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 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초월은 회피하기 때문에 명일의 길이 없다고 상섭 씨가 첫대 외쳐 부르짖었으나 상섭 씨 자신이 벌써 초월하려고 애쓰는 것을 깨닿지 못하는 모양이다. 상섭 씨도 ‘마네킹 걸’ 구경 가는 ‘마네킹 보이’가 아닐까? 상섭 씨뿐 아니라 요새 문단에서 뒤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속계(俗界)를 멀리하고 심산유곡에서 신선들이 노는 듯이, 아니 구름에까지 올라가고 싶을 터이다. 대중들로 하여금 그 정체를 붙들어보기 어렵게 함으로써 초인적 신비적 존재의 재적(才的) 위력(威力)으로 대중을 매혹하여 맹목적 존숭과 추수(追隨)적 행동을 받아보려 하는 무모를 그들의 이상(理想)으로 하는 것 같다.

다시 한보 들어가 그들은 초인적 불세출(不世出)의 재사로 자호(自號)하며 대중보다 훨씬 초월한 단계에 있는 것으로 자임하는 방종심을 끝까지 채우기 위하여 문예의 민중화를 꺼려하며 따라서 대중이 그 영역을 침범하여 드디어 그 정체가 나타나면 대중의 뒷발길에 채여 떨어질 것을 아는 소위 소부르조아지 문인들은 의식 무의식으로 그저 대중을 초월코자 하는 것이다. 조선의 거인(?) 양주동 씨가 이 표본이요 향자(向者)에 본지 발표 박영희 씨 「부패의 와중에서」에 대한 양씨의 답변은 종내 『문공(文藝公論)』 발매 선전 광고문으로 되고 말았으니—손을 두드리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두 손을 허공에 헤매이며 영락하여 가는 참태(慘態)는 가긍(可矜)하나 흥미있게 안 볼 수가 없었다. 상섭 씨를 이런 데 비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대중을 지남(指南)할 만한 ‘길’은 고사하고 아직 자신의 길조차 확실히 잡지 못하고 운애 저편에서 논봉을 들고 고함만 치고, 소위 초월을 면치 못하고 현대의 사명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닐까?

대중은 종하(重荷)요 현실은 판로(坂路)라 하였으나 이와 반대로 대중은 ‘힘’이요 현실은 ‘길(道)’이라 하고 싶다. 우주에 상하가 없는 것같이 문명과 야만도 상하 분별이 없을 것이니 반드시 문명을 산령(山嶺)으로 야만을 산록(山麓)으로 비유할 것도 아니다. 대중의 힘은 그때 그때 현실의 길을 문명, 야만 어느 것을 막론하고 향하는 대로 쉴 새 없이 몰아 나갈 것이니 여기 있어서 즉 핸들이 필요할 것이며 또 핸들을 잡는 영적 동물을 요구할 것이다. 영적 동물을 상섭 씨가 이른바 ‘지혜의 씨’라 하여보자(?) 그러면 나는 핸들 하나를 더 요구하는 것이니 방향만 잘 잡으면 지름길로 앞섰던 것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결코 공중누각을 짓자는 말이 아닌 것을 부언하여 둔다.

나도 과학문명 찬양자요 열렬한 한 사람인 동시에 그의 공리와 병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문명은 사람을 기계의 노예로 만든다고 직단(直斷)하는 것은 너무 과언이 아닐까? 엑케너는 ‘자아’를 포기치 않으면 쳅백호에 오를 수 없으니 자신이 기계의 노예화하였다.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도 생각된다. 쳅백호를 조작한 사람의 의사로 부여한 그대로 쳅백호는 충실히 성능을 가졌을 뿐이며 여기 엑케너의 정력이 움직여 비로소 사람의 어떤 욕구를 만족케 할 것이니, 다시 말하면 조작자와 조종자의 종합의사를 쳅백호에 전하여 표현한 결과로 보아 엑케너 의사의 일부가 쳅백호로부터 표현된 것이니, 엑케너 자신이 기계의 노예화하였다고만 볼 수 있을까? 요새 흔히 유행되는 기계의 노예화라는 것은 자본주의 가공장 속에 시달리는 피용 계급, 과학문명 반동 사상 분자의 과학문명 저주어나 혹은 진화 부인론자, 열광한 종교가들의 역설이 아닐까 한다. 기계로부터의 해방(?) 이따위 호사스러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린다. 우리 땅에서는 연돌을 볼 수 없다. 치차(齒車) 엔진이 또 그러하다. 기계로부터의 해방보다 차라리 기계에 계류될망정 악수하고 싶다. 우리들은 엔진에 주린 사람이다. 우리 생계는 주위의 엔진국 때문에 나날이 줄어들어 가지 않는가(?) 엔진국 제4계급—피용 계급의 사람들도 우리들보다 기름져 있다. 상섭 씨! 이른바 이런 의미가 아니고 따로 철학적 예술적 고상한 깊은 의미가 있다 하여, 나로서 도저히 엿볼 수 없는 심극한 암시와 풍자가 있다 하더라도 기계에서 해방 운운은 30세기쯤에 가서 발표하는 것이 어떠할까? 더욱 ‘다시 기계 정복에’라고 표제를 내붙인 것은 ‘명일의 길’치고는 우리로서 너무나 현실을 초월한 망상이 아닐까?

