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을 나와서/12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이랏샤이마세.

어서 오십시요.

이랏샤이.

탑골공원 옆 카페 사탄에 새 손님 헌 패가 들어왔다.

세 사람인데 모두 얼근하게 휘했다 - 느니보다 취한 체를 한다.

한 사람은 전문학교 교복에 비 맞아 오글오글해진 파나마 를 비뚜로 썼고, 한 사람은 저고리가 없이 맥고자만 들어 얹었고, 또 한사람은 시간이 밤 열한시가 아니면 학교에 가 는 길로 여길 만큼 교복 정모에 책가방가지 손에 든 전문학 교 학생이다.

문 안에 척척 들어서면 요란한 소프라노의 환영 소리와 아 울러 여급이 사오 인이나 세 사람의 손님을 포위한다.

<아라 길상 시바라꾸네!> (아이구 김주사 오랜만이서요.) 몰려든 여급 가운데 파르스름한 양장을 한 여급이 파나마 쓴 전문학교 학생을 보고 친숙한 말씨로 인사를 한다.

<웅 이나까니 이떼기노 가에따바가리다> (응. 시골 갔다가 어제야 왔어.) 다른 두 사람은 취해 못견디는 체하고 문 안으로 놓인 소 파에 펄썩펄썩 주저앉는다.

<도리데 다이브 야께데루와> (그래서 저렇게 새까맸구먼.)

<웅 우미와 굴꾸 나루네……사데> (응, 바다는 검게 돼 ……그래) 그 새 잘 있었고?

그저 그렇지 머.

왜 이리 쓸쓸해?

그는 좌석을 휙 둘러보며 묻는다. 넓은 방 안에 손님이라 고는 두 패밖에 없다.

언제는 안 그런가 머 …… 심심해서 죽겠어 .

흥, 심심 ? …… 돈이 아니 벌어진다구 그래.

사탄두 인제는 그만이야.

어데는 안 그런가!

허기야 아무데두 다 일반이지만…… 그렇지만 그새 걸골은 꽤 고와진걸?

고와진 게 무어야! 일간메(一간)나 줄었는데……왜 문간에 서 찬피하게 이래 ? 절루 가요.

응 가지……헌데 <사싼이 아다라시 퀸가 기다소자나이까>

(사탄에 새로 여왕님이 와 있다지?

<기다와> (왔어요.) 미안이래지?

인도(印度) 미인 !

인도 미인이라니?

어데 가서 농사를 짓다가 왔는지 얼골이 새까매, 호호호호.

허허허허……그러면 시골서 가재 잡어왔나?

그렇지두 않다는데.

그래두 미인이라구 소문이 굉장하든데?

흥, 그래 미인이란 바람에 이러구 쫓아왔구먼.

<야께루까이> (강짜라니?)

<오끼노도꾸사마……고레데끼 사단노 이브요>(미안하겠읍 니다만 내가 이래 봬도 사탄의 이브야요.) ,호오 ……소노기마에다께나와네?> (흥. 기광만은 강허이.) 잔말 말구 어서 이층으로 가서 인도 미인이나 만나요.

이렇게 해 던지고 이브라는 여급은 저편으로 엉덩이를 내 저으며 가버린다.

소파에 앉아 다른 여급들과 콩칭팔칠 지저거리던 두 사람 을 일으켜 가지고 이층 층계를 올라가는데 안내하는 뽀이가 이락샤이마세, 유리꼬상 고안나이.

하고 외친다. 그러고는 싱글싱글 웃으며 앞장선 파나마 학 생에게 은근히 인사를 한다.

선생님, 오래만이십니다.

학생은 뽀이의 어깨를 턱 치며 역시 웃는다.

응, 잘 있엇나?…… 인도 미인(?)이 있다지?

헤헤, 망령의 말씀.

이 녀석아! 허허허허…… 헌데 그 인도 미인을 우리 번으 로 돌려주어야지?

마침 선생님 번이올시다.

응, 그래. 거 잘되었군.

일행이 복도를 돌아 다시 층계를 올라서려고 하는데 겨급 하나가 내려오다가 마주쳤다. 딱 마주치면서 여급과 파나마 학생과는 가볍게 놀란 눈으로 서로 바라보고 섰다.

유리꼬상, 고안나이 데스요.

뽀이가 여급의 멍하고 섰는 것을 보고 주의를 시킨다.

당신이 유리꼬상이요.

파나마 학생이 뽀이가 하는 말을 듣고 비로소 웃으면서 묻 는다.

대관절 어떻게 된 일이요?

한 편 구석 박스에 자리를 잡고 앉자 파나마 학생 - 김은 십년지기인 듯이 긴하게 묻는다.

유리꼬라는 이름을 얻은 노라는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 다.

어떻게 되다니 단순한 것이다.

사흘 전 관철동 그 여급을 찾아가서 그의 주선으로 그날 밤에 이곳 사탄의 지배인을 만나가지고 와서 있기로 작정한 것이요, 그리하여 어젯밤부터 나온 것이다.

그는 남식 어머니에게도 남수에게도 물론 혜경이에게도 말 을 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어느 사무소에 있게 되었는데 밤 늦게 일을 한다고 그럴듯하게 남수와 그 어머니에게만 꾸며 대었다.

카페로 나와 가지고 노라의 가장 겁나는 것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이 학생을 보고도 분명 아는 사람인 듯한 기억이 나고, 또 저편에서 그만큼 친숙하게 대하는 것이 여간 놀랍지 아니하 였으나 차차 생각하니 화장품 장사를 맨 처음 시작한 날 마 스걸이 머리비듬 향수를 팔아 주던 그 학생이었다. 그리하 여 그만 정도이면 근본을 아는 터라 아니니 안심할 수가 있 었다.

응 ? 언제 왔소?

김은 재우쳐 이렇게 묻는다.

어제 왔어요.

흥…… 집이 어데예요?

익선동 운현궁 뒤예요.

운현궁 뒤에가 집이 한 채뿐인가? 번지를 가르쳐 주어야 지.

교모 쓴 학생이 이렇게 볼 먹은 소리로 두덜거린다.

하따 이 사람들아, 집 알어 가기루 너무 일러. 술이나 먹 자. 자, <와레라가 퀸 사단노 !> (우리가 왕, 사탄의 왕이 요!) 술을 주시요.

도 한 사람 일행 중에 저고리 아니 입은 사람이 벙뗑하고 노라의 손을 덥석 붙잡는다.

