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삼남매
1
[편집]옛날 파사(페르시아)라는 나라에 마음성 착한 임금님이 한 분 있었는데, 매양 대궐 바깥의 일반 세상 인심을 살피기 위하여, 남모르게 변복을 하고 이 거리 저 거리를 행인들 틈에 섞여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그가 임금인 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그 나라의 서울 시가의 끝에 있는 한적한 동네를 지나노라니까, 한 느티나무 밑에 외따른 오막살이집이 있고 그 들창으로 젊은 여자들의 이야기 소리가 새어 나오므로 임금은 무슨 이야긴가 하고, 가깝게 가서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안에서 이야기하는 여자들은 처녀가 세 사람, 삼형제인 모양인데, 심심풀이로 우스운 말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이고, 나는 대궐 안에서 면보(빵)를 굽는 이에게로 시집을 갔으면 좋겠어! 부드럽고 좋은 면보를 싫컷 먹어 보게.”
이것은 제일 큰 처녀의 말이었습니다.
“아이고, 나는 그보다는 더 높은 소원이어요. 이왕 되려면 요리 부장에게로 가지요. 맛있는 요리를 배부르게 먹게요. 하하하……, 그까짓 면보쯤이야 아무나 날마다 먹는 걸 무어…….”
이것은 둘째 처녀의 하는 말이었습니다. 셋째 처녀는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궁금해 하면서 임금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나는 되려면 왕비가 되고 싶어요. 예쁘고 귀여운 왕자의 어머니가 되어, 꽃같이 나비같이 고이고이 길러서 좋은 인물이 되게 길러 보게요.”
임금은 그 날 대궐로 곧 돌아와서,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알리지 않고 잠자코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까닭을 모르고 눈이 둥글하여 잡혀 온 세 처녀를 가깝게 불러 세우고 임금은,
“너희들이 어제 낮에 시집가고 싶다고 할 때에, 각각 무어라고 그랬지? 그 말을 여기서 다시 한 번 해 보아라.”
하였습니다. 처녀들은 이 의외의 말에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서 입을 벌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모두 들었다. 오늘로 너희들이 각각 말한 대로 되게 해 주마. 마침 면보 굽는 사람도 장가를 안 간 사람이고, 요리 부장도 장가 안 든 사람이니, 저 큰 색시는 면보 굽는 사람과 혼인하고, 둘째 색시는 요리 부장과 오늘로 곧 혼인을 하여라! 그리고, 셋째 색시는 지금 왕비가 없는 터이니, 왕비로 삼겠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곧 그 날로 첫째, 둘째 색시는 혼인을 하였고, 셋째 색시는 그 후 한 달 후에 좋은 날을 가리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다 각각 자기가 하던 말대로 잘들 되었으나, 그러나 첫째와 둘째는 셋째가 왕비가 된 것이 시기가 나서 못 견디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분풀이를 할꼬, 어떻게 하면 저 왕비가 조금이라도 불행하게 될꼬 하고 속으로 그 공론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왕비가 잉태를 하여(아기를 배어) 열 달이 지나서 옥동자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왕비의 해산 산파는 자기네가 맡아 하겠노라고 자청하여 산실에 들어가 있던 첫째 형, 둘째 형 두 여자는 넌지시 그 갓난아기를 보자기에 싸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농 속에 넣어 냇물에 띄워 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아이고, 왕비는 강아지 새끼를 낳으셨어요.”
하고, 임금님과 또 모든 사람에게 속여 말했습니다.
그 말을 곧이 듣고 임금님은 몹시 노하여 말도 아니하고, 일반 백성들은 하도 이상하여 수군수군들 하였습니다. 그 후 일 년 반이 지나서 왕비는 또 이번에도 옥동자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형 둘이 서로 의논해 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아기를 보자기에 싸서 농에 담아서 물에 띄워 내려 보내고, 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구하여다 놓고,
“아이고, 이번에는 왕비가 고양이 새끼를 낳으셨어요.”
하였습니다. 왕은 전번보다도 더 노하여 머리를 싸고 누웠고, 왕비는 그냥 병이 나서 앓았습니다.
