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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와 마귀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옛날 어느 곳에 늙은 어부가 있었는데, 살림이 몹시 가난하여서 마누라와 아들 세 사람과 다섯 식구가 밥을 굶을 때가 많건마는, 그래도 하루에 꼭 네 차례 이상 고기를 잡는 법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아침 일찍이 그물을 가지고 바다에 나가서 물 속에 펴고, 고기가 많이 들어갔음직할 때에 그물을 잡아당긴즉, 웬일인지 아무리 힘껏 잡아당겨도 나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이크! 오늘이야말로 고기가 많이 잡혔나보다.”

하고 어부는 기뻐하면서 있는 기운을 다 들여서 자꾸 잡아당겼으나, 그래도 나오기는 커녕 꼼짝도 하지 아니하므로 아래위 옷을 홀딱 벗어 버리고, 물속을 풍덩풍덩 들어가서 그물 둘레를 추스려 가지고 잡아당기고 당기고 하여 간신히 끌어올렸습니다.

“대체 얼마나 많이 잡혔기에 그렇게 무거웠나”

하고 그물을 헤치고 보니까, 고기라고는 붕어 한 마리도 없고 보기도 흉한 당나귀 죽은 송장 하나뿐이었습니다.

늙은 어부는 기가 막혀서,

“어이구, 이것은 분명히 오늘 나쁜 일이 있을 징조로구나,”

하고 낙심하면서, 몇 걸음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 그물을 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물에 걸려 나온 것이 돌멩이와 진흙덩이뿐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더러 조금이라도 고기가 잡히겠지…….”

하고 어부는 또 다른 곳에다 그물을 폈으나, 이번에는 아주 썩은 냄새나는 북더기 지푸라기 같은 것뿐이었습니다.

늙은 어부는 그만 탄식을 하면서,

“아아 하느님! 저는 하루에 꼭 네 차례씩밖에 그물을 펴지 않는 사람인데 벌써 세 번까지 이 지경이오니, 늙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굶어 죽으란 말씀입니까? 아아 하느님! 인제는 마지막이오니 조금이라도 잡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우는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네 번째 마지막 그물을 폈습니다. 참말로 이번에도 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이 늙은 어부와 늙은 아내와 아들 세 사람은 내일 아침까지 꼬박 굶게 되는 터이었습니다. 이번에야 다만 조금이라도 잡혔겠지 하고 잡아당긴즉, 웬일인지 그물은 바다 속에서 잡아당기는 것처럼 까딱도 아니합니다. 어부는 또 벌거벗고 뛰어들어서 죽을 힘을 다하여 간신히 간신히 끌어올렸습니다.

얼마나 잡혔나 하고, 와락와락 그물을 제치고 보니까 웬걸……, 이번에는 고기라고는 그림자도 없고, 구리로 만든 조그만 항아리 한 개뿐이었습니다. 하도 이상하여 그 병 같은 항아리를 집어들고 보니까, 그 주둥이는 술병처럼 좁디 좁은데, 그 주둥이에는 납을 끓여 부어 꼭 봉하였고, 봉한 위에는 이상스런 도장까지 찍혀 있었습니다.

고기는 하나도 못 잡고……. 그러나 네 번 이상 그물을 또 펴기는 싫고……, 늙은 어부는,

“오냐, 이 구리 항아리를 가지고 가서 팔자! 팔면 오늘 하루 먹을 것은 되겠지!”

하고, 들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조그만 항아리가 이상스럽게도 몹시 무거운 것을 보고, 또 납으로까지 봉한 것을 보고, 점점 이상하여 주둥이를 뜯어볼 생각이 생겼습니다. 그래,

“대체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도 몹시 무거운고…….”

하고 항아리를 땅에 놓고, 주머니에서 칼을 내어 들고 납을 떼고 마개를 벗겼습니다.

그랬더니 이상도 하지요. 그 조그만 항아리, 그 조그만 주둥이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나오더니, 어찌도 많이 나오는지, 자꾸 뒤를 이어 나오는 그 연기가 점점 점점 퍼져서 온 하늘을 덮어 버렸습니다.

어부는 하도 이상하고 무서워서 벌벌 떨고만 있는데, 나올 연기가 다 나왔는지 항아리 주둥이에서 연기가 뚝 그치더니, 이번에는 온 하늘을 덮었던 그 무서운 연기가 한데로 한데로 자꾸 오므라들더니, 한참 오므라들어서 나중에는 큰 바위만한 얼굴을 가진 무서운 마귀가 되어서, 어부의 앞에 우뚝 서서, 사발만한 눈알을 뒹굴리면서 천둥 같은 소리로,

“야, 요 늙은 놈아. 너를 죽인다!”

