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을 나와서/6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세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전과 달라 노라는 짐은 배달을 하여 달라고 하고 전차를 탈까 하는데 혜경이가 택시를 불 렀다. 옥순이는 누구나 서울을 처음 오는 사람이 경성역에 내린 때처럼 정신이 휘황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맵시 다 르게 차린 자기를 자꾸만 치어다보는 것 같아서 사방이 둘 러보였다.

자동차 역시 생전 처음 타보는 것이다.

혜경이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 네외는 안국동 네거리에다 조그마한 잡화점 하니를 내었다.

첫시험인만큼 처음에 와락 크게 벌여 놓지는 못하고 우선 조그맣게 차려 놓았으나 앞으로 차차 확장을 할 계획이다.

가가 뒤로 딸린 집이 있어 그곳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군데를 알아보던 끝에 필운동 어느 집 에서 가정교사 하나를 구한다고 하여 노라를 천거하기로 하 고 마침 편지를 하려던 차이었었다.

현의 집에는 그 뒤로 한번도 들르지도 아니하였고 길에서 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현이 오래잖아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택시가 혜경이네 전방 앞에 머물렀다.

구가가 전방에서 뛰어나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노라도 은근하게 인사를 하였다.

전방은 크지는 못하나마 아담하게 차려 놓았다.

가가 뒤에 있는 살림집으로 들어가니 역시 조그맣고 낡은 집이나 깨끗하게 수리를 하여 놓았다.

모든 차림새가 재미있는 살림살이인 것을 말하는 것 같았 다.

안방으로 들어가서 쉬는 동안에 혜경이는 부엌에 내려가 식모를 데리고 아침 준비를 하였다.

아침은 구가도 들어와서 넷이서 한방에서 먹었다. 노라는 구가에게 그동안 취직자리를 마련하느라고 애써준 치하를 하였다. 진심으로 감사 하였던 것이다.

혜경이는 모든 것을 알뜰살뜰하게 준비하여 놓았다. 건넌 방을 깨끗이 치우고 노라와 옥순이를 쉬게 하는 것이다.

노라와 옥순이는 푹신 잠을 자고 오후에 일어났다.

두 사람이 맨 처음 손을 댈 것은 셋방을 한간을 얻을 것이 었었다.

혜경이는 기왕 건넌방이 비어 있으니 딴 데 구할 것이 없 이 그대로 있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노라는 혜경이의 정은 고마우나 그렇게 하기는 싫 었던 것이다.

지금 돈이 옥순이와 두 사람 것을 합하면 일백삼십 원은 된다.

그러니까 만일 필운동의 가정교사 자리가 되기만 한다면 이 돈 가운데서 부엌 한간 방 한간 자리의 전세라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부터라도 복덕방을 뒤지 려고 하였다.

그러나 노라에게는 그보다도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세수를 다시 하고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고 집을 나섰다.

재동 네거리로 해서 ■■유치원 앞에 이르렀다.

마리아가 금년 일 년 유치원에를 더 다닌단 말을 혜경이한 테 들었던 것이다.

노라는 유치원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그대로 문 앞에서 기다렸다.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면 곳 만날 수야 있겠지만 울음이 터 져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러노라면 다른 아이들과 선생들이 수상하게 볼 것이니 차라리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웬만하면 먼빛으로 얼굴이나 보고 돌아갈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물러나와 멀찍이 서서 기다렸다.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몰려나온다.

재재거리며 장난을 하녀 나오는 그 애들이 모두 마리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보이지 아니한다.

인제 나오겠지 하고 서서 기다렸다. 한떼가 나간 뒤에야 그쳐버리고 나오지 아니한다. 유치원 안에는 아직 아이들이 남아 있어 재잘거리는 소리가 요란히 들린다.

또 한패가 몰리어 나왔다. 그러나 종시 마리아는 보이지 아니한다. 노라는 애가 쓰였다.

일찍 돌아갔나? 혹시 병이 들어 요즈음 유치원에 오지를 못하나?