노라는 무심결에 잡힌 손길을 홱 뿌리치려 하였으나 짐짓 참았다.

그것은 어제 손목을 잡혔다가 뿌리치고는 손님의 노여움을 사거 한바탕 야단이 났었고, 지배인이 나와서 사과를 하여 무사하였으나 그 대신 주인께 여러 가지로 주의와 요령을 얻어들은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어서 가서 술 가져와요. 시원허게 챈 맥주, 응.

그는 손길을 놓고 등을 툭툭 두드린다.

왜 저렇게 새깨매?노라가 카운터로 간 뒤에 교모 쓴 학생 이 김더러 묻는다.

볕에 그을러서.

언제부터 알었나?

화장품 장사야.

아주 시로돈데.

인제 스레루해야지.

나인 맺이야?

저고리 아니 입은 사람이 김더러 묻는다.

모르겠어 …… 스물둘 ? 하나 ?

더 먹엇겠는데 ……

그쯤밖에 아니 되었을걸.

옷이 그게 무어야 ! 들어앉은 여편네같이.

인제 옷두 차차 하데해지겠지.

노라가 얼굴이 검은 것은 화장품 장사를 하느라고 볕에 그 은 것이요, 그리하여 인도 미인이라는 별명이 대번 생긴 것 이다.

그러나 원래 모습이 곱고 해서 화장을 잘했기 때문에 검은 것이 그다지 흉헙지도 아니하고, 또 나이도 스물여섯 살이 건만 스물한두 살로 보인 것이다.

옆에서 보기에도 끔찍하게 그득 따라 놓은 맥주를 제가끔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 교모 쓴 학생이 노라에게 잔을 준다.

이것이 술을 먹으란 말인 줄은 어젯밤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저는 못 먹습니다.

그러지 말구 한잔 들구려!

정말 못 먹습니다.

목 먹을 게 어디 있어…… 사람이 먹는 것이면 아무나 먹 는 것이지……입에다 북구 꿀꺽 삼키면 되는거야.

그래두.

이거 안 되겠군.

그는 잔에 맥주를 가득 부어 가지고 노라의 옆으로 옮겨 앉아 한 손을 노라의 등 위로 돌려 꽉 껴안고는 술잔을 입 에다 들이대려 든다.

노라는 얼결에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술잔이 땅에 떨어지 고 술이 사방으로 흐트러져 좌석이 발끈 뒤집혔다.

이게 어데서 생긴 뽺뀨년이 이 따우야 !

술을 먹이려던 교모 학생이 성이 버럭 나 가지고 노라를 그대로 의자에 칵 내박치면서 달려들어 때릴 듯이 벼른다.

맥주 난리에 후덕거리던 두 사람이 겨우 그를 붙잡고 만류 한다.

여보게 참게.

참다니! 카페에 와서 있는 계집이면 죠뀨답게 해야지 ……

무어야 건방지게.

노라는 마음껏 욕이라도 하고 물어뜯기라도 해서 분풀이를 하고 싶으나 설움이 복받쳐서 몸을 쳐들 수가 없다.

참어 참어 …… 아직 시로도가 돼서 그래…… 자네가 머 여급 수신 선생인가? 맘에 아니 들면 다른 여급 불러다가 놓구 먹으면 그만이지.

저고리 아니 입은 사람이 그중 나이 든 만큼 사리를 다져 동행을 다독 거린다. 그러나 어쩐지 처음부터 노라에게 아 니꼽게 대하던 교모 학생은 기어코 무슨 거조를 낼는 듯이 들렌다.

큰소리를 듣고 모여든 여급들이 할 수 없이 노라를 부축하 여 죠규베야로 데려다 뉘었다.

에미꼬 - 노라를 처음 카페로 데려온 여급이 옆에 붙어앉 아 타이르기도 하고 위로도 하여 준다.

만일 어제 첫날밤에 노라에게 오 원 오십 전의 팁이 쥐어 지지 아니하였더면 그는 지금 당장에 이곳을 뿌리치고 나왔 을 것이다.

미상불 어젯밤 맨 첫 번에 팁으로 이 원이 손에 쥐어질 때 에도 섧기도하고 안타갑기도 하여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였 지만, 그러나 술 몇 잔 부어 주고 손목쯤 잡히고 - 그것을 따지고 생각하면 기막혀 못할 노릇이지마는 -그 보수로 이 원이 손에 쥐어지고, 또 그것을 세 번쯤 당하는 동안에 오 원 오십 전의 돈이 벌어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벌이가 아 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젯밤 집에 돌아가 여러 가지 감정이 오고 가는 동안에도 화장품 장사로 이천 원을 모으려다가 실패한 계획을 여급 생활로써 다시 만회할 결심을 하였다. 하룻밤 에 줄잡아서 평균 오 원을 번다면 한 달에 일백 오십원 …… 이 일백오십 원 가운데 일천이백 원, 이태면 이천사백 원, 그리고 일 년만 더 하면 사천 원 가까운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

그때 가서는 전에 계획 세운 대로 조그마한 전방을 혜경이 네처럼 내어 가지고 튼소리치고 살아갈 수가 있다.

노라가 겨우 울음을 그치고 메이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지배인이 빈들빈들 웃으면서 고개를 들이민다.

성이 났을 줄 알았더니 되레 웃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

유리짱, 거 왜 자꾸만 그러시우? 내가 나가서 사죄허기에 담이 빠지는데……

만일 노라가 인기의 희망이 없다면 결코 그의 그러한 버릇 을 그대로 두고 보려고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앞으로 카페사탄의 시들어가는 인기를 한 번 만회시킬 소질이 노라에게 충분히 보이는지라 장래의 희망 을 붙이고 그와 같이 우상대상하는 것이다.

속을 푹 뼨혀요. 푹 …… 이 짓을 아니할 바이면 모르지만, 기왕 시작한 것이니…… 응, 유리짱.

노라는 대답할 말이 없다.

응당 그 말이 옳은 줄 알지만, 그렇게 시행을 못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구 .

지배인은 그만하면 그 말은 더 아니해도 좋은 줄 눈치를 채고 다른 말을 꺼낸다.

유리짱, 옷을 좀 만들어야지?

옷?

노라는 되레 묻는다. 그는 아직도 남은 성벽으로 차림새만 으로라도 여급이 되지 안니하고 싶은 것이다.

응? 옷을 좀더 하데헌 것으루 만들어야지.

이 옷은 어때서요? …… 손님들이 되려 수수해서 좋다구 그러든데?