하고 호령하였습니다. 늙은 어부는 그만 호랑이 앞에 조그만 토끼처럼 부들부들 떨다가 간신한 소리로,

“저어, 저 저를 무슨 일로 죽이십니까? 당신의 그 큰 몸을 이 조그만 항아리 속에서 구해 내어, 자유롭게 해 드렸는데, 상은 못 주실망정 무슨 일로 죽이십니까……?”

“그러니까 죽이지……. 내 몸을 꺼내 주었으니까 죽이지.”

“넷?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기 몸을 구해 준 사람을 왜 죽이십니까?”

“오냐! 어찌하여 내가 내 몸을 구해낸 사람을 내 손으로 죽이는 까닭을 이야기해 주마. 자세히 들어라! 내가 지금부터 일천 팔백여 년 전 옛적에, 신령님 명령을 복종하지 않고 거역한 죄로, 신령님이 나를 잡아서 연기로 만들어서 이 구리 항아리 속에 잡아 넣고, 다시 못나오도록 납을 끓여서 주둥이를 막고, 그 항아리를 저 바다에 집어 던졌다. 그래 나는 맨 처음에 이 항아리 속에 갇힌 채 바다 속에서 맹세하기를, 누구든지 백 년 안에 내 몸을 이 항아리에서 나가게 해 주면, 그 사람을 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하였단다. 그러나, 백 년이 다 지나도록 한 놈도 나를 구해 내 준 사람은 없구나. 그래 다시 이백 년 안에 나를 구해 내어 준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보물을 얻게 해 주겠다고 맹세하였단다. 그러나, 이백 년이 또 그냥 지나갔으므로 또 다시 삼백 년 안에 구해 준 사람에게는 어느 나라 왕이 되게 해 주고, 또 늙어 줄을 때까지 날마다 하루에 세 가지씩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맹세했단다. 그러나, 삼백 년은커녕 사백 년, 오백 년이 지나도록 아무 놈도 구해 내 주는 놈이 없었단다. 그래 나도 골이 나서, 인제는 어느 때든지 나를 이 항아리에서 구해 내는 놈은 잡아 죽이겠다고 맹세했단다. 그런데 일천 년, 일천 오백 년, 일천 팔백 년이 지난 오늘, 네가 나를 구해내었으니까, 그래 너를 죽인단 말이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죽이는 방법은 너의 소원대로 해 줄 터이니, 어떻게 죽여 주는 것이 제일 좋은지 말해 보아라.”

하였습니다. 가련한 늙은 어부는 속으로 ‘이젠 꼭 죽었구나.’ 생각하면서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린이》 4권 3호, 1926년 3월호〉


불쌍한 늙은 어부는 자기가 지금 마귀의 손에 죽으면, 집에 남아 있는 마누라와 어린 아이들이 어찌 될까 하고 염려되어,

“저는 늙은 사람이니까, 당신의 손에 죽어도 별 한탄이 없습니다만, 제가 죽으면 아무 죄 없는 네 식구까지 굶어 죽게 됩니다. 마음을 돌리시어 가련한 제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하고 울면서 울면서 빌어 보았으나, 마귀는 그런 말은 들은 체도 아니 하고, 그 사발만한 두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 죽는 것이 네 소원이냐? 어서 말해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이제는 아무 별수 없이 꼭 죽게 된 것을 알고, 늙은 어부는 눈물을 씻고,

“그럼 할 수 없습니다. 잠자코 죽지요. 죽여 주십시오. 그러나, 어떻게 죽여 달라는 소원을 말씀하기 전에, 한가지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무어냐?”

“당신은 한 번 결심하신 것을 그렇게 변하지 않으시는 거와 같이, 거짓 말씀도 안 하시겠지요…….”

“암 그렇지. 그거야 물론이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산같이 큰 몸이 이때껏 저 조그만 항아리 속에 들어 계셨습니까? 암만해도 거짓말 같은 일입니다. 온몸은커녕 발목 하나도 안 들어갈 것 아닙니까……. 거짓 말씀이지요”

“그래도 일천 팔백 년 동안이나 그 속에 갇혀 있었어……. 내 몸이 연기로 변해서.”

“암만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한 번 그 증거를 보여 주시면 꼭 믿겠습니다.”