그러한 생각을 하니 맥이 풀리어 우두커니 섰는데 맨 나중 에 뒤쳐져서 혼자 나오는 게 마리아다.

노라는 와락 몸이 솟치어 가려는 것을 겨우 억제하였다.

그렇다. 마리아다. 머리는 동그랗게 자르고 남색 양복치마 위에 하얀 에프런을 입고 가방을 메고 무엇에 정신이 팔렸 는지 땅을 굽어다보며 나오는 것이다.

노라가 서서 바라보는데 노라는 땅을 내려다보고 나오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라느니보다 어머니인 듯한 이가 섰는 것을 보고 어린 깐에도 의심이 나서 걸음을 멈추고 잠깐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그는 어머니!

외치고 두 팔을 벌리고 달음질을 쳐서 달려든다.

노라는 처음 피하려 하였으나 어찌 피할 것이냐. 마주 팔 을 벌리고 달려가서 덥섯 끌어 안았다.

어머니!

마리아!

할말이 더는 없었다.

어머니와 딸은 그렇게 끌어안고 길 한가운데 언제까지나 말없이 앉아 있다.

노라는 울음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억지로 참았다.

실컷 있다가 마리아가 어머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만지며 굽어다본다.

어머니, 어데 갔다 왔수?

노라는 할 말이 없다.

응. 저 먼데 갔다 왔어……

먼데 어데?

저 먼데야. 너는 몰라……

어머니, 인젠 안 가지?

또 대답 할 말이 없다.

송이 안어주었수? 송이가 자꾸만 엄마 부르구 울었다우.

노라는 어쩔 줄을 몰랐다. 마리아는 지금 어머니가 먼데 갔다 와서 집에 다녀온 줄로만 여기는 것이다.

노라는 비로소 길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깨닫고 마리아의 손목을 이끌고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어디루 가우? 응, 집에 가야지……

집에?

응. 집에……

노라는 기가 탁탁 막혔다. 그러나 속여 둘 수는 없는 것이 다.

마리아, 엄마는 집에 아니 간다.

노라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마리아는 눈이 둥그랬 다가 나중에는 응석을 부린다.

흥 흥. 나는 싫여…….왜 왜 집에 아니가? 송이가 엄마 부 르구 우는데....

송이가 날마다 우니?

그럼.

아버지가 안어주시니?

응……그래도 운다나.

마리아는?

울지 않았어……

마리아는 어머니 보구싶잖았어?

왜 왜 자꾸만 보구 싶었는데……

안나는?

젖어머니허구 논다나.

울지 않구?

응.

마리아는 누구허구 잤지?

아부지허구.

송이는?

송이두.

안나는 젖어머니허구 자구?

응.

옷은 누가 입혀주나?

아부지가……

노라는 마리아를 다시 그러안고 볼을 비비었다.

어서 집에 가.

하고 마리아가 조른다.

응, 마리아, 어머니 말 잘 들어, 응. 어머니는 집에 아니 가…… 그러니까 혼자 가거라. 그래야 착하지.

어머니 집에 오시면 아버지가 욕허우?

응…… 아니.

그럼 집에 가.

그래도 어머니는 지금 집에 못가.

노라는 현이 오래잖아서 결혼한다는 말은 아침에 혜경이에 게서 들은 것을 생각하였다. 어떠한 여자지 모르겠으나 이 아이들의 계모다 계모…… 계모……

하고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마리아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고 큰길로 나섰다.

노라는 아무 생각 없이 마치 쇠가 지남철에 끌리는 것처럼 마리아가 끄는데로 발길을 옮기어 놓았다.

무심중에 마리아에게 손을 끌리어 재동 파출소 앞에 이르 렀을 때에 앞에서 마리아.

하고 부르는 소리, 그 소리가 노라의 귀로 들어오며 전신 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현이다. 만일 이곳에서 이렇게 현을 만나지 아니했으면 노 라는 마리아에게 끌리어 집으로 갔을 것이다.

우뚝 섰는 두 사람의 시선은 마주 쳤다.

