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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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일우에 몽금포를 두고도 벼르기만 하고 한 번도 찾지 못하였다가 이번에 귀향하는 기회를 타서야 겨우 찾게 되었다. 그 이름이 전 조선적으로 알려진 그만큼 나는 커다란 기대와 흥미를 가지고 자동차 위에 몸을 실었다. 황막하기 짝이 없는 만주 벌판에서 자연에 퍽이나 굶주렸던 나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가 조선땅에 일보를 옮겨놓은 그 순간부터라도 ‘조선의 자연은 과연 아름답다’ 하는 감탄을 무시로 발하게 되었다.

오랜 매우(梅雨) 때문에 도로는 상하여 평탄하지 못함인지 자동차는 노상키 까부질을 하나, 앞에 전개되어 나타나는 전원으로부터 불려오는 구수한 냄새에 취하여 나는 괴로운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우편(右便)으로 불타(佛陀)산맥이 구불구불 흘러서 마치 바다의 파도와 같이 뛰놀고 좌로 찰석(札石)산맥이 높은 듯 낮고, 낮은 듯 높아 그 뫼됨이 자못 기이하게 보였다. 그 위에 솜 같은 구름이 떼를 지어 오락가락 한가롭다. 나는 문득 이러한 노래를 읊어보았다.

청산 위에 구름이요
구름 속에 청산인데
청산이 제 구름을 못 떠나고
구름이 또한 청산을 못 떠나니
만고에 유정함을
사람들에게 보이더라.

보이느니 밭이요 논이다. 조 이삭은 벌써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고 벼는 한창 살이 올라 그 잎에 기름 방울을 떨어뜨린 듯 윤기가 흐른다. 그리고 풀밭에 누워서 한 눈만 감고 조는 듯한 황소는 이 밭과 이 논을 내가 갈아서 이렇게 조와 벼를 키웠다는 듯이 그 배 내놓음이 믿음직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깡충깡충 뛰어 돌아다니며 귀엽게 장난을 하는 송아지는 우리 옆집에 사는 이제 다섯 살 난 길성이 놈같다.

멀리 산록으로 농가들이 여기 오글, 저기 오글오글 모여 앉았고 그 앞으로 냇물이 시원하게 감돌아 내리며 마을을 싸고 날아다니는 새 무리들은 그 푸른 하늘에 한껏 자유롭다. 수수밭 위에 흰 구름이 산맥을 지어 거울 같으며, 때 만난 잠자리떼는 분주하기 끝이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고요한 마음을 가져보았다. 내 옷과 내 머리털에 바람이 훌훌히 감겨 돌아간다.

마침 자동차는 용연(龍淵)을 지난다. 나는 나의 졸작인 『인간문제』의 주인공 첫째를 생각하였다. 이 용연!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니 몇 해 전과는 아주 달라진 듯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저 원소(怨沼)의 푸른 물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저 원소의 물은 푸르고 푸르다. 흰 옷감을 보면 물들이고 싶게 그렇게 푸르다.”(『인간문제』에서) 첫째를 내어쫓은 이 용연, 매소부인 그의 어머니와 불구자인 이서방만이 아직도 그 멸시를 받으면서 첫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있다! 분명히 있다. 나는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는 사이에 차는 석교(石橋)를 향하여 달음질 친다.

자동차는 석교를 지나 홍가리(洪街里)에서 잠깐 정류하였다가 다시 질주한다. 이쪽으로 오면서부터는 도로는 좀 평탄하다. 그리고 불타산이 평평한 잿등이 되는 듯하면서도 수림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하늘도 보이지 않는 수림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바라보니 수림인즉 잡목은 섞이지 않은 송림뿐이었다.

소나무! 만주에서 얻어보기 힘든 저 솔. 나는 언제나 저 소나무를 보게 되면 머리가 산뜻해지면서 고상한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바늘 끝같이 예리한 잎을 하늘을 향하여 펼치었으며 줄기는 굽은 듯 다시 올라 파란 많은 소나무 역사를 말해주는 듯 그윽한 송진내를 피워 그 뜻의 높음을 말해준다.

그 사이를 뱅글뱅글 도는 도라지꽃은 해쭉 웃고는 꼭꼭 숨어버린다. 에크!

