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12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十二[편집]

『이 하전이 역모를 하던 것이 발각되었사와 사약을 하였다 하옵니다.』

내사가 들어와서 이 보고를 올릴 때는, 종실의 어른되는 조 대비는 나인(內人) 최씨에게 머리를 빗기우고 있던 때였다. 벌써 여기저기 잡혔던 얼굴의 주름살이 한 순간 쭉 펴졌다.

『이 하전이란 인손(仁孫)이 말이냐?』

『목릉 참봉(穆陵參奉) 도정 이 하전이올씨다.』

툇마루에 끓어 엎드린 내시는 황공히 아뢰었다. 내시의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대비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내시를 굽어 볼 뿐이었다. 잠시 뒤에야 대비는 비로소 다시 입을 열었다.

『대신의 한 일이로구나!』

『어명이올씨다.』

『아니로다. 상감마마가 무엇을 아시느냐? 교동(校洞) 대신의 한 일이로다.』

그리고 거기 대하여 내시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내리 씌우듯이,

『상감마마께 내가 즉시 뵈옵겠단다고 아뢰어라.』

고 명하였다

내시는 절하고 나갔다. 최씨는 다시 빗을 들었다. 그리고 벌써 드문드문 흰털이 보이는 대비의 머리를 빗기면서 말하였다.

『대비마마! 소인도 들었사옵니다.』

『응, 너도 들었느냐? 들으면 왜 일찍이 말하지 않았느냐?』

『왕대비마마(현종비 홍씨)께옵서도 친히 국청에 납시와 옥초(獄招)를 보셨다 하옵니다.』

『?』

최씨의 손에 잡히여 있던 머리를 홱 뽑으며 대비는 최씨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창백하여졌다. 눈에는 충혈이 되었다. 망칙하고 해괴한 일―왕대비의 몸으로 몸소 국청에 나가서 옥초를 보았다는 것은 웬일이냐?

『그게 언제 일이냐?』

『어젯일이올씨다.』

『그럼……』

대비는 말을 끊었다. 뒷말은 너무도 하기가 어려운 말이었다.

『사약도 벌써 하였겠구나!』

『어제 즉인로 하였다 하옵니다.』

어제 즉일로―그러면 벌써 저질렀다. 도정 이 하전이는 벌써 죽었을 것이었다.

『잘들 한다.』

한참 뒤에 대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것이었다.

잘들 한다. 종실의 어른되는 당신이 이 곳에 있거늘, 한 번 품도 하여 보지 않고 종친의 한 사람인 이 하전에게 죽음을 준 것이었다.

그로부터는 대비는 입을 꼭 봉한 채,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최씨가 머리를 다 빗기도록―그리고 방안을 다시 다 정돈하도록 대비는 입을 꼭 봉하여 버렸다.

커다랗게 뜨고 앞만 바라보는 대비의 눈에는 노염이 서리어 있었다.

너무도 방자하고 외람된 일이었다. 인손이―인손이―이제는 벌써 저세상으로 갔을 인손이의 어렸을 때의 모양이 차례로 대비의 머리에 떠올랐다. 꼬리를 땋아 늘인 시절의 사랑스런 도령이던 인손이의 모양―그 인손이가 이 하전이라는 튼튼한 청년이 되어서, 지금 무력한 종친들 틈에 일단의 이채를 발할 때에, 대비는 그에게 얼마의 촉망을 붙이었던가? 모든 종친들이 지금의 외척들에게 감히 손가락질도 못 하고 멀리서 엎디어 절할 때에, 인손뿐은 왕족의 위신을 그들에게 보여 주고 있지 않았나?

눈을 멀거니 뜨고 있는 대비는 머리로는 지금으로부터 십수 년 전의 일을 회상하여 보았다. 조 대비의 아드님되는 헌종이 아직 재위 때―그리고 대비의 시어머님이시오 헌종의 조모님되는 순조비 김씨의 재세 시대―

조 대비의 아드님 헌종이, 한아버님 순조의 뒤를 이어서 즉위한 것은 여덟 살 되던 해였다. 열 한 살 되는 해에 승지 김 조은의 따님을 왕비로 맞았다. 그 왕비는 헌종 열 일곱 살 되던 해에 마마에 걸리어 사랑하는 지아버님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 이듬해에 판서 홍 재룡(洪在龍)의 따님으로 두 번째의 비로 맞았다. 이리하여 왕비를 두 번 맞고 위에 있기를 십 오 년 간, 불행히도 왕자를 보지를 못하였다.

나라에는 왕이 없으면 안 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의 이치로, 동궁(東宮)이 없으면 안 된다. 사람의 일이란 짐작할 수 없는 것으로서, 여차하는 날에는 상서롭지 못한 어떤 일이 생겨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대궐에서는 장래 불행한 날의 방비를 하기 위하여, 은근히 종친 가운데 똑똑한 도령을 물색을 하여, 헌종이 왕자 없이 불행하는 날의 방비를 삼기로 하였다. 그리고 거기 선택된 이가 덕흥 대원군의 사손 이 하전이었다.

하전은 대궐로부터 인손(仁孫)이라는 이름까지 받았다. 인릉(仁陵―순조의 능)의 손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만약 헌종이 왕자를 못 보고 불행하는 날에는, 헌종의 뒤를 이어 이 존귀한 사직을 물려받기로 내정이 되었다.

조 대비의 지아버님되는 익종은 동궁(東宮)으로 하세했기 때문에 위에 올라 보지를 못하였다. 익종의 아드님 되는 헌종은 한아버님 순조의 뒤를 이어서 위에 올랐다. 그런지라, 익종은 비록 헌종의 생친(生親)이라 하나 후사를 잃은 셈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조 대비는 당신 아드님 헌종을 시아버님 순조의 후사로 드렸는지라, 조 대비(익종)의 대는(아드님을 두고도) 절사(絶嗣)가 되게 되었다.