마귀는 답답스러이 화증을 벌컥 내면서,

“아따! 미련한 놈! 자아, 보아라. 이렇게 내 몸이 연기가 되어 가지고…….”

하면서, 그 큰 몸이 검은 연기로 변하더니 온 하늘로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가, 다시 솔솔 항아리 주둥이로 기어 들어갔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걸려서,

그 많은 연기가 들어가더니 그 속에서,

“자, 보아라. 이렇게 항아리 속에 내 몸이 들어오지 않았니? 분명히 보았지? 그럼 이번에는 또 밖으로 나가는 것을 자세히 보아라. 자…….”

하고, 다시 연기가 풀려 나오려 하였습니다. 그 때 어부는 와락 달려들어, 빨리 참으로 눈 깜짝할 동안에 빨리 그 항아리의 마개를 막아 버렸습니다. 꼭꼭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꼭 다져 막아 버렸습니다.

“이놈 마귀놈아, 이번에는 네가 죽을 차례다. 자기를 구원해 준 은혜 입힌 사람을 잡아 죽인다는 그런 나쁜 놈은 다시 살아 나오지 못하도록, 이 바다 깊은 속에 잠겨 버릴 터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마귀란 놈이 항아리 속에서 제발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처량한 모기 소리같이 들려 나왔습니다.

늙은 어부는 그 항아리 속에다 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옛날에 어느 임금님이 자기를 살려 준 의사를 죽인 까닭으로 자기도 곧 죽은 이야기, 또 자기를 위해 준 짐승을 죽이고 재앙을 받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여 들려 주었습니다. 그래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변하였는지, 마귀가 전과 다르게 진정의 소리로,

“이번에 다시 한 번 나를 이 항아리 속에서 나가게 하여 주시면, 결코 당신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복을 많이 받게 해 드릴 터이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

하고 빌었습니다. 마음 착한 늙은 어부는 마귀의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 불쌍한 생각이 나서,

다시는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세 번 시킨 후에, 그만 그 항아리의 마개를 빼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처럼 연기가 솔솔 나와 공중에 피어 올랐다가 다시 오므라들어서, 바위만한 얼굴에 사발만한 눈을 가진 무서운 마귀가 다시 되었습니다. 죽을 것을 살려 주었으니까, 어부에게 인사 먼저 할 줄 알았더니, 마귀는 다짜고짜로 먼저 그 원수의 항아리를 발로 차서, 바닷물 속에 풍덩 넣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부는,

“허허, 내가 또 속았구나. 이제는 아주 죽나보다.”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였습니다. 그래 억지로,

“이게 또 무슨 짓입니까. 그렇게 굳게 맹세까지 하고, 또 나를 죽이려고 그럽니까. 당신도 거짓말을 합니까.”

하니까, 마귀는 산이라도 무너질 듯한 큰 소리로 깔깔깔 웃었습니다. 웃고 나서는,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므로, 어부는 도망할 재주도 없이 조마조마한 걸음으로 그냥 뒤를 따라갔습니다.

무서운 마귀의 뒤를 따라 산을 넘고, 또 넓디넓은 모래 바다(사막)를 지나 가니까 거기 커다란 호수가 있었습니다. 마귀는 호수 옆에 우뚝 서더니 어부에게,

“여기서 생선을 잡아 가지고, 너희 나라 임금에게 가지고 가서 팔아라. 그러면, 너는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꼭 하루에 한 번씩만 잡아야지, 결코 한 번 이상 잡으면 안 된다.”

고 일렀습니다. 그렇게 이르고 나서는 마귀는 그 큰 발을 들어 땅(모래밭)을 탁 치니까, 땅이 두 갈래로 쩍 갈라지고 그 속으로 마귀가 들어가더니, 갈라진 땅은 다시 전처럼 아물어져 버렸습니다.

어부는 하도 이상하여 한참이나 정신없이 있다가 마귀가 이르는 대로 그 호수물 속에 그물질을 하니까 이상도 하지요? 생선이 잡혔는데 보통 생선이 아니고 흰 생선, 빨간 생선, 파란 생선, 네 가지 빛 고운 생선이 네 마리 잡혔습니다.

늙은 어부는 무슨 수가 날 셈인지, 탈이 날 셈인지, 영문도 모르고 마귀가 하라는 대로 그 네 마리 생선을 그릇에 담아 머리에 이고 대궐로 가서 임금님께 바쳤습니다.

