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음의 나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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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이것은 이 세상에서, 그대에게 보내는 나의 마지막 편지요, 또 쓰는 마지막 글이다. 나는 육십년 전을 손에 들고 안동현 어떤 객주집 문을 나섰다. 추운 대설 바람이 재와 같은 안동현 먼지를 날려다가 초췌한 내 얼굴에 뿌린다. 청인의 삐걱삐걱하는 외바퀴 수레 소리가 심히 슬펐다.

안 그럴 수가 있으랴. 비록 제가 원하여 떠나는 무전 여행의 길이라 하더라도 몸에 겨우 육십 전이라는 적은 돈을 가지고 이 추운 겨울에 만리 타국의 방향 없는 길을 떠나는, 인제 겨우 스무 살 되는 청년의 마음이 왜 슬프지를 아니하랴.

「무전여행!」 게다가 세계를 일주하자는 무전 여행! 이것은 족히 기운 있고 공상에 사는 청년의 마음을, 호기심을 끌 만한 제목이다. 그러나 아무 데까지나 소풍 겸 가는 대로 가다가 가기 싫으면 집에다가 돈 보내라는 전보라도 놓을 그러한 사람의 길과는 달라, 나의 이 길은 지옥으로 여행하는 대신에 하는 여행이다. 인제 나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다. 어린 가슴에 오래 두고 그리고 그리던 꿈도 그 사건으로 하여 아주 깨어지어 버리고 말고, 나에게는 남은 것이 오직 신경 쇠약에 걸린 텡텡 빈 몸뚱이 하나이 있을 뿐이다. 만일 내게 재산이 있었더면, 오막살이 초가집 하나라도 있었더면 나는 그것을 팔아서 아마 술이라도 사 먹고 방탕이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것도 없었다. 나는 우연히 생기는 돈 이원 오십전을 들고, 에라 지옥으로 가는 대신에 조선을 떠나서 멀리멀리 모르는 나라로 달아나자, 하고 위선 안동현 가는 차를 잡아 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조선을 떠날 때에 아까운 것이나, 섭섭한 것은 하나도 없 다. 오직 시원한 것이 있을 뿐이다. 나를 그리워하거나 아까와해 줄 사람도 없고, 또 내가 그리워할 사람도 없다.

『아아 조선아! 조선에 있는 모든 사람아 모든 물건아! 하나도 남지 않고 죄다 내 기억에서 스러지어 버려라!』

하고 나는 누렇게 핏기 없는 낯을 찌그리고 압록강을 건너다 보면서 부르짖었다. 그래도 하나 못 잊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만 이 개년 동안이나 가르치던 학생들이다. 진실로 나는 그들을 애인 겸, 동무 겸, 동생 겸, 아들 겸 사랑하였었다. 그들도 아니었던들 나는 벌써 어디로 가서 없어지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있는 내라. 내가 그 이원 오십전을 들고 학교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산보 가는 체하고 달아 나와서는 고개턱에 우두커니 서서 학교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고는 아니 울지 못했다. 그래도 이 이 개년의 교사 생활이 내가 세상에 나와서 하여 본 유일한 생활이었다. 인제 이 생활을 마지막으로 하고 모르는 나라로 달아나려 할 때에, 나는 스스로 나를 조상 하는 듯하여 설었다. 그리고 나의 가슴 속에 사랑이란 이름을 가지고 처음 이요, 마지막으로 들어 왔던 몇몇 학생들을 내어 버리고 달아나는 것도 슬펐다. 마치 소년에 과부가 되기 때문에 건장한 두 젖을 가지고도 어여쁜 아기에게 한번 빨려 보지도 못하고 마는 여자와 같이, 나의 가슴에도 영원히 사랑하는 이의 모양을 품어 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할 때에 아무리 세상을 내어 버리는 나라도 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모른다!』

하고, 나는 정거장을 향하고 달아났다. 그리고 그날 밤에 안동현에 다다라서, 어떤 주막에서 자고 밥 두상 값을 치르고 나매, 남는 것이 육십 오전이었다. 이 육십 오전을 가지고 봉천 방향으로 갈 수 있는데까지의 차표를 살 것이다. 그리고 그 정거장에서 내려서는 발이 가는 대로 갈 것이다. 가다가 날이 저물거든 자고, 밤이 새거든 또 갈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어디로 갈꼬. 위선 북지나를 지나서 하남으로 내려 가자.