그 후 또 2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예쁘디 예쁜 따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귀여운 갓난아기는 왕도 못 본 사이에 물에 띄워 내려 보내고, 나무때기 하나를 침상 위에 넣어 놓고,
“아이고, 이번에는 왕비가 나무때기를 낳으셨습니다.”
하였습니다. 왕은 이번에야말로 참을 수 없이 노하여, 대궐 뒤에 감옥 같은 탑을 짓고 왕비를 그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어여쁜 왕비는 까닭없는 죄명으로 감옥에 갇히어서 뭇 사람의 조롱과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 눈물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4권 9호〉
2
[편집]가난하고 불쌍한 처녀가 뜻밖의 기회로 왕비가 되어, 옥동자 같은 왕자를 낳았으나, 그 친정 형 둘이 동생의 잘된 것을 시기하여, 갓난 왕자는 물에 띄워 내려 보내고, 고양이를 낳았다고 속이고, 세 번째는 어여쁜 왕녀를 낳은 것을 나무때기를 낳았다고 속이고, 물에 띄워 내려 보냈습니다. 그래 마음 착한 왕비는 강아지와 고양이와 나무때기를 낳았다는 애매한 죄명을 쓰고, 대궐 뒤 감옥 속 같은 돌탑 속에 갇혀 있어서 울고만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낳자마자 엄마 아빠의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나쁜 아주머니 둘의 손에 걸려 물 위에 떠내려간 불쌍한 삼남매는 어디로 갔겠습니까?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하지요.
대궐 뒤에서 흘러 내려가는 물을 끼고 가면, 한참이나 되는 아랫 동리에 대궐에서 건사하는 꽃밭이 있는데, 그 꽃밭을 감독하는 이가, 하루는 전과 같이 일찍 일어나서 이슬에 젖은 아름다운 꽃밭을 두루 살피면서, 이리저리 새벽 산보를 하다가, 꽃밭 사이 깨끗한 개천물에 이상한 보퉁이가 떠서 흘러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체 저것이 무슨 보퉁일까?”
하고, 감독은 즉시 꽃밭지기를 시켜서 그 보퉁이를 건져 올려서 펴 본즉, 천만 뜻밖에 갓난아이가 싸여 있었습니다.
감독은 퍽 마음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나이 오십이 가깝도록 아들딸도 없이 단 두 내외만 외롭게 살면서 아들을 못 낳으면, 다만 딸 한 사람이라도 낳게 되기를 바라던 터이었으므로, 그것이 임금님의 아들인지 무언지 자세히 알아볼 사이도 없이, 그냥 기뻐하면서 집으로 안고 돌아가서 고이고이 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느님이 우리 내외의 자식 없는 것을 불쌍히 여기셔서 지시해 주신 것이라.”
고, 감독 내외는 한이 없이 즐거워하면서 아기를 기르고 있는데, 그 다음 다음 해에 또 갓난아기가 흘러 내려오는 것을 건져다가 함께 길렀습니다.
그러나, 대궐 안의 왕비가 해산을 할 적마다 그렇게 대궐 편에서 아기가 떠내려오는 것을 몹시 이상해 하였습니다. 그런데, 또 그 다음 다음 해에 이번에는 갓난 계집애가 포대기에 싸여서 흘러오는 것을 본 까닭에,
“이것은 분명히 대궐 안에서 무슨 깊은 까닭이 있어서, 왕비가 낳으신 아기를 떠내려 버리는 것이다.”
고 생각하고, 그 애마저 건져다가 자기 자식같이 삼남매를 고이고이 정을 들여 길렀습니다.
왕자고 왕녀이면서,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불쌍한 삼남매가 차차 늙어 가는 감독 내외를 정말 부모로 알고,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부르면서, 꽃밭에서 살기를 근 이십 년이나 하였습니다. 그러니 자기의 친어머니인 불쌍한 왕비가 죄없이 돌탑 속에 갇혀서, 이십 년이나 되도록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줄을 알면, 오죽이나 슬퍼하겠습니까……. 아무 슬픔도 모르고 이 삼남매가, 이십 년 가깝게 되니까, 감독은 그 때 칠십이 가깝게 되어, 머리털도 허옇게 늙었습니다. 그래 꽃밭 감독도 싫다고 도로 내어 바치고, 그 동안 모은 돈으로 서울 가까운 시골 가서, 좋은 동산과 좋은 집과 좋은 꽃밭을 사서 그리로 삼남매 아들딸을 데리고 옮겨갔습니다.