현의 얼굴은 성이 났는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분간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찢어질 듯이 긴장이 되었다.

노라는 고개를 숙였다. 일순간의 일이다.

마리아는 좋아하면서 아버ㅈ! 어머니 왔수.

하고 잡았던 어머니의 손을 끌고 아버지에게로 가려고 한 다.

혹시 이것이 파탈이 생기던 그 이튿날만 같았어도 노라는 제 이차의 파탈을 각오하고라도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틈은 너무 크게 벌어지고 일은 너무 공교스러웠다.

내가 죽일 년이다.

하고 나무라면서도 마리아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고 안국동 편을 향하여 걸음을 빨리 옮기었다.

혜경의 집에 돌아온 노라는 혜경이와 옥순이를 붙잡고 울 었다.

아까 참았던 울음까지 한데 터져나오는 것이다.

실컷 울고 났을때에 혜경이가 묻는 대로 노라는 오늘 당한 이야기를 하였다. 혜경이와 옥순이는 아무 말이 없이 잠잠 이 듣기만 하였다.

셋방은 내일 둘러보기로 하고 저녁 전에 혜경이와 같이 노 라는 필운동 가정교사 구한다는 집을 찾아갔다.

사직공원을 끼고있는 한 이십간짜리 기와집인데 무패에는 김소사(金召史)라고 써 붙이었다.

아능로 들어가니 안주인인 듯싶은 하얗게 머리가 세고 깨 끗하게 생긴 노인이 흔연하게 두 사람을 맞아준다. 노라에 게는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노인의 말을 들으면 아들과 며느리가 다 일찍 죽고, 영감 도 삼년 전에 마저 죽고 몸이 성하지 못한 스물한 살 된 손 자와 다리가 병신인 열두 살 먹은 손녀를 데리고 하인들과 살아가는데 손녀가 자꾸만 학교에 가겟다구 조르나 병신을 남의 앞에 내어 놓기가 창피하여 가정교사를 구해 두고 가 르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애-이름은 효정이라고 부른다-를 데리고 보통 학교에서 하듯이 매일 여러 가지 과정을 가르쳐 달라는 것 이다.

안노이은 깐으로는 말하는 것이 매우 시속에 밝았다.

학교에서는 교사 하나에 한 사십 원씩 준다구? 나도 그만 큼 들이잖얼 수야 있소. 박한 돈에 괴롭겠지만 그런데로 좀 보아주시우.

하고 노인은 승낙하는 뜻으로 청을 하였다.

노라는 의외로 대우가 좋은 것 같아서 단번에 승낙 하였 다.

그런데 바깥양반이 계시우?

하고 이야기가 결정된 뒤에 노인이 묻는다. 노라가 대답을 못하는 것을 혜경이가 얼핏 혼자 도었답니다.

하고 둘러대었다.

어! 거 안되었군! 젊은이가…… 저렇게 얌전헌데…… 그러 면 숙식은 어떻게 허시려?

아직 이 동무 집에 있는데 시골서 온 동무가 또 하나 있고 해서 방을 한간 얻어야겠읍니다.

하고 노라가 대답하였다.

웬만허거든 우리 집에 와서 아주 숙식을 하고 계시구 려……저 건넌방에 그애 공부하는 방으로 쓸 테니깐 그 방 에서 거처를 허시구……

노라도 그랬으면 좋겠으나 옥순이를 데리고 올 수는 없고, 그렇다고 혼자 두어둘 수도 없는 일이라 당분간 옥순이 문 제가 귀정되기 까지는 셋방을 빌어가지고 있겠다고 하였다.

이기는 어데 갔읍니까?

하고 입때까지 그애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궁금하여 물 어보았다.

응…… 오늘 마침 제 와ㅣ가에 가고 없어서……

노인이 막 대답을 하는데 방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웬 사람 (같은 것)하나가 들어선다. 노라는 하마 소리를 지를 뻔하였 다.

그것은 삶같은 것이라고 하였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도 사람과 같지 아니하였다.

