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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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季節[계절]의 젊은이들[편집]

1[편집]

칠팔월 노양이라니, 추석머리의 한낮 겨운 햇볕이 여름처럼 따갑다. 하늘 은 바야흐로 제철을 맞이하였노라 훨씬 높고 푸르렀고.

논이란 논마다 무긋무긋 숙어가는 벼이삭이 아직도 따갑고 살진 태양의 열과 광선(紫外線[자외선])을 마음껏 받으면서 마지막 여물이 여물기에 소리 없이 한창 바빠 있다. 잘 새끼친 소담스런 포기들, 수수목만씩한 굵고 탐진 이삭들…… 향교동(鄕校洞) 넓은 고래실은 올도 풍년이다.

논두둑으로는 새막이 드둣듬성 불규칙하게 가다오다 하나씩 서 있다. 벼는 뜨물때가 지났고, 어린아이와 늙은이의 손까지 농촌은 아쉰 시절이라 새막 이 태반은 다 비었다.

큰마을(本洞) 바로 앞 신작로 건너로 거기에도 새막이 하나.

여학생태의 나이는 한 이십이나 되었을까, 남색 몸뻬 입고 같은 남색 조끼를 하얀 머플러에다 받쳐 입고 납작 구두 신고, 이렇게 썩 도회지적으로 말쑥이 때가 벗은, 그래서 논두둑이니 새막이니의 흙내나고 촌스런 풍물과는 자못 어울리지 않는 영양이, 그러나 그런 부조화는 내 모른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새막가에 가 발을 대롱거리며 걸터앉아서 새 보는 시늉을 하고 있다.

문주(紋珠)가 고향엘 온 것이었다.

떼새가 새까맣게 논으로 내려앉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문주는 새막 기둥에 매달린 메뚜기꿰미에만 정신이 팔린다. 피이삭에다 숱해 많이 잡아 꿴 메뚜기들이 저마다 다리를 버팅기고 몸을 비틀고 하느라고 기다란 꿰미 전체가 꿈틀꿈틀꿈틀거린다.

‘우리 몸에 소위 영양가치란 게 있어 이 지경이 되는구나 할 줄은 모를 테지?’ 이런 생각에 골몰한 참이었다.

그러자 잠방이 하나만 걸치고는 웃통도 발도 벗은 새까만 꼬마 한 놈이 메뚜기를 연방 잡아서는 꿰미에다 꿰며 하면서 구부러진 논둑을 돌아 나오다가 논에 떼새가 앉은 것을 보고 질겁을 하여

“우이여. 아가씨 새 앉었시요 새. 우이여 우이.”

하고 소리를 지른다.

문주도 놀라 우이여 소리를 지르면서 생철통까지 두드려댄다. 귀청이 멍멍 토록 요란스런 소음이 잠시 동안 계속된다.

마악 그럴 때였다. 웬 전문학교 학생 한 사람이 어깨에 룩작 메고 나뭇가지 꺾어 지팡이 해 짚고 한 다리를 절름절름절면서 동구 밖으로부터 마을을 향하여 그 앞 신작로를 지나다, 하도 이 ‘영양 있는 새막’의 조화(調和), 우스꽝스런 풍물에 그만 어처구니가 없는 듯 뻐언히 바라다 보고 서서 갈 길을 잊는다.

새떼는 이내 쫓기어 날아가고 주위가 도로 조용하다. 그제서야 문주도 신작로에 섰는 학생에게 주의가 갔고, 그 순간 놀람과 더불어 짯짯이 학생을 건너다본다.

“아이, 난 전문학교 학생만 보면 꼭……”

다음 순간 문주는 입안엣말로 혼자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는 얼굴이 시방까지와는 딴판으로 흐려졌다. 오빠 철(哲)인가 하였고, 번연히 긜 리가 없는 것이건만 역시 섭섭하던 것이었다.

2[편집]

“아가씨 많이 잡었쥬?”

꼬마가 메뚜기꿰미를 자랑스럽게 쳐들어보인다.

“오냐, 많이 잡았다!”

문주는 새막 기둥에 걸린 것과 비교를 하여 보면서

“내 해 갑절두 더 될까 보다.”

“아가씨?”

“그래?”

“성냥 있시유?”

“성냥은 무엇에 쓰니?”

“이거 궈먹어요. 고소허구 아주 맛있시유!”

“참기름에 볶아 먹어예지 더 맛이 있는 거야, 인석아!”

“볶아 먹어유?”

“그러든지, 볶아 말려서 가루 장만해서 밀가루허구 섞어서 부푸는 가루 넣구 설탕 넣구 해서 빵 맨들어 먹든지.”

“빵유? 빵떡 말이쥬?”

“그래, 네 말따나 빵떡.”

꼬마놈이 침을 꼴깍 삼키면서 헤벌쭉 웃는다.

“귀동아?”

“내?”

“너 키 얼른얼른 크구, 기운 세지구 허구 싶잖아?”

“기운유? 키 커유?”

“이 메뚜기루다 과자랑 빵이랑 맨들어 먹으믄 키가 사뭇 무럭무럭 자라 구, 기운이 세지구 허는 법야.”

“해해! 증말유?”

“그럼……! 그런깐 어여 가 더 많이 잡아요.”

“설탕 넣구 빵떡 맨들쥬? 달쥬?”

“그럼!”

“내!”

대답을 하고는 흐른 잠방이를 치키면서 겅중거리고 메뚜기 사냥을 나간다.

신작로의 학생은 내처 그대로 길 옆 아카시아 그늘로 들어서서 짐을 내려 놓고 쉬고 있다. 그러면서 자주자주 새막 편을 보고 또 보고 하여쌌는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그 ‘영양 있는 새막’의 우스운 부조화를 완상하는 연장이 아니라 벌써 한 사람의 낯선 고장을 지나고 있는 단순한 행인으로 돌아가 길이나 또는 무슨 말을 물어보고 싶어하는, 그러하되 저편이 하 그렇게 색깔이 유난히 또렷한 젊은 여자라놔서 썸뻑 말을 붙이지 못하여 연해주저로와하는 그런 내색이던 것이었다.

신작로의 학생이, 말쑥한 영양이 새막에서 생철통을 뚜드리며 우여라 워여 라 새 보는 모양이 기물다왔다면, 이편 문주는 문주대로 학병으로 나갔기 아니면 근로봉사에 열심하여 있어야 할 요샛날의 학생이룩작을 걸 메고 한 가로이 시골로 돌아다는다는 것이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빤히 다 알고 있는바 읍내 사람도 향교골 사람도 아니었다. 정녕 서울서라도 오는 타관 사람이었다.

“가이다시 꾼(買出部隊[매출부대])? 그래도 설마 서울서 여기까지야! 학생이 더구나……”

“아뭏든 전문학교 학생치고는 껄렁하지!”

좀 얌전스럽지는 못한 객기(客氣)였다. 그러나 장난스런 탓이지 악의는 노 상 없었다.

“저, 여보십시요?”

학생이 마침내 말을 건네었다. 좁다란 논 한 이랑을 격한 상거라, 말소리를 높여서 할 필요가 없었다.

퍼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주는 고개를 돌린다.

3[편집]

“이 동네 혹시 여관하는 집이 있나요?”

“여관요?”

판 농사고장에 와서 여관을 찾다니 우스웠다.

“여관이 아니라두 보행 객주집 같은……”

“없답니다, 그런 건.”

“………”

학생은 입맛을 다시면서 한참 있다 다시

“예서 읍내가 몇 리나 되나요?”

“시오리라구 그래요. 그래두 꼭 칠 키로예요.”

“칠 키로!……”

학생은 또 입맛을 다시면서 시계를 꺼내어 보다, 해를 올려다보다 한다.

해는 중천에서 서로 반나마 겨웠다.

자행거 탄 사람이 지나간다. 학생은 부러운 듯이 그 뒤를 언제까지고 바라다본다.

“인력거 같은 것이 있을 이친 없구……”

학생은 혼잣말로 그러더니

“혹시 구장을 찾아가 사정 얘길 하면 말이나 허다못해 교군 같은 거라두 좀 얻어 줄는지 모르겠군요?”

“글쎄요……”

“읍내 가면 공의두 있구 허죠?”

“공의요?”

문주는 가볍게 놀란다. 그러면서 이어서

“어딜 다치섰세요? 발이나 다릴?”

하고 다급히 묻는다. 나뭇가지를 꺾어 지팡이 해 짚고 절름절름 저는 것을 못 보았던 바는 아니나, 예사 그저 발바닥이 부르텄거나 흔한 무좀이거니쯤 예사로이 여기고 말았었다. 한 것이 의사를 찾고 하는 데에 비로소 남의 병 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못하는 기술의식(技術意識)이 퍼뜩 주의를 일깨웠던 것이었었다.

“네, 좀……”

학생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은 하나, 잠시 잊었던 상처가 다시 아파나는지 무심결에 이마를 다 찡그린다.

“진작 그러시지……”

문주는 하마 나무람을 하면서 새막에서 내려서더니, 새막과 신작로 사이로 난 논두둑길로 해서 분주히 쫓아온다. 몸도 호릿하려니와 걸음매하며 모든 날렵 발랄한 품이 가을물의 은어를 연상케 한다.

“어딜 어떻게 다쳤세요?”

바싹 다가서면서 성화하듯 묻는다.

“발바당을, 해필 장심을 볐답니다.”

“출혈이 많았세요?”

“안직두 좀씩 흐르나 봐요.”

그러면서 학생은 왼편발을 내려다본다. 구두를 신어 겉으로는 별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오온! …… 어여 일러루 오세요. 바루 저기가 우리 집예요.”

손을 들어 동네 맨 앞으로 있는 기와집을 가리킨다. 백 미터 상거도 아니 된다.

문주는 학생이룩작을 들춰메려고 하는 것을, 발에 힘을 주면 안된다면서 귀동이를 불러댄다.

새까만 놈이 그새 벌써 메뚜기를 반 꿰미나 잡아가지고 뛰어온다.

“너 이 바랑, 네 기운으룬 댁에꺼정 못 가져갈 텐깐 안아다 새막에다 놓구 지켜 응?”

“내! 아가씨 빵떡 안 맨들어유?”

4[편집]

처녀때와 젊어서는 평범한 대로 진주(眞珠)라는 이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시방은 아무도 그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전혀 없다고는 잘라 말하기 어려우나, 가사 있다손치더라도 하나 아니면 둘에 지나지 아니할 것이다.

여자는 대개 시집을 가 자녀를 낳고 나이 들고 하노라면, 어렸을 적의 이름은 어느덧 없어지고 때의 환경에 좇아 아무개 어머니니, 무슨 댁, 무슨 아씨, 무슨 마님이니 하는 새로운 칭호가 ——— 이름이 생기곤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이 환경에 따라 저절로 생긴 이름이라야 부르는 편에서나 불리는 당자나 한가지로 자연스럽고 안길 맛이 있고 하지, 섣불리 만일 아들딸 주렁주렁 매달리고 나이 사십 오십 먹어 머리털이 희끗희끗, 사위 며느리 다 보게 된 여인더러 무슨

“현숙씨!”

“아이혜련씨!”

라커니

“오래간만이구려, 영자씨!”

하고 수작을 붙여보아라. 좀 어색스럽고 얼릴 상 없는지.

진주라는 이 여인도 그리하여 중년의 한 시절은 철이 어머니 혹은 문주어머니로 부르고 불리고 하였고, 그러다시방은 이 고장의 풍습으로 그의 친정집 동네 이름 옥동(玉洞)을 따옥동댁, 옥동아씨, 아래청에서는 옥동마님으로 부르고 불리고 하고 있다.

우리도 우선 한동안은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잠깐 어쩌다 잊어버린 듯 이웃에서도, 대문 밖 행길에서도 바스락 소리 하나 없고, 집안은 절간처럼 깜박 괴괴하다.

앓고 난 끝에 어제 오늘부터 차차로 기동을 하기 시작한 옥동댁은 몸을 대견히 가누면서 안방으로부터 앞마루로 나온다. 병후의 파리한 얼굴에 수심이 어리어 더욱 파리하여 보인다. 마흔일곱…… 무술생(戊戌生) 마흔일곱이다. 여자라고는 하여도 마흔일곱이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다. 웬만한 남자 같았으면 막내동이라도 하나 더 봄직한 정정할 나이다. 그러나 옥동댁은 벌써 늙었다. 쉰이 훨씬 넘었다고 하여도 곧이가 들릴 만큼 늙었다. 반백이 다 된 머리는 더구나 환갑 바라보는 노인 방불하다.

갸름한 얼굴 윤곽, 곱살한 눈초리, 가지런한 콧날, 인자스런 입매. 이런 것이 희미하게 젊었을 적의 모습을 겨우 간직하고 있을 뿐. 그다지도 곱고 아름답던 임진주의 면영은 바이 찾을 길이 없다. 삼십 년의 다난한 여인 행로가 아니었다면 이대도록 일늙어 바스라지지야 아니하였을 것이다.

딸도 오고 한 길에 추석송편을 빚을 겸 머슴 시켜 가작(家作 : 自作[자 작])하는 논에서 올벼(早稻)를 조금 털어 말리는 것이 벼멍석에 그늘이 덮인지 오랬건만 아무도 손을 대는 기척이 없어 손수 내려가 양지짝으로 끌어다 놓자던 타고난 부지런이었다. 그러나 막상 마루로 나와서는 문득 사랑채의 기와지붕 너머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하늘을 바라고 서서 우두커니 정신을 놓는다.

가을하늘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뜩이나 회포를 돕게 하는 것, 전지의 아들 철을 생각하던 것이었다.

5[편집]

내지의 어머니들은 이천육백여 년을 두고 한결같이 나라를 위하여 아들네를 전지에 내보내되, 동치 아니하도록 도저한 도야(陶冶)와 훈련과 그리고 자각(自覺) 가운데서 살아 내려왔다. 그런 결과 일본 여성은 사랑하는 아들을 나라에 바쳤으되 조금도 미련겨워하며 슬퍼하는 등 연약한 거동을 함이 없이 가장 늠름하기를 잊지 아니하는 천품이 ——— 정신이 잡히기에 이르렀다. 어머니 된 정에 노상 어찌 슬픔이 없을 리가 있을꼬마는, 한때 속으로 슬퍼하였지, 혼자서 암루(暗淚)나 흘리면 흘렸지 일상에 상심하는 얼굴을 지닌다거나, 항차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인다거나 하는 법은 전연히 없다.

여러 백 년을 나라와 나라 위할 줄을 모르고 오직 자아본위(自我本位), 가정본위(家庭本位), 오직 일가족속본위(一家族屬本位)로만 살아온 조선 백성은 따라서 어머니들의 군국에 대한 정신적 준비랄 것이 막상 충분치가 못하 였다. 빈약한 편이 많았다.

“나라는 개인보다 중(重)하니라.”

“민족의 번영은 언제나 그 민족의 젊은이가 흘린 바 피와 정비례하느니 라.”

조선 사람의 귀에 이런 외침이 울리기는 바로 최근 몇 해에 비롯된 것이었다. 학식 있고 각성한 사람들은 그 경종(警鐘)을 이성으로써나마 잘 받아들 임으로써 자각화(自覺化)·감정화(感情化)하기에 노력을 게을리 아니하였다. 노력은 헛되지 아니하여 성과에 족히 보암직한 것이, 한목 자랑함직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처음이요, 이른바 과도시기(過渡時期)이기 때문에 미흡하고, 일변 전반적으로 철저치 못한 구석이 없지 아니한 것이 사실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비관을 할 필요가 절대로 없음은 물론 이다.) 막막히 기둥에 지여서서 구름도 없는 하늘을 보고 있던 옥동댁은 그러다 별안간 몸을 돌이켜 부리나케 건넌방으로 들어간다.

건넌방은 철이 서울서 하숙하고 있던 공부방을 고대로 옮겨다 놓았었다.

웃목으로 책이 그득그득히 쟁여진 큰 책장이 나란히 두 벌. 아랫목 동창 앞으로는 테이블과 의자. 테이블 위에는 책꽂이와 책꽂이의 책들과 잉크단지 며 철필과 만년필 등속이며, 심지어 말편자(馬蹄)의 문진(文鎭)까지 죄다가 철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요, 철이 마지막 떠나면서 놓아두었던 그대로의 위치에 고대로 놓여 있는 것이었다.

아랫목 벽 위에는 철의 전지(全紙)짜리 반신 초상이 한 벌 걸리고, 그와 꼭 같되 캐비네판의 사진은 탁상틀에 넣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학모에 교복을 입은 재학시절의 사진이었다. 얼굴은 몸이랑 이 남씨집 혈통이라 살 이 부하지가 못하나 해맑고 재기가 영롱하다. 그러나 약간 숙인 듯한 이마 하며, 역시 약간 아래로 내려 뜬 눈이며가 사람이 다분히 명상적임을 얼른 짐작키에 어렵지 아니하다. 테이블 한옆으로는 채곡채곡 포개어 논 서너 통 의 군사우편이 놓이고, 편기가 오는족족 뜯어보고는 이렇게 모아두곤 하던 것이었다.

6[편집]

옥동댁은 방 가운데에 가 서서 사면으로 이것저것을 둘러본다. 책장에도 가 눈이 멎는다. 테이블에도 가 눈이 멎는다. 그러다 아랫목 벽 위의 초상에 가 필경 눈이 멎는다.

한참을 초상의 아들을 바라다보는 사이, 곧 그 다문 입이 벙긋하면서

“어머니!”

하고 부를 듯 부를 듯만 한다. 금새 그가만한 미소가 눈초리로 떠오를 듯 떠오를 듯만 한다.

“철아!”

부지를 못해 소스라친 목안엣 소리로 그렇게 부르면서 털썩 걸상에 가 주저앉는다. 그러면서 두 팔을 뻗치어 테이블의 사진을 집어다 앞가슴에 꼬옥 안는다.

늘 아들이 보고 싶은 족족, 마음이 쓰이는족족 이렇게 건넌방으로 달려 들어와서는 철의 체취가 풍기는 각가지 물건을 만지고 보고 하면서 한때의 위로를 삼았고, 그러다는 번번이 사진을 그러안고는 애절을 하곤 하던 것이었다.

이윽고 옥동댁은 마음을 진정하여 사진을 도로 제자리에 놓고 일어서면서 혼잣말로 뉘우친다.

“부질없이!…… 이러지 말자면서도 중추가 분명치 못해 그러는지!”

“남은 삼형제 사형제 잃고도 씩씩하다는데! 겉으로 내색을 아니한다는데!

그래야만 시방은 장한 어미 노릇이라는데!”

“윤팔네를 보겠지? 견문으로 하나 지체로 하나 월등히 나만 못한 사람이건만 조옴 천연스러! 좀 의젓해?”

이성을 채찍질하여 낡은 허물 속의 감정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없지 아니함은 퍽도 다행한 일이었다.

윤팔네는 미천한 신분에 그 역시 중년과부로 외아들 윤팔이 청년훈련에 다녀 훈련을 치르고 오는 시월 초하룻날 입영을 하게 된 것인데, 그는 전혀 비관이나 실망을 하는 내색이 없었다. 정반대였다.

“나야 다 참 무식하고 성명도 없고 하지만 조옴 좋아? 사내자식으로 세상에 났다가 총칼 메고 난리 치러 나가는 게 호강 아니고 무어람? 그래 대장부가 그 노릇 한번 못해보고 죽드람? 제엔장, 여든에 죽으나 스물에 죽으나 한번 죽기는 일반 ! 명색없이 지지리 오래 살다 명색없이 죽는지 접전(接戰 : 戰爭[전쟁]) 나가 싸움하다 죽으면 오죽 뻐젓해?…… 우리 윤팔이녀석이 검사라드냐 무엇이라드냐 떨어져 접전 못나게 되면 나는 그녀석을 막 몽둥이질을 해서 쫓어내자든 참인데! 아 그런 걸 자식이라구 집안에 붙여둬?

밥을 멕여?”

이렇게 윤팔네는 당당하고 씩씩하였다. 본시부터도 여자가 사람 됨이 기개가 무던하고 성품이 괄괄하기는 하였었다.

옥동댁이 기색을 다스려가지고 마루로 도로 나오는데, 그러자 뒤 울안 쭉 나무에선지 갑자기 까치 우짖는 소리가 요란히 인다.

“저녁 까치는 근심이란다!”

그러면서 마악 대뜰로 내려서는 참에 앞마당 차면(遮面) 밖으로부터 딸 문 주가 허둥거리로 달려든다. 손에는 언뜻 보아도 분명한 군사우편의 봉서 편지를 들고.

7[편집]

언제나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더럭하기는 군사우편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오빠헌테서 핀지 왔수, 왔어.”

“오냐. 어서 일러루가지구 와 좀 읽어다구.”

어머니와 딸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루로 올라가 마주앉는다. 딸은 어머니를 닮는 것이 예사야 예사겠지만, 이 모녀는 유난히 더 잘 닮았다. 갸름한 얼굴과 그 윤곽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운 눈매, 가지런한 콧날, 애련스런 입, 그리고 귀와 이마까지, 음성까지도 딸은 죄다 어머니의 모습을 탁하였다.

물론 딸은 갓 스물에 그 싱싱하고 탄력 있는 품이, 이미 늙어 바스러진 어머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한때 젊었을 적은 있었고, 젊었을 적 이십 무렵의 사진을 내놓고 보면 일푼 틀림없는 시방의 문주고대로였다.

딸이 아무리 잘 닮았기로서니, 차라리 재미거리일지언정 싫거나 긴치 아니 할 며리야 없는 것이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소댕 보고 놀라더라 이르거니와, 다심한 어머니는 딸이 외양에 있어서 너무도 그렇듯 자기를 닮기만 하였다는 것이 혹여 장래의 운명까지도 자기의 다난코 기구한 그것과 한가지로 할 징조나 아닐런가 싶은 의구에 문득 불안을 느끼고 할 적이 없지 못하였다.

“어머니, 그동안 얼마나 궁금히 기대리 섰는지요?”

편지는 옛투의 문안과 탈없이 잘 있다는 인사가 있은 다음, 이렇게 사연이 적히기 시작하였다. 딸은 읽고 어머니는 듣고 한다.

“먼젓번의 하서와 위문대삼아 보내주신 약과(藥菓)를 마침 서울서 한 문 주의 편지와 함께 잘 받았삽고, 바로 답서를 올리려는 차에 별안간 우리 부대에 전진명령이 내리어 이곳 ○○성(○○城)으로 옮아오느라고, 와서는 또 이것저것 정리며 준비에 골몰하여 부지중 이렇게 더디었읍니다.

인제는 일도 너끔하고 겸하여 오늘은 비번(非番)이라 매우 한가합니다. 덕에 사연도 여러 가지로 많이 쓸 수가 있읍니다. 우선 이곳이 어떠한 곳이라는 것부터 말씀하여 드리겠읍니다.

이곳 ○○성은 우리 부대가 접때까지 유둔하고 있던 우리 본부대(本部隊) 의 근거지 ◇◇으로부터 서남쪽으로 일백오십 리 가량 들어온 조그마한 옛 성입니다. 성은 조그마하여도 군사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땅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예서 다시 서남쪽으로 이백 리 가량 더 들어간 곳에 ××라는 큰 고을이 있읍니다. (○○이니 ◇◇이니 ××이니 하고 지명을 정작 숨기 어 매우 답답하시겠지만 그는 군사상의 비밀이라 부득이 한 노릇이오니 그런대로 눌러보아 주십시오.) 그 ××에는 적군이 시방 많은 병력을 집결시켜 놓고 우리 본부대의 근거지 ◇◇을 쳐들어오려고 잔뜩 노리고 있읍니 다.”

여기까지 읽고 난 문주가 그제야 생각이 나서

“아이머니 나 좀 봐! 상처(傷處) 치룔 해주마구 남을 데리구 와 사랑으서 기대리게 해놓굴랑!”

하면서 혀를 날름한다.

8[편집]

읽던 편지를 중판을 메어 옥동댁은 순간 파흥이 되는 것 같았으나 이내 그런 내색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온 “얘야, 그래 쓰느냐? 어여 나가 보아주구서 들어오렴.”

“그래두우 이거 마저 읽어예지 누가 오빠 편질 읽다 말구서 딴걸 허우?

오빠가 진중에서 일껀 써보낸 소중한 핀질! 응? 안 그러우, 엄마?”

어린아기처럼 어린 양이 뚝뚝 듣는다. 말만한 새악시가 어린 양이 다 무어냐고 하겠지만, 이 모녀는 어머니는 언제까지고 젖을 먹여주고 업어 주고 하던 어머니에, 딸은 언제까지고 품안엣 적 딸이요 하였다. 어린 양을 하는 딸이나 어린 양받이를 하는 어머니나 그래서 다같이 보다 더 짙은 애정의 유로(流露)였으며, 따라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누구드냐?”

“웬 타관서 온 학생인데 발바당을 볐다구.”

“얘야, 더구나 객지에 나선 사람을 그리 괄대해 쓰니? 편질랑 다녀 들어 와 읽구서 어서 나가 보아줄렴?”

“갠찮아요! 염려 없어요! 이거 한 이 분이나 삼분이문 다 읽을 텐깐, 마저 읽구가 해줘두 안 늦어요!…… 의사가, 반쪽의 산 반쪽의 사라두 것 모를까, 머.”

그러고는 편지 계속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한편 우리 군에서는 우리 군의 작전방침이 있어 우리가 ××이라는 그 적군의 구혈을 쳐 빼앗아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런데 말씀이지요 어머니, 우리 군이 ××을 치자고 하면 반드시 이 ○○성을 확보하여야만 하는 형편입니다. 지리며 그밖에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아 ○○성을 확보하지 아니하고서는 절대로 ××의 진공을 여의하게 할 수가 없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군은 재빠르게 손을 써 이 ○○성을 우선 쳐 빼앗아논 것입니다.

우리 군에게 이 ○○성을 빼앗긴 적은 대단히 당황하였읍니다. 그들은 우리 군이 ××을 진공하기에 이 ○○성이 없지 못할 요지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우리 본부대의 근거지 ◇◇을 치자고 하면 불가불 이 ○○성이 그들의 수중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 요지를 빼앗겼으니 낭패가 클 뿐 아니라 이 ○○성이 우리 군의 손에 들어오고 보니 제네들의 구혈 ××이 덜미를 잡힌 격이어서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입니다. 자연 적군은 무엇보다도 이 ○○성을 도로 빼앗으려고 기를 쓸 것은 분명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 리는 이 성을 절대로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그여코 지켜내어야만 합니다.

어머니, 그만하면 이 ○○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점인 것을 짐작하시겠지요?

그리고 그와 같이 중요한 땅을 지키는 우리 부대의 임무와 아울러 그 우리 부대의 일원(一員)인 소자의 임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임을 또한 짐작하시겠지요?

그런 중한 임무를 맡은 만큼 부대의 전원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다들 긴장하여 있읍니다 그러나. 조금 미흡한 것은 우리 편이 너무 병력이 적은 것입니다.”

9[편집]

문주는 쉬지 않고 편지를 읽어내려간다.

“본부대에서도 ○○성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병력의 전체의 배치 상, 부득이 소수 병원의 우리 부대로 하여금 우선 당분간 이를 수비케 한 것입니다. 불원간 그러므로 병력 증강이 되기는 될 터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병력이 적다고 하여 우리는 추호도 겁하지 아니합니다. 일본 군사는 일당백하는, 아니 일당 천하는 천하의 용맹스런 장졸들입니다. 백배의, 천 배의 적과 접전을 하는 마당에서도 조금치도 두려워 아니하는 것이 일본의 군사입니다. 그리고 항상 큰 군사와 싸워 능히 이겨내는 것이 진실로 일본군의 일본군다운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일본 군사 말씀입니다.

어머니, 두고 보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든지 우리는 우리가 이 성을 맡은 이상 최후까지 지켜내고 말 터입니다. 그땔랑은 어머니도 ‘어허 장한지 고’하시고 만세 불러 주셔요. 어머니, 소자는 그동안 두어 차례 조그마한 것이나마 접전을 치르는 동안 한가지 깨우친 바가 있읍니다. 조선에서도 말 하기를 전사(戰死)를 제일 상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뜻깊고 적절 한 말입니다. 전사! 전사! 칼을 잡고 적과 마주 싸우다 있는 힘, 있는 용기 다하여 최후까지 싸우다 일순간에 죽는 죽음! 전사! 그것은 늠름하고 영광 되고 자랑스럽고 한 외에, 겸하여 아름다운 죽음, 활홀한 죽음이기까지 합니다. 대장부 세상에 났다 그 이상 보람있는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노라면 보나마나 어머니는 정녕 질색을 하시어 ‘에구 이 애가 어떡허자고 이런 불길한 소리를 하는고!’하시고 낙담을 하시겠지만, 어머니 안심하셔요. 천하없어도 소자는 죽지 아니합니다. 어머니께서 친필로 무운장구라 쓰시고, 문주가 센닌바리로 수놓아 주신 것으로 배를 든든히 동였읍니다. 거기에는 신기(神氣)가 어리었읍니다. 적의 탄환이 감히 범하지를 못합니다. 어머니, 미국서 만든 탄환을 지나 병정이 쏘는 것에 맞아서 목숨을 버리고 말 우리 어머니의 아들 철이겠읍니까? 부디부디 안심하셔요.

죽지 않고 공일랑 뛰어난 공을 세운 후 자랑스러운 개선을 하여 어머니의 무릎 앞에 절할 날을 부디 안심코 기다려 주셔요.”

미상불 옥동댁은 죽음에 대한 말이 나오는 대문에서는 사색이 심히 당황하였었다 문주도 자못 그러하였다 . . 그러나 ‘천하없어도 소자는 죽지 아니합니다……’하는 데서부터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빛이 얼굴로 갈리어들었다.

“아무렴, 그래야 허다 뿐이겠느냐? 안 죽구 공은 공대루 뻐젓이 세우구, 조옴 떳떳허니?”

옥동댁이 혼잣말같이 그러는 것을 문주도 따라

“그럼 어머니!…… 용렬허지만 않구 다 같은 용맹이문 안 죽는 이가 더 장허다우!”

10[편집]

편지는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 문주는 몰아치듯 마지막을 읽는다.

“어머니, 이곳은 기후가 조선과 방불하고 토질도 같은지 벼농사를 많이들 합니다. 조선처럼 논에다 심은 벼가 이삭들이 나왔읍니다. 그것을 보고 문득 고향의 추석(秋夕)을 생각하였읍니다. 오곡이 풍등하고 온갖 과실들이 익고 농군들이 풍년을 즐기고 하는 고향. 어머니가 계신 고향. 가고 싶지 아니하다는 것은 빈말일 것입니다.

어머니 손수 만들어 보내주신 약과는 미리 먹어버리기도 아깝고 하여 이제 달이 제일 둥글고 밝은 날 밤을 기다려 동무들과 나눠 먹으려고 그대로 잘 아껴두었읍니다. 군대에서는 네것 내것이 없답니다. 더구나 내지 사람 병정들은 구경도 하여보지 못한, 그 달고 고소하고 맛있는 약과를 자랑하여 가며 나눠 먹을 일을 생각하면 미리부터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들 귀한 음식이면 서로 나눠 먹고 할 만큼 우리는 의가 좋고 다정히 지낸답니다. 또 상관들도 우리를 퍽 애껴하며, 더우기 부대장께서 소자를 귀애하기란 분에 넘치는 것이 있읍니다. 그런 점도 어머니, 부디 안심하옵소서.

끝으로 문주도 서울서 잘 있는지요. 소자가 떠나면서 어떠한 일이 있든지 한 달에 한 번씩 반드시 귀근(歸覲)하여 적적하신 옆에서 위로를 하여 드리도록 신신히 당부하였는데 그대로 행하는지요. 능통스럽지 아니한 아이니 매양 저버림이 없을 줄은 믿습니다.

여기까지 쓰는데 마침 비상소집 나팔이 울립니다. 적병이 몇 놈 또 와서 지분거리는 것이겠지요. 종종 있는 일이요 대단할 것 없읍니다. 그러면 어머니, 이 다음 상서할 때까지 기체후 만안하시옵기 멀리서 엎드려 비오며 이만 갖추지 못하옵나이다.”

편지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읽던 문주나 듣고 있던 옥동댁이나 잠시 그대로 말이 없이 앉아 숨을 돌린다.

이윽고 문주가 먼저

“응? 어머니?”

“오냐?”

“오빠가 말유, 생각허는 거랑 말허는 거랑 많이 아주 달라진 것 같지?”

“글쎄…… 네 말을 듣구 생각허자니 참 그런 것두 같기는 허구나!”

“퍽 달라졌어!…… 그전이야 오빠가 어디 그랬우? 밤낮 무얼 생각만 허구 있구, 말두 잘 아녀구. 더구나 자기 속에 있는 말을 누구더러 허우?”

“꼬옥 느이 아버지 승미를 닮아 그렇드란다.”

“병정도 가구 볼 거야 어머니! 전쟁도 나가 볼 거구. 사람 쾌활해지겠다, 몸 튼튼해지겠다, 좋은 경험 얻겠다, 그러구 나라 위해 싸우겠다 조옴 좋아? 그렇잖우? 응? 어머니.”

“오냐, 오냐. 느이게 좋은 노릇이면 나야 거저 좋구말구 허겠니!…… 얘야, 참 인전 어서 좀 나가 보아주어라. 오죽 기대렸겠니?”

옥동댁은 편지를 받아 가지런히 접어서 도로 봉투에 넣고, 문주는 사랑으로 나가고 한다.

11[편집]

촌농군의 발처럼 크고 거칠어진 발이었다.

상처는 바른편발 장심 바로 정통이었다. 너비가 한 치나 거의 되고, 깊이도 얕지 아니하였다.

그 거친 발을 작고 보드라운 손으로 떡 주무르듯 하면서 문주는 서투르지 아니한 솜씨로 상처를 처치하여 주고 있다.

학생의 얼굴이 웃는 것도 아니요 우는 것도 아니게 가관인 것은 점직스럼과 아울러 온 전신이 스멀거리어하는 표적이었으리라. 상처 속을 후벼 낼 때에야 좀 아팠으련만 눈만 찡그려 감을 뿐 아프단 소리도 못한다.

“오시다 아마 냇물엘 들어가싰든가 보죠?”

향교동은 동구(洞口) 밖으로 까치내(鵲川)라는 조그마한 내가 있어 정강이 지는 맑은 물이 더운 여름날이면 지나는 사람을 부르기에 족하였다. 잔 고 기가 많고 하여 천렵터로도 마침인 것은 물론이요.

학생은 장난을 하고 나서 어른한테 들리워 난 어린아이처럼 가뜩이나 주몃 주몃하다. 빙긋이 웃으면서 떠뭇떠뭇 냇물이 하두 “좋길래…… 더웁긴 허구…… 발이나 씻을까 허구서 마악 추구 들어서는데 별안간 발바당이 썸뻑하드니……”

“유리조각이든 게죠……그래두 우린 밤낮 가 놀구 해두 아무렇지두 않답니다.”

학생이 웬만큼 좀 능청스런 나기였다면 슬쩍 ‘내두 낯선 사람이라구 텃세를 하는 모양이죠?’ 한마디 건네었을 것이지만, 막상 그런 주변도 없는 듯 그저 덤덤히 있을 따름이었다.

“화농이 되지 말아예지 헐 텐데……”

문주는 혼잣말로 그런 걱정을 하면서 상처의 가제 위에다 탈지면을 덧대고는 마지막으로 붕대를 감기 시작한다.

“한 서너 바눌 꼬맸으문 해두 전 안직 공부두 거기꺼진 못 미쳤구. 젤에 또 채비가 없어서…… 대강 소독이나 허구 약만 바르구 했답니다!”

“고맙습니다!…… 무어 이만하면……”

학생은 인사와 치하를 하면서 붕대가 다 된 발을 끌어들이는 길로 내처 몸을 일으킨다. 그러면서 속으로 ‘간호부, 갈데 없어. 서울이나 이 근처 도회지의 병원, 간호부 분명해’ 하고 진작부터 ‘대관절 어떤 여잔고?’싶어 궁금하던 의문을 마침내 해답 짓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막상 마음이 어딘지 섭섭하다고 일변 미안스러워 못하겠는 해답이었다. 어떻게든 그것을 도로 부인하고만 연해 싶었다.

학생이 얼른 그렇게 일어서는 것을 보고 문주는 질겁을 하면서 마주 일어선다.

“안됩니다!”

“네?”

“지금 거기다 신발을 신구 운동을 허구 허시문 안된답니다! 괜히……”

“?……”

“다아 나으실 때꺼정 가만히 기세예지 해요!”

“그래두……”

“안되세요! 여기 우리 집이서기 시문서 메칠 치룔 받으세예지 해요!”

썩 어른스럽고 명령적이었다.

12[편집]

학생은 상한 발을 발끝으로 딛고 서서 속으로는 제법 ‘고거 맹랑허이!’ 하면서도 하는 양은 여전히 파겁 못한 어린아이처럼 말이랑 떠듬떠듬 저 오늘 해전으로 되두룩이면 “ , 읍내꺼지 좀 대가야 헐 일이 있어서 불가 불……”

“그렇지만 지끔 무릴 허셌다 영 아주 탈이 나든지 허문 그땐 정말 일을 못 보시구 말 거 아녜요?”

“건 그렇지만서두 개인 사정보다두 책임상 어디……”

“무슨 회합에 출석허실 참인가요?”

“회합두 있구, 그러구 논두덕으루 많이 좀 돌아댕겨야 헐 일이 돼서.”

“논두덕요?”

그제서야 문주는 학생의 교복 단추와 그리고 마룻전에 놓인 학모의 모표에서 그가 ××고농(高農)의 학생인 것을 비로소 알아낸다. 발이 그처럼 크고 거친 것도 알고 보니 근리하였다. 상처와 그 치료하는 것에만 열심하여 있느라고 그가 어떤 학생인가에 대한 관심은 미처 일지 아니하였던 것이었다.

‘오오, 암모니아전문!’ 또 이런 얌전스럽지 못한 소리를 속으로 혼자 바특 웃는다.

고등농림이라고 하면 여학생들이 으례껏 암모니아전문이라면서 웃기부터 하는 줄을, 그리고 여느 전문학교 학생과는 딴 물건인 것처럼 가외로 쳐버리는 줄을 학생 자신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여자가 교복 단추하며 교모의 모표를 돌아보다 혼자 웃는 속이 다 그 속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조금도 불쾌할 것은 없었다. 투박스런 생김새로 보아 천품이 우선 그렇게 신경이 굵스름할 것이고, 여러 해 동안 학교에서의 농민적인 훈련으로 하여 그럴 것이었다. 거기에다 겸하여 밉지 않게 생긴 여자가 밉지 않게 굴면서 그러던 것이매 또한 그럴 것이었다.

“그럼 농사지돌(農事指導)하러 오시는 길이신감?”

“지도랄는지, 내 공부삼어 실습이랄는지.”