첫째,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남으로 남으로 가자. 그리고는 안남으로, 섬라 (暹羅)로, 면전(緬甸)으로, 인도를 거치어서 파사(波斯), 아라비아를 지나 아프리카로 들어가자. 그러노라면 아마 십년 또는 이십년은 지날 것이다.

그 전에 어디서 죽어 버리면 여행은 끝나는 것이요, 아프리카에 들어 가서야만들 구경까지 한 뒤에도 아직도 생명이 남거든, 그 후일은 그 후에 또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어제 밤새도록 주막집 그 추운 방에서 한잠도 못 자고 궁리해 낸 것이다.

『어디 정거장으로 나가 보자. 나가서 육십 전이면 어디까지 표가 사지나 보자!』

하고 길에 나섰다. 한 걸음 두 걸음 내 걸음은 정거장을 향하고 옮기어지었다.

이로부터는 모두 새 땅이요, 새 사람이다. 말조차 새로 듣는 외국 말이다.

나는 오늘부터 벙어리가 된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그 나라 말을 배우랴, 또 배우고자 한들 배울 새나 있으랴. 한 땅에 이틀도 머물지 말자. 그러다가 그 땅에 정이 들라. 그러다가 또 아는 사람이 생기고 또 얕은 정이라도 정드는 사람이 생길라. 사람에게 정이 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나는 날마다 새 땅을 . 찾고 날마다 새 사람을 만나서 영원히 아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

혹은 지극히 귀중한 기억을 품어 그 기억을 잃지 아니할 양으로 나와 같은 방침을 취하기도 할 것이다. 지극히 사랑하던 이가 죽어 버린 때에 그의 정답고 귀한 기억이 흩어질까 봐 아무 새로운 기억도 집어 넣지 아니할 양으로, 혹은 산에 숨거나 혹은 섬에 숨거나, 혹은 죽어서 무덤 속에 숨는다 하면,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요, 할만한 일일까. 만일 산에 숨으면 그 산에 정이 들 것이 무섭고, 섬에 숨으면 그 섬에 정이 들 것이 무섭다 하여, 나 모양 날마다 쓸쓸한 새 땅을 찾고 날마다 낯설은 새 사람을 찾는다 하면, 그것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러나 나의 길은 그런 일도 아니다!

또 만일 우리가 생명을 붙이고 살이 지구를 조금도 아니 남겨 놓고 샅샅히 찾아 보자. 거기는 어떻게 생긴 산이 있으며, 또는 어떻게 생긴 시내나 강이 있으며, 그 속에는 어떠한 풀과 나무와, 그 위에 어떠한 꽃과 잎이 피 고 어떠한 열매가 맺히며, 그 사이로는 어떠한 새와 짐승이 소리를 하고 뛰어다니나, 날아다니나, 또는 어떻게 기괴하게 생긴 바위가 있고 그 밑에는 어떻게 아름다운 버섯이 돋았나, 또는 어떠한 민족들이 살다가 남겨둔 유적이 있는지, 그것을 보러 나와 같은 일을 떠난다 하더라도 얼마나 재미있는 일일까. 그러나 내 길은 그러한 길도 아니다.

또 만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전세계 사람 사는 곳이란 하나도 빼놓지 말고 아무리 깊은 산골짜기나 아무리 멀리 떨어진 섬 속까지라도, 대궐 속이나, 거지의 굴까지라도, 죽은 지 얼마 아니 되어 아직도 생기가 남아 있을 만한 무덤 속까지라도, 얼마 아니하여서 해산할 사람이 있다 하면, 거기서 밤을 세워서 새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려서까지라도, 내 목숨이 자라는 날까지 사람이란 사람을 모조리 구경해 보자. 어여쁘게 생긴 사람, 밉게 생긴 사람, 하얀 사람, 까만 사람, 불그스름한 사람,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눈에도 가지각색 눈, 코에도 가지각색 코, 손에도 가지각색 손, 웃음에도 가지각색 웃음, 목소리에도 가지각색 목소리, 몸 맵시, 걸음걸이에도 가지각색 것, 마음 쓰는 데도 순한 사람, 독한 사람, 시원시원한 사람, 까부는 사람, 재빠른 사람, 정다운 사람, 얌전한 사람, 밉굴스런 사람, 간사한 사람, 헤식은 사람, 가지각색 마음 쓰는 사람, 그중에 믿을 만한 사람, 못 믿을 만한 사람, 그중에도 사랑을 변하고 팩 돌아서 달아나는 사람은 얼마나 되며, 사랑을 위하여 끝끝내 견디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이런 것을 보기 위하여 떠나는 길이라 하면 그 얼마나 기쁠까, 재미있을까.