또 나온다. 또 숨는다. 그 빛이 왜 그리도 푸를까. 심심산곡(深深山谷)에서 별만 보고 자랐음인지 꽃송이가 별인 듯 속기 쉽고, 푸른 하늘을 그리워 애를 태웠음인지 그 머리 다소곳 숙이고 수심 빛이네.

자동차는 이제부터 비탈길을 내려온다. 한 고비를 돌아오면 또 한 고비 막아서고, 이제는 마지막이려니 하면 또 한 뫼가 나타나서, 우리들의 가슴속까지 묏그늘로 가득한데, 갑자기 곁에 앉았던 일본 내지인의 아동이 꼬뚝 일어났다.

“아이, 저기가 바다야.”

소리치는 바람에 우리는 일시에 앞을 바라보았다. 보아라, 저 푸른 바다!

말이 칵 막혀버리고 바다, 바다만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조그만 생각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저 바다만이 높고낮을 뿐이었다. 벌써 몽금포는 수수밭 속에 숨어 얼씬얼씬 보이고 주인을 따라 나온 개가 조밭머리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를 보고 컹 짖고는 달아나버린다. 바다는 시시로 그 빛을 선명히 나타나 보인다.

어느덧 우리는 몽금포에 닿았다. 승객들은 뿔뿔이 차에서 내려 달아난다.

나는 잠에서 깨인 듯이 정신이 흐리멍텅한 것을 겨우 진정하여 짐을 가지고 내렸다. 그래서 조선일보 지국을 찾아가지고 지국장의 안내로 여관까지 정함을 받은 나는 그 길로 지국장을 앞세우고 구경을 떠났다.

오후 3시. 내려쪼이는 햇볕은 우리의 피부에 댕글댕글 굴러 내린다. 나는 숨이 차서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저것이 사산(沙山)입니다.”

나는 냇물을 껑충 하고 건너뛰어서 사산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모래를 쥐어도 보고 밟아도 보면서,

“어쩌면 이런 산이 다 있을까요.”

하고 몇 번이나 거푸 말하였다. 한 줌 안에 꼭 쥘 수가 없이 흘러 떨어지는 이 모래. 이 모래에 물을 부어 반죽하여 송편을 이쁘게 빚고 싶다.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산을 이룬 모래가 무엇이 미진하여 해변가까지 죽 깔리었을까. 파도에 스쳐 파스스하고 무너지고는 또 파스스한다. 아마 파도가 그리워 예까지 나왔나보다.

나는 구두와 양말이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그만 다 벗어 걸머메고서 걸었다. 가다가 빙그르르 돌아도 보고, 발끝으로 모래알을 날려도 보는 흥미야말로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좋다. 오늘은 내가 인간의 모든 탈을 벗어버린 새빨간 계집애 같다. 귀여운 계집애 같다.

발걸음을 따라 바다의 거체(巨体)가 우리 앞에 칵 막아버린다. 물결은 남실남실 사장으로 밀려나온다. 나는 얼른 이 노래를 외어보았다.

내 귀는 바닷가의 조개껍데기
물결치는 그 소리가 그립습니다.

언제인가 신문에서 읽어두었던 이 노래가 불현듯이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바다가 이 노래를 불러, 또 불러, 내 귀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나는 묵묵히 이 노래를 들으면서 섬몽금이까지 왔다.

우리가 섬몽금이 바위 위에 올라섰을 때는 온 우주가 벽해로 된 듯한 감을 가지게 하였다. 하늘에 닿은 듯한 저 바다! 맺히고 맺혔던 이 내 가슴은 저 바다같이 탁 터져버리네. 내 비록 몸은 적으나 맘이야 바다에 뒤지랴.

멀리 작고 큰 섬들이 꿈같이 어리었고 몇 척의 어선이 그림인 듯 조용하다. 갈매기가 펄펄 날아 물 위에 찰싹 내리었고 그래서 그 날개 파도에 젖어 무거울 듯하건만 또다시 까맣게 높이 뜬다. 필시 갈매기의 따뜻한 그 가슴에 붙은 작은 별에는 물방울이 진주같이 빛날 터이고 그 주둥이에는 살진 물고기가 듬뿍 물렸을 것이다. 양양한 대해를 맘대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는 저 갈매기. 먹을 것을 한 가슴 안은 채 어디로 가노? 너를 부러워 바라보는 어부의 모양,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지국장은 아까부터 이 섬몽금이에 사는 어민들의 생활상태를 이야기하였다. 나는 하나하나 귀에 담아 들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섬몽금이를 내려다보며 그들의 가난한 지붕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도 호박넝쿨이 대견하게 올랐는데 몇 개의 호박이 듬직하게 달려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산곶(長山串)이 돌출하여 독보의 패기를 보여주며, 뚝 떨어져 사산 위의 청송은 마치 여인(麗人)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다를 향하여 섰는 듯하였다.

