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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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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愛[연애]와 結婚[결혼]

[편집]

끝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인파 속으로 사라져간 정주를 생각하며 지운은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너 저녁은?……』

『먹었읍니다.』

세수를 하고 전등이 갓들어온 안방으로 들어가다가,

『아, 꽃을 사 오셨군요, 어머니.』

대청 소탁자 위에 꽃 한 다발이 소담하게 꽂혀 있었다.

『글쎄 말이다. 너의 아버지가 오늘부터 바람을 피신단다. 이쁜 색시와 저녁 먹자는 약속도 하구, 그처럼 꽃다발을 한 아름 받아 오구……지금 막 기분이 좋으시단다.』

『오허, 허, 허……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지금 막 바가지를 긁고 있는 참이다.』

반주 한 잔을 얼근히 마신 임교수가 부인과 겸상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유쾌히 웃고 있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신다구요?』

안방으로 들어가서 지운은 어머니 앞에 앉으며 영문을 모르고 웃었다.

『그러기에 말이다. 처음엔 시치미를 딱 떼구, 뭐 결혼 기념일을 위해서 사 갖고 왔다고 속여도 보더니만, 죄를 진 몸이라, 발이 저려서 종시 실토를 하셨단다. 호호호……』

부인은 정말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숟가락을 놓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래서 너의 어머니가 지금 웃음으로 얼버무려 버리긴 하지만도 속살로는 전전긍긍, 바람앞의 촛불처럼 가슴이 훌레훌레……』

『아, 하하……참 어머니와 아버지는 언제나 재미 있어요』

평화로운 가정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을 지운은 새삼스레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글쎄 너의 아버지가 M여대에 나가시면서부터 넥타이두 이것 저것 갈아 매보구, 양복에 솔질도 손수 하시고……오, 호호……』

부인은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다.

『그렇지만 M여대에 나가시는 건 어머니가 앞장서서 권하지 않으셨어요?

어머니의 모교라구……』

『그렇지만 넥타이를 이것 저것 갈아 매시라군 그러지 않았다. 호호호……』

『거짓말!』

임교수는 술잔을 탁자 소반에 놓으며,

『얘, 너 증인이 좀 돼 줘야겠다. 여자 학교는 남자 학교와 달라서 옷차림에 주의를 하지 않으면 장본인인 교수보다도 교수 부인이 흉잡힌다구, 그건 도대체 누구가 한 말인데?…… 한두 번 넥타이를 갈아 매 본 것두 애처가인 임학준 교수가 마누라의 흉을 보이지 않기 위한 지극한 정신적인 줄은 모르고……』

임교수의 기분이 오늘은 정말 각별히 좋다. 무슨 별다른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확실히 꽃다발의 탓인것 같았다.

『그런데 어머니, 꽃다발은……어떻게 된 꽃다발입니까?』

『글쎄 말이다. 나는 영문도 모르지만, 학생 하나가 아버지에게 그처럼 친절하게 해드렸다지 않느냐? 차두 사 드리구, 또 내일 모레 저녁두 사드린다구 철석 같은 약속을……』

『오허, 허, 허……철석 같은……』

임교수는 적지않게 민망하다.

『어떤 학생인데요?』

『응, 이석란이래나 하는 학생인데……성격이 대……단히 명랑하구……』

『아, 하, 하, 핫……석란을 만나셨군요, 아버지 ! 하하핫……』

지운은 유쾌하게 웃었다.

『응?……』

임교수는 어리벙벙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러했지만 아들을 바라볼 적마다 임교수는 자기의 재판(再版)을 눈앞에 보는 것 같아서 핏줄기의 다사로움을 항상 느끼는 것이다. 사실 지운이 가 안경만 썼다면 얼굴의 분위기까지가 신통히도 아버지였다.

『아니 그 학생을 네가 아느냐?』

『잘 알아요.』

『오오, 그래?』

그건 임교수가 아니고 임교수의 부인의 감탄사였다. 거기서 부인은 남편을 대신하여, 오늘 강좌 시간에 석란이라는 학생이 재치있는 야유를 하더라는 말과 열 두 개의 구두창으로 경의를 표하더라는 말 등등, 차 한 잔을 얻어 먹고 꽃다발을 안기워 가지고 돌아온 이야기를 쭉 한 후에,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학생이 오늘 상대로 한 것은 한 사람의 남성인 임학준 교수가 아니고, 호호호……』

부인은 또 우스워 죽을 지경이다.