“퍽 멀리들두 오셔!…… 여름참엔 보니깐 근처 농업학교 생도들은 와서 조력두 해주구, 가르쳐두 주구 그랬는데…… 한창 바쁠 때라 농사허는 집이 서들은 여간만 힘을 입은 게 아니랍니다!”

“저이나 내나 그저 위문이 폐문이죠!”

“그런데에, 그럼 읍내면사무소루 가시나본데 오늘루만 그예 가셔야지 허시나요?”

“오늘꺼정 당도하기루 연락이 돼 있으니깐 면장서껀 기대리기두 할 것이구……”

그러자 안채로 난 사랑 중문으로부터 옥동댁이 조용히

“문주 예 있느냐?”

하고 기척을 하면서 앞 대뜰로 천천히 돌아나온다.

학생과 옥동댁이 우선 서로 얼굴이 마주친 것은 극히 자연한 순서였으나 마주치는 순간 옥동댁의 얼굴에 소스라쳐 놀란 빛이 드러남은 의외였다. 하 되 그것이 주소로 아들 철을 그려하는 나머지 외양 차림차리를 같이한 사람 을 ——— 전문학교 학생을 ——— 보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놀라기부터 하는(아까 문주가 새막에서 이 학생을 보고 가슴이 울렁하듯이) 그런 종류의 놀람이더냐 하면 그도 아니었다.

13[편집]

학생은 천연하였다.

노인이 이 여자의 어머리라는 것을 직각하기에 힘들 것이 없었고, 따라 경의와 호의를 띤 얼굴로 방금 무어라고든 인사엣말이 나오려고 하는 외에는 아무 다른 내색이 드러나는 것이 없었다.

옥동댁의 놀라와하는 얼굴 표정은 좀처럼 가시지 아니하였다. 문주가 그것 을 알아보고 이상하여 하다 묻는다.

“어머니, 이 학생 알우?”

“알아두 이만저만찮이 아는 얼굴인데……”

“누구요 어머니?”

“글쎄……”

너붓한 얼굴. 그 얼굴에 알맞도록 다 굵직굵직한 이마하며 눈이며 코, 입이며 귀며 등속의 모든 부분품. 그리고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언뜻 우둔스 레 보이면서도 자상히 뜯어보자면 은근한 재기가 어리어 있는 기상…… 이것이 더욱 유난히 낯에 익고 사라지지 아니한 채 기억에 남아 있는 좌우간 누군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정작 누구냐는 것은 생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문주가 이번엔 학생더러 묻는다.

“우리 어머니 혹시 서울이나 어디서 만난 일 있세요?”

“아아뇨. 통히……”

학생은 고개를 젓는다. 그러다 그제서야 앞마루로 한걸음 나서면서 허리를 굽혀

“이렇게 와 폘 끼쳐 드려서!…… 올라오시지요. 보입겠읍니다.”

“절은 받아 무얼 허우? 어여 그냥 앉으시요.”

옥동댁은 늙은 사람이라서 절하고 뵙겠다는 태도가 요새 젊은 사람으로 희한스러 문득 기뻤다. 매양 법도(法度) 있이 보고 배운 데가 있음을 말함이요, 그 행신 점잖스럽다는 사실이 또한 그가 분명코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재료의 한가지였다.

“그래 다친 덴 어떻소? 과히 중하지나 않소?”

“말씀 낮추세요. 젊은애들더러 노이신네께서 그렇게……”

“남의 댁 귀한 자젤 아무리 늙었기루니 말을 함부로 해서 되우?…… 그래 문주야, 잘 좀 보아 드렸느냐?”

“해드릴 건 다 해드렸는데 글쎄 그 상철 해가지구 지금 읍내루 가실 양으로 저러신다우!”

“그럴라 말구 불편허나따나 내 집에서 하루 이틀 유허면서 웬만치라두 상 철 나어가지구 떠나게 허우. 촌구석이 돼서 대접헐 것두 변변치가 못허구 해 손님을 만류허기가 되려 민망허우마는.”

“별말씀 다 하십니다…… 긴한 볼일루 읍내면사무소꺼정 가든 길이 돼서요.”

“무슨 소간인진 모르겠소마는 발을 저럭허구서야 가는 수가 있소? 그래두 정히 급헌 일이라면 오늘은 이왕 저물었으니 내일 일찌기 떠나게 허우. 아무거라두 탈걸 하나 분별해 드릴 테니……”

“오온 호강하러 댕기는 사람인가요? 이만침 치룔 해주섰으니깐 시오리나 이십리쯤야……”

그러는 것을 문주가 가로막으면서

“호강을 시켜 드리자구 그러나요? 상철 낫워 드려서 우리 고장 농사지돌 잘 해주시게 하잔 뜻이죠.”

14[편집]

꼭 제 고집대로만 하고 한마디도 남한테 지지 아니하려 드는 새악시라고 학생은 생각하였다.

새막에서 메뚜기 사냥을 하던 놈만큼이나 새까맣고, 몸뚱이에 걸친 것이라고는 역시 잠방이 하나뿐이요 한 놈이 서슴지 않고 사랑마당으로 들어선다.

들어서면서 밑도끝도 없이 하는 소리다.

“주사침 누아달래유!”

세 사람의 눈이 일시에 그리로 몰린다.

“누가 아파 그러느냐?”

옥동댁이 묻는다.

“우리 동생유.”

“어떻게 앓드냐?”

“죽을 양으루 해유.”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그래 아범은 어디 가구 없느냐?……”

그러다가 옥동댁은 생각이 나

“오 참 지난달인가 보국단으루 뽑혀나갔지.”

하면서 딸을 돌려다본다.

“가 좀 보아주렴?”

“누구네유 어머니?”

“아따 판돌네라구 우리 개똥배미 여덟 말지기 부치구 허는 사람 있지 않으냐? 눈 핼끔헌……”

“오오 판돌네! 사내가 여태 상투 짜구 헌.”

“저놈 아래루 네 살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놈이 아마 관격이 됐거나 했나보구나.”

문주는 부리나케 방바닥에 늘어놓았던 치료제구를 거듬거듬 가방에다 넣어 가지고 나선다. 그러면서 학생더러

“그럼 아마 일 시작 허시기 꺼진 날짜 여유가 조금 있는 모양이니깐 낼 석양 때 가시게 허세요 네?”

“네!…… 그렇게만 농사꾼이 발 좀 상했기루 어떻게 일일이 안정을 한다, 여러 날씩 치료를 한다 합니까? 농사꾼의 상처엔 흙이 제 물약이랍니다.”

“아뭏든 환자란 건 의사의 명령을 절대 복종해야는 법예요!”

그러고는 웃으면서

“어머니, 댕겨와요.”

하고 꼬마를 따라 총총히 나간다.

“온 어디서 시끄런 것두! …… 커다란 기집아이년이……”

옥동댁은 웃으면서 혼잣말같이 그러다가 학생을 돌아본다.

“서울 가서 여자의전을 다닌다우. 공부라야 오죽헐꼬마는 종종 내려올 때마다 바르는 약이니 먹는 약이니 주사약이니 마련해가지구와 선 동네서 누가 앓는다면 쭈르르 가 보아주구…… 그런다치면 더러 효험을 보는 수두 있구!…… 그래두 난 잘못허다 남의 병 더쳐놓지나 않나 해서 늘 조심스럽구 마음이 아니 놓여서.”

“………”

학생은 말은 없으나 대단히 만족하고 속 후련한 것이 있었다. 여자가 간호부가 아니요 여자의전의 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떻게도 다행하고 기쁜지 몰랐다.

만일 그가 잠깐 반성을 할 여유가 있었다면 온 아니꼽게시리네 주제에 ‘, 간호부라고 미흡해하고, 여자의전 학생이라고 좋아하고 할 건 어딨드냐?’ 하고 응당 한바탕 타박을 주었을 것이다.

딸을 둔 어머니는 낫세의 총각도령을 보면 딸 시집 보낼 걱정을 하곤 하는 것이 예사다. 옥동댁도 그 생각에 이윽고 골몰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2. 모시에 어린 追憶[추억][편집]

1[편집]

단호박을 많이 두고 팥고명도 많이 두고 한 지름한 호박떡을 크막한 사기 함에 담아 뚜껑 덮고 무우동치미 담은 보시기 한옆에 곁들여 쟁반에다 받쳐 들고 사랑으로 나와 무료히 앉았는 학생에게 권한다.

“시장허겠수. 저녁 될 때꺼지 이거라두 좀 자시우.”

“온 손수 이렇게……”

말주변이 없는 학생은 여러 말로 겸사며 치하 같은 것을 할 길이 없어 그 저 민망해하는 것으로 인사와 대답을 삼을 따름이었다.

“낮차루 아마 내려 들어오든 길인가본데 정거장 앞인들 이새 무슨 변변히 요기거리니 있을 리 없구…… 즘심을 그래 못 자섰겠구료?”

“네!”

“거 보겠지. 객지에 나서면 다 절루 고생이야…… 어서 좀 드우. 덥혀 내 오려다 호박떡은 더워선 더워 맛이요, 차선 찬맛이란다길래……”

“………”

“어서 드우. 내 들어가 물 떠내보내리다. 하루 열 낄 먹어두 때때루 속이 헛헛허구 헐 나이에 조옴 그래 시장했어! 쯧쯧!”

“그럼 먹겠읍니다.”

학생은 합 뚜껑을 벗겨놓고 저깔로 뜨기 시작한다. 시장한 사람이 아니라 도 그 먹음직스런 품이 대하는 이의 구미를 돕기에 족한 것이 있었다.

“고향이 어디요?”

“공주(公州)올시다. 충청남도 공주.”

“공주!……”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듭

“공주, 공주……”

하고 뇌더니

“고향댁엔 양친다 구존해 기시우?”

“네.”

“여러 형제에?”

“제 아래루 누이 하나허구 동생 둘이 있구 헙니다.”

“퍽 번족한 댁이구려!…… 그럼 학생이 맏이면 양친께서 춘추가 그대지 높으시진 아니허시겠지?”

“아버님께서 마흔아홉이시구, 어머님이 갓 쉬흔이세요.”

학생은 일변 먹으면서 이야기 대답을 하면서, 또 일변 속으로는 어떤 노인 인지, 보도록새 인자스럽고 점잖고 그러고 말마디가 퍽도 유식하다고 탄복을 하여 마지않는다.

“그러구 참 성씨는?”

“추(秋)가 올시다.”

“추씨?”

반문하는 옥동댁의 음성이 약간 높았기도 하려니와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놀람과 동요의 빛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놀람은 처음의 놀람과 달라 확연히 무엇을 깨달은 데서 온 놀람이요, 따라서 그 동요임에 틀림이 없었다.

“추씨, 오 추씨.”

옥동댁은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자기의 그런 놀라함과 동요의 빛을 그에게 뜨이지 아니한 것이 자못 다행하였다.

갈데 없었다. 마지막으로 성이 맞았다. 나이도 정녕 그 어림일 테였다. 고 향이 공주였다. 그 나머지 야물어보나마나한 노릇이었다.

옥동댁은 안으로 들어가 하인 귀동아범을 시켜 닭을 한 마리 살진 놈으로 잡게 한다. 그러고 몸소 나서서 찬수분별을 한다.

2[편집]

한 필의 모시가 옥동댁의 무릎 위에 반만 펼쳐져 놓였다.

저녁을 치르고 아래청에서들도 마지막 동자질까지 다 마치고 제각기 제 구 덕으로 헤어져 가 일찌감치들 자리에 들었고 하여, 아직 초저녁이건만 집안 은 자는 듯 조용하였다.

딸은 둔 어머니는 좋은 사윗감과 아울러 농에 넣어 보내줄 옷감 또한 작지 아니한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시방은 전시. 평화시절처럼 화려하고 많은 옷을 장만한다는 것이 부질없기도 하려니와, 가사 욕심을 부리자 한들 물자가 없는데 야무가내하였다. 오직 장롱 속에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뒤져내어 쓰는 대로 쓰는 것이요,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 옥동댁의 무릎 위에 펼쳐져 놓인 한 필의 모시도 그런 사정에서 시방 깊이깊이 간직되었던 장롱 밑으로부터 꺼내어진 것이었다.

모시는 그러나 막상 소용이 될 수가 없었다. 삼십 년이나 된 한 필의 모시였다. 모시보다 더 질긴 피륙도 삼십 년이면 성하지가 못할 것이거늘 그 약 한 모시올이랴.

담뱃잎을 틈틈히 넣어 싸고 싸고 하여 두어 왔고, 가끔가끔 거풍을 시킨 것은 물론이었고, 그러다 신약으로 방충제를 이용할 줄 알면서부터는 그 법을 정성스레 시행하였고…… 그 덕에 좀만은 감히 침노를 하지 못하였다.

한 자리도 좀이 삭은 곳은 없었다. 그러나 그 대신감이 저절로 삭아져 버리고 말았다. 조금 힘주어 잡아당기면 필필 갈라지도록 삭아졌다. 거기에다 빛깔은 누렇게 절었고. 해서 도저히 지금의 옷감으로는 소용이 될 수가 없 고 말았다.

삭고 빛 전 한 필의 이 모시가 비록 옷감으로서는 소용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지만, 모시 그것에 어린 옥동댁의 삼십 년 ─ 시집 와서부터만 쳐서도 삼십 년의 ─ 길고 다난한 추억은 한점 한 끝도 가실 바가 없었다. 모시 가는 올마다 추억은 면면히 그대로 어리어 있는 것이었었다.

사랑에 유하는 학생한테 잠깐 나갔던 문주가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면서 들어온다.

“달이 인전 퍽 밝을 텐데 흐렸어, 어머니!”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서다가 어머니가 램프불 아래서 난데없는 모시를 무릎에 펼쳐놓고 만지는 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다.

“웬 모시 유 어머니?”

“오냐…… 학생 나그네는 어떻드냐?”

“낼 보아예지 알죠!…… 이런 모시가 다 있수?”

“삼십 년이나 묵었으니 그럴 밖으 더 있느냐?”

“아유! 삼십 년인다치문 어머니, 나보담두 열 살두 더 먹었구랴?”

“그렇단다. 이걸 느이 진외조할머니께서 손수 모시를 째서 올을 날아서 짜서 깨끗이 마전을 해서 나 시집 오는 농에다 넣어주셌더란다!…… 다른 건 다아 없애면서두, 이 모시 한 필일랑은 손을 아니 대구서 알뜰히 건살 해 왔드니……”

“그런 걸 무엇허러 끄내우 어머니?”

너 시집갈 농지기루 치마저고리나 “잡아볼까 허구서 끄낸 것이 못쓸까보다 아무래두……”

“누가 시집간대나 머.”

3[편집]

“그럼 시집 아니 가 구 호박이라구 혼자 늙니?”

“인제 오빠가 개선해 돌아오구, 결혼허구, 그러구 나문 나두 어련히 ……”

“네 오라비야 돌아올 날이 조만이 있느냐? 또 살아서 돌아오길 어찌 기약 허며!”

“걱정허실라 말래두! 인제 수훈갑(殊勳甲)에 금치 훈장 타가지구서 떵떵 거리구 돌아올 때만 보아요!”

“그랬으면야 조옴 좋으랴만서두!”

“오빠 편지에두 그렇게 썼잖었수?”

“아뭏든지 넌 명년이 졸업이구 허니 먼점 시집을 갈 도릴 허는 게 내 생각엔 졸상부르다만.”

“나 시집 가구 없으문 어머닌 어머니 혼자서 어떡허구?…… 오빠가 와 보군, 아 너 이 기집애, 그샐 못 참아 어머니 혼자 떼내던지구서 시집을 갔어? 이 천하에 본초 없는 것 같으니로고 허문서 막 욕허문 어떡허우? 에구 무서……”

“………”

“어머니, 어머니?”

“오냐.”

옥동댁은 대답이랑 얼굴이랑 다 건성이고, 무릎의 모시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딴 생각에 정신이 팔린다.

“어머니, 무얼 또 그렇게 생각허우?”

“오냐.”

“에이 갑갑해.”

문주는 엔간히 어머니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고 웃목으로 넌지시 물러 앉아 책을 펼쳐든다.

서너 장이고 읽고 났을 때였다.

“문주야?”

어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들면서 이상히 곡진한 음성으로 딸을 부른다.

“어머닌 가끔 그렇게 시춤허구 있는 거 난 싫드라!”

“일러루가 차이 온?”

문주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무릎 앞에 와서 앉는다.

“문주야?”

“응?”

“내가 오늘밤따나 맘이 유난히 산란허구나!”

“왜, 어머니?”

“느이가 노상 듣구퍼하는 이야기 있지?”

“어머니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시집살이하든 이야기, 쫓겨가든 이야기, 서울루 가서 지나든 이야기, 느이 아버진 돌아가시구 느일 데리구 고생살이하든 이야기……”

“그거 시방 다아 이야기허우?”

“그걸 좀 더 있다 네 오래비 장가나 들구 헌 담에 느이 남매 앉혀놓구 자초지종 다아 이야길 하쟀든 것이 네 오래비는 저렇게 나갔구…… 우환중에 내가 이렇게 병이 잦구 허니, 그러다 잿불 사라지듯 깜박 사라지는 날이면 느이한테 한이 될까 보구나. 그러니 너라두 우선 들어두었다 이담에 네 오래비한테두 들려 주구 허두룩 해라, 응?”

“어머니 입으루 오빠한텐 또 한번 허문 더 좋지 머.”

“어디서버틈이야기 허두를 끄낼거나?”

혼잣말로 그러면서 옥동댁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한참 동안이나 그러고 있다 퍼뜩

“그때두 마침 요때처럼 추석 머리였드니라……”

하고 이야기를 내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한 팔자 기박한 여인이 삼십 년의 기나긴 세월을 두고 그의 운명과 싸워 오던 설화는 마침내 풀리어나오던 것이었었다.

3. 人生第二關[인생 제 이관][편집]

1[편집]

사람이 여자로 태어나 부모 앞에서 자라다 출가를 하기까지가 인생으로 제 일관문(人生第一關門)이라고 한다면 결혼은 ── 남편을 맞이하고 가정을 이룩하고 시집살이라는 것을 하고 한다는 것은 그 제이의 관문(第二關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일생을 싸움이라고 부른다면 결혼은 정녕 여자의 제이진(第二陣)이라고 일러야 옳을 것이다. 하되 여자는 그의 제이진이야말로 앞으로 전생애를 좌우하는 중대한 출진(出陣)일 것이다.

내일 모레가 추석(秋夕).

열사흘달이 천심(天心) 높다랗게 솟아 있다. 일 년 열두 달, 그중 달이 좋다는 추석달이다. 거의 다 둥그렀고 거울같이 맑다. 밤은 이윽고 깊어 울던 벌레도 잠자고 괴괴하고…… 촉촉한 이슬기를 머금고 달빛만 빈 뜰에 가득 괴어 꿈속이고 싶은 황홀한 밤이었다.

새댁 진주(眞珠)는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운 채 문득 자아올릴 생각을 잊고 서서 하도 좋은 달밤에 잠깐 정신이 팔린다. 무엇인지 저절로 마음이 흥그 로와지려고 하고, 이런 좋은 달밤을 두어두고 이내 도로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았다. 언제까지고 내처 이대로 있으면 싶었다. 그러나 또 혼자서 이렇게는 더 아까운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아까운 것이 도리어 또 가만히 재미가 있기도 하였다. 한 어리고 처녀스러운 감성일 것이다. ── 시집을 오고 머리를 쪽을 찌고 하여 이름이 각시니 새댁이니지, 그러고 깍듯이 시어머니의 며느리 노릇이나 할 뿐이지, 아직껏 그는 열두 살박이 애기 새서방 준호(俊浩)의 도련님 시중이나 들고 이야기 동무나 하여 주고 하는 곱다시 처녀요, 갓 열여덟의 어린 나이었었다.

비록 철은 나지 않고 글방 도령에 애기 새서방이더라도 진주에게 가장 가까운 동무요, 그러고 유일한 이성은 당연히 준호라야 하였다. 자연 일상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언짢은 일이 있을 때나 매양 생각나는 것이 우선 준호였다. 친정집의 할머니도 물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 몸 바투 느끼겠기는 막상 새서방 준호였다. 일부러 그러자고 하여서 하는 노릇이 아니라 제풀에 마음이 그래지는 것이었었다. 곧 정(情)의 시초 일 것이었었다.

시방도 진주는 좋은 달밤이 혼자서는 미흡하던 끝에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 역시 준호였다. 마침 이런 때 그가 돌아와서 좀 같이 놀기도 하고 하였으면 하였다. 그야 논다고 하여도 어려운 시어머니가 계시고, 하인들이랑 머슴들이랑 있고 할 터에 나 어린 새서방을 데리고 뛰어다니고 웃고 지껄이고, 달아달아 밝은 달아 창가 부르고 아이들처럼 그런다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한 만히 오래도록 놀고 있을 수도 없었다. 잠깐 동안 나란히 뜰이라도 거닐면서 달 이야기, 글방에 갔던 이야기, 추석이야기 같은 것이나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하다 웬만큼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족하였 다 혹시 단둘이서. 방에 있을 때면 일쑤 그렇듯이‘나 좀 업어 주우’하면?…… 쯧, 아무도 없는 달 아래 얼른 조금만 업어 주는 것도 한결 재밀 것이고.

2[편집]

진주는 천천히 두레박을 자아올려 우물 빈지에 놓았던 하얀 분원사기(分院白磁[분원 백자]) 대접에다 넘치지 않도록 팔 홉은 되게 부은 후 남은 물도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고 세수확으로 가지고 가 따른다. 그러고는 두레박 줄을 고쳐 사려서 두레박 실겅에 잘 얹어놓는다.

구름 한 조각 지나가는 자취 없고 달은 한결같이 밝다. 바깥편으로 한편을 우물 울타리한 동청(冬靑)나무 잎사귀가 저마다 달빛을 받아 수없는 잎사귀들이 저마다 매끄럽게 번뜩인다. 우물 두던의 돌틈에서이리라. 귀뚜리가 꼭 한 마리가 생각난 것처럼 까르르 스러질 듯 울음을 낸다. 그 스러질 듯 가늘게 우는 소리가 조금도 이 밤의 고요함을 헤뜨리지 않고 도리어 운치를 더한다.

준호는 항용 열한시가 지나서, 어떤 때에는 자정에, 또 더러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돌아오고 한다. 글방에는 시계가 없고, 두꺼비처럼 생겼대서 두꺼비 선생이라고 부르는 훈장이 짐작으로 대중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일정 하지가 못하였다.

진주는 방금 안방에서 열한시가 거의 다 된 것을 보고 나온 생각을 하고, 혹시 오늘은 내일이 파접이고 하니 좀 일찍 돌아올는지도 모를까 보다면서 꺄웃이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마침 쉬었다 다시 시작인 듯 건넌 마을 선비골의 글방으로부터 여럿이 얼려 읽는 글소리가 감감하나 손에 잡힐 듯 분명히 좌악 들려온다. 지금부터 참을 다시 시작이라면 여느날보다 이르기는 고 사요, 더 늦어둔 것이었다. 종시 섭섭하였으나 내일도 날이요 모레도 날이었다. 더구나 내일부터 한동안은 글방에는 가지 않고 하니 얼마든지 계제가 있을 터이었다. 그런 내일날을 기다려 둠도 차라리 한 즐거움이었다.

밤이 하고요하여 그런지 당혜(唐鞋) 바닥에서 징 맞치는 소리가 유난히 다그락거린다. 진주는 되도록 돌을 피해 디디면서 물대접을 집어들고 마당으로 내려선다. 밤에 혼자라도 남의 집 새며느리란 건 걸음걸이 하나 함부로 하기를 본시 삼가야 하는 법이지만, 남달리 엄한데다 겸해서 까다롭기까 지 한 홀시어머니 밑에서 벌써부터 말 많은 시집이고 보매 일동일정 무엇 한가지 각별히 조심되지 아니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 밤의 조심은 조심이 도리어 재앙을 도왔다 할 것이었다.

시어머니 박씨부인은 퇴침을 돋우 베고 누워『삼국지』를 읽다 깜박 잠이 들었었다. 그러다 어찌해서 깨어 보니 한옆으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던 며느리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바느질하던 것은 다 그래도 놓아둔 채…… 아마 소피엘 갔거나 하였나 보다고 거기까지는 심상하였다. 그러자 우물에서 다그락거리는 당혜 소리에 섞여 두레박 다루는 기척이 들렸다.

‘?……’ 두레박을 다룰진댄 소피 갔던 손을 씻으려 함은 아니었다. 소피에 갔던 손으로는 두레박을 다룰 리가 없었다.

‘우물엔 어째?…… 이 야밤중에!……’ 괴이하다는 것이었다. 야밤중에 우물엘 갔기론 괴이할 것이 없을 수도 있 는 것이지만, 시어머니 따라, 그때의 기분 따라 넉넉히 괴이할 수가 있기도 한 것이었다.

3[편집]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가 달걀같이 고와도 흉이란 속담이 있거니와, 참으로 남의 며느리 되어 한번 시어머니의 눈에 벗기로 들면 한정이 없는 것이었다.

남이 박씨부인을 일러 여장부라고 한다. 혹은 여걸이라고도 한다. 언변 좋고 감대 괄괄하고 진서 공부(漢文[한문])가 웬만한 선비 뺨쳐먹을 만큼 도저 하고, 체집 크고 기운 세고…… 진시 여장부였다. 삼백여 호나 되는 향교골 온 마을을 쥐락펴락하였다. 마을은커녕 한번인가는 세미(稅米: 納稅[납세])로 등갈이 나가지고 동헌(東軒:郡[군])엘 쫓아들어가서 원님을 다 혼을 내준 여인이었다. 서른한 살 때 갓 제돌 잡힌 외아들 준호 하나를 데리고 과부가 되어가지고 이래 십년 남짓한동안에 적수로 이백여 석거리의 성세를 장만하였으니 그 또한 장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장부는 여장부요, 병든 홀시어머니는 따로이 또 병든 홀시어머니였다. 생리학자의 말을 들으면 흔히 중년 과부란 그 생활조건과 심리작용으로 인하여 성질이 다소간 편협· 괴벽하기가 쉽고, 그러다 이윽고 단산기(斷産期)를 당하여 소위 히스테리 증세가 생기게 되고 보면, 그 경향이 일단 더 농후하여진다고 한다. 물론 병이다. 그러나 가벼운 경우면 사람이 까다로와지고 신경이 예민해지는 정도에 그치고 말지만, 만일 병이 심한 경우 면 극도로 쇠약한 신경이 일변으로는 극도로 날카로와져 가지고 인하여 성격과 생활 행동에 어지러운 변화를 일으켜놓는다. 변덕이 죽끓듯하고 억지 가 찰엿가래 같은 것쯤 차라리 온건한 증상이다. 환상적인 엉뚱스런 독단을 하여놓고는 남은 웃을 일을 울고, 남은 울 일을 웃는다. 한번 무엇이 여사 여사하다고 생각을 하면 꼭 그 골로만 그 골로만 무섭게 예리하고 심각스런 천착을 하여 들어간다. 그러는 끝에 필경 얼토당토 아니한 결론에 빠져가지고는 과대망상증이니, 피해망상증이니 하는 데까지 이르는 수가 왕왕 있다.

보아야 겉으로는 멀쩡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할 수 없는 병인인 것이다.

우리 박씨부인도 불행, 병이 그렇듯 골수에 깊은 병인이었다. 그리고 그 병짓의 파독(破毒)이 와서 떨어지는 곳이 어느 곳이냐 하면 아들 준호는 진작부터요, 새로이 며느리 진주에게였었다. 잘하는 일이거나 잘못하는 일이 거나(별로 잘못하는 일이 있는 바도 아니었지만) 며느리가 하는 일이면 덮 어놓고 마음에 들지가 않고 새김질을 하여 보아가지고 하였다. 발뒤꿈치가 계란같이 맵시가 있어도 밉고 흉인 것처럼 말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밤중에 우물엘 간 것도 예사롭지가 않고 괴이하던 것이었었다.

‘자리끼숭늉이 있는데, 하필 냉수며…… 정히 냉수를 먹을 양이면 부엌 물독에도 있을 터이요, 하인이 그 옆에서 저렇게 자고 있으니 깨워서 시킬 것이지…… 바느질은 몰렸으면서 그래 제가 굳이 우물엘 가야 할 일이 대체 무어란 말인고?’ ‘으응?……’ 단박이었다.

눈과 얼굴이 더럭 험해지면서 ‘영락없어…… 나이는 찼겠다, 서방이란 건 어리겠다. 흥, 달밤에 잔뜩 시 방 맘이 달떠가지고!……’ 무서운 사측(邪測)이었다. 박씨부인 당자는 그러나 조금도 사측이 아니었다.

4[편집]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박씨부인은 커다랗게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다.

박씨부인은 얼마 전부터 며느리에게 대하여 저것이 외양으로는 제법 얌전을 부리고 끔찍하게 하는 체하지만, 서방 명색이 나이 어리어 아무 흥도 없 고 한데 속도 저렇듯 태연 심상할까? 태연 심상해? 이런 의혹을 품어 왔었다. 분명 속은 달라야 할 것이었다. 미흡해서 만사에 뜻이 없고 저 혼자 있을 때면 홀홀 한숨이나 쉬고 팔자 자탄이나 하고 할 것이다. 정녕 그렇거니 하였었다. 했던 것이 아니나다를까, 오늘 밤에 보니 짐작은 영락없이 들어 맞았던 것이었었다.

‘내가 무슨 턱에 남의 어린 자식 데려다 놓고 애먼 혐의를 두어? 다아 번 연한 노릇이지.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으려고? 내 눈이 어떤 눈이 길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저마다 얌전하다는 칭찬이요, 보매도 무던한 것 같길래 혼인을 했더니 아뿔싸 그만!’ ‘아무렴. 나도 홀에미로 자식을 길렀지만 에미애비 없이 자란 자식은 어디 가 표가 나도표가 나거든! 할 수 없어!’ ‘저 저, 흉물스런 것이 시방 누가 알세라 들을세라 사풋 살짝 신발소리 안 내고 걷느라고 앨 쓰는 거동을 좀 보래두! 에잉 천하 요사스런 것!’ 벌떡 박씨부인은 일어나 앉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우렁찬 목청을 질러

“삼월아!”

하고 불러 외친다. 하인년 삼월이가 무슨 죄 있을꼬마는 여느때대로 직접

“새악아.”

하고 부를 계제도 아니요, 겸하여 목적이 고함을 우선 지르잔 목적이라 만만한 삼월이었던 것이다.

잠이 들어놓으면 묶어가도 모르는 삼월이가 한번에 냉큼 대답이 있을리 없었고, 또 부르는 편에서도 고함 지르며 들레기가 주장인지라 대답은 상관이 없었다.

장죽을 집어 놋재떨이가 깨어지라고 땅땅 두드리면서 연거푸

“이년 삼월아!”

불러 외치는 소리를 받아

“네에.”

하는 며느리의 연삽한 대답이 대뜰 바로서 들린다.

‘얌사한 것!’ 눈을 그쪽으로 잔뜩 흘기다 문득 ‘참! 진작 좀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얼른 영창 앞으로 다가앉는다. 영창에는 유리가 한칸 붙여 있어 그리고 달이 휘영청 밝은 바깥이 환히 내어다보이게 마련이었다. 그 유리쪽에 다 바싹 얼굴을 대고 앉은 박씨부인은 그러다가 다음 순간 거의 소리를 내어 ‘응?’ 하면서 놀란다.

‘용길이가?’ 머슴 겸해 와서 의탁하고 있는 용길이었다. 며느리는 물대접을 들고 마악 대뜰로 올라서는 참이고, 용길이는 뚝배기를 들고 성큼성큼 우물두던으로 올라가고 하고 있었다.

5[편집]

용길이는 마침 우물로 물을 뜨러 들어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박씨 부인은 그런 것이 아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둘이 여태껏 같이 우물에서 있었지?’ 하여서야 속이 후련하였다.

‘그렇지만 용길이놈은 지금 마악 들어오고 있는데?’ 이번연한 사실이 어떤 심술꾸러기처럼 비위가 거슬리고 밉살스러웠다. 이런 때에는 그저 억지가 제일이었다.

‘아니, 그건 달리 무슨 까닭이 있었고…… 분명 둘이 같이 있었어!’ ‘정녕?’ ‘그럼, 정녕!’ ‘하, 이런 변괴가!……’ 당장 벼락치듯 영창을 열어젖히면서 ‘이 죽일 놈년들!’ 하고 고함을 치겠는데, 그리고 들입다, 거적에 말아라, 작두를 들여라, 놈 년을 한꺼번에 그저 하고 추상 같은 호령을 하겠는데, 그만 용길이를 꺼려 꾹 참는다. 머슴은 며느리처럼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뿐더러 친정 사촌 형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데려다 이내 자식 다음 가게 길러 오던 터라 어디로 치나 싸고 돌아야 할 의리였었다. 그것도 증거가 꼼짝 못하게시리 역력한 것이라면 혹시 모르거니와…… 그러나 그렇다고 이 자리를 이대로 참고 넘길 수는 없었다. 하여커나 한번 난 화요, 화가 난 이상 한바탕 화풀이는 하여야만 하는 판이었다.

진주는 마당 한가운데쯤 서서 어머니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놀라, 하마터면 물대접을 놓칠 뻔하였다. 정신이 황망하였고, 그런데다 연달은 고함소리와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에 먹혀 등 뒤에서 차면 안으로부터 나는 밭은기침 소리도, 성큼거리고 우물로 걸어가는 발자죽 소리도 통히 들리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용길이가 들어온 줄도 까맣게 끝까지 그는 몰랐었다.

‘주무시다 별안간 웬일이실까? 잠드실 때까지도 아무 다른 내색 없이 책보시다, 이야기하시다 하시던 어른이!’ ‘느닷없이 역정나실 일이 없는데?……’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해서 났던 간에 큰소리가 난 것만은 사실이 요, 큰소리가 난 바엔 책망은 당해 둔 것이었다. 그 사정없는 책망…… 아 뜩 겁이 질리려고 하였다.

마루로 올라섰다. 맞방망이치듯 가슴이 두근거리고 문고리를 쥐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앞이 아찔아찔하면서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정히 그때였다. 순간, 어둠 속에서 번쩍 비치는 불빛처럼 번쩍하고 정신이 드는 것이 있었다.

‘이래서는 안되지! 정신을 차려야지! 이왕 당하는 일이니 더 잘못이나 저 지르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지!’ 한 용기(勇氣)라 할 것이었다. 어려움을 임하여 마음 가다듬고 기운을 낼 줄 아는 것, 이는 곧 아버지의 혈관에 흐르던 용맹(勇猛)의 내림이었다. 열 여덟 살, 물론 어린 나이였다. 아직 소녀요, 한 안해로서는 어리었다. 그러 나 그는 한 며느리로서는 철이 들 대로 들고, 어른스럽게 침착할 수가 있었다. 조용히 윗문을 여닫고 들어서 그대로 머리 소곳하고 문치에 가 선다.

문치에 가 소곳하고 서서…… 우선 대죄(待罪)하였다. 죄야 있으나 없으나 어른의 성정난 앞에 말없이 대죄하는 것, 이는 며느리의 어여쁜 부덕(婦德) 이었다.

6[편집]

아랫목에서는 깜박 아무 동정이 없고.

아무 동정이 없다고서 이내 언제까지든지 그러고만 또 서 있어서는 ‘어서 할 대로 하시오!’ 하고 이짐을 쓰는 것 같아서 도리어 어른의 성정을 돕는 것이었다. 적당히 잠시 후 가만한 걸음으로 뒤 곁으로 건너가 물대접을 넌지시 한옆에다 치우듯 비껴놓고, 그러고는 앉아서 바느질을 집어든다. 바느질은 추석날 새서방 준호가 칠 모시행전이었다.

“무어냐? 명색이.”

마악 바느질을 한 코 뜨려고 할 즈음 비로소 박씨부인은 한소리 모질게 지른다. 밑도끝도 없이 첫마디가 그렇게 나오는 말투도 말투려니와, 더욱 그 음성은 방금 삼월이를 불러대던 이와는 자못 달라 곧 살기가 뎅겅뎅겅 듣는 듯하였다. 그것은 며느리의 뺨에다 못질한 듯 박혀 있는 독한 눈매와 더불 어 어른으로 아랫사람을 질책하는 음성이요 눈매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노골 히 어떤 독특한 반감와 증오를 머금은 음성이요 눈매요 하였다.

박씨부인은 실상 며느리가 방으로 들어서기를 마침 벼르고 있었다. 무릎을 도사리고 장죽은 재떨이를 두드리던 채 그대로 느직이 올려 들고 윗문께를 마침 부릅떠보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서는 즉시 한 꾸중 크게 ‘그래 너는 어디를 갔다오느냐?’ 하고든 무어라고든 하여간 추상같이 하되 준절히 꾸짖음으로써 잡도리를 시 작할 참이었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가 윗문으로 해 들어서 잠깐 호흡을 다스리느나 그를 노려보아, 하는 동안 문득 한 맹렬한 적의(敵意)가 나무람이니 꾸짖음이니 따위는 한옆으로 젖혀놓고 따로이 돌연한 적의가 무럭무럭 가슴속 저 밑으로부터 치달아올랐다. 며느리의 고운 살쩍 아래로 도독이 살 진 연한 뺨! 박박 가서 손톱으로 할퀴어놓고 싶게 그 앳되고 화사함의, 시 기스럽기도 하더라니…… 치렁치렁 뽀얀 버선등 위를 치렁거리는 남갑사 치맛자락! 발기발기 가서 뜯어발기고 싶게 그 칠보 족도리 갓 벗은 듯 새각시 태 면면함의 시기스럽기더라니…… 데렸던 제 새끼 병아리를 이윽고 쪼아샀고 독살을 부리고 하는 암탉이라면 모르되, 이른바 만물의 영장(靈長)된 체면이 무색한 노릇이었다. 그러나 인류가 나이는 비록 몇 백만 살 닭(動物 [동물])보다 더 먹어 어른 뻘일 값에 좀처럼 프로이트라나의 해괴한 저술(著述)을 용감히 서재로부터 끌어내어 불사르지 못하는 약점이 무릇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방금 아까도 보던 그 며느리 그 차림차리가 번연하건만, 박씨부인에게는 며느리가 별안간 그리고 무단히 그렇게 아리따와지고 새각시태 면면하여지고 한 것처럼 금시로 비위가 더럭 거슬리면서 밉새웁고 울화가 나고 하는 것이니, 도저히 성한 사람에게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위험스런 환자가 아닐 수 없었다.

“으응? 무어냐? 명색이.”

눈도 깜작않고 지질 듯 며느리의 뺨을 노리고 앉았다가 이번에는 손의 장 죽이 상앗대질까지 쑥 나가면서 고함청을 재차 지른다. 그러고는 연달아

“무엇허는 명색이냐? 명색이……”

노기는 차차로 더하여 거의 머리끝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7[편집]

숨도 쉬는 듯 마는 듯 진주는 소곳하고 앉아 한코 한코 바느질만 하고 있 다 똑똑 바늘 코소리조차. 그는 조심되고 민망스러웠다. 항차 말대답이리요, 그러나 며느리란 것은 시원시원 대답을 하면 말대답을 한다고 트집이요, 아니 하면 아니 한다고 탓이었다.