조 대비는 이 새로운 공자 인손으로 하여금 절사가 된 지아버님 익종의 대를 잇도록 하게 하려 하였다. 그런지라, 조 대비는 매우 인손을 사랑하여 늘 인손을 대궐로 불러 들여서 궁중의 예의며 행실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만약 그 동안에라도 헌종이 왕자를 보면 이어니와, 그렇지 못하고 왕자 없이 만세하는 날에는 인손이는 익종(헌종의 아버님, 조 대비의 지아버님)의 대를 이어서 즉위할 귀하고 귀한 몸이었다.

이러한 동안에 드디어 헌종의 불행하는 날이 이르렀다. 한아버님 순조의 뒤를 이어서 여덟 살에 등극을 하여 재위 십 오 년, 왕자를 못 보시고 기유년(己酉年) 오월에 창덕궁 중회당에서 병환이 중하게 되었다.

헌종의 어머님인 조 대비의 심통은 거듭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지아버님 되는 익종을 스물 세 살 때에 잃은 이래로, 이 쓸쓸한 인생을 아드님의 장성과 건강뿐을 축수하면서 살아오던 조 대비는, 지금 그 외아드님의 중환에 세상 만사를 잊고 간호하였다. 성년인 아드님을 만날 무릎에 붙안고, 대비는 마치 그 옛날 어린 시절과 같이 등을 두드리며 간호하였다. 인생에서 낙원을 겨우 만나 본 스물 세 살에 지아버님을 잃고 여기서 또 외로운 여생의 유일의 촉망이던 아드님의 중환을 만난 조 대비는, 오뉴월 염천의 더위를 잊고 오로지 성심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나 천명은 조 대비의 성심으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유월달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환후는 다시 가망이 없도록 되었다. 누구의 눈으로 볼지라도 금명간 국상이 날 것은 분명하였다. 그러나 조 대비뿐은 아직도 그렇게 보기가 싫었다. 눈에 분명히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부인하고, 되지 못할 일이라도 만들어 보려는―그것은 극진한 모성애였다. 애통의 날은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갔다.

만약 여기서 헌종이 승하하고 특별한 책동만 없었더면 그 뒤를 이어서 보위에 오를 이는 인손이 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순탄히 진행되기에는 당시의 세태는 너무도 어지러웠다. 당시의 종실의 어른은 조 대비의 시어머님되는 순조비 김씨였다. 그 김 대비의 세력을 근거삼아 궁중 부중에는 벌써 김문 세력이 단단히 벋어 있었다.

김 대비는 김 조순(金祖淳)의 따님이었다. 김 좌근(金左根)은 김 조순의 아들이요 김 대비의 오라비였다. 김 무슨 근(根) 무슨 근 하는 「根」자 항렬이며, 김 병(炳) 무엇 병 무엇 하는 「炳」자 항렬이 정부의 귀한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김문의 세력은 벌써 하늘을 찌를 듯하게 뇐 때였다. 그런데 여기 만약 인손이가 헌종의 뒤를 이어서 장래의 임금이 된다 하면, 그 김씨의 세력은 한풀 꺾이고, 인손이를 배경으로 조 대비의 일가 조씨의 세력이 일어설 것이다.

이 기미를 본 김문에서는 헌종의 중환을 앞에 하고 책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당시에 있어서는 한 가지의 세력이 꺾이고 새로운 세력이 설 때에는, 낡은 세력이던 김씨 일문은 세력만 꺾일 뿐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을 받을 것이었다. 그러매 그들의 책동은 맹렬하였다.

지금 이 종실의 승계자를 지정하여 새 승계자를 종료에 봉고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종실의 어른인 김 대비 한 사람뿐이다. 누구를 후사고 정하든 간에, 그 후사를 종묘에 봉고하여 정식으로 후사로 만들 사람은 김 대비 한 사람밖에 없다. 이런지라 아무리 인손이가 승계자로 내정이 되었다 할지라도, 김 대비가 이를 종묘에 봉고하기 전에는 정식으로 왕통을 이을 수가 없다. 그 김 대비의 권한을 김문에서는 이용하고자 하였다.

많고 많은 낙척 종친 중에서 한 무명하고 그다지 슬기롭지 못한 사람을 선택하여, 이 사람으로 하여금 헌종의 대를 잇게 하도록 만들려고 물색한 결과, 그들이 발견한 것은 강화도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어 겨우 연명을 하는 통칭 「강화 도령」이라는 전계군의 둘째아들 원범이었다.

하옥 김 좌근은 자기의 누님 김 대비를 궁중에 찾았다. 그리고 장시간 밀의한 바가 있었다. 인손이를 폐하고 전계군의 아들 원범을 세우기에는 좋은 핑계가 있었다. 즉 원범이는 영종의 고손이요, 사도세자의 종손이며, 순조왕비 김씨에게는 오촌 시조카로서 영종의 직계 혈통이되, 인손이는 종친은 종친이라 하나 덕흥 대원군의 후손으로서 영종의 혈통과 좀 멀었다. 종친 가운데 가까운 직계 혈통이 있음에 불구하고, 다른 갈래에서 승통자를 맞아 옴은 이치에 어그러진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서 김 대비께 여쭈어 김 좌근과 김 대비 남매의 사이에는 장차 헌종 승하하는 날에는 「강화 도령」을 모셔다가 계통을 잇게 하자는 굳은 밀약이 성립되었다.

