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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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前言[편집]

詩를이야기하는 이歷史的인 自由로운자리와 반가운날을 함께나누지못하고 이미故人이된 詩檀의여러先輩와同僚 李相和, 金素月, 李章熙, 李箱, 朴龍喆諸氏의 記憶에 깊은敬意를 올림으로써 이報告와展望의 冒頭의義務를삼고저한다.

침략의 소묘[편집]

이번 대전의 마지막 몇해 동안 적이 이 땅에서 저지른 문화의 악마적 침략과 파괴 속에서 우리 시도 그 표현의 전통적 수단이었던 말이 약탈당하였고 자유로운 시의 정신은 학살당하였던 것이다. 그동안 시의 정신을 팔므로써 표현수단으로서의 민족의 말을 여명을 보존하려는 일부의 계획도 있었으나 이는 드디어 수단과 정신을 둘 다 적의 수중에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폭력과 조직을 한 손에 가진 적의 거진 일방적 공세 아래서 이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領野가 역사상 유례를 볼 수 없는 가장 전형적인 제국주의의 진탕의 희생이 되었을 적에 우리의 시도 또한 같은 운명을 나누었었다. 우리들의 8월 15일은 이 나라의 정치상․문화상 최대의 위급한 순간에 실로 찾아왔던 것이다.

8.15와 건설의 신기운[편집]

민족문화의 가장 적절 유효한 전달표현의 수단이었던 우리 말은 다시 우리 손에 돌아왔다. 적의 무장과 압력이 하루아침 결정적으로 무너진 이 땅 위에는 우리들의 자유와 행복과 정의의 실현을 약속하는 새로운 공화국의 희망이 갑자기 찾아왔던 것이다. 정치도 산업도 문화도 모든 것이 우리들 앞에 새로운 건설의 영야로서 가로놓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지식인과 청년과 학생은 이 위대한 창의와 이상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감격에 휩싸였으며 적의 무모한 침략전쟁의 노예였던 대중은 그들의 팔다리에 감겼던 쇠사슬이 녹아 물러남을 따라 막연하나마 그들의 끝 모르던 굴욕과 찾취의 역사는 벌써 끝났고 새로운 희망에 찬 시대가 시작되면서 있다고 하는 것을 느겼던 것이다. 시는 새로운 문화의 건설의 한 날개로서 처참한 폐허에서 불사조와 같이 떨치고 일어났을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이 새 나라의 것이었으며 그 중에도 새로운 나라의 등불이며 별이고자 하였다.

정치와 시[편집]

일찌기 우리 시는 될 수 있는 대로 정치를 기피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한때 이 땅에서는 정치라면 적의 침략정책의 추궁뿐이었을 적에 시는 그 자신의 피해를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의미의 정치로부터 비통한 대피와 퇴각을 결행하는 길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벌써 사정은 달라졌다. 오늘에 있어서는 정치란 우리들 자신의 손으로 하는 우리들의 생활의 설계와 조직이어야 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정치의 단계에 있어서는 시가 시의 왕국을 구름 속에 꾸미는 것보다는 한 새 나라의 건설이야말로 얼마나 시인의 창조의욕에 불을 질러놓는 것이랴? 우리는 우리의 암단한 날의 기억의 산 교훈으로서 정치의 보장이 없는 것에 문화의 자유도 시의 자유도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다. 새 나라는 또한 시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여야 할 것이다. 우리들이 그리는 새로운 공화국이 만약에 의외에도 뮨헨과 로마의 악몽가들의 모방자의 손에 약취된다고 하면 이는 또다시 시의 자유도 문화의 자유도 아무 자유도 없는 날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한 음모의 실현을 막기 위하여는 시인은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넓은 동맹군의 일익이 되어야 할 것이다. 波蘭 시인 미키비츠의 말과 같이「그것이 없이 지낼 밖에 없는 경우를 당해보지 않고는 그것이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란 무엇이냐. 말 할 것도 없이 미키비츠와 더불어 우리가 한가지로 오랜동안 잃어 버렸던 것-우리들의 운명을 지키고 생활을 지키고 문화를 지키고 또 그 자유로운 성장을 지켜주는 우리들 자신의 나라였던 것이다. 일찌기 플라톤은 그의『공화국』에서 시인을 몰아내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데의 그림자의 또 그림자를 모사한다는 구실로 해서 이 철인의 나라로부터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공화국에 일러줘야 할 것이다. 시인이야말로 이 새 공화국을 지킬 가장 열렬한 시민의 한 사람일 것이라는 것을-.

