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표문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자치통감을 올리는 표문[편집]

신 사마광이 아뢰옵니다.

먼저 칙령을 받들어서 역대 군왕과 신하들의 사적을 편집하였으며, 또한 성지(聖旨)로 이 책에 자치통감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여주신 것을 받들었는데 이제 이미 전부 완성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은 성품이나 아는 것이 어리석고 아둔하고 학술도 거칠고 성기어서 무릇 백 가지 일을 하는데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아래에 있지만 지나간 역사에 대하여서만은 거칠지만 일찍이 마음을 다하여 왔으며,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좋아하며 싫어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매번 걱정하였던 것이 있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가 나온 이후로 역사책들이 번거로울 정도로 많아서 포의(布衣)를 입은 인사조차 이 많은 역사책들을 두루 읽지 못하고 있는데, 하물며 인주(人主)께서는 하루에 만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어느 겨를에 두루 읽겠습니까?

신은 항상 자신의 능력은 헤아리지 못하고, 쓸데없이 긴 것을 잘라내어 기밀의 요점을 들어내고, 오로지 국가의 흥망성쇠에 관한 것과 살아가는 백성들의 애환에 관간 것, 훌륭한 일이어서 본받을 만한 것과 악한 일이어서 경계해야 할 만한 것만을 골라내어서 편년체로 된 책 하나를 만들고자 하였는데, 앞뒤가 논리에 잘 맞고, 중요한 것에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들지 않게 하고자 하였지만 개인의 능력으로는 힘이 약하여 이를 완성할 수가 없었습니다.

엎드려 영종 황제를 만나 뵈었더니 자질과 예지를 갖춘 성품이셨고, 빛나고 밝은 정치를 베풀고자 하시어 옛날에 있었던 사건을 두루 읽으시고자 생각하시면서 커다란 계획을 널리 펴시려고 신에게 조서를 내리시어 이러한 책을 편집하게 하셨습니다.

신은 일찍이 예전부터 바라던 바를 하루아침에 펼칠 수 있게 되니 뛸듯이 뜻을 받들어 이으려고 했지만, 오직 부응하지 못할까만을 두려워했습니다.

선제께서는 이어서 스스로 종사할 관속을 선발하여 벽소하도록 명령하시고, 숭문원(崇文院)에 편집국을 설치하도록 명령하시고, 용도각, 천장각(天章閣), 삼관(三館), 비각(秘閣)에 있는 서적을 빌릴 수 있게 허락하셨고, 어부(御府)에 있는 붓과 먹, 그리고 비단, 어전(御前)에 있는 전폐를 하사하시어 과일과 먹을 것을 공급하셨으며, 내신(內臣)으로 뜻을 이어받아 연락하도록 하시니, 특별히 받은 영광은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책을 아직 올리기 전에 선제께서 여러 신하들을 버리고 떠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대통을 이어받아 선제의 뜻을 삼가 이으시고, 책의 첫머리에 서문을 지어주시는 은총을 베푸셨으며, 좋은 이름도 내려주셨고, 경연을 열 때마다 항상 나아가 이 책을 읽어 올리도록 하셨습니다. 신이 비록 완고하고 어리석지만, 두 조정에서 알고 대우해주시는 것이 이처럼 후하시니, 몸이 없어지고 머리가 없어진다고 한들 충분히 보답하여 메울 길이 부족하니, 진실로 지혜와 능력이 미치는 것을 어찌 감히 남겨두었겠습니까?

마침 저를 지영흥군(知永興軍)으로 차출하셨지만 쇠약하고 병이 있어서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없을까 하여 용관(冗官)의 자리로 나아가길 빌었습니다. 폐하께서는 굽어 제가 바라는 바대로 좇아주셨으며, 또한 완곡하게 용모를 보양하도록 하사품을 주셨고, 판서경유사어사대(判西京留司御史臺)와 제거서경숭산숭복궁(提擧西京崇山崇福宮)으로 차출하셨으며, 앞뒤로 여섯 차례나 맡게 하시며 여전히 《자치통감》의 편집국을 저와 함께 이동하게 하셨고, 녹질(祿秩)을 내려주시며 직책과 업무에 관하여 책임을 지우지 아니하셨습니다.