그 밀약의 덧붙이로서 「강화 도령」을 영립한 뒤에, 자기네 일족 김 문근(金汶根)의 딸로써 신왕의 비를 삼게 하자는 계획까지 성립이 되었다. 이리하여 순조에서 신왕까지 삼 대째 김문의 딸로써 내리의 어머니를 만들고, 밖으로는 그 외척되는 김 무슨 근이며, 김 병 무엇에서 영세하도록 영화를 누리고 권세를 누리자는 계획과 약속이 든든히 성립이 되었다.

김 대비의 며느리 조 대비(헌종의 어머님)는 이런 일이 진행되는 줄은 전연 모르고 있었다.

유월 초엿샛날이었다.

중하던 헌종은 그 날 여러 번 정신을 잃었다. 그 곁에서 조 대비는 아드님의 중환을 간호하고 있었다. 상감은 어머님의 무릎을 베개삼아 고요히 누워 있었다. 그 아드님을 굽어 보며 조 대비는 눈을 깜박일 줄도 잊은 듯이 앉아 있었다.

『어머님!』

상감의 말이었다. 이 분의 입에서 어머님이란 말을 들은지도 벌써 십 오 년이다. 어머님은 아드님을 전하라 부르고, 아드님은 어머님을 대비전마마라 부르는 십 오 년 간, 비록 모자지간의 정애는 죽일 수 없다 하지만, 표면 얼마나 쓸쓸한 생활이었던가? 아드님에게 향하여 신분이 서로 갈리기 때문에,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하고 한 번 불러 보지도 못하고 외로운 공규를 지켜 온 조 대비에게는, 헌종의 이상 말이 가슴에 콱 질리었다. 상감은 고요히 눈을 떴다. 눈물어린 눈이었다.

『어머님?』

『오냐, 좀 어떠냐?』

겁결에 나온 말이었다. 감정의 속에서 저절로 뛰쳐 나온 「어머니」의 말이었다.

오냐! 나 여기 있다. 너의 어머니가 여기 있다. 지금의 너는 이 삼천리 강토의 임금이 아니요, 오직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로다―조 대비는 손을 들어서 아드님의 이마 위에 얹었다.

십 오 년 만에 처음 듣는 「오냐」에 대하여 상감도 감격된 모양이었다. 잠시 어머님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다가 기쁜 듯이 미소하였다. 굽어 보는 눈과 쳐다보는 눈―그것은 임금과 대비의 눈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들의 눈이었다. 그 사이 십 오 년 간을 차디찬 의식적 생활에 싸여서, 서로 죽이고 죽었던 모자로서의 정애의 눈이었다.

『어머님! 저것을 조금 저 편으로―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놓아 주서요.』

『무얼?』

조 대비는 상감의 가리키는 편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거기는 이 나라의 최고 존엄(尊嚴)을 자랑하는 어보(御寶─옥새)가 찬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사이에 막히기 때문에, 십 오 년 간을 어머님은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드님은 어머님을 어머님이라 부르지 못한 것이었다. 바야흐로 승하하려 함에 임하여, 지금은 국왕과 대비의 사이가 아니요, 단지 한 아들과 한 어머니의 사이로, 최후의 순간의 평화를 보지하려매 상감께는 어보가 장애가 된 것이었다.

대비는 조금 그것을 밀어 놓았다. 상감에게 보이지 않을 만큼―그러는 사이에 대비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다.

『어머님! 소자는―소―소자는……』

숨이 찬 모양이었다.

『그간 불효했읍니다.』

『무슨 말씀을 하서요? 아니 무슨 말을 하느냐? 얘야!』

십 오 년 만에 서로 부르고 불리는 이 모자의 모양은 곁에서 부채질하고 있는 여관(女官)의 눈에서까지 눈물을 자아내었다.

『답답하옵니다. 가슴을 쓸어 주서요.』

『오냐! 어서 나아라. 천만 백성이 기다린다.』

모자는 십 오 년 만에 공(公)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나서 모자로서의 정회를 풀고 있었다.

대왕대비 김씨가 김좌근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 표면으로는 손자님 상감의 환후 문안이라는 명색으로 여관 몇 명을 데리고 이 중희당(重熙堂)에 온 것은 바야흐로 이 때였다. 그리고 그것은 여름날의 긴 해도 거의 인왕산으로 넘고 황혼이 가까운 때였다. 창경궁의 숲에서는 깃을 찾아 돌아오는 새 소리들이 어지러이 여기까지 들릴 때―

시어머님 김 대비가 들어오기 때문에 조 대비는 황급히 아드님의 머리를 괴었던 무릎을 뽑았다. 그리고 조금 물러 앉았다.

『상감 환후가 좀 어떠시오?』

상감은 대왕대비께 인사를 하기 위하여 몸을 움직이려 하였다. 그것을 김 대비는 손짓으로 제의하고 좀 가까이 내려왔다. 그리고 수척한 상감을 굽어 보았다.

김 대비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히 나타났다. 이젠 절망이었다. 가마이 없는 것이 분명하였다. 오늘―늦어야 내일일 것이다.

한참을 수척한 상감을 굽어 보다가 얼굴을 들 때는, 김 대비의 입에서도 기다란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과 함께 모시고 온 명부(命婦)를 돌아보았다.

『저 보(寶)를 들어라.』

이 김 대비의 명령에 여관은 나아가서 어보를 양손으로 받들었다. 아까 조 대비가 아드님의 간청으로 조금 멀리 밀어 놓았던―

『이리 모셔 오너라.』

이 강역의 존엄을 표현하는 어보는 김 대비의 손으로 들어갔다.