흥, 그건 다 괜히 허는 수작들이고…… 아무래도 옷이 하 데해야 해요. 여자는 의복이 날갠데……

가만 계시우. 돈 좀 벌어가지구.

돈 ? 돈이야 미리 둘러 쓸 수가 있으니깐.

노라는 우기다 못하여 지배인이 소개하여 주는 돈돌이하는 사람에게서 빚을 얻기로 하였다.

이튿날 노라는 오소데(저녁 후에 나오는 것)지만 돈놀이라 는 사람을 만나려고 약속한 시간 세시에 사탄에 나왔다.

얼굴에 개기름이 흐르고 게다가 얽기까지 한 돈놀이꾼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삼십원을 쓰기로 하고 보증은 메이꼬가 섰다.

갚기는 매일 육십 전씩 찍어서 (이렇게 떼어 갚는 것을 찍 는다고 한다.) 두 달 - 육십 일 동안에 끝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금 삼십 원에 두 달 동안 이자가 육 원이다.

원 일할이니가 시골 농군들이 스는 장리벼 외에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이자겠지만 삼십 원의 모갯돈을 쓰고 육십 전씩이라는 사슬돈으로 여러 날 갚는 맛에 여급들은 이 돈을 너도나도 쓰는 것이다.

돈을 얻어가지고 지배인과 같이 백화점에 가서 전 같으면 눈도 거들떠보지 아니하던 혼란스러운 무늬를 프린트한 치 마와 저고릿감을 끊고, 화장품을 사고 구두를 하고, 그러고 나서 지배인과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나니 삼십 원이 다 없어져 버렸다.

전등이 켜질 무렵 해서 사탄에 돌아오니 김이 와서 기다리 고 있다.

오늘은 아래층 번이지만 이곳에 상당히 벌이를 시켜 주는 김은 지배인을 붙잡고 무어라 고 한참이나 이야기를 하더니 노라와 같이 제일 조용한 삼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 았다.

어제 저녁에 너무 미안허게 되었읍니다.

맥주와 술잔과 콩안주를 생철 쟁반에 받쳐 들고 와서 탁자 에 늘어놓고 앉는 노라를 보고 김은 이렇게 어젯밤 이야기 를 꺼낸다.

아이 천만에…… 제가 되려 죄송합니다.

아니 그렇게 말할 게 아니라……자, 한잔 부어주시요.

김은 말을 하다가 잔을 들어 술을 청한다.

술을 가져다 놓으면서 바로 한잔 부어놓는 게 여급의 도린 데 노라는 서비스에 익숙치 못한 만큼 그냥 술만 불쑥 가져 다 놓았던 것이다.

노라가 부어주는 맥주를 반쯤 마시고 그는 다시 말을 계속 한다.

그 사람이 주사가 좀 있어요. 술을 아니 먹으면 퍽 얌전하 구 호인인데…… 거 그 사람 그게 큰 병통이야.

노라는 그가 왜 이렇게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담에 만나더래두 좋은 낯으로 대해요. 피차에 원혐을 두면 재미가 없으니까.

그것쯤 가지구 멀 이렇게 긴히 이야기를 하나 생각하면서 노라는 그저 네네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면 고맙습니다.

김은 남은 술을 마시고 술잔을 내어민다. 노라는 그 고맙 다고 하는 말이 무엇이 고맙다는지 알지를 못했다.

나두 어제 저녁에 그렇게 섭섭하게 헤어진 것이 맘이 뇌어 야지요…… 그래 집을 알었으면 찾어가서 이야기라두 했겠 지만 집도 모르구 해서 …… 내 이제 그 사람 데리고 올 테 니 화해나 하시요, 허허.

네.

무얼 좀 갖다가 좀 자시우. 프로츠나 파인애플 같은 것?

괜찮습니다.

아니 사양허지 말구.

아니예요. 방금 저녁밥을 먹어서……

김은 술을 마신 뒤에 콩을 집어다가 입에 넣으면서 말이 없이 노라를 바라보다가 무득 묻는다.

금년에 나이 어떻게 되셨소?

노라는 대답이 궁하였다. 지배인과 주인은 스물두 살이라 고 하라고 하였는데 어쩐지 그렇게 거짓말을 입으로 불 생 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스물여섯이요 하고 바로 대자니 여급들은 물론이려니와 지금 이 손님도 갓스물 이 엄을락말락한 젊은이 앞에서 창피하고 ……

스물둘? 셋?

네.

노라는 그냥 대답을 하고 나니 얼굴이 붉어졌다.

허허, 스물둘두 되구 셋두 되구 허허허허 …… 그런데 여 보 유리짱.

김은 목을 가다듬느라고 술을 들이켜고 다시 말을 잇는다.

대관절 어떻게 해서 이런 데를 왔소?

노라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가 번번히 묻는 말씨라든지, 가외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는 품이 혹시 전일의 노라, 즉 현석준의 안해로서의 자기를 알고 이러하지나 아니하나 하는 의심이 생긴 것이다.

만일 노라가 혹시 동무들에게서라도 남자라는 것이 환락경 에 나온 숫계집의 환심을 얻기에 어떠어떠한 수단을 쓰는 것이라고 이야기라도 들었으면 김의 그러한 속을 굽어다볼 수가 있었겠지만, 지금 노라는 카페로 술 먹으로 오는 사람 도 평상시와 한가지로 여자를 대하며 교제하는 것으로밖에 생각지 아니한 것이다.

어떻게 허긴 무얼 어떻게 해요? 동무가 소개해 주어 왔지 요.

노라는 우선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 여기 온 경로를 묻는 것이 아니라 - 그거야 아무렇게 왔으면 어때요? -내가 보기에는 결코 이런 데 와서 이렇게 있을 여자가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해서 말이요.

노라는 겨우 안심을 하였다. 내용은 역시 모르는 것이다.

그거야 벌이허느라구 왔지요 …… 무슨 특별한 재주가 없 으니깐 달리 벌이를 할 수는 없구 그저 아모라두 와서 있을 수 있다길래 온거랍니다.

김은 벌써 불그레한 얼굴을 좌우로 흔든다.

d니 아무래두 무슨 깊은 사건이 있어…… 내가 맨첨 화장 품 가방을 들구 나섰을 때부터 그렇거니 짐작을 했는데……

아이 참 …… 괜히 그렇게 캐러 드세요. 사정이 무슨 사정 입니까?

어머니 한 분허구 여동생이 둘이 있어요.