삼남매는 서울 꽃밭보다 새로 옮겨 간 그 집과 그 동산이 좋다고 대단히 기뻐하면서, 늙은 감독 부모를 모시고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원래 칠십 늙은이라, 큰형이 스물한 살, 맨 끝 누이 동생이 열일곱 살 되던 해에 우연한 병으로 슬그머니 돌아가 버리고, 그 후 석달이 못 되어 노부인도 따라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별로 오래 앓지도 않고 돌아갔기 때문에 죽기 전에 삼남매에게, ‘너희가 실상은 나라님의 아들딸이다.’라는 말을 채 일러 주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래 삼남매는 진정 부모의 상사당한 듯이 슬퍼하면서 눈물의 장례를 지내고 그리고, 그 집 그 동산 그 꽃밭에서 세 오누이만이 쓸쓸히 쓸쓸히 죽은 부모를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감독 내외가 돌아간 후 퍽 쓸쓸히 지내는 때였습니다. 하루는 두 오빠가 모두 말을 타고 가까운 산 속으로 사냥을 하러 가고 누이 동생이 혼자 있는데, 어디서인지 이상한 여승(여자 중)이 찾아왔습니다. 그래, 그 처녀는 여승과 함께 돌아간 감독 내외를 위하여 기도도 올리고, 또 여러 가지로 좋은 말을 많이 들은 후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집은 우리 돌아간 아버지께서 장만해 주신 것인데 동산도 좋고 꽃밭도 이만하면 훌륭하지요. 이 마당에 무엇이 빠진 것이 또 있을까요?”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승이 고개를 저으면서,
“네, 참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제 ‘말하는 새’ 하고 ‘노래하는 나무’ 하고 ‘황금 샘물’ 하고 이 세 가지만 있으면, 이 세상에 제일 가는 마당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만 갖추어 있으면, 이 댁에 더할 수 없는 영광이 돌아올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말하는 새’ 하고, ‘노래하는 나무’ 하고, ‘황금 샘물’ 하고 듣기만 들어도 정신이 황홀해지는데, 더구나 다시없는 영광스런 일이 생긴다니까, 처녀는 바싹 다가앉아서,
“그럼, 그 세 가지를 어디 가서, 어떻게 하면 구해 올 수가 있겠습니까?”
고 물었습니다.
“그것은 참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일입니다. 저 서쪽 맨 끝까지 가서 인도라고 하는 나라와의 사이에까지 가야 하는데 벌써 각처에서 여러 사람이 많이 갔건만, 한 사람도 그것을 얻어 가지고 살아온 사람은 없답니다. 생각도 않는 것이 좋지요.”
“아이고, 그래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가세요. 우리 오빠 두 사람은 모두 말도 잘 타고 용맹스러우니까, 가서 구해 올는지도 모릅니다. 좀 가르쳐 주고 가세요.”
하고 애걸하듯 졸랐습니다.
“암만 용맹스러워도 그것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너무 물으니 방법이나 가르쳐 드리지요. 여기서 말을 타고, 서쪽 인도 나라를 향하고 자꾸 달아나되, 밤이나 낮이나 그냥 달아나가기만 하다가 스무 날째 되는 날, 길에서 만나는 늙은 노인이 있을 터이니, 그이보고 물어 보면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렇게만 가르쳐 주고, 그 이상한 여승은 어디로인지 가버렸습니다.
그 날 온종일 처녀는 입 속으로 ‘말하는 새’ ‘노래하는 나무’ ‘황금 샘물’하고 자꾸 외우고 있다가, 저녁때가 되어 사냥하고 돌아온 두 오빠에게 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빠들은 성질들이 씩씩하고 용맹한 사람이라, 누이 동생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럼, 내가 가서 구해 가지고 오마.”
하고, 먼저 큰오빠가 나섰습니다.
“그런데, 가기만 하면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걸요. 위험하지요.”
하고, 처녀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나서 공연히 이야기를 하였다고 뉘우쳤습니다.