그리고 사장에는 조수가 들어와야 나갈 목선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그물을 둘러메고 어디로인지 가는 어부의 모양이 바쁘다.

내가 지금 앉은 바위는 그 길이가 몇십 장이나 되어 보이리 만큼 한데, 그 아래는 파도가 소리를 치며 달려드나 바위는 장부의 기상을 가지고 까닥하지 않으며, 그 몸에 굴이 기생하여 바위마저 생물인 듯이 보인다.

우리는 섬몽금이를 떠나 욕장으로 향하였다. 사장에는 게들이 까맣게 나와 엎드려 있다가는 우리들의 신발소리에 놀라 기겁을 해서 사라지고 만다.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니 사장에는 게 구멍이 오리숭숭한데 그리로 게들이 나왔다가는 들어가곤 하였다. 나는 어린애처럼 살금살금 게를 다그치나 게는 벌써 눈 깜빡할 사이에 숨어버린다. 안타까운 나는 발끝으로 게 구멍을 파며 걸었다. 가다가 해초 부스러기가 보이고 그물 해진 것이 발에 걸린다.

나는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들고서 물었다.

바라보니 남녀의 해수욕객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웃고 떠들어댄다. 그들의 몸은 해풍에 그을어 새카맣다. 나는 어쩐지 그들의 곁으로 지나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푹 숙이고 욕장 근처에 있는 바위 위에 올랐다.

여기서는 장산곶이 퍽이나 가까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바로 건너다보이는 조그만 섬에는 두어 개의 바위가 맞붙었으며 그 사이로 약간의 풀대가 가난해 보였다. 그 섬 앞으로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고기떼같이 밀려다니다가는 사장으로 뛰어나온다. 그들도 해 종일 멱감기에 얼마나 지쳤음인지 사장에 죽 돌아앉고 혹은 누워서 휘파람도 불고 노래도 부르며 용이하게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햇빛은 사장 위에 대글대글 구르는데 그들의 얼굴은 원숭이 같다.

통통하게 살찐 여인 하나가 어린애를 데리고서 곁에 따르는 그의 남편인 듯한 사나이와 손을 맞잡고 댄스를 한다. 푹 퍼진 엉덩이가 둥실둥실한다.

어린애는 어머니를 따라 댄스는 못하고 그저 그 큰 엉덩이를 따라 깡충깡충 뛰는 양이 귀여워 보였다.

해풍이 올려불어 나는 오슬오슬 추우며 몸이 퍽도 피곤하므로 어서 들어가기를 재촉하였다. 우리는 바위를 떠나 내려왔다. 별장과 해수욕장과의 거리가 먼 까닭인지 자동차는 무시로 드나들며 객들을 실어 날랐다. 우리가 자동차 머무는 곳에 왔을 때는 해수욕하던 사람들이 옷을 입고 아까와는 달리 점잔을 빼고 서서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섬몽금이서 뚝 떨어진 곳인데 해수욕장 바로 뒤였다. 그런데 헛간 하나를 두고 네다섯 가호가 정답게 모여 앉았다. 지붕에는 호박넝쿨과 박넝쿨이 푸르게 올라 바다를 바라보고 뜰에는 쑥과 억새풀이 우거져 푸른 자리가 되어 쭉 깔리었는데, 거기에는 닭들이 모이를 찾고 돼지들이 그 기다란 주둥이를 내밀고 땅을 쑤시며 꿀꿀댄다. 그리고 군데마다 굴껍질과 조개껍질이 수두룩히 쌓였다.

나는 헛간으로 가서 들여다보았다. 여기에는 고기 잡는 기구로 가득하였다. 작은 그물, 큰 그물이며 목선 오그라진 것들로, 발로 이러한 것들이었다. 헛간 앞에는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든 아궁이가 있으며 달려서 시멘트 콘크리트 가마가 둘이 가지런히 걸렸다. 그 안은 쇠로 되었으며 지금은 녹이 슬었다. 그 가마는 멸치를 삼는 가마라고 하였다.