노라는 남수네 집을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이렇게 둘러대었 다.

어머니가 나이 많으시우?

올에 예순다서이에요.

응…… 그러면 여동생들은 무얼허우?

학교에 다녀요.

그러면 그렇지!

김은 무슨 큰 것이나 알아맞힌 듯이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노라는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쓰는데 김은 얼굴이 시무룩하여지다가 도로 흥분해 가지고는 노라에게는 듣기에 도 무서운 소리를 냅다 쏟아놓는다.

아! 세상이 세상이 ! 세상이 불공평해서 ……이놈의


가 불공평해서 모든 것이 황금 본위이기 때문에

…… 당신같이 순진한 여성들이 이런 타락의 마굴에 굴러들 어오구 ……엣 이놈의 --이 하루바비 --이 --나야지……

그래 당신같이 순진한 여성이 이런 마굴에 굴러들어와서 돈 있는 뭇놈의 조롱거리가 되구 노리갯감이 되다니 거 될 말 이요?

김은 비분강개해서 이렇게 말을 하나 노라는 김이 생각하 는 바와는 다른 의미로 dr시 속이 언짢지 아니치 못하였다.

김이 회계를 치르고 일어설 때에 일원자리 두 장을 꼭 쥐 어주면서 서로 좋은 친구가 되자고 신신당부를 한다.

노라도 그러겠다고 대답은 하나 어쩐 일인지 다 같은 친절 을 생각하면서 넋없이 혼잡하 밤거리를 바라보노라니가-그 혼잡한 속에 혹여 병택이가 섞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하였다-비틀거리며 술꾼 하나가 달려든다.

노라가 문간을 비껴서려니까 그는 두 팔을 쩍 벌리고 껴안 을 듯이 달려든다.

어, 그애 꽤 똑똑헌걸! 어데 나허구 뽀뽀 한번 하자. 뽀뽀 뽀뽀.

노라는 몸을 피하려다가 마침 나오는 손님과 부딪뜨려 등 뒤로 주정꾼에게 껴안기고 말았다. 그는 술내나는 입으로 연해 노라의 볼을 문지르며 어눌한 소리로 뽀뽀를 부른다.

노라는 뿌리치고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하나 남자의 팔힘은 억세다.

옆에서 동무 여급들이 사내를 핀잔을 주며 놓아주라고 하 나 그것은 도리어 아양일 뿐이다.

그러자 뒤미처 들어오는 그의 동행인 듯한 사람이 주정뱅 이를 뜯어놓고 노라의 손목을 잡아끈다.

이거 무얼 점잖지 않게 이러시우? 응. 꽤 똑똑은 헌걸……

어데 아래칭 번인가? 우리허고 같이 놀지.

노라는 주정뱅이에게 놓인 것이 고마워서 하라는 대로 따 라섰다.

그 사람들은 둘이 다 조선옷을 깨끗이 입었고 나이는 모두 사십이 훨씬 넘어 보인다.

그러고 주정을 말리던 나중 들어온 사람은 번대머리가 벗 어지고 얼굴이 뒤룩뒤룩한 게 몹시 내숭스럽게 생기었다.

노라는 손님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당한 번은 딴 여급이나 노라는 그대로 붙잡혀 앉았다.

응. 꽤 똑똑헌걸…… 전엔 못 보았는데 새로 왔나?

아까 장난을 말리던 사람이 탐이 나는 듯이 노라를 연신 훑어보며 묻는다.

네.

언제부터?

그저께부터 왔읍니다.

응. 꽤 똑똑해…… 그렇지? 최주사?

최주사라는 게 아까 문간에서 노라를 안고 승강이하던 사 람이다.

허허허허…… 내가 연애를 좀 허량더니 이주사헌테 떼운 모양인걸. 허허허허.

허허허허…… 그렇다면 우리 다같이 연애를 헙시다. 둘이 는 못 허나? 그렇지?

이주사는 노라의 손을 잡아다가 조몰조몰 만진다.

이름이 무어야?

유리꼬 올시다.

유리꼬 유리꼬, 유리같이 맑고, 응, 그렇단 말이지? 허허.

그렇지. 유리같이 맑구 아름다워…… 그래 이름을 잘 지었 는데…… 유리꼬, 응.

노라는 속으로 우스운 것을 참느라고 입술을 물었다.

나이는 며살?

이주사가 잡은 손을 더욱 주무르면서 묻는다.

스물두 살입니다.

스물두 살…… 응. 꼬옥 좋은 나이로군…… 여보게 유리꼬 상, 나 같은 늙은이하구두 연애허나?

저는 그런 건 모릅니다.

예? 천만에…… 아 늙었다구? 허허. 그러나 염려말게……

내가 아무리 늙었어두 젊은 놈 아니 부럽다.

원 영감두!

최주사가 반박을 하고 나선다.

글세 대번 초면에 연애를 허자니 누가 그러라겠수! 두구두 구 서서히 다니면서 그래야 지.

허허 그런가요…… 과연 최주사가 연애에는 선수거든.

아니 천만에…… 이주사가 저렇게 내숭을 피어두 여간만 아니야. 응, 유리꼬상, 괜히 조심해요.

마침 당번 여급이 술을 가져왔다.

사흘이나 있었어도 처음 보는 술이다. 노란 술은 조그마한 잔에 부어놓고, 또 레몬을 한 잔씩 놓아왔다.

노라는 그것이 술은 자기네가 먹고 레몬은 당번 여급과 노 라더러 먹으라고 가져온 것이니라 여겼더니 웬걸 레몬에 술 을 부어가지고 맛보듯이 짤름짤름 마시는 것이다.

그래 이번 이주사 참 큰 땡 잡었지.

여급과의 희롱은 잠깐 잊어버리고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하 고 있다.

땡은 무슨--- 아니 글쎄, 이게 어느 때라구 수한간에 삼백팔십 석, 근 사 백석이 추수되는 땅을 겨우 만 원에 차지했으니, 여보, 생각 허면 벼락맞일 일이 아니요?

쉬.

아따, 머 이주사나 내나 그 길루 나서 그 길루 돈 모은 놈 인 줄 세상이 다 안다우. 응, 여게 유리꼬상, 우리는 다 이 렇게 돈장사, 소위 고리대금업잘세. 미리 알구 사귀게.

그렇지만 자네들한테 돈쓰기는 인색잖어이, 응?

것두 좋지…… 이주사가 삼만 원 남긴 바람에 한턱 단단히 쓸 모양이니 우리 가세 그러나?