얼굴은 뜨는 메주같이 검누렇고, 쇠터럭인가 싶은 머리털 은 세어보고 싶을 만큼 엉성하게 성글다.

눈은 경풍난 아이같이 핼끔하고, 왼편으로 틀어진채 헤벌 린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흐른다. 전신에 비하여 몸이 놀랍게 큰 중에도 귀- 바른편 귀는 엄청나게 크다. 몸은 왼편 팔 왼편 다리가 다 말을 듣지 아니하여 팔은 제멋대로 흔들리 고 발은 질질 끌린다.

이 모양을 하고 문을 슬며시 밀고 들어서면서 제딴에는 웃 는 모양이나 어쩐지 웃는다는 것을 알아보기가 어렵다.

노라는 놀란 것을 주인에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겨우겨우 안색을 가다듬었다.

너는 사랑에 있지 무엇하러 들어와?

노인이 나무라듯 타이른다. 그러나 그는 문지방을 잡고 서 섯 나가려고는 아니하고 도리어 재주를 피운다.

헤, 색지 색지 고와.

하고 노라와 혜경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다. 역시 왼 편 하악골이 말을 듣지 아니하여 쉴새없이 침이 흐른다.

노라와 혜경이는 끔찍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오면서 사흘 후부터 오겠다고 말은 하여두었다.

두 여자는 그 집을 멀리 떨어져서야 한숨을 약속한 것처럼 후 내쉬었다.

혜경이는 구가의 친구 부인의 소개로 노라를 천거한 것이 지 그 집 내용은 몰랐던 것이다. 그게 무어냐.

글쎄 그게 무어야!

둘이서 이렇게 서로 물었다.

나는 그만둘가버.

노라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그만둘 거야 없잖어……그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니 까.

그래두……

글세 께름하긴 하겠지만 그만큼 조건이 좋으데가 쉽사리 있수?…… 그런대루 그저 한동안 찔끔 참구려. 그러다가 딴 데 존 자리가 있으면 구해가기로 허구……

혜경이는 사리를 타고 권고를 하였다.

집에 돌아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옥순이는 이마를 찌 푸리며 작파하라고, 구가는 그대로 한동안 있는 것이 좋겠 다 한다.

노라는 역시 조건이 좋은데 끌리어 그렇게 하려고 마음에 작정을 하였다.

이튿날은 옥순이를 지리도 구경시킬 겸 세 사람이 셋방을 구하러 일찍이 나섰다.

계동과 원동 재동은 노라가 발길도 아니 들여놓고 안국동 송현동으로부터 복덕방을 기웃거리며 뒤져 올라가다가 소격 동 깊숙한 복판에서 썩 맘에 드는 놈을 찾아내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대문이 있고, 왼편으로 안채와 등을 지 고 앉은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바로 널찍한 툇마루가 딸린 간반방이 있고, 그 담으로 반간 부엌이 붙어있다.

앞이 막히어 여름에는 좀 덥겠고, 또 초가집이라 우중중하 기는 하나 변소까지 따로 있어 이만한 것을 다시 구하기는 썩 어려울 만하다.

사글세고 팔 원, 전세로 일백이십 원을 내라고 한다.

세 사람은 곳 내려가서 구가를 돈을 얼마간 내어 올려보냈 다.

그가 올라가더니 전세로 백 원을 작정하고우선 계약금 십 원을 준 계약서와 영수증을 받아가지고 왔다. 이튿날 구가 가 올라가서 손 대데 손도 대고 도배까지 말쑥하게 하여 놓 았다. 그 뒤로 수속도 물론 그가 다 맡아서 하여 주었다.

노라는 그처럼 입안의 혀같이 아뜰이 일을 보아주는 구가 가 고마웠다.

조그마한 솥 남비 같은 살림살이를 장만하고, 쌀도 몇말 사오고, 그리하여 사흘 되던날 집을 들었다. 혜경이는 장과 반찬거리를 식모 시켜서 날라다 주었다.