『여보, 정신 좀 바싹 차리세요! 소설가 임지운의 아버지로서의 대우를 받았다는 말이예요.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만 좋아서……유치원 애들도 아닌데, 꽃다발을 안고 종로 네거리를 싱글싱글……참 사나이들은 주책도 없지.

오오, 호, 호……』

무슨 승리자처럼 부인은 통쾌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삼십 년 동안이나 자기 혼자에게만 바쳐온 남편의 애정이건만 그 남편이 다소의 호기심을 가지고 애숭이 같은 석란을 바라 보았다기에 그처럼 통쾌할 리는 만무할께 아니냐고는 생각하면서도 통쾌한 심정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싱글벙글은 누가 그랬다는 말이요?』

사실 말이지, 다소 주책이 없었다고 마음으로는 적지않게 찔리기는 했으나 표정만은 태연자약한 임학준 교수였다.

『아이구, 그만 두세요. 내가 당신의 마음속에 홀랑 들어갔다 나온 것보다 더 잘 알고 있답니다. 나이 오 십이 아깝지, 뭐유? 공자님은 사십에 불혹(不惑)을 했다는데, 근엄한 철학자요 성실한 애처가이신 임학준 교수께서는 오 십이 너머서도 싱글벙글……』

『어머니, 그건 모르시는 말씀이예요. 공자님 시대와는 시대가 다르답니다.』

지운도 유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옳지, 너도 사내라고 아버지 편을 드는구나! 시대가 다르다면 그래, 관속에 들어가서도 여자만 보면 싱글벙글 하겠구나?……』

그 말에는 아버지와 아들도 그만,

『아, 하하핫……』

하고 웃어댔다. 그러나 일견 그 호탕하고도 유쾌한 웃음 소리에는 어딘가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일맥 상통하는 하모니가 취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확실히 무슨 비밀의 속삭임 같았다. 아무리 이해성 있는 어머니나 아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남성만의 비밀인 것 같았다.

이리하여 우리가 존경하여 마지않는 근엄한 철학자 임학준 교수도 결국은 자기가 남성이라는 부류에 속하고 있다는 엄격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식함 으로써 사십에 불혹했다는 공자에게 일종의 철학적인 항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웃기만 하면 젤인가? 대답도 없이……』

복순이를 불러 저녁상을 치우면서 부인도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들도 거기 대한 답변은 끝끝내 하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내 대신 당신이 나가서 연애 강의를 하구려.』

『하래믄 누가 못할 것 같아요? 여자의 애정심리는 내가 한 걸음 앞설 거야요.』

『허어?……』

『허어는 또 무슨 허어예요? 그 석란이라는 학생만 해도……』

부인은 아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래 그 석란이라는 학생이 뭐 어쨌다는 말이요?』

임교수는 담배 한 꼬치를 피어 물며 석란의 행동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아내의 설명을 은근히 구했다.

『어쨌긴 뭐가 어째요, 당신도 무던히나 주책도 없지 그 꽃다발이 누구에게 가는 꽃다발인 줄도 모르고 연애 강의는 또 무슨 연애 강의예요?』

『허어, 이러단 내가 당신에게 강의를 들어야 겠구려.』

『들을 건 들으셔야지 별 수 있어요? 여자들의 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참…… 알고 보면 그건 지운에게 보내 온 꽃다발이랍니다요.』

『그래?……』

임교수는 덤덤히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이구, 너의 아버지는 정말 벽창호시다!』부인은 또 깔깔대며 웃었다.

『어머니도 참……』

『지운은 다소 민망스러워졌다.

『지운의 방에 그라디어러스가 늘상 꽂허 있는 걸 못 보셨어요?』

『그런데?……』

『아이머니! 그래도 모르시고 그런데만 찾으셔!』

임교수는 무엇에 홀린 사람모양 어리벙벙해졌다.