아이구 가긴 어델 갑니까? 이 밤중에!

노라는 졸리다 못하여 이렇게 말막음을 하였다.

밤중에 어데를 가느냐구? 왜? 자동차 가시끼리허지. 온양 온천 가지…… 그게 멀거든 인천 월미도 가지.

최주사는 신이 나서 기세를 올린다.

그래 자동차를 가시끼리해 가지구 인천 월미도나 가세그 려. 가서 조탕이나 허고 호텔에 가 맥주나 한잔 먹구……

좋잖아? 응, 유리꼬상?

이주사도 연해 이렇게 조른다. 노라는 그렇게만 논다면 소 풍할 겸 속으로 당기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나 섬뻑 그러자 고 나서기가 어쩐지 서먹서먹하였다.

허허, 초면이 돼서 맘이 아니 뇌는 모양이군…… 그러면 훗날 차차 가기로 허구 오늘 저녁은 술이나 실컷 멕여주 세…… 자, 맥주를 좀 가져오구, 그리구 응, 페파민?이라든 지 그 파란 술 두 잔만 가져와.

이주사의 주문을 듣고 당번 여급이 일어섰다.

노라는 페퍼민트란 게 무엇인지 알 턱이 없다.

가져온 맥주를 먹으면서 새파랗게 고운 술을 당번 여급과 노라에게 권한다.

당번 여급이 죽어라고 먹지 아니하는 것을 보니 노라는 처 음 그 빛에 홀리어 맛보고 싶던 생각이 쑥 들어가고 말았 다.

거 왜들그래? 이건 술이 아니야. 맥주보담두 더 순헌 박하 주야. 응? 자, 유리꼬상.

최주사는 술잔을 들었다가 노라의 입에 대어 주고 자꾸만 기울인다.

할 수 없이 어린아이 약 먹듯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미상붕 술맛은 별로 없고 향긋하니 싸한 것이 더 먹으라면 더도 먹을 성싶었다.

그러나 먹고 나서 한참 있노라니까 이상스러운 흥분이 온 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노라는 아뿔사! 하고 후회를 하였으나 몸은 마음의 말을 곧잘 들으려고 아니한다.

그는 기운을 가다듬어 가지고 허둥지둥 죠뀨베야로 몸을 피하여 와서 드러누워 버렸다.

노라가 카페에 나온 지 나흘째 되는다.

유리꼬상, 고안나이.

뽀이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일어서서 보니 머리를 모두 까 까중이로 깎고 볼때기에 애티가 졸졸 흐르는 중학생---사 오 인이 모두들 홍당무가 되어가지고 척척 들어선다.

저게 뉘 집 자식들이야!

노라가 앉아 있던 옆의 탁자에 술을 먹던 손님 가운데서 누군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욕을 한다.

나 같으면 그렇게 뒤로 용을 허는 대신 한바탕 나무라 주 지.

노라는 속으로 이렇게 뇌꼴스러워하면서 그래도 할 수 없 이 그들을 맞이하였다.

그들은 척척 걸터앉아서 담배 한 개씩을 제가끔 빼어 물고 는 노라에게 성냥을 청하다. 성냥을 가져다가 탁자 위에 놓 은 것을 그중에도 꺄스럽게 생긴 한 사람이 와락 채어다가 그어대면서 한 마디 쏜다.

담뱃불은 좀 붙여주면 치가 깎이우?

노라는 들은성만성하고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흥, 장히 도도헌걸……

생기긴 똑똑허게 생긴 게 왜 요 모양이야.

두어두게. 우리가 어리다구 얕보구 그러네.

흥, 어리다구?…… 그러면 버릇 가르킬까? 우리어미 아비 가 못 가르키구 호랭이 체조 선생이 치를 떠는 우리시다.

괜히……

그래도 노라는 아무 대꾸도 아니하였다.

술 가져와.

탁자를 땅 치며 소리를 버럭 지른다.

네. 무슨 술을 가져와요?

노라는 속에서는 불이 치밀어오르나 겉으로는 까딱 아니하 고 천연덕 스럽게 수응을 해댄다.

막걸리.

막걸리는 없읍니다.

막걸 리가 없으면 약주술.

약주술도 없읍니다.

그러면 소주.

소주두 없읍니다.

있는 겉 무어야?

그런 술은 아무것두 없읍니다.

그러면 무슨 술이 있어?

맥주, 정종, 위스키 같은 양주는 무어나 다 있읍니다.

허, 그건 황송해 못 먹어…… 여보, 그러지 말구 막걸리 한 사발 사다주구려. 예? 네상.

좌석에서는 웃음이 와 하고 폭발이 된다.

놀림을 당하여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당하기는 처음이 다.---더구나 어린아이들에게.

그러나 이렇게 된 마당에야 그 자리에서 울거나 외치거나 해서 그들에게 약한 것을 보이고는 싶지 아니하다. 목구멍 밑까지 솟아오른 눈물을 애써애써 참노라니 정신이 아찔아 찔하다.

정말 막걸리는 못 주겠수?

없어요.

약주두?

없어요.

그러면 섭섭하니 냉수라두 한잔 주구려.

노라는 카운터로 가서 냉수를 인간 수요대로 청하여다가 늘어놓아 주었다.

어 참, 네상. 인제는 죽어두 이 은공은 못 잊겠구려. 자, 우 리는 그럼 갑시다.

그들은 냉수를 들이 켜고 나서 히히덕 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린다.

노라는 만만한 죠뀨베야로 올라가서 눈이 팅팅 붓도록 울 고 나서야 겨우 속이 후련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는 더 번을 보지 아니하려고 그대로 드러누웠 는데, 뽀이에게 억지로 끌리다시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김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웬일이요?

김이 노라의 눈이 부운 것을 벌써 보고 놀라 묻는다.

노라는 무어라고 대답하여야 좋을지 몰라 아무 말도 아니 하고 피쑥 웃기만 하였다.

응, 왜 그래요?

김은 몹시 안타까와 안절부절한다.

왜 그러긴 왜 그래요?

눈이 팅팅 부었으니 말이지?

울었어요.

왜?

거저.

고조 율었다? 그럴 리가 있나?…… 사람이 우는 것이 기뻐 서 울때두 있구, 설어서 울 때두 있구, 분해서 울 때두 있구 다 각기 다른 법인데.

그중에 하나 겠지요.

그중에 하나라? 그러면 무얼까?