전진하는 시정신[편집]

시의 정신의 자유는 그러나 언제든지 전진하는 자유일 것이며 후퇴하는 자유는 아닐 것이다. 인제 우리의 시가 만일에라도 봉건적·특권적·귀족 문화의 세계로 물러서는 일이 있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반역일 것이다. 미신과 노예상태의 합리화와 무지 위에 피었던 귀족적 특권층의 문화는 새로운 문명의 전개에 그만 현운을 일으켰던 詩人들이 스스로 그 정신의 안정을 구하여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동경하고 추구하는 시의 고향인 듯한 착각을 제공한 적이 있었다. 구라파에 있어서는 유파로는 상징파의 주조가 그것이었고 이 땅에서도 우리들의 심리에는 적지아니 이 봉건사회의 메카니즘이 뒤섞여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시인의 정신은 현재 속에조차 안주할 수 없다. 그것은 차라리 미래 속에 사는 것을 명예로 삼을 것이다. 하물며 과거 속에 살려함이랴. 정확히 말하자면 시인의 정신은 늘 현재와 미래가 나뉘는 지점에 위치한다느니보다도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진실한 모양과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거기 발생하며 자라나가는 이상의 싹과 요소에 가장 민감하며 또 그것을 북돋아가는 園丁일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인도의 옛 민요가 현명하게 표현한 것처럼 민족의 등불이며 사공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떤 가장 난숙한 시대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시인을 에워싸고 있는 현실이 말할 수 없이 추악하고 불의일 적에 시인이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계시자이며 예언자라야 할 것이다. 그러한 암흑과 무지와 압제가 오랫동안 한 민족의 무거운 운명이었을 적에 인도와 켈트의 민중은 항상 시인의 소리를 찾았으며 또한 진실한 시인들은 민족의 심령의 귀에 늘 희망과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속삭였던 것이다. 위대한 역사의 한 시기와 또 한 세계의 여명에 서서 울린 단테의 경종은 다름아닌 미래의 소리가 아니었던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렇게 이해한다. 불란서혁명 이후 19세기를 통하여 과거의 민주주의는 주로 만체스타나 마르세이유의 주주들이나 상인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인제 우리가 가지려는 민주주의는 일부가 아니라 만인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민주주의일 것이다. 시인은 말할 것도 없이 늘 진보의 편이고 미래의 동반자일 것이다.

민족적 자기반성[편집]

그러나 나는 조선의 시인에게는 한 개의 예외를 청하고 싶다. 우리는 반드시 한 번은 과거로 다녀와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굴욕과 배신과 변절과 거짓과 아첨에 찬 36년, 특히 최후의 수년간을 우리는 쉽사리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안타깝게 쳐다보는 민중에게 아무 표정도 지어보일 수 없었으며 더군다나 대중을 속이며 역사를 속이며 가장 무서운 것은 스스로의 양심을 속여가며 침략자의 복음을 노래하던 날을 너무나 값싸게 잊어서는 아니된다. 나는 감히 돌을 잡으라고 하지는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돌을 던질 대상은 반드시 우리들 주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로 우리들의 정신의 내부에 먼저 있는 것이다. 위대한 민족의 수난기에 있어서 민족을 배반한 정치적․문화적 모든 반역행위는 물론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의 내부에서 범한 온갖 사소한 반역에 대하여서도 우리들 자신이 먼저 준엄해야 할 것이다. 8․15 이후 실로 어디서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시 속에는 이러한 통절한 회오의 소리는 들려왔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아픈 상처와 과실 때문에 좀 더 통렬하게 통곡해야 하겠다. 민족의 통곡 소리가 좀 더 침통하게 이 땅을 진동하지 않는 한 조선민족의 앞날에는 맑은 하늘은 얼른 트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1936년의 사베트 새 헌법은 드디어 언론․집회․행렬 등의 자유와 함께 「양심의 자유」를 법률로써 옹호하였다 한다. 양심은 이 나라에서 재건되어야 하며 더군다나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우려는 새 나라의 한 이상이다. 페아스의 말과 같이 술을 마시면 정권을 얘기하고 다른 정당의 지도자들을 서로 욕하고 부르짖고 떠들고만 있는 동안은 조선에서는 비극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술을 마시면 머리를 뜯어며 모두가 「아, 나는 죄인이다」하고 신음하기까지는 우리는 더 형벌을 감수해야 할 민족인지도 모르겠다. 시인이 만약에 한 집단의 심장이라면 인제야 가장 준렬한 자기비판의 풀무를 스스로 달게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우리는 민족적으로 새로운 공화국에 발을 들여놓을 진정한 시민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인제야 시인은 그가 쓰는 것에 대해서 양심의 보장을 해야 될 것이다. 그의 한 권의 시집을 번복하라고 강요될 적에 「아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1章 만을」하고 강요되었을 적에 「아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 오직 한 절, 한 줄 만의 변경을 요구받을지라도 「아니, 한 자일지라도 할 수 없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거기 정렬된 아름답고 조화된 언어의 질서를 파괴 당하는 때문 뿐 아니라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시인의 성실 그것에서 우러나온 피할 수 없는 또 갈아낼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간 타입[편집]

시의 새 지반[편집]

초근대인[편집]

시의 시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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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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