임금은 그 이상스럽고 빛 고운 사색(네 가지 빛) 생선을 보고 신통히 여겨, 금전 사백 닢을 어부에게 주어 보내고, 사색(네 가지 빛) 생선을 재상(대신)에게 주어, 요리 잘 하는 사람에게 맡겨 요리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요리하는 여관(아낙네)들은, 그 이상한 사색 생선을 재상에게서 받아 가지고, 특별히 정성들여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생선을 깨끗이 씻어서, 기름 냄비에 담아서 불 위에 놓고, 한참 끓이다가 반쯤 익었을 때, 생선을 뒤집어 놓으니까 그 때 바로 그 때 이상하게도 부엌 벽이 쩍 갈라지더니 거기서 어여쁜 한 색시가 키가 크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한창 피어난 모란꽃같이 어여쁜 색시가 온몸을 보석으로 장식하고 손에는 이상한 지팡이를 짚고 나오더니, 지팡이 끝을 냄비에 담그고 서서,

“너희들은 약속을 잘 지키느냐?”

하니까, 반이나 익은 생선들이 머리를 들고,

“예, 잘 지키고 있습니다. 하라시는 대로 꼭 합니다.”

이 말을 몇 번인지 자꾸 되집어 했습니다. 그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냄비를 뒤집어 엎어 놓고 다시 갈라졌던 벽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냄비 끓던 생선들은 불 속에 엎어져서 새까맣게 타버렸습니다.

요리하던 여관(여인)들은 그만 무섭고 이상하고 겁이나서 도망하듯 뛰어가서, 재상과 임금님께 그 일을 모두 일일이 보고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임금과 재상도 이상하게 여겨서, 곧 사람을 시켜 늙은 어부에게 다음날 또 사색 생선 네 마리를 잡아 가지고 오라 하였습니다.

이튿날 어부가 네 사색 생선을 잡아 가지고 대궐로 들어가니까, 임금과 재상까지도 부엌에 나와서,

“자아, 이상한 일이 있으니, 오늘은 내가 보는 눈 앞에서 네가 네 손으로 이 생선을 끓여 보아라.”

하였습니다. 싫단 말도 못하고, 하라는 명령대로 늙은 어부가 그 생선을 냄비에 담아 불 위에 놓고 끓이노라니까, 이상도 하지요. 또, 전날과 같이 부엌 벽이 쩍 갈라지고, 그 예쁜 색시가 나와서 전날처럼 생선과 이야기하고 나서 냄비를 엎어 놓고, 벽 속으로 도로 들어가고, 생선은 까많게 타버렸습니다.

임금은 하도 이상한 꼴을 자기 눈으로 보고 당장에 어부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네가 이 이상한 사색 생선을 어디서 잡아 오느냐? 바른대로 말하여라. 내가 군사를 데리고 가서 조사할 터이다!”

하였습니다. 어부는 속으로,

‘암만 하여도 그놈의 마귀에게 속아서 큰 탈이 생기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사실대로 생선 잡던 곳을 말하였습니다.


〈《어린이》 4권 4호, 1926년 4월호〉


‘사색 생선의 이상스런 일 때문에 큰일이 생겼구나.’

하고 늙은 어부는 가슴이 떨렸으나 임금의 명령이라 하는 수 없이, 앞에 서서 생선 잡던 곳을 안내하였습니다. 임금은 신하와 군사를 또 여러 백 명 거느리고, 어부의 뒤를 따라서 반나절 동안이나 갔습니다.

“여기올시다. 여기서 잡았습니다.”

하는 곳을 보니까, 거기는 이쪽 저쪽 네 곳에 산이 있는데 그 네 개의 산과 산 사이에 죽은 듯이 고요히 있는 이상스러운 호수였습니다. 호수를 들여다 보니까 참말 노랑이 빨강이 네 가지 색 생선이 수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찌 이상스럽고 신기한지, 이 까닭을 알고 싶었으나 그러나, 근처에는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없는 곳이므로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볼 곳도 없었습니다. 임금은,

“그래도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까닭을 아는 사람이 있겠지……. 나는 이 이상스런 일을 자세히 알기 전에는 대궐로 돌아가지 않겠다.”

