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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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소리에 잠을 깨니, 아직도 어저께 팔십여 리나 걸은 다리가 쑥쑥 쑤신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같이 자는 학생들은 아직도 피곤하게 잔다。 그네의 단잠을 깨우지 아니할 양으로 가만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벌써 법당에서는 늙은 중의 아침 예참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도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반짝하고、늦은 가을 새벽 바람이 자다가 나 온 몸에는 꽤 춥다. 법당 앞 마당 돌 수채에 밤새도록 괴이고 넘치는 물에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가만히 들어가 한편 구석에 섰다。 노승은 연해 제불보살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는、목탁을 딱딱 치며 공순히 금부처 앞에 절을 한다。그물그물하는 촛불에 비친 천년 묵은 금부처는 그가느단 입을 벌릴 듯 벌릴 듯이 앉았다. 노승은 모든 물욕을 버리고, 오직 삼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끝없는 대원을 꿈꾸는 듯하는 눈으로 그 금부처를 바라보며 제불보살의 이름을 부르고는、 또 목탁을 딱딱 치며 길게 느리게 절을 한다。 절할 때마다 그 회색 장삼자락이 때묻은 마루 위에 약간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다.

꽤 넓은 법당 안에는 이 노승 혼자뿐이다。 그리고 한편 구석에 가만히 읍 하고 섰는 그가 있을 뿐이다。 노승은 사람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곁에 서서 보거나 말거나 그 졸리는 듯하고도 힘있는 목소리로 그저 예참을 하고 있다. 그는 육십 평생에 사십여 년을 이런 생활을 하고 왔다. 아직 세상 사람들이 단꿈에 취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지금 모양으로 검소한 장삼을 입고, 목탁을 두드리고 몇 백 번인지 수없는 절을 하면서 제불보살의 이름을 부르고, 수없는 동안에 나고 살고 죽은 수없는 삼계중생을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져지라고 발원을 하였다. 아마 이제부터 십년이 될는지 이십년이 될는지 모르거니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하는 동안에 그의 입으로 부른 제불보살의 이름이 몇 천만이나 될까, 그가 삼 계 중생을 건져지라고 발원하는 절이 몇 천만번이나 될까. 이 외따른 산 속 쓸쓸하고 외로운 낡은 절에서 그 늙은 눈앞에 속절없이 괴로와하는 중생을 보면서 「건져지라 건져지라」하는 끝없는 발원을 하는 이 노승을 볼 때에, 그는 눈물이 흘렀다. 아아, 그 거룩한 모양!

노승은 예참이 거의 끝난 모양인지, 목탁을 자주 치며 절도 아니하고,「나무아미타불」만 빨리 부른다. 그는 자기 신세와 마음을 이 노승에게 비기면서 가만히 법당에서 나와, 아직 길도 잘 보이지 않는 산비탈 바위 틈을 기어 올라 산마루로 올라갔다. 발자취에 놀라 깬 새들이 황망하게 나뭇가지를 차고 날아나는 소리가 들린다.

산마루에 올라서니, 거기는 벌써 새벽 빛이 왔다. 먼 동편에는 자줏빛 섞인 불그레한 빛이 있고, 동북으로 보이는 백운대의 모양이 분명히 별 드문 하늘에 드러난다.

그는 산마루 길로 서쪽을 향하고 갔다. 하얀 산국화가 발길에 채일 적마다 맑은 향기를 토하고 백만년 풍상에 썩은 돌들이 약간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

얼마를 가서 우뚝 솟은 큰바위에 다다라 길이 막혔다. 이것이 산 머리다.

민틋하게 서쪽으로 흘러오던 산이 번쩍 고개를 들어서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이 바위다. 그는 천제단에 나 오르는 듯한 경건한 마음으로 밑에다 신을 벗어 놓고 발 붙이기 어려운 바위를 조심조심히 기어 올랐다. 맨 꼭대기에 올라서니, 거기는 신라 진평 대왕의 경계비가 선 곳이다.

하늘은 파랗게 맑았건마는, 산 밑은 가을 안개의 바다이다. 안개라기보다 구름의 바다이다. 북악과 남산이 조그마한 섬같이 이 구름바다에 떴다. 평평하게 가는 물결도 일지 아니하는 이 구름바다는 동으로 남한강까지, 남으로 관악산까지, 서로는 끝없는 하늘 끝까지 연하였다. 백운대 끝에 넘치도록 비친 새벽 빛은 저 구름바다 밑에 한 줄기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만호 장안이라는 큰 서울이 저 바다 밑 어두운 그늘 속에 묻혀 잔다. 아니, 이천만이나 산다는 조선 전체가 저 구름바다의 천 길 깊이 속에 잠겨 있다.

<건져내야겠다!>

하고, 그는 합장한 손을 높이 들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아아, 하늘이여. 저 구름바다의 천만 길이나 깊은 어두운 그늘 속에서 무서운 꿈에 괴로와하는 이천만 불쌍한 무리를 건져 주옵소서. 제 작은 몸 이 해와 달은 못되더라도, 그것에 하늘의 불을 붙여 조그마한 촛불이 되게 하셔서라도, 그것도 안 되거든, 조그마한 솔깡불이 되게 하셔서라도, 저 어두움의 그늘을 비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에 찬 저 무궁한 빛을 삼천리 강산에 흘려내려 주시옵소서. 만일 저 이천만 무리가 천지의 주재 되시는 당신의 계명을 어기어 무거운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죄를 받는 벌이 오늘까지에 끝이 나고 내일 아침부터는 새로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귀여 운 백성이 되게 하시옵소서. 온 천하 수없는 당신 백성 중에 저 무리처럼 불쌍한 자가 다시는 없나이다. 하늘이시여, 저 먹을 것도 없고 마음에 즐거움도 없어 나날이 기운이 줄어가는 백성을 안 돌아보시나이까. 아주 내어버려 영원히 이 땅 위에서 스러지게 하시려나이까.