“아니 별안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단 말이냐 으응?”

“………”

“내 말이 동네 개 짖는 소리만두 못한가 보구나?”

이러는 데야 종시 죽여 줍소사 하고 입을 봉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진주는 얼굴을 조금 드는 듯하면서 빈다.

“어머님, 잘못했어요, 다신……”

“듣기 싫구나! 누가 그런 소리 듣겠다드냐?”

“………”

“어디 무엇허러 갔드냐?”

“………”

“시에미 잠든 새 살끔 나갔다 오는 디가 어디냐?”

심상치 아니한 말이었다. 진주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하두 갈증이 나서…… 시원헌 우물물을……”

“핑계는 좋구나?…… 냉수가 먹구 싶으면 하인이 없드냐? 부엌 물독에 물이 없드냐?”

“………”

“요망스런 것 같으니!…… 흥, 누가 제 속 모르는 줄 알구?”

“………”

“맘두 달뜰 만두 허지! 오두발광두 날 만두 허지! 서방은 어려, 나이는 찼어, 달은 휘영청 밝어…… 흥, 맘두 달뜰 만두 허구말구…… 오두발광두 날 만두 허구말구……”

진주는 기가 막혔다. 지난해 늦은 가을에 혼인을 하고, 금년 삼월에 신행(新行)을 하여 시집을 살기 반 년 ― 여섯 달…… 그 여섯 달 동안 한 달이 멀다 하고 큰소리가 나고 책망을 듣고 하였지만 이런 무정지책은 처음이었다. 김치가 너무 싱거우니, 너무 짜느니, 새서방 두루마기가 동정이 너무 좁았느니, 깃이 너무 처졌느니 따위의 트집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었다.

억색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부엌 물독에는 물이 마침 없었다. 삼월이는 깨우기가 힘이 들고 시끄러울 뿐더러 어린것이 곤히 자는 것을 깨워 일으키기보다 내가 잠깐 몸을 기동하기만 못하였다. 그러나마 밤중에 우물엘 내려가기가 새삼스러운 일일세 말이지…… 달도 무심코 나갔다 본 것이 그렇게 밝고 하였지, 달이 밝거니 하고 나간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새서방이 어리네, 마음이 달떴네 하는 것은 마른하늘의 벼락이었다. 일찌기 새서방이 어린것을 미흡히 여긴 적도 없거니와, 오 두발광이란 그 말 뜻부터 똑똑히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어머니가 저다지 성정이 났을 바엔 무슨 잘못이 되었던 정녕 잘못이 있어야한 할 것이다.

‘무엇일까, 어디가 잘못되었을까?…… 하시던 말씀대로 잠드신 새 나간 것이? 냉큼 들어오지 않고서 한참이나 충그린 것이?’ 억색한 것은 순간이요, 잘못을 찾기에 애가 쓰이고 마음이 급하였다. 어리고 아직 정갈한 신경(神經)이었다. 중년 과부에 오십 바라보는 히스테리 여인의 썩은 분비물(病的[병적] 호르몬)이 들어서 작희를 하는 그 망측스럽고 도 추한 비밀을 어리고 아직 정갈한 진주가 용히 알 턱이 없는 것이었었다.

당자 박씨부인 자신에게도 자각증(自覺症)이 따르지 아니하는 맹랑스런 병이거든 항차 ……

8[편집]

박씨부인은 한 호흡 깊이 들이쉬더니 호통은 왜장으로 돌변하여

“으응? 오두발광두 날 만두 허구말구우.”

하고 끝목을 길게 빼어 고함을 지른다.

“으응? 보구 밴 것이 그것인가암? 으응? 서방 어리다구우 달밤에 오두발광이 나서 어으응? 으응?”

지르는 소리는 그 높고 거칠고, 그리고 사나운 품이 흡사 황소의 영각이었다.

“예라! 예라! 나는 못본다! 그런 꼴 나는 못본다아! 나는 못본다!”

어깨를 휘저으면서 구들장이 꺼지라고 쾅쾅 밑을 구른다.

상인의 집안과 달라, 시어머니가 며느리한테 제아무리 손찌검만은 않는 법이라는 소위 선비 집안의 가도(家道)가 아니었다면, 그 당장 진주의 얼굴에는 흉한 손톱자국이 여러 개 나고, 몸은 함부로 피멍이 지고, 많은 머리카락이 뽑히고, 남갑사 치마는 발기발기 찢어지고 하고라야 말았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직접행동’을 하였으면 약간 직성이 좀 풀릴 수도 있는 것인데, 막상 그러지를 못하니 솟는 기운을 부지를 못해 사뭇 나느니 몸부림이었다.

“예라! 썩 내 눈앞에 뵈지 마라!”

마침내 불끈 몸을 일으키면서 윗문을 가리키면서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 썩네 집으루 가거라! 나는 그런 꼴 죽여두 못 본다!”

“어머님!”

진주는 푹 엎으러질 듯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거의 울음소리로 빈다.

“다신, 다신 그러거든 죽여 주시구, 이번 한 번만 참아 주세요, 어머님!”

“당장 가거라! 당장……”

“어머님! 어머님!”

“썩 못 가느냐? 썩 못 가? 으응? 으응?”

한 고함에 한 발짝, 한 고함에 한 발짝, 세 발짝만에는 바싹 며느리의 앞에 그들먹하게 막아선다. 그대로 원비(!)를 늘여 머리끄덩이를 덥석 움킨다면 정히 솔개미가 병아리를 챈 형국이 되는 판이었다. 과연 박씨부인은 팔이 움짓움짓 얼마나 거기 눈 아래로 며느리의 소곳하고 있는 맵시 나는 머리쪽을 와락 움켜 한번에 태질치고 싶었던고.

숨을 헐헐 기운 부려댈 무엇 만만한 것이 없나 하고 둘러보면서 일변

“으응? 으응?”

하고 을러메다 마침 바느질꾸리가 눈에 뜨이자 그대로 번쩍 집어 윗문에다 대고 메어다친다. 쾅 와시르르 문이 힘없이 삐그덕 열린다.

“당장 네 집으루 가거라, 하느님이 말려 두 나는 네 꼴 다시 못 본다! 으응?”

소란에 이웃집에서 젊은 양주가 잠이 깨었다. 소곤소곤 주고받는 이야기.

“끙, 또야?…… 저 아씨가 올해 몇 살?”

“마흔둘이라든가? 셋이라든가……”

“안직두 멀었구먼…… 영감이나 하나 얻겠지? 저 병엔 신효한 약인데.”

“그럴래믄야 여태 수절했겠어요?”

“저럴래서야 차라리 개가살이한 이보다 더 망신이지 무어람!”

“딸자식 길러 과부 시어머니 있는 집으로 시집 보낼까 무서!”

“난 애야 사십 전에 죽는다면 이녁더러 삼년상만 치르구 나서 팔자 고치라 구 수결(手決 : 證書[증서]) 한 장 써놓구 죽을 테야!”

“숭헌!”

4. 사랑이 있는 둥우리[편집]

5. 바늘[편집]

1[편집]

절골로부터 달려오고 있는 박씨부인은 부전부전 날이 밝아감을 따라 현장을 덜미잡기에는 십상 때가 늦었느니라고 저으기 초조하면서 걸음을 더욱 재촉하여 마침내 동구, 안으로 들어섰다. 동네 앞을 가로 건너간 신작로요, 집은 동네 맨앞으로 신작로와의 사이에 두어 이랑의논을 격하고 있기 때문 에 동구 안만들어서면 우선 집이 보이게 마련이었다.

비밀을 감춘 듯 으슴푸레한 새벽빛에 싸이어 집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대문을 열게 하여서는 아니 되고 뒤꼍으로 해서 울타리를 뜯고라도 기척없이 들어가야 하느니 하고 생각하면서, 어느덧 다시 신작로에서 집으로 꺾이는 샛길 머리까지 당도하였다. 집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다.

‘?……’ 샛길로 꺾이어들려던 박씨부인은 그러다 움칫하고 놀란다. 대문이 반이나 열리어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딴 놈이었든가? 용길이놈이 아니고……’ ‘워너니 그럴 리가……’ ‘아뭏든……’ 다행 중 더욱 다행이었다. 기운이 갑절 솟았다.

샛길로 내려서서 두어 걸음 걷다 말고 또다시 놀라야 하였다. 그 열린 대문으로부터 웬놈인지가 처억 나오고 있지를 않는가.

‘그러면 그렇지! 누가 아니랬어!’ 무릎을 탁 칠 뻔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불시로 엄습해 오기가 절절히 잘한 성싶었다.

어제 석양 절골 용길네 집엘 당도하여서였다. 사립문 밖까지 마주 나온 사촌형 ── 용길어머니와 피차 이런 인사, 저런 인사 인사가 한 둘레 끝나고 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집으로 들어가면서

“참 오다 중로서 그애 만났지?”

하고 용길어머니가 물었다. 그애란 물론 용길이었다.

박씨부인은 무심히

“아니……어딜 갔길래?”

“그앤 그럼 샛길루 해 갔구면! 동생은 신작로루 해 왔지?……글쎄 자식이, 사람 된 소릴 허겠지! 딴 남의 집두 아니구, 이모네 댁인데 명절이랍시구선 집이 나와서 열흘 보름씩 펀펀 자빠져 놀다 한(限) 다 채우구서야 어실렁어실렁겨들어가서야 어디 도리냐구. 쯧 명절은 쇘으니깐 가서 허다못해 조석으루 마당 귀탱일 쓸구 허드래두 가 있어예지 않느냐구 그러믄서 아까 즘슴때 좀 못 돼서 떠났어?”

박씨부인은 듣고 더럭 의증이 났다. 용길은 평소에 별반 게으름을 부리거나 꼬박꼬박이 남의집살이의 행티를 낸다거나 하던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와락 근경속이 있다든지 지나치게 착실한 머슴인 것도 또한 아니었다.

그저 예사 머슴일 따름이었다. 지나간 정월만 하더라도 항용 남의 집 머슴들이 하듯이 섣달 그믐날 세찬과 설빔주는 것 한 짐 해지고 저의 집으로 나가 설 쇠고 초이튿날 잠깐 들어와 세배하고 설음식 먹고 그러고는 도로 나갔다 기한 스무 날을 마저 다 채우고서야 아주 들어와 일을 거들었고 하였다. 그러던 아이가 그새 별안간 철이나 그토록 알뜰한 머슴, 살뜰한 조카로 변하였을 리가 만무요, 정녕 딴 내력이 있었다.

박씨부인은 가까스로 해를 지우고 가까스로 첫닭을 울리고 마지못해 약수터로 가 물맞이를 하는 시늉하고 그러고는 질색해 만류하는 용길어머니를 뿌리치고 그 자리에서 떠나 밤중 오십리 길을 반달음질쳐 이렇게 달려들고 있던 것이었었다.

2[편집]

‘저놈이 누군지를 보아 두어야……’ 박씨부인은 그러면서 걸음을 급히 하여 쫓아오다 연자방앗간 앞으로 해서 저편을 향하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그 인물이 동네 활량도 어떤 총각놈도 아니고서 뜻밖에도 허연 노인이었으며, 의원 오감찰임을 발견하고 세 번째 놀라야 하였다.

‘의원이 어째?’ ‘오오! ……’ 가슴이 철썩하고 번쩍새 정신이 났다 ‘약을……사약(毒藥)을 먹여놓고!’ 갈데 없었다.

이가 뿌드득 저절로 갈렸다.

자가사리 낚시에 잉어가 물린 셈이어서 생각잖이 소득이 큰 것은 통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식의 생명이 제웅되었다는 중대한 사실이 저질러졌음을 생각할 때 통쾌하여 할 경황보다는 우선 치가 떨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난장 구경을 갔던 준호는 간밤 자정이 넘어서 돌아왔다. 아무 탈없이 돌아는 왔으나 들어단짝 그는 배가 고프다면서 떡을 ── 굽거나 찔 새를 기다리지 못해 차고 딱딱한 인절미를 그대로 ── 여남은 개나 앉은 자리에서 먹었다. 그러고도 다시 곰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달게 먹었다. 가지고 간 마른 음식은 윤석이 중로에서 군입삼아 다 먹어버렸고, 난장에는 국밥 가게를 비롯하여 갖은 음식이 많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런 매식(買食)을 할 방납된 소년이 아니어서 촐촐 굶고 다녔고, 집에는 허리가 꼬부라지도록 시장해 가지고 돌아왔었다.

준호는 수저를 놓던 길로 나가 쓰러졌다. 쓰러져서는 새댁한테 난장에 갔던 이야기를 하려니 하려니는 생각하면서도 쏟아지는 졸음에 이내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어느 만 때나 되었는지 진주는 이상한 소리에 어렴풋이 잠이 깨었다.

“아이구 배야!”

새서방의 신음소리였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핼쓱한 얼굴에 이마엔 비지땀이 솟아가지고 부대끼고 있는 모양이 환하여지는 불빛에 드러났다.

머리는 펄펄 끓고 수족은 차디찼다.

“몹시 아파요?”

“응, 아니……”

살살 배를 쓸어주었다.

차차로 더 부대꼈다. 나가서 강즙을 내어 사향소합환을 개어서 먹이고는 잠시 기다려보았으나 갈앉는 동정이 없더니 구역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구역질만 하고 부대끼지 닭의 깃을 목구멍에 넣어주고 하여도 시원히 토하지는 못하였다.

한 시간 가까이 되었음직하여선데, 안방에서 네시를 쳤고, 이때는 준호는 몸을 뒤틀면서 입을 딱딱 벌리면서 곧 죽는 행티를 하였다.

삼월이를 꼬집어 깨워 의원을 청하러 보냈다. 한 한 시간 반이나 오감찰이 왔고 맥을 보더니 먹은 것이 꽉 체했다면서 사관을 놓았다. 그 가느라단 침 몇 대가 거짓말같이 영검스레 마지막번의 침을 뽑기가 무섭게 우선 후련히 한바탕 토를 하였다. 마침 여섯시를 치고 날이 휘엿이 밝았다.

“그만하면 급한 증세는 돌렸다. 약을 몇 첩 지어줄 테니 날 따라오느라.”

오감찰은 삼월이더러 그렇게 이르고서 한걸음 앞서 차면 밖으로 나갔고.

삼월이가 얼마쯤 충그리다 마악 마당을 절반은 건너고 있는데 우당퉁탕 뛰어든 것이 박씨부인이었다.

“이년 ! 새서방님 죽였지?”

삼월이를 가로막듯 우뚝 그 자리에 멈추고 서면서 단박 을러메는 말이 이 말이었다.

3[편집]

“으잉 이년? 새서방님 죽였지?”

박씨부인은 등잔덩이 같은 눈방울을 며느리에게서 도로 삼월이에게로 부릅 뜨면서 쾅 발을 굴러 재차 호통이고.

벌벌 떨고 섰던 삼월이는 그제서야 잔뜩 겁먹은 소리로

“안직 안 돌아가셌시유!”

“안 지익? 안 지익?……”

박씨부인은 황소 영각하듯 으르렁거리다 더욱 무서워진 눈방울을 다시 이 번엔 삼월이에게서 며느리에게로 굴리면서

“죽이려구 했는데에…… 약은 앵겼는데에 안직 죽지만 아녰다아? 안직 죽지만 아녰다아?”

다지는 편에서는 죽였지? 죽였지? 하고 거듭 다졌던 것이지만, 듣는 사람 이야 설마 죽였지(殺)로 바로 알아들었을 리가 없었고, 진주나 삼월이나 다 같이 무심히 죽었지(死)로 알아들었을 따름이요, 삼월이의 대답도 따라서 그 죽었지(死)에 대한 대답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진 편에서는 번연히 죽였지(殺)로 다진 것이매, 아직 안 죽었다는 대답이고 보니, 그러면‘죽이려고 하였는데 ── 약을 먹였는데 ── 아직 죽지는 아니하였다’는 대답으로 당연히 인정을 할밖에 없었던 것이었었다. 이리하여 박씨부인은 진주 가 준호를 독살하려고 한 사실을 삼월이에게서 자백을 들은 셈이었었다.

박씨부인은 부르르 건넌방으로 올라가 앓아 누웠는 아들의 얼굴을 한참이 나 내려다보고 섰다 천천히 베개 옆으로 앉으면서 지천하듯

“이놈, 입 벌려보아라!”

“………”

준호는 병색에 겹치어 슬픈 빛 가득히 어린 얼굴로 눈 딱 감고 누워 눈썹 하나 까딱하는 반응도 보이려고 않는다. 모친의 말이나 영 앞에 이렇듯 제법 앙똥하기도 별반드문 일이었다.

“이놈 죽었느냐?”

하는데 마침 준호는 신간하였던 복통이 또 나

“아이구 배야!”

하고 신음소리를 가늘게 지르면서 허리를 틀었다.

박씨부인도 역시 남의 어머니였다. 손이 저절로 아들의 아파하는 배를 쓸어주려 가지 않질 못하던 것이었었다.

손에 뒤미처 눈도 자연 배로 옮아가고 있었고. 그러다 별안간

“으응?”

포효와 동시에 가던 손을 그대로 멈추면서 더럭더 험하여지는 눈을 아랫도리만 걸친 처네 위로 비어진 준호의 다듬은 모시 겹바지 골마리로부터 며느리의 얼굴로 대고 치부릅뜬다.

“이 천하엣!……”

천둥소리 같은 호통이 나오다 기가 차 뚝 막힌다.

진주는 영문을 몰라 뻐언하고 섰고.

“그래두 부족해서? 사약을 앵기구두 그래두 미흡해서 배꼽으다 바눌을 꽂아놔?”

기운찬 손가락질과 함께 이는 호통에 천장이 찌렁찌렁 울린다.

진주는 시어머니가 손가락질 하는 곳, 새서방의 바지 골마리에 가서 배꼽 어림께로 짤막한 실을 꽂은 채 꼿꼿이 절반 넘겨 꽂혀가지고 섰는 한 개의 바늘 발견하기 전에 벌써 시어머니의 ‘……배꼽에다 바늘을……’ 하는 소리로써 ‘아 ! 그 바늘이……’ 하고 놀라기에 넉넉한 것이 있었다.

4[편집]

얌전스런 여인이라도 바느질을 하다 골몰 중에 더러 바늘을 잃는 수가 있다. 잃은 바늘이 바로 그 바느질 속에 가 묻히든지 꽂히든지 하는 수가 또한 왕왕 있다. 진주도 올 추석 바느질을 하면서 바늘 하나를 잃었었다. 다른 곳에 떨어졌던지 바느질밥에 쓸려나갔던지 하였다면이거니와 바느질 속에라도 묻혀 들어간 것이라면 큰일이라고 애를 쓰면서 무한 찾아보았으나 마침내 찾지 못하고 말았었다. 어제 준호를 난장 구경을 보내면서 밤에 추워할세라고 갈아 입혀준, 그리고 준호는 돌아와 입은 채 그대로 쓰러져 자 시방 입고 누워 앓는 다듬은 모시 겹것, 그 옷이 곧 바느질 가운데 한가지 것이었었다, 하필.

그렇더라도 또 하필 그 바늘이 배꼽 어림에 가서 묻혔을 것은 무엇이며, 저물도록과 밤새도록을 가만히 있다 무엇에 스치어 새벽에야 꼿꼿이 일어섰을 것은 무엇이며 가사 일어선, 지가 오랬기로서니 그동안 진주든지 삼월이라든지 하다못해 의원이든지가 그것을 못보았을 것은 무엇이며, 그러다 지금 와서야 사람의 눈에 뜨이되 박씨부인의 눈에 뜨이고 말 것은 무엇이며…… 참으로 공교롭기 다시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연으로 돌리고 말기엔 너무도 귀신의 장난에 가까 웠다.

진주에게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면 부득불귀신의 장난이었으나 박씨부인에게는 조금도 우연일 며리, 또 귀신의 장난일 필요도 없고, 어엿이 사람의 한 짓이었다. 음식에 독약을 타 먹인 솜씨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 며느리의 한 짓이었다.

이 배꼽의 바늘은 그것 스스로가 독립한 살의(殺意)를 머금고 있는 자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새서방을 없이 할 목적으로 음식에 독약을 타 먹였다는 것도 노상 애매한 말이 아닌 줄로 남을 인식시키기에 깔보지 못할 부차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었다.

승리를 한 박씨부인은 차라리 침착히 서둘렀다. 삼월이를 문초하여 준호가 어제 석양 새댁이 보내주어서 읍내로 난장 구경을 간 것과 갔다 자정이 넘어서 돌아온 것과 돌아와 음식을 먹고 잔 것과 그때까지도 아무 일이 없었고 탈은 그 음식을 먹고 잔 뒤에 난 것과 이렇게를 갖추 알아내었다. 그리고 용길이는 어제 점심 새때에 당도하여 한 상 걸게 차려주는 것을 먹고는 그 길로 난장 구경을 간 채 이내 돌아오지 아니하였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하여 박씨부인은 며느리가 어제 석양에 준호를 꾀어난장 구경을 보내 놓고는 아무도 없는 새 만단 준비를 하여 두었다 밤 늦어 시장해 돌아오기를 기다려 비상 같은 것을 탄 음식을(입술이며 입안이 상하지 아니한 것을 보아 양잿물이 아니요, 정녕 비상을 탄 음식을) 가져다 안긴 것이요, 그러고도 안심이 아니 되어 골마리에다 바늘을 꽂아 뒤치락거리는 바람에 배꼽으로 꽂혀 들어가게 한 것이요 하다는 결론을 얻어 내었다. 아울러 용길이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요행히 드러났고.

자못 삐뚤삐뚤하고 샐 구멍이 숭숭 뚫린 추리에서 얻어진 결론이었다. 그러나 박씨부인에게는 추리 같은 것은 암만 비척거리고 밑이 새고 하여도 상관이 아니요, 결론만 목적과 희망에 일치하면 그만이었다.

결론대로 며느리의 죄상은 명백하여졌다. 이에 죄를 다스리는 것이 남았을 따름이었다.

5[편집]

박씨부인은 동네의 교군패장 억쇠를 불러 두 채의 단패 교군을 꾸미라 명하였다 중매 노파 몽술어멈더러는. 나들이 갈 채비를 차리고 오라 불렀다.

교군이 꾸며지고 할 동안 박씨부인은 사돈집의 안어른인 노 사부인(진주의 조모)에게로 한 장의 간찰을 기록하였다. 사연은, 며느리의 평일에도 여러 가지로 부덕이 미흡하던 사실과 그러자 필경 이번에 약시약시한 변을 저질렀다는 것과, 그리하여 부득이 오늘로써 두 집안은 절연을 하게 되었노라는 것을 적은 것이었었다.

검정 쇠털벙거지에 먹물 들인 삼베 등삼에 날아갈 듯 짚신 감발한 두 놈씩 이 마침내 한 채씩의 교군을 척척 마룻전으로 들이대었다. 몽술어멈도 진작 와서 있었다.

박씨부인은 위엄 있이 아랫목으로 좌기하고 앉아 삼월이 시켜 건넌방의 며느리를 대령케 한다. 준호는 아까 박씨부인이 손수 안고 건너와 한 옆에 뉘었었고.

진주는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닦고 매무시를 살피고 한 후 대청마루의 샛문으로부터 조용히 들어와 머리 숙이고 공수잡이하고 선다.

“네 죄상을 네가 알리라.”

박씨부인은 이윽고 며느리를 거들떠보고 있다. 마침내 목을 가다듬어 입을 열었다. 심히 침중한 태도요 추상 같은 음성이었다.

“만약 예법대로 한다면 너는 이 당장으로 거적에 말아 작두에 목을 걸었을 테야! 허나 일왈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은 사람이요, 또오 시체는, 너 같은 아무리 극흉한 죄인이라도 사사로이 다스리지는 못하는 법이라 드구나.”

하고는 박씨부인은 잠깐 말을 끊었다 다시

“너는 오늘부터 이 남씨 집 사람이 아니야…… 교군은 다 차려놓았으니 가거라! 시방 이 자리서……”

“………”

“몽술어멈이 너의 조모님께 간찰을 가지고 가니, 같이 가고……”

“………”

“네 세간은 오늘내일간 짐꾼 해서 보낼 테니 잘 다 참겨 받고……”

“어머님, 동찰허세요!”

진주는 목멘 음성으로 그렇게 부르고, 푹 엎드리면서 또 한번

“어머님, 동찰허세요!”

“어떡헐 테냐?”

차라리 죽여주세요 “! 작두에 목을 썰어주세요! 나가 죽으라시면, 당장 나가 목이라두 매겠으니 제발……”

“흥! 네 그 좁은 소견에두 생각을 해보렴? 명색이 가장이라는 걸 죽여 없애려구든 너를, 내가 그래 이 집안에다 붙여두구 볼 듯싶으냐? 용서할 일이 따루 있으며, 참는 것두 분수가 있지.”

“저를 차라리 죽여주시지, 제발 어머님 한번만……”

“너, 그럴 줄 알었다!”

박씨부인은 삼월이를 불러 냉수와 숟가락을 들여오라 하고 반닫이 속서랍에서 백지로 조그맣게 싸고 싸고 한 것을 꺼내 놓더니, 며느리를 가까이 오게 하여 누웠는 준호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다.

“너도 아마 이것이 비상인 줄은 알 만허리라 !”

박씨부인은 그 백지에 싼 것을 펴 반짝거리는 하얀 가루를 진주의 코앞에 바싹 들이대어 보이고는 조금을 숟가락 끝으로 떠 물에 푼다.

“너를 그대루 두었다간 이놈은 언제 죽어두 네 손에 죽구 마는 놈야! 그러니……”

닥닥닥…… 숨막히는 긴장 가운데 사약 젓는 소리만 이윽고 계속을 한다.

6[편집]

당자 진주는 물론이요, 죽은 듯 눈을 감고 누웠는 준호나 마루에서 마주 잡고 벌벌 떠는 삼월이와 몽술어멈이나, 다들 사약이 바야흐로 새댁에게로 내리는 줄만 알았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그러니, 네 손에 이놈을 죽이느니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이구 말겠다! 내 손으루!”

그러면서 박씨부인은 서슴지 않고 준호의 입 바로 약그릇을 가져다 기울이는 것이었었다.

“어머님!……”

황겁해 부르면서 진주는 덤쑥 준호의 입을 한손으로 가린다. 하면서 또 한 손은 내어밀어 사약 그릇을 움키려면서

“지가 먹으께요! 지가……”

“흥, 절부(節婦)로다! 열녀로다!”

유유히 박씨부인은 사약 그릇을 끌어들이면서 냉소를 한다.

“지가 먹으께요, 어머님!”

내가 무슨 탓으루 “너를 죽이느냐? 너 같은 걸 죽이구서 내가 살인죄를 써? 흥!”

“………”

“너 그새 한 반년 겪어보았으니, 내 승미 짐작은 허겠구나? 한번 이런다 허면 하늘이 무너져두 그여이 허구 마는 승민 줄 알지?”

“………”

“지켜 앉어서 못허게 훼방 놀 테거든 놀아보려무나? 무어 이 따라두 낼이라두 요거 비상을 한 모금 멕일 새가 없을까바서?”

“………”

“더 여러 소리 헐 것두 없으니……자량해 해라! 선뜻 일어나 가든지, 웬 이퉁이며 웬 홀착인지는 모르겠다만서두, 아니 가구 있다 이놈이 내 손에 죽구 마는 꼴을 보구야 말든지……”

“………”

한순간 방안이고 바깥이고 깜박 괴괴하였다. 숨결조차 덜 멎은 듯 괴괴하였다.

어떤 과단(果斷)을 내기에 진주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아니하였다.

다음 순간, 진주의 조용히 몸을 일으키는 비단결 스치는 소리로 침정은 흔들리었다.

몸을 일으킨 진주는 서너 걸음 웃목께로 물러나 박씨부인한테 사풋 절을 드린다. 그러고는 도로 일어서면서

“어머님, 갔다 오겠어요.”

“온단 말은 가당치두 않은 소리다! 오늘루 너는 이 집 사람이 아니라구 않드냐? 남인 걸, 남이 무엇허러 이 집엘 오드란 말이냐?”

진주의 눈은 잠시 준호의 얼굴에 가 멎은 채 차마 떠나지 못한다. 눈을 감고 뜨지 아니하니, 눈으로나마 작별과 쉬이 다시 올 뜻을 전하지 못함이 못내 한스러웠다.

진주는 마침내 천천히 윗문치로 해 걸어나가 가마에 들고 만다. 저의 방 건넌방에 들러 버선 한 짝 갈아 신을 생각도 아니하고 입고 있던 채 그대로…… 진주가 가마에 오르자, 마악 그때였다. 어떤 꼬마동이인지가두어 놈 땔나무라도 하러 가던 길인지 문앞 행길로 지나가면서 노래를 한답시고 한 놈이 먼저

“하늘에는 별도 많다, 캐지나칭칭 나아네.”

하는 것을 또 한 놈이

“남의 집 며누리 말도 많다, 캐지나칭칭 나아네.”

하고 받아넘긴다.

7[편집]

어느 틈에 빠져나왔는지 삼월이가 대문 밖에 나와 섰다 교군 채장을 부여잡고 늘어져 울면서

“새아씨 어떡허세유우!”

하고 발을 동동 구른다.

진주는 가뜩이나 창연한 심사를 돕게 하던 것이나 강잉하여 태연한 말로

“울지 마아! 내가 어디 영영 가드냐?”

“또 오세유 그럼?”

“아니 오구 어떡허느냐? 갔다 곧 올 테니, 나 없는 동안이라두마나님 뫼시구 새서방님 시중 잘 들어 드리구 해! 병환두 나시구 허셋으니, 응?”

“내애!”

“그리구 이따 저녁이구 낼 아침이구조용한 틈 봐서 이 말씀 여쭤 드리구. 갔다 수히도 루 오겠읍니다구, 아무 걱정허실라 마시구 몸 조섭 훨씬 허시다 기운 차리시거든 학교랑 글방이랑 부지런히 댕기시라구, 응?”

그다지 큰부자는 아니었을망정, 팔패 교군에 호피 덮어 타고 견마성 소리 높이 울리면서 시집 온 진주였었다. 그런지 겨우 여섯 달 만에 그는 이 낡아빠진 두 패 교군에 실린 바 되어 친정으로 쫓기어가고 있었다. 친정에로의 초졸한 이 길이, 곧 험난코 기구한 고생길인 줄을 알 바가 없이…… 만일 알았다면 그는 이처럼 조용 자약히 가지는 못하였을 것이었다.

‘좌우간 가는 것이 옳겠다. 어떻든 한번 쫓고라야 말자는 요량이신 듯하니 더 거역치 말고 우선 갔다 성정이 갈앉기를 기다려 도로 오기로 하고 좌우간 가 드리는 것이 옳겠다.’ 아까 그 잠잠하던 순간, 진주는 이렇게 얼른얼른 결심을 하였었다. 나이 비록 어릴지라도 어려움에 임하여 끝까지는 당황치 아니하고 이만큼 침착한 사려분별을 가질 수가 그는 있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그래서 그 고패를 잘못 넘겼다면, 그는 가마에 올라 친정집으로 가는 대신 미구하여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광의 대들보에 목을 매고 늘어져 저승길을 가고 말았기가 십상이었을 것이다.

며느리를 쫓고 난 박씨부인은 막상 통쾌하거나 속이 시원한 무엇은 조금도 없고 도무지 덤덤하였다.

참 별일도 다 많다고 우두커니 넋을 놓고 앉았다. 교군과 엇갈리어 들어온 약방 하인이

“약 가지구 왔사와요.”

하여서야 정신이 들었다. 약방에서는 약을 지어놓고 기다리다 못해 자기네 하인 시켜 전위해 보낸 모양이었다.

“세 첩을 연거퍼 대려 잡숫도록 헙시사구요.”

“오냐.”

“이 약 쓰시면 첸 아주 다 내리실 테온깐 쓰시구 나서 동정 보아 기별허시면, 기운 돋구실 약 또 지어 드리겠읍니다구요.”

“오냐. 애썼다!”

박씨부인은 준호의 병이 체하였다는 것에 대하여 마음 가운데나마 아무런 미심이 이는 줄을 모르겠었다.

등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기척이 나서 박씨부인은 무심코 돌려다보았다. 준호가 비상을 탄 소위 그 사약 그릇을 집어다 마셔버리고는 마악 도로 엎드리던 참이었었다.

박씨부인은 놀라지도 않고 도리어 눈을 흘기면서

“지지리 못생긴 자식 같으니로고!”

“어머니!”

처량히 한번 부르고, 준호는 설움에 복받쳐 흑흑 느껴 운다.

6. 爾靈山(이령산)[편집]

1[편집]

爾靈山險豈攀難[이령산험기반 난] 男子功名期克艱[남자 공명기극간]鐵血山覆山形改[철혈산복산형개] 萬人 齊仰爾靈山[만인 제앙이령산] 명치 삼십칠년 십이월 초엿샛날 이른 아침, 여순공위군 사령관(旅順攻圍軍司令官) 내 목희전(乃木希典) 대장은 막료를 거느리고, 어제로서 완전히 점령한 바 된 이영삼고지(二○三高地)를 향하여 천천히 천천히 말을 나아갔다.

일장기 높다랗게 꽂힌 이영삼고지 마루턱을 때마침 동천으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가 우렷이 비쳐내고 있다. 어제 낮까지도 천지를 뒤집던 그 요란턴 대포 소리, 기관총·소총 소리, 일본군의 돌격나팔 소리와 만세 소리, 적군의 우라 ‘――’ 지르는 고함 소리 모두가 꿈결 같고, 시방은 바스락 소리 하나 없이 죽은 듯 고요하다. 산산이 부서진 포대와 기관총좌(機銃座 [기총좌]), 깨어진 탐조등, 성한 자리보다도 검게 피가 밴 자리가 더 많은 지면에 여기저기 함부로 흩어진 포탄 조각과 빈 탄자, 적군의 소총과 꺾여 진 환도, 짓밟힌 군모, 해어진 장화짝, 그밖에 가지가지의 휴대품…… 눈에 드는 건 무서운 격전을 말하는 낭자였다.

어제의 돌격대의 일원으로 살아남아 눌러서 이 이영삼고지를 지키고 있는 장사의 한 사람이리라. 피 묻고 찢어진 군복인 채 총을 세워 잡고 파수를 선 한 명의 입초병(立哨兵)…… 해 떠오르는 동녘 하늘을 방심한 듯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섰던 그는 얼굴이 문득 처연하여지면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 언 볼을 적신다.

생각하면 울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것이었었다. 울지 않는다면 차라리 목석(木石)이었을 것이었었다.

이영삼고지! 이영삼고지! 참으로 한많은 이영삼고지였었다. 밉살스런 이영 삼고지, 원수의 이영삼고지였었다. 높이라야 203미터밖에 아니 되고 하는 조그마한 산이었다. 물론 여순 요새는 이영삼고지가 명문이었다. 따라서 전략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지대임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산 그 자체는 역시 아무 보잘것없는 203미터 ―667척 높이의 납작한 언덕일 따름이었다. 그런 푸달진 언덕, 이영삼고지 하나를 쳐서 빼앗고 하기에 그 애를 쓰고 고생을 하였기라니.

내목대장이 거느린 여순공위군은 팔월부터 시작하여 십일월까지 넉달 동안에 제일회, 제이회 총공격에서 몇몇 요지를 빼앗아 얼마쯤 앞으로 나아가 기는 하였으나 이영삼고지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영삼고지가 그대로 성히 있는 이상 여순은 언제까지고 든든하였다. 그러나 여순을 언제까지고 그대로 두어서는 큰 낭패가 생기는 판이었다.

노서아는 그동안 만주의 육군 병력을 많이 늘리었다. 또 해군으로는 발틱 함대가 불원간 동아 수역에 당도를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일본은 하루바삐 여순을 무찔러, 첫째 여순에 있는 적의 동양함대를 진멸시킴으로써 새로이 오는 발틱함대가 동양함대와 합치어 힘이 불기를 막는 일방 일본 해군으로 하여금 마음놓고 발틱함대를 맞아 싸우게 하여야만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여순공위군은 적군에 비하여 병력이 부족한 대산(大山) 만주군 총사령관(滿洲軍總司令官)을 가 도와야만 하였다. 만일 그러지 못하는 날이면 일본은 이 전쟁에서 도리어 패전을 하고 말는지도 모르는 형편이었다.

2[편집]

일로전쟁은 그렇듯 여순 하나를 쉬이 함락을 시키느냐 그대로 더 지탱을 하느냐 하는 데에 승패가 크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여순을 함락을 시키느냐 지탱을 하느냐 하기는 이영삼고지를 빼앗아내느냐 빼앗기지 않느냐 하는 데에 우선 달려 있었다. 그리하여 이영삼고지의 승패는 곧 일로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는 것으로, 이를 치는 일본군이나 지키는 노서아군이나 있는 힘을 다하여 장렬한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손해만 헛되이 크고 볼 만한 전과는 없어 실패나 다름없는 제일회, 제이 회, 제삼회의 공격에 뒤이어 일본군의 제사회째의 공격을 단행하기는 십일 월도 다 가는 이십칠일이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어두워오는 오후 여섯시. 대기하고 있던 공격대는 세 길로 나누어 이영삼고지의 적진을 향하고 일제히 진격을 개시하였다.

적의 대항은 여전히 치열하였다. 대포와 기관총이 유축없이 불을 토하였 다. 탄환이 빗발치듯 한다고 이르거니와 이는 약간 빗발 따위가 아니었다.

차라리 크고 작은 탄환으로 막을 치는 형국이었다.

전신이 오로지 충과 용맹으로써 불에 달군 무쇠 같아진 일본군은 그와 같 이 무서운 탄막을 헤치고 겁함없이 돌진을 하였다.

“돌격 앞으로 옷!”

“우와아!”

우렁찬 함성과 더불어 한 약진(一躍進[일약진]).

착 엎디었다는 장검을 휘두르면서

“돌격 앞으로 옷!”

하는 호령과 함께 날쌔게 뛰쳐나가는 대장(隊長)의 뒤를 쫓아 한꺼번에

“우와아!”

함성을 지르면서 또 한 약진.

약진하는 산병선에 큰 포탄이 와 떨어지면서 한 중동을 뭉떵 잘라놓는다.

지뢰(地雷)가 터지면서 장졸의 몸뚱이를 셋씩 넷씩 공중으로 뿜어올린다.

탐조등의 푸른 광망이 지면을 커다랗게 비질하고 지나간다. 그 뒤로 기관총이 미친 듯 콩을 볶는다. 돌격군이 낙엽지듯 수없이 나가 떨어진다.