그건 그렇게 자꾸만 캐선 무얼 하세요? 자, 술이나 드십시 요.

술? 응, 먹지.

그는 정종을 여거푸 서너 잔이나 따라서는 마시고 따라서 는 마시고 하다가 필경 유리컵을 청하더니 한 잔을 그득 부 어서는 단숨에 들이 마신다.

웬 술을 괴히 잡수세요?

술기운만에 우선 취한 양으로 김은 눈을 몽롱하게 뜨고 노 라를 끄윽 바라본다.

여보, 집에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니요.

그럼 누구 동무허구 싸웠소?

아니요.

오늘 누구 만나 사람 없소?

아니요.

손님허구 싸웠소?

싸운게 아니라 그저 그랬지요.

김은 원망스러이 노라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 잔을 그득 부 어 들이켜려고 한다. 노라는 슬그머니 겁이 나서 술잔을 잡 았다.

그만 잡수세요.

그만 먹으까요?

그는 싱그레 웃으면서 술잔을 멈춘다.

네. 취하시면 어떻하세요?

좀 취해야겠는데요.

왜요?

그는 대답 대신 두 손으로 노라의 손을 덥석 쥐고 바르르 떨며 가쁘게 숨을 쉰다.

유리꼬상!

네?

나 나…… 아니 내가 꼭 할 말이 있어.

말씀허세요.

저편이 긴장되는 데 따라 노라도 속으로는 공연히 긴장이 되었으나 태연하게 대답을 하였다. 김은 더 한번 힘을 주어 잡은 노라의 손을 막 끌어쥐었다.

나허고 결 결혼해 주어요.

네?

너무도 뜻 아니한 말에 어이가 없어서 노라는 실소를 할 뻔하였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노라의 이러한 말씨랄지 태도는 김의 예상하는 바와는 어 그러지게 반응이 적었다.

당장에 대답은 아니하더라도 자기의 이와 같은 진지한 태 도에 상당히긴장하고 엄숙한 반응이 있을 것을 예기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번에 기운이 쑥 빠졌다.

왜? 내 말이 잘못되었소?

아니, 말씀을 잘못허셨다는것이 아니라 너무 갑자기 그런 말씀을 허시니까.

그러면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지금까지 유리꼬상의 머릿속 에는 전연 인상이 배겨 있지 아니했단 말씀이지요?

그럴 리야 있나요…… 저번에 말씀허신 대루 그저 다정한 친구로 늘 생각허구 있었지요.

거짓말이나마 이 자리에서 노라는 이렇게라도 그를 위로 아니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김이 어찌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 자 리에 병택이의 그림자가 또렷이 들어안고 김의 형적은 없어 져 버리는 것이었었다.

나는 그것으로는 만족헐 수가 없어요. 유리짱, 나허구 결혼 해요, 네?

글쎄 왜 이러세요. 아마 술이 취하신가 봅니다.

유리꼬상!

네?

나 나…… 아니 내가 꼭 할 말이 있어.

말씀하세요.

저편이 긴장되는 데 따라 노라도 속으로는 공연히 긴장이 되었으나 태연하게 대답을 하였다. 김은 더 한번 힘을 주어 잡은 노라의 손을 막 끌어쥐었다.

나허고 결 결혼해 주어요.

네?

너무도 뜻밖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노라는 실소를 할 뻔하 였다.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노라의 이러한 말씨랄지 태도는 김의 예상하는 바와는 어 그러지게 반응이 적었다.

당장에 예스라고 대답은 아니하더라도 자기의 이와 같은 진지한 태도에 상당히 긴장하고 엄숙한 반응이 있을 것을 예기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번에 기운이 쑥 빠졌 다.

왜? 내 말이 잘못되었소?

아니, 말씀을 잘못허셨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갑자기 그런 말씀을 허시니까.

그러면 나라는 사람의 존재가 지금까지 유리꼬상의 머릿속 에는 전연 인상이 백여 있지 아니했단 말씀이지요?

그럴 리야 있나요…… 저번에 말씀허신 대루 그저 다정헌 친구로 늘 생각허구 있었지요.

거짓말이나마 이 지리에서 노라는 이렇게라도 그를 위로 아니해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김이 어찌하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 자 리에 병택이의 그림자가 또렷이 들어안고 김의 형적은 없어 져 버리는 것이었었다.

나는 그것으로는 만족헐 수가 없어요. 유리짱, 나허구 결혼 해요, 네?

글세 왜 이러세요. 아마 술이 취하신가 봅니다.

왜 그렇게 남의 속을 몰라 주시요. 남의 이 애타는 속 을……당신이 이대루 여기 한 달만 잇으면 당신은 영영 헤 어나지 못헐 구렁에 빠지구 맙니다. 나는 차마 그것을-당신 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없어요.

글세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까 참 고맙기야 합니다 만.....결혼이란 건……

그러니가 결혼을 해주어요.....지금 내가 학비로 집에서 오 륙십 원씩은 가져다 쓰니까 그것이면 사오 명 식구가 근근 이 살어가잖겠소?

글쎄, 그렇게 흥분이 되지 말구 침착허게 생각허세요……

나 같은 사람이야 카페의 여급으로 있는 천한……

천만에 천만에.

김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막는다.

누가 그따우 소리를 해요? 누가 유리꼬상을 카페 죠뀨라구 그래요! 아니지요.

아니기는. 지금 당장 죠뀨 노릇을 허구 있는데, 아니라면 말이 되나요.

아니, 그건 아니지요. 유리짱이 카페에 온 것이 아니라 카 페란 놈이 유리짱 있는 데, 유리짱의 순진, 유리짱의 신성을 침노헌 것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지금 당장에 그놈을 몰아 내야 해요.

노라는 졸리다가 기진하여 더 말대답을 할 수가 없이 되었 다.

이 젊으니의 열정와 진실함이 고맙기는 하나 그것은 실상 에 있어서는 코웃음거리밖에는 아니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을 단념시키고 일후라도 더 조르지 아니하도록 하 자면 자기와 과거와모든 것을 이야기하든지, 그렇지 아니하 면 결혼을 하엿다고 만이라도 말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면 저편에서 여간 낙망을 아니할 것이고……

탁자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김은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얼 굴을 번쩍들고 충혈된 눈으로 노라를 끄윽 바라본다.

그러면 약혼헌 이가 있소?

한참 만에 그는 이렇게 묻는다.노라는 속으로 생각을 하여 보았다.