조 대비는 깜짝 놀랐다. 상감 만세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이 손을 대지를 못하는 어보였다. 승하하면 새로운 승통자뿐이 또한 손을 댈 권리가 있는 어보였다. 아무리 대왕대비며 왕대비라도 상감 계실 동안은 감히 손을 대지 못할 것이었다. 조 대비는 시어머님께 공손히 물었다.

『어보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통상시라면 대왕대비며 시어머님되는 김씨께 이런 대담한 질문은 할 염도 못 낼 일이었다. 비상시인 지금에 있어서도 좀 도가 넘친 질문이었다. 김 대비는 마땅하지 못한 듯이 잠시 며느님을 보다가 대답하였다.

『종사를 받들 분이 오시기까지 내가 맡아 두는 것이오.』

『그러면 인손이를 부르시옵니까?』

김 대비는 머리를 가로 저었다.

『인손이는 덕흥 대원군의 봉사손, 상감은 영묘의 직손, 인손이가 무슨 관계가 있겠소?』

조 대비가 여기서 커다란 음모의 움직임을 직각하였다. 아직껏 승통자로 내정되었던 인손이며, 대왕대비도 응낙을 했던 일이어늘, 여기 별안간 그 일이 번복이 된 것이었다. 조 대비는 온갖 예의와 절차를 잊었다. 그리고 조급히 물었다.

『흥녕군이오니까? 흥인군이오니까? 흥선군이오니까?』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영묘의 직손 가운데서 시재 생각나는 몇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러나 김 대비는 머리를 여전히 가로 저었다.

『그러면 누구오니까?』

『강화 전계군(全溪君)의 셋째아들―전하께는 칠촌숙이 되는 분이오.』

『인손인 어떻게 되옵니까?』

『인손이는 인손이지, 덕흥 대원군의 봉사손이 아니오?』

이것은 왕위 찬탈의 크나큰 음모였다. 상감이 아직 계신데 상감의 뜻도 알아보지 않고 아무리 대왕대비기로서니 너무도 남월된 일이었다.

조 대비는 여기서 이 일을 아드님되는 상감께 호소하고 싶기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임종의 상감께 이런 귀찮은 세상사를 호소하려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는 어머니로서 도저히 못 할 일이었다.

동기며 원인이며 경로가 분명한 이 음모를 조 대비는 눈을 감고 복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보를 받들고 유유히 돌아가는 시어머님의 등에 던진 조 대비의 눈에는 원망이 사무쳐 있었다. 사랑하는 아드님의 마지막 안정을 위하여 모든 일을 꾹 참을 뿐이었다.

감 대비며 김씨 일문의 의견대로 강화 도령이 헌종 승하한 뒤에 신왕으로 영립되었다. 조 대비는 이 마음에 맞지 않는 신왕을 묵묵히 맞아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월은 끊임없이 흘렀다. 십수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대왕대비 김씨도 정사년(丁巳年) 팔월에 드디어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이 년 후에 조씨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김 대비 없는 지금의 조 대비는 이 종실의 최고권위자였다. 종실의 동향에 있어서는 조 대비께의 자문이 없이는 행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은인(隱忍) 십 년, 이제 온갖 굴레를 벗은 조 대비는 비로소 그 세력을 펴려고 책동치 않을 수가 없었다. 권력은 가졌지만 아직 세력은 못 가진 조대비는, 세력 방면으로의 활동을 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때문 김씨 일문의 세력이 너무도 강대하였다. 대왕대비 김씨는 하세하였다 하되, 그의 동생 김 좌근이며, 현 왕비 김씨의 아버지 김 문근이며, 숙부 김 수근이며, 오빠 김 병필, 그 밖에 김 무슨 근 무슨 근 하는 근자 항렬이며, 병 무엇 병 무엇의 병자 항렬의 세력은 너무도 커서, 조 대비의 권력으로도 당할 염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김문에서는 큰 근심의 재료요, 조대비께는 희망점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신왕도 후사가 없는 점이었다.

신왕이 왕자를 탄생하면 그것은 별문제였다. 그러나 만약 종친 가운데서 동궁을 간택한다 하면, 조 대비의 승낙이 없이는 못 하는 일이다. 여기 김문의 약점이 있고 조 대비의 장점이 있다.

김문에서는 왕자 탄생을 축원하고 또 축원하였다. 그러나 김씨의 운이 진한 탓이든지, 몇 번 왕자가 탄생은 되었지만 모두 조서하였다. 김문에서 이를 걱정하여 김문의 뜻에 맞는 종친 공자로서 동궁을 책립하자는 의논도 몇 번 났었지만, 이 문제에는 권한을 잡은 조 대비가 거부하였다.

십수 년 전 조 대비의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 말년과 흡사한 이즈음이었다. 그 때의 대왕대비 김씨에게 눌려서 마음에 맞는 「인손」이를 맞지 못하고, 마음에 없는 「강화 도령」을 묵묵히 맞아들인 조 대비는, 지금 「강화 도령」의 대에 있어서는 종실 봉사자를 지정할 절대 권리자였다. 그 때 김씨 일문에게 받은 쓰디쓴 잔은 지금 또 한 조 대비에게서 김씨 일문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자가 없고 몸이 약한 현 상감의 앞에서 김씨 일문은 이 난문제를 해결하려고 갈팡질팡할 동안 조 대비는 정관하고 있었다.