마침 우리 옆으로 계집애가 바구니를 들고 지나간다. 나는 쫓아가서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담청색의 멸치가 절반이나 차 있었다. 멸치는 봄에 잡힌다면서 웬일입니까? 물으니, 때때로 이렇게 조금씩은 잡힌다고 하였다.

계집애는 부끄러웠던지 슬금슬금 달아난다. 계집애의 뒷모양을 바라보는 나는 그의 옷이 말할 수 없이 남루한 것을 보았다. 갑자기 나는 오! 저 계집애는 이 농촌에 사는 가난한 어부의 딸이구나 하였다. 그 머리며 손발의 장대함…… 이번에 내가 여기 온 것은 저들의 생활을 탐구하러 왔어야 할 게다 하는 부르짖음이 내 가슴을 뜨겁게 흔들어 놓았다. 오냐 작가로서의 사명이 뭐냐. 이 현실을 누구보다도 똑똑히 보고 또 해부하여 가지고 작품을 통하여 일반대중에게 나타내 보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냐. 예술이란 그 자체가 민중의 생활과 분리되는 데 무슨 가치가 있으랴. 그러자 차는 달려오므로 우리는 자동차에 올랐다. 차는 스르르 하고 사장을 달렸다. 무심히 보니 빨가숭이 어린것들이 해변가에 앉아서 게를 잡는 모양이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 흰 물새들이 나란히 앉아서 역시 먹을 것을 찾는 모양. 어느덧 그 귀여운 것들은 까맣게 사라지고 바다와 청산이 핑핑 맴돌이를 진다.

별장 앞에서 우리는 내렸다. 목제인 별장은 깨끗해 보였다. 별장을 싸고 잡풀이 우거진 뜰에서 천막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그곳에 메뚜기 푸르릉 날고 쑥 냄새 가득하였다. 우리는 별장을 버리고 천천히 걸었다. 길 좌우 옆에는 온갖 잡곡이 길길이 들어서 찼다. 나는 조 이삭을 쥐며 혹은 수수 이삭을 쳐다보면서 이번 장마의 수해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고기잡이에도 그 몸이 지쳤을 터인데 어찌 또 이 농사를 이렇게 하였노 하는 감탄과 함께 가을에 당할 일을 연상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멀리 섬몽금이를 바라보며 그들의 참혹한 생활을 어서 바삐 목도하고 싶었다. 배 한 척을 가지고 네다섯 가호가 달려 사는 이 빈한한 어촌의 백성들. 그들에게 있어서 저 보기 싫은 목선이나마 얼마나 가지고 싶을 것이며 그 배를 저 바다에 둥실 띄워 놓고 얼마나 고기를 잡고 싶으랴. 해서 그들은 경비선의 눈을 피하여 몰래 고기를 잡다가 들켜서는 벌금을 물게 되고 또 나무가 없어서 장산(長山-미쓰비시의 소유)의 나무를 베다가 붙들려 매를 맞는 그들. 아아 그러면 저 깊은 바다는 누구를 위해 고기를 한 바다 가졌으며 장산의 청송은 누구를 위해 저리도 낙락장송이더냐.

저녁을 먹은 우리는 낙조를 보려고 급급히 달렸다. 우리가 사산 위에 올라왔을 때는 낙조를 탐내어 올라온 유객(遊客)으로 떠들썩하였다. 바라보니 아직도 해는 수평선과의 그 거리가 먼데, 아까워라, 검은 구름이 수평선을 싸고 슬슬 감돈다. 우리는 행여 검은 구름이 벗겨지면 하고 안타깝게 기다리나 반대로 구름은 해를 향하여 자꾸 올라만 온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헤매었다. 어떤 이는 화를 더럭 내며 내려가 버린다. 아니나 다를까 구름은 마침내 해를 가린다. 그만 그 빨간 불덩이가 구름에 저 모양이 되어 캄캄하다. 나는 어찌나 성이 나는지 어린애같이 두 볼이 퉁퉁 부어서 돌아서고 말았다. 그리고 애꿎은 모래산만 탕탕 굴렀다.