『네가 그라디어러스를 좋아하는 줄 알고 늘상 사보낸 건 분명 그 학생이었지?』

아들을 바라보며 부인은 웃으면서 물었다. 지운은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너 똑똑히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기회에 아버지 교육을 좀 시켜 드리는 거야.』

『어머니도 참……』

지운은 그저 빙글빙글이다.

『침묵은 승낙의 표시라고, 그만하면 인제 당신도 아셨지요?』

『그래, 어서 강의를 계속하시구려.』

임교수도 사뭇 유쾌한 표정이다.

『아까 지운의 방에서 화병을 꺼내다 보니, 시들어 빠진 그 라디어러스가 꽂허 있던 것 보셨지요?』

『그래서?』

『저번 사 보낸 꽃이 이젠 시들을 무렵인데 어쩌다가 지운을 못 만나고 있던 참에 당신이 걸려 들었다는 말이예요.』

『허어!』

『너 언제 그 학생과 만났었니?』

『이삼 일 전입니다.』

『그러면 그렇지!』

부인은 좀 보라는 듯이 표정을 크게 쓰며,

『결국 당신은 메센저보이 놀음밖에 못한 거야요. 아시겠어요?』

『음 ─ 』

어이도 없고 민망도 해서, 그러나 임교수의 신음 소리는 지극히 명랑하다.

『그라디어러스만 사 보내기가 뭣해서 국화랑 코스모스랑은 말하자면 덤으로 섞었을 거예요.』

『하하……어머니도……』

『그래 내 말이 안 맞았다는 말이냐?』그러나 지운은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럼 그 학생의 모든 행동이 단지 나를 메센저로 사용할 목적으로…

…?』

나이찬 아들 앞에서 적지않게 민망스럽기는 했으나 임교수는 또 임 교수대로 다소의 적막감을 가슴에 느끼며 물었다.

『아버지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건 어머니가 지나치게 해석을 하시니까 그렇게 들리시겠지만요. 원체 개방적인 명랑한 성격이구……또 저를 통해서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답니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 그러한 친밀감과 호의로써 아버지를 대했을 것입니다.』

『음, 지금 네 말을 듣고 보니, 그 학생은 내게 대해서 확실히 친철했었다.』

그러나 임교수는 결국에 있어서 쓸쓸했다. 국화나 코스모스가 그 라디어러스의 덤인 것처럼 자기는 이제 인생의 한낱 덤인 셈밖에 못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석란의 문제에 대해서 금명간 아버지나 어머니의 의향을 들어볼 셈으로 있었지요. 언제까지나 독신으로 지낼 수도 없고 해서……』

그 말에 어머니는 튀어날 것처럼 기뻐하며 바싹 아들의 옆으로 다가앉았다.

『오오, 그래? 그래서?……』

지운의 결혼 문제는 임교수 내외에 있어서 오랜 시일에 걸친 중대 관심사였다. 지운이야말로 삼대 독자로서 임씨가문을 계승할 유일한 혈통이었기 때문에 스므 살 고개를 너머서기가 바쁘게 지운에게는 여기저기서 결혼 문제가 빗발처럼 쏟아져 왔다. 그러나 지운은 지운대로 결혼을 강경히 거부해 왔다. 어떻게 되면 자기는 영영 결혼을 하게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임씨의 대가 끊어져도 너는 좋다는 말이냐?』

임교수는 참다 못하여 언성까지 높여도 보았다. 그래도 지운은 결혼할 생각은 통 없다고 했다. 그 이유를 캐물어도 청년 임지운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곤 하였다. 어떤 때는 글썽글썽 눈물을 먹음기도 했다. 어머니가 수상해서 지운의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이유를 물을라치면,

『어머니, 아무런 이유도 없어요. 설사 어머니가 아신대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가만히 내버려 두시면 돼요.』그 한마디 뿐 지운은 그 이상 더 말하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마음씨가 곱고 내약하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꺼질 줄을 모르는 정열의 불꽃은 확실히 어머니의 핏줄기에서 왔다. 그것이 오늘의 지운으로 하여금 소설가로 만든 유일한 요소인지 모른다.

그 반면에 아버지가 지닌 성실과 고집불통의 일면도 또한 지운은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이 후천적인 교양에서 온 것이고 지운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핏줄에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운은 고독한 소년이었다. 나이 자라 중학교, 대학에 들어가서도 지운은 친구를 그리 사귀지 않았다. 고독해지면 혼자서 거리를 하루 종일 방황했고 물과 숲을 찾아 들로 산으로 싸돌아다녔다.