그대로 숨겨둘까? 그렇지 아니하면 약혼한 사람이 있다고 해둘까? 약혼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지금 당장은 저편에서 실망을 할 테니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엉터리없이 남 의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것도 못할 일인 것이다.

네, 실상은 십 년 전부터 서로 약속한 이가 있어서……

겨우 말을 하고 노라는 고개를 숙이었다.

모든 것이 노라에게는 고달픈 단련이다.

닷새, 열흘, 그리고 한 달 되었다.

한 달이 지나메 카페의 공기에 제법 동화가 되어 서비스 같은 것도 그럴 듯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뿐이요, 종시 길들기가 어려웠다.

김이 육장 두고 조르고, 이주사 최주사가 추근추근하게 달 려붙는다.

수입은 에미꼬가 십 워 어쩌고 풍치던 것은 꿈 이야기요, 매일 사오 원씩 되던 것도 처음 며칠분이지 그 뒤로는 하루 에 이 원이 들어오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삼 년 동안에 사천원을 자겠다는 꿈도 화장품 장사로 이 천원을 모으겠다 던 꿈과 한가지로 깨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인기가 좀 있다는 노라 자기의 수입이 이와 같이 한심한데 하루 저녁에 번이 한번도 돌아오기가 어려운 다른 여급들이 어떻게 살아가나?

그것이 처음 생각하기에는 기적 같았으나 차차 알고 보니 역시 그럴 듯한 농간이 있는 것이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자가 있다. 맞아들이고 배웅함이 무상 하기는 하나 그래도 팁의 수입 이외에 남자에게서 들어오는 부수입이 있다.

에미꼬나 그밖에 가가와진 동무들은 노라더러 최주사나 이 주사를 맞으라고 권고를 한다. 그러할 때마다 웃고 대답을 아니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빈정거린다.

흥. 좀 더 있어 보지……그런 거리나마 없어서 걸걸헐 테 니……

우리두 첨 카페에 나와서는 술병을 들구 울었나네.

나는 졸도를 헌걸.

나는 사흘 동안 밥을 아니 먹구 운걸.

남편이 있다면 모르지만 홀몸이면 무엇이 대껴서 그렇게 가다이해.

카페 있는 계집이 어느 시절에 졍렬부인이 될라구!

시월도 보름이 지나고 나니 아침 저녁이 꽤 선선한 것은 그만두고라도 낮에는 햇발이 야위고 하늘이 파랗게 맑은 게 완연히 가을이다.

반 두시까지 카페에 있다가 돌아오노라면 얇은 옷이 추워 달달 떠는 때도 있다.

노라는 이 한 달 동안 번 돈을 통히 따져 보니 육십원에서 좀 모자란다.

그런데 쓴거은 매일 육십전의 일수 찍은 것 십팔 원과 밥 값 십오 원을 주었고, 새로이 옷 두 벌과 구두 한 켤레를 또 산 거까지 합하면 칠십 원이나 된다. 그 초과되는 이십 원은 갈데없이 빚으로 처졌다.

밑지는 장사 - 항용 샹각하기에는 밑지는 장사면 당장에 그만드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한 가지는 좀 더 있으면 조 나으려니 하는 희망을 누구든지 가지는 게 사람의 상정이 다.

노라도 그러하였다. 기왕 카페로 나온 바이니 지금 그만두 었자 당장 별도리가 없을 것이요, 인제 가을이 되어 세월이 나 좋으면 그래도 그새가지보다는 수입이 나으려니 하는 생 각으로 그저 머뭇머뭇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이 이렇게 줄곧 안정이 아니 되매 가을철로 들 어서는 등 뒤에 마물이 따르는 듯한 불안과, 또 한 가지 무 엇엔지 차지 못한 적막이 고요한 석양이면 마음 구석을 차 지하여 한숨이 절로 나오곤 하였다.

어린아이들은 카페로 나온 뒤에 만나기를 아주 단념하였 다. 물론 그립지 아니한 것이 아니나 카페의 여급인 어미로 서는 아무리 철없는 어린아이들일망정 스스로 대할 낯이 없 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까지 이렇게 단념하여야만 된 그는 도무지 마음 붙일 곳이라고는 없었다.

병택이는 나를 이해해주겠지.

언제나 한번은 만날 수가 있겠지.

이것이 지금의 노라에게는 유일의 희망이다.

이렇게 뒤숭숭하면서도 사라질 듯이 고적한 마음으로 저녁 화장을 하고 있는데 마침 석간심문이 배달되었다.

일상 하는 버릇으로 잠시 손을 멈추고 사회면의 제목을 죽 훑어보던 그의 눈은 자지러지게 놀라 어느 한 제목에로 쏠 리었다.

-재건 중심인물 오병택 필경 체포 쿠리로 변장코 국경넘다 국경 이동반에게 노라의 눈이 쏠린 것은 이 제목이다.

-재건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노라는 알지 못하나 병택이가 중국 노동자로 변장하고 국경을 넘어가다가 붙잡혔다는 것 을 확실히 알 수가 있다.

그는 화장하던 것을 밀어치우고 단숨에 기가를 읽어 내려 갔다.

[신의주]금년 봄 이래 -----의 지령을 받아 조선 ---재 건을 획책하던 사건이 경찰의 탐지한 바되어 지난 팔월 이 래 전북 경찰부, 경기도 경찰부, 평북 경찰부 등이 협력하여 전기 삼도에 뻗쳐 있는 연루자 다수를 검거 취조한다 함은 누보한 바거니와 아직 미체포된 관계자 중에 동 사건의 중 심 인물인 오병택의 행방에 대하여 극력 수사를 계속하던바 십칠일 오전 국경 이동경찰대가 신의주발 북행열차를 검사 하던 중 행동이 수상한 중국인 쿠리 일 명을 검거하여 취조 한 결과 그는 의외에도 전기 조선--- 재건사건의 중심 인 물 오병택인 것이 판명되었다. 동인은 처음은 완강히 사실 을 부인하엿으나 옷 속에 qlaf을 숨겨 가진 서류며 또 인상 등을 미루어 움직일 수 없는 증거에 대하여 필경 소성을자 맥하였다. 그리하여 동인은 불링간 경성으로 압송할 터인데, 그는 그와 같이 사건이 탄로되빞 모스크바로 피신하여다가 체포된 것이라 한다.

기사는 여기에서 끝이 나고 다시 작은 제목으로 오의 경력 이라고 한 밑에 다음과 같이 져혀 있다.