싸움은 어느덧 고전(苦戰)에 들었다. 한 발 전진에 손해는 몇곱절씩 불었다. 그러나 굴치 않고 돌진 또 돌진. 우군의 시체에 걸려 엎드러지면서 우 군의 시체를 밟고 넘으면서 돌진, 맹렬히 돌진. 마침내 적진 바로 밑 오 미터 지점에까지 육박하여 올라갔다. 여기서 처참한 사투가 한동안 전개되었 다 그러나 필경은. 그 이상 더 나아가지를 못하고 그대로 밤을 지냈다.

밝는 이십팔일 아침 공격군은 새로운 세를 얻어 다시금 돌격을 시작하였다.

“돌격 앞으로 옷!”

“우와아!”

쏟아지는 적탄에 턱턱 쓰러지는 앞엣대의 뒤를 이어 끊임없이 장렬한 돌격을 되풀이하였다. 하는 그 무서운 기운에 적진이 이윽고 동요하는 빛이 보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우익 부대가

“들이 쳐랏!”

“만세!”

하고 고함치면서 산 위로 짓쳐 올라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적의 역습을 만나 도로 물러서지 아니치 못하였다.

물러섰다가 다시 짓쳐 올라갔다. 적은 적대로 또 역습을 하여왔다. 또 물러섰단 또 짓쳐 올라갔다. 또 역습을 하여왔다.

돌격, 역습…… 돌격, 역습…… 이 짓을 무수히 되풀이하다 밤 아홉시에야 일단 이를 점령하고 방어공사도 베풀고 하였다. 그러나 밤중 한시에는 적의 말못하게 맹렬한 역습으로 인하여 점령대는 전멸이 되고 이영삼고지는 다시 금 적의 수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3[편집]

하루를 지나서 십일월 삼십일, 일본군은 진세를 새로이 하여가지고 오전 열시부터 다시 이영삼고지를 치기 시작하였다.

오늘이야말로 기어이……라면서 공격군의 공격도 전일에 비하여 한결 맹렬 한 것이 있었거니와 지키는 노서아군에서도 해군병이며 철도 엄호병을 다 풀어내어 병력을 넉넉히 하는 한편 대포, 기관총, 속사포, 소총, 지뢰, 수 척탄 따위로 화기의 있는 것을 다하여 공격군의 머리 위에 죽음의 불비를 내리 퍼부었다.

공격군은 골패작 쓰러지듯 연달아 쓰러졌다. 쓰러진 우군의 시체를 밟고 넘으면서 후속부대는 느꾸지 않고 뒤로 뒤로 연방 육탄의 돌진을 계속하였다.

땅이 쪼개지는 듯 요란한 대포 소리, 콩 튀듯 하는 기관총과 소총 소리, 자욱이 잠긴 초연, 번뜩이는 검광, 지르는 아우성 소리. 그 사이를 열, 스물, 백 늘비하게 덮이는 시체, 골짝을 냇물 이루고 흐르는 피, 피, 피…… 공격군은 처절한 돌격을 거듭하여 마침내 산꼭대기의 서남쪽 한귀를 빼앗 아내었다.

“만세!”

그러나 잠깐이었다. 산꼭대기의 한귀를 점령한 부대는 전부가 부상병이었다. 수효도 적었다. 새로운 우군의 증원부대가 오기 전에 적의 우세한 역습이 먼저 왔다.

총검과 폭탄을 양손에 갈라 쥐고 일개 대대의 큰 부대로

“우― 라―”

함성을 지르면서 조수같이 역습하여 오는 적군을 맞아 얼마 아니 되는 상병을 가지고 점령부대는 그래도 용감히 싸웠다. 그러나 너무도 세가 기우는 싸움이요, 처음부터 승패가 번연한 싸움이었다. 일몰과 함께 산꼭대기에는 드디어 한 명의 일본군도 남지를 못하고 말았다.

밤 열시. 공격군은 어둔 밤을 도와 야습을 강행하여 격전 격전 끝에 또다시 산꼭대기의 한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매양 허사였다. 참호를 판다, 토랑을 쌓는다 하면서 역습에 대한 방어공사를 급급히 하고 있는 중 생밤중 한시만 하여서 적은 수비병 전부를 몰아 대역습을 하고 덤비었다. 점령부대는 악전 악전, 그러는 동안 태반이 죽고 꺾여진 총검, 부러진 군도에 피투성이가 되어 눈물을 뿌리면서 산을 내려오기는 전원의 겨우 십분지 일이 차지 못하였다.

날이 휘엿이 밝았다. 이영삼고지로부터 고 옆 적판산(赤坂山)에 걸치어 함부로 널려 있느니 온통 시체였다. 시체로 하마 산 전체를 덮은 것이나 아닌가 싶을 만큼 양편군의 시체는 공격로에 골짝에 산 위에 늘비하였다. 그중에는 살아서 신음하는 부상병도 많았다.

이대로 그 귀중한 죽음을 한 시체들을 짓밟으면서 공격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호국의 영령을 위하여 도리도 아니요 예의도 아니었다. 또 명예의 전상을 한 전우를 날라다 치료도 어서 바삐 하여야 하겠고.

공격군은 공격이 한시가 급한 사정이었건만 십이월 일일의 예정한 공격을 일단 중지하였다.

4[편집]

십이월 일일부터 사일까지 나흘 동안 사상자를 수용하기 위한 이영삼고지 와 적판산 방면의 일부 휴전(一部休戰)이 성립되었다.

일본 병정과 노서아 병정은 벙어리들이 만난 것처럼 서로 손짓 눈짓으로 이야기도 하고 실없은 농담도 하고 하면서(그것은 슬픈 중에도 미소로운 정경이었다.) 제각기 우군의 시체와 부상병을 정중히 수용을 하였다.

나흘의 휴전기한은 지나고 십이월 오일 첫새벽부터 공격군의 포병진(砲兵 陣)에서는 대포 소리가 은은히 울렸다.

공격군은 점령을 하느냐 전멸을 하고 마느냐 오늘로 아주 최후 결전을 하자는 참이었다. 그런 만큼 돌진하는 기세도 그동안에 비하여 훨씬 장렬한 것이 있었다.

오전 아홉시. 포격이 뚝 그치면서 내리는 진격명령에 각 돌격대는 일제히 산꼭대기를 향하고 돌진을 개시하였다.

적진으로부터는 기다렸던 듯 대소의 화기가 한꺼번에 불을 뿜는다. 기관총과 소총 탄환이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기어올라갈 빈틈을 주지 않고 좍좍 쏟아진다.

적군의 화기는 수효나 종류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니와 질에 있어서도 일본 군의 것에 견주어 정녕 한걸음 앞선 점이 있었다. 이 화기의 우세에 대하여 일본군은 육탄돌격으로써 장기를 삼았다. 육탄돌격은 곧 대화혼(大和魂)이었다. 이 싸움은 그리하여 대화혼과 화기와의 싸움이기도 하였다.

돌격, 돌격. 부라퀴같이 돌격을 하여나갔다. 제일돌격대가 다 쓰러져 버리면 제이 돌격대가 그 뒤를 이어 돌격. 제이 돌격대가 쓰러지면 제삼돌격대가 그 뒤를 이어 돌격. 돌격, 돌격, 끝없는 돌격의 연속이었다.

혼전 중에 이영삼고지 서남쪽 한귀에서 만세 소리가 일었다.

이어서 동북쪽에서도 우렁찬 만세.

남북으로 협공을 만난 산꼭대기의 적군은 이리 닫고 저리 닫고 허둥거리면서 연해 돌격군의 백인에 퍽퍽 엎드러지다 갈팡질팡 서 태양구(西太洋溝) 쪽으로 퇴각을 하고 말았다.

“만세!”

“만세!”

산 위에는 적병의 그림자조차 볼 수가 없고 진동하느니 오직 일본군의 만세 소리였다. 이것으로써 이영삼고지는 완전히 점령이 되었던 것이요, 때인 즉 명치 삼십칠년 십이월 오일 오후 두시 삼십분이었다.

이렇게 하여 점령을 한 이영삼고지였었다.

일단 빼앗았다는 도로 빼앗기고, 다시 빼앗았다는 또 도로 빼앗기고, 무수히 그 짓을 되풀이한는 동안 우군의 시체는 산을 덮고 피 괴어 골짝을 흐르지 아니하였던고. 도로 빼앗길 적마다 절통하여 가슴을 치기 몇 번이던고.

이에 완전히 점령을 하고 산 아래 엎드린 여순을 굽어볼 때에 감개 무량치 아니할 수 없을 것이었었다.

나는 요행 살아남아 여기에 서서 이 만족, 이 감개를 맛본다거니와 공격에 같이 참가하였다 산 아래에서 목숨을 버린 수많은 전우들은…… 생각하매 눈물이 아니 흐를 수 없을 것이었었다.

별안간 요란한 말굽 소리에 입초병은 얼른 군복 소매로 눈물을 씻고 돌아선다. 여순공위군사령관 내목희 전 대장이 막료를 거느리고 이윽고 이 산정에 올라온 것이었었다.

5[편집]

내 목 사령관은 말에서 내려 이미 굴복한 바나 다름없는 발 아래의 여순을 언제까지고 묵묵히 내려다보고 섰다.

그 지지리 애를 먹이던 여순은 인제 함락을 시킨 것이나 일반이었다. 그런 지라 여순공위군 사령관으로서의 내목희전 대장은 이에 발분의 목적을 이룬 것이라고 하여도 무방하였다. 따라서 그는 마음을 턱 놓고 웬만큼 미우를 펴도 좋았다. 어쩌면 기쁨과 만족에 취할 수도 없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바야흐로 내 목 사령관의 심정은 하나도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심정은 저 이름없는 한 명의 입초병의 방금 그 무량하여 하던 감개와 다를 것이 없었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더 넓고 심각함이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려서부터도 마음이 약하고 정이 연하여 잘 울었고, 그래서 아명을 나끼도(泣人[읍인])라고까지 한 내목희 전 대장이었다. 그는 이번의 이영삼고지의 공격명령서를 쓰면서도 한 장 한 장 쓸 적마다 얼마나 울면서 썼는지 모른다. 명령서가 내리면 거기에 적힌 천 명이면 천 명의 장졸은 즉시 이영삼 고지의 공격에 참가하여 태반이 죽고 말 것을 번연히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이었다.

내목희 전 대장을 일찌기 남산(南山)의 접전에서 맏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직접 이번에는 십일월 삼십일의 이영삼고지 공격에 하나 남은 둘째 아들을 마저 잃었다. 출전에 임하여 부인더러 삼부자(三父子)의 관을 준비하되 세 개의 관이 다 차기를 기다려 일시에 출상을 하라고까지 단속을 한 그였던 만큼 나라에 바친 두 아들의 죽음을 결코 애석하여 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러 나 그도 남의 아버지에 유난히 다정다한한 사람이었다. 억제하고 현어색을 아니할 따름이지 가슴 속으로야 그것 또한 한 줄기 비감거리가 아닐 수 없 었다.

그 많은 ‘ 그 씩씩하고 아까운 장정들을 이 손으로 죽이고!’ ‘무슨 얼굴로 폐하께 복명을 아뢰나!’ ‘돌아가 무슨 면목으로 국민을 대하며, 무슨 말로 그 유족들에게 사죄를 하나!’ 마지막 이렇게까지 그는 사무치는 회심에 하마 눈물이 쏟아질 뻔하였다.

그러나 이 여순공략전의 성공이 일본제국이 국운을 내걸고 하는 단판 씨름, 일로전쟁을 승리로 인도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에 이영삼고지는 제풀 충혼탑(忠魂塔)일 것이며, 그 점령은 기쁘고 경사스러웠지 부질없이 희생을 슬퍼만 하고 있을 며리는 없는 것이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목사령과도 여기서 연연히 눈물을 뿌리는 대신 얻은 것이 爾靈山險豈攀難[이령산험기반 난] 男子功名期克艱[남자 공명기극간]鐵血山覆山形改[철혈산 복산형개] 萬人 齊仰爾靈山[만인 제앙이령산]의 한귀였었다.

얻은 시를 수첩에 적어넣고 마악 그 자리를 돌아서려던 내목 사령관은 발 끝에 차이는 것이 있어 무심코 지면을 내려다보았다. 이상스런 주머니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내 목사령관은 허리를 꾸부려 그것을 주워올리고 여러 막료들의 눈이 그리로 모였다.

주머니는 주머니라도 일본 병정들이 지니는 둥근 호부(護符 :오마모리) 주머니가 아니요, 귀가지고 목이 길고 한 눈에 선 주머니였다. 이것이 조선 사람이 흔히 허리에 차는 귀주머니인 줄은 내 목사령관도 막료들도 미처 몰랐다.

6[편집]

주머니는 옥색 관사 바탕에 자주실로 앞에서 수(壽), 뒤에다 복(福)을 각각 수놓고 남끈을 꿰고 하였다. 생김새가 이미 눈에 설고 이상한데다 색채 또한 그렇게 유색하여 얼른 보기에도 자못 이국정취적인 것이 있었다.

전물한 장사들의 유품이 하고 많이 여기저기 끼쳐져 있었고 그런 유품들에 까지나마 마음 범연치 못하는 다 심 장군 내 목사령관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하필 조그마한 주머니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는 것은, 그리고 한 사령관의 몸이 되어 손수 그것을 거두어 올리기까지 하였다는 것은 막상 주머니 그 자체가 가지는 이국적인 정취에 문득 주의가 끌렸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가 한문 “ 글잔 것만 보아도 우리 군 장병의 유품은 분명한데……”

내 목사령관은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머니를 몇 번이고 앞뒤로 되작거려 보아쌓는다. 속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나 부피는 없어도 묵직하였다.

마침내 끈을 늦추고 속엣것을 꺼내었다. 은으로 만든 직경 한 치 닷푼 가량의 동그랗고 납작한 곽이었다. 시계 앞딱지처럼 된 뚜껑이 있어 열고 보니 사진 케스였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내 목사령관의 입에서

“아, 하야시(林中尉[림 중위])가!”

하는 차탄이 가만히 흘러져 나왔다.

사진은 정복으로 차린 임경식(林敬植) 중위가 한 칠팔 세 가량 되어보이는 소녀를 앞으로 안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럼 하야시도 필경 이번에 ?……”

내 목사령관은 좌우를 돌아보고 그렇게 묻다 말끝을 흐린다.

이영삼고지의 최후 공격에 좌익 부대를 지휘한 길전 소장(吉田小將)이 앞으로 나서며

“네. 이번에 뛰어난 공롤 세우고 장렬히 전사를 했읍니다.”

하고 대답한다.

길전 소장의 설명을 들으면, 임중위는 좌익 부대의 제삼돌격대를 지휘하였 다. 물론 결사대였고 누누이 지원을 한 노릇이었었다.

십이월 오일 오전 아홉시.

서남쪽으로 치는 우익 부대에 호응하여 동북쪽으로 좇아 공격을 개시한 좌익 부대의 제일, 제이의 돌격대는 적의 아귀 같은 사격으로 돌격을 하자마자 연달아 흉벽(胸壁) 아래를 시체와 상병으로 덮고 거지반 전멸이 되었다.

뒤를 이어 임중위가장검을 휘두르고 제삼돌격대를 힐타하면서 흉벽을 향하여 맹렬한 돌진을 하였다. 돌격병은 하나 쓰러지고 둘 쓰러지고 솎아내듯 연방 쓰러졌다. 임중위도 왼편 팔에 일탄을 맞았다. 그러나 꿈쩍도 않고 앞으로 앞으로 부하는 격려하면서 돌진을 계속하였다. 드디어 비교적 성한 세로써 흉벽 아래까지 이르렀다. 왁 한번만 더 뛰쳐오르면 되는 판이었다. 흉 벽 위의 적병은 기관총, 소총, 수척탄은 물론이요 큰 돌멩이까지 굴려 떨어 뜨리면서 완강히 버티었다.

마지막 한번만 더 뛰쳐올라가면 되는 판인데, 하도 사나운 적의 저항에 이상 더는 한 걸음도 움찟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이때 반대편인 서남쪽으로부터 우군의 만세 소리가 요란히 일었다.

서남쪽 한귀를 우익 부대의 돌격대가 점령을 한 것이었었다.

임중위는 때를 놓치지 않고

“들이 쳐랏!”

외치면서 몸을 날려 흉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7[편집]

적병이 집 쑤신 벌떼처럼 와 하고 임중위에게로 덤벼들었다. 임중위는 드는 일본도를 휘둘러 덤비는 적병을 무우쪽 베듯 베어넘겼다. 만세를 부르면 서 대장(隊長)을 뒤따라 올라오는 돌격병이 큰 적병들을 총창으로 퍽퍽 찔러젖힌다. 폭탄을 던진다.

피와 아우성 가운데 승패 모를 백병전이 잠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럴즈음에 반대편인 서남쪽으로부터 우군의 함성이 한결 높이 일더니 그쪽의 적군이 이쪽을 향하고 어지러이 퇴각을 시작하였다. 그것이 서남쪽의 우군에게는 당장은 성공이었으나 우선 승패의 분간이 서지 못한 채 한참 백병전을 하는 중에 있는 이편 ―동북쪽 ― 임중위의 제삼돌격대에게는 실로 아슬아 슬한 살판이었다. 그 서남쪽으로부터 퇴각하여 온 적군이 그대로 만일 이편 ―동북쪽의 적군과 합세가 된다고 하면, 임중위의 제삼돌격대는 이 백병전에서 승리는 고사요 전멸을 당하고 말기가 십상이었다. 그럴 뿐더러 적은 이 동북쪽에다 발붙임을 하여가지고 일단 빼앗긴 서남쪽의 일본군에게 역습을 하려 들 것이니, 또한 불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었다. 따라서 오늘의 이영삼고지 공격도 결국 실패를 할 위험성이 다분히 있다고 할 수가 없지 아니 하였다.

이런 정세를 민첩히 판단하여낸 임중위는 천하 없어도 이쪽 ―동북쪽의 적을 저쪽에서 퇴각하여 오는 적과 합세되기 전에 무찔러버리려고 있는껏 용맹을 떨치어 일변 부하를 독려하면서 그야말로 좌충우돌 부라퀴 같이 납 뛰었다.

임중위 이하 제삼돌격대의 전원이 그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악 악 들이치고 찌르고 하는 형상은 적 노서아 병정들에게는 도저히 인간이라기보다도 지옥으로부터 뛰쳐나온 악마였을 것이었었다.

과연 적군은 몸서리를 치면서 한 놈 두 놈 물씸물씸 뒷걸음을 치는 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침 함성이 일면서 제사 돌격대가, 다시 제오돌격대가 뒤를 이어 돌격해 올라 닥치었다. 한번 동요가 인적진은 새로운 돌격을 만나자 그만 맥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퇴각이었다.

공격부대는 늦추지 않고 그 뒤를 급히 쫓으면서 쳤다. 그동안 여러 번 쓰라린 경험을 치렀거니와 산 위의 적군을 완전히 소탕하여 역습하여 올 끄터리를 남겨주지 말자는 것이었었다. 숨도 쉬지 못하게시리 다급히 뒤를 쫓으면서 쳤다.

그때였다. 여전히 맨 선두에 서서 달아나는 적을 쫓고 있던 임중위가 별안간 앗 소리를 지르면서 왼편 손으로 젖가슴을 누르고 앞으로 엎드러졌다.

전면으로부터 날아온 적의 맹탄이 심장을 정통으로 꿰뚫었다.

저쪽 ― 서남쪽에서 쫓겨오던 적군과, 이쪽 ―동북쪽에서 쫓겨가던 적군은 서로 바라고 달리던 진지가 이미 점령된 것을 알자 중간에서 할 바를 모르고 허둥거리다 하릴없이 총퇴각을 하는 것이 서 태양구(西太洋溝)방면이었다.

이리하여 이영삼 고지의 산성에는 적군이란 시체뿐이요, 완전히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왔고 우렁찬 만세 소리에 일장기가 펄펄 날리었던 것이었었다.

8[편집]

그 전날 밤, 길전 소장은 굳이 그렇게 결사대의 돌격대장을 자원하는 임중 위를 앞으로 불러다 세우고 타일렀다.

“너는 처지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사람야. 그 말 알아듣겠지?”

“네.”

“그러니 결사대의 지휘만은 단념하는 것이 어떤고?”

“싫습니다!”

임중위의 말씨 하며 음성은 무엄스럽달 정도로 괄한 대답이었다.

길전 소장은 고개를 꺄웃하면서 혼잣말로

“모를 일이야!……”

그러다 다시 임중위 더러

“물론, 너의 그 싸움에 다다라 죽음을 두려워 않고 남보다 앞서 나아가고 자 하는 한 무인(武人)으로서의 용맹을 그만했으면 모르는 바가 아니로다!

심히 가상해!…… 그러나……”

“각하!”

“응?”

그것은 필부의 용맹이올시다 “ ! 단지 죽음을 두려워 않는 남보다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그런 용맹은 필부의 용맹이올시다!”

“음!”

“소관은 그런 용맹으로써가 아니올시다!”

“음, 음! ……그럼?”

“용맹은 충의(忠義)로부터 우러나는 용맹이라야 참되고 바른 용맹이올시다!”

“옳거니! …… 그런데?”

“그런데, 너는 일본인이 아닌 사람으로 일본제국에 대한 충의가 우러날 바가 없을 터가 아니냐, 이런 의미시겠지요?”

“그래서?”

“아까 먼첨에 모를 일이라고 하신 말씀도 역시 그 말씀이신 줄 압니다!”

“정녕!”

“각하?”

“응?”

“소관은, 사람은 조선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소관의 마음의 나라는 일본이올시다.”

“!……”

길전 소장은 일어서서 임중위의 앞으로 나아가 어깨에 손을 얹고 이윽고 그 얼굴을 들여다본다.

임중위도 마주 소장의 눈을 본다.

서로 보고 눈과 눈에는 이슬이 어리었다.

“하야시.”

“네.”

“용서해 다고. 내 잠깐 어두웠노라. 깜박 몰라보았노라.”

“노상, 무리 아니신 노릇입니다.”

“가, 마음껏 싸워 잘 죽어다고?”

“고맙습니다……그럼 이걸로 하직이올시다.”

임중위는 한 걸음 물러나 거수경례를 올리고 돌아서서 활발히 걸어나간다.

“하야시?”

소장의 부름에 임중위는 뒤돌아섰다.

“네?”

“부탁은 없는가?”

“없읍니다. 이 사실 그것이 후일 장차 우리 조선 동포에게 가르쳐 주는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음…… 가족은?”

“편모(偏母)와 여섯 살박이의 어미 없는 딸년 하나가 있읍니다.”

9[편집]

“기특한 일이로 곤! 기특한 일이로 곤!”

길전 소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내 목사령관은 절절히 그러면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다시

“이상한 인연이고!……나와는 이상한 인연인 것이……그 사람이 우리 일본에 오기는 아주 어렸을 적인데……”

하고 자기의 알고 있는 임중위의 내력과 및 자기와의 인연에 대한 것을 곰곰 이야기를 낸다. 즉 임중위의 선친은 조선의 유신운동(維新運動) 단체의 일원으로 명치 십칠 년, 저 세상을 들렌 우정국 사건(郵征局事件)의 갑신정변에 실패를 하고 김옥균들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을 온 사람이었다.

망명객 임씨는 일본 조야의 두터운 비호를 받으면서 한 삼 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새롭고도 기운찬 여러 가지 발전 가운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신식 군제(新式軍制)와 그 교육에 대하여 깊이 느끼는 바가 있어 자기의 어린 외아들 임경식을 일본으로 데려다 어학이며 그 밖에 간단한 기초학문을 가르쳐 가지고 명치 이십년 때 마침 새로이 생기는 육군유년학교에 들여보냈다.

임경식은 타고난 자질이 자못 영민하고 의지와 신체도 매우 건실하여 그 부친의 기대에 어그러짐이 없이 순조로이 육군사관학교까지를 마치고, 스물 두 살 적에 소위에 배명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명치 이십칠년. 일청전쟁이 인 해였다.

임 소위는 대산제이군(大山第二軍)의 휘하에 든 혼성제일 여단(混成 第一旅團)에 배속되어 주장 요동 각지(遼東各地)의 작전에 전전하였다. 이 혼성제일 여단장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곧 내 목희 전 소장이었다.

내목 여단장은 유명한 개평작전(蓋平作戰) 때까지에는 배하에 임경식 소위라는 한 특수한 부하가 있는 줄은 전혀 몰랐었다. 또 임경식 소위 자신도 그동안까지는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울 기회를…… 따라서 그의 특수한 존재 인 특수성이 상관의 주의를 끌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내 목 여단이 개평을 치기는 명치 이십팔년 정월 초열흘날 첫 새벽부터였는 데, 이 개평의 청병(淸兵)은 뜻밖에 진지와 저항이 완강하여 얼어붙은 개평하를 사이에 두고 맹렬한 사격을 퍼붓는 바람에 일본군은 용이히 돌진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을 본 . 내 목소장은 여단장 자신이 별안간 진두로 말을 몰고 나오더니 전군을 질타하면서 그대로 맨 앞장을 서서 얼음 위를 적진을 향하여 돌진을 하였다. 놀란 장졸들은 불끈 용맹이 솟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미끄러운 얼음 빙판을 달리며 구르며 적진으로 몰쳐들어갔다. 이때에 말 탄 여단장을 빼치고 제일착으로 적진에 뛰쳐든 한 사람의 장교가 바로 임경식 소위였었다.

그런 임경식 소위에 내 목 여단장이었고, 십 년이 지난 오늘 이 자리에 유품만 남고서 가고 없는 임중위에 내 목사령관이요 하였다.

내 목사령관은 임중위 부녀의 사진을 다시금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혼잣말로

“딸아인가 보다!……한번 가보았으면 좋겠다만서도! 홀로 있다는 노자당이랑……”

그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좌우더러

“유족한테 군에서 공식으로 다른 유품은 전달을 하겠지만 이 주머니와 사 진은 내가 글발이라도 좀 적어서 직접 보내고자 하니……”

7. 새 出發[출발][편집]

1[편집]

그 임경식 중위의, 오늘이 열한 번째 돌아오는 제사날이었다.

함박 같은 눈이 아침부터 시작하여 밤이 들도록 개지 아니하고 차분히 내리고 있는 것도 다른 해의 이날과 다름이 없었다.

동서로 한 방씩이 있고 한가운데에 대청마루가 있고 한 후원 별당의 그 대청마루가 임중위 위패를 모신 영실(靈室)이었다. 그리고 동편방이 진주의 조모 송심당노인(松心堂老人)이 안팎 가정(家政) 전체를 양손(養孫) 부처에게 전장시키던 날, 안채의 큰방으로부터 물러와 조용히 거처하고 있는 방이 요, 서편방이 진주의 방이었다. 진주는 출가하던 날까지 처녀적을 이 방에서 지냈고, 혼인 때의 신방(神房)이 또한 이 방이었으며, 지나간 추석 시집으로부터 쫓겨와서도 도로 이 방에서 거처를 하고 있는 참이요 하였다.

영실은 제수의 진설이 마악 끝나고 팔서리 같은 한쌍육 촛불만 휘황한 아래 아무도 없고 일단 비어 있었다.

뒤로 병풍을 둘러친 정면 중앙에 영교와 및 일본제국 육군 중위로 정장한 임중위의 전지판 반신 초상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좌우로는 긴 탁자 위에 훈장이며 중요한 유품을 넣은 대소 여러 개의 상자와 특히 이영삼(二○三) 고지의 돌격전에 쓴 군도를 비롯하여 그때의 군복, 군모, 장화 등의 유품이 다른 유품들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다. 또 좌우의 벽에는 액에 넣은 가지 가지 훈공(勳功)의 수장이며, 소위 적과 중위 적과 이영삼고지의 전공으로 사후 승차한 대위 적과의 각각 임명장이 걸리어 있고.

이것이 영실의 평일의 모양이요, 오늘 밤은 제사라 영교와 초상 앞으로 큰 제상에 정갈히 차린 풍부한 제수가 법도에 좇아 진설이 되어 있었다.

어지러운 상념에 잠겨 때 가는 줄을 잊고 앉았던 진주는 저편 방에서 할머니의 기침하는 소리에 비로소 생각이 나 조용히 영실로 들어갔다.

불을 환히 밝히고 제수를 차려놓고 한 제향날 밤의 영실은 정녕 아버지의 혼령이 그 다정스런 미소를 하시면서 선연히 와 앉아 계시다 시방도 귀에 쟁한 음성으로

“진주야?”

하고 상냥히 부르시는 것만 같고, 진주는 마주

“아버지이?”

하고 어렸을 적처럼 어린양스럽게 불러지는 것만 같고 하여 진주에게는 변함없이 반가움이 솟는 제향날 밤의 영실이었다.

진주는 한참은 서서 제상 너머로 아버지의 사진을 바라다보면서 문득 황홀한 얼굴이다가 이윽고 천천히 나아가 여러 유품이 놓인 중에서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받들 듯 집어들고 돌아선다.

이상자야말로 그날에 여순공위군 사령관 내목대장이 바쁘고 소란한 진중의 몸이면서도 친필로써 한 장 간찰을 정성껏 꾸미어 그 사진 든 주머니와 함께 싸고 싸고 하여 임중위의 모친 송심당노인에게로 부쳐 보낸 것이었었다.

진주는 열두어 살 무렵부터 시작하여 해마다 아버지의 제향날 밤이면 이 상자를 할머니한테로 가지고 가 조손이 서로가람 내목 장군의 편지도 읽고 중위의 생존시의 이야기도 하고 하면서 한밤을 단출히 깊이곤 하던 것이 연년이 빠치지 아니하는 행사로 되어 있었다.

2[편집]

“고 임경식 중위의 자당 전에 삼가 한 장 글월을 올리나이다. 소생은 임 중위를 거느리던 내목희전이라는 일본군의 장수이온바, 귀댁의 소중한 자제를 데리고 만리 전장에 나왔다 소생의 불민으로 말미암아 애석히 전사를 하게 하였음에 대하여 죄를 무엇으로써 사할 길이 없어하는 바이로소이다 ……”

순한문투의 문사가 아주 평이하고 또박또박이 쓴 글씨로 내목 장군의 편지는 이렇게 허두를 내었었다. 그 공손하고 겸사스럽기라니, 사령관 내목희전 장군이 전몰한 한낱 중위쯤의 유족 노모에게 하는 편지라기보다는 연하 사람이 향로(鄕老)에게 올리는 편지였었다. 그래서 송심당노인이며, 처음에는 들 내목희전이라는 이가 임중위보다 그저 조금 웃길 가는 사람이거니 하였을 따름이었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가 천하에 이름이 높은 내목 장군인 것을 알고는 그만 송구하고 감격하여 어쩔 줄을 몰랐었다. 인하여 편지를 가보(家寶)로 위하였고 임씨 문중은 달리 영광 한 가지를 더하였었다.

내 목 장군의 편지는 그런 허두로 시작하여 임중위의 이영삼고지의 작전에서 용맹히 싸운 경과와 그 최후의 모양과 그의 남긴 바 전공이 그가 결사대 의 대장이 됨에 있어서 “나는 사람은 조선 사람이라도 마음의 나라는 일본이요, 그러므로 일본을 위하여 충의를 다하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노라”

고 하였다는 말과 더불어 소상히 소상히 기록되었었다. 또 내 목 장군 자기와는 일찌기 십 년 전 일청전쟁 때부터 맺어진 인연으로 개평작전(蓋平作戰) 때에도 여사여사히 용전을 하였고, 그때부터 자기는 끔찍 그를 사랑하였노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 그리고 노인이 외로이 얼마나 슬퍼하고 계시느냐고, 전쟁이 끝나면 한번 가 노인이랑 아기랑 부디 만나도 뵈고 위로도 하여 드리고 하고 싶으나 나라에 매인 몸이 되어서 먼 길이 기약키가 어렵노라고 하였고, 마지막으로는 임중위의 지대한 전공에 대하여서는 일본 조정으로부터 장차 후한 치하가 있으려니와 만일 가세가 넉넉치 못하다든지 하여, 그중에도 아기의 교육에 군색됨이 있게 되면 그것은 자기가 사사로이 기쁘게 담당을 하고자 하니, 혹시 그런 경우거들랑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고 기별을 하여 주기를 바라노라고 신신부탁이 있었다.

이 내목 장군의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여 두고 일 년 한차례의 제향날이면 꺼내어 읽노라면 송심당노인이나 어린 진주나 새로운 위로와 감격을 저절로 느끼곤 하는 것이 있었다. 오 대째 내려온다는 열두폭 낡은 수병풍을 뒤로 둘러친 아랫목 보료 위에 앉아 송심당노인은 흰 보 덮은 빈 자개소반을 앞에 다 내어놓고 기다리듯 하고 있었다.

진주는 유품상자를 들고 들어와 조모 앞에 있는 소반에다 조용히 가져다 놓고는 그 옆에 가 앉는다.

“방이 춥지나 않드냐?”

“아뇨, 할머니……”

정치운동으로 불고가사하다 망명을 갔다 마침내 객사를 한 남편을 섬기었고, 외아들은 군적에 몸을 두고 두 번이나 출전을 하였다 필경 전사를 하였고, 금지옥엽하던 손녀 진주가 시집살이를 쫓겨오고…… 갖추갖추 풍상 많은 송심당노인이었다. 예순세 살의 시방 그 눈같이 흰 머리는 이미 십이 년 전의 오늘 하루에 그렇게 희어버린 것이었었다.

오십 평생을 겪어온갖은 풍상은 정히 심각하였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내 내 한 모양으로 가시지 않는 것은 음성과 얼굴에 드러나는 대범스럼과 더불어 지극한 인자스럼이었다.

3[편집]

“너는 이걸 그리 질겨 아니하드라만서두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이게 퍽 좋으니라. 후울훌 좀 마시렴?”

진주가 마악 들어와 앉았자 뒤미처 올케가 식혜를 맞상해서 들여왔었다.

생강을 많이 넣고 통고추를 띄워 맵고 뜨거운 식혜를 마주 앉아 먹으면서 할머니가 진주더러 그런 권이었었다.

“아범이 잘 먹었잖아요, 할머니?”

“잘 먹구말구! 끔찍이 질겨두 하드니!……”

노인은 문득 수저를 멈추고 망연히 잠시 앉았다 이윽고 푸뜩푸뜩

“그날두 밤에 이걸 먹으면서……그날이 바루 정월 스무하룻날이었드니라.

갑진(甲辰) ․ 을사(乙巳), 갑진년 정월 스무하룻날…… 그 전해 가을에 일본 서 서울루 가 있다 일아접전(日露戰爭[일로전쟁])이 나게 됐다구 일본으루 도루 가는 길이라면서 와서!…… 쯧쯧 마주막일 줄야 알았나!……꼬옥 믿구 기대렸든 것이 고만!……”

진주는 그때의 일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일곱 살 적이었으니, 전부가 순전한 기억인지, 혹은 기억은 일부분인데다 할머니한테서 이야기를 여러 번 듣고 듣고 한 것이 합치어 제풀에 전부가 기억인 것처럼 되어진 것인지 그는 모르나, 아뭏든 판에 박아둔 듯이 그때의 일을 소상히 다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 새때가 조금 지나 임중위는 집에 당도하였었다. 문앞 행길로 말 요령 소리가 들려서 그저 대문간으로 나가보았더니 군복 입고 군도 차고 한 아버지가 검정 양복 입고 가죽으로 만든 궤짝 같은 것을 어깨에 멘 또 한 사람과 말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나중에 그 궤짝에서 세 다리 진 것을 꺼내 세우고 깜장 보자기를 뒤쓰고 사진을 찍어 주었었다. 사진은 할머니와 아버지와 진주와 셋이 한꺼번에 한 장을 찍고 할머니와 진주가 함께 찍고 아버지가 진주를 안고 앉아서 찍고 그러고 나서 각각 독사진을 찍고 하였다 진주는 할아버지. 사진이랑 아버지 사진이랑 집에 있는 것을 늘 보기는 하였어도 제가 사진을 찍기는 처음이라 이상히 무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었다.

진주는 말에서 내리는 아버지한테로

“아버지이?”

하고 부르면서 달려나갔다.

“진주야?”

아버지는 마주 부르고 두 팔을 벌려 불끈 안아올리면서 또 한번

“진주야?”

“아버지?”

“오냐! …… 할머니 집에 기시지?”

“내. 안방에 기세요……아버지?”

“오냐?”

“아버지 오셌수?”

“오냐 왔다. 할머니랑 진주랑 보구퍼서 왔다!”

연방 이러면서 안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우리 알뜰한 손님이 오시나보다!”

하시면서 할머니가 마루로 나서고 하였다. 할머니는 아들이 손님처럼밖에는 집에를 오지 않는대서 언제고 그런 말로 아들을 맞이하던 것이었었다.

4[편집]

어린 진주는 졸린 것을 억지로 억지로 참으면서 할머니와 앉아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집에 당도하던 길로 낮에는 할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가느라고, 또 석양때부터는 동헌(東軒)에서 원이 베풀고 청하는 잔치에 나 아가느라고 밤이 이윽해서야 돌아와 그제서야 비로소 모자(母子)부터 부녀(父女) 세 가권이 단출한 한때를 가질 수가 있었다.

식혜는 역시 생강을 많이 넣고 통고추를 띄우고 하여 할머니가 손수 정성 들여 담근 것이었었다.

그런 식혜를 진주를 무릎에 안고 앉아 후울훌 맛있게 몇 번 마시고 나더니

“참, 진주야?”

하고 불렀다.

“내?”

“너 주머니 하나 만든 것 있어?”

“주머니요?”

“응!”

“내!”

진주는 얼른 일어나 반닫이 앞으로 가서 주머니 하나를 찾아가지고 왔다.

옥색 관사 바탕에 자주실로 앞과 뒤에다 각각 수(壽)와 복(福)을 수놓고 남끈을 꿰고 한 귀주머니였다. 이 주머니에다가 임중위는 딸과의 사진을 넣어 품에 품고 출정을 하였던 것이요, 그것이 이영삼고지에서 우연히 내목 장군의 손에 거두어진 바 되어 친필의 서한과 함께 유족인 송심당노인 조손에게로 보내어온 것이었었다.

“허어! 네가 벌써 이렇게 얌전하게 주머니를 만들구 수를 잘 놓구 할 줄 알아? 제법이로구나, 허허허허!”

아버지는 주머니를 받아 들고 기뻐 칭찬이면서 진주의 볼에다 볼비빔을 하여쌌다. 그 술기운에 홧홧하고 수염 거슬거슬하던 아버지의 볼비빔의 감촉을 진주는 시방도 어제런 듯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자식아? 기집아이루 솜씨가 벌써 이렇게 얌전한 건 기특하 다만, 거 이왕 생겨날려거든 응? 고추를 죄끔만 달구서 생겨나겠지? 허허허 허.”

그 말에 할머니는 같이 웃으면서, 그러나

“사내자식으루 생겨났다 너처럼 무인(武人)아니 돼, 평생을 진중으루만 왕래하다 말라구?”

“허허, 조옴 좋습니까 어머니?…… 늘 말씀이지만 첫째 왈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교가 그러섰구, 또 장부 어즈러운 세상에 났다 나라를 위해, 의를 위해 삼척 장검 비껴 들고 한번 용맹을 떨치는 것두 남아 일생의 쾌사가 아니겠읍니까?”