이렇게 하여 자리를 잡고 들어 얹으니 노라는 겨우 숨이 도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수중에 남은 돈이라고는 몇 원이 못 되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나흘째 되는 날은 아침 일찍이 필운동을 갔다.

가갸.

가갸.

거겨.

거겨.

노라가 효정이를 가르치러 다니기 시작한 지 나흘째 되었 다.

나흘 동안에 언문 가자 한줄을 가지고 사제간에 진땀을 뽑 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나이에 비하여 발육이 더디었다. 다리는 물론 보기 전에 그 할머니가 말한 대로 병신이었다. 병신이라는 것 보 다는 왼편다리는 전체가 모체에서 나오던 때 그대로 통히 발육이 되지 아니하였다.

몸통이나 얼굴은 한 일곱 살쯤 먹은 아이라고 하면 꼭 알 맞을 마나하였다.

아홉 살 난 마리아를 생각하고 효정이를 보면 아주 어른과 아기를 비교하는 것 같았다.

신체는 그렇거니와 지능은 그보다도 더 저능하였다. 겨우 네 살 난 송이만도 못하다고 노라는 생각하였다.

그리하리라는 선입관이 들어서 그런지 이상스럽게 큰 눈이 라든지, 맺힌 데가 없어 보이는 표정이 생긴 것부터 저능아 의 타입으로 되기는 하였다.

그러면서도 무엇이나 제 호기심을 끄는 것에 대한 천착성 은 무섭게 억세었다.

이게 무어유?

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튿날 그는 노라의 핸드백을 가리키 며 물었다.

첫날도 그의 온 정신은 거기에 팔려 있었다.

핸드백이라는 거야…… 너도 인제 자라면 사가지지.

노라는 속을 열어 보이며 설명을 하여주었다.

어데서 났수?

샀지.

어데서 샀수?

상점에서.

상점이 어데유?

종로.

종로가 어데유?

저기…… 예서 멀어…… 너 종로 아니 가봤니?

효정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나 눈은 멍하니 앉았더니 공부하 던 것을 집어치우고 저의 할머니를 졸라 기어이 그 당장에 하인을 시켜 핸드백-그것도 노라가 가진 것과 꼭 같은 놈- 을 사가지어서아만 직성이 겨우 풀리었다.

이렇게 아이가 저능하고 성질이 유난스럽지만 노라는 벌이 도 벌이려니와 자기의 아들 딸에게 못 붙이는 정이나마 붙 이고 지내려고 처음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핸드백을 사서 가진 이틀 동안은 익히든 못 익히든 간에 시키는 데로는 곧잘 공부를 하더니 오늘은 무슨 변덕이 났 는지 비실비실한다.

가갸.하고 읽어주면 마지 못하여 따라 읽기는 하나 입에다 손가락을 물고 한눈을 판다.

가갸.

가갸.

거겨.

거겨.

고교.

고교.

인제는 너 혼자 읽어봐.

……

잊어바렸어?

……

자, 읽어봐.

그래도 대답을 아니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그러면 아이우에오 배울까?응?

……

그러면 글 배우기 싫으냐?

그래도 대답을 아니한다. 노라는 갑갑증이 나서 저 하는데 로 내버려두고 아무 말도 아니하였다.

효정이는 한참이나 그렇게 앉았더니 발딱 사이에 있는 책 상을 짚고 일어서서 마루로 난 샛문을 획 열고 콩콩콩 외다 리로 뛰어 안방으로 가버린다.

노라는 어이가 없어서 그대로 우두커니 앉았노라니까 안방 에서 무어라고 말소리가 나더니 왕 하고 울음이 터져나온 다.

아가, 왜 우니?

할머니가 곰살갑게 달래는 소리가 들린다.

왜 울어? 응? 말을 해라.

노라는 혹 자기가 잘못하여 아이의 노여움을 산가 싶어 불 안하였다.

왜 우냐? 공부하기 싫으냐? 글 배우기 싫여?

할머니가 연해 달래나 종시 듣지 아니하고 울기만 한다.

노라는 안방으로 건너가서 달래어보려고 일어서는데 노인 이 손녀를 업고 건너온다.

