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제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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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께 뵙는 것만도 예외인데, 주찬의 하사까지 받는다 하는 것은 과연 예외였다. 가난에 시달리기 때문에 군가가 탈 만한 상당한 남여도 갖고 있지 못할 흥선은 자기에게 얼마만큼 호의를 보여 주는 영초의 사인 남여를 얻어다가 타고 대비께 간 것이었다. 대비의 조카 조성하도 배행을 하였다.

대비는 이 이단자(異端者)를 흥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찍이 궁중에서도 들린 흥선의 소문으로서, 술 잘 먹고 투전이라 하는 잡기를 잘 하고, 싸움도 꽤 잘 하며, 거리거리는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서인 상놈들과 어깨를 겨누고, 막걸리라는 하등 술을 혀를 채면서 먹는다는 이 이단자는 대비에게 있어서는 흥미 있는 대상이었다.

이러한 이단자에게 대하여 조카 조성하의 소개가 또한 굉장하였다.

"한 사람뿐이올씨다. 포도가 크옵니다. 종실에 사람이 많지만, 호방하고 뜻이 큰 이는 흥선군 한 분뿐이옵니다. 지금 구름을 못 얻었지만, 구름만 얻는 날엔 능히 하늘로 올라갈 사람이옵니다. 그 포부를 펼 데가 없어서 술로써 생애는 모호히 하고 있읍니다."

조성하의 소개는 대략 이러하였다.

궁중에서 일찍부터 들리던 그 소문이 옳은 말인지, 조카 성하의 말이 옳은 말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었다.

미식미의(美食美衣)에는 부족이 없는 대비다. 그러나 일찍부터 외로운 몸이 된 그에게는 인생의 적적함이 늘 마음 속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좀 색채 다른 것을 보아서 임시로나마 이 너무도 단조로운 궁중 생활의 권태에서 벗어나 보고 싶은 충동이 늘 있던 것이다.

김대왕대비 재세(在世)시에는 며느리의 구실을 하느라고 한 때도 머리 들어 본 때가 없었다. 지금은 이 종실의 으뜸 어른의 자리에 오른 대비는, 더구나 초로(初老)의 흠 없는 몸이라, 이 색채 다른 이단자를 불러서 하루의 소일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특별히 예의라는 것을 엄격히 지키고자 하지 않는 흥선의 태도는 대비에게는 더욱 재미스러웠다.

"재재작년 영의정 댁 생신인 이래 이런 만반 진찬은 처음이올씨다."

나주반(羅州盤)을 움켜 안고 일변 먹으며, 일변 마시며, 일변 이야기하며 하는 흥선은, 이런 말을 하며 하하하하 웃었다.

이 방에서 사내의 웃음 소리가 끊어진 지 그 몇 해련가? 이래 감상적인 여인의 높은 웃음 소리는 간간 울리어 본 적이 있었지만, 우렁찬 사내의―더구나 기탄 없는 웃음 소리는 울리어 본 적이 없었다.

대비는 이 우렁찬 웃음 소리를 미소로써 들었다.

"자 마음껏 많이 잡수세요."

"대비마마께서 하사하신 진찬―마음껏 먹겠습니다. 본시 야인이 예의를 모릅니다. 삼년 전 그 때에는 만반 진찬을 앞에 보기만 하고 그만 먹지도 못했읍니다. 지금 생각해오 아까운 것을……"

"왜 안 자시었소?"

대비는 미소로써 이렇게 물었다. 흥선에게 술을 따르고 있던 나인이 참다 못하여 얼굴을 새빨갛게 하며 픽 웃었다.

"네? 하아, 팔자가 궁하니깐 앞에 놓은 음식도 먹지 못하게 되옵니다."

대비도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런 명랑한 웃음 소리는 근래에 듣기 힘든 일이었다. 이 이단자의 불규한 언행이 엄격한 규율에 진저리난 대비는 마음에 맞은 것이었다.

흥선은 대비를 위하여 삼 년 전에 영의정 김 좌근(金左根)의 집에서 만반 진찬을 앞에 놓고도 먹지 못한 그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무오년(戊午年) 삼월의 일이었다.

영의정 하옥(荷屋) 김좌근은 자기의 생신연을 자축하기 위하여, 각 종친이며 권문들을 자기의 집에 초대하였다. 흥선도 종친의 한 사람으로서 그 잔치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초대를 안 받았을지라도 남의 집 생일에는 잊지 않고 찾아 가는 흥선인지라, 그 잔치에 참예하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철종 왕비의 아저씨요, 세도 김병기(金炳冀)의 양아버지이며, 벼슬이 수상(首相)에 있는 하옥의 생일날이라, 명문 거족들이 모두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뜰에는 이 권문들이 타고 온 평교자며 남녀며 가마 초헌 등으로 송곳 세울 틈조차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잔치의 자리에는 이 나라에서도 내로라는 뽐내는 사람들이 가득히 모여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를 깨어진 갓에 해진 옷으로 꾸민 흥선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비단 옷으로 모두 꾸민 고관들 틈에 이 변변치 않은 행색을 한 사람이 끼어 있는지라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만약 그것이 흥선이 아니요 다른 사람일 것 같으면 스스로 창피하여 몸을 숨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기탄하지 않는 흥선은 태연히 그 가운데서도 사람의 눈에 가장 띄기 쉬운 문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흥선의 이 모양을 보고도 다만 본체 만체하여 버렸다. 그러나 주인 하옥이 보기에 꼴이 되지를 않았다. 더구나 옷은 할 수가 없다 할지라도 참대 갓끈이 더욱 눈에 띄었다.