별항 보도 - 오병택은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중국·만주· 모스크바 등지로 돌아다니면서 ----의 이론과 실제를 연구 하고 조선에 돌아와 당시 제-차 조선---당 사건에 연좌되 어 경성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년간 복역을 하였다.

만기 출옥 후 그는 그의 고향에 돌아가 술먹기와 놀기로 세월은 보내고, 또 바보가 된 듯이 세상일을 돌아보잖고 보 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경찰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 요, 그때부터 벌써 각 지방의 동지와 비밀한 연락을 취하여 가며 준비 운동을 하다가 금년 봄 -----의지령이 나온 것 을 기회로 경성으로 올라와 그와 같이 본격적 운동에 착수 한 것이다.

노라는 신문을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넋이 나간 듯이 망연 히 앉아 있었다.

노라는 이 신문 기사로써 전날 병택이에게 가졌던 의혹이 다 풀리었다.

바보도 같아 보이고 반편스럽게 우물우물하던 것, 그리고 간다 온다 말이 없이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 모든 것이 속 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올 봄 이래 같은 서울 안에 있었으면서 그렇게도- 물론 숨어 앉았으니까 그러기도 했겠지만 - 만나지 못한 것 이 발을 구르고 싶게 안타까왔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간 일이라 하더라도 병택이에게 대하여 무엇인지 모를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지내가려는 노라에게 는 크나큰 타격이 되었다.

무엇이 실망인지 모를 실망에 그는 정신을 잃다시피 한 것 이다.

화장을 하고 카페에 나갈 생각도 먹히지 아니하고 남식 어 머니가 가져다 놓는 밥상을 보아야 밥 먹고 싶은 생각도 나 지 아니하고 그저 우두커니 병택이의 관련된 여러 가지 두 서 없는 생각을 뒤지고 앉았는데 혜경이가 찾아왔다.

노라가 카페에 나간 뒤로 처음이다. 물론 혜경이가 그동안 밤으로 몇 차례 찾아오기는 하였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혜경이가 찾아오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노라가 찾아가서 만났어야 할 것이지만 그동안 그는 혜경이를 만나기를 피하 였던 것이다.

그러나 얼룩얼룩한 옷을 걸어놓고 혼란스런 화장품을 늘어 놓은 경대 앞에서 필경은 혜경이아 마두치고 말았다.

병택이의 일로 해서 경황이 없는 중에도 이 장면을 혜경이 게 보이게 됨에 노라는 여간만 낭패에하지 아니하였다.

아무 때 알게 되어도 알게는 되겠지만 그러나 알게 되는 그날이 노라는 무서웠던 것이다.

왠일이야!

혜경이는 대번 이렇게 묻는다.

이 웬일이냐고 묻는 것은 여러 가지 말이 포함된 것이다.

저 얼룩덜룩한 옷이 웬일이며, 저 혼란스러운 화장이 웬일 이며, 추렷다하가 당황해하는 게 웬일이며, 또 그렇게 만날 수가 없는 게 웬일이냐는 말이다.

노라도 그 뜻을 알기는 하나 대답할 말은 없다.

혜경이도 물론 막연하게나마 수상한 눈치는 채었다. 그보 다도 앞서 남수네 집에서 수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첫째, 옆집 여인이 입지 아니하는 옷을 입고 혼할스럽게 화장을 하고, 그리고 저물게 나갔다가 두시 세시에 들어와 서는 오정이 지나도록 잠을 자고 …….

이 뜻을 몇 차례 혜경이가 찾아왔을 때 남수와 그 어머니 는 걱정삼아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혜결이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으나 그 자리에 서는 그럴 듯이 구며되어 주인들로 하여금 이상하게 여기지 아니하도록은 하려 하였던 것이다.

물론 두 군데 - 혜경이나 남수네 집에서나 노라가 카페에 나가느니라고 짐작은 못하였다.

차라리 그보다 은근짜 등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기를 스스 로 두려워하면서도) 돌아다니지 아니하나 하였던 것이다.

말을 물어도 노라가 대답이 없이 쓸쓸히 고소하는 것을 보 고 혜경이는 재우쳐 묻는다.

응? 웬일이야. 어찌 그리 볼 수가 없어 ?

내가 좀 바빠서.

노라는 눈치를 보아가면서 이야기를 해버리려고 맘에 작정 하였다.

혜경이는 그냥 놓아둔 밥상과 화장품 진열장 같은 경대 앞 과 화장하다 만 노라의 얼굴과 그리고 벽에 걸린 옷들을 연 해 번갈아 본다.

밥 먹구려.

응. 먹고 싶잖어서.

옷은 저게 웬 거야?

내가 입는 거지.

노라는 다시 고소를 하며 옷을 돌아본다.

무슨 옷이 저렇게 혼란스러워?

젊어지고 싶어서.

그러지 말고 바른 대로 이야기를 허구려.

혜경이는 정색을 하여가지고 몸을 바로잡아 앉는다.

먹어야 사람이 살지?

노라는 우선 혜경이에게 이렇게 말을 낸다.

그렇지 …… 사람이 먹잖구 사는 수야 있나?

먹구 살자면 돈이 있어야지?

그렇지.

돈은 벌어야 생기지?

그렇지.

혜경이의 얼굴은 점점 초조하여 간다. 그 대신 노라는 도 리어 침착하여 진다.

그런데 내게 돈을 벌 재주가 무엇이 있수? 화장품 장사를 해 보았지만,그걸 가지고는 밥벌이가 아니 되고, 그러니 할 수 없이 딴 도리를 차려야지.

혜경이는 대답이 없이 잠잠히 노라를 바라보고 앉아서 그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래 할 수 없이…… 자본 아니 드는 장수 - 카페 여급이 되었수.

혜경이의 눈에는 차차차차 눈물이 괴기 시작하다가 그만 최르르 쏟아져 내려온다.

어쩌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수.

목이 메었으나 원망스러운 말씨다.

나는 몰라…… 내가 카페 여급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허구 싶어서 헌 건 아니야…….

카페에서 밥그릇이 나를 불러갔지.

노라는 여전히 쌀쌀하다. 혜경이는 옷고름을 짚어 눈물을 씻는다.

그렇다고 나더러 한 마디 상의라두 허잖구!

상의했다면 얼른 그러라 했수?

내가 있는데 노라 밥을 굶길까버?……

혜경이는 노엽게 노라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잘라서 내놓는다.

자, 자넨 이야기는 그만두고 우리 집에 가서 있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