울음은 겨우 그쳤으나 말은 하지 아니한다.

노라가 노인의 안색을 살펴보니 약간 불쾌한 빛이 보이는 것이 역시 추측한 대로 자기가 잘못하여 어린아이의 노여움 을 산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노라는 그것이 아니꼬왔으 나 꿀꺽 참았다.

응, 효정이 왜 울었니? 말을 해봐.

그래라. 선생님한테 말해라. 인젠 공부하기 시작했으니깐 그렇게 엉석을 부리면 못써…… 그러다가 선생님이 가구 아 니 오시면 너 공부도 못하지.

선생님이 가구 아니 온다는 할머니의 말에는 좀 겁이 났던 지 식식하던 고집이 풀어지는 듯 하였다. 노라는 좋은 위협 거리가 생긴 것이 속으로 기뻤다.

그래, 네가 정 그러면 난 가고 아니 온다…… 자, 이리 와 요……왜 그러니? 공부하기 싫어서?

노라는 주인의 자기에게 대한 혐의를 벗을 생각으로 기어 이 효정이가 그렇게 고집을 쓰 고 우는 이유를 캐러들었다.

그애가 무엇 가지고 싶은게 있음 그러는데…… 너 무엇 사 가지고 싶으냐?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응.

무엇?

얼핏 노라가 물어보았다.

창가 배우는 것……

창가 배우는 것이 무얼까?

이렇게 이렇게 하면 소리가 나는 것 말이야.

효정이는 손과 외다리로 시늉을 내는데 풍금이란 말이다.

그는 요전 외가에 갔을 때에 풍금을 새로 사다놓고 제 외 사촌들이 창가를 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때 할머니를 바로 졸랐으련만 선생이 온다 글을 배운다 하여 그것을 잊었다가 오늘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노라의 설명을 듣고 노인은 두말 아니하고 돈 오십 원을 안방에 가서 꺼내다 주며 풍금을 사다 달라고 한다.

노라는 돈을 그대로 두어두고 본정 악기점에 가서 조그만 것으로 하나 골라 배달을 시켰다.

풍금을 가져다 놓고 소리를 내니까 효정이는 처음 보게 좋 아하였으나 노라에게는 괴로운 일이 한가지 생기었다.

노라는 우선 유행하는 동요를 한 곡조 거푸 들리어 주었 다.

효정이는 풍금 옆에 바싹 다붙어서서 노라의 키 위에서 오 고가는 손을 하나도 놓치지 아니하려고 주의를 하고 있다.

침모 식모 안잠자기 행락어멈 모두 앞문 앞으로 마루로 모 여서서 신기한 기계속에서 울어 나오는 묘한 소리에 감탄을 하고 있다.그들은 모조리 늙은이 들이다.

하얗게 머리가 센 주인마나님을 비롯하여 누구나 다 오십 이 넘은 늙은이들이다. 여자 쳐 놓고는 젊은이라고는 구경 도 할 수 없다. 노라는 처음엔 그다지 이상히 여기지 아니 하였으나 나중에야 비로소 그것을 알고 과연 그러이 여겼 다.

이렇게 모두 늙은이 들인 데다가 풍금이라고는 처음 구경 인 듯하다.

조화속이야.

사람이 들어앉었겠지 멀.

귀신을 잡아넜어.

아이구 끔찍해라.

귀신이면 여편네 귀신이겠지……

멀, 사내 소리도 나는 구먼.

사내 귀신 여편네 귀신 둘을 잡어넌 게지.

아무려나 귀신을 부리니 재주다.

젊은 아낙네가……

이런 소리를 귓결에 들으면서 노라는 이어 두어 곡 짚노라 니까 구경꾼들이 모두 헤어졌는지 등 뒤가 갑자기 조용하여 졌다. 그리고 무심코 걸상에서 일어서서 효정이를 그 자리 에 앉혀 주려고 몸을 돌리다가 으악!

하고 소리를 쳤다.

처음 왔을 때 보던 반신불수가 헤 하고 서있는 것이다.