“쯧, 아모리 어미라기로소니 장부의 하는 노릇을 뒷바지는 할지언정 구 태어 막자 할 리야 있을꼬만서두 네 나이 어언 삼십이 넘지를 아니했나? 위천 하자(爲天下者)는 불고가서(不顧家事[불고가사])라니, 가사야 불고한다지만 후사는 돌아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어서어서 사람을 맞어들여 임씨 댁 가문 이어나갈 손(孫)을 볼 염량도 해야지! 옛날 헌다헌장수들도 평생을 전진 속에서 마쳤건만 제마다 후손은 끼치지 아니했든가?”

할머니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고요하고 태연스런 음성이요 언사였으나 일변 어딘지 기색이 범키 어려운 엄엄한 것이 있었다.

5[편집]

“어머님……”

안았던 진주를 내려놓고 아버지는 식혜상 옆으로 물러앉아 무릎 꿇고 두 팔 짚고 머리를 조으면서 절절히 비는 것이었었다.

“이제야 깨우친 배는 아니올시다마는 불효한 죄가 열번 죽어 마땅합니다!

남달리 극심한 파란을 겪으시다 칠십 당년하신 어머니를 잠시 한때 편안히 뫼시지 못하고 끝끝내 이렇게……”

“부질없은…… 내게야 불효란 당치 아니한 말이지. 내 언제고 네가 밖에 나가서 하는 노릇을 불가하다 한 적이 있으며, 에미한테 매어 대사와 큰뜻을 저바리라 한 적이 있든가? 오직 때가 늦어가니 후사도 유렴하도록 하란 그 말이지.”

“전지에 나가는 몸이니 목숨이 온전하기를 기약하겠읍니까마는, 만일 공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는 날이면 그때는 어김없이 어머님 말씀대로 거행하겠읍니다!”

그러고는 한번 더 머리를 숙이고 나서 도로 편안한 앉음을 하고 먼저처럼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였다.

“조금치두 염려하실라 마세요, 어머니. 전쟁에 나간다구 다 죽습니까 어디?”

“무사해 돌아온다면 조옴 좋으리만서두……”

“그런데 어머니?”

“식혜가 식었나본데 뜨뜻한 걸루 들여오게 할까?”

“괜찮습니다……네 어머니? 거 색다른 며누리 좀 보시겠어요?”

“색다른 며누리라니?”

“허허허. 일본 며누리 말씀입니다.”

“일본? 하필 그런?”

“어머니께서 불가히 여기신다면 파의를 하겠읍니다만서두 혹시……”

“불가한 여부보다두 제일에 내가 말을 알며, 또 풍속을 알아야 그런 색다른 며누리를 맞이할 텐데 걱정이로군.”

“그냥 제가 내 집 사람이 되어 들어오는 이상, 말이며 예절 풍도를 다 우리를 따라야 하겠지요. 그것보다두 어머니께서 의향이 어떠실까 해서.”

“네가 가타 여겨서 하는 노릇이라면야 나는 따를 뿐이 아닌가?…… 들으니 말이 다르고 풍도가 약간 다르지 대체는 우리와 범백이 방불하다면서?

생김새가 방불하듯이.”

“그러믄요! 머언 조상은 우리와 한 조상이드랍니다!”

“또오 인정은 매양 일반일 터…… 그러구 그 사람네가 여인이 남편 공경 이 끔찍 아주 흠선하다구?”

“네. 확실히 조선 여인들보담 낫습니다. 본받을 구석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만 아닌가? 들어와서 남편 잘 받들고, 그러구 저것 잘 거천 해 길르구 했으면 그만이지, 내가 무슨 ……”

저것이란 물론 진주를 가리켜 하는 말이었다.

“항차 내가 살아 새며누리 섬김을 받기로소니 얼마나 받을 나이라구 ……”

“하옇든 이번 나갔다 돌아와 그때 다시 자상히 이쭙고 수이 구정을 짓도록 하겠읍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께서 우선 손주놈 재롱도 보시게 되실는지 모르고……”

“규수는 나이 몇인고?”

“허허허, 어머니두 온! …… 이왕 조금만 더 참으세요, 허허허.”

아버지는 이렇게 웃음으로 끝을 흐려버리고 다른 이야기로 말머리를 돌렸다.

6[편집]

진주는 나이 들면서부터는 매양 그 생각이 나면 일이 못내 궁금하였고, 자연 혼자서 추측과 상상을 두루 하여보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막연히 그저 내지 여자로 아무나를 장차 택하여 가지고 그때 비로소 새로이 취실(娶室)을 할 생각이라는 의미인 것이 아니라, 이미 어떤 내지 여자를 한 사람 택하여 둔 바가 있어 그를 맞아들이겠다는, 이 뜻인 것이 분명하였었다. 그날 밤 그 자리의 말 운과 내색으로 미루어 정녕 그러하였다.

한 여자가 ── 어떤 내지 여자 하나가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은 그리 하여 적실한 사실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생긴? 인품은? 나이는? 근지는?

물론 쌍스런 집안은 아니었다. 버젓한 가문의 태생이었다. 한 이십 세 된…… 더도 덜도 아니요 마침 그 나이였다.

얼굴 갸름하고 눈이랑 입이랑 코랑 다 이쁘장스러웠다.

마음씨 좋고 얌전하였다. 늘 생글생글 웃으면서 허리고붓하고 참배쪽 같이 상냥스러웠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께서 ‘…… 우선 손주놈 재롱도 보시게 되실는지 모르고……’ 이 말이 있었다. 어린애가 있다는 말이기 근사하였다.

어린아이! 어린아이! 그럼 내 동생이렷다. 동생, 동생, 오라비동생, 꼬옥 아버지를 닮아 이쁘고도 씩씩하게 생긴 사나이. 내 동생, 오라비동생. 열한살이나 열두 살박이, 한창 장난꾼이 선머슴동생, 귀여운 내 동생, 내 동생.

‘좀 보았으면! 왜 찾아오지 않을꼬? 그 새엄마랑 함께…… 몰라서 못 오 지나 않는지?’ 이렇게 진주는 마지막엔 가공(架空)의 동생과 새엄마라는 이를 그리워까지 하도록 상상은 매우 골똘한 것이 있었다.

생각하면 허황한 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주는 구태여 그것을 허황한 공상으로 돌려버림으로써 한 조각 해(害) 없는 즐거움을 스스로 없이 하고 싶지는 아니하였다.

그보다도 할머니는 생각을 어떻게 하고 계신지. 진주는 늘 별러오다 오늘은 마침 또 제향날이요 해서 계제도 좋고 하여 부디 이야기를 좀 하여보려니 하고 초저녁부터 유념을 하였었다.

“아따 저어 할머니? 그날 저녁에 아범이 이런 말 했잖었어요?……”

마악 그래서, 식혜상을 물리고 나서 이렇게 시초를 내는 참인데, 그러자 돌쇠어멈이 자리에 당도하여 이야기는 그만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돌쇠어멈은 이 집의 오랜 계집하인으로 겸하여 고 임중위를 젖먹여 기른 유모였었다. 시방은 속량을 받아 나가 살고 있으나 옛 은정을 저버리지 아 니하였고, 그런 중에도 두 때 명절, 송심당노인의 생일날, 그리고 임중위의 제사날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오기를 궐하는 적이 없었다.

돌쇠어멈은 평일과 달라 무슨 일인지 기색이 심히 평온치 못하여가지고 오더니, 올라와서 노마나님과 아가씨한테 문안을 드린 후 자식놈의 급병으로 낮부터 오기가 늦어진 사죄를 한두 마디 하고는 인하여 놀랍달까 해괴하달까, 하옇든 돌연한 소식을 한 가지 전하는 것이었었다.

7[편집]

“이런 분허구 참 기맥힐 데가 있사와요 글쎄!…… 들으시면 되려 심화만 더 되실 상 불러와 사뢰지 말려니 했어두 어디 또 그러와요? 몰랐으면이어니와 쇤네 도리에……”

돌쇠어멈은 약간 수다스런 허두에 이어 더럭 씨근거리면서 하는 말이었었다.

아니 글쎄 “ , 그 댁으서 새서방님을 장갈 다시 들이시드랍니다!”

진주는 가슴이 철썩하고 와락 상기가 되었다.

송심당노인도 진주 못지아니하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나 표면은 태연하였다.

“온 시상에 그럴 법이 어딨어와요? 쇤넨 그 말을 듣구 하두 분허구 절통해서……”

“어디서 들은 소문인지?”

잠자코 앉았다 노인이 조용히 묻는다.

“바루 쇤네 이웃에 사는 천석할아범이 그래와요. 오늘 아까 향교골 볼 일이 있어 갔다 남진사댁에 신행길이 들기에 물었으니, 그댁 새서방님이 새장 갈 드신다구 허드라구요.”

“적실하겠다?”

“제 눈으루 보구 와 그랬는데와요!”

“………”

노인은 고개만 끄덱끄덱, 한참이나 또 묵묵히 앉았다 혼잣말로

“쯧! 어려두 장부여든, 장부 두 번은 말구 열 번 장간들 못 들리!”

진주는 그동안 두 차례나 시가엘 갔다 번번이 되쫓겨오고 되쫓겨오고 하였다. 가마가 대문 안에도 못 들어서게 하고, 물을 끼얹는다 불을 싸 던진다, 교군꾼들을 작대기로 후려갈긴다 하면서 한사코 막는 바람에 하릴없이 가마 머리를 돌리고 하였었다. 그러나 진주는 단념을 아니하였고, 내일이 또 가 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날이었었다. 새서방 준호와 언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준호는 사약인 줄만 알고 집어다 마신 것이 실상 멀쩡한 가짜였었다.

비상도 사약도 아니요, 쓰디쓴 금계랍이었다. 그러나마 초학도 아니 떨어질 적은 분량의……그래서, 에이 내가 좀 죽어버릴걸 하고 일껏 사약을 마셨다는 것이 하나도 죽어지지는 않고, 모친 박씨부인은 옆에서 갖은 핀잔과 구박을 주어쌌고 하여 결국 망신만 톡톡히 하고 만, 그야말로 초학 방예를 한 꼴이었었다.

진주가 두 번이나 그렇게 도로 쫓겨온 뒤로는 준호는 인제는 새댁이 영영 오지 아니하는 사람이거니 하고 낙망을 하였다. 그러나 그래도 혹시……하는 여망에 새댁의 눈치도 볼 겸, 또 무한 그립고 한 정에 준호쯤으로는 정히 결사적이랄 모험을 감히 하여 학교에 가는 책보와 점심을 들멘 채 처가엘 달려왔었다. 그것이 바로 보름 전이었었다.

말은 아니하여도 준호의 그 속을 못 알아차릴 진주가 아니었다. 선뜻 교군을 차려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떠났을 것이로되, 동행이 되면 준호의 처가 행보를 박씨부인이 기수 챌 위험도 있고 겸해서 아버지의 제향이 앞으로 임박한 터라, 이왕 그러면 제향이나 보고 이튿날 어김없이 가마고 단단 언약을 한 후에 준호만 그날로 먼저 돌려보냈었다. 다만 하루라도 묵고 가게 하고 싶은 생각이야 간절하나 당일로 회정을 시켜야만 일이 탄로가 아니 나겠어서 늦은 점심 대접하여 즉시 네패 교군에 태워 해전으로 향교골 육십 리를 동구 밖까지만 대도록 신칙하여 떠나보냈었다. 그러고서 지금 내 일이면 세 번째 ── 보나마나 또 쫓겨오기 십상인 ── 길을 떠나려던 참인데 그 소식이었었다.

8[편집]

이튿날 아침.

비로소 사연을 안양오라비창수(昌洙)는 세 길이나 뛰면서, 인제는 더 참지 못하노라고 동네 두레꾼을 몰고가 남가네 집을 도륙을 놓든지 당장 재판을 걸어 법을 맛보이든지 하리라고 들이 야단을 쳤다.

송심당노인은 일을 그렇게 혈기대로만 행하는 법이 아니니라고 양손자를 진무시킨 후 우선 사람을 놓아 사실의 진가를 확실히 알아오도록 하였다.

석양에 돌아온 회보는 지난 밤 돌쇠 어멈이 전한 바와 완전히 내용이 일치하였다.

이로부터 진주는 인생의 첫출발을 낭패당한 고민과 그리고 장차 몸을 어떻게 처하는가 하는 향방이며 결심이며 계획 같은 것을 생각하기에 답답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미구하여 해가 바뀌었다.

드디어 진주는 인생을 새로이 출발하기로 결심을 정하였다. 당연한 결심이 었었다.

결심은 비교적 쉬웠다. 하나 그를 행하자 함에는 우선 마음부터가 이미 한 번 출발하였던 인생 ── 결혼 ── 으로써 생겨진 모든 결연의 정리(情理) 를 깨끗이 끊고 씻고 하고서라야 될 일이었다. 큰 용기와 강단이 필요하였다.

또 어떠한 방법으로써 새로이 출발하여 나아가는 방법을 삼느냐 하는 그 방법이 또한 졸연치 아니한 문제였다. 우황 향방에 이르러는 대단히 막연한 것이 있었다. 만약 향방과 방법을 그르친다면, 일껏 새로운 출발도 결국 새로운 실패를 장만하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었다.

모름지기 향방과 방법을 잘 정할 수 있는 수단 즉 능력이 무엇보다도 먼저 있어야 할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 능력인즉은 학문으로부터 우러나는 식견(識見)이 곧 그것임도 깨달았다.

정초의 어느 날 밤, 진주는 마침내 양오라비 창수도 있고 한 자리에서 할머니한테 신학문 공부나 좀 하여볼까 한다는 뜻을 말하였다.

할머니와 창수는 다같이 한마디에 찬성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네가 공부를 가겠다면 학비 같은 것은 아무 염려 없도록 하리라고 하였다.

창수는 시방 즉시 서울로 공부를 떠나기보다는 얼마 동안 기초공부의 준비가 필요할 의견을 말하였다. 네 나이 열아홉. 한문 문필이야 넉넉하다 하겠지만 아이우에오도 모르지 않느냐. 그리고 서울 가서 중학 정도의 학교에는 들기가 어려울 것. 기껏 조무래기 틈에 끼여 가나부터 배우게 될 터. 치사히 그러느니 집에서 보통학의 여선생을 데려다 기식(下宿[하숙])이라고 시키면서 한 일 년이고 이태 동안에 사 년 하는 보통학교 과정을 속성으로 익히게 하여라. 그래가지고 비로소 서울로 간다면 이태나 삼년이라는 것은 우선 얻는 것이 아니겠느냐?

매우 지당한 의견이었다. 진주는 이 울적한 공기 속으로부터 당장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만은 미흡하였으나 할머니도 창수의 의견을 옳게 여겨 권이 고 하여서 그대로 좇기로 하였다.

다섯 해의 세월이 흐르고 경신(庚申) 대정 구년(1920)이었다.

8. 危機[위기][편집]

1[편집]

좁다란 뜰에 이것저것 골고루 가꾼 화초 가운데 한 그루 개나리(辛夷花[신 이화])가 노란 꽃잎을 방긋방긋 뿜기 시작하였다. 완구히 봄이었다.

곳은 북부 가회동 긴 골목을 취운정(翠雲亭) 무너져가는 문앞 가까이까지 올라가 바른편 바로 길 옆으로 언덕배기에 있는 진주의 거처…… 안방과 마루와 건넌방이 있고, 반간짜리나마 부엌이 있고, 안채와의 사이를 판장으로 막고 하여 딴채같이 된 이 사랑채를 진주가 매삭 팔 원씩에 세 얻어 든 것이 그가 서울로 올라오던 해 ── 무오년(戊午年) ── 늦은 가을이었고, 그러고서 이에 신유(辛酉 : 大正[대정] 10년 :1921) 삼월이니 어느덧 이 집에서 네 번째 맞이하는 봄이었었다. 동시에 학창(學窓)을 마지막 떠나는 봄이었다.

식구라야 잔심부름도 시키고 학교에도 간 사이에 집도 보게 하고 하느라고 시골서 데리고 와서 있는 계집아이 옥단이와 단 둘이뿐…… 그 옥단이마저 오늘은 안집에서 동물원(창경원) 구경을 간다는 바람에 모처럼 따라보내고 없고 진주 혼자 집에 있어, 지대가 또한 한적한 지대라 집 안팎은 소년같이 긴 봄날에 산이 아니라도 태고처럼 고요하였다.

한낮이 훨씬 겨운 햇볕이 툇마룻전에 맑게 드리웠다. 따사하고 그 맑은 햇볕을 쬐면서 진주는 마룻전에 걸터앉아 뜰의 개나리 꽃핀 양을 우두커니 바라다보고 있다.

스물네 살…… 일찌기 열여덟 살 적 애련튼 소부의 모습은 옛말이요, 인제는 얼굴과 몸매가 한가지로 활짝 다 피어 한 사람의 완전히 성숙한 여자였다.

약간 나이보다 두어 살 어리어는 보였다. 또 본시 청초한 체질이어서 꽃이라면 바위 틈의 한 떨기 진달래꽃일지언정 모란꽃같이 푸짐하고 번화함은 없었다. 그러나 그 윤나는 살결이며 침착한 혈색이며, 허리로부터 담쏙 부 풀어 내려간 곡선 하며, 역시 숨길 수 없는 것은 제물의 성숙이었다.

학업도 예정한 대로는 아무려나 마치었다. 이태 동안 보통학교 과정을 속성으로 익혀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이내 ××여자관의 중등과에 들어 삼 년의 기한을 치른 후 한 장의 졸업증서를 받아들고 며칠 전에 교문을 나왔었다. 그리하여 비록 중등 정도에 불과한 것이기는 할값이라도 학문에서 오는 지각 또한 그의 열여덟 살 소부적의 그것에 비길 바가 아닐 만큼 무던하여 진 것이 있었다.

이리하여 몸도 지각도 다같이 충분히 성숙이 된 진주였었다. 써 그는 일찌기 정하였던 바에 좇아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비로소 착수할 아침을 당한 것이었었다.

새로운 인생의 출발 그것은 매양 새로운 결혼이어야 할 것이었다. 물론 진 주는 노상 새로운 결혼으로써 그의 새로운 출발의 전제를 삼은 것이 있었음은 아니었었다. 그러나 여자가 한번 결혼에 실패를 하고 나서 새로이 인생을 출발함에 있어 수도원의 수녀가 된다는 둥 특별한 조건 즉 독신생활로써 방법을 삼는 사람이면 모르되, 일반으로는 새로운 ── 또 한번의 ── 결혼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런 길일 것이었다.

진주도 매양 스스로가 의식하고 아니하고를 떠나 이 자연한 길을 향하고 서서 있었다.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가 들리더니 지친 일각문을 밑치면서 머리끝부터 발부리까지 말쑥하게 새것으로 차린 청년신사 하나가 서슴지 않고 척 들어선다. 손에다는 깜장 손가방을 들고.

2[편집]

오영당(吳永逹[달])이라고 이 봄에 ××의학전문을 졸업한 햇물의사였다.

안집 안주인의 친정 조카뻘이 되는 사람으로 자주 왕래가 있어 진주도 안면이 노상 생소치 아니하던 터인데, 그러자 한 월여 전에 진주가 가벼운 중이염(中耳炎)을 알아 ××의전병원엘 갔더니 오영달이가 마침 마지막 실습을 그 이비인후과에서 하고 있었다.

중하나 경하나 간에 병자에게는 안면 있는 사람을 병원 안에서 만나기 같이 반갑고 안심스런 것은 없는 법이어서 진주도 깜빡 그가 반가왔었다.

오영달은 진주가 반가와하는 이상으로 반가와하였다. 평일에 마음 가운데 한 점 진주를 단지 지나가는 사람으로 보고 말지 아니하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영달에게 한번 더 반갑기는, 진주의 치료가 다행히도 저에게로 돌아온 것이었었다.

담임 교수의 진단과 처치의 지시에 좇아 오영달은 아주 열심히 진주의 귓속을 치료하여 주었다.

사흘째 병원엘 가던 날이었다. 오영달은 배웅하는 체 복도로 따라나와서 그리 대단한 기계나 약품이 필요한 바도 아니요 하니 날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면서 통원을 하기가 번폐스럽겠고 무의미도 한 노릇이겠은즉, 차라리 자기가 하루 한차례씩 오후에 들러서 치료를 하여 주도록 하마는 제언을 하였다.

진주는 남의 그러는 화락한 호의와 친절이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절을 하자니 면을 보아 차마 박절하지 못하였다. 할 수 없이 일후 사례나 후히 하려니 하고 응락을 하였다.

그 뒤로 오영달은 하루도 빠짐이 없이 오후면 꼬박꼬박이 와서는 치료를 하여 주곤 하였다. 덕에 진주는 날마다 몇 시간씩은 학과를 궐하여가며 통원을 한다는 손을 보지 아니할 수가 있었고, 병도 순조로이 나아 요새 몇 차례는 하루 걸러큼씩 치료를 받아오던 참이었었다. 일변 그러는 동안 둘이 의 사귐은 훨씬 가까와서 단순히 의사와 환자라는 교섭에만 머물지 않고 사이가 자못 임의로와진 것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영달은 건들건들 그렇게 인사를 하는 얼굴이 연방 싱글벙글하면서, 진주 가 마주 일어서는 앞으로 와 선다.

오 영달……그는 해맑고 얇은 얼굴이며 연한 표정이며가 경쾌 명랑한 재자(才子)는 될지언정 근량 있는 군자(君子)는 우선 아니어 보인다. 그런데다 나서 처음으로 쓴 연회색 중절모자에다 바늘 쏙 뽑은 회색 신사복과 같은 빛 같은 감의 봄 외투에다 사슬도 닳지 아니한 깜장칠 피코 단화에다, 일습을 이렇게 새것이요 새로운 몸치장을 하여가지고는 그 새롭고 화려함을 칭찬받고 싶은 듯이 서서 제 위아래를 씻어보면서, 여자를 보면서 부절히 웃음이 흩어지는 양은 흡사히 암컷 앞에서 나래를 자장하는 공작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 없지가 못하였다. 그야 오랜 학생의 굴레를 벗고 나선 기쁨에 가 사 뜻있는 여자의 앞이 아니라도 그만쯤 기분이 달떠하기야 예사요, 그다지 흉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만.

늘 그 시꺼멓고 낡아빠진 교복에다 뀌어진 사방모짜리의 오 영달만 보아오던 진주는 그의 이 별안간 새롭고도 화려한 몸치장이 미상불 사람이 한결 돋보여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3[편집]

‘사람은 의복이 날개라더니 그 말이 옳은가 보다!’ 진주는 속으로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가

“길에서 썸뻑 만났드라믄 몰라뵐뻔 했어요!”

“허허허허!……마악 나서는 참인데 양복집 사람이 가지구들 오겠죠. 그래 부랴부랴 갈아 입군 시방……어떻게 촌 쟁퉁이 같지나 않습니까?”

“저야 무얼 알아요?…… 그래두 퍽 좋아뵈는데요?”

“어떤지 엉성한 것 같구 자꾸만 어색해서……”

처음으로 교복을 벗고 양복을 입은 때의 아무나 그러는 솔직한 느낌이었다.

명주털이 송알송알 그 다칠까 무섭게 연하고 보드라운 진주의 귓부리를 쥐었다 놓았다 아낌없이 주무르면서 몇 번이고 귓속을 후벼낸다.

진주는 이 남자의 향의가 심상치 아니한 것임을 진작부터 모르지 않는다.

그런 남자의 더운 입김을 바짝 볼에다 받으면서 진주는 남자와 같은 열도(熱度)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약간 심장의 높이 뜀이 없을 수가 없었다.

치료는 간단히 얼른 끝났으나 언제나 마찬가지로 오영달은 이내 돌아가지는 않는다.

“한번쯤 더 보아 드리면 아주 다 나으시겠읍니다.”

“그동안 참 하두 수고를 해주세서!……”

둘이는 나란히 마룻전에 걸터앉아서 이야기였다.

“그렇게 수고루 여기시는 것이 전 늘 맘에 섭섭해 못하겠어요. 범연해 그 러시는 것 같아서!”

“아이 참! 치하두 못허게 허셔!”

“수고라커니 치하니 하는 것은 친분(親分)의 농도(濃度)에 반비례하는 법이랍니다.”

“………”

진주는 반대로 긍정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저러나 인제 낼모리 한번 더 와 치료해 드리구 나면 그땐…… 전 제일에 그 일이 섭섭해서 생각만 해두……”

“종종 놀러두 오시구 허시지, 치료 다 끝났다구 아주 발 끊으실 생각이신 감?”

“의사 오영달이 필요하신 것이지 여니…… 무어랄까…… 친구? 동무?…… 그런 걸룬 오영달이 그대지……”

진주는 속으로 남자답지 아니하게 변사가 있고 속이 옅다고 생각하면서 흔연히

“무슨 그럴 리가 있에요?”

“………”

오영달은 우두커니 발끝을 내려다보고 앉았고.

“아뭏든 인전 졸업두 허셌구 저렇게 정말 선생님이 되구 허셌으니깐 병원을 내시겠죠?”

“………”

“더 연구를 허시는지……”

“것보담두 먼점 해결을 해야 할 더 급한 문제가 하나가 있답니다. 집에서는 시골루 내려와 개업이나 하라구 조르구. 전 실상 졸업이라시구 했다지만 무얼 알아요? 생사람 잡기 꼬옥 알맞죠. 그래, 동경제대 같은데라두 가 한 삼사 년 더 공부를 할까 하는 생각인데……”

종시 발끝만 내려다보고 앉아 푸뜩푸뜩 이야기를 하던 오영달이,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그런 것은 다 둘째 세째 문제구요……”

하더니 어느덧 상기된 두 볼, 정채 나는 눈으로 진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다본다. 바라다보다가 별안간

“진주씨!”

하면서 덥석 진주의 손길을 잡는다.

4[편집]

남자의 평소의 뜻을 짐작하는 것이 없지 않던 터라 크게 당황할 것은 없어도, 그러나 여자요, 겸하여 처음으로 당하는 노릇이어서 얼굴이 확 달고 붙잡힌 손이 떨리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아이! 노세요!”

“저와 결혼해 주십시요!”

“………”

“변변치는 못한 남자올시다. 그렇지만 목숨이라도 다해서 진주씨 사랑합니다! 그러구 진주씨 한분 고생 아니 시켜 드릴 능력은 있읍니다.”

“………”

“네? 진주씨?”

“전 몰라요!”

“그럼 싫으십니까? 반대십니까?”

“이 손 노세요. 남이 보드래두……”

“대답해 주세요! 결혼다겠다구 대답해 주세요!”

“졸지에 대답을 어떻게 해요?”

“생각을 해보서야 하시겠어요?”

“차차 두구……”

“진주씨?”

“네?”

“믿겠읍니다. 믿구 기대리겠읍니다. 언제까지구 전 기대리겠읍니다. 전 만일 진주씨가 아니라면, 전 영영……”

“………”

“믿겠읍니다. 꼬옥 믿구 언제까지구 전 기대리겠읍니다. 네? 진주씨.”

“너무 그러실라 마세요. 사람마다 마음 쓰이는 것이 고르지 않구 또 제마다 다른 사정이랑 곡절이 있기루 마련인데, 그렇게 믿구 기대리시다 부질없이……”

“아니, 아닙니다. 그럴 리가 절대루 없읍니다. 전 믿습니다. 전 믿습니 다. 믿는 것이 있어요…… 기대립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더 놀다 돌아가는 오 영달을 문앞까지 배웅하면서 날새 저녁진지나 “좀 잡수시게 허고 싶은데…… 날짠 다시 알려 드리겠지 만서두…… 그동안 서울 기시겠죠?”

“있구말구요!”

반가와서 선뜻 그렇게 대답을 하기는, 결혼을 승낙할 자리를 베푸는 것이 거니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한 몇 끼 굶구 있다 오겠읍니다.”

“어쩌나! 진지밖엔 없는데!”

“아, 밥이면 그만이죠?”

“참, 약주 잡수시든가요?”

“무언 못 먹겠읍니까? 진주가 주시는 거라면……”

“그럼 날짠 다시 알려 드리께시니 부디 와주세요. 안채 기신 추 선생두 나오시구 헐 테니깐……”

“추군요?”

물으면서 기색이 약간 시무룩하여진다. 저 하나만 청하여 저녁이라도 대접 하면서 단출히 결혼 이야기를 승낙하려는 뜻이거니 하였던 것인데, 막상 또 하나 다른 인간이 있다고 하니 실망이 될 수밖에. 항차 무엇으로 보나 와락 직성이 서로 맞지 아니하는 위인이리요. 더우기 진주를 두고 적지 않이 질투까지 느껴오던 그 위인이리요.

오영달이 돌아간 지 얼마 있다 문제의 인물 추영산(秋映山)이 동저고리 풀 대님 바람에 뒷짐 지고 골통대 비뚜로 물고 어칠어칠 진주에게로 나왔다.

오 영달의 친구요, 그의 반연으로 안채의 건넌방에 하숙을 하고 있으면서 대 가 ××의 문하에 다니며 그림을 배우는 청년이었고, 이미 독자한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다.

5[편집]

추영산은 오 영달과는 전혀 대척적인 인물이었다. 그 넓고 두투름한 얼굴은 스물일곱 살이라면 곧이가 아니 들릴 만큼 노티가 난다. 턱으로 볼로 수염 은 닷푼씩이나 비어졌다. 머리는 참새 둥우리다. 동저고리 바람에 풀대님한 옷에는 손이랑 온통 물감투성이였다. 이런 차림새와 생김새가 오 영달의 말 쑥함에는 비길 바가 아니요, 한 사람의 탁객이 완구하였다.

추영산은 미상불 어느 의미로는 탁객임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노상 그런 탁객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지저분스레 보이지 않는 것이 정녕 있었다. 다름 아닌 평상에 깊은 사색과 아름다운 감성에 잠기어 사는 천재적인 예술인 에게서만 볼 수 있는 청아한 운기(韻氣), 이것이 그의 얼굴에서 빛나고 있은 때문일 것이었다.

진주는 이 추영산이 마치 나이 지 루 룸한 친 손위 오라비처럼 무관하고 좋았다. 속은 있는 대로 다 주어도 별 허물이 없고, 근심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가 타악 들얹고 싶게 미쁘고 임의로왔다. 모델 삼아 초상을 한장 그리겠노라고 청을 하였을 때에 동양화라 옷을 입은 채 포즈를 빌리시라곤 하여도 진주 같은 조심성 있는 여자로는 졸연치 아니한 일이었으나 그것이 추영산의 말인고로 하여 선뜻 승낙을 하였었다. 미루어진주의 추영산에의 신뢰를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었었다.

아까 오영달이 때처럼 둘이는 봄볕 따사히 드는 툇마룻전에 가 나란히 걸터앉았다.

추영산은 불 꺼진 골통대를 씩씩 빨다가 혼잣말로

“이놈, 이 불 아니 그어대구두 담배 먹는 기계 좀 있으면 좋겠드라!”

“그렇게 성가신 노릇, 차라리 담밸 피우지 마시죠?”

“간혹 진주씨가 손수 성냥을 그어 대주는 기회가 없었다면 아닌게아니라……”

진주는 웃으면서 성냥을 가져다 그어 대어준다.

“참, 그림은 하마 다 되셨죠?”

“아직두 한 이삼 일 더 있어야…… 급하십니까?”

“그림이 다 되믄 그 치하두 할 겸, 또 오영달씨가 졸업을 허셌구, 그동안 다니시믄서 치룔 해주시느라구 수골 허셌으니깐 그래 두 분을 청해서 저녁 진지라두 잡숫게 허구 싶어서요.”

“좋지요. 날라컨 밥보담두 막걸리를 듬씬 먹게 해주십시요.”

“해필 막걸리세요?”

“가루누룩에 찹쌀루 유자랑 국화랑 넣구 빚은 진짜 약주루 밥알 동동 뜨는 전국이 아닐 바엔 막걸리가 되려 낫습넨다.”

“그 술 내력만 외우재두 큰 공부겠네!”

“………”

“무얼 혼자 또 생각허시나봐?”

“거 남의 졸업 축하두 좋지만, 진주씨, 여보?”

“네?”

“졸업두 했구…… 또오 올해 스물넷? 그렇지요?”

“네.”

“그러니 어서어서 인제는 좋은 신랑 골라 시집을 가야 아니합니까?”

“온! 그게 그리 걱정이세요?”

“혹시 이런 추영산이라두 상관없다시면 이내 택일해서 성례 지나구요.”

처음부터 끝까지 뜰앞으로 한눈을 주고 앉아서 남의 말 하듯 그러는 것이었었다.

6[편집]

진주는 약간 볼이 화틋거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웃음이 나와 손으로 입을 가리어야 하였다.

“나는 구변두 없구, 또 그런 이야기를 잔뜩 에둘러 은근히 하기두 싫은 승미요 해서 자연 말이 승거웠으리다만, 뜻 그만하면 내 속은 짐작하셨을 테니깐 잘 생각이나 하십시요. 아니 참고나 하십시요.”

그러고는 일어서서 뒷짐 지고 어칠어칠 일각문으로 나가버린다.

미상불 수작이 싱겁기는 하였다. 그러나 진주로는 추영산의 방법이 싱거울 지언정 내용조차가 싱거운 바는 아니었다. 추영산이 평소에 자기에게 향의 가 골똘한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글쎄?……’ 진주는 혼자 기둥에 가지여서서 곰곰 생각이 깊는다.

오영달이나 추영산이나 사람과 색깔은 다를지언정 한가지로 진실하게 진주를 연모하는 마음인 것은 사실이었다. 착실한 청년들이기도 하였다. 써 건실한 연애라고 하여 부족할 구석이 없었다.

진주는 막상 연애토록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사 진주가 두 사람 중의 한 사람과 마주 연애를 열렬히 하며, 그러다 결혼을 하며 하기로소니 진주로 하여금 그것을 금한다거나 불순하다고 폄을 할 자는 이 천하에 없으리라.

한번 결혼이라는 걸 하기는 하였었다. 그러나 그 결혼은 이미 깨끗이 청산이 되었다. 민적도 도로 갈랐다. 저편에는 새사람까지 들어섰다. 아무 결련 이 들 것이 없는 몸이다. 하물며 말이 결혼이었지 고스란히 처녀요, 이에 스물네 살이라는 어리지 아니한 나이에 이르렀다. 마땅한 사람을 선택하여 결혼을 하기에 하나도 걸릴 것도 부족할 일도 없었다.

진주는 당연히 오영달이나 추영산 두 사람 중의 하나와 결혼을 할 수가 있 고, 하여야 마땅하였고, 사실로 그리할 생각이 일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 영달과 추영산 두 사람의 영상이 감고 생각하는 눈앞에 나란히 나타날 때에, 그럴 때마다 멀찍이 뒤로 또 하나 의미하게 나타나는 영상…… 그것은 소년 준호의 얼굴이었다. 꿈속같이 아련하면서도 가슴이 저릿하게 아프고 애달픔이 솟는 추억이었다. 소위 객관적 조건으로는 아무것도 새로운 진주의 결혼에 구속이나 구애가 될 것이 없으면서, 오직 당자 스스로가 마음 가운데 준호라는 존재를 못 잊었고, 민망한 생각이 들고 하는 이것이 거리 끼는 일이라면 유일한 거리끼는 일이었었다.

매년 여름방학이면 할머니를 위하여 고향엘 내려가곤 하였는데, 그럴적마다 풍편에 소식은 들었었다. 그러나 그 소식이라는 것이 구구하여 잘 있다 고도 하고 늘 앓는다고도 하고, 새로이 장가든 색시와는 금슬이 퍽 좋다고 도 하고 소박을 해싸서 나가버리고 없다고도 하고, 서울 가서 어느 중학교에 다닌다고도 하고, 시골 어떤 농업학교에 다닌다고도 하고. 도무지 대중을 할 수가 없었다.

오 영달과 추영산 누구를 택함이 가하냐를 생각하려던 것이 생각이 그만 준호에게로 번지어 가지고 진주는 얼마를 서서 그러다 문득 손가락을 꼽아본다.

‘열여덟 살…… 많이 자랐을 테지!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있는지. 서울 와 서 있다면 길에서라도 혹시 만났으련만. 만나니, 차라리 아니 만나기만 못 한 노릇이지만……’ 여자의 소위 첫정이란 이다지 면면한 것이 있었다.

7[편집]

닷새가 지나서…… 황혼 무렵이었다.

오 영달과 추영산을 대접하는 잔치도 거진 파 물이 되어가는 참이었다.

실상 손들이 오기를 일찌감치 왔고 주인도 일찍 서둘러 진작 벌써 끝이 났을 판이었었다. 한 것을 원체 술을 즐기는 추영산에다 술에 들어서도 승벽을 내지 아니할 수 없는 오영달이 진주의 앞에서 맞다들린 자리였다. 식상 에에 이미 취하였고 그 위에 저녁을 먹었고 그러고 나서 시방 남은 술을 마저 마시기를 겨루어하고 있던 것이었었다. 날씨가 이상히 훈훈하여 자리는 널찍한 마루에다 벌이었었고. 해서 일각대문을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면, 아 무고 낭자한 이 좌석이 얼른 눈에 뜨이도록 되었었다.

처음에는 점잖스럽게들 천하사를 논란하고 세계대세를 말하고 하였다. 과 학을 이야기하고 예술을 비판하였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토론도 하였다.

팔을 부르걷고 마루청을 치면서 무엇을 비분강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 안에 술은 취해오고 화제는 바닥이 났다. 농담과 험구가 나오는 것은 자연 한 순서였다.

“여봐라, 추가야?”

“이놈! 한살이 위라도 연상은 연상이어든……”

“세상에 성이 그리두 없어서 그래 더러울추자 추가란 말이냐?”

“그 잔 먼점 비구……”

“오냐…… 또오, 이왕성이 추가여들랑 몸채림이나 정갈히 해야지? 대체 저 무슨 탁객짓이란 말이냐…… 옜다 잔 받아라.”

“네 듣거라. 옛시조에도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 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김생은 네야 긴가 하노라. 응?”

“그래서?”

“내 비록 외양이 탁하기로니 속조차 탁할까?”

“속이 탁하기에 그것이 밖으루 나타나 저절루 겉이 탁해지는 것이지.”

“겉이나 탁한 나를 탓하느니, 병자의 고름이나 긁으면서 구복을 도모하는 너를 한번 돌으켜볼 일이야.”

“의는 인술이라니, 그 고루한 환쟁이 같으리?”

“가난한 환자가 오면 왕진 갔소 하라고 시키는 인술? 치료비가 암만이니 가 가지고 와서 치료를 받으라고 쫓는 인술?”

“일 원 가지고 오면 꼭 일 원짜리로, 백 원 가지고 오면 백 원짜리로 그림을 물감 달아 팔아먹듯 하는 너 이 화쟁이는? 신성하다시는 예술을 저울질 해 팔아먹는 너이 환쟁이 말이다?”