“내가 공연히 헛 이야기를 한 것이니 가지 말고 그만 두어요. 그렇게 먼 곳엘 갔다가 만일 위험한 일이 생기면…….”
하고, 울 듯이 하면서 말리었으나 오빠는 듣지 않고, 이튿날 새벽만 되면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어 큰오빠는 말을 타고 집을 나서면서 칼 하나를 꺼내서 동생과 누이 동생에게 주면서,
“자아, 이 칼을 가지고 있거라. 이 칼은 이상한 칼이다. 내가 만일 위험한 일을 당하면 칼 빛이 빛나지 아니하고 죽은 빛이 될 것이니, 칼 빛이 빛나거든 살아 오는 줄 알고, 칼 빛이 변하거든 죽은 줄 알아라.”
이르고는, 터벅터벅 길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떠난 큰 오빠는 말등에 부지런히 채찍질을 해 가면서 쏜살같이 서쪽으로 달아나기를 스무 날 낮, 스무 날 밤을 달렸습니다.
스무 날째 되는 날, 눈에는 사람의 집 하나 보이지 않고, 개천 하나 우물 하나 보이지 않는 끝없는 허허벌판에서 참말 늙은 노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래, 말에서 내려서 늙은이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말하는 새, 노래하는 나무, 황금 샘물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겠습니까?”
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상한 늙은이는 아무 대답이 없이 한참이나 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한참만에야,
“그런 어림없는 말 하지도 말고 어서 돌아가시오. 벌써 여러 해 동안에 여러 백 명 용맹한 젊은이가 그것을 구하러 갔건만,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소이다. 공연히 목숨만 잃어버리지 말고 어서 도로 가시오. 공연히 죽지 말고요.”
하고, 다시는 본 체도 아니 합니다.
“아니오. 죽어도 괜찮으니 꼭 좀 가르쳐 주십시오. 아니 가르쳐 주시면 늙어 죽어도 그냥은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점심때가 지나도록 정성껏 정성껏 목이 마르게까지 졸랐습니다. 그러니까, 하도 지성스러운 데 감복하였는지 늙은 노인은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자아, 그대가 그렇게까지 정성스러우니 가르쳐 줌세. 내가 이 돌로 만든 공을 줄 것이니 말을 타고 이 공을 던져서, 공이 굴러가는 데로만 말을 달려 쫓아가시오. 그러면, 이 공이 어느 산 밑에 가서 우뚝 설 것이니, 당신은 그 산 위로 기어올라가시오. 그러면, 그 산 위에 그 세 가지가 모두 있을 터이니요.”
이렇게 이르면서 돌로 만든 동그란 공 한 개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런데, 그 산으로 올라갈 때에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리든지 결코 돌아다 보지 말고, 앞만 보고 올라가야지, 조금이라도 돌아다보기만 하였다가는 큰 일 날 터이니, 돌아다보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하고, 신신 당부해 일러 줍니다.
“네.”
하고, 그는 공을 받아들고 말 위에 올라앉아서 공을 번쩍 들어서 휙 하고 기운껏 내어던졌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그 돌멩이 공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총알같이 굴러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굴러 달아나므로 그는 말을 바삐바삐 몰아서 공의 뒤를 쫓아 갔습니다.
한참이나 가서, 공은 어느 거무튀튀한 산 밑에 가서 우뚝 섰습니다. 산이라고 나무 하나도 없는 돌멩이산인데, 모래로 깎아지른 산에는 망두석같이 시커먼 돌멩이 기둥이 우뚝우뚝 솟아 섰습니다.
큰오라비는 말을 달리어 흙비탈을 기어올라가는데, 중간쯤 올라가니까 이상한 일이지요. 아무도 없는 산에서 여기서 저기서 아우성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놈 잡아라!”
“저놈 못 가게 하여라! 저 못된 놈!”
“그놈 잡아 죽여라! 죽여 죽여!”
바람 소리 같기도 하건만, 귀에는 자꾸 그런 무서운 소리가 귀신 떼의 소리 같이 자꾸 들리었습니다. 그래도 죽기를 결단하고 돌아보지 않고 올라가기만 하는데 거진 다 올라가서 이번에는 아주 정답고 친절하게,
“여보, 그리로 올라가면 안 되오.”