신은 이미 다른 중대한 일이 없었으므로 정확하게 연구하고 지극하게 고려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고, 낮만으로는 힘이 모자라서 이를 밤까지 계속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온 역사책을 두루 살피었고, 소설(小說)도 방증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읽어야 할 간독(簡牘)도 가득 쌓여 있는 것이 마치 아득한 바다처럼 많았습니다. 그 속에서 그윽하고 숨겨진 내용을 골라내었고 터럭끝같이 작은 부분이라도 비교하고 교정하였습니다.

위로는 전국시대부터 아래로는 5대에 이르러서 끝내었는데, 총 1362년간이었으며, 완성된 것은 294권입니다. 또한 사건의 목록을 대략 드러내려고 연월(年月)을 날줄로 하고 각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씨줄로 삼아서 찾아보는 사람에게 편리함을 주려는 <목록> 30권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여러 책을 참고하여 사건의 내용이 같고 다름을 평가하고, 올바른 한 길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고이(考異)》 30권을 만들어서 도합 354권이 되었습니다.

치평 연간에 편집국을 열었던 때로부터 오늘 책이 완성된 날까지 세월이 오래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뒤틀린 것이 있으며 감히 스스로 편안히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였으며, 죄를 진 것이 무거워서 진실로 도망갈 곳도 없었습니다. 신 사마광은 황송하고 진실로 두려워서 머리를 조아리고 또 머리를 조아립니다.

거듭 생각하건대 신이 대권과 궁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15년간이었음을 생각하여주시니 비록 저의 몸은 밖에 있었으나, 조그만 마음이나마 아침이나 저녁으로, 깨어있을 때나 잠잘 때나 어찌 폐하 곁에 있지 아니하였겠습니까? 돌아보건대 어리석고 용렬하여 어떤 곳에서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기에 오로지 책 만드는 일에만 종사하여 큰 은혜에 보답코자 하여 한 방울의 물과 티끌같이 작은 힘까지 다하여 깊은 바다나 높은 산에 조금이라도 보태고자 하였습니다.

신은 이제 해골같이 초췌하게 되었고 눈은 가까운 것이나 겨우 희미하게 볼 정도가 되었으며, 치아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정신과 지식도 쇠잔하고 소모되어 눈앞에 했던 일도 발길을 돌리면 바로 잊어버리게 되었으니 신의 정력은 이 책에 다 써버리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이 책이 망령되게 저작되어 주살될 죄를 지었다 하여도 너그러이 생각하여주시고, 이 책에 충성을 다하려는 뜻이 배어 있음을 살펴주십시오. 맑고 한가한 즐거운 시간에 때로 살펴주시어 앞 시대의 흥하고 망하고 번성하고 쇠퇴하였던 것을 거울삼아서, 오늘날에 득이 될지 손해가 될지를 고려하십시오. 훌륭한 것에는 상을 주시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시며, 옳은 것을 취하시고 틀린 것을 버리시어 옛 군왕이 이룩하신 왕성한 은덕을 좇으시어 전에 없는 지극한 치세(治世)로 매진하십시오. 사해(四海)에 사는 뭇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 그 복을 입게 하신다면, 신은 비록 뼈를 구천에 버린다 하더라도 뜻하고 원하는 것은 영원히 완성될 것입니다.

삼가 표문을 받들어 올리니 살펴주십시오. 신 사마광이 진실로 황송하고 진실로 송구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면서 삼가 말씀드렸습니다.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이고, 한림시독학사태중대부(翰林侍讀學士太中大夫)이며, 제거서경숭산숭복궁(提擧西京崇山崇福宮)의 상주국(上柱國)이고, 하내군개국공(河內郡開國公)으로 식읍(食邑)이 2600 호(戶)로, 실제로는 1000 호를 쓸 수 있도록 봉해진 신 사마광이 표(表)를 올리나이다.

원풍(元豊) 7년 11월 올림


검열문자(檢閱文字) 승사랑(承事郞) 신 사마강(司馬康)

동수(同修) 봉의랑(奉議郞) 신 범조우(范祖禹)

동수(同修) 비서승(秘書丞) 신 유서(劉恕)

동수(同修) 상서 둔전원외랑(尙書屯田員外郞) 충집현 교리(充集賢校理) 신 유반(劉伴)

편집(編集) 단명전 학사(端明殿學士) 겸 한림 시독학사(翰林侍讀學士) 태중대부(太中大夫) 신 사마광(司馬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