그러나 내 길은 그런 길도 아니다!

그러면 내 길은 무슨 길인고.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 길을 떠나는고, 무엇을 찾으려고 이 길을 떠나는고? 지금 내 손에 든 육십 오전에는 땀이 묻어서 끈적끈적하다.

그대여! 구태여 날더러 그 말을 하라고 조르지 말라! 애써 그 슬픔을 잊고자 떠나는 날더러 왜 그 지긋지긋한 말을 하여서 세월의 덕택에, 못 보던 다른 나라 풍물의 덕택에, 어젯밤 잠도 잘 못 잔 덕택에, 청인의 캐수이 끓이는 소리와 외바퀴 수레 삐걱거리는 소리 덕택에, 송장 태운 재와 같이 시커먼 만주 먼지를 함부로 몰아 오는 동지 가까운 찬바람 덕택에 조금이라도 희미하게 잊어 버려진 설운 말을 또 하라고 하느냐.

다만 이렇게만 알라! 나는 잊어 버릴 양으로, 오직 모든 것을 잊어 버릴 양으로, 그리하고 다시는 다시는 아주 기억도 아니 가질 양으로 특별히 산과 나물과나 짐승과나 벌레와 이 세상에 무슨 물건과나 정이 들지 아니할 양으로 잊음의 나라, 허무의 나라를 찾아 가는 것이라고 오직 이렇게만 알라.

더구나 그와 같이 자라나고 그와 같이 보던 조선의 산천을 어찌 차마 보랴. 조선의 하늘인들 어찌 차마 보며, 조선서 불어 오는 바람인들 어찌 차마 맞으랴. 그러할 때마다 나의 가슴은 아플 것을, 나의 창자는 끊어질 것을, 나의 영혼에는 분노와 원한의 불이 탈 것을!

나는 압록강을 건너 서서 조선과 외면한 고개를 영원히 돌리지 아니할 것이다. 불신한 사람을 낳고 기른 조선을 향하여 나는 결코 고개를 돌리지 아 니할 것이다. 만일 우연히 내 고개가 조선 있는 방향으로 돌아 갔다 하면 그 모가지를 찍어 버리기 위하여 날카로운 칼 하나를 항상 몸에 지닐 것이다. 만일 무지한 꿈이 나를 이끌어 비록 일순간이라도 조선의 땅을 다시 밟 게 한다 하면, 아아, 어찌할까. 나는 어찌할까. 그 「무신한 사람」의 동포인 조선 사람을 다시 보게 한다 하면, 아아, 어찌할까, 내가 어찌할까. 그 대여, 부디 나를 위하여 영원히 꿈도 없으리라고 빌어 달라.

차가 떠났다. 육십 전짜리 표를 가진 나의 차는 떠났다. 사하진 과오룡매를 지나 한 시간 남아 가면 이 차는 나를 어떤 곳에 내어 던지어 줄 것이다. 그것이 산인지, 들인지 나도 모른다. 거기서부터 나는 갈 것이다. 조선을 뒤로 두고 가고가고 갈 것이다. 가고가고 갈 것이다.

그대여, 잘 있으라! 행복될 수 있거든 행복되게 잘 살지어다! 그리하고 부디 나를 잊어 버려 줄지어다. 행여나 사람 모인 곳에서 내 말을 하여 무신 한 자의 동포인 조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내 기억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

재고 아아 만일 그대가. , 내 뒤를 따라 이십여 리나와 주지를 아니하였던들, 만일 그대가 그 강가에 나를 붙들고 울어 주지를 아니하였던들, 만일 그대가,

『이 사람 나는 자네의 친굴세. 영원히 자네를 사랑하고 자네를 믿는 친굴세.』

하고 나를 껴안아 주지를 아니하였던들, 만일 그대가 객지에 오직 하나인 그대의 담요를 들고 와서,

『자, 이거라도 덮고 자게.』

하며 주지 아니하였던들, 아아, 그대만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였던들 나는 이 글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을 ― 이렇게 뒤에서 무엇이 끄는 듯한 설움도 없었을 것을!

그러나 그대여, 만일 그대가 나를 사랑하거든 내가 사랑하던 저 어린것들을 잘 가르치어 주라. 그것들이나 불신한 것들이 되지 말게 하여 달라. 행여 그것들이나 자라서 새 종자를 펴 주기나 할까?

그대의 담요는 나의 유일한 재산으로 내가 가는 곳까지 어디까지나 걸머지 고 가련다. 잘 있으라, 나의 마지막 인사를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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