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낙랑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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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었던 봄빛도 차차 사라지고 꽃 아래서 돋아나는 푸르른 새움이 온 벌을 장식하는 첫 여름이었다.

옥저(沃沮)땅 넓은 벌에도 첫 여름의 빛은 완연히 이르렀다. 날아드는 나비, 노래하는 벌레……

── 만물은 장차 오려는 성하(盛夏)를 맞기에 분주하였다.

이 벌판 곱게 돋은 잔디 밭에 한 소년이 딩굴고 있다. 그 옷 차림으로 보든지 또는 얼굴 모양으로 보든지 고귀한 집 도령이 분명한데 한 사람의 하인도 데리지 않고 홀로히 이 벌판에서 딩굴고 있다.

일없는 한가한 시간을 벌판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보내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때때로 벌떡 일어나서는 동편쪽 행길을 멀리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그러다가는 다시 누워 딩굴고 하는 품이 동쪽 행길에 장차 나타날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이러기를 한나절, 첫 여름의 긴 해도 좀 서쪽으로 기운 듯한 때에 이 소년은 또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소년은 비로소 빙긋 웃었다. 그리고 빨리 일어나서 좀 이편 쪽에 있는 수풀에 몸을 숨겼다. 거기는 이 소년의 승마(乘馬)인 듯한 수안장의 백마가 한 마리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소년이 들 풀에 몸을 숨기자 저편 행길에서는 완연히 인마의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차차 커지면서 행길에는 한 행차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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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樂浪) 추장 최리(崔理)란 노부였다. 문무대신의 시위를 받으며 최리의 수레가 지금 대궐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소년은 잠시 그 수레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동안 소년의 얼굴에는 차차 긴장미가 돌았다. 소년은 문득 허리를 굽혀서 한개 돌맹이를 집었다. 다음 순간 그 돌맹이는 소리를 내며 날았다 소년의 겨냥은 틀리지 않았다. 소년의 손을 떠난 돌은 낙랑 추장 최리의 수레를 끌던 말의 뒷다리에 가 맞았다.

다리에 날쌘 돌을 맞은 말은 한번 껑충 뛰었다가 전 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추장의 권력으로 구하여 들였던 명마가 힘을 다하여 달아나는지라 그 속력은 놀라웠다. 이 의외의 사변에 시위하였던 문무대신들이 놀라서 추장의 수레를 붙들고자 뒤를 따랐으나 그들의 말이 수레의 말을 따를 수가 없었다.

옥저 넓은 벌 동쪽 끝에서 돌을 맞은 말은 그 넓은 벌을 무방향하여 막 달아났다. 수레 위의 최리는 비명을 올리며 구원을 청했으나 각 일각 대신들의 말과의 거리는 더 멀어갈 뿐이었다.

소년은 잠시 미소하면서 이 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최리의 수레가 꽤 멀리 간 뒤에야 비로소 거기에 매어 두었던 자기 말의 고삐를 풀고 말 등에 올라 앉았다.

『백룡(白龍)아 어디 네 발을 시험해 볼가?』

말등에 올라 앉아서 갈기를 한번 두들기고 소년은 숲에서 나섰다.

『자 ─』

소년이 한번 발로써 말 배를 찰 때에 말은 우렁찬 소리를 내고 발로 땅을 찼다.

먼지가 일었다. 먼지 뿐이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한 지점에 먼지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그 먼지는 순식간에 이동하였다. 말도 소년도 보이지 않고 다만 일어나는 먼지 가운데서 말발굽 소리만 우렁차게 났다. 놀라운 속력을 가진 말이었다. 최리의 신하들의 말을 어느듯 뒤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일로 최리의 수레를 향하여 달려갔다.

돌개바람과 같이 앞으로 달아가는 먼지 ─ 그 먼지는 차차 최리의 수레에 가까워 갔다. 접근 되었는가 생각되는 순간 어느듯 말과 수레는 한열(列)에 서게 되었다.

『섰거라! 이 노마(駑馬)야.』

이것이 소년의 입에서 나온 호령일가. 이 호령에 넓은 벌이 더릉 더릉 울렸다.』

이 호령에 수레의 말은 주춤하였다. 그 주춤하는 순간 소년은 자기 말에서 나는 듯이 수레의 말에 옮아탔다. 소년의 주먹이 말 콧등에 힘 있게 내렸다.

놀라서 무정처하고 닫던 말은 이 괴물에게 놀라서 그 자리에 서 버렸다.

말이 서는 것을 기다려 가지고 소년은 말께 내려서 수레의 인물에게 돌아섰다.

『어떤 분인지 욕 보셨읍니다.』

수레의 최리는 얼굴이 창백하여 가지고 이 소년을 굽어보았다.

『어떤 아이인지 고맙다 ─ 하마트면 ─』

그러나 소년이 그 말을 중도에서 끊었다.

