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을 나와서/5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그 뒤에 혹 편지가 있을가 하였으나 그것조차 감감히 없 다.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아니 되어 노라에게는 또다시 슬픈 일이 생겼다. 남의사가 죽은 것이다.

편지가 두장이 왔다. 다 같은 글씨로 같은 사람에게서 왔 는데, 하나는 술이 많고 하나는 얄따랗다.

남의사에게서 온 것이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자기가 먼저 편지를 하지 아니하겠다 는 남의사에게서 온 편지다.노라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뜯었다.

사랑하는 노라씨-이렇게 부르는 것을 용서하시겠지요.

나는 지금 사오 시간의 생명을 남겨놓고 노라씨에게 마지 막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앞으로 몇시간 후에는 이 세상에 서 가장 사랑하는 노라씨를 두고 나는 잿불같이 사라질 것 입니다. 그러나 노라씨를 사랑한다고 자유로 부르면서 죽게 되니 진즉 죽은 것보다도 즐겁습니다. 노라씨가 그 가슴속 에 옛날 나를 지극히 깨끗한 사랑을 한 한 병든 학자가 있 었다는 것 만 영구히 묻어두어 주시면 천만 사람이 나의 무 덤 앞에 묘표를 해 세워주는 것보다도 기쁘겠읍니다.

자, 그러면 나는 갑니다. 부디 안녕히……

노라씨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실는지 걱정이 되어 눈이 감기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나는 명함 위에다 검은 십자가를 그린 것을 봉투에 넣어 피봉까지 썼읍니다.내가 운명을 하거든 우체통에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두가지 를 한데 노라씨는 보시게 되겠지요. 자, 갑니다.

노라는 더욱 떨리는 손으로 다른 편지를 뜯어보았다.

과연 검은 십자가를 그린 명함 한 장이 나온다.

노라는 편지를 손에 쥔 채 방바닥에 엎드려져 울었다. 울 고 울고 한없이 울었다.

어머니가 놀라 묻는 것을 친한 동무가 죽었다고 대답하였 다.

병택이가 가버리고 남의사가 죽고……노라는 외롭고 침울 하여졌다. 자주 한숨을 쉬고 우두커니 앉아 먼산을 바라보 곤 하였다.

남방의 봄은 이르다.

사흘 열흘껜데 봄이 질 대로 살이 졌다.

노라는 어머니와 부엌에서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올라오다 가 마루에 서서 앞뜰을 바라보았다.

나무끝마다 언덕마다 푸른빛이 돋는다.

동리집 울안에 섰는 수양버들이 비단산 같이 쳐져 있다.

소복소복 자란 보리밭은 우단결같이 보드랍다. 텃논에 가 득 잡힌 봄물이 둔덕을 넘친다. 여인네가 두엇 하얀 빨래를 빨고 있다.

물 마른 논바닥에는 자운영이 가득 덮여 전에 못 보던 운 치다. 집안에 섰는 한 포기 포플라는 젖살 오른 갓난아이같 이 토실토실한 순이 금시로 잎새가 터져나올 것 같다. 울타 리 밖의 개나리는 어제보다 더 훨씬 많이 피었다.

모든 것이 하룻밤 사이에 생겨난 별천지 같다.

노라는 못견디다가 마음이 싱숭거렸다. 훨훨 돌아다니기라 도 하고 싶었다.

나물이나 뜯으러 가려무나!

하고 어머니가 권한다. 어머니는 봄이 되면서 차츰 더 시 름없어가는 딸이 보기에 근심스러워 나물이라도 뜯으러 나 가서 잠시라도 즐겁게 놀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 가까……

남산에 취가 났다더라.

취? 벌써?

응 옥순이나 데리구 가서 놀다 오렴.

복동이를 시켜서 옥순이를 청하러 보냈다.

옥순이는 그새 몇 차례 같이 나물을 뜯으러 갔었으므로 미 리 알아채고 나물 바구니를 들고 왔다.

노란저고리를 입은 것이 비록 피지 못하고 시드는 얼굴이 지만 울타리 밖에 개나리와 쌍이 서는 것 같이 놓아 보였 다.

노라도 바구니를 찾아들고 나섰다.

햇볕이 어찌나 포근한지 손으로 만져보고 싶다.

산 밑 벌판에 가서 찾아 보았으나 취나물은 아직 나지 아 니하였다. 어머니가 딸을 놀러 보내느라고 헛말을 한 것이 다.

고개숙인 할미꽃과 까치풀삭밖에는 없다. 두 여인은 바구 니를 내 던지고 잔디 위에 주져 앉았다. 바로 그곳에서 멀 지 아니한 다랑논을 소가 갈고 있다.

쇳소리 같은 소 모는 소리가 산을 울리고 돌아온다.