『인손이의 것은 인손이에게로……』

십수 년 전에 헌종에게서 당연히 인손이에게로 갔어야 할 어보가, 지금은 뚱딴지 강화 도령에게로 가 있다. 그러나 필경은 인손이에게로 돌아올 운명을 가지고 있다. 김문 때문에 빼앗겼던 어보는, 지금 바야흐로 새 주인을 물색하고 있다. 새 주인을 지정할 권리를 잡은 조 대비는, 그 어보를 원 주인 인손이에게로 돌리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문들의 갈팡질팡하는 꼴을 보면서 조 대비는 속으로 늘 미소하고 있던 것이었다. 건강이 좋지 못하고 후사가 없는 「강화 도령」의 뒤에는, 인손이가 당연히 어보의 소유자가 될 것이며 행사자가 될 것으로 조 대비는 단단히 작정하고, 김문의 득세를 여름 날 꽃과 같이 바라보던 것이었다.

그 인손이가 홀연히 모라는 명목 아래 사약이 되었다. 어보의 장래 소유자를 지정할 권리가 있는 유일인인 조 대비에게 「장래의 어보의 소유자」로 내정이 되어 있던 인손이―자라서 이 하전이가 의외에도 역모에 몰려서 죽음의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분노라 할지 불쾌라 할지 분간하기 힘든 괴로운 감정 때문에, 조 대비의 얼굴은 잔득 찌푸린 채 펴지지 않았다.

아까 내관에게 향하여 상감께 뵙겠다고 말하였지만, 그것은 이 하전이가 아직 죽지를 않은 줄 알고, 즉 아직 사약까지는 하지 않은 줄 알고, 대사를 저지르기 전에 「종실의 어른」이라는 당신의 권병으로서 그것을 삭여 버리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이미 하전이에게 사약을 하였음을 안 이상에는, 나가서 뵈옵는다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처치할 수 없는 울분―김문의 방자함이 오늘날 여기서 이 하전이를 죽였다. 그것이 어명에 의지한 처단인지라, 아무리 종실의 어른인 조 대비라 할지라도, 그 김문의 방자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거기 대한 끝 없는 울분만 연하여 마음 속에서 일어날 따름이었다.

이미 절기는 여름―창문을 열어젖힌 그리고는 밭을 통하여 손님(女官房의 下女)들이 무엇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양이 보였다. 조 대비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어렴풋이 그것을 내다보고 있었다. 문득 여관 하나이 승전빛(承傳色─임금의 말을 전하는 내시)을 인도하여 가지고 왔다.

『상감마마께옵서 듭실까 여쭈어 왔읍니다.』

툇마루에 꿇어 엎드린 내시는 이렇게 아뢰었다.

대비는 눈을 돌려서 발을 통하여 끓어 엎드려 있는 내시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드디어 대비가 입을 열었다.

『도정은 벌써 사약을 하였다지?』

『하왔사온 줄로 아뢰옵니다.』

『운명하였다더냐?』

『그런 줄로 들었사옵니다.』

죽었다―여관의 말이 아니라 내시의 말로 이미 죽었다 하는 이상에는 죽은 것이 분명하다. 무론 죽었을 것이다. 사약을 한 이상에는 죽지 않았다면 도리어 그것이 기적일 것이다.

『 뵙고 아뢸 사연이 있더니, 몸도 좀 편하지 않고 그래서 그만두겠다.』

대비는 내어던져 버렸다.

그러나 내관이 절하고 나가려 할 때에 대비는 다시 말을 걸었다.

『상감 지금 동온돌(임금의 침실)에 곕시냐?』

『네……』

『아침 수라(점심)는 진어하셨느냐?』

『초조반만 진어하셨읍니다.』

『누구 입시한 대신이 있느냐?』

『영은 부원군(왕비의 친정 아버지)께서 입시하왔사옵니다.』

여기서 대비는 결심하였다. 김문의 수령의 한 사람이 또 무얼 하러 들어왔나? 무슨 음모인지는 모르나 좌우간 대비 몸소 상감께 나아가서 부원군으로 하여금 물러가게 하리라. 이리하여 조 대비는 일단 중지하기로 작정하였던 일을 다시 하기로 하였다.

『중희당서 뵙고 은밀히 아뢸 긴한 일이니, 대신은 물러가고 잠깐 중희당으로 듭시라고 나가서 여쭈어라.』

『황공하옵니다.』

절하고 나가는 내시를 보면서 대비는 최씨에게 명하여 의대를 가져오라 하였다.

『대왕대비마마께옵서 임어하오십니다.』

왕이 중희당에서 기다릴 때에 대비의 임어―

강화의 한 초동으로서 그 이십 년 전쟁을 보낸 상감은 전생의 초라하였음을 감추기 위하여 가장 편복(便服)일 때도 익선관(翼蟬冠)에 강사포 이하를 작용하는 일이 없었다. 조금만 큰 일에도 반드시 면류관이나 통천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었다. 이 때도 상감은 익선관에 곤룡포를 착용하고 있었다.

상감은 대비의 거동에 황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절하고 아랫간의 자리를 내었다.

대비는 가볍게 허리를 굽히며 상감이 비낀 자리에 내려가 앉았다.

『상감마마!』

내관들까지 모두 물리친 뒤에 이렇게 말하는 대비의 말투에는 다분의 위엄이 있었다.

『아까 듣자오매 도정 이 하전에게 사약하라시는 처분이 계셨다니 사실이오니까?』

상감은 낭패한 듯이 마리(머리)를 두르며 두어 번 방안을 살다. 본시 빈한한 가운데서 자라고 왕자의 덕과 왕자의 품위를 배우지 못한 상감은, 종실의 웃어른이나 나이 많은 재상의 말에 대하여는 늘 낭패한 듯이 이런 태도를 취한다. 상감의 말씀이 있기 전에 대비가 겹쳐 나갔다.