그러다가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보름이고 한달이고 어두컴컴한 글방에 들어 배겨서 시집이나 소설책을 끼고 춘삼월 긴긴 해를 딩굴면서 지냈다.

처음에는 임교수 부부도 아들의 그러한 불규칙한 생활을 탓도 해보고 나무래도 보았으나 결국은 그대로 방임해 두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대학을 나오는 해로 어떤 중학교 교원으로 이태 남짓이 근무하다가 그 추잡한 사회 생활에 도저히 견뎌 배기지 못하고 교장을 상대로 석달 동안을 격렬히 싸우다가 종시 똥이 무서워서 비끼는 줄 아느냐는 한 마디를 최후로 남겨놓고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배겨서 부지런히 글만 썼다.

그러던 것이 임교수 부부가 아들의 결혼을 거의 단념하다시피하고 있는 오늘에 와서 지운 자신의 입으로부터 결혼 문제를 끄집어 냈다는 것은 적어도 이 가정에 있어서는 하나의 커다란 경사인 동시에 놀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부인은 아들의 옆으로 다가앉아서 반색을 하며 조급히 물어 봤다.

『그래 그 석란이라는 그 학생이 네 마음에 든다는 말이냐?』

『마음에 든다기 보다도……그 만한 사람두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또 오랫동안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해 온 것도 죄송한 일이구……』

『무얼 그런 걸 다……그래 그이가 어떤 학생이냐?』

『깊은 사정은 저도 잘 모르지만요.』

지운은 거기서 이 석란에 대한 자기의 지식을 간단히 이야기 하였다. M여대 정치외교과 졸업반, 나이는 스물 셋, 의욕이 다소 많고 적극적이나 쾌활하고 명랑한 성품, 가끔가다 익살도 잘 부리지만 뿌리 깊은 악의 같은 것은없어 보이고 지식이나 교양의 깊이는 없으되 현대적인 센스같은 것은 웬만큼 갖추고 있는, 소위 대표적인 명동형(明洞型)이라고 지운은 말했다.

『명동형이라면 일종의 불량형이 아니냐?』

『어머니,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얼핏 보면 그렇게도 생각되지만요. 그러나 그건 오늘날, 도회지에서 자란 젊은 세대의 대부분이 무슨 조건처럼 갖추고 있는 일종의 명랑성일 따름이니까요.』

『그럴까?』

그것은 임교수였다. 임교수 역시 부인과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오늘 임교수는 이석란이라는 학생의 행동을 이모저모로 보아왔다.

그것이 단지 일종의 명랑성 뿐이었을까?

『사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오늘날처럼 심각한 시대가 없을텐데 아무리 젊은 세대라고는 해도 그리 쉽사리들 명랑해질 수가 있을가?』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처럼……』

지운은 싱긋이 웃으며,

『심각하게만 생각해도 별 수 없는 일이니까 모두들 웃고 사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안될말.』

『그것은 일종의 비겁한 현실 도피니까 ─』

『비겁해도 하는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들은 결코 비겁하다는 말은 쓰지 않고 현명 하다는 말을 사용한답니다.』

『음 ─ 』

임교수는 신음을 하며,

『비겁이 현명해질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말이겠다!』

임교수의 생각으로서는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아니 타협해서는 아니되는 그들의 생활 철학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생명을 건드리는 진검승부의 연애로만 강의하시다가는 학생들에게 웃기워요.』

『응, 석란이가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만 그러한 석란을 퇴장시켜 달라고 말한 학생이 한두 사람 있었다는 건 역시 내 강의의 진실성을 말하는 증거일 거다.』

그러면서 임교수는 안경을 쓴 차거운 얼굴과 후딱 눈물을 거둡던 자주 치마 학생의 얼굴을 생각했다.

『어쨌든 지운이만 좋다면 그만이지, 뭘 그러슈?』부인은 어서어서 손주가 보고 싶다.