쟁기를 끌던 암소가 우무하고 소리를 치니까 어디선가 맹 대답을 하고 예쁜 송아지가 뛰어온다.

그것을 보자 노라는 헉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이 비오 듯 쏟아져 내렸다. 옥순이는 웬 영문인 줄을 몰랐다.

왜 울어? 응.

하고 묻는 옥순이도 눈물이 흘러 내린다.

두 여인은 눈이 붓도록 울었다.

왜 그렇게 뜻밖으(갑자기) 울었어?

하고 다 울고 난 끝에 옥순이가 묻는다. 노라는 울던 끝이 라도 우스웠다.

옥순이는 왜 울었어?

나? 그냥 설어서 따라 울었지.

두 여인은 웃었다.

나는 어린 것들이 생각이 나서 그랬어……

저 송아지를 보고?

응.

인제 서울 갈 틴디 멀.

허긴 그렇지만……

나 같어먼 울지 않어…… 팔자가 오직 좋다구……

하고 옥순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라는 늘 옥순이가 측은하였다. 자기는 막연하나마 앞으 로 세상에 나서서 잘 살아보겠다는 희망과 굳은 투지(鬪志) 나 있지만 옥순에게는 그러한 것도 없다. 사는 것은 죽지 아니하니까 살아 있는 것이다. 산 송장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불쌍한 처지에 있는 동무이니 힘 자라는껏 앞일을 상의도 하여주고 도와도 주며 될 수만 있다면 서로 의탁하 며 살고 싶었던 것이다.

옥순이 몇 살이지?

하고 노라가 물었다.

스물다섯.

노라보다 한살 아래다.

우리 의형제 맺을까?

응.

얼른 대답하는 옥순이의 눈에는 광채가 났다.

그럼 내가 언닌가……

하고 노라는 옥순이의 손등을 만지었다. 정말 동생인 듯싶 었다. 옥순이도 노라으 손목을 어루만지었다.

우리 저 남산에 올라가…… 나 옥순이한테 꼭 할 이야기가 있어……

하고 노라는 옥순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저편 솔숲에서 꿩 한 마리가 푸드덕 날더니 자스러치게 놀 란 소리로 울고 지나간다. 등 뒤에는 송아지가 운다.

산꼭대기는 바람이 좀 산산하나 높은 데 올라서니 가슴이 툭 트이고 속이 쉬원하다.

선바위 근처에는 진달래가 많이 피었는지 근처가 불그레하 다. 어렸을 때 꽃을 꺾으러 자주 오던 곳이다.

산 밑 오막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오도카니 한 채 잊어버리고 간 것같이 놓여 있다.

빨래터에 흰 빨래가 널려있다.

향교의 붉은 단청과 흰 벽이 은은히 보인다.

멀리 오성산 너머로는 강물이 조금 넘겨다보인다. 축성산 도 뾰족한 채 날개를 좌우로 펼치고 있다.

서편으로 군산서 기선이 떠나는지 들어오는지 우 하고 길 게 운다.

남쪽으로는 조선서 제일 간다는 김만경 평야다.

거침새 없이 넓은 들이 한 없이 벋어나가다가 전주 남원과 부안 변산 등지의 암암한 산 밑에 사라진다.

들 가운데로 낮차가 장난감같이 아물아물 기어간다.

일본사람의 농장이 있는 곳에는 햇볕이 생철지붕 위에서 번득인다. 만경강이 띠처럼 들 가운데 굽이져 있다.

이렇게 높은데 올라서서 확 터진 넓은 산천을 바라보노라 니까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 게 트이는 듯싶었다.

두 여자는 바람이 덜 치는 언덕 밑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 다.

옥순이.

하고 노라가 다정하게 불렀다.

응?…… 아이구 참, 형님인데.

아니 서울말로 부르지?

언니…… 예?

호호, 응이라구 해두 괜찮어.

하고 노라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잇는다.

옥순이, 우리 신세가 다 같은 사람이야……그러니까.

옥순이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처지가 같다니? 자기는 소박을 맞은 의지 없는 사람이요, 노라는 휼ㄹ룡한 남편이 있고 호강 하면서 잘 사는 신식 여잔 데……

그리하여 옥순이는 처지가 같다니?

하고 말을 막으며 물었다.

노라는 적막하게 웃었다. 그리고 자기가 집을 나온 이야기 를 하였다.

옥순이는 노라의 집을나온 것을 그 연유를 이해하기 어려 웠다.

노라는 옥순이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줄은 알았으나 더 설 명을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우리 이렇게 외로운 몸들이니 서로 의탁하구 살 자구…… 나는 옥순이가 불쌍해.

나는 언니가 더 불쌍허우.

나는 그래도 괜찮아.

어린애들도 못보구……

그건 그렇지만……

언니도 아주 친정살이를 허우?