『역모로 치죄하셨다는 승전빛(承傳色)의 말인데 허전은 아니겠지요?』

『네. 제가―신이 사약을―이 하준―하전이가―저……』

낭패하는 왕의 말은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비는 이 알아 듣지 못할 말을 귀찮은 듯이 듣고 있다가 한 마디―

『참 잘 허시우!』

한 뒤에는 머리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왕은 끝 없이 낭패하였다. 마치 어른의 꾸중을 들은 어린애와 같이 족장(足掌)을 연하여 움직이며,

『소자가 신이―영의정이―역모―사약……그……』

알아 듣지 못할 말을 또 하였다.

그러나 상감의 구중에서는 「영의정」이라는 한 마디가 나왔다. 소위 역모 사건 제조에는 영의정 김 좌근이 한몫 끼었을 것은 대비도 이미 짐작한 바 있지만, 상감의 구중에서 분명히 나온 이상에는,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 사건의 배후에는 김씨 일문이 있고, 또 그 배후에는 장래의 승통자(承統者)라 하는 거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비는 경멸하는 듯한 눈자위로 용안을 보았다. 대비의 입술이 문득 떨렸다. 하마터면 불경한 말이 나올 뻔한 것을 대비는 겨우 삼켰다.

이 상감―대비의 뜻에 거슬려서 인손이를 눌러 버리고 강화도에서 모셔 온 상감께 대하여, 대비는 좋은 감정을 품지 못하였다. 더구나 너무나 어질기 때문에, 김씨 일문의 농락 아래서 행동하는 상감인지라, 야심과 용감과 권세에 대한 동경심이 만만한 대비에게는 답답하기까지 하였다.

『참 잘 하셨소!』

다시 한 번 뇌일 때는, 대비의 마음에는 이번의 일에 대한 분풀이를 반드시 하겠다는 단단한 결심까지 되었다. 김문이 김문의 세력을 이용하여 행동하는 이상에는, 대비는 넷서 한 대비로서의 권병으로서 행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할 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대비는 몹시 나무려운 눈자위를 용안에 부은 채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벌써 초로(初老)―아니, 중로에 든 대비는, 밤에 쉽게 잠을 들지를 못하였다. 더구나 그 날은 이 하전의 사건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쾌하여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밤에 자리에 들어서 불 켠 것을 싫어하는 대비는, 촛불을 멀리 대청에 내다 놓게 하여, 겨우 방 안의 어두운 기나 없게 하고 촌의(內衣)뿐으로 자리에 들어서, 두 사람의 시녀를 불러서 다리를 두드리게 하고 있었다. 너무 아프게 두드린다, 너무 가볍게 두드린다, 말이 많았다. 김씨 일문에 대한 노염을 시녀에게 부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운데서 김씨 일문의 외람된 행동에 대한 대책을 대비는 강구하고 있었다. 한 따님 밖에는 소생이 없는 상감인지라, 반드시 대비 당신의 권한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는 지금의 현상에 대하여, 대비는 종친 중의 많은 공자들을 머리에 그려 보았다. 이 하전이 이미 죽은 지금에 있어서는 다른 새로운 승통자를 내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지라, 새로운 승통자의 인선(人選)에 대비는 골몰하였다.

적어도 새로운 승통자는 대비 당신과 가까운 사람, 대비 당신의 심복인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김씨 일문에서 부수한다든가 동화할 인물이면 안 될 것이다. 대비 당신과 짜 가지고 장래 김씨 일문을 누를 만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김씨 일문에게 대한 대비의 노염을 장래 충분히 풀기 위하여는, 「그 사람」도 김씨 일문에서 원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 될 것이다.

그러면 누구?

김문을 미워하는 사람―그리고 대비 당신과 짤 수 있는 사람―또한 그 위에 장래에도 김문과 타협이 안 되고 끝까지 김문과 싸울 사람―이러한 사람이 종친 가운데 있나?

머리로서 종친의 몇 사람을 점검하여 내려가던 대비는 흥선에 이르러서 딱 멈추었다. 흥선군은 대비 당신의 육촌 시동생―말하자면 멀지 않은 종친이다. 흥선은 김문에게 멸시를 받는 인물인지라, 또한 그만큼 김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이다. 흥선은 비록 몸은 종친이라 하나, 투전과 술로 소일을 하는 허튼방이라 지벌을 자랑하는 명문 거족인 김씨 일문을 흥선의 절제를 좀체 받지 않을 터이며, 장래에도 김씨 일문과 흥선은 웬만해서는 타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흥선은 대비 당신의 조카 조 성하와 매우 가까이 지내는 모양이매, 장래 흥선이 권세를 잡는 날이 이른다 하면, 대비 당신을 괄시하지 못할지며 조 성하를 괄시하지 못하겠으니, 오늘날의 김씨 일문의 세도는 그 때는 조시 일문으로 당연히 돌아올 것이다. 종친 가운데서 이 하전에 대신할 사람을 골라 내자면 당연히 손가락은 흥선군 이 하응의 위에 멎어야 할 것이다. 만약 장래 흥선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오늘날 그렇듯 흥선을 멸시하던 김가들의 꼴도 또한 보기에 통쾌할 것이다.

「종실의 어른」이라는 당신의 권병으로서, 흥선의 아들을 끌어 올려 김씨 일문의 위에 내려씌우면 과연 통쾌한 일이다. 지금 한 없이 뽐내던 김문이 주정방이 흥선의 앞에 그 허리를 굽히는 꼴은 근래에 다시 없는 통쾌한 일일 것이다.

이리하여 김씨 일문에 대한 노염과 증오 때문에, 거리의 주정방이 흥선은 조 대비의 점검(點檢)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너무도 그 인격이 종친답지 못한 점을 조 대비는 김문 복수에 이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수일 후였다.