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흘긋 돌아다보자, 뒤에는 아무도 없이 바람 소리뿐인데, 그만 그 사람은 어느 틈에 새까만 돌멩이로 변하여 다른 돌멩이와 같이 망두석처럼 산비탈에 우뚝 서 버렸습니다.
그 때, 집에서는 날마다 날마다 궁금히 여기고 있는 두 동생이, 이 날도 칼을 꺼내서 빛깔을 보니까 아까까지 퍼렇게 번쩍번쩍 빛나던 것이, 금시에 칼 빛이 죽고 썩은 뱀장어 배같이 거무레해졌습니다.
두 동생은 그것을 보고 얼굴이 파래졌습니다.
“칼 빛이 변한 것을 보니, 큰오빠는 꼭 죽었구려.”
하고 밤이 새도록 울었습니다. 그 이튿날이 되어 둘째 오빠가 형님의 원수를 갚으러 간다고 또 나섰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도 없이 삼남매 중에서 우리 단 둘이 남았는데 오빠까지 마저 가 버리면, 나 혼자 남아서 어떻게 살라구…….”
하고, 처녀는 느껴 울면서 애걸애걸 말렸습니다. 그러나, 둘째 오빠도 참지 못하는 성질이었습니다.
“울지 마라. 나는 꼭 죽지 않고 살아올 것이니, 울지 말고 이 구슬을 가지고 있거라. 이 구슬 빛이 변하거든 내가 죽은 줄 알지만, 구슬 빛만 변하지 않거든 살아오는 줄 알고 있거라.”
하고 우는 누이를 외로이 두고 기어코 그 길을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텅텅 빈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처녀가 날마다 날마다 구슬피 울면서 둘째 오빠나 죽지 않고 돌아오기를 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스무 날째 되는 날 저녁 때, 그 구슬 빛도 꺼멓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어린이》 4권 10호〉
3
[편집]큰오빠의 죽은 원수를 갚으러 간 둘째 오빠까지 죽은 것을 알고, 혼자 남은 처녀는 몸을 부딪치며 울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처량히 울어, 눈까지 퉁퉁 부은 처녀는 작은 오빠가 벗어 놓고 간 헌 옷을 입고, 한 필 남은 말을 타고 나섰습니다. 텅텅 빈 집에 다만 홀로 남은 몸이 울고만 있어도 소용이 없으니 여자의 몸일망정 가서 두 오빠의 송장이라도 찾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처녀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말을 달려서, 스무 날째 되는 날 끝없는 벌판에서 이상한 늙은이를 만나 세 가지 이상한 물건이 있는 곳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처음에는 얼른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하도 몹시 정성스럽게 울면서 조르니까 견디다 못하여 길을 가르쳐 주고 그 돌로 만든 공을 주면서,
“이 공을 던지고 따라가면 어느 산 밑에 당도할 터이니 거기서 산 위로 기어 올라가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든지 돌아다보지 말고 올라가야지, 뒤만 돌아다보면 큰일 난다.”
고 신신히 일러 주었습니다.
처녀는 말 위에 올라앉아서 공을 던지고, 그 공이 굴러가는 뒤를 따라 달려갔습니다. 한참이나 가서 어느 시커먼 바위산 밑에 당도하였습니다.
“옳지, 이 산꼭대기에 세 가지 물건이 있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어떻게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돌아다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고, 거기 서서 생각하였습니다.
처녀는 약은 사람이라, 곧 옷소매를 뜯어 헤치고 솜을 꺼내서, 입 속에 넣어 씹어서 침에 적시어 가지고 두 편 귓구멍을 꼭꼭 틀어막았습니다.
“이만하면 무슨 소리가 안 들리겠지…….”
하고, 처녀는 말을 달려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중턱까지 올라갔을 때에 그의 뒤편에서는 별별 괴상한 소리가 일시에 아우성치듯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년을 잡아라.”
“그년을 잡아 찢어 죽여라.”
“머리채를 잡아 낚아라.”