하고 옥순이가 물었다.

아니, 서울로 가야지.

나도 서울이나 갔으면!

갔으면이 아니구 가자구…… 여기 있으면 무얼 해?

가구는 싶지만 가서 어떻게 살어?

산사람 입에 낙거미줄 칠까? 걱정 말어요. 내가 다 마련해 줄 테니……

아니구, 그랬으면 난 죽어두 한이 없겄어.

노라는 미리 이러한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오래 잖아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있었으나 확 정한 것은 아니었었다. 더구나 옥순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것은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비로소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에 작정이 없이 작정이 된 것이다.

지금 금융조합에 예금하였던 돈을 그렁저렁 한 오십 원이 나 찾아서 어머니의 살림에 보태어 쓰고 일백이십 원밖에 남지 아니하였다.

이것마저 없어지는 날이면 힘없는 어머니를 의지 할 수밖 에 없는데, 그러자니 둘이 다 고생이요, 또 지탱 할 수가 없 을 것이다.

잘못하면 거지가 되거나 굶어죽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 이다.

그동안 까지는 믿기는 서울서 혜경이가 직업을 구해놓고 기별을 주겠다는 것만 막연하게 기다렸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 된다든지 일년이고 이태고 끌고 간다면 그동안에 살아 갈 길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한번 예금통장에 남은 돈 일백이십 원을 생각하니 앞뒤가 뚝 잘린 것 같이 막막하였다.

도 그뿐이 아니다. 이때까지 잊어버리고 돌아보려고도 아 니한 채 두어둔 문제가 있다.

노라는 새로운 삶을 하여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여고가정과 남편과 어린아이들을 버리고 온 것이다.

무엇이 새로운 삶이요,어떻게 해야 새로운 삶을 발견 한다 는 것은 노라 자신도 아직 생각 하여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집을 나온 지금까지 몇 달 동안은 너무도 몽롱하게 지내 왔다.어린아이들이 그리워서 울었다. 어린아이가 그리 우니 울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병택이가 없어지고 남의사가 죽으니까 적막하여서 울었다.

응당 울기도 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뿐일까?

야학하러 온 부인네들에게 당돌하게 남성에게 반항 하라고 하였다. 그러니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세간을 판 돈을 가지고 어머니를 의지하여 살아왔다.

옥순이가 불쌍하여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다 무리도 없고 그럼직한 일이지만, 그러나 너무나 평범하고 막연하였던 것 이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나왔으면 그 보람이 있어야 지…… 이러한 생각에 골몰하던 노라는 무심코 혀를 찾다.

옥순이는 역시 옥순이대로 생각에 잠겼다가 노라가 혀를 차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내려갑시다.

응. 내려가자구……

두 여인은 일어섰다.

미끄러운 산협길을 둘이서 서로 붙잡고 기듯이 내려갔다.

어머니가 이년들이 맘이 떳다구 허시겄어.

왜?

나물바구리(바구니)가 텅 빈걸 보시구.

나물이 있어야 뜯지……

언니, 언제 떠나실라우?

조금 내려가다가 옥순이가 묻는다.

나는 아무 때라도 좋아…… 옥순이는?

글쎄……노자라도 좀 변통하여야지.

멀, 내게 돈이 있으니까 그건 여려 말아요.

그래두…… 한 사흘 있다가 떠납시다.

아무려나…… 그렇지만 돈은 염려 말어요.

산 중턱에서 등걸나무 캐는 초동들이 멋들어지게 육자배기 를 부른다.

마음을 하염없게 하는 노래다. 노라는 부를 줄만 안다면 한마디 불러 보고 싶었다.

옥순이가 할미꽃을 한 송이 잘라 노라의 쪽에 꽃아준다.

그리고 자기도 한 송이.

그러고는 웃는다. 쓸쓸한 얼굴이다.

집 문앞에 와서 돌아가겠다는 옥순이를 끌고 들어갔다.

어머니! 딸하나 생겼수.

하고 노라는 외쳤다.

어머니는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한다.

딸이라니?

옥순이하고 결의형제했어.

응…… 나는 무슨 소리라구……잘 히였다.참 잘 히였다.

하구 어머니두 기뻐한다.

어머니한테 절히어야지.

하고 옥순이가 웃는다.

절은 그만두고 밥이나 먹어라.

어머니는 뱅어를 사서 조려놓고 기다렸던 것이다.

딸이 놀러 나갔다가 명랑해져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어머 니는 퍽 기뻤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노라는 옥순이와 같이 나서 사흘 후에 떠나자는 약속을 하고 혼자 금융조합에 가서 맡겼던 돈을 다 찾았다.

일백이십 원하고 구십 전이다.

십 전은 찾지 못하였다.