그는 요란하게 몸짓을 하며 노라에게로 가까이 덤벼들었 다.

제깐에는 듣지 못한 이상한 소리를 좇아 들어온 것인데 전 날에 보던 그 고운 색시가 조화를 부리고 있는 것이 더욱 재미가 있어서 기어 들어온 것이다. 그경꾼들은 그 서슬에 모두 달아나 버렸다……

그는 손으로 풍금을 가리키며 헤헤 하고 웃는다.

그런 소리를 더 내어보라는 청인 듯싶다. 그러나 노라는 몸이 떨리고 정신이 없다.

그러자 이 침입자에게는 노상 적의를 가졌던지 효정이가 그를 떼밀 듯이 벼르면서 외친 다.

할머니!

왜 그러느냐.

누워서 하는 대답소리다.

오빠 좀 보우.

원 저놈이 또 들어왔구나.

노인이 쿵쿵 건너왔다. 노라는 그대도록 무서워 하는 것이 미안하여 안색을 바로잡으려고 애를 썼다.

이놈, 무얼 하러 들어왔느냐! 나가거라 나가.

그러나 노인의 소리는 결코 노하지는 아니하였다.

힝, 저거 저거……

병신은 풍금을 연해 가리킨다.

선생님 거 소리 좀 한마디 내어 들려주시요…… 병신이라 도 이상스런건 좋아서.

노인은 노라에게 긴하게 청을 한다.

노라는 뜨윽하였으나 마지 못하여 아무렇게나 키를 눌러 소리를 내었다.

마침 사랑에서 그의 시중을 들어주는 듯한 젊은 하인이 들 어와서 침입자를 둘러 업었다.

아니 업혀가려고 힝힝 울며 머리끄덩이를 쥐어 흔든다.

노인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안방으로 건너가 버린다.

노라는 앞으로 그 병신이 아무리 하여도 말썽을 부릴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자리를 잡았다.

이날은 아무것도 내키지 아니하여 웬만큼 학과를 마치고 오정때에 그 집을 나왔다.

시각이 바쁘게 봄은 명랑하여간다.

말쑥하게 봄옷으로 차린 어린 처녀들이 볼에 홍조를 띠고 재재거리며 웃고 지나간다.

활활 열어젖힌 전차창으로도 봄이 굽어다 보이는 듯하다.

수양버들이 한창 제철이다.

위 아래를 하얗게 차린 염집 젊은 아낙네가 흰 파라솔을 가볍게 들고 나가는 것이 신선 같아 보인다.

모든 것이 명랑하고 양기롭건만 노라의 기분만은 아예 침 울하여 이맛살이 펴지지를 아니하였다.

그것은 아까 그 병신 때문에 놀라고 그 노인의 태도가 불 쾌하였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해석하나 어쩐지 그러한 해석 만으로는 마음이 흡족치가 아니하였다.

아까 그 일을 당하는 때와는 딴이로 마음은 마치 손아귀에 꽉 쥐인 세사(細沙)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듯이 진 정할 수가 없이 여러 갈래고 헤어졌다.

그놈을-그렇게 헤어지는 마음을- 두꺼운 헝겊에다 꼭꼭 싸 서 어느 구석에나 넣어두었으면 싶었다.

노라는 동십자각 앞에서 집으로 올라갈까 하고 주저하다가 음침한 방안이 맘에 내키지 아니하여 그대로 혜경이를 찾아 갔다.

이사하던 날 갈리고는 처음이다.

지금 필운동서 오우?

혜경이는 노라와 같이 볕 들여쬐는 마룻전에 걸치어얹으면 서 묻는다.

응.

어찌 이렇게 시름이 없어? 응? 아이들이 또 보구 싶어서?

노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참…… 내가 그렇잖애두 오늘 저녁쯤 좀 갈려구 했 는데.

왜?

노라의 가슴은 성큼하였다. 아이들 이야기가 난 끝에 혜경 이의 말하는 양이 아무리 하여도 심상치 아니한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