무산계급의 ××! 약소민족의 ××! 상섭 씨 말과 같이 기운꼴 차고 어깨춤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자유, 평등, 박애라는 말은 하지도 말 것이다. 부르조아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인류적 결합의 원리로 내놓은 사기적 표어요, 썩은 그들의 무기니, 아무 소용 없기 때문이다. 현대과학문명은 온전히 유산계급이 독점하고 그 혜택을 입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엔진, 치차, 모터 내지 전기, 모든 과학문명의 이기를 응용하여 견성(堅城)과 포루(砲壘)를 쌓고 무산계급 진지에 육박하여 살생, 약탈, 능욕의 폭위를 마음대로 부린다. 금일로 명일, 계급적 투쟁은 점점 백열 내지 첨예화하여 간다. 기계 점령! 이것이 무산계급 약소민족 최후 승리다. 이것이야말로 ‘금일의 길’이요 또 ‘명일의 길’이 아닐까?

과학의 폭위(暴威)가 예술의 영역을 침식하는 원인이 속도 제일주의로 ‘문예민중화’를 책(策)함에 있다고 지적하였고 그 결과로 문예의 예술적 가치가 저하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상섭 씨는 탄식하였다. 이 같은 인습은 소위 부르조아지 문인들로는 도저히 선탈(蟬脫)치 못할 것이며, 곰팡이 슬고 썩은 그들의 일반적 관념이다. 인간 사회를 떠나가지고는 예술이 없다. 예술은 인간 사회를 초월할 수 없다. 예술은 시대에 따라 취하는 소재가 다를 것이며 예술적 가치는 그 예술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따라 결정될 것이므로 가치 저하 운운이라고 독단하는 것은 당치 않은 말이다. 문예에 있어서 문장미 문체미의 가치를 제2의적으로 인정하는 경향은 확실히 있으나, 이것으로 그 가치가 음악적 미술적으로 주객 전도 되기 때문에 문학의 생명과 공효를 보존할 수가 없다고 직단할 수 없겠다. 물론 음악적 미술적 영향을 받기는 받으나 그 이면에 흐르는 예술적 가치는 조금도 손모(拫耗)되지 않을 것이다. 영화, 토키, 라디오 등은 활자나 윤전기보다 좀 더 발달된 문자보급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별 문제로 할 것이다.

예술은 결코 선반에 얹어놓고 ‘오! 예술이여!’ 하고 경배할 것은 아니다. 상섭 씨는 기계를 정복하고 예술을 신격화하려 함은—문인인 만큼 문예의 충복(忠僕)이 되려는 것은 동정하나— 이야말로 예술을 상섭 씨의 제2주인공으로 삼겠다는 말인가? 예술의 노예가 되겠다는 말인가?

현대 문예가 기계문명을 중심으로 하게 되었고 또 기계문명을 이용하여 문예민중화의 실현을 보게 되었다. 민중화됨으로써 비로소 더 이상의 가치 있는 예술을 창조할 수도 있을 것이며 여기 있어서만 문예의 생명도 용약될 것이 아닌가? 태서인(泰西人)보다 우리의 살림에 확실히 예술미가 결핍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예술을 선반에 얹어놓고 경원하던 우리의 선조가 얄미워 보이며 비겁함을 엄매(嚴罵)하고 싶다.

과학문명의 병폐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이 과학문명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들어가기를 일각도 주저치 말 것이며 추호도 피역(避役)치 말 것이다.

비행기에서 떨어지자! 치차에 끼어 들어가자! 피대(皮帶)에 말려 버리자. 심지어 예술까지 과학문명에 희생시켜 버리자. 그리고 온전히 기계를 점령하자! 말라 가는 민중은 먹을 것을 찾아야 하겠다. 그래야 살 것이 아닌가?

하여간 상섭 씨의 본 논설은 철학적이며 구상이 원활(遠滑)하므로 이해키 어렵다. 첨예화한 계급적 투쟁에는 하등의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무산 계급으로서는 안개가 될 것이니 고만 각필(閣筆)하고 말겠다. 그러나 상섭 씨의 결론을 보지 못하고 무모히 대담히 단정해버린 것은 사과한다. 상섭 씨도 우리 조선문단에 빛을 내는 없지 못할 거성(巨星)이니, 나는 상섭 씨에게 많은 기대를 두고 있다.

다사(暴言多謝) 9. 17. 추석 달밤

라이선스[편집]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7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주의
주의
1923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물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