하고……, 그러나 처녀의 귀에는 솜마개가 있으므로 그렇게 쉽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허덕! 허덕! 거의 거의 산머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을 때에, 이번에는 ‘와르릉’ 하고 천둥하는 소리가 나더니 번개가 번쩍 하면서 ‘우지지끈딱’ 하고, 그의 바로 뒤에 벼락을 쳐서 이 산이 온통 무너져 버리는 듯 싶은 큰 소리가 났습니다.
“에그머니.”
하고, 처녀는 놀라서 주춤하였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후딱 돌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아니다, 돌아다보다 두 오빠가 다 죽었다. 죽어도 앞으로만 올라가다가 죽자!’
하고 처녀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후닥닥 산머리 위로 달려 올라섰습니다. 시원도 하지요. 산 위에 올라서니까 하늘에나 올라온 것처럼 햇빛이 찬란하고 가슴이 시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산 머리 위에 새파란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고, 그 나뭇가지에 어여쁜 새장이 있고, 그 장 속에 파랑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옳지, 네가 말하는 새냐?”
처녀는 기뻐서 장을 껴안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 때까지 아가씨 오시기를 어떻게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하고, 어여쁜 소리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처녀는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면서,
“그럼, 노래하는 나무는 어디 있니?”
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아홉 걸음쯤 떨어진 곳에 노란 잎사귀 달린 나무가 그것입니다. 가장이(가지) 하나만 꺾어 가지세요.”
처녀는 파랑새 말대로 동으로 아홉 걸음을 걸어간즉, 참말 노란 잎사귀 달린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 잎사귀가 가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이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하던 아름다움 음악 소리가 곱게 곱게 들립니다. 처녀는 그 가지 하나를 꺾어 들고 뛰어와서 이번에는,
“황금 샘물은 어디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파랑새는 또 대답하였습니다.
“그 노래하는 나무에서 또 아홉 걸음만 가면 있습니다. 거기 있는 병항아리에 떠 담아 가지고 가셔요.”
처녀가 뛰어가 보니까, 정말 황금빛으로 빛나는 샘물이 깨끗이 고여 있고, 그 옆에 누가 갖다 두었는지 금빛 병항아리가 있으므로 그 병항아리에 황금 샘물을 가득 떠 담아 들고 왔습니다.
“파랑새야, 인제는 세 가지 물건을 모두 얻어서 기쁘다마는 우리 큰 오빠, 작은오빠의 송장을 찾아야 하겠는데 송장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니?”
처녀는 울 듯한 소리로 물었습니다.
“네, 염려 마세요. 이 산 중턱에 시커먼 돌멩이가 망두석처럼 우뚝우뚝 섰지 않습니까……. 그것이 모두 저하고 나무하고 샘물을 찾으려고 올라오다가 뒤를 돌아보아 그만 죽어서 그렇게 돌멩이가 되어 선 것입니다.”
“아이구, 그럼 우리 두 오빠도 돌이 되었겠구나. 그럼 어떻게 구할 수 없겠니?”
“염려 마셔요. 거기다가 그 황금 샘물을 끼얹으면 모두 도로 사람이 됩니다.”
처녀는 어찌나 기쁜지 대답할 새도 없이 그냥 뛰어 내려가면서 시커먼 망두석을 보는 대로 병항아리의 금물을 끼얹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상도 하지요. 모두 낮잠 자던 사람처럼 부스스 털고 움직이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큰오빠, 둘째 오빠도 살아서 뛰어나와 누이의 손을 잡고 반가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처녀는 싸움에 이긴 장군과 같이, 파랑새 있는 새장을 들고 맨 앞에 서고, 그 좌우에는 큰오빠가 병항아리를 들고 서고, 작은오빠는 노란 나뭇가지를 들고 서서,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돌아오는데, 그 뒤에 수백 명 청년이 우르르 따라서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길 가르쳐 주던 이상한 노인을 만나 감사한 인사를 하려고 아무리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노인은 영영 만나지 못했습니다.