행주치마 거뜬히, 옥단을 데리고 손님 시중에 한동안 바빴던 진주는 이윽고 한가함을 얻어 넌지시 좌석 머리로 비껴 앉아 두 사람의 허물없은 수작을 미소하며 듣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 속으로는 생각이 두루 많다.

‘……저 양반한테 이 추씨의 침착하고도 대범스럼이 있다면?……’ ‘그렇거나 이 양반한테 저 오씨의 시원시원하고 활발스런 기상이 있거나……’ 종종 되풀이하던 이런 생각도 자연 다시 또 나기도 하였다.

하여간 이 좌석이 진주는 두 사람 가운데 누구든지를 마음에 아주 작정하 여야 하는 좋은 기회였었다.

9. 義[의][편집]

1[편집]

전등이 있는 집보다 없는 집이 많은 때라 거리로 석유장수가 도부를 돈다.

땅거미가 내리려고 할 무렵, 그 황혼처럼 심란한 음성으로

“세기 사려.”

하고 길게 외우면서 문앞 거리를 지나가는 석유장수 영감, 그의 무단히 심란한 ‘세기 사려’소리는 황혼의 구슬픈 심회를 가뜩이나 돕게 하는 것이 있어 저물녘 계동, 재동, 가회동 일판의 한 괄시 못할 거리의 정조였다,

“세기 사려.”

스러질 듯 외우면서 내려오는 그 석유장수 영감과 엇갈리어 중학생 둘이 가회동 막바지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준호와 윤석이었다.

윤석은 그새 제 길로 한 길이나 자라 아주 헌다헌장부가 되었고, 준호도 약질은 여전한 약질이었으나 나이가 역시 나이라 키도 많이 자랐고 몸피도 조금은 불고 하여 제법 인제는 멀끔하였다. 그러나 예와 다름없기는 그 침울한 기상이었다. 때마침의 황혼처럼 어둔 얼굴은 고개 푹 숙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양은 여전한 전일의 준호 그였었다.

두 소년은 작년 봄에 같이 서울로 올라와서 준호는 ××학교에 들고, 윤석은 약도 팔고 만두도 팔고 하면서 고학으로 ××학교의 야학에 다녔다. 준호의 종종 보조도 적지 아니하였다.

준호는 며칠 전에 삼청동 하숙에 들른 윤석더러, 지금 하숙집이 너무난하고 시끄러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하니 다니면서 본 중에 조용한 염집이 있거든 천거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윤석은 그새까지는 별로 주의하여 보지 아니하였으니 앞으로 잘 유념하여 쉬이 한 군데 물색을 해주마는 대답을 하고 돌아갔다. 그랬다가 오늘 조금 아까 일부러 와서 가회동 아무 번지요, 바로 취운정 문앞 근처인데 퍽 조용 한 집 하나가 마침 방이 났다는 이야기를 동무에게 들었노라 하면서 가보지 아니하려느냐고 하였다.

준호는 선뜻 같이 나서 시방 그 가회동 아무 번지란 집을 찾아가고 있는 길이었었다.

“저게 석유장순가?”

이맛살을 다뿍 찌푸리고 준호는 지나친 석유장수 영감을 도로 돌려다보다 가 묻는다.

“응. 넌 첨 보니? 난 가끔 만난다…… 괴짜야!”

‘세기 사려’하고 생각난 것처럼 또 외우며 내려가는 소리가 감감하여 진다.

“빌어먹을 놈의 장수, 청승맞기두 허네!”

준호는 곧 울상을 하면서 혼잣말로 두런거린다. 가슴 가운데 한(限)이 있 는 소년 준호는 이렇게 감성(感性)이 연하였다.

집은 이내 찾았다. 처음 안채에 물었더니, 어제 벌써 작정이 되었노라면서 사랑채에도 건넌방이 비었으니 혹시 물어보라고 하였다. 허실 삼아 사랑채의 열린 일각대문으로 들어섰다. 전등불 켜진 마루에서 주인인 듯한 동저고리 바람에 풀대님한 사람이 양복 입은 손님과 술을 먹고 있었다.

준호가 토방 앞으로 다가가 모자를 벗으면서 학생 칠 방이 있느냐고 물었다.

“학생 칠? 방?……”

주인(인 듯한 사람)은 혼자 그러면서 고개를 꺄웃하더니

“얘, 옥단아?”

하고 부엌으로 대고 부른다.

주부인 듯, 그런데 장히 귀에 익은 음성이

“옥단이 심부림 갔어요.”

하면서 불빛을 안고 나타났다.

“아이머니!”

“진 진주!”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진주와 준호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서로 이렇게 외친다.

2[편집]

준호의 모친 박씨부인이 그 고집 그 완고에 준호로 하여금 머리를 깎게 하고 서울로 공부를 보내고 한 것은 종시 서울 공부며 신학문이 그다지 탐탁하여서가 아니었다.

보면, 시골구석에서 한문이나 읽고 상투 탄탄 짜고 한 자제들은 머리 깎고 복장(校服[교복]) 입고 서울 가서 신학문 하는 자제들에 비하여 무엇인지 모를 한풀 꺾이는 것이 벌써 드러나고 있음을 완구히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듣건댄 쫓은 며느리 진주가 서울 가서 신학문 공부를 한다고.

같은 사나이끼리라도 척을 진 사이에 내 자식이 저편에게 풀이 꺾인다는 것은 분할 노릇이거든 항차 박대하여 쫓은 며느리인 여자 사람한테리요. 박대 받고 쫓겨간 며느리는 신학문 서울 공부를 하고, 개명을 해서 잘 되어가지고는 천하를 거칠 것 없이 내로라고 얼굴을 들고 돌아다니는데, 내 자식은 사나이자식이 시골 구석에 그대로 파묻히어 고루하게 명색도 성명도 없이 살면서 그 앞에 나가 고개도 들지 못할 지경이란다면 참으로 가슴을 칠 일이었다.

서울은 돈이 많이 드는 곳이요, 사람 방탕하기 쉬운 곳이었다. 더구나 ‘그년이’가서 있으니 혹시 저희끼리 만나든지 한다면 장히 위험스런 노릇이었다. 해서 두루 주저스럽고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으나 그것보다는 저 것이 더 절박한 사정이라 마침내 손수 상투를 잘라주면서 서울 공부를 승낙 하였던 것이었었다.

준호는 그 야속한 상투를 깎는 동시에 그 가혹한 모친의 감독으로부터 벗어나 소원이던 서울 공부가 무한 기뻤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다행키는 진주를 만나는 희망이었다. 아무리 넓다 하지만 같은 서울 장안 안이었다. 반드시 만나는 날이 있을 것이었었다.

‘새댁! 진주! 그 이쁘고 상냥스런 새댁! 자나깨나 잊히지 않던 새댁 진 주!’ 이렇게 준호는 그리운 진주였었다. 마지막 갈린 뒤로 잠시 한때도 생각을 아니한 적이 없는 진주였었다.

물론 만난다 하여도 안타까운 일이었었다. 옛날처럼 나의 새댁이며 다정스런 진주며 한 그 일리가 만무하였다. 매양 슬픈 재회(再會)요 속절 없을 것이었었다.

‘만나도 옛과 같지 아니한 사람! 영원히 다시 옛 그 사람일 수 없는 사람과의 재회!’ 뒤미처 나는 생각은 늘 이렇고 사무치는 한(恨)이 그것이었다. 차라리 아 니 만나고 말기만 못하게 애달픔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리움은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게 하였다.

일 년을 찾으면서 기다렸다. 이번 봄방학에는 진주의 본가라도 내려가 염치 불고하고 서울 처소를 물어볼까도 하였다. 언젠가 한 번 갔다가 공교로 이 문앞에서 처남을 만나(처조모였더면 막상 그럴 리가 없었을 것인데) 성미 괄괄한 사람이라

“자네 무엇하러 내 집에 오나?”

하고 면박을 주어 평생 잊히지 않는 무렴을 당하고 돌아선 일이 없었다면, 아쉰 마음에 가 물어가지고 오기라도 하였을는지 몰랐다.

아뭏든 그러던 진주를 준호는 지금 만난 것이었었다.

만나지려니 하는 것이 있으면서도 늘 한심턴 것이, 뜻밖에 꿈결 같은 만남이었었다.

3[편집]

준호의 얼굴은 빛났다. 눈에는 눈물까지 어리었다.

진주는 주르르 준호의 앞으로 달려 내려간다. 가 와락 그대로 그러안을 듯 주르르 달려 내려갔다. 진주의 눈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준호는 덤쑥 와 팔이고 손이고 부여잡을 듯이 몸이 움칫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루 위의 양복 손님과 함께 엉어주춤 일어서서 졸지의 사태를 의아한 눈과 다분히 간섭조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 동저고리 바람에 풀대님한 이 집 바깥주인 양반(인 것이 분명한 사람)을 힐끗 한번 올려다보고는, 그 다지도 빛나던 얼굴이 찰나에 극단의 절망으로 변하면서 홱 몸을 돌이켜 반달음질쳐 일각대문을 나가버린다.

영리한 진주였다. 그 기수를 못 알아챌 진주가 아니었다.

“저이가 괜히!……”

어쩔 바를 몰라 그렇게 성화하다 도움을 청하는 듯 윤석을 본다.

윤석은 진주의 시선을 냉연 물리치면서 인하여 유유히 자리를 떠난다.

진주는 빨리듯 그 뒤를 쫓아나갔다.

행길에서 윤석을 붙잡았다. 준호는 벌써 까맣게 멀리 가고 있었다.

“제발 좀 불르세요! 데리구 오세요!”

“내가 오라면 오나요? 어떤 고집인데!”

“그래두요! 저럭허구 가버리시믄 어떻게 해요? 어서 좀 불르세요!”

“얘, 준호여.”

마지못해 부르는 시늉만 하는 소리라 들리지도 아니하였거니와 들렸기로 서니 대답을 하고 돌아서서 올 리도 없었다.

“절 어쩌믄 좋아!”

진주는 하마 발을 동동 구르다 느끼면서 행주치마자락으로 눈물을 닦는다.

조금 감동이 되었던지 윤석은 볼먹은 소리로

“그애가 무엇하러 와요?”

하고 지청구를 한다. 제딴에는 언중유골이었다.

“속도 모르구 괜히 그러지들 마세요!…… 하숙이 어디에요?”

“하숙요?”

조금 더 풀어진, 그래서 엔간히 계면스런 말씨요 얼굴이요 하였다.

“좀 데려다 주세요.”

“욕 아니헐까?”

“지가 다 당허께요.”

“약을 팔러 가얄 텐데……”

“고학허시는감? 일 년치라두 다 사드리께.”

“누가 삯 받쟀나요?”

“그럼 어느 동네 몇 번진지 그거라두……”

“갑시다. 따라오시우.”

진주는 행주치마만은 그래도 벗어서 개켜 들 경황은 났었다.

준호는 하숙에 돌아와 있지 아니하였다.

윤석은 방만 가르쳐 주고 돌아갔다.

돌아가려면서 윤석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준호가 입밖에 내어 말은 아니 하여도 그동안 얼마나 진주를 그리워하였으며, 다시 만나기를 바라고 기다렸으며 하였다는 것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또 새로 장가 간 아낙은 준호가 불교를 하여 일 년 만에 제풀로 나가버렸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진주는 혼자 빈 방에서 준호의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기다린 지 반 시간도 못하여 준호는 돌아왔다.

진주는 나풋이 절을 하였다.

준호는 문치에 가 우뚝 선 채로 슬픈 것 같은 반가운 것 같은 노한 것 같은 퍽 복잡 이상한 표정으로 진주를 끄윽 바라다만 보기를 한참은 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차로 얼굴이 붉어오르고 가슴이 연해 들먹거렸다. 얼마를 그러다 별안간 좌우를 휘휘 눈에 뜨이는 대로 필통의 단도를 화닥닥 거머쥐더니 이를 악물면서 우르르 진주에게로 달려든다.

4[편집]

준호는 꿈결같이 그렇게 진주를 만나니 생각하였던 것보다도 더 반가왔다.

어안이 벙벙하였었다.

그러나 진주는 이미 남의 사람이었었다. 동저고리 바람에 풀대님을 하고 처억 손님과 앉아서 술을 먹고 있던 그 사람, 학생 칠 방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학생 칠? 방?”

하면서 고개를 꺄웃하다가

“얘, 옥단아?”

하고 부르던 태도.

“옥단이 심부림 갔어요.”

그러면서 행주치마에 주인아씨 태 선연히 부엌으로부터 나오고 있던 진주 의 맵시.

거 웬 학생 아이들이며 무슨 곡절이냐는 듯이 간섭조로 엉거주춤 일어서서 내려다보고 있던 모양.

어디로 보나 그는 그 집 바깥주인이었다. 진주의 남편 바깥주인이었다.

옛날처럼 나의 새댁이요 다정스런 진주요 할 수가 없고, 만난다고 하더라도 슬픈 재회려니 하지 아니하였던 바를 아니었었다.

만나도 옛과 같지 아니한 사람이요, 영원히 옛 그 사람일 수 없는 사람과의 재회라 하여 비극일 것으로 실망할 것이 없는 바는 아니었었다.

그러나 막연히 그렇게 진주 하나만 가지고 단순하게 옛과 같지 아니할 사람이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가, 그래서 거기에 대한 신경은 비교적 평온하였던 것이, 막상 구체적인 사실로써 ‘남편 있는 장면’을 실지로 직접 당하여 보는 마당에 당하매 충격, 그러고 절망은 상상치 못한 심각함이 있었다.

‘예라 다아 고만이다!’ 얼른 먼저 생각나는 것이 죽음이었다. 죽음…… 반가왔다.

한강으로, 전차를 타려고 종로로 향하여 걸음을 급히 하였다. 그러나 곧장 공원 뒤까지 다다라 문득 생각하니 그냥 죽어버리기가 도무지 미진스럽다.

자꾸만 마음이 꺼림하였다. 무얼 일을 한가지 저지르고서 죽어야 죽어도 후련하지 그냐 이대로는 섭섭하여 죽어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을 어떻게 저지른다는 것까지는 미처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되었던 큰일 한가지를 칵 저지르고 죽어야만 잘 죽어질 것만 같았다.

일단 발길을 하숙으로 돌이켰다. 뜻밖에 진주가 와서 있었다.

보도록에 좋고 반가운 그 모습의 진주였다. 옛 그 양자의 나의 새댁이었다. 웃지는 아니하여도 금새 방긋이 웃을 듯 다물린 입이랑. 얌전스럽게 절을 하는 것이랑.

그러나 겉뿐이지 보매뿐이지 그는 옛 나의 새댁이 이미 아니었다. 영원히 그는 남의 새댁, 남의 아낙이었다. 영원히 나에게로는 돌아오지 아니하는 남의 것이었다. 몸부림이 나게 안타까왔다. 그러나 그래도 무가내하였다.

‘이 아까운 진주에다가 그 동저고리 바람에 풀대님한 텁수룩한 작자!’ 불끈 분기가 치달으면서 눈이 벌컥 뒤집히었다.

‘오오 참!……’ 저지를 일거리를 퍼뜩 깨우쳐내었다.

가장 속시원하고 앙칼진 일거리였다. 그래야만 마음 걸릴 것도 원통할 것도 없고 비로소 잘 죽어질 성불렀다.

5[편집]

단도라야 연필이나 깎는 두어치짜리 작고 무딘 것이었으나 아뭏든 젖가슴 정통으로 겨누기는 겨누었다.

진주는 조금도 당황치 아니하고 종용자약하였다. 손끝 하나 항거함이 없이 곱다시 당할 각오였었다.

조용히 입을 연다.

“죽여서 조끔이라도 원이 풀리신다면 죽여주세요.”

“………”

“저런 당신을 잊어버리자구 마음을 돌려먹었었으니 그 죄만 해두 죽어 마땅허겠어요.”

“………”

“그렇지만 막상 아주 잊어버리지는 못했어요. 어디 잊어버려지드라구요.”

“………”

“그리구…… 부디 오핼랑은 푸세요. 이날 이때까지 성헌 몸으루 있었어요.”

“………”

“인지장사(人之將死)에 기언(其言)이 선( 善 )이드라구, 죽는 자리서 무엇 허러 빈말씀허겠어요?…… 아까 그이들 아무두 아니구 손님이에요. 하나는 제 초상화 그려준 안채에 하숙허구 있는 이, 하나는 제 귓병 댕기믄서 치료 해 준 이. 답례허느라구 청해다 저녁 대접허든 참이에요.”

“………”

“허긴 좀 더 있었으면 그중의 누구 하나한테 몸을 의탁허구 말 뻔은 했어요. 천행으루 오늘 당신을 만나 몸만은 깨끗헌 채루 당신 손에 죽는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예요. 아슬아슬두 허지! 선영 음덕이신가바요!”

눈물이 줄기져 흐르고 목이 멘다.

준호는 차차로 전신의 맥이 풀리어오다 팔이 떨어지고 하더니 마침내 손에 쥐었던 단도마저 스르르 놓쳐버리고 만다.

진주는 여전히 그대로 말을 계속한다.

“아직 가지는 아녔다구 해두 그럴 맘을 먹었었으니 당신 앞에 무슨 얼굴을 들겠어요. 그 죄두 또 죽어 마땅할 죄!”

“………”

제 죄루 죽으면서 “누는 당신이 입어 쓰겠어요? 지가 제 손으루 죽은 양으루 글자 몇 자 적어놓겠으니 지필 찾아주세요.”

“………”

준호는 견디다 못해 헉 느끼면서 진주의 아랫도리에 몸을 던지고 쓰러진다. 마주 붙어안고 소리를 삼키어가면서 오래도록 둘이는 울었다. 실컷 울고 나니 마음들이 씻은 듯 거뜬하였다.

준호가 진주를 고쳐 치어다보다가 싱그레 웃는다. 진주가 따라 웃는다.

“지가 일러루 오까요? 짐을 참겨가지구 절러루 겉이 가시까요…… 이왕 벌여논 살림이구 허니깐.”

“글쎄……”

“정 무엇허시믄 달리 셋집을 구헐 동안 며칠만 예서 더 기시든지.”

“당신 학굔? 살림할라 학교에 다닐라.”

“명색이 졸업이라시구 헌걸요. 아니 했기루 또 학교 다니자구 살림 폐허겠어요?”

준호는 몰라도 진주는 어떻게 생각하면 태도가 심히 발작적이요 부자연스런 혐의가 없지 못하였다.

6[편집]

진주로는 그러나 노상 일시의 발작적이거나 부자연스런 거조가 아니었다.

아까 처음 준호를 섬뻑 만나 그로부터 지금까지 죽 가져온 동작과 태도와 그리고 마침내 준호의 아낙으로 복귀하고 마는 사실…… 이 일련의 행동이 진주는 저절로 다 그래진 노릇이었다. 조그마한 억지와 마지못해 함이 있었거나 잠시의 주저와 상량이 있었던 바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물이 흐름 과 같이 자연스런 행동이었었다.

이미 준호를 마음에서 지우기로 하였고, 영상은 희미하여졌고, 불원하여 새로운 결혼을 할 조건이 익었고 그렇던 진주가 졸지에 무슨 연유로?

여자의 소위 첫정이란 곡진도 하려니와 또한 이론을 초월한 마술적인 힘을 가지는 자이었었다.

섬뻑 준호가 그렇게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순간 진주는 저도 모르게 여섯 해 전 그 당시로 돌아가지고 말았던 것이었었다. 완전히 여섯 해 전의 상냥코 다정스럽던 준호의 새댁이요, 얌전한 며느리요, 애련한 시골 소부요 한 그 당시의 진주로 요술처럼 돌아가졌었다. 그 당장에서고 평일이고, 그러려니 하고 전혀 마음 먹은 것이 있던 바도 아니었다. 그러는 것이 옳다고 여기거나 그리하여야 하느니라고, 누가 시킨 일도 없었다. 그저 제풀로였었다. 곧 여자의 첫정의 잠세력적(潛勢力的)인 힘의 조화였었다. 그것이 있고 그리 할 수가 있음으로써 여자는 한결 그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여섯 해 동안의 진주는 진주 아닌 진주, 일시 꿈속의 진주였었다.

여섯 해의 긴 꿈은 깨이고 진주는 정말 진주, 생시의 진주로 돌아간 것이었 었다.

정말 진주, 꿈을 깬 생시의 진주였으니, 그와 같이 전과 다름없은 진주 노릇을 한다는 것이야 지당한 일이며 자연스럽지, 따라서 아무런 이상함도 부 자연하거나 발작적일 며리도 없던 것이었었다.

이리하여 진주는 의(義)를 살리었다. 물론 큰 희생이었다. 장차로 헤아리기 어려운 고난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의의 가벼운 대상에 불과할 것이었다.

한편 주인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나그네는 그만 파흥이 되어 밍밍하게 자리를 일어섰다. 그러고서 며칠이 지나 종로 거리에서 두 사람이 불긴히 서로 만났다.

“그 학생이 정녕 애인이거나 그렇잖으면 새서방이지?”

오영달이 풀기 없이 묻는 말을 받아서 추영산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새서상일세. 갈렸다 다시 만난……”

“닭 쫓든 개는 지붕이나 쳐다본다구…… 새서방 있는 진주를 캐려든 추영산은?”

“오늘 밤 시골루 떠나네. 촌색시 얻어 인제는 자식농사나 지면서 그림이 나 그리려네마는…… 지붕만 쳐다보구 섰는 오영달은 언제까지구 그럭허구 섰을래서야!……”

“오늘 밤차루 동경으루 건너가게 됐네!”

둘이는 그러고 나서는 어우러져 한바탕 웃더니 손목 마주잡고 뒷골목 막걸리집으로 더듬어 들어갔다.

10. 落傷[낙상][편집]

1[편집]

이태를 지나 계해년(癸亥年) ── 대정 십이년(大正 12年) 정월에는 진주는 아들 철을 낳아 (哲) 비로소 한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고서 다시 그 이듬 해 갑자년(甲子年) ── 대정 십삼년(大正 13年) 늦은 가을.

뜰에는 사년 전 진주가 준호를 고쳐 만나던 봄 그때런 듯 노란빛을 지니고 한 포기의 꽃이 피어는 있었다. 그러나 꽃은 매양 꽃이요 빛은 한 빛이라도 그 꽃은 봄을 화려히 치장하던 개나리가 아니요, 조락을 말하는 가을꽃 황국(黃菊)이었다.

툇마루에 드리운 햇볕도 여전히 밝기는 하였으나 역시 살져가는 봄볕이 아 니요 야웨빠진 가을볕이었다. 바람도 훈훈하던 대신 스산하고.

진주는, 등에 업은 철은 잠이 들었고 풍로에 약탕관을 놓고 마룻전에 앉아 약을 달이고 있다.

사 년이라는 그리 길지 아니한 세월 동안 진주는 적지 아니한 변천을 겪었다.

우선 명실 더불어 남의 안해 노릇을 하였다. 포태(胞胎)를 하여 열 달을 채워 해산을 하여 마침내 한 사람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 아기 철이 지난 정월로 첫돌이 잡히어 시방 두 살이다. 그러고 이어서 다시 또 포태를 하여 여섯 달이다.

저지난해 정월에는 친정 조모 송심당노인이 세상을 떠났다. 진주에게는 어 머니이기도 하고 아버지이기도 한 할머니였다. 피차간 이 세상에서 유일한 혈육이요, 따라서 피차간 지극히 애정이 도탑던 조손(祖孫)이었다. 그러한 한 분 할머니를 여읜 진주의 슬픔은 퍽도 컸었다.

송심당노인이 별세를 하자 친정집의 경제적 몰락이 와락 표면에 드러났다.

친정 양오라비 창수가 시집을 쫓겨오던 갑인년 그 무렵부터 매갈이를 시작하였었다. 한참 당시 잠만 깨고 세태에는 어둔 시골 소지주며 조무래기 부자 가운데 양심 있는 젊은 축들이 사업욕과 재산욕에 마음이 떠가지고 다투어 그 짓들을 하였었다.

매갈이는 매갈이 그것 자체가 다분히 투기성(投機性)을 가진 노름인데, 매갈이의 앞에는 진짜 투기업인 미두라는 것이 환히 놓여 있었다.

매갈이하는 사람으로 열에 여덜아홉까지는 기어이 미두를 하지 아니하고는 배기지를 못하였다. 창수는 그 여덜아홉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미두를 하여 끝까지 수를 본 사람은 만 명에 하나도 드물었다. 천품이 괄괄하고 마음이 크기나 할 뿐 꿈과 옥관(玉觀 :期米時勢豫言術者[기미시세예언술자]) 의 점을 믿고 미두를 하는 재주밖에 없는 창수였다. 밑지고 나가 떨어지는 구천구백아흔아홉 명 속에 들 것이야 당연한 노릇이었다.

빚을 고패가 넘도록 지고 전장과 심지어 집터까지 저당에 걸렸었다. 송심 당노인은 그런 줄을 모르고 있다가 돌아갔으니 그것 한가지만은 팔자가 좋았다고 할 것인지 삼년상 . 치르기도 전에 창수는 집도 터도 없고 말았다.

학교를 마친 뒤에도 다달이 보내주던 진주의 학비도 자연 그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진주는 그리하여 작년부터는 준호 한 사람 몫의 학비 오는 것을 가지고 새로 생겨난 철까지 세 식구의 살림을 하여야만 하였다. 옹색이 심하였다.

그러자 지나간 사월에는 또다시 준호의 학비가 끊어져버렸다.

형편이 말이 아닐 지경이었다. 그런데다 준호의 병이었다.

2[편집]

준호는 지나간 봄방학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진주와 다시 만난 뒤로 방학이 도합 일곱 번이었는데 그해 겨울방학과 작년 봄방학에만 가서 이삼 일씩 있다 오곤 하였을 뿐이었었다.

잔뜩 벼르고 있던 박씨부인은 지나간 봄방학을 기다리다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쫓아 올라왔다. 와서 보니 과연 소문에도 듣고 짐작하던 바와 다름이 없었다.

다짜고짜로 우선 진주를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태질을 치고 하면서 이년 여우 같은 년, 천하 요괴 같은 년, 네가 어떤 년이길래 내 자식을 후려다놓고 이런단 말이냐고 동네가 벌컥 끓도록 한바탕 들레었다. 그러고 나서 준 호의 덜미를 짚으면서 썩 내려가자고 호령하였다.

준호는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때리고 물어떼고 떠다박지르고 하여도 입 꽉 다물고 당하면서 움직이지 아 니하였다.

박씨부인은 분에 못이겨 세간 나부랑이를 두들겨 부순 후, 이놈 너는 오늘부터 내 자식이 아니라고, 두고 보라고 얼러메면서 하릴없이 혼자 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더니 사월달부터 학비를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러고는 얼마 있 다 준호의 외숙을 사이에 넣고 기별이, 지금이라도 자식이나 찾고 ‘그년’과는 갈려버린다면 전사는 다 용서하리라고 하였다. 준호는 이 ‘가혹한 항복조건’을 한마디로 물리쳤다.

친가에서 생활비 오던 것이 끊기면서부터 종종 드나들던 전당국을 진주는 더 자주 드나들어야 하였다. 옥단이는 두고 부릴 필요도 반드시 없어졌었거니와 인간 하나 거처하는 비용이나마 줄이기 위하여 진작에 시골로 내려보내고, 그 대신 건넌방에 윤석이 와 있었다. 행상을 하여서 버는 학자라지만 영악히 납뛰어 제가 먹는 것 이상을 물어들임으로써 지난날에 진 의리를 갚았다 많지는 못하나마 . 진주의 옹색한살림에 퍽 요긴한 부조가 되었다.

준호가 외숙에게 기별을 하여 삼십 원씩 두 차례 빚 요량으로 돌려다 쓴 것도 있었다.

삯바느질이 적지 않이 보탬이 될 듯싶은데 한번 준호더러 그 말을 내었다 펄쩍 뛰는 서슬에 다시는 생의를 못하였다.

조반을 궐하고 나간 윤석이 석양에 봉지쌀을 사들고 들어오기가 예사요, 석 달 널 달 밀린 집세와 전기불세로 매일같이 졸려야 하였다.

이쯤 각다분하고 막막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준호의 병 만 아니면 진소위 삼순구식을 하여가면설망정 준호가 명년에 전문엘 들어 그를 마칠 동안까지 앞으로 한 사 년 죽을 셈 잡고 견디며 뒷수발을 하여댈 신념이 없는 바가 아니었었다.

준호의 병이 표면에 드러나기는 작년 늦은봄부터였다. 오후면 오싹오싹 추워하고 구미가 떨어지고 밭은기침을 하고, 자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몸이 나른하면서 기운이 없고…… 이 증세가 나날이 더하는 줄은 몰랐어도 다달이 더하여 가는 것이 눈에 뜨이더니, 금년 가을로 접어들면서는 성한 날보다도 누웠는 날이 더 많고 그 가뜩이나 푸짐하지 못한살이 하마 뼈와 가죽만 남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더니 마침내 각혈까지 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열흘 전이었고, 그날부터 아주 자리에 누운 몸이 되었다.

3[편집]

“여보오?”

힘없는 소리로 준호가 방에서 부른다.

진주는 알아듣고도 우두커니 있다야 대답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불러는 들이고도 눈두겁 푹 꺼진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보면서 말이 없다.

무슨 할 말이 있나. 시킬 일이 있어서가 아니요, 혼자서 무료하다치면 공연히 그저 그러곤 하던 것이었었다. 그랬다가 그 임시로 할 말이나 시킬 일이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입이 떨어지고 그것도 저것도 없으면 그대로 덤덤하고 말곤 하였다.

“또 약요?”

얼마만에야 그렇게 물으면서 이맛살을 찌푸린다. 별로 많이 먹은 바도 아 니건만 신경이 예민하여진 탓에 약이라면 냄새도 맡기를 싫어하였다.

“지끔 대리는 것 말구 꼭 한 첩 남았어요.”

“난 제발, 약 좀 고만 먹었으면……”

“그래두 부지런히 잡숫구 어서 기운을 차리세야지 아니해요?”

의원의 말이 육미(六味)가 좋다고 하며, 그 약 한 제를 짓기에 진주는 단 한가지밖에 없는 어머니의 유품 금 국화잠을 팔았다. 혼인하던 날 할머니가 옜다 에미가 너 시집갈 때 주어달라고 내게 맡기고 갔단다면서 손수 머리쪽에 꽂아주신 순금 국화잠이었다. 돈으로는 값이 따져질, 따라서 아무리 큰 돈을 받고라도 팔 물건이 아니었다. 이틀 사흘씩 중난한 남편과 굶고 앉아서도 차마 전당국에나마도 가지고 가기를 꺼려하던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런 것을 팔아서 지은 한 제의 육미였다. 해서 이 한 제의 육미는 돈으로 산 것이라느니보다 진주의 희생정신, 극진한 정성으로 얻어낸 약이라고 하여야 옳을 것이었다.

준호는 자초로 그런 곡절을 알 턱이 물론 없었고.

“난 그 쓰디쓴 약보담두 거저 먹구픈 것이나 맘대루 먹구 하면 차라리 병이 얼른 나을 것 같아!”

“………”

진주는 대답할 말이 없고 가슴이 아팠다. 앓는 사람이 늘 무엇이 먹고 싶네 무엇이 먹고 싶네 하건만, 열 가지에 한 가지나 두 가지도 구해다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밥에는 할 수 없이 좁쌀이 섞이고 반찬이라야 된장 찌개에 콩나물이 고작이요, 고기나 생선은커녕 그 흔한 김치 깍두기도 여일히 밥상에 올리지를 못하였다. 각혈하기 전에 진찰을 하여 준 병원 의사도 진주더러만 조용히 이른 말이 있지 아니한가. 폐결핵이라는 병은 약이라야 신통한 것이 없느니라고. 무엇보다도 가정생활 ── 부부생활을 떠나 기후와 공기 좋은 곳으로 전지요양을 가 편안히 누워서 영양 있는 음식이나 소화가 허락하는껏 먹고 마음은 물론 안정시켜야 하고, 하기를 삼 년이고 오 년, 십 년이고 하노라면 상당히 병이 진행된 사람도 회복이 될 수가 있느니라고.

그러니 전지요양이야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루 세 때의 식사나 살로 갈 것을 먹게 하고, 먹고 싶어하는 것이나 그립지 않게 사서 대고 하여야 할 것인데, 그것조차를 못하고 있으니 딱하고 답답할 노릇이라고는 없었다. 밤저녁으로 곰곰 누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잠이 아니 왔다.

저러다 아뿔싸 하지나 아니하나 싶은 청승맞은 생각이 들면서 앞이 깜깜할 적도 있었다.

4[편집]

준호는 번연한 형편에 어린아이 응석 같은 소리를, 무심결에 말은 하여놓 고도 그만 민망한 생각이 나 진주를 돌려다보면서 기색을 살핀다. 진주는 고개를 숙이고 들지 아니하나 꺼칠하니 윤기 없는 살결이며 홀쭉 야윈 볼이 며가 못먹으면서 심로와 과로만 하여 지친 빛인 것이 완구하였다. 더우기나 몸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이 깃든 사람으로.

이미 이십이 넘은 장부요, 그만 철은 난 준호였다. 진주보다 종시 여러 살 연하임엔 갈데 없으나 그렇다고 종시 열두 살박이 소꿉새서방은 아니었다. 시늉이나마 가정을 이룬 일가의 주인이요, 처자를 거느린 가장이었다. 가난과 나의 신병으로 인하여 야위고 시드는 처자를 바라보면서 책임 무긋이 어깨를 누름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남은 하마 핫것이라두 입을 양으루 헐진대저 당목적삼이 좀 서늑거려?”

이윽고 보고 있다 준호가 걱정을 한다.

진주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이

“춥긴 벌써 추어요?”

“옷이 그렇게두 없수?”

“있어요. 있어두 안직……”

“제일에 우리 저 철이가 애차라!……”

“애들은 함부루 길러야 헌다구 아니해요?”

“함부루 길른다는 것허구 그것허구가 같우?”

“그대루 제 걱정이나 철이 걱정일랑 허실라 마세요. 성한 사람이야 좀 아무러면 어때요?”

“………”

“전 거저 당신……”

“여보?”

“내?”

“당신 보매 내가 곧 인제 죽는 것 같우?”

“오온, 돌아가시긴 왜 돌아가시우?”

“안 죽어요. 안 죽으께시니 걱정 말아요. 천하 없어두 안 죽으께시니…… 안 죽지. 내가 왜 죽어? 죽어서 어떡허자구 죽어?”

준호는 흥분을 한다. 붉은 볼이 더욱 붉고 마침내 기침이 나왔다. 종종 있 는 일이었다.

진주는 그를 위로하며 진정시키기에 늘 그렇듯이 한참이나 애를 써야 하였다.

그러나저러나 “내가 아무래두 시굴을 좀 다녀와야 할까 봐?”

진주가 마루로 나가 약을 보고 들어오기를 기다려, 전부터 혼자 유념하던 바를 계제에 이야기를 내었다.

시골이라면 물론 본집이요 박씨부인한테란 말이겠는데, 진주는 선뜻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벌써 기동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다.

“가신들 무슨 도리가 있을꼬마는, 더구나 저 몸을 허세 가지구 먼길 가셌다 도지기나 허시면……”

“산삭이 언제쯤 당허우?”

“명년 한 삼월……”

“명년 삼월이라야 얼마 남았수? 그것두 그것이려니와 괘니 우두커니 이러 구만 있단……”

“글쎄 기동두 어려우시구, 또 가세야 별루……”

“가면 내가 무어 어머니헌테루 가 빌붙을까? 난 죽어두 건 아니해!”

“허기야 어머님이 당신이 미워 그러시나요? 다아 제 죄루 당신 알라 이렇게……”

“가두 외삼춘 댁으로 가 눠서……”

“그 으런인들 무슨 그리…… 그동안 두 번이나 돈을 타다 쓴 것두 있구 헌데……”

5[편집]

준호의 외조부가 생전시에 논 일곱 마지기를 준호에게 직분시켜 준 것이 있었다. 명의까지 아주 준호의 이름으로 돌려놓았었고, 딸 박씨부인과 아들 인 준호의 외숙을 불러다 앉히고 문서를 보이면서, 이 논에다는 꼭 찰벼만 심었다 우리 준호 일 년 내내 두고 떡 해주어라. 그 논을 그 해부터 지금까지 박씨부인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소유자는 하여커나 남준호가 틀림이 없 었다.

준호는 이런 내력 설명을 한 후에

“그러니깐 걸 가 팔면 될 거 아뇨? 한 말지기 오십 원씩만 받어두 삼백오십 원…… 시방 우리한테 삼백오십 원이면 어데요?”

“글쎄요.”

“어떻게 찻삯 마련이 안될까?”

“찻삯이야 어떻게든 변통을 해보죠만……”

미안한 대루 윤석이더러 “ 좀 데려다 달라구 허구……그러구 외삼춘게루 전볼 쳐 교군이나 내보내게 하면 차 타구 가기야 무어 그리 힘이 드우?”

“것두 몸 성한 사람이라야 말이지……”

“일 없어. 괜찮아요. 당신은 조심이 너무 과해, 그래 파야!”

준호는 그러면서 짜증을 내고 돌아누웠다.

그런지 사흘째 되던 날 첫새벽 여섯시.

진주는 준호가 탄 인력거 뒤를 따라 철이는 등에다 업고 윤석과 함께 전차 도 아직 다니지 아니하는 어둔 거리를 걸어 남대문 정거장으로 배웅을 나갔다.

여섯시 반의 부산행을 타고 가다 낮때쯤 대전서 내려 시간 반이나 기다려 호남선을 갈아타고 다시 반일을 가 주물역에 내려서 밤길 삼십리를 들어가 야 하는 이 노정을 어제까지도 호정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하던 병인 준호로 하여금 막상 떠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졸연한 일이 아니었다. 진주로는 두루두루 생각 끝에 일종 비장한 결심으로써 하는 강단이요 큰 모험이었다.

준호는 말이 외숙의 집으로 가서 외조부가 따로이 물려주었다는 논을 팔아 가지고 온다는 것이지만, 진주가 보기에는 전혀 호산(誤算)이요 도저히 가능성이 없었다.

남달리 극성스런 박씨부인이었다. 준호가 일껏 고향엘 내려와 가지고 바로 동네지간에 본집으로 오지를 않고서 외숙의 집으로 가 있는 것을 문문히 그 대로 버려두고 볼 박씨부인이 아니었다.

논이 이름이 제아무리 준호의 이름으로 있기로서니, 준호는 법률상으로는 아직도 미성년이었다. 친권자 박씨부인이 버젓이 있었다. 간대로 그것이 팔아질 이치가 만무하였다.

가사 또 준호가 계획하는 대로 일이 잘 되어서 논을 팔아 몇 백 원의 돈이 생긴다손치더라도 그 몇 백 원의 돈을 도득하여 오게 하기 위하여 천하에 바꿀 수 없는 준호로 하여금 중병 중에 이 어려운 행보를 떠나게 하도록 사려와 분별이 부족한 여자 진주가 아니었다.