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 신하들과 군사들은 어느 때든지 그 곳에 진을 치게 하고, 자기는 아무도 데리지 않고, 단 혼자 홀몸으로 칼 하나만 차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걸어가도 타박타박 끝없는 사막일 뿐이었습니다. 온종일 가고 또 밤새도록 걸어가도, 사람은커녕 집 하나 없었습니다. 그래도 임금은 그 이튿날도 온종일 갔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어서, 또 밤새도록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가니까, 그 다음날 아침이 되었을 때, 저편 모래밭 끝에 시커먼 바위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여러 날만에 바위라도 하나 보니까, 마음에 반가워서, 그 곳까지 가 보니까, 바위인 줄 알았던 것은 검은 돌멩이로 쌓아 올린 이상한 대궐문이고, 문 위는 쇠판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옳지, 이렇게 큰 대궐문이 있을 바에는 이 속에 그 사색 생선의 까닭을 아는 사람이 있겠지…….”

하고, 임금은 즉시 검은 문을 두드려 사람을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소리를 크게 질러도,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주먹이 아프고, 목이 찢어지도록 부르고 두드려도, 아무 기척이 없으므로 의심스러 마음으로 마구 들어가시 시작하였습니다.

한 문을 지나 들어가니까 또 문이 있고, 그 문을 지나 들어가면 또 문이 있고 하여 문이 몇 개인지 헤일 수 없이 많았습니다.

임금은 한 문 한 문 지나 들어갈 때마다, 소리를 크게 하여 불러 보았으나, 역시 한결같이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의심스럽기도 하고 또 겁도 났건마는 그냥 자꾸 들어가노라니까, 어디선지 사람의 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소리 같기도 하고, 또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 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가늘게 가늘게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슨 소릴까? 의심과 걱정이 일시에 일어나서 가슴이 울렁울렁하나, 귀를 기울이고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소리 같았습니다.

‘오! 사람의 소리다!’

하고, 임금은 걸음을 속히 하여 들어가 보니까, 과연 그 대궐 깊은 방에, 젊고 잘 생긴 남자 한 사람이 자리 위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 인사 없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을 용서하시오.”

하고 임금이 말을 거니까, 그 젊은 남자는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들었습니다. 보니까 참말로 훌륭하게 잘생긴 나이 젊은 청년인데, 손(객)이 온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를 않고 앉은 채 앉아서,

“예, 아무 관계 없습니다.”

합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 깊은 대궐 속에 혼자 앉아서 울고 있소이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 그 까닭을 말씀하겠습니다. 거기 앉으셔서 들어 주십시오.”

하고, 젊은 남자는 한숨을 크게 쉬고 말을 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내가 임금이 되었는데, 운수가 나빠서 왕비를 잘못 얻었습니다. 얼굴은 더할 수 없이 어여쁘나, 마음이 더할 수 없이 나쁘고, 거기다 마술을 부릴 줄 알아, 참말로 마귀와 같이 사납고 나쁜 사람이었는데 모르고 아내를 삼았더니, 그 계집이 마술 부리는 놈의 말만 듣고 온갖 나쁜 짓만 하므로, 내가 하도 괘씸하여 그 마술 부리는 놈을 잡아 칼로 찔렀더니, 그놈이 죽지는 않고, 아주 말 못하고, 일어나 움직이지 못하는 병신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왕비가 그 분풀이를 하느라고 마술을 부리어 나의 다리와 발을 돌멩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렇게 허리로부터 아랫도리는 딴딴한 돌멩이로 변하였답니다.”

하면서, 다리에 덮었던 털 이불을 젖히는데 보니까, 참말 허리 아래는 아주 돌멩이로 변하여 있었습니다. 임금은 이야기만 듣기에도 너무 분하여 무릎을 짚고 나앉으면서,

“그래 그 왕비는 어떻게 되었소?”

하고 물었습니다. 불쌍한 젊은 왕은 말을 이어,

“그리고, 나 하나를 이렇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이 나라 백성들은 모두 사색 생선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 놓고는 그 계집이 내가 있던 대궐 뒷 마당에 집을 짓고, 그 병신된 마술쟁이를 그 집에 옮겨다 놓고 위한답니다. 그리고는 날마다 한 차례씩 나에게 와서, 웃옷을 벗기고, 매를 백 대씩 때려서, 내 몸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야 돌아갑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몸이 반이나 돌멩이가 되어 몸을 쓰지 못하므로,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기만 합니다.”

젊은 왕은 말을 마치고 훌쩍훌쩍 울었습니다. 듣고 있던 임금은 분을 못참아, 칼자루를 잡고 벌떡 일어서면서,

“그래 왕비라는 요망한 계집이 지금 어디 있소? 내가 당장 잡아 죽여 원수를 갚아 주리다!”

하였습니다.