『제절사연(諸節事緣) 압고저 대령하왔읍니다.』

왕에게서 대비에게 대한 아침 문안―아침 문안이라 하나, 대궐 안의 아침 문안은 거의 오정에 가까운 때였다. 발 밖에서 곡배(曲拜)를 드리는 승전빛에게 대비는 가볍게 대답하였다. 대비를 뵙기를 몹시 거북히 여기는 왕은, 열흘에 엿새 평균 승전빛으로 하여금 대리로 문안을 드리게 하였다. 문안을 드리고 내관이 바야흐로 물러 나가려 할 때에 대비가 내관을 불렀다.

『승후방(承候房)에 나가서 승후관 조 성하가 들어왔나 알아보아라. 그리고 들어왔거든 내가 부른다고 전하여라.』

『네!』

뒷걸음을 쳐서 물러가는 승전빛을 대비는 조소(嘲笑)에 가까운 미소를 띈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찍이 홀몸이 된 이래 삼십 년 간을 온갖 불만과 불평을 마음 속으로만 삭여 버리고 지낼 동안, 그의 속에 생장한 성격은 공상과 복수심이었다. 조 성하를 부른 것은 성하에게서 흥선에 대한 사연을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너 이즈음도 흥선군을 만나느냐?』

성하가 들어와서 문안을 드리고 바로 앉기가 무섭게 조 대비가 물은 말이 이것이었다. 승후방에 있다가 대비의 부름으로 갑자기 들어온 성하는, 대비의 첫 질문이 뜻도 않았던 바이므로 눈을 둥그렇게 하고 쳐다보았다.

『잠깐 만나기는 하옵니다마는……』

왜 그 말씀을 새삼스럽게 물으시냐는 뜻이었다. 대비의 질문은 한 걸음 뛰었다.

『흥선군에게 아들이 몇이나 있느냐?』

『직자가 두 분이 있는가 하옵니다.』

『작은도령의 연치는 어떻게 되느냐?』

『금년 열 살이올씨다.』

『열 살이라……』

대비는 잠시 생각하였다.

『아직 총각이지?』

『김 병문의 딸과 정혼은 했단 말이 있읍지만 아직 성례는 안 했읍니다.』

『김……』

여기에도 김문이 있다. 대비는 한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성례한다는 말은 못 들었느냐?』

『못 들었읍니다. 김문에서는 정혼은 해 놓고도 흥선군께 불만을 느끼고, 흥선군도 역시 너무 승한 사돈을 좀 불안히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흥!』

『그것은 왜 물으십니까?』

『아니, 별 일은 아니로다.』

별 일이 아니라 하나 또한 심상히 지나가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부러 대비가 자기를 불러서 첫 번으로 물은 것이 흥선의 일이며, 더욱 흥선의 아들에 관한 질문인지라 아무리 대비가 별 일이 아니라 하되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혹은 흥선 댁 도령과 맞잡히는 얌전한 규수가 있어서 그 혼사 때문에 묻는 것이나 아닌가, 이렇게 밖에는 해석할 수가 없는 성하는, 얼굴을 조금 들고 대비를 쳐다보았다.

『부르신 일은 그 일 때문이오니까?』

『응, 그 일도 있고 또……』

『또?』

『……』

『또―무슨 일이오니까?』

『또―무얼 그다지 신통한 일은 아니지만―며칠 보이지도 않고 하기에 잠깐 불러 보려고……』

대비는 이만큼 하여 속여 버렸다. 대비로 보더라도 섣불리 당신의 마음을 조카에게 보였다가, 일이 그릇되는 날이면 그 화가 조카에게까지 미칠 종류의 서이므로 내심을 말하기가 힘들었다. 대비는 모시는 나인에게 향하여 손가락질하여 담배를 붙여 오라고 명하고, 또 다탕(茶湯)과 생과를 들여오라고 명하였다.

『너, 이 도정 사사(賜死)에 관해서 상세히 알면 아는껏 어디 말해 봐라.』

이윽고 대비에게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성하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으되 대비에게서 처음에는 흥선 댁 도령에 관한 질문을 듣고, 그 다음에는 이 하전 사사에 관한 질문을 듣게 된 성하는, 그 두 가지의 사건을 결합하여 가지고 한 가지의 결론을 얻었다.

― 대비가 자기를 부른 것은 두 가지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하나는 이 하전 역모 사건이라는 기괴한 사건의 윤곽을 알아보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흥선에게 적당한 도령이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사건이 합하여 낳은 한 가지의 결론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즉 흥선댁 도령에게 대하여 대비는 호기심을 일으킨 것이었다.

성하는 대비의 영에 의지하여 자기가 아는껏 소위 이 하전 역모 사건의 전말을 대비에게 아뢰었다. 아뢸 동안 성하의 마음은 이상히도 긴장되었다. 만약 지금 자기의 추측으로서 옳다 할진대, 여기에는 커다란 사건이 하나 빚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지금 빚어지는 이 「떡」이 장래 익을 때에는 어떤 모양을 하고 나타날지 그것은 예측도 할 길이 없다. 그러나 온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사건 하나가 지금 이 평범한 자리에서 빚어져 나아가는 것을 성하는 직각하였다.

이 하전에게 대한 대비의 촉망을 짐작하고, 지금 그 하전을 잃은 대비의 분노를 생각할 때에, 그 자리에서 나오는 한 사람의 왕족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히 간주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성하는 직각하였다.

성하는 눈을 조금 들어서 대비를 쳐다보았다. 무엇이 몹시 불안한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성하의 말을 듣고 있는 이 노파―이 노파의 얼굴이 이 때같이 무섭고 크게 보인 일이 성하에게 없었다.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하고, 머리에도 간간 흰털이 보이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한 개의 노파에 지나지 못하되, 이 노파의 마음 하나로서 장래 삼천리 강토를 지배할 지존을 작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노파는 입으로는 그 때 말도 하지 않으나, 이 하전 사건에 대한 분노 때문에 즉시로 다른 새로운 이 하전을 마음으로 작정하였다가 유사시에 덜컥 내놓아서, 지금 권문인 김씨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려는 복안인 듯싶다.