진주로는 요량하는 바가 달리 있었다.

준호는 한번 내려간 이상 박씨부인의 손에 붙잡혀 앉히고 말 것이 첩경이요, 자연 돌아오기가 졸연치 못할 것이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진주는 차라리 바랐다.

6[편집]

준호는 박씨부인의 손에 붙잡혀 앉히운다면 처음에는 마음은 적지 않이 상 할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 . 좋은 남방이요 공기 맑은 농촌이었다. 살기가 군색치 아니한 집안이었다. 박씨부인인들 며느리가 밉고 미운 며느리에게 가 있는 아들이 미웠지, 하여커나 어머니에게로 돌아온 다음에야, 항차 죽을 병이 들어가지고 돌아왔는데야 그 아들이 어떤 끔찍한 아들이라고 병구원에 등한하거나 인색할 까닭이 없던 것이었었다. 값진 보약과 영양 있는 음식, 먹고 싶어하는 음식, 땅을 팔아서라도 여일히 먹일 것이었다. 병에 해로운 줄 알면 성정을 눅여서라도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에 노력할 것이었다. 장차 에 식언(食言)이 될 값에 병만 나으면 네 가속(진주) 데려오도록 하마고까지 라도 할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해서 아뭏든 혼자 떨어져 있으면서 잘 먹고 좋은 보약 먹고 요양을 하는 일방 마음도 차차로 안정이 되고 하면, 의사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병은 낫는 것이요, 진주의 요량하는 바란 곧 이것이었다.

준호의 충분한 요양과 그래서 건강이 회복될 일이라면 진주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삼 년이고 오 년, 십 년이고 준호가 돌아오지를 못하더 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떠한 고생이 있더라도 아이들이나 기르면서 참고 견딜 결심이었다. 아닐말로 준호가 한평생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가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란다면, 진주는 슬픔을 달게 삼키면서 아이들과나 함께 세상을 살아나갈 각오였다.

차창을 열고 내어다보는 준호를 작별하면서 진주는 부디 마음 조급히 먹지 말라고, 당신을 그저 당신의 병 한가지만 생각하지 처자라는 것은 한동안 잊어버리고서 그런 마음으로 범사를 처결을 하라고 함축 있는 말로써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준호는 준호대로 죽지 아니할 테니 아무 염려 말고 있으라는 말을 거듭하였다.

그 말이 차라리 영결인 것같이 여겨지면서 진주는 마음이 더럭 처량하여 하마 준호에게 눈물을 보일 뻔하였다.

사흘이면 먼저 돌아올 윤석이 닷새가 되도록 감감소식이었다. 이왕 데리고 간 길이니 같이 회정을 하느라고 더딘 것인지, 그렇다면이거니와 혹시 내려 가기에 무리를 하여 준호가 병이 더해서 혼자만 버려두고 떠나오지를 못하 는 것인지 싶어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레 만에 전보환으로 돈 오십 원이 왔다. 조금 마음이 놓이는 성하였다.

열하루째 되는 날 윤석의 이름으로 한 장의 전보가 올라닿았다.

진주는 준호를 보냄에 있어서 다른 것은 다 생각을 주밀히 하였으나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점을 한가지 모르고 지나쳤었다. 그는 준호의 병이 이미 소위 제삼기에 들어 심한 피로가 따르는 그와 같은 먼길의 여행과 그것만 하여도 무리가 과한데 겸하여 모친 박씨부인과의 반드시 있고라야 말 충돌로 인하여 받게 될 격렬한 흥분…… 능히 그것을 이겨낼 기력이 설마 없었 다는 사실을 진주는 통히 짐작치 못하였던 것이었었다.

“준호금조별세 윤석.”

그 전보문이었다.

이에 한 아기를 등에 업고 한 아기를 애밴 스물일곱 살짜리 여인 하나가 세차게 달리는 기차에서 별안간 누가 칵 떠다밀기라도 한 것처럼 인간 행로의 노방에 가 나가떨어지고 말았다.──의지가지 전혀 없는 노방에 가.

정히 낙상(落傷)이었다.

11. 試鍊[시련][편집]

1[편집]

우수(雨水) 지난 지가 여러 날이요, 이월달도 거의 다 갈 무렵이건만 날씨는 한겨울인 듯 기승스럽다.

사나운 바람이 진 눈발을 몰고와 비뚤어진 서창에다 쉴 새 없이 끼얹는다.

그럴 적마다 찬바람이 어긋난 문 틈, 찢어진 문구멍으로 방 하나 가득씩 스며든다. 낡은 반자가 심호흡을 하고 문풍지가 포효한다.

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육촉 침침한 전등을 불삼아 진주는 웅숭그리고 앉아서 바느질이 혼자 바빴다. 재동 한복판의 찌그러져 가는 초가집, 삭월세 이 원짜리 건넌방이었다.

방바닥은 정이 떨어지도록 차다. 삭월세 이 원짜리 그 알량한 방이 여일히 때기로니 잘 더울리도 없는 것이지만 어제 저물게 삼전짜리 솔가지 한 단으로 조죽을 쑤느라고 이맛돌만 그슬리는 시늉만 한 채 이내 일주야가 훨씬 넘었으니 찬 것이야 지당한 말이었다.

그래도 아랫목으로 골라 앓는 철이를 뉘었다. 요라는 명색은 없고 솜 비죽비죽 비어지는 얄따란 두폭 이불을 덮은 위에는 엄마의 치마를 벗어서 덧덮어 주었다.

지나간 정월달로 세 돌이 잡하고 어느덧 네 살…… 병이 아니고 영양이나 웬만하여 순조로이 자랐다면 토실토실 살이 지고 한참 발랄히 뛰놀 무렵이었다.

병의 시초는 이유(離乳)의 실패에 있었다. 일찌기는 준호의 병과 그리고 그의 그러한 죽음과 그 뒤에 온 극도의 생활 곤란과 이런 연속하는 불행과 그 경황으로 인하여 적당한 이유기를 놓치고 있었다. 그러나 작년 삼월 아우를 보기 며칠 앞두고서야 겨우 억지로 젖을 떼었다.

이유 전에 미리미리 이유 이후의 새로운 환경에 견디어낼 만한 소화기관의 서서한 훈련이 없었다. 그러고는 졸지에 젖 대신 소화하기 어려운 성인의 음식을, 그것이나마 영양분이 빈약한 것을 겸하여 불규칙하게 들이 안겼으니, 근본이 약한 체질이 아니란다더라도 그 물같이 연한 위장이 능히 지탱치를 못하였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화기관의 고장과 아울러 영양의 부족은 그 밖에 감기를 비롯하여 온갖 병에 대한 저향력을 잃게 하였다.

홍역, 백일해, 급성폐렴, 디푸테리아 따위의 어려운 병을 도맡은 듯이 차례로 앓았다. 시방은 디푸테리아를 앓고 난 끝이었다.

꼬바기 일 년을 그렇게 병하고도 어려운 병만 치르고 난 지금은 아이가 흡사히 콩나물을 한 개 뽑아가지고 보는 형용이었다. 팔과 다리는 비루먹은 무엇처럼 배배 꼬였다. 머리통과 눈만 커다랗고 목은 새끼같이 가늘었다.

혈색은 오이꽃처럼 노랗고.

종일 울며 조르는 것이 먹을 것 타령이었다. 졸라야 이루 먹이지도 못하지만, 먹으나 못 먹으나 육장 설사가 아니면 사흘 나흘씩 변비였다.

약비한 생명이건만 잘 끈질겼다. 미루어 인간 생명의 신비성이랄까 혹은 기적이랄까를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다.

철이와 고무래 정자로 이불자락은 걷어내차고서 네 활개 쩍 벌리고 누워 자는 것이 오는 삼월로 첫돌이 잡히는 문주(紋珠) ── 준호가 끼치고 간 유복녀였다. 어머니 진주가 애기어머니의 몸으로 늘 굶주리는 탓에 젖이 사뭇 모자라 아이가 발육이 늦고 혈색은 파리하나, 한갓 다행은 아직 이렇다 할 병만은 없었다.

이 남매를 데리고 진주는 소일거리도 못 되는 바느질품을 팔면서 바야흐로 굶어죽기 마침맞은 지경에 다다라 있었다.

2[편집]

삯 삼십오 전을 받는 옥양목 박이적삼이었다.

똑, 똑 바늘 뽑는 소리가 야무지게 대답을 한다. 바람은 여전히 극성으로 진눈을 몰아다 창을 때린다. 방안의 추위는 갈수록 더한다.

진주는 자주자주 바늘을 놓고 언 손끝을 호호 입김으로 불어 녹인다. 바느질은 절반도 못다 되었다. 춥고 시장한 깐으로 하면 엔간히 밀어던지기라도 하겠으나 이 밤을 새워서라도 다 마치어 밝는 아침 일찌감치 가져다 주어야만 삯 삼십오 전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야만 당장 이십 전어치 좁쌀 한 됫박과 오 전에 두 단하는 솔가지를 사 두 차례의 죽거리를 마련하고 나머지를 가지고는 철이를 위하여 약도 한 첩이고 두 첩이고 지어다 먹이고 한다. 진주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약을 먹이고 아니 먹이는 차이가 완구히 달랐다. 해서 약만 여일히 대어 먹이면 아이는 죽이지 않고 구할 수가 있을 성 불렀다. 그리하여 여일히는 생의조차 못한다지만, 이틀치 죽거리가 생기면 하루만 먹고 하루는 굶어가면서까지 간간이 단 한두 첩씩이나마약을 먹이기를 애써 하였다. 그러나 정성일 따름이었지 그 며칠 만에 한두 첩씩 쓰다 말다 하는 약으로 제법 현저한 효험이 보아지던 바는 물론 아니었 었다.

안방 노파가 쿨룩쿨룩 기침을 하더니 이어서 재털이에다 담뱃대를 뚜드린다. 초저녁잠을 들러나 두어시가 되면 으례 그랬고, 어지빨리 시계보다도 정확하였다.

노파의 그러는 기척에 진주는 밤이 얼마 아니 남은 것을 알고 언 손끝을 불어가면서 부지런히 바늘을 놀린다.

철이가 잠이 깨어 눈만 뜨고 그대로 누운 채 기운 하나도 없는 소리로 힝하면서 칭얼거린다.

“철아? 시야 허까?”

“히잉.”

“배 아프냐?”

“밥 줘, 히잉.”

“오냐, 어서 더 자거라. 자믄 엄마가 밥해주마.”

철이는 이불 속으로부터 기어나와 무릎에 가 안기면서

“빵이랑.”

“오냐, 돈 남거든 빵두 한 개 사주마.”

“미깡이랑.”

“푸달진 것 받아가지구 쓸데구 많기두 허다!”

“히잉, 미깡이랑.”

“오냐, 봐서 미깡두 사주마. 춥다, 어서 이불 덮구 더 자거라.”

“문주 주지 말구 나만 먹을 테야.”

“에구, 문주두 죄끔만 줘야지이!”

“죄끔만 주구……”

“그래 문준 죄끔만 주구 철인 많이 먹구.”

그렇게 달래어 도로 이불 덮어 뉘고 다독거리는 대로 잠이 든다.

잠든 얼굴을 이윽고 들여다보고 있던 진주는 눈에 눈물이 어린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타고난 팔자란 말이냐. 에미를 잘못 만난 탓이란 말이냐. 이 어린것이 네가 무슨 죄로…… 쯧쯧 가엾은!’ ‘살려야 할 텐데…… 죽이지 말고 살려야 할 텐데. 무슨 짓을 해서라도 죽이지 말고 살려야 할 텐데……”

긴 한숨을 짓고 눈물을 닦으면서 물러나 앉는다.

물러나 앉아서 마악 바느질을 다시 잡는데, 그러자 머릿속이 별안간 팽 돌 고 방바닥이 휘휘 흔들리면서 정신이 가물가물하더니, 그러다 연하여 깜빡 하고 말았다.

주림과 추위로 인한 혼절이었다.

3[편집]

얼마만인지야 제풀로 정신이 들었다.

굶고 추우면 사람이 잿불 사그라지듯 죽어버린다더니 그 말이 옳은가보다 싶었다.

그새까지는 몰랐던 죽음의 시꺼먼 위협이 비로소 눈앞으로 얼찐거렸다.

더럭 겁이 났다.

‘이러다 아주 죽어버리면? 이따라도 내일이나 모레라도 기도 맥도 없이 깜박 그대로 죽어버리면?’ 그러면서 진주는 눈이 저절로 잠든 어린것들에게로 옮는다.

진주 자기 자신이야 죽는다는 것이 별반 두려울 것이 없었다. 어린것들이 걱정이요 그래 겁이 나는 것이었다.

철이…… 단 하루를 부지하지 못할 것이었다. 울고 보채다 그 자리에 쓰러진 채 기진하여 그대로 절명이 되고 말 것이었다.

문주…… 울고 엄마를 찾으면서, 그러다 어느 지경에 이를 것인지를 모르겠었다. 설혹 죽지는 않는다더라도 그 죽지 않고 살아 어미닭을 잃은 한 마리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울면서 비척거리고 헤매는 정상이 어머니 된 마음에는 죽고 마느니보다 차라리 더 애처롭고 마음에 걸리었다.

자기의 죽어 발 뻗고 누웠는 시체.ฺ 한편에서 시체를 붙안고 부르며 우는 철이. 시체를 젖을 빨면서 우는 문주.

공동묘지를 향하여 실려나가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주검의 행렬. 그와 반대 방향인, 그러하되 무인지경인 사바의 길을 엄마 엄마 부르면서 비척거리고 걸어가는 문주의 뒷모양. 이런 환상이 차례차례로 눈앞에 서언히 나타나면서 진주는 어느덧 느껴 울고 있었다.

차마 죽어서는 안되었다. 어떻게 하여서든 살아 있어야 하였다.

살아 있어야 하였고,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무슨 도리든 도리가 있어야 하였다. 없으면 억지로라도 마련을 하여야 하였다. 그것도 서서히가 아니라 시급하였다.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참담한 비극은 목전에서 면치 못하고 마는 것이었다.

도리는 그러나 막상 졸연한 것이 없었다.

‘나는 며느리니 에미니 할 것이 없이 종이나 유모인 양으로라도 상관없으니 어린것들을 데리고 가서 있게 하여 주시요. 우선 철이를 병조리를 시켜 소성이 되고 그리고 두 것들이 슬픈 배곯지 않고 자라면 나는 그 이상 바라지 않겠소. 그렇게 해서 어린것들이 탈없이 자라 제 발로 걸어다닐 때가 되거들랑 나는 도로 쫓아내어도 한이 없겠소. 죄가 있으면 에미 애비에게 있지 자식들에게야 없는 것이니, 잘나나 못나나 남씨 집안의 둘도 없을 혈육인 것을 보아 깊이 생각하시오.’ 박씨부인에게다 이러한 교섭이랄가 청이랄까를 양오라비 창수를 시켜서 들여보낸 일이 있었다. 창수는 하릴없이 하바꾼으로 전락하여 인천 미두장으로 와서 방퉁이꾼 노릇이나 하면서 고향과 진주에게는 종종 왕래가 있었다.

교섭을 하기는 지나간 해 가을이었는데, 백 번도 더 생각한 나머지 마지 못해 한 것이었지만, 과연 발등을 찍고 싶도록 후회를 하였다.

‘흥! 어느 놈의 뼉다귄 줄 알아서 내가 그것들을 이 집으로 불러들여?’ 이것이 박씨부인의 대답이었다. 진주는 이를 갈면서 두 번도 다시는 생각지 않기로 마음에 맹세를 하였다.

그러니 달리는 의탁을 할 만한 친지라야 없고 죽으나 사나 스스로 도리를 차려도 차려야만 하였다.

4[편집]

“늙은인 새벽잠이 없어 그래 청승맞다는 게야…… 이 방 아씬 아마 바누질루 밤을 새나보다.”

안방 노파가 그런 소리를 하면서 담뱃대를 입에 물로 건너온다.

온 조곳 보겠지 “ . 이불자락을 죄에 차던지구. 춥지두 아년가베?”

노파는 그러면서 들어와 앉다가 질겁을 하여

“방바닥이 이리두 찬데!”

“그앤 덮어줘두 그때뿐인걸요.”

“허긴 애들은 다 그런가 보아. 나두 새낄 몇 개 길러보았지만서두…… 그래 저앤 좀 으떠우?”

“늘 그 모양이죠 머.”

“온 그래 으떡헌단 말요.”

“허느니 걱정이랍니다.”

“아니 이 방에 간밤에 불기운을 통히 아니했나 보군? 앓는 아이꺼정 데리구 으떡헌단 말요? 하루 이틀두 아니구 육장…… 그럼 엊저녁두 못해 자신 게로군?”

“………”

“난 장살 나갔다 다 저물게야와 몰랐지. 애기 어머니가 그래 으떡허우?

…… 쯧쯧 가엾어라. 친정이구 시집이구 간으 온 그렇게두 의탁이 없수?”

“………”

“이러단 괘니 큰일나겠구랴, 큰일나겠어. 굶다 얼어죽은 사람이 달리 있수? 천하 장사라두 오래두룩 굶주리다 강추윌 만난다치면 그만 꼿꼿이 죽어 버리구 마는 거.”

“………”

“여보? 애기어머니? 내가 무엇하자구 남 못헐 일 권면허겠수? 거저 별수 없으니 나 허란대루 그렇게 허구랴. 눈 질끈 감구서, 응.”

“어린것 둘을 한꺼번에 거천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데 그러우? 애차란 맘에 질래 둘다 데리구 있다 성헌 놈마저 못 멕이구 해서 병들어 저 꼴이 되구 나면 어떡헐려우?”

“………”

“앓으나따나 큰아인 저만침이나 자랐은깐 집이다 둬두구나 댕기면서 벌일 헐 수 있잖우? 삯빨래두 빨구, 큰일 집 가서서 두리두 허구, 그러구 삯바느질일랑 밤저녁으루 들앉어서 해치우구. 그런다 치면야 살기가 이렇기야 허우? 넉넉힌 못 지난다지만 하루 세끼 아니 굶을 것이구, 불 뜨듯이 땔 것이구, 저애 약은 대놓구 쓸 것이구. 저애두 따지고 보자면 못 먹여 저 모양 아뇨?”

“………”

둘 다 거느를려다 “방정맞은 말루 둘 다 성치 못허기 쉬우리다.”

“………”

“그 집이선 딸두 상관 없대는 거야. 남녀간으 거저 똑똑히 생기기나 헌 갯구멍받이가 하나 둘오기만 허면 머금이야 옥이야 헐 판이라우. 그날루 당장 유모 정해두구.”

“………”

“그렇게 가 잘 길리우구 호강으루 자라믄서 여학생 공부허구 부자집 좋은 신랑헌테루 시집가구…… 조옴 좋수? 데리구 배 곯려가믄서 공부두 못시키구, 지리리고생시키다 시집이나 아니나 변변찮언 자리루 주구, 그러기 같아?”

“………”

5[편집]

“아, 그 댁이 집안은 또 으떤 집안인데! 바루 장동 김씨네 한파루 영감은 종로서 큰 포목점을 헙넨다. 그러구 양평땅으서 추술 천 석씩이나 받아들이 구. 참 쩡쩡 울리구 사는 집안이지……그런데 글쎄 손이 없대는구랴. 그래 손을 볼 양으루 첩을 몇씩 얻어들여 두 눈먼 딸 하나 없대는군. 그런 걸 본 다치면 세상은 고르지 못허기루 마련야! 남전북답으 비단 대단 싸놓구 바라는 집인가 아니 생기구서, 아니 바라구 자식 많어 성가셔 허는 집이 만들이 생기구.”

“………”

진주는 여전히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듣기만 하고 노파 혼자서 이야기가 입에 침이 마른다.

“그래 그 본마나님이 나이 올에 마흔여덟인데 인전 나이루두 아일 보긴 다 글렀으니 남의 자식이래두 몰래 들여미는 게 있으면 내 자식삼아 하나 길러서 재미두 보구 늙발에 몸을 의탁허구 싶대는 거래…… 아따 저 안동별궁 뒷담 골목으루 해 한참 올라오다 수통백이 골목으루 들어가 왼손짝 둘째 골목 막다른 집이 바루 그 댁인데 나두 두어 번이나 물감 팔러 댕기느라구 가보았지만 집허며 세간허며 참으리으리헙넨다.”

“………”

“쥔마나님이란 이가 척 보매두 사람 인자스럽구 얌전헌 게 얼굴에 환히 드러나구. 글쎄 하인들을 여럿을 부리믄서두 일년 삼백예순날 큰소리 한번 아니헌대는구랴.”

“………”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을 리야 없는 것이지만, 문주가 잠이 깨어 발딱 일어나 앉더니 엄마를 치어다보고 방긋 웃는다. 볼은 그래도 발그레 붉고 하얀 아랫니가 두 대 얄밉도록 이쁘게 해끗 드러난다.

“신통해라. 깨서 울지두 않구…… 문주야?”

노파가 그러는 것을 아이는 올려다보다 말고 엄마한테로 비척거리고 걸어 가면서

“맘맘마, 맘맘마.”

한다.

“밥 달란 소리구면? 온, 절 으쩌나!”

아이는 엄마한테 안기어 연해 맘맘마를 조르다 하릴없이 젖을 문다. 그러나 젖이 나는 것이 있을 턱이 없는 것. 아이는 빈 젖을 빨면서 아니 난다고 옹알거려 쌌다. 필경 울고 만다.

노파가 보다 못해 혀를 차면서 안방으로 건너가더니 반 섞이 조밥이 주발에 서너 숟갈이나 남은 것을 가지고 온다.

진주는 몇 번 사양하다 치하를 한 후 간장과 숟갈을 가져다 조금씩 입으로 씹어서 먹인다.

어른 술로 치면 한술이나 먹었을까 하여서 아이는 양이 다 차는 모양, 그 알량한 걸음으로 온 방안을 돌면서 갖은 재롱 피운다.

진주는 남은 밥을 철이를 위하여 잘 아껴 둔다.

“그만허믄 족헌걸! 그 푸달진 양을 못 채워 맘마 타령이구. 쯧쯧, 가엾은 일두……”

물끄러미 아이의 좋아하며 노는 양을 보고 앉았던 노파는 혼잣말같이 그러 면서 일어서다가 진주더러

“내가 데리구 모진 고생시킬 밴 차라리 남 주어 호강시키는 것두 남의 부모루 험직한 노릇입넨다.”

하고 건너가 버린다.

한 달이 지나 서울의 꽃소식이 가까왔고 내일이면 딸 문주의 첫돌이 당하는 날, 진주는 동경서 윤석이 돈 오 원에 철이의 속옷 한 벌과 더불어 부쳐 온 문주의 첫돌 선사 양복 한 벌을 받아 앞에 놓고 느끼며 울고 있었다.

6[편집]

윤석은 작년 봄 중학을 마치고 이내 동경으로 건너가 여전히 고학을 하면서 어느 사립대학엘 다니고 있었다.

윤석은 일찌기 준호에게 진 바 조그마한 은의를 크게 무겁게 여기고 길래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그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잣몸으로 고생살이를 하는 진주를 늘 찾아와 아주머니, 아주머니 하면서 위로와 격려를 하여 주고 철이를 귀애하여 주고, 그리고 무리히 저의 용을 줄여가며 약소한 것이나마 가다오다 진주의 하루 이틀의 옹색을 펴게 하여 주곤 하였다. 그것이 진주에게는 얼마나 큰 생색이며 아울러 정신적으로 위안이었던지 모른다.

그 뒤 동경으로 건너가서도 한 달에 두 번쯤은 반드시 편지를 하고 세 번이나 네 번 만에는 으례 돈이 이삼 원씩이 같이 넣어져서 오고 하였다. 그러고 이번에는 문주의 첫돌을 잊어버리지 않고 철이의 속옷까지해서 돈을 오 원이나와 문주의 첫돌 선사거리를 정성스레 그처럼 사보낸 것이었었다.

막막한 사바에서 그렇듯 곡진한 의리가 감격하여 진주는 울지 아니치 못 하였다. 윤석이며, 자연 준호가 생각이 나 울지 아니치 못할 것이었었다.

그러나 그러한 눈물보다도 보내어 온 첫돌 선사의 옷을 정작 입어 줄 딸 문주가 이미 나의 품에 없는 슬픔으로 하여 애끊이는 눈물이 더 컸다. 거기 에다 아기가 보고 싶고 그리운 어머니의 눈물이요, 자식을 생으로 없이한 뉘우침의 눈물이었다.

“아니 난 통히 의지라군 없는 줄 알았드니, 이런 걸 다 사보내는 데가 있구랴?”

행상 나갔던 안방 노파가 돌아오다 고개를 들이밀면서 소포에서 풀어 헤쳐 논 것을 보고 하는 소리였다.

진주는 이윽고 눈물을 거두고 나서

“이거라두 낼 입히라구 보냈으면……”

하고 노파의 기색을 살핀다.

“오온 그 댁에 그애 입힐 옷이 없어서?”

“거야 그렇지만서두 제 첫돌씨루 이왕 생긴 거니깐.”

“거긴치가 못해. 개구멍받이루 주구 나서 뒤루 제 부모가 자꾸만 그래싸면 그 댁에서 좋아허우?”

“………”

“이왕 그럭헌 노릇이니, 인전 거저 잊어버리는 게 상수야, 상수.”

“………”

“아니 낳든 심만 잡구서 잊어버리우.”

“곧 사람이 발광이 될 것 같아요.”

잊어버릴려군 들질 “아녀구서 자나깨나 그 생각만 허구쓴깐 그렇지.”

“안 생각허구 견델 수 있다면야 차라리 다행이죠…… 내가 죽일 년이지.

몹쓸 에미년이지. 어떡허다 한때 고만 환장이 돼가지구…… 이렇게 앨 태우 구 허믄서 죄 받아 싸지. 열 번 죽어 싸지.”

듣기가 싫어서 노파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러나 양오라비 창수가 퍼뜩 당도하였다. 낡아빠진 찌부러진 모자에 빛 바래고 꿰진 겹두루막에 뒤축은 다 닳고 볼은 꿰진 구두에, 그리고 궁기 흐르는 얼굴에…… 일찌기 그의 복호사스럽고 신수 훤하던 임창수가 과연 속절없었다.

남으로는 윤석과, 양오라빌망정 육친으로는 이 창수가 진주에게는 유일한 마음의 의지거리였고, 해서 그가 찾아옴은 슬픈 중에도 역시 반가왔다.

7[편집]

“넌 그동안 좀 나으냐?

창수는 진주가 업고 있는 철이를 들여다보면서 묻는다.

진주가 그 말을 받아

“죄끔 낫다는 게 거저……”

“조금씩이라두 나어가니 다행 아닌가……”

창수는 그러고는

“그래?……”

하면서 방안을 고쳐 둘러보다가 소포 풀어헤친 것으로부터 눈을 이윽고 진주에게로 옮긴다. 진주는 눈물 흔적을 가리지 못하였다. 써 창수는 일을 짐작하기에 힘이 들지 아니하였다. 그는 이십여 일 전에 다니러 왔다 진주에게서 그런 상의의 말을 듣고 찬성도 반대도 잘라서 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진주는 푹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말이 없고.

창수는 담배를 붙여 물로 푸우 길게 내뿜으면서

“게다 죄는 내 죌세. 내가 집안을 아니 망쳐놓았으면 누이가 설마 이 지경이야 됐겠나?”

“오라버니두 그런 말씀허시지 마세요. 다, 참 제 죄요 제 팔자 소간이지 무슨 ……”

“면목없네!”

창수는 눈물을 씻는다.

진주도 눈물이 새롭다.

오래도록 마주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고.

창수가 들고 온 보자기를 풀더니 어린아이들 무색 옷감과 과자봉지를 내어 놓는다 그러고. 품에서는 십원짜리 다섯 장을 꺼내어 놓는다.

“저놈 약이나 좀 지어 멕이두룩 허게…… 이건 그년 첫돌을 생각허구 끊어 가지구 왔드니……”

“………”

창수가 없었다면 진주는 이 옷감과 윤석이 보내준 양복까지 한데 얼싸안고 몸부림을 치면서 통곡이라도 하겠었다.

“거지 두 손 볼 날이 있드라구, 미두장 하바꾼두 혹시 가다 한목 일이 백 원씩 생기는 수가 있느니…… 알구 보면 미두에 망한 끈터리요, 노적에 불 지르구 싸래기 주워먹기라는 걸세, 허!”

사양하는 창수를 만류해 앉히고 쌀과 나무와 반찬거리를 사다 저녁을 대접 하여 보냈다. 창수는 떠나면서, 이왕 그러한 노릇을 상심을 하니 무슨 소용이냐고 마음을 갈앉히도록 하라고 위로가 곡진하였다.

해질 무력 ── 황혼.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패였다. 눈이 아무것도 보이 지 않으려고 하였다. 머릿속은 열에 떠 멍하고서 사려분별이 서지를 아니 하였다. 발광할 것 같다고 하였거니와 진정이요 조금도 엄살이 아니었다.

먼빛으로나마 잠깐 보기라도 해야망정이지 그대로 견뎌 배길 수는 도저히 없었다. 철이를 들쳐 업고 나서 정신없이 달렸다.

그 집 골목에선 무수히 오락가락하면서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다 그만 들켰다.

천천히 다시 골목을 들어가서 막 대문 앞까지 당도하는데, 그러자 불의에 지친 대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문주가 나왔다. 색동저고리에 비단처네 두르고 점잖은 여인네에게 안기어 잠투정을 하는 모양, 졸린 목소리로 칭얼거리면서 문주가 나왔다.

진주는 고쳐 한번 더 보기보다도 얼굴이 화끈하고 가슴이 두근거려 반사적으로 얼른 발길을 돌이켰다.

돌이키면서 한걸음 내어딛는데, 그때였다.

“엄마 엄마, 우리 문주, 우리 문주, 내 동생 우리 문주저깄어, 저기!”

등에 업힌 철이가 몸을 비틀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기를 쓰고 외치던 것이 었었다.

진주는 다리에 맥이 풀리어 털씬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흐느껴 울었다.

8[편집]

여인은 처음엔 문득 당황하는 빛이었으나 이내 도로 기색을 다스리고, 이윽고 진주의 주저앉아 울고 있는 양을 내려다본다. 그러는 동안 철이는 연방 엄마의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뒤를 돌려다보면서 우리 문주, 내 동생 우 리 문주를 소리질러쌓고.

“모양이 됐소? 날 따라 들어오우그려.”

여인의 입으로부터 밑도 끝도 없이 조용히 흘러져 나오는 말이었었다.

진주는 따라 들어가는 것이 떳떳치 못하냐 하는 판단이 없이 빨리듯 그대로 따라섰다.

세간도 없고 거처하는 사람도 없어 보이는 뜰 아래 한 방으로 들어가 주인은 아랫목으로, 손은 문치로 각기 앉았다.

주인 여인은 곰곰이 진주를 건너다보고 앉아서 미처 말이 없고, 진주는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고 앉아 간간이 느끼기만 한다.

철이가 엄마의 어깨 너머로 내어다보면서

“문주야, 이리 와. 엄마 여깄다, 엄마.”

하고 손을 까분다.

문주는 잠시는 말끄러미 바라다보다가 비로소 알겠는지 안긴 처네를 비비고 몸을 빼친다. 주인 여인은 저 하는 대로 놓아둔다.

문주는 고 두 대의 하얀 이빨로 해끗해끗 웃으면서 비척거리고 걸어와 꺄 웃이 들여다보더니

“엄마.”

하고 부르면서 품을 파고든다.

진주는 헉 하고 높이 흐느끼면서 아이를 끌어다 아스라지도록 껴안고 젖은 볼을 비벼댄다.

엔간히 진정이 되기를 기다려 주인 여인이 종시 조용스런 음성으로 입을 연다.

“나야 바라든 걸 얻어 길르니 좋기야 했소만, 어떡허면 자식을 남의 문전에다 내버릴 생각이 나우? 저만치나 길른 걸. 또 저렇게 이쁜 걸.”

조금치도 책망이거나 불쾌한 내색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쯧, 살기가 어려웠든 모양이지. 혼자요?”

“내애, 유복녀예요.”

“안됐구려 젊은이가…… 시집은?”

“시굴인데…… 있으나마나래서……”

“친척집두 어렵구?”

“내애.”

“………”

“이틀에 한 끼가 간데 없구, 큰애 이놈이 병이 들어 죽게 되구. 그래 잘 못허다 둘 다 죽이는가 싶어서 미련헌 생각에 고만 그랬어요. 적선허시느라 구 절 도루 내주시면……”

“억지루 뺏겠소마는 지끔은 무슨 도리가 있소?”

“살을 깎아 멕이드래두……”

“………”

주인 여인은 고개를 끄덱끄덱하더니

“바느질헐 줄 아우?”

“잘은 못해두 숭낸 다아.”

“아이들 데리구, 우리 집에 있어 보려우? 마침 침모 뒷감을 구해들이자든 참이구 허니…… 첫째 젊은이가 정상이 딱허기두 허구, 또 나는 그 새 한 보름 동안에 어린것허구 정이 들어 떼치기가 섭섭해 그러우. 그렇다구 남의 자식을 영영 뺏자구 헐 며리야 없으니, 그런 염렬랑 헐라 말구서…… 있어 보겠거든 있어 보우그려. 아이들은 남 그대지 부럽진 않게 길르두룩 허께시니……”

진주는 이런 후하고 인자스런 구원의 손길이 과연 강박한 이 사바에 있었 으리라고는 꿈밖이었었다.

9[편집]

동지날 그믐까지 여덟 달 남짓이 진주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 김씨집의 고씨라는 그 안주인의 도타운 두호 아래서 고생 없이 잘 지냈다.

고씨는 어린 문주를 물고 뜯을 듯이 이뻐하였다. 자기 친소생인들 그다지 이뻐하랴 싶을 지경이었다. 문주도 그러는 고씨를 잘 따라 잠도 더러는 고 씨에게서 자곤 하였다.

고씨는 진주의 바느질 솜씨에 흠탁하였다. 바느질 외에 종종 음식을 시켜 보고는 음식솜씨 역시 얌전하고 깨끗한 데에 또한 탄복하였다. 그러고 차차로 날이 깊는 동안 구학문은 물론이요 신교육에도 무식치가 아니한 것과 언어 행동이 조백이 있는 것을 알고는 여간만 기특히 여기지를 아니하였다.

정녕 근지 있는 집에서 보고 배운 데 있이 자란 사람이거니 하고 예사 침모나기들한테처럼 함부로 대접하는 법이 없었다.

주인이 그래 주는 만큼 더욱 감복하여 진주는 있는 정성과 힘과 재주를 다 하여 알뜰히 일을 하였다. 들어간 지 두 달 안에는 바느질뿐만 아니라 음식 마련까지 해서 침선 범절과 심지어 집안 소쇄에 관한 것까지 죄다 진주의 손과 그의 간여로 되게 되었었다. 가정부(家政婦)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제일 누구보다도 철이가 좋았다. 의원과 의사를 대어 약을 먹이고 치료를 하고 한편으로는 영양과 소화에 좋은 음식을 충분히 먹이고 한 결과 미구에 병줄을 놓고 무럭무럭 소성이 되었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철로 접어들면서 는 아이가 딴 아이처럼 살이 오르고 원기가 발랄하여졌다. 어떻게도 반갑고 신기한지, 진주는 그렇게 충실하여진 철이를 바라다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나도록 기뻤다.

문주는 물론 잘 먹고 잘 놀면서 잘 자랐다. 재롱은 나날이 늘고, 그럴수록 고씨의 귀염은 더하여갔다.

한번 철이에게서 실패한 전감이 있는지라 진주는 충분한 주의를 하면서 서서히 이유 준비를 하다가 시월달에는 아주 젖을 떼었다. 준비 시기가 여름철이었고 하여서 몇 차례 배탈이 나고 하였으나 이내 낫고 하였다. 문주의 이유에는 십분이나 성공을 하였달 편이었다.

한편 그러고 진주도 혈색이 좋아지고 원기가 회복되었다. 일이 미상불 여러 가지요 고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과로 지경은 아니어서 건강에 해를 끼칠 것은 없었다.

이렇게 진주 세 모자는 만족이요 행복이었다.

주인 고씨도 이네에 대하여 불만일 것이 없고 차라리 만족이었다. 해서 주인과 나그네가 다같이 좋았다. 소위 관무사 촌무사(官無事村無事)격이었다.

모든 것이 주인인 남(他人[타인]) 중심이요 남 표준이었다. 나(自我[자 아])라는 것이나 나 표준 내 맘대로라는 것이 없었다. 자연 독립성이 없고 자주적인 것이 못되는 한 소극적이요 추수적인 생활이기는 하였다. 전혀 신축성이나 비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생활은 아니었다. 이것이 미흡하다면 미흡이요 결함이라면 결함일 것이었으나 그렇더라도 아사의 지경에서 방황하거나 자식을 남의 집 개구멍받이로 들여보내던 생활에는 비길 바가 아니었다. 달리 두르러진 묘책이 없는 이상 써 오랫동안 그대로 지탱함만 같이 못하였다.

그러나 이 아늑한 지대(地帶)도 매양 젊고 어여쁜 여자 진주를 위해 길이 안신(安身)할 자리는 되지를 못하였다. 생각컨댄 인간세상에서 여자의 정조처럼 말썽스런 것도 드물 것이었다.

10[편집]

바깥주인 김씨는 나이 오십이라는데 그저 사십이 좀 넘어보이는 의젓하게 생긴 양반이었다 장동 . 김씨네 일파라더냐 무어라더냐 하나, 참 그런 양반 보다는 역시 상고판의 돈 있는 양반 냄새가 풍기는 양반이었다. 치깎은 상고머리, 금테살 주경, 동아줄 같은 금시계줄과 사발만한 금시계, 백금반지 와 가락지만큼이나 큰 금반지…… 이런 것들이 첩경 사람 그러하여 보였다.

듣기엔 첩을 넷인가 다섯인가 얻어두고는 기생첩의 집에 가서 한 사날, 과 부첩의 집에 가서 한 나달. 시골 마름의 딸한테 첩장가 든 첩은 데리고 아 기 빌러 가느라고 한 예니레. 또 무슨 생첩은 깜장 통치마에 구두 신겨 동 부인이라는 것을 하고 온천 가느라고 한 댓새…… 이렇게 윤번을 돌면서 본 집에는 한 달에 한 번이나 들를까말까 한다던 김씨가 하루 아침 본집에서 진주를 발견하면서부터는 본집에의 발걸음이 서서히 잦기 시작하였다.

진주는 처음엔 내외를 하였다. 그랬더니 김씨는 마누라 고씨랑 같이서, 나 이로 하더라도 부모 자식 같은 사이에 내외가 무슨 내외냐고 하여 하릴없이 통내외를 하였다.