백 원을 남기고 이십 원은 어머니한테 내놓으면서 사흘 후 에 떠나겠다는 말을 하였다.

어머니는 그러냐고 흔연하면서 그러나 섭섭해하는 기색이 완연히 보였다.

봄에 간다고 하였고 봄이 되었으니 가야 할 줄은 알지만, 가겠다는 말을 들으니 맘이 아득하였다.

언제나 또 한번 올라냐?

하고 어머니는 물었다.

글쎄…… 인제 종종 디니러 올테야.

그레라…… 돈이 들어서 걷정이지만 내가 이렇게 늙고 허 닝개네 생각이 더 나더구나.

며해만 더 고생하시요, 어머니…… 인제 내가 서울로 모셔 가께.

그빀으면 오직이나 좋겄느냐마는…… 이 단에 올 때는 어 린것들이나 하나 데리고 오려무나.

노라는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아니하였다.

떠날때에 하려고 미뤄뽌던 것이다.

노라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차마 입이 열리지 아니하였다. 노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서울 가서 편지로 하리라고ㅜ또 한번 미루었다.

복동이를 시켜 병택이 집에 보내어 혹 어디 가 있다는 소 식이나 없는가 알아오라고 하였다.

재미없는 일인지 아나 아쉬운대로 그의 거취라도 알고 싶 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동이는 아무 소식도 가지고 오지 못하였다. 집안 에도 여시 한번 나간 뒤에는 엽서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한번만 더 만났으면,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무 심하냐고 원망을 하여주고 싶었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떡쌀을 담그고 무얼 장만하려고 서두는 것을 노라는 굳이 만류하였다.

혜경이에게 셋방이나 하나 얻어 놓아 달라는 편지를 써서 붙이었다 사흘 되는 아침에 옥순이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올라왔다.

구경삼아 서울을 가겠다고 하 니까친정부모와 오라버니들이 처음은 완고하게 반대를 하더니 정 졸리다 못하여 저젯밤 겨우 승낙을 하고도 돈도 삼십 원쯤 주겠다고 한다고 어린 아이같이 좋아한다.

노라는 혜경이에게 내일 아침에 도착한다는 전보를 치고 행장을 수습하여다.

짐을 챙기다 보니 병택이가 가며다 준 채로 내던뽠던 -부 인론-이 눈에 뛴다.

고이 가방속에 간직하여 두었다. 옥순이는 부러운 듯이 옆 에서 노라의 가짓수 많은 옷들을 구경하였다.

노라는 그 눈치를 채고 자기의 옷 한 벌과 신던 구두 한 켤레를 따로 내어 놓았다.

차는 밤차 이었으나 밤길에 정거장까지 나가기가 호젓하여 서 해전에 떠나 정거장 근처의 아는 사람 집에 가서 기다리 기로 하였다.

짐을 복동이와 옥순이 집 머슴에게 나누아 지우고 두집 어 머니까지 일행 여섯 사람은 길을 나섰다.

노라의 옷을 입고 신여성으로 차린 옥순이는 처음 신은 구 두요 처음 입은 옷이라 좀 어색한 것 같으나 다행히 잘 맞 아서 과히 흉헙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정거장까지 가는 동안에 노라도 그랬거니와 옥순이 는 발이 아파서 매우 고생을 하였다.

정거장에서 차가 떠날 때에 노라 어머니는 울었다. 노라도 울었다.

울면서 어머니는 부디 이담 올 때는 어린것들 데리고 오느라.

하고 부탁하였다.

염려 마세요. 내년쯤이면 어머니 모셔가께.

하고 노라는 위로를 하였다.

이리에서 갈아타면 밤차는 바로 경성역에 내려준다.

차는 어둠을 뚫고 연해 달음질을 친다.

옥순이는 한곳 의지삼던 친정을 떠나는 것이 적막하였으나 보고싶던 서울을 가는 것이 기뻤다.

그러나 노라는 한걸은 한걸은 닥쳐오는 서울이 반갑지 아 니한 것이 아니나 장차에 서울바닥에 떨어져가지고 앞으로 시달려 나갈 일이 아득하게 머릿속에서 뒤끓었다.

어두운 속에서 요란하게 퉁탕거리는 바깥과는 딴 세상이 언제나 맛보는 차안의 한가한 공기에 끌리어 피로하였던 몸 이 서로 기대고 잠이 슬며시 들었다.

이튿날 아침.

언제 왔는지 싶게 두 여자는 오백리를 떨어진 경성역 플랫 폼에 내리었다.

혜경이가 달려왔다.

그는 노라를 덥석 그러안고 한동안 말을 못하였다.

잘 있었수?

응. 잘 있었수?

또 한동안 말이 없이 마주 바라보았다.

저이는 누구야?

노라는 비로소 혜경이에게 옥순이를 소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