흥선의 지위로 말하더라도(만약 흥선에게 재산만 있으면) 격식상 당연히 호박(琥珀) 갓끈을 하여야 할 것이었다. 관자는 도리옥(環玉)을 붙여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모두 도리옥 도리금 관자에 호박 금패의 갓끈을 늘인 빈객들 틈에, 송진 관자에 참대 끈을 늘이고 태연히 앉은 흥선의 모양이 꼴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하인을 불러서 귓속말로 자기의 아들 병기에게 가서 호박 끈을 하나 빌어다가 흥선에게 몰래 주라고 명하였다.

작은 사랑에서 제 친구들과 함께 아버지 대신의 생신연을 즐기던 병기는 하인에게서 이 전갈을 듣고,

"석파―(石坡―흥선의 호)더러 직접 나한테 와서 빌어달래라고 그래라."

하여 하인을 그냥 돌려 보냈다. 흥선 따위를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 병기는 제 갓끈이 없어 남의 것을 빌어서 체면을 보지(保持)하려는 흥선의 심사가 미워서 망신을 주고자 함이었다. 술이 얼마만큼 취한 병기는 그 독특의 잔혹성까지 발휘한 것이다.

여기서 하옥은 하릴없이 몸소 흥선에게 가까이 가서 흥선의 귀에 입을 대고,

"대감, 내 아들의 방에 좀 가 보시오. 대감 갓끈이 너무 낡아서 병기한테 호박 갓끈을 잠깐 빌려 드리라고 했으니 가시면 드리리다. 가서 갈아 대시오."

하였다.

흥선으로 보자면 갓끈이 참대가 아니라 종이 노끈이라도 기탄할 바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인 대감의 호의를 무시할 수가 없고, 더구나 주인의 체면도 보아 주어야겠다 싶어, 병기가 있는 작은 사랑으로 찾아 갔다.

흥선은 병기를 찾아서 작은 사랑으로 들어갔다. 병기는 자기의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다가, 흥선이 들어오는 것을 힐끗 한 눈으로 보았다. 그런 뒤에는 다시는 본체 만체 자기의 친구들과 술을 주고 받고 하였다.

흥선은 문턱을 넘어선 채 먹먹하여 버렸다. 자기가 들어오면 당연히 준비해 두었던 호박 갓끈을 내어 주려니하고 왔던 흥선인지라, 그만 거기 엉거주춤하여 버렸다.

자기의 친구들과 지껄여대면서 술을 먹고 있던 병기에게 향하여, 갑자기 무엇이라고 하여야 할지 말문이 막힌 흥선은, 좀 그 자리에 웅크리고 서 있다가 마침 술을 가지러 나가려는 기생을 붙들어서 갓끈의 사건을 병기에게 전하게 하였다. 병기는 기생에게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힐끗 흥선을 쳐다보았다.

"호, 흥선 대감 오셨군! 자 약주나 한 잔 받으시오."

병기는 아랫목에 앉은 채 술잔을 흥선의 방향으로 내어 밀었다.

"갓끈은 무슨 갓끈? 그래 호박 갓끈이 아니면 술 자시지 말랍디까? 하하하하!"

술잔을 내어민 채 병기는 큰 소리로 웃었다. 저기 모여 있던 젊은 공자들도 일제히 웃으며 흥선을 쳐다보았다.

흥선은 이 조소에 칵 눈이 어두워졌다. 그 흥선의 귀에 병기의 계속되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남의 갓끈을 빌어서 체면이나 차리면 뭘 하오? 실속으로 술을 먹어야지. 자, 술은 내 드릴 테니 걱정마시오. 잔으로 시원치 않으면 바리깨로라도 요강 뚜껑으로라도 마음대로 자시오."

이 너무도 과한 조소에 거기 있던 기생이 무안하여 잔에 술을 하나 부어 가지고 흥선에게로 달려 왔다.

"대감 드세요. 이―술 한―잔―잡―으……"

그러나 흥선은 그 잔을 받지 않았다. 얼굴에 쇠가죽을 대고 창피한 일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다니는 흥선이로되, 이 병기의 독설에는 자기의 정신을 거의 잃도록 흥분하였다.

일부러 자기가 빌러 온 것은 아니었다. 자기는 아무런 갓끈이든 탓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병기의 아버지 하옥이 그런 호의를 쓰기에 고맙다 하고 온 것에 지나지 못한 것이다. 거기 대하여 병기의 응대는 너무나 그 돗수를 넘친 것이었다.