하나 나는 거기에서도 무엇을 찾으려고 눈을 들었다. 저 가난한 어촌을 둘러싸고 구불구불 돌아앉은 일만 산의 그 푸른 봉우리는 시커먼 구름을 애써 뚫고 흐르는 잔조(殘照)의 베일을 길게 쓰고서 생불인 양 침묵하고, 그로부터 일어나는 숭고한 산악미는 하늘끝까지 뻗쳤으며, 산록으로 젖빛 안개가 몽실몽실 떠돌아 흐르다 거기에 아늑하게 앉아 있는 저 어촌에서는 이제야 저녁 연기를 풀풀 피우고 있다. 솥에서 생선국이 달랑달랑 끓는지?

나는 다시 돌아섰다. 사람들은 거의 다 내려가고 몇몇이 있을 뿐이었다.

해는 확실히 수평선에 걸렸는데 시커먼 구름은 여전히 해를 가리고 있었다.

구름을 호령하는 듯한 무서운 광선은 온 바다를 움켜쥐려는 듯 했으며 고함을 치려는 것 같았다 하나 . 바다는 그 넓은 가슴을 아낌없이 벌리고서 해를 포옹하였다. 이 순간에 삼라만상은 그들을 위하여 머리를 다소곳이 숙였다.

내가 선 사산은 금모래산이 되어 죽 달려 내려갔는데 거기에 술잔 같은 웅덩이, 웅덩이가 오글오글하였다. 그리고 그 하나 마다에 빨간 물이 찰찰 넘어 흐르고 그 물에 하늘이 동동 떠돌아간다. 아마 그 조그만 웅덩이는 지금 하늘을 꿈꾸고 있는 모양인지…… 언덕은 희기가 눈 같아 십리에 이어 닿았으며 해당화가 둥글둥글하게 엎드려 있다. 귀엽다 저 모양…… 내 애기 머리털같이. 그 위로 해풍이 제비같이 나는 곳에 파도소리 은은하다.

이젠 해는 수평선으로 넘어가고 온 우주는 캄캄하였다. 나는 그만 돌아서 걷기 시작하였다. 몇몇의 사나이들도 내 뒤를 따랐다.

“아니 형님, 이게 웬일이야”

내 동무의 동생인 고일신(高日新) 양은 뛰어와서 내 손을 잡는다.

“언제 왔니?”

“난 아까 아침에 효애서껀 다 같이 왔어. 형님은?”

“난 혼자 왔다.”

“에이 어쩌믄. 그런 줄 알았더라면 형님도 같이 오자고 할걸.”

“나야 감히 그 축에 섞이겠니.”

“에이 형님두.”

우리는 사산을 내려서 나무다리를 건넜다. 물 속에 별이 하나 둘 빛난다.

그리고 저 멀리 해변가에는 게 잡는 불이 줄을 지어 나타난다.

“우리도 게 사냥 갈까?”

“이애 오늘은 내가 곤해서 죽겠다.”

“좀 놀다가 가자구요. 벌써 들어가서 더운데 뭘하나.”

일신이는 나를 돌려세웠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에게 끌려 다시 사산 밑으로 와서 앉았다.

“형님, 노래나 한 마디 해요. 이렇게 산 좋고 물 좋은 데 와서 그냥 있을래요.”

“오냐 네 말이 맞았다. 그래 난 몰라 못하지만 너라두 하려무나.”

“에이 형님두. 어서어서 한마디.”

너무 조르는 바람에 낮에 들어두었던 어부의 노래를 아무렇게나 불렀다.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소금 배 갈치 배 다 들어온다네 에헤야 둥둥 내 사랑아 물세 좋다고 곧 돌지 말고요 몽금이 개암포 들렸다 가구려 에헤야 둥둥 내 사랑아.

오호호 여기 “ 노래구먼. 언제 다 배웠소. 뱃사공을 사귀었소, 호호.”

“그래 뱃사공을 사귀어서 배웠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참말 그들과 사귀어 가지고 이러한 노래라도 친히 듣고 싶었다. 게불은 점점 그 수를 더하여 도회지의 야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멀리 서울의 시가지를 생각케 하였다. 우리는 무심히 자꾸 모래를 쥐어 뿌리면서 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별두 별두 밝고
게불도 밝은데
이 모래로 떡을 빚어
너도 나도 먹자꾸나.

우리는 퍽이나 오래 앉았다가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신이는 나와 함께 있기로 하고 나는 여관을 옮겼다. 불을 끄고 누우니 웬일인지 잠이 다 달아나버리고 만다. 나는 내일 섬몽금이에 사는 어민들의 집을 찾아보리라고 생각하며 눈을 꼭 감아버렸다.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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