『말씀 조금 높히십쇼. 나는 고구려 왕자 호동(好童)이오.』

『오 네가 일직 소문에 듣던 호동이냐. 나는 낙랑왕 최리로다. 듣던 바에 지지 않는 호협 소년, 고맙다.』

이 말을 듣고 소년은 한 걸음 물러 섰다. 그리고 다시금 인사를 드렸다.

『그러십니까 누구신지 모르고 그만 ─.』

『아니 괜찮다. 고맙다. 너 아니면 큰 욕을 볼 번했다.』

때는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十五[십오]년, 지금부터 一[일]천 九[구]백 여 년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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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동왕자는 낙랑추장 최리의 강권에 못이기는 척 하고 낙랑 대궐에 같이 갔다.

낙랑 궁중에서는 호동을 극진히 대접하였다.

첫째로는 인국(隣國) 왕자로도 대접이 융숭하겠거니와 추장 최리의 생명의 은인으로서의 대접까지 대접을 겸하였는지라 세세한 점까지 부족이 없도록 융숭히 대접하였다.

낙랑 궁중에 머무르면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구 융숭한 대접에 표면으로는 만족한 듯이 지나는 호동 왕자로되 속으로는 적지 않은 오뇌를 품고 있었다.

패기 만만하고 돋아 오르는 해와 같이 국운이 융성한 고구려는 일찍부터 이 낙랑을 정벌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적이 있으면 반드시 싸우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고구려 나라로서 이 낙랑을 정벌할 생각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낙랑에는 신기한 북[鼓]과 나팔이 있어서 적병이 내공하면 이 북과 나팔이 저절로 소리를 내어 장차 올 대변을 알리어서 방비케 하곤 하는 그것이었다.

그런지라 북과 나팔이 낙랑에 그냥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고구려의 강병이라 하더라도 감히 침범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패기 만만한 고구려로서는 눈 앞에 보이는 이 진찬을 그냥 침만 삼켜 버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를 정벌치 않으면 속이 편하지 않았다. 정벌키 위해서는 반드시 그 북과 나팔을 없이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어찌 할가.』

정부와 온 국민이 낙랑의 나팔과 북을 없이 할 꾀를 생각하였다.

그러나 낙랑 정부에서도 국보를 좀체로 허술히 간직할 까닭이 없었다. 대궐 창고에 깊이 깊이 감춰 두어서 웬만한 높은 대신들도 함부로 보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면 낙랑 정벌의 희망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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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군신이 이 낙랑의 북과 나팔 때문에 고심하고 있을 때에 이 눈치를 안 왕자 호동은 몰래 아버님의 대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계략을 써서 낙랑 대궐에까지 국빈으로 들어 오게 되었다.

그러나 들어와서 틈 있을 때마다 살피고 탐지하여 보았으나 그 두 개의 신기(神器)는 어디 감추어 두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천년 세월하고 그냥 낙랑 궁중에 묵어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일껏 이곳까지 들어와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한다는 것은 일이 아니다. 힘 있는 데까지 살피고 알 수 있는데까지 탐지하여 보았지만 그래도 알길 없는 신기의 은익처 때문에 호동은 오뇌하였다.

일 없이 너무 오래 여기 있어도 의심을 살 테니까 하루 바삐 알아 가지고 이것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재처조차 알 수 없으므로 호동은 나날이 마음을 조였다.

『어찌 하나.』

무위하게 보내는 날자는 흐르고 흘러서 어느듯 여름도 무르익어 갔다.

그 어느날밤, 호동은 또 밤이 깊어서 뜰에 내렸다.

소나무 향내 그윽히 코에 들어오고 올빼미 길게 우는 여름 밤이었다.

어디 감춰 두었다? 있음직한 곳은 모두 뒤지어 보았다. 그러나 이 넓으나 넓은, 아직도 호동이 보지 못한 곳이 꽤 많았다. 밤마다 밤마다 궁전 안을 남의 눈을 피하여 샅샅이 뒤지는 호동은 이 밤도 북과 나팔의 소재처를 알아 보려고 뜰에 나섰다.

차차 내전으로 들어 갔다. 공주전(公主殿) 가까이까지 갔다.

가까이 가서 보매, 밤도 이슥히 깊었는데 공주전에는 아직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문을 열어 제낀 내전에는 발을 통하여 침의를 입은 공주와 시녀 한 사람이 마주 앉아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 보였다.

젊은 왕자는 문득 여기 호기심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소리를 죽여서 문 밖까지 가까이 갔다.

그때에 문득 들리는 한 마리의 말 ── 그것은 호동왕자라는 자기의 이름에 틀림이 없었다. 깊은 밤 공주는 시녀와 함께 잠도 안 자고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아직 가신다는 말씀은 안 들립니다.』

이것은 시녀의 말이었다. 거기 공주가 응한다.