임금은 그 길로 젊은 왕이 가르쳐 준 대로 대궐 뒷마당을 찾아갔습니다.

아직 왕비가 올 때가 되지 않아서, 집 속에는 병신된 마술쟁이가 엎드려 있을 뿐이므로, 임금은 그냥 뛰어들어 칼로 이리저리 찍어 죽였습니다.

죽여서는 곧 그 송장을 업어 옮겨다가, 남이 보지 못할 곳에 감추어 버리고 돌아와, 자기가 그 마술쟁이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대신 입고, 마술쟁이처럼 꾸부리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니까, 그 여우 같은 왕비가 검은 대궐에 가서 젊은 왕을 피가 나도록 매를 때리고, 그리고 좋은 요리를 차려 가지고 마술쟁이에게로 왔습니다. 마술쟁이는 죽었고, 지금 엎드려 있는 것은 임금이었건마는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고, 왕비는 들어가서 날마다 하는 버릇대로,

“여보세요, 선생님. 제발 말씀이나 한번 해 줍시오. 그리고, 언제나 병환이 나아서 전처럼 걸어다니시겠습니까……. 어서 이 음식이나 잡수셔요.”

울음이 터질 듯 터질 듯한 소리로 말하였습니다. 임금은 그 말을 듣고 능청한 소리로,

“글쎄 말이다! 얼른 나아야겠는데, 너의 남편되는 그놈이 자기 몸이 돌멩이로 변한 것이 원통하여서, 날마다 너와 나를 못되라고만 악담을 하고 있으니, 내가 나을 수가 있느냐. 네가 내 몸이 얼른 낫기를 바라거든 얼른 가서 네 남편에게 씌운 마술을 풀어서, 다시 전처럼 걸어다니게 하여 주고 오너라. 그래야 나도 낫겠다.”

하였습니다. 왕비는,

“당신의 몸만 전처럼 될 수 있다면, 그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하고, 곧 돌아서서 남편인 젊은 왕 앞에 가더니, 물 한 그릇을 찰찰 넘게 떠서 들고, 무어라 무어라 한참 중얼거리니까, 이 때까지 다리가 돌멩이가 되어 앉아 있던 몸이, 다시 전같이 좋은 살이 되어 벌떡 일어나서, 휘적휘적 걸어 갔습니다.

왕비는 젊은 왕보다 먼저 뛰어 돌아와서,

“자아, 이제는 저의 남편 몸을 고쳐 주고 왔사오니, 이제는 얼굴을 좀 들고 일어나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여전히 고개를 안 들고,

“아니다. 아직도 얼른 낫지 못한다. 사색 생선이 된 이 나라 백성들이 밤마다 호수 속에서 머리를 들고, 너와 나를 원망하고 있으니, 그 원망 때문에 내 병이 나을 수가 없구나. 얼른 가서, 생선들을 곧 전 같은 백성이 되게 마술을 풀어 주고 오너라.”

왕비는 곧 호숫가로 뛰어가서, 또 물 한 그릇을 찰찰 넘게 떠받쳐 들고 한참 중얼거리자, 호수에 있던 네 가지 색의 생선들이 모두 전 같이 사람이 되어 기어나오고, 네 귀퉁이 산과 산은 모두 무너져서 길이 되고, 집이 되어, 예전처럼 다시 농사하는 사람은 농사를 하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왕비는 그것을 보고,

“이제는 마술쟁이 병이 나았겠지.”

하고 기뻐서 급히 뛰어 돌아왔습니다.

“인제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인제는 곧 나으시겠지요. 어서 일어나 주셔요.”

하고 졸랐습니다. 임금은 그제야,

“옳다! 이제는 몸이 아주 가벼워지는구나. 자아, 이리와서 내 몸을 좀 안아 일으켜 다고.”

하였습니다. 왕비는 기뻐 소리치면서 안아 일으키려고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그 때, 임금은 감추어 들었던 날카로운 칼로, 왕비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어떻게 몹시 날카로운 칼을 어떻게 몹시 찔렀던지 칼끝이 가슴을 꿰뚫고 등덜미에까지 나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쁜 남자와 여자는 다 죽고, 다시 살아난 젊고 잘생긴 왕자는 살려 준 임금의 양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맨 처음의 늙은 어부를 불러 큰 딸을 데려다가 젊은 왕의 아내로 삼고, 그리고 또 어부의 아들은 대궐 안의 살림 회계를 맡겨 주었습니다.


〈《어린이》 4권 5호, 192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