저는 이 자리에서 당신께 맹세하나이다. 만일 이로부터 십년 안에 당신께서 저 백성에게 먹을 땅과 즐길 하늘나라를 주시지 아니할진대, 십년 되는 오늘 이 자리에 올라와, 당신 앞에서 제 머리를 깨뜨려 이 바위에 피를 발라, 이 땅이 녹아 없어지는 날까지 당신께서 이 백성을 버리신 표를 삼기를 맹세하나이다. 그때에 당신께서 비를 내려 저의 피를 씻으려 하시더라도, 그 빗물이 모두 피가 되어 온 땅을 적실 것이요, 벼락을 내려 이 바위를 깨뜨리시더라도, 그 바위 조각조각이 피를 뿜은 제 혼령이 되어, 온 땅에 소리를 지를 것이로소이다.

아아 하나님! 이 백성을 건져 주시옵소서. 만일 합당하거든, 이 몸으로 이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이 되게 하시고, 이 몸으로 이 백성에게 하늘의 빛을 전하는 횃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그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는 하늘을 향하여 치어들었던 손을 내려 온 땅을 축복하는 모양으로서 남을 향하여 들고 목이 메인 소리로,

『아아 조선 사람아, 네가 지금 가장 낮은 곳에서 슬피 울거니와 장차 가장 높은 곳에 들리워, 온 천하의 우러러 보는 백성이 되리라. 만민을 구원 하는 하늘 나라이 네게로부터 시작되리라!』

하고, 진평왕의 비에 몸을 기대어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반쯤 감은 눈으로 여전히 구름바다에 머리를 내어 놓은 남산을 바라보고 있다.

남한산성으로 불그레한 햇빛이 올려 쏘자, 천지가 갑자기 환하여지며, 끝 없는 구름바다의 회색빛이 수은빛으로 변하고, 뚝섬 근방인 듯한 곳에 구름뭉치가 소용돌이를 치는 듯하더니, 그것이 차차 높아지고 굵어져서 커다란 구름 기둥이 되어 피어 오른다. 다른 데도 여기저기 조그마한 소용돌이가 생기며, 혹은 동으로 혹은 남으로 흘러가는 모양이 보인다. 마치 천만년 깊은 잠에 깨지 못하였던 구름바다가 새 빛을 받아 움직이기를 시작하는 것 같다.

북한의 모든 봉들은 점점 올려 쏘는 아침 빛에 금빛으로 물이 든다. 고요 하던 천지에는 문득 끝없는 움직임과 흐름이 생긴다. 부드럽고 전전한 천지의 움직임, 무한한 힘의 무한한 움직임에서 나는 무한한 빛과 소리가 돌비에 기대어진 그의 영혼과 육체의 모든 분자를 알알이 울리는 것 같다. 그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참는 듯이 몇 번이나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더니,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가자, 나서자.』

하고,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번적 뜨며,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자.』

그는 비석 앞에 다리를 뻗고 앉아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오늘 아침에 <다 작정이 되었다. 지금까지 머뭇거리던 것은 다 버려야 한다. 재산도 명예도 내 몸의 안락도 다 버려야 한다. 발가벗은 몸으로 불덩어리와 같은 정성 하나만 돌고 동포들 속에 뛰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네와 같이 굶고 헐벗고 채우고 얻어맞고 울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의 불로 이천만 조선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다시 천국의 법률로 그네를 묶어 한 덩어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네와 따로 떨어져서 한층 높은 곳에서 입으로만 부르짖었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 가는 무리를 보고 땅 위에 편안히 앉아서 나오라고 소리만 치는 셈이었었다. 물을 먹어 정신을 못 차리고, 팔다리에 맥이 돌지도 아니하는 무리더러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랴. 내가 활활 벗어버리고 그네와 같이 물에 뛰어들어야 한다. 들어가서 한 사람씩이라도 건지어 내자. 있는 힘을 다 써서 건지다가 건지어지면 좋고, 만일 안 되거든 그네들과 함께 껴안고 죽자.

그렇다, 건지다가 안 되거는 그네들과 함께 껴안고 죽자.>

해가 올라왔다. 그의 얼굴에도 아침 해에 야릇하게도 붉은 볕이 비치고, 그가 앉은 흉물스러운 큰 바위에도 볕이 비치어서, 진평왕의 기념비가 서북을 향하여 길다란 그림자를 누였다.

잔잔한 구름들이 끓어오르기를 시작한다. 뭉게뭉게 떼를 지어서는 수르르 공중으로 기어 오르다가, 스러지는 놈도 있고, 남한산 모퉁이 관악산 모퉁이로 슬며시 돌아가 숨는 놈도 있다. 이윽고 서쪽의 구름이 툭 터지며, 은빛같이 굳세게도 빛나는 한강 물의 휘움한 한 굽이가 정열에 타는 그의 눈에 번쩍 들어올 때에, 그는 꿈에 깨인 듯이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들고 한 번 큰 소리를 질렀다.

학생들이 그를 찾아 「선생님!」하고 부르며, 지껄이고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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