『그거야 물론 그렇지만 말이요 명랑성도 지나치면 일종의 불량성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니까 ─ 』

오늘 임교수가 이석란을 면접하여, 부인의 말대로 주책 없는 생각을 다소 간이라도 가져보게 된것도 지금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석란이가 지닌 그 명랑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일종의 불량성 때문이 아니었던가 했다.

그 불량성이 자기를 유혹했었고 그 불량성을 임교수는 마음 한 구석으로 허용을 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석란이가 실로 뜻밖에도 며느리가 되려는 것이다. 삼대 독자가 결혼을 하겠다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이기는 하였으나 다소의 불쾌감을 임교수는 면치 못했다.

『그래 너로서는 결정적인 생각이냐?』

『아버지나 어머니가 좋다고만 하신다면……』

『음 ─ 』

임교수는 입맛을 다셨다.

『너만 좋으면 집에서야 대찬성이지 뭐냐? 십년래의 경산데……그래 뉘집 자손이냐?』

부인은 덮어놓고 찬성이다.

『아버지 되시는 분은 육 ․ 이오때 돌아가시고 중앙청 무슨 국장을 지냈다구요. 딸하난데 어머니는 지금 명동에서 요리점을 경영한답니다.』

『요리점?……』

그 말에는 부인도 적지않게 얼굴빛을 잃었다.

『아니, 요리점이라니, 술 파는 집 말이냐?』

『그렇지요. 결국 술도 팔지요.「식도락」(食道樂)이라는, 일본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아담한 집이 있읍니다.』

『…………?』

『…………?』

부인은 입을 딱 벌리고 남편을 쳐다보았고 임교수는 입을 꽉 다물고 마누라를 바라보았다. 지운은 빙그레 웃으며,

『어머니, 왜 그러세요? 요리집 자녀들은 시집 장가 못 가겠군요. 하하하……』 소리를 내어 이번에는 웃었다.

임교수는 입맛을 다셨고,

『그래도 너……』

부인은 대꾸를 잃었다.

『소위 명동형으로서는 아주 순종(純種)이지만, 어머니 괜찮아요. 저희들은 이제 어머니와 아버지를 본받아서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하겠읍니다.』

『하기야 사람만 똑똑하면 되지만……』

그 말에 임교수는,

『똑똑은 합니다만……』

『그랬으면 되지, 뭘 그러슈?』

그러나 임교수는 석란이가 지니고 있는 그 무슨 요염에 가까운 분위기 같은 것이 끝끝내 마음에 걸렸다. 임교수가 다소의 호감과 매력을 느꼈던 그 분위기가 건실한 가정의 며느리로서의 조건을 자꾸만 건드리는 것이다.

『만일 이 결혼에 대하여 집안에서 반대를 한다면……이건 물론 가상적인 말이지만…… 너로서는 어떻걸 셈인고?』

지운은 얼마간 생각을 하고 나서,

『그러시다면 저도 달리 한 번 생각해 보겠읍니다. 제 아내가 될 사람인 동시에 부모님의 며느리도 될 사람이래야 할테니까요.』

그 말에 임교수는 머리를 저윽기 기우리며,

『좋은 말이다. 그러나 연애 결혼일텐데……』

『아, 연애 결혼……』

그러다가 지운은 미소띤 얼굴로,

『제가 보기에는, 오늘날 이 환경에서는 순수한 의미에서 연애 결혼이라고 볼만한 결혼이 있을 것같지가 않습니다. 아마 일종의 교제 결혼이 되겠지요.

『그럴까?……』

아들의 심정을 임교수는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교제를 해 보는 동안에 다소 이성으로서는 매력도 느껴보고 또 그러는 동안에 서로의 장점과 결점도 발견하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모두가 다 현명해서 제 주제에 넘는 엉뚱한 생각들을 잘못하니까 그저 그만하면 된다는, 일종의 현명한 계산 밑에서 성립되는 결혼이 많겠지요.』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뭐 잘난 듯이 저희들은 연애 결혼을 했다고 떠들어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것은 동물이면 누구나가 다 가질 수 있는 다소의 이성적인 토대로 한 일종의 사찰 결혼(査察結婚)이지요. 옛날에는 그 사찰 과정을 부모에게 맡겨 두었던 것을 요즈음에는 당자들이 한다는 것뿐이예요.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고 있는 연애, 또는 연애 결혼과는 다소 그 관념에 있어서 거리가 있지요.』

『음 ─ 』

임교수는 자기와 일맥 상통하는 연애관을 지니고 있는 아들을 적지않게 탐탁한 눈으로 한 번 더 바라 보았다.

