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필/묘모의 흉식
새끼손가락을 잘라서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낸다든가, 죽은 애인의 머리털을 잘라서 작은 함에 넣어 차고 다닌다든가 하는 일이, 동양의 천지에도 더러 있는지는 모르거니와, 저쪽 서양 나라에는 이러한 괴이한 풍습이 꽤 많은 모양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일종의 변태성인지도 모릅니다마는, 의식(衣食)이나 족하고 밤낮 없이 사교장으로나 출입하는 소위 유한 마담들의 계급에서는 두발(頭髮) 브로커의 배를 불려 주고, 동시에 자기네의 변태적 프라이드를 채우기 위하여 가끔 생사람을 못 살게 구는 일이 많은 모양입니다.
도이칠란트의 대 가극 작곡가 바그너가 나폴리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전속 이발사는 그 당시 귀부인들의 변태적 욕심을 이용하여 일확천금의 목적으로 바그너의 머리털을 분양한다는 선전 아래 예약자를 모집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 따위의 교활한 음모쯤은 가끔 당하는 터이므로 바그너의 부인은 이발사가 잘라낸 자기 남편의 머리털을 한 터럭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집어 감추어 버렸읍니다. 예약금을 받은 이발사 양반은 나폴리의 숙녀와 귀부인들에게 무엇을 나누어 주었을까요?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어떤 고기장사하는 늙은이의 꼬부랑 머리털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옥합, 금합에 넣어 가지고 금줄에 달아서 목에 걸고 다니던 숙녀 귀부인들의 얼굴이 보고 싶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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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은 요새 세상에도 꽤 많이 유행되는 것 같읍니다. 바로 6, 7년 전에 세계 제일의 피아니스트로서 도처에서 열광적 환영을 받던 파데레프스키 씨가 세계 순례의 길에 미국으로 건너갔읍니다. 누구나 다 알다시피 「파」씨의 머리털이야말로 금색이 찬연한 장발(長髮)이었읍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이유로 모발병 환자들이 가만히 있었을 리가 있겠읍니까? 실상 그의 예술이야 어떠하던 문제 밖입니다. 오직 그의 머리털 한 가닥만 포키트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면 그것만으로 벌써 사교계의 한 큰 자랑거리가 될 판이었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탐스럽고 숱이 많은 그의 금발인들 한없이 덤벼드는 부녀자들의 요구를 일일이 들어 주었다가는 하룻밤에 대머리가 될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 때 뉴욕시에서 발행하는 헤랄드지의 만화야말로 걸작 중 걸작이었으니, 그 그림을 보면 파데레프스키는 가발을 쓰고 연주를 합니다. 그의 주위에는 튼튼히 만든 철조망이 있고 그 철조망 밖에는 큰 바구니가 매달렸읍니다. 거기에는, “내 머리털을 원하는 분은 자유로 가져 가시오.” 하는 광고가 붙어 있었읍니다. 모발 숭배병에 걸린 미국 부인들은 그 앞으로 악을 쓰고 달려드는 꼴을 그리었읍니다.
처음 몇 번이야 파데레프스키도 가장 친절한 어조로, 귀부인들의 요구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거절을 해 보았겠지요마는, 너무 끈기있게 졸라대는 판에 혼이 난 그는, 정말이지 응대하기에도 싫증이 나서 매니저 이하 수행원 일동의 머리털을 되는 대로 주어 모으다 못해서, 나중에는 고양이털까지 바구니 속에 잔뜩 넣어 놓고는 가장 그럴 듯이 애교를 부리는 것이었읍니다. 모르면 몰라도 개 털, 쇠 털, 고양이 털 등등을 담은 어여쁜 로키트가 각지의 사교계를 횡행했을 것은 물론이요. 명가(名家) 부호들의 가정에서 자자손손이 가보로 전해 갈 것을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마는, 그렇다고 우리의 아랑곳할 일까지는 되지 않을 것 같으니 적이 안심이 됩니다.
- 바그너(Richard Wagner)는 1813년 5월 22일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탄생하여 1882년 2월 13일에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서거한 세계 최대의 가극 작자.
- 파데레프스키(Ignaye Jan Paderewski)는 1860년 11월 6일에 파란(波蘭, 폴란드)에서 탄생한 현존 세계 최대의 양금(洋琴)[1]가로, 세계대전 후 폴란드 공화국의 제1대 대통령[2]을 지낸 애국적 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