흥선은 그 만반 진찬을 먹지를 않았다. 그리고 소매를 떨치고 하옥의 집을 뒤로 하였다.

이전에 겪은 이 분한 한 토막의 이야기를 흥선은 대비의 앞에 피력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 듯이 허허 웃었다.

대비도 흥선의 이야기에 소리를 높여서 웃었다. 이 폐의파립의 공자가 금라로 꾸민 재상들 틈에 섞여서 같이 담소를 하는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볼 때, 오십 년 생애의 그 삼십여 년을 궁중에서 보낸 대비는 일종의 통쾌미조차 느낀 것이었다.

그런 뒤에 대비는 탄식하였다.

"김문(金門)이 너무도 승(勝)해. 과히 승해."

김문의 과한 방자에 대하여 호소할 곳이 없던 대비가, 거기 대한 원한을 입 밖에 내어 보는 그 첫말이었다.

"세도(병기를 가리킴)가 아무리 세쓴다 하기로서니 종실을 그렇듯 멸시해?"

"지당한 말씀이올씨다. 김문 앞에 가면 종친은 사람 축에도 들지 못합니다. 더구나 흥선 같은 종친 중의 가라지는 말할 것도 없읍니다."

웃음으로 마음을 속인 말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맺히고 또 맺힌 분한은 웃음 가운데도 그의 말투에 다분히 섞여 있었다.

대비는 흥선의 위에 부었던 미소의 얼굴을 조카 성하에게로 돌렸다.

"성하, 너도 가면 그런 멸시를 받느냐?"

"받을 것이 싫어서 도대체 가지도 않습니다."

아직 열 일곱 살의 소년이나 숙성하기 때문에 한 이십살쯤 나 보이는 성하는 귀공자다운 미소를 얼굴에 띄어 가지고 대답하였다.

이리하여 이 방 안에는 수십년내로 처음 활기 띈 웃음 소리가 연하게 났다. 구중(九重) 깊은 속에서 삼십여 년을 외로이 보낸 조대비의 낯에도 활기와 화기가 적이 떠 돌았다.

"대감은 투전이라는 것을 꽤 잘 하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한 토막의 이야기가 끝이 난 뒤에 대비가 미소를 띄고 흥선에게 물은 말이 이것이었다.

이 말에는 흥선도 고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할 것이야 뭐이 있겠습니까? 심심 소일로 장난할 따름이로소이다."

"난초도 꽤 잘 치신다지요?"

"뉘께서 들으셨습니까? 무재한 흥선―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있겠소이까? 서울서 매맞고 송도서 주먹질이라고, 가슴 속에 엉긴 울분을 종이 위에 뿌려 보는 뿐이옵니다."

"가야금도 잘 하신다구?"

"대비마마, 너무 추어 주시지 마세요. 본디 재간 없이 태어난 흥선이올씨다. 사십 년 동안을 술로써 세월을 허송한 뿐이올씨다."

이단자 부랑자로서 궁중에 알려져 있는 이 흥선에게 대하여 대비의 흥미는 차차 더하여 갔다. 내리에 드나드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내시(內侍)들이며 종친들만 익히 보고, 그들의 꽁한 태도와 점잔을 빼는 꼴들로서, 세상의 사내라는 것이 모두 그렇게 생긴 것쯤으로 여기고 있던 대비는 여기서 색채 다른 인물을 보았다.

"하하하하!"

흥선이 소리를 높여서 웃을 때에 이 건축한 이래로 문소리 한 번 요란히 여닫겨 본 적이 없는 방을 드렁드렁 울렸다. 대비가 얼굴에 미소를 띄고 이 이단자의 약점을 들어서 물을 때는 사십이 지난 중년 사나이는 마치 어린애와 같이 머리를 긁으며 싱그레 웃었다.

만약 흥선으로서 이 날의 이 회견을 기회로 장래에도 늘 대비께 출입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면 그것은 흥선의 성공이었다. 구중 깊은 속에서 너무도 규칙적이요 단조한 생활에 염증이 난 대비는 이 불기호방한 흥선의 언행이 마음에 들었다.

겨울의 밤도 어지간히 깊어서 좀 조급한 닭은 벌써 첫 홰를 보할 때쯤 돼서야 흥선은 대비께 하직하였다.

돌아가는 흥선에게 대하여 대비는, 이 뒤에도 특별히 허가가 없이 자유로이 대비께 뵈러 올 특권을 주었다.

"이 뒤에도 간간 오오. 종반끼리 서로 교제라도 있어야지, 너무도 남같이 지내니까 일가 같지를 않구료."

아직껏 다른 종친에 대하여 내려 보지 않은 이런 친절한 말을 흥선에게 준 것이었다.

"아아, 실컷 잘 웃었다. 재미있는 사람이지?"

금침을 준비하는 시녀에게 향하여 몇 번을 대비는 미소로써 이런 말을 하고 하고 하였다.

이 호준에게 새 옷을 얻어 입고 오지 않고 헤어진 옷에 깨진 갓으로 왔더면, 흥선은 대왕대비의 흥취를 더욱 돋굴 뻔한 것이었다.

제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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