따라오던 청년들은 중로에서 다 각각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삼남매는 텅 비었던 집에 돌아와서 새장은 처마 끝에 달아 두고, 나뭇가지는 마당 복판에 심어 두고, 금물 항아리는 그 나무 옆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자고 나서 보니까 이상도 하지요. 나뭇가지는 밤 사이에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어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대로 음악 소리가 들리고, 항아리의 금물은 하늘로 치뻗쳐서는, 그 물방울이 모두 도로 항아리 주둥이로 기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참말로 더할 수 없는 평안한 가정이 되어 두 형제는 날마다 사냥질하고, 처녀는 파랑새와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나라 임금이, 이 삼남매가 사는 가까운 시골에서 신하들을 데리고 사냥을 하다가 보니까 어떤 예쁘게 생긴 나이 어린 청년 두 사람이 활을 어찌 잘 쏘는지 아무리 큰 짐승이라도 단 한 번에 쏘아 죽이고 죽이고 하는지라, 하도 신기하여 그 두 청년을 대궐로 청하여 맛좋은 요리를 대접하였습니다.
청년은 처녀의 두 오빠였는데 임금이 주는 맛있는 요리를 맛있게 먹고 돌아올 때, 자기 집 마당에는 별별 신통한 것이 다 있다고 자랑을 하고,
“내일도 사냥을 오시면, 저희들 집에 들려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오빠들이 집에 돌아와서 누이보고 내일은 임금님이 우리 집에 오실 터이니 대접할 요리를 준비하라 하였습니다. 처녀는 무엇을 대접해야 좋을지 몰라서 파랑새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별 것 없어도 관계치 않습니다. 날오이를 따서 그 속에 모래를 가득 넣어서 세 개만 대접하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처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나쁜 짓을 하였다가는 무슨 큰일이 날는지 몰라서, 몇 번이나 고쳐 다시 물어 보아도 파랑새의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튿날 낮이 되어, 정말 임금을 안내하여 모시고 오빠들이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그 마당에 있는 황금 샘물이 하늘로 치뻗쳤다가 다시 한 방울도 한데로 흐르지 않고 항아리로 도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 못 견디고, 또 노랑 나무에서 저절로 좋은 음악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신선의 나라에 온 것같이 기뻐하셨습니다. 임금은 마루 위에 올라 앉았습니다.
“아무것도 대접할 것이 없어서 부끄럽습니다.”
하고, 오이 세 개를 접시에 받쳐 내놓았습니다. 임금은 기뻐 웃으시면서,
“이 집에는 참말로 신기한 것뿐이로군.”
하고, 그 오이를 집어 썩둑 씹은즉, 입에 모래흙이 가득한지라, 깜짝 놀라 ‘앳퉤퉤!’ 하고 뱉아 버렸습니다. 두 오빠와 처녀는 자기들도 모르고 한 일이니까 아무 대답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오이 속에 모래가 웬일인가?”
하고 임금은 얼굴을 찡그리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삼남매는 아무 말도 못하고 떨고만 섰습니다.
그 때에 바로 그 때에 장 속의 파랑새가,
“오이 속에서 모래흙이 나온 것이 무엇이 이상합니까? 왕비님의 뱃속에서 강아지, 고양이가 나왔다는 거짓말도 정말로 믿으신 임금께서 오이 속에서 모래가 나온 것을 이상하다고 하십니까?”
하고 야무지게도 들이대었습니다. 삼남매는 그 소리를 듣고도 무슨 소리인 줄 모르나 임금은 깜짝 놀래었습니다.
파랑새는 다시 말을 이어서 왕비의 형 둘이 마음이 나빠서 왕비를 시기하여, 왕비가 아이를 날 때마다 개천물에 흘려 버린 일과, 그리고 강아지와 고양이와 나무때기를 낳았다고 속인 일, 그 후에 아기들은 대궐 꽃밭을 감독하는 늙은이가 기른 이야기를 모두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섰는 두 오빠가 왕자님이고, 아가씨가 왕녀시랍니다.”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삼남매도 처음으로 그 임금이 자기들의 아버지인 줄 알고 아버지도 삼남매가 왕자 왕녀인 것을 알고 그 자리에서 껴안고 울었습니다.
임금은 곧 삼남매를 데리고 대궐로 돌아가서, 뒤꼍 탑 속에 갇히어 있는 왕비를 구해 내고,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하고, 왕비의 두 형을 잡아 왕비의 대신 탑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어린이》 4권 11호, 1926년 12월 송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