그리고 그런 필요상 흥선 댁 도령의 일을 캐어 묻는다하면,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 댁에서 연을 올리는지 혹은 돈치기라도 하고 있는지 하는 그 소년은, 장래 놀라운 자리에 올라갈 소년이다.

『그래! 그래?』

감탄사인지 질문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런 말을 간간 끼우면서 성하의 말을 듣고 있는 이 노파의 마음은 지금 어떻게 움직이나? 알 길 없는 이 일을 짐작이라도 하여 보려고 성하는 슬금슬금 대비의 얼굴을 쳐다보고 하였다.

이 하전의 사건에 대하여 성하가 자기의 아는 것을 다 말한 뒤에도, 대비는 특별히 당신의 의견이라든가 감상이라든가를 말하지 않았다. 입맛이 쓴 듯이 몇 번 혀를 챌 뿐이었다. 그런 뒤에 남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백두산이 무너지나―동해수 메어지나』

중얼거렸다. 그런 뒤에 성하에게 향하여,

『하전이란 놈은 과시 고약한 놈이로군. 제가 역모를 하다니! 당랑(螳螂)이 수레를 버티는 셈이지. 죽어 싸니라, 죽어 싸!』

하고는 억함을 참을 수가 없는 듯이 양 어깨를 떨었다.

그로부터 며칠, 용무가 바쁘기 때문에 흥선 댁도 찾아보지 못하고 대비께도 들어가 뵙지 못한 성하는, 삼사일 뒤에 대비께 불리어서 들어갔다. 들어가자 대비는 다른 말이 없이 흥선군을 잠시 모셔 오라는 분부였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는 너무도 갑갑하니, 흥선 같은 좀 색다른 인물이 들어와서 한참 떠들고 가면 좀 나을 것 같아서 당부하는 것이라는 구실을 들었다.

성하는 대비의 분부를 듣고 즉시로 가마를 몰아서 흥선 댁으로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낮에 집안에 들어 박혀 있을 흥선이 아니었다. 청지기의 말을 듣자면 서촌관속(西村官屬)들과 같이 아침에 나갔다는 말이었다. 관속 누구냐고 물으매 안 필주(安弼周)와 하 정일(河靖一)이라 한다.

후일 흥선이 변하여 대원군이 된 뒤에 대원군의 심복이 되어 활동한 소위 천하장안(千河張安)의 네 사람 가운데 「하」와 「안」과 동반하여 나간 것이었다.

당시의 오입장이를 대표하는 이 관속들과 외출을 한 이상에는, 이 장안 어느 구석에 가 박혀 있는지를 짐작도 할 길이 없었다. 혹은 기생방에 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벌로 놀이를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 가서 투전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성하는 잠시 대문 밖으로 나와서 머리를 기울이고 있다가, 다시 몸을 가마에 실으면서 교군군에게 기생 계월이의 집을 일렀다.

계월이의 집에도 흥선은 없었다. 아까 잠깐 들렀다가 곧 수군거리며 나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월이의 짐작으로는 어디 투전을 하러 가는 모양이라는 것이었다.

― 이제는 어디서 찾나?

성하 짐작하건대, 오늘 대비가 흥선을 부르는 것은 심상한 일이 아니다. 대비는 심상히 갑갑하여 부른다 하지만, 아무리 갑갑하기로서니 흥선군을 부른다 하는 것은 너무도 기상천외의 일이다. 무슨 다른 곡절이 필시 있을 것이다.

그 곡절에 대하여 또한 짐작이 없지 않은 성하는, 어디서든 반드시 흥선을 붙들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놓쳤다가는 혹은 커다란 일이 틀려 나갈지도 모르며, 그 때문에 장래 또한 어떻게 운명의 변동이 생길지도 모르겠으므로, 성하는 어떤 일이 있든 흥선을 꼭 붙들리라 결심하였다.

계월이의 집에서 나온 성하는 교군을 몰아 가지고 흥선의 갈 만한 곳은 모두 찾아다녔다.

흥선이 지근지근 찾아 다니는 권문 거족들의 댁에도 미심결로 가 보았다.

흥선이 즐겨 다니는 술집도 모두 찾아가 보았다.

그 밖에도 짐작이 가는 집은 모두 찾아 보았다.

그러나 흥선은 찾아 낼 수가 없다.

어디서 투전이라도 하느라고 박혀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성하가 대비의 분부를 받고 대궐을 나온 것은 오정이 조금 지나서였다. 그 성하가 그 날 자정이 지나도록 장안 구석구석을 찾아 돌아다녔으나 흥선은 찾을 길이 없었다.

여기서 성하는 이젠 집으로 돌아갈까 하였다. 그러나 오입장이 혹은 투전군이 왕래하는 것은 자정 이후에서 아침 밝기까지인지라, 투전군 흥선을 찾기 위하여는 이 시간을 빼어 놓을 수가 없으므로, 연하여 흥선댁까지 가서 흥선의 귀댁 여부를 알아보고는 또 다시 교군을 몰아서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하였다.

『제기랄!』

마지막에는 역하여 이런 말까지 그의 입에서 나왔지만 성하 짐작에 적지 않은 일을, 일시에 역함으로 모피할 수가 없어서, 밤을 새워서 이튿날 아침 해가 동녘 하늘에서 오르기까지 쉬지 않고 찾아다녔다.

제11장

맨 위로

제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