『그래서 아까도 말씀 드렸읍니다만, 제 생각에 혹시 무슨 착오 같은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말씀대로 달리 한 번 생각해 보아도 무방하답니다.』

『음, 좋은 생각이야! 역시 지운은 내 아들이다.』

임교수에게는 아들의 태도가 지극히 좋았다. 역시 이 아들은 생각하는 아들이라고 믿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철학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 얼마나 수많은 젊은이들이 철학을 상실한 채 거리를 방황하는가를 생각할 때, 임교수는 아들의 존재가 주옥처럼 보배로웠다.

『내가 구태어 반대하는 건 아니구, 네가 좋으면 결국 해야만 하는데……

그러니까 네 말을 빌어 말하면, 이 결혼도 일종의 사찰 결혼이라는 말이지?』

임교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네, 결국은……참된 연애라면 계산을 초월해야만 할텐데, 요즈음 사람들은 하나같이 총명해서 연애도 하나의 비즈니스(事務[사무])로 취급되기가 쉬워요. 사무에는 주판이 필요하니까 자꾸만 이리 재구 저리 재구 하는 거지요. 앞뒤를 잰다는 건 벌써 순수한 의미에서 연애는 아니니까요.』

『음, 좋아!』

『연애란 인생에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연애가 꼭 있어야만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연애 없는 결혼을 우리 조상은 수천년 해왔어도 모두 다 아들 딸 낳고 잘 살아 왔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연애 결혼의 폐단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나타냈다고 저는 보아요.』

『옳지, 옳지!』

『해방 이후 자유 사상이 갑자기 늘어가면서부터 연애도 자유가 됐지만요.

그렇다고 해서 요즈음 젊은이들처럼 연애를 안하는 사람을 무슨 인생의 낙오자 같이 보는 것은 확실히 경박한 아메리카니즘의 폐단이지요.』『맞은 말이다. 연애란 할래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 ─』

『그렇지요. 기회가 없는 학생들은 연애의 경험이 없이 청춘기를 넘겨 보내는 일이 허다 하답니다. 더구나 연애를 성실하게 생각하는 학생에게는 더욱 그런 기회가 적지요.』

『그런 의미에서 연애는 청춘의 심볼이기는 하지만 청춘의 조건은 아니니까 ─ 』

『동감입니다. 아버지. 인생을 두고 연애를 수없이 해치운 스탕달 같은 인간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인간의 걸레 쪼각 같이만 생각키워요.』

『허허, 허……』

임교수는 유쾌하다.

『아이구, 이젠 그만들 둬라. 너희 부자는 마주 않기만 하면 인생이니, 진리니, 철학이니, 문학이니……』

부인은 어서어서 결혼 문제의 끝마무리가 보고 싶어서,

『결혼식은 더 춥기 전에 빨랑빨랑 해치워야지. 저편 의향은 어떤지?

……』

『그 점에 있어서는 저편에서도 찬성일 거예요. 자기 어머니 말이, 어서어서 고삐를 매둬야지 놔 기른 말같아서 안심이 안된다구요.』

『호호호호홋……상당한 말광량인 모양이로구나.』

부인은 그저 기쁘기만 하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봤지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삼십 주년 기념일에 식을 거행 했으면 하고요. 그래서 저희들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따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워 볼 생각으로요.』

『그것도 무방하지.』

그것은 임교수였다.

『날짜가 다소 급박하지만 그래 보지.』

부인도 찬성이다.

『내일 모레 저녁 석란이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했다니까, 그때 어머니두 같이 가서 어쨌던 선을 한 번 보셔야지요.』

『음, 마침 잘됐어.』

임교수는 마침내 아들의 결혼을 승낙하였다.

그러나 임교수의 마음은 부인의 그것처럼 전적으로 유쾌하지는 못했다.

삼대 독자인 지운의 결혼을 축복하려는 마음 한 구석에 조그만 공허가 다시금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인생의 덤!』

국화랑 코스모스랑은 결국에 있어서 그라디어러스의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