성의 오만과 횡포로부터 벗어나온 자유의 향락자였다. 그러한 자유의 몸이 자유의 행복보다도 그 어떤 속박의 행복을 마음 한 편 구석으로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
진고개 입구를 지나면서 석란은 어머니를 불렀다.
『응 유 변호사와 결혼해 버림 어때요?』
『누가!』
어머니는 일소에 붙이는 것과 같은 코 웃음을 했지만 유 민호만 그 생각이 되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마담 로우즈는 만족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자의 불안정한 자유처럼 허무한 것은 없을 것 같아요. 여자란 역시 자유보다도 탐탁한 속박 속에서 참다운 행복을 발견하는 동물이 아냐요? 이브의 타협처럼……』
『그럴는지도 모르지. 네 아버지 살아 계실 때는 그놈의 난봉이 밉기는 했으나 이즈음 처럼 마음이 허술하지는 않았으니까……』
『뜨내기 애정은 모르지만 여자의 참다운 애정은 역시 남자의 탐탁한 속박과 보호에서부터 생기는게 아냐요?』
『지운일 생각하니?……』
『누가!』
어머니와 똑같은 심정으로 꼭같은 대답을 석란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