안주인 고씨가문주를 귀애하듯이 김씨는 철이를 대단히 귀애하였다. 오면 으례껏 철이를 불러 안고 앉아서 이야기도 시키고 약 걱정도 하고 하다가 데리고 나가 먹을 것이며 장난감을 사 들려보내곤 하였다. 한번은 금투성이를 한 대례복을 처억 사입혀 들여보내서 진주로 하여금 기절을 할 뻔하게 하였다.

마누라 고씨의 옷감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반드시 진주의 것도 가지고 들어와 직접 혹은 마누라를 시켜 전하였다. 당혜도 사주고 구두도 마춰다 주었다.

진주는 오직 친절이거니 하고 늘 미안스러워하였을 뿐이었었다.

유월 보름께. 이때는 김씨는 사흘만큼씩 나흘만큼씩 본집엘 와서 자고 조석을 먹고 하였는데, 그 이유가 매우 적절하였으니, 가로되, 우리 그 침모 아씨의 찬수 솜씨가 썩 입맛에 맞아서라는 것이었었다.

그러자 하루는 드디어 진주의 손목을 쥐었다. 안주인 고씨는 마침 출입을 가 늦었고 진주가 저녁상을 들여갔더니, 술을 부어달라고 하였다. 술을 부어주는 것인지 부어주지 않는 것인지는 몰라도, 와락 내키지는 아니하나, 그렇다고 못한단 말이 나오지 아니하여 술을 부어주었다. 석 잔을 받아 마시더니 턱 손목을 잡는 것이었었다.

진주는 놀랐으나 이내 당황치 아니하고 좋은 낯색으로 뿌리치고 나왔다.

그 등 뒤에다 대고 나는,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 영리한 그대가 자식 같이 귀여워 그랬으니 어찌 생각 말구료하였다.

진주가 포달을 부리지 않고 좋은 낯색으로 뿌리친 것을 김씨는 잘목 해석을 하였던 모양, 그 뒤에도 큰마누라 고씨가 없는 기회면 그 수작을 내고 내고 하기 사 오차나 거듭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 이번에는 마침내 진주의 침방을 엄습하였다.

준절히 한마디 꾸짖고 방을 뛰쳐나오는 진주의 옷자락을 검쳐 쥐면서

“자식 하나만나면 이 재산이 죄다 네것인 줄 몰라?”

하였다.

12. 不如意[불여의][편집]

1[편집]

세월은 아뭏든 흘러 그로부터 다시 십 년이 지났다. 앞으로 일 년이면 진 주의 나이 그럭저럭 사십이 차는 병자(丙子), 소화 십일년이었다.

첫여름 오월, 신록 환히 피어오르고 신선한 계절 오월 그믐의 어느 날.

양광이 차창으로 맑게 드리우는 남행열차의 한 복스를 차지하고 앉아 철과 문주 남매는 어머니에게 거느린 바 되어 시골 본가엘 내려가고 있었다.

철이 어느덧 열네 살이요, 문주가 열두 살이었다. 철은 중학교의 정복 정모에 깃에 단 3자를 붙이고, 문주는 소학교 오학년이었다. 자라는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다들 몰라보게 자랐다.

아이들이 그처럼 자란 반대로, 아이들을 그만큼이나 기르고 학교에도 보내 고 하기에, 십 년의 고생을 또다시 치르었고 사십이 차고 하는 어머니 진주는 역시 몰라보게 바싹 늙었다.

자식 하나만 나면 이 재산이 죄다 네것이라는 소담스런 미끼를 물리치고 아이들 남매를 데리고 가두로 나섰을 때에는 지나간 고난을 생각하여 앞길이 깜깜하였다.

요행수중에 돈이 조금 있었다. 언젠가 창수가 놓고 간 오십 원과 다달이 월급으로 받아 모은 것과, 그리고 작별하면서 고씨가 몇 십 원 쥐어 준 것과도 합일백오십 원은 되었다. 이것이 말하자면 백사지에 선 세 모자의 생명의 줄이었다.

머리 두르고 갈 곳이 없는 몸이라 전에 살던 재동 그 노파를 찾았다. 마침 건넌방이 또 비어 있어 다시 세로 얻어듦으로써 우선 거리잠을 면하였고 일변 노파의 훈수에 좇아 물감장사를 시작하였다.

물감장사로 일 년. 한 아이 등에 업고 한 아이 손목 잡아 걸리고 문전 문전 드나들면서 물감을 팔았다. 다리가 뻣뻣하고 기진이 되도록 종일 돌아다니고 나면 이튿날 밥거리가 생기는 날도 있고 죽거리가 생기는 날도 있고 통히 생기는 것이 없는 날도 있고 하였다. 일 년 하는 동안에 할 수 없이 밑천에서 오십 원을 갉아먹었다. 믿고 길이 할 것이 못되었다.

권하는 이도 있고, 또 보아하니 자리만 잘 잡아 앉으면 그럴 성불러 다방 골에다 골라 방 하나를 구하여 가지고 ‘내재봉소’를 써붙였다.

처음 한 일 년이나는 별 신통한 줄을 모르겠더니, 차차로 바느질 솜씨 곱고 얌전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태째부터는 쑬쑬히 일거리가 들어왔다.

고객은 물론 태반이 기생과 여급들이요,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삯도 비교 적 후하였다.

삼 년 되면서는 들어오는 일거리를 손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고 월수로 재봉틀을 한 채 사놓았다. 이로부터야 겨우 모진 기한(饑寒)에 쫓기 기를 면하고 생활이랄 거의 자리(軌道)가 하여커나 섰다. 경오(庚午), 소화 오년에는 철이, 그리고 그 다음다음해에는 문주가 각기 학교에 들었다.

겨우 굶주리지나 않던 생활에다 아이들이 소학교나마 다니게 되니 수입이 지출을 따르지 못하였다. 진주는 먹는 것을 줄이는 한편 밤을 새워 가면서 일을 더 하여야 하였다. 그러면서도 학교에 내는 월사금을 제때 제때 주어 보내지 못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울고 갔다 울고 돌아오게 하는 적이 많았다.

젊고 인물 얌전한 여자가 홀몸으로 어렵게 사는 약점을 엿보고 유혹이 연방 끊이지 아니하였다.

2[편집]

그런 종류의 유혹이란 거개가 판에 박은 듯한 것이었다.

매삭 이백 원씩 대어주고 집 사주고 할 터이니, 세짼가 네째 첩으로 들어 오라는 것이었었다. 안국동 김씨처럼 재산은 많은데 자식이 없으니 남녀간 하나만 낳으면 오백 석거리를 떼어준다커니, 단박 본실로 모셔 앉힌다커니 하는 것도 있었다.

전당국장이 일흔두 살 먹은 영감으로 작년에 마누라가 죽고 자식들은 다 장남하여 따로 살고 하니 들어가 말벗이나 하면서 의복이며 음식 시중 같은 것이나 착실히 보살펴 주고 하면 죽는 때 오천 원 주마는 것도 있었다.

족히 귀에 담아 들을 것도 못되는 소리들이었으나, 오직 중년 상처를 한 어떤 변호사의 후취 자리 하나만은 약간 마음이 움직인 것이 있었다. 희망이란다면 떳떳이 결혼 예식을 치러도 좋고, 저편에도 열 살박이 전실 소생이 하나가 있으니, 이편도 딸린 것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반대치 아니할 터이요, 꼭같이 최고학부까지 공부를 시켜 줄 것이요 한다는 것이었다.

재혼일망정 정당한 결혼인데다 아이들을 마음대로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 이 여간만 솔깃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침 밤이 깊도록 바느질을 하고 있었는데, 나란히 누워 자고 있던 두 아 이를 곰곰 바라다보다가 문득 ‘저것들을 데리고 남의 애비한테로 후가살이를?’ ‘의붓자식! 의붓아비!’ 하면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점잖고 가사 눈치를 않는다 잡더라도 의붓 자식에게의 매양 의붓아비임엔 일반이었다.

‘공부 한가지 잘 좀 시키자고 저것들을 의붓자식 신세를 만들어주어? 천하 치사하고 남 보매부터 추레한 의붓자식!’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오냐, 고생스러워도 참고들 견디어다오. 더는 모르되 중학 하나씩은 이를 악물어가면서라도 기어이 마치도록 하여주마.’ ‘의붓자식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이름 아래 잘 지내면서 창피한 대학 공부까지 하느니보다는 가난하나마 어미의 정성, 어미의 손에서 고생으로 중학만 마치는 것이 너희들도 행복이요 자랑이리라. 이 어미도 그것이 자랑이 요 행복이겠다.’ 이렇듯 유혹을 물리치고 쓰라린 고난을 단물이 나도록 야긋야긋 씹어가면서 뜻을 꿋꿋이 지켜나갔다.

아침 일찍부터 밤이 깊도록 쉬지 않고 다르르 구르는 한 채의 재봉틀 소리…… 이가만한 소리가 엮어내는 어머니의 정갈한 수고로 철이 우선 재작년 봄 버젓이 ××중학에 들었고, 올해 벌써 삼년급이 되었었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더 바라지도 않고 욕심도 부리지 않고 오직 아침 일찍부터 밤 깊도록까지 다르르 구르는 재봉틀 소리 하나만으로써 두 아이가 중학을 마치는 날까지를 대어가기에 여념이 없을 참이었었다.

그러자 생각밖에 박씨부인이 병이 중하다는 것과 그리고 아이들이랑 며느리를 임종에 만나고자 한다는 기별을 가지고 죽은 준호의 외사촌이 시골로부터 진주를 찾아 올라왔다.

만나고자 한다는 말이 없더라도 임종이라고 하니 도리에 선뜻 일어서지 아 니할진주가 아니었다. 좀처럼 쉬는 법이 없는 학교를 다 쉬게 하고서 아이들을 데리고 바로 이튿날인 시방, 그래서 이렇게 부랴부랴 시집 본가엘 내려가고 있는 길이었었다. 쫓기어나서 어언 이십일 년 만인 시집 본가엘.

감회 자못 무량한 길이었다.

3[편집]

그 이십일 년이라는 동안에 진주는 퍽도 많이 인생을 손을 보았다.

재혼을 뜻한 바가 있었다. 사실 그것 자체야 노상 불순하였다고 할 무엇이 없다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상대적으로는 정신적인 순결이 한귀퉁이가 이지러졌음을 스스로 거부키 어려웠으며, 따라서 마음 가운데의 한 가시지 않는 흠집이 아닐 수 없었다.

곡절은 어떠하였던지, 또 악의로써 한 것은 아니었다지만, 하여커나 자식을 눈 번히 뜨고 남의 집 문전에다 개구멍받이로 버린 것이 있었다. 뉘우치고 곧 도로 찾고 하였다고는 하여도 이미 씻을 수 없는 오점(汚點)이요, 평생토록 잊지 못할 가책거리였다. 항차 도로 찾은 것이야 우연의 요행이 아니었던가. 우연의 요행으로 그렇게 도로 찾았기 망정이지, 만일 찾지도 못하였더라면 어쩔 뻔하였던가.

과실은 아니요 불가항력을 불가항력이었으나, 남편 준호를 여의고 삼십 안에 과부가 되었다. 절대로 채워지지 못하는 손실이었다.

부부의 낙이나 가정의 단란 같은 것은 미처 맛도 들이지 못한 극히 짧은 동안이었고, 그런 것이 마악 시작되려 하자마자 이내 새파란 청상과부의 몸이 되었다. 그러고는 기한과 남의 업신여김과 동요 가운데 좋은 청춘을 다 보내었다. 하고서 이에 시드는 사십의 고개를 부질없이 넘고 있었다. 억울했다. 그런 억울한 도리가 없었다.

이렇듯 모두가 무를 수도 없고 메꾸어지지도 않고 하는 인생 손실의 연속 이었다.

작히 서러운 노릇이었다.

물론 그러한 손실이 있는 반면엔 철과 문주 남매가 눈앞에서 나란히 자라 고 있는 것이 있었다. 고난을 치르어 나오는 동안에 이루어진 결실이었다.

큰 자랑거리며 큰 즐거움이요, 자랑스러워하고 즐거워하여서 무방하였다.

그런 만큼 다시 없이 소중한 그들 남매이기도 하였다. 남의 열 남매 스무남매 지지 않게 소중한 남매요, 누가 눈 한번 크게 부릅뜰까 무서운 소중한 남매였다.

그러나 사람 따라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저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함에 있어 반드시 진주와 같이 인생을 손실하면서 하라는 법은 없었다. 아무 고 난이 없이 순조로운 조건 아래서도 남들은 저마다 자녀들을 낳아 훌륭히 양육과 교육을 시켜놓지를 않던가. 순경에서 평안히 호강으로 자녀를 기르고 교육시키고 하여 훌륭히 된 자녀라고서, 진주만큼 자기네 자녀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부모가 있으며,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부모가 있던가.

결국 그러므로 자녀라는 것은 부모의 고난에 대한 직접적이요인과적인 대상인 것은 일률적으로는 아니었다.

‘고생한 보람으로 자식들이 저만큼이나……’ 흔히들 이렇게 말도 하고 생각을 한다. 진주도 매양 그러하였다.

그러나 자녀는 인생을 손실한 것과는 역시 딴 것이었다. 그리고 진주도 인간의 약함을 갖추지 아니치 못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손실한 인생이 미련겨 울 적이 없을 수가 없었다. 더우기 이십 년 전 그로 하여금 인생의 손실을 출발케 한 시초에를, 지금에 공간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날을 당하여 그런 감회, 저런 감회 두루 깊이 솟는 것이 없다면 오히려 빈 말일 것이었다.

4[편집]

그런 중에도 골똘하달까 안타깝달까 하기는, 잊어버리고 지나친 청춘이었 다. 꿈결만 같은데 어느 겨를에 온 것은 사십이라는 늙음이었다.

‘허망도 하지!’ 허망하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 공허의 느낌을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앞자리와 옆에 번연히 철과 문주가 앉아 있건만 홀로 무인지경을 가기처럼 외로왔다.

준호 그리운 생각이 불현듯 새로왔다. 등신이라도 옆에 있다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고적해요! 슬퍼요!”

하고 하소연하면서 울고 싶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그런 가만한 혼자의 세계도 오래도록은 허락하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

응석받이 문주가 눈 지그시 감고 차창에 기대어 있는 어머니를 별안간 팔을 잡아 흔들면서 호들갑스럽게 부른다. 차가 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보다 맞은편 자리에서 무슨 책인지 교과서는 아닌 술 두꺼운 책을 잠착하여 읽고 있던 철이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핀잔이었다.

“기집애아 개떡두스러이.”

“피이. 기집앤 활발스러믄 못쓰나 머.”

“쓸 건 어딨어?”

“왜 못 써?”

“보선짝이니 쓰니?”

“하하하. 보선짝을 쓰는 사람이 어디가 있어?”

“너 겉은 기집애란다.”

“오빠나 써라.”

“………”

철은 더 대거리를 않고 책으로 다시 정신이 쏠리고.

문주는 어머니를 올려다보면서

“아따 엄마?”

“오냐.”

“기집애두 활발스러예지 허지, 응?”

“그래두 너무 활발스러면 왜장녀란다.”

“왜장녀? 왜장년 또 무어유?”

“게덕만 피우구 얌전치 못헌 기집아일 왜장녀라구 헌단다.”

“왜장년 못 쓰우?”

“못쓰구말구!”

“오라. 그럼 나두 죄끔만 활발스러예지…… 죄끔 활발스런 건 갠찮지, 엄마?”

“오냐.”

어머니는 철의 벌써부터 명상적인 소곳한 이마를 곰곰이 건너다보면서 무심중에 얼굴이 흐린다.

철은 생긴 모습부터, 성격하며, 말이 적은 것이며, 그 밖에 모든 행동거지며가고대로 준호를 본떠다 놓았었다. 집안 사람이거나 남이거나 같이 섭쓸리기를 즐겨 아니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도 생전의 부친 준호였었다.

반대로 문주는 계집아이면서도 왈패스럽고 앙칼지고 한 것이 철과는 전혀 딴판이요, 어쩌면 저의 할머니 ——— 박씨부인을 많이 탁한 것도 같았다.

‘차라리 둘이 바꾸어 되었더라면!’ 아무리 남자라 하더라도 박씨부인 같은 성질은 와락 추앙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 아무리 여자라 하더라도 준호 같은 성격은 역시 박씨같이 되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이왕이면 ——— 이왕 두 아이의 성격들이 그랬을 바이 면 ——— 철이 박씨부인을 탁하고 문주가 준호를 탁하고 하였던 편이 차라리 그래도 나을 뻔하였다는 것이었었다.

‘사람이 한세상 살기에 무엇 한가지 뜻과 같이 되는 것이 있을꼬마는 그중에도 가장 불여의(不如意)하기는 자식일까 보다!’ 진주는 절절히 이런 생각이 새삼스러웠다.

5[편집]

차는 호남선으로 갈리는 대전을 거의 바라보면서 첫여름이 선명한 언덕 기슭을 줄기차게 달리고 있고.

“철인 참, 이 세상에서 젤 존 것이 무어지?”

곰곰이 아들의 책에만 잠심하여 있는 양을 건너다보다가 밑도 끝도 없이 어머니가 그렇게 묻는다.

철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더니, 그래서 영영 대답을 않거니 한 것이 얼마만에야

“책요.”

한다.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이윽고

“그건 무슨 책이냐?”

“별의 전설이라구, 저 거시키.”

“별의 전설? 철이겐 안직 좀 어려운 책 같은데?”

“………”

“재미있니?”

“내.”

“철이 다 보구 나서 어머니두 좀 볼까?”

“어머닌 봐야 재미 하나두 없어요. 살림만 아는……”

어머니는 속으로, 내가 너를 지도하자면 그동안보다 더 큰 고생을 ——— 마음의 고생을 하여야 되겠구나. 그러니 에미 노릇도 이 앞으로가 더 어렵고 책임이 정말로 중하구나 싶었다. 그러나 일찌기 명심한 바도 있거니와 자녀를 지도 훈육함에 있어 결코 박씨부인과 같은 그런 방침이나 태도로는 아니 할, 시방도 생각이었다. 무릇 자식은, 불여의하다는 것은 부모의 소주관이요, 부모에게는 불여의한 자식이라도 인간은 불여의치 않은 것이 사람이었다. 사람만 여의하다면 부모의 소주관은 문제가 아니었다. 자식을 잘 지도 한다는 것도 그러므로, 여의한 자식을 목적이 아니라, 여의한 사람이 목적 이어야 할 것이었다.

정거장으로 내어보낸 두 채의 교군에 별러 타고 밤이 들어서야 진주는 이 십일 년 만에 오는, 그리고 두 아이는 생후 처음으로 와보는 향교골 본가엘 당도하였다.

환히 밝힌 촛불 아래 자는 듯 눈을 감고 누웠는 박씨부인은 첫눈에 벌써 임종의 빛이 완구하였다. 그러나 그 임종의 자리는 너무도 쓸쓸하였다. 서울로 진주 모자를 데리러 왔던 준호의 외사촌 즉 박씨부인의 친정 조카, 그의 아낙이 하인 하나를 데리고 약시중을 하면서 자리에 있었다․ 준호의 외삼촌 내외는 연전에 내외가 전후하여 다 죽고 없었다.

진주는 병인이 혹시 잠이 들었나 하여 기척을 하기가 조심스러워 잠깐 그대로 서서 동정을 기다렸다.

진주 모자들을 말없이 일어서서 맞이한 준호의 외사촌댁이 그 눈치를 알아채었던지병인의 머리맡으로 도로 앉으면서

“고모님, 서울서 동생이랑 조타들이랑 왔어요.”

하였다.

박씨부인은 정녕 알아들은 듯하였으나 눈두겁만 두어 번 떨릴 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실상 그는 교군이 들어올 때에 벌써 알고 있었다.

진주는 두 아이를 이끌어 함께 병인의 옆으로 가까이 꿇어앉혔다. 그러면서 조용히

“어머님, 저 왔어요. 어린것들 데리구 왔어요.”

하고 음성을 내었다.

박씨부인은 그래도 이내 반응을 보이지 않더니, 한참만에야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러나 눈은 곧장 천장을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할머니, 정신 차리셌다. 절들 허구 뵈여라.”

세 모자는 절을 하였다.

박씨부인의 눈은 여전히 천장을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윽고 도로 눈을 감는다. 감고는 또 한참만에 입으로부터 흘러져 나오는 말이

“무엇허러 왔느냐, 들?”

6[편집]

박씨부인은, 말뜻인즉은 타박이요 나무람인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음성에는 전혀 힘이 없었다. 기승스럽지도 못하고 모질지도 못하였다. 괄괄하지는 더구나 못하였다 하되 . 결코 그것은 병인의 병인답게 원기가 없는 데서 오는 무기력이 아니었다. 진심(眞心) 아닌 말이요, 자신 없는 말이기 때문 에, 가사 원기가 있더라도 강경하고 서슬 있고 하지가 못하여 무기력한, 그 무기력이었다.

박씨부인은 진주 모자들을 얼마나 만나고 싶어하고 기다리고 하였는지 모른다.

내가 아마 소성을 못할까 보니, 자네가 가서 그것들 세 모자를 좀 내려오도록 하게. 그것들 외가편으로 수소문을 하면 서울 어디서 사는지는 곧 알게 되리. 알아가지고 가서 그것들 먼저 내려보내고 조칼랑은 이왕 서울까지 간 길이니 하루 이틀 묵어 나 죽어서 쓸 송종 물화까지 아주 하여가지고 뒤쫓아 내려오게.

이렇게 친정 조카를 시켜 서울로 올려보내 놓고는 그날부터 기다렸다.

“아직 기별이 없느냐?”

“네. 아직 없어요.”

“온, 어째 이리 더딘고.”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그애가 내가 부른다구 선뜻 내려올꺼나? 어린것들 데리구.”

“아니 올 이치가 있어요.”

“모르지!…… 원망이 사모쳤을 테니, 졸연해……”

또 조금 있다 또 그러고. 하루 종일 그랬다. 곧 숨이 질 듯 질 듯 하면서 도 정신은 초랑초랑하여 가지고, 그러면서 기다렸다. 이튿날은 더하였다.

그러다 석양 때 전보가 와서야 우선 오기는 온다는 안심에 초조하던 것이 조금 진정되었다.

교군을 차리라고 재촉이 불 같았다. 차리되, 팔패 교군으로 두 채를 차리라 하였다.

일변 고기를 사들이고 떡쌀을 불리고 과실을 장만하고.

교군이 나가서 극진스런 이 일행을 태워가지고 돌아오기까지 네 시간 남짓한동안에 머리맡에서 시중하던 하인은 동구 안으로 등불이 들어오나를 보기 위하여 대문 밖을 드나들기를 무려 몇 십 번인지 모른다.

이렇게 기다리던 박씨부인이었다. 진심으로 무엇하러 왔느냐는 호통이 나와질 리가 없던 것이었었다.

진주는 아직 그런 속내까지는 몰랐어도, 서울서 준호의 외사촌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고, 또 와서 언뜻 보매도 무척 온건한 표정이며, 그 슬프도록 무기력한, 무엇하러 왔느냔 말이며로 미루어, 이 시어머니가 이미 다 뉘우치고 마음은 풀어졌으며, 지금엔 도리어 용서를 바라는 처량한 근경임을 짐작하기에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진주는 도리를 차리었다. 먼저 빌었다.

“어머님, 동촉허세요. 전사가 다 제 잘못 제 허물인 줄을 깨달었으니, 어린것들을 보세서 그만 동촉허세요.”

“………”

아마도 오 분은 넘겨 침묵이 흘렀으리라. 박씨부인은 여지껏 그대로 감았던 눈을 어렵사리도 다시 뜨고는 진주와 철과 문주를 차례로 본다. 그러더니 눈은 처음에처럼 천장에 가 멎으면서 혼잣말로

“놈은 아범만 닮었구나. 승밀랑은 닮지 말드냐?”

잠깐 숨을 돌리고 나서, 손이 베개 밑을 더듬으려고 하는 것을 친정 조카 며느리가 뜻을 알아채고 얼른 열쇠 꾸러미를 꺼내어 손에 쥐어준다. 그것을 받아 가까스로 진주에게다 전하면서 조용히

“옜다, 다아 맡아라…… 나는 가겠다!”

그러고는 조금 있다

“하나두 뜻과 같은 것이 없었고나!”

인하여 가벼운 경련과 더불어 운명이었다.

여기에도 불여의가 있었다. 불여의하고도 큰 불여의가.

13. 血肉[혈육][편집]

1[편집]

“그날버틈은 다 참 너두 어리나따나 네 눈으루 보구 겪으구 해서 잘 알다시피, 먹구 입구, 너이 오뉘 공부 맘놓구 허구 허믄서, 세상 살게야 아무 그릴 것이 없었드니라만서두…… 추수가 삼백 석이나 되지. 돈을 또 돈으루 퍽 많이 모아 두시구 돌아가섰지. 빚 없지. 무엇허러 큰부자가 부러우니.

그만하면 거저 가만히 앉아서 생기는 것만 가지구 써두 넉넉허구. 그러구두 남아서 해마다 수월찮이씩 밀려나가구. 그래 나두 힘 안 들이구 느이 오뉘 길러가믄서 공부허구퍼 허는 대루 시키구. 조옴 몸이 편안해? 삯바느질 논 것만 해두 어딘데. 바루 호강이 늘어졌지…… 그랬든 것이 그것두 타구난 팔자를 못 어기기루 마련여 그런지, 편안한 건 겨우 몸 하나뿐이구서 이날 이때까지 잠시 한때 맘이 편안할 날이 없구나…… 네 오빠루 해서 내가 애를 태우구 속 썩히구 걱정허구 하든 일을 생각하면…… 휘유…… 전에 그 의지가지 없이 너이 오뉘 데리구 지질한 가난으루 굶주리구 헐벗구 추어 떨구 허리가 꼬부라지두룩, 앉어서 삯바느질루 밤을 새우구 기진해 쓰러지구.

하든 고생이야 차라리 약과 같은가 보드라. 약과든가 보아…… 늘 몸이 약해 병을 끓이다 열여섯 살 적엔 일년을 누워 앓으믄서 정녕 죽다 살아나지를 아니했니? 그러다 요행 도루 살아나 학교를 다시 댕긴다는 게 그 짓을 또 저지르구는 고만 종적을 땄지 아니했니? 가까스루 딴 학교를 들어가 졸업을 허구, 이내 대학에 들구. 몸두 그때 가서는 많이 실해지구. 그랬길래, 오냐 인전 내가 맘을 놓구 고생 다면했나 보다 했드니, 웬걸 그 알량한 연애에 미쳐가지구는…… 여자가 그런 사람만 아니라면야 왜 내가 근심을 허며 나서서 간섭을 허니? 날더러 완고 허다구, 그 여잔 신분은 암만 여급이라 두 맘이랑 몸은 다 순결허다구 펄쩍 뛰믄서 고집을 쓰드니, 겨우 두 달 겉이 살구 나서 죄 깨닫군 후회허구 내려와, 어머니 제가 지각이 없어 그랬어요 했지 않었어?…… 돈 좀 버린 거야 대수가 아니요, 천행 저라서 깨우쳤으니 한갓 신통한 노릇이지만서두, 글쎄 공부하는 몸으루, 또 총각놈이 그런 망발이 어딨으며 그런 창피가 있니?…… 내가 저쪽 이십 년 고생엔 벼랑 늙는 줄을 모르겠드니, 이쪽 십 년 맘고생으루 이렇게 영영 아주 늙어버렸단다!”

일찌기 젊어서는 진주요 시방은 옥동댁으로 불리는 어머니가 딸 문주를 앞에 앉히고, 한 필의 낡은 모시에서 실마리가 풀리어 나오게 된 회고의 긴 이야기는 마지막 끝이 났다. 이야기를 시작한 어젯밤은 닭이 울었고, 오늘 도 낮때부터 계속을 하여 시방은 석양 무렵…… 내일로 임박한 추석송편을 모녀가 마주 앉아 빚는 자리에서 이야기는 마침내 끝이 났었다.

문주는 어머니의 과거지사를 단편적으로는 더러 안 것이 없던 바는 아니었 으나 극히 사소한 면(面)이었으며, 자초지종 전부를 이렇게 자상히 이야기 듣기는 비로소 처음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문주는 마치 호대한 장편을 단숨에 읽어낸 것 같아 머릿 속이 멍한 것이, 두르러진 감상을 포착키가 어려웠다. 따라서 비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 ‘가엾은 어머니!’ 이것만은 아프게 느끼겠었다.

2[편집]

네 개의 손끝에서 이쁘장스럽게 빚어지는 뽀얀 송편이 깜장 소반으로 관병식하는 군대처럼 가지런히 놓여나간다.

마당은 아직도 싱싱한 팔월 노양이 가득히 내리쬐고.

조금 아까 머슴이 져다 마당 가운데 펴 널어 말리는 산풀나무가 따가운 햇볕에 익으면서 물큰한 가을 풀향기를 흥건히 뿜는다. 씨르르르…… 실매미 소리가 바람결을 타고 멋들어지게 나부끼며 흐른다.

오랜 침묵. 그러나 문득 어머니가 벗겨논 풋밤을 한 알 집어 송편 속을 넣으면서 혼잣말로

“송편을, 송편 두 밤송편을 퍽두 질겨 허드니……”

“그래두 이거 깨소곰 속 넣은 거래야 헌다우.”

문주가 밤을 집으려다 깨소금으로 떠가면서 대답이었다.

“이 더우에 시언허게 둬두어두 이틀이 못가 착 쉴 텐데, 오빠 손에 가 떨어지자믄 한 달이 걸릴지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걸, 그동안 썩어버릴 거 아니우?”

“한 달이면, 허기야 돌덩이처럼 굳어지구 말걸, 성할 걸루다 보내기루 받아서 먹기나 허니? 구경이나 허겠지.”

“굳었으믄 쪄먹지.”

“………”

어머니는 잠자코 한참은 앉아서 송편을 빚고 있다가 새삼스럽게

“문주야?”

“응?”

“………”

“무어유 어머니?”

“어저끼버틈 내가 이렇게 연 이틀을 맘이 산란해 못허겠구나!”

“자꾸만 오빠만 생각만 허니깐 그렇지.”

“혹시 무슨 ……”

“아냐 어머니…… 저어 그런대잖어. 명절 땔 당허믄 부모 생각이 더 난다구. 걸 한문시로 무어라구 했지?”

“매봉가절(每逢佳節)에 배사친(倍思親)이란다.”

“응, 매봉가절에 배사친. 오빠두 그러니깐 명절은 되구 허니깐 진중에서 어머니 생각을 퍽 헐 거 아니우? 그런데 말이우, 아들이 객질 나가서든지 부모 생각을 골똘히 헌다치면 그것이 곧장 부모헌테루 울려서 부모두 괘니 맘이 이상해지구 그런대잖우? 어머니 맘 산란헌 것두 아마 그건가 봐.”

“작히 그렇기나 허구 아무 일두 없는 노릇이라면 좋겠다만서두.”

“그럼 없잖구, 일이 무슨 일이우?”

마악 그때였다 밭은기침 . 소리와 더불어 창수가 졸지에 차면 안으로 들어섰다.

창수는 옥동댁 ─ 진주가 병자년 그해 이 집으로 도로 들어와 박씨부인의 뒤를 이어 안팎을 겸한 주인이 되던 기회에 미두장과 하바꾼으로부터 깨끗이 손을 씻고는 진주에게서 얼마의 자본을 얻어 장사를 시작하였었다. 일체 잡념을 먹지 않고 성근히 잘 하였고, 그 덕에 근년 와서는 웬만큼 생계가 안정이 되었고. 따라서 의표며 신수가 그 옛날 미두장 방퉁이꾼으로 굴러다닐 때처럼 궁한 것은 아니었다.

“오라버니, 웬일이시우?”

“아, 외삼춘 오시네.”

모녀가 함께 그러면서 옥동댁은 몸을 일으키고, 문주는 쫓아내려가고 한다. 그러는데 뜻밖에 또 하나의 인물이 창수의 뒤를 따라 차면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아이머니 저……”

순간 옥동댁은 눈이 확 벌어지면서 소스라치게 놀란 음성으로 한소리 그러 다 호흡도 말도 딱 막힌다. 사지를 잘게 떤다. 도저히 꿈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당장 거기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3[편집]

군도(軍刀) 차고 누런 장화 신고 금테 안에 별 붙이고 한 장교가 모자만 둥근 모자가 아니요 전투모였지 그 외에는 일찌기 사십 년 전 일로전쟁 때 이영삼고지의 쟁탈전에서 용맹히 싸우고 장렬한 전사를 한 임중위(林中尉) 즉 진주의 바로 친정아버지 그냥 그대로가 시방 철그럭거리면서 차면 안으로서언히 들어서는 것이 아니었던가. 여덟 살 적 그날 밤 마지막으로 보였고, 궂긴 지 이에 사십 년. 그런 아버지가 사십 년 전 생전시의 그 모양대로 여기에 나타나다니. 가사 그동안 살아 계셨다손치더라도 이미 칠순이 아닌가. 그런데 저렇게 그때와 조금도 다름없이 젊은 모습인 채로.

정녕 꿈이었다. 그러나 멀쩡한 생시인 걸 어찌하랴.

옥동댁이 좀 더 바투서 좀 더 침착히 살펴보았다면 같으면서도 다른 점을 여럿을 발견하였을 것이었다. 우선 키가 임중위처럼 후리후리하지 않고 등이 짤막하였다. 나이도 근 사십을 바라보아 보였다. 그리고 지위도 중위가 아 니라 훨씬 중좌(中佐)였었다.

문조도 불의한 나그네에 놀라 토방 아래 가 주춤하고 서 있고.

하 세상에 이런 “, 희한스럴 도리가 있어? 온 이런 경사스런 일이 있어?”

창수는 밑도 끝도 없이 혼자 연방 그러면서 일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면서 분주히 대뜰로 올라서더니

“누이 여보게! 아, 동생이 생겼어, 동생이! 없는 친동생이 생겼어. 내지 동생은 내지 동생이라두 친동생이……”

“오오 그럼……”

옥동댁은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혼란턴 정신이 번쩍 들면서, 동시에 어언 영문인 것을 환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사십 년 전, 아버지 임중위가 전지로 떠나던 마지막 그날 밤, 식혜를 자시면서 할머니 송심당노인과 사이에 취실 ─ 결혼 문제에 대하여 오고 가고 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가지고 그 뒤 나이 들면서부터 상상을 두루 하여, 어떤 내지 사람 여자로 계모가 있으리라는 것과 그 몸에서 사나이의 소생이 있으리라는 것을 늘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윽고는 그것을 사실로 믿기까지 하고, 마침내 ‘좀 보았으면! 왜 찾아오지 않을꼬. 그 새엄마랑 함께…… 몰라서 못 오 지나 않는지.’ 하면서 무한 그 가공(架空)의 동기를 그리워하기를 마지 아니하였었다.

‘……동생, 오랍동생. 꼬옥 아버지를 닮아 이쁘고도 씩씩하게 생긴 사나이, 내 오랍동생. 한 열한살이나 열두 살박이, 한창 장난꾼이 선머슴 귀여 운 내 동생.’ 이래싸면서.

시집을 가 쫓기고 하기 전후 시절이었고. 그 뒤로는 쓰라린 고난을 겪어내느라고 그런 공상은 어느덧 다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하던 가공의 동기가 땅에서 솟은 것처럼 지금 여기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 었었다.

아버지 임중위인 줄 착각하고서 꿈이 아닌가 한 진주는 이번에는 현실이 하도 신기하고 의외여서 또 한번 꿈이 아닌가 싶었다.

4[편집]

지금으로부터 서른아홉 해 전이었다. 동경서.

지독하게 완고하고도 엄격한 어느 사족(士族)의 집 딸이 임중위와 서로 사모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외국 사람이요 한 조선 사람과 상 사 ─ 연애를 한다, 결혼을 한다 하는 것을 완고씨는 크게 노하고 절대로 허락치 아니하려 들었다. 그러나 남녀 사이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저질러져 있었다.

완고씨는 더욱 노하여 무남독녀 외딸을 집으로부터 쫓아내었다.

여자는 뱃속에 새로운 생명을 깃들인 몸으로 여관집 한 방에서 울고 지내 다 미구에는 출정한 남자의 전사한 소식을 들었다.

아기는 세상을 나왔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는 사흘 만에는 다시 어머니를 잃었다. 산후의 실섭으로 인한 것이었다.

완고씨는 하릴없이 빼각빼각 우는 핏덩이를 마누라 시켜 안아다 길렀다.

기르는 동안 자연 애정이 솟았다. 퍽 사랑하면서 귀히 길렀다. 이름을 무일(武一)이라고 짓고 자기 민적에 입적시켰다.

무일은 아무것도 모르고 외조부를 아버지, 외조모를 어머니라 부르면서 호강으로 잘 자랐다.

소학과 중학을 거쳐 사관학교에 들어 시방은 중좌(中佐)에까지 올랐다.

무일의 외주부 완고씨는 종시 무일의 출생한 비밀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다 한 달 전 지하로 돌아가는 임종의 자리에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설파하였다.

“아범의 양자한 유족이 시방도 조선 아무 이러저러한 곳에 살고 있다더구나. 기회를 타서 한번 가 찾아보는 것도 떳떳하겠지.”

이런 말까지 하여 주었다.

그러자 무일 소좌는 마침 그동안의 후방 근무로부터 지나 방면의 제일선으로 전출이 되게 되었다.

조선은 지나가는 역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 을 그려 성묘도 할 겸, 또 양자일망정 동기도 상면할 겸, 내지에서의 출발을 이삼 일 앞당겨 떠나서 어저께 저물게 창수에게를 당도하였다.

동생은 누가 가르쳐 주고 소개라도 하고 하기를 기다릴 여부도 없이 성큼 마루로 올라오더니, 너풋 그대로 절을 하면서

“누님, 저올시다!”

한다.

옥동댁은 덤쑥 동생의 팔을 부여잡고 들여다보면서 목이 메어 잠시는 말을 못하고 눈물만 흘리다가

“잘 왔네 동생!”

배우기도 하였고 또 시방도 신문과 잡지를 보고 하기 때문에 옥동댁은 국어로 말을 하기에 불편이 없었다.

저두 반갑습니다“, 누님…… 실상 양자하신 유족이 있다구 들었구, 저 형님만 찾아왔었죠. 그랬드니 글쎄, 누님이 이렇게 기시군요! 같은 우리 아버지의 혈육을 함께 노눈……”

“어쩌믄 이렇게두 아버지만 고대루 탁했어! …… 나인 올에 몇이지?”

“서른아홉이올시다. 아버지 돌아가시든 그해니깐요.”

생후 처음 서로 대면이라는 것, 내지 사람과 조선 여인이라는 것, 당연히 이런 데서 오는 어색스럼이나 생소함이나 조심스러워함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고서, 둘이는 마치 같이 자라던 남매가 한동안 만에 만난 것처럼, 말씨 하며, 음성, 표정, 모든 하는 양들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친밀하였다.

‘핏줄은 할 수 없는 것이야!’ 보고 있던 창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절절히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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