『도리어 하루 바삐 귀국하셔서 이 눈 앞에 보이지라도 않으시면 잊히기라도 하려만.』

그 뒤에는 한숨.

『공주께서 그렇듯 마음 두시면 왜 아바마마께 말씀 드려서 연지의 연분을 안 맺으십니까. 배필로 부족할 배도 없는 터에.』

『그러니 어떻게 차마 그 말씀이야 드리겠느냐.』

공주는 자기를 사모하는 게 분명하였다.

호동은 잠시 숨어서 이 이야기를 더 들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공주의 마음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 나라의 국보를 찾으려 밤을 택하여 나섰던 호동왕자는 이 공주와 시녀의 하소연을 듣는 동안 차차 마음이 산란하여져서 본시의 계획을 잊어버리고 한참 그들의 이야기만 듣다가 자기의 처소로 돌아 왔다.

젊은 왕자의 가슴은 산란하였다.

그 산란한 가운데서도 자기의 책무는 잊지 않는 왕자는 그 밤을 곰곰히 생각한 뒤에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즉 공주를 농락하자 하는 것이었다. 국보는 자기의 힘으로는 매우 찾기가 힘들 뿐더러 더 찾다가는 혹 발각될 우려도 있다. 그 위험을 피하고도 자기의 목적을 달하기 위하여 이 나라 공주를 농락하자. 그리하여 공주를 통하여 국보의 소재처를 알아 보자.

꿩 먹고 알 먹는 새 계획을 세운 호동왕자는 이튿날부터 새로운 계획 아래서 일을 진행시켰다.

호동(好童)이라는 그의 이름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인물 잘나고 호협하고 용맹 있고 지혜 많은 이 왕자는 자기의 새 계획에 충분한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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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 후 깊은 밤 궁궐 후원에서 서로 몸을 의지하고 사랑을 속살거리는 한 쌍의 남녀와 이것을 망보는 시녀 한 사람을 굽어 볼 자는 하늘 높이 뜬 달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매일 밤 이 한 쌍의 남녀는 그윽한 수풀에서 송진의 향내를 달갑게 맡으면서 사랑을 즐겼다.

그리고 또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공주가 자기 모후에게 모후는 그 지아비 추장에게 ── 이렇게 삼단식으로 호동왕자를 이 나라의 사위로 맞기를 원하였다.

호동의 인물을 사랑하는 추장 최리는 쉽사리 이 원을 들어 주었다.

몇몇 신하의 반대가 있기는 있었지마는 고구려 왕자 호동은 드디어 낙랑공주의 부마로 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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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를 지낸 뒤에 이 새 부부의 의는 보기에 침이 돌만치 좋았다.

추장 최리는 자주 내관을 시켜서 몰래 가서 새 부부를 엿보게 하였다.

그리고 그 매번 새 부부가 의좋게 마주 앉아 있는 모양을 듣고는 혼자서 만족히 웃고 하였다.

그러나 호동왕자로서는 단순히 이 신혼의 재미에만 잠겨 있을 수가 없었다. 자기의 등에 짊어져 있는 크나 큰 책무에 남 모르게 늘 혀를 차곤 하였다.

한 책략으로서 걸은 사랑이요 책략 때문에 성립된 결혼이로되 결혼하고 나니 나날이 새 아내에게 대한 애정도 늘어 간다. 그러나 애정이 늘어가는 한편으로는 자기 책무도 잊을 수가 없는 이 왕자는 새 아내와 즐거이 담화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무겁디 무거운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혼만 하면 손쉽게 알아질 줄 믿었던 북과 나발의 소재처도 급기 결혼하고 보매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자기는 고구려의 왕자 아내는 낙랑의 공주.

북과 나발은 고구려와 낙랑의 국교상 델리케이트한 관계를 가진 물건.

이런 지라 공주에게 물어보기도 난처하였다. 물어 보아서 공주가 무심히 들으면 문제가 없거니와 조금이라도 눈치 이상히 여겼다가는 이야말로 긁어 부스럼이다. 눈치 이상히 보였다가는 신기는 더욱 깊이 감출 것이며 아울러 공주와의 새에 파경지란까지도 생기지 않는다고 어찌 보장하랴.

뜻대로 일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호동왕자는 우울한 심사로 날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고구려 본국의 일이다.

부왕께 아무 의논도 없이 몰래 대궐을 벗어나서 이곳에 온지 벌써 수삭 ─ 자기를 유난히 사랑하시던 부왕은 얼마나 근심하고 계실가.

손 쉽게 목적을 달성하리라고 짐작하고 부왕께 품하지도 않고 왔거니와 와서 이렇듯 날자가 길어지니 거기 대하여서도 매우 마음이 걸렸다.

호동왕자는 낙랑궁실에서 즐겁고도 마음 괴로운 날짜를 하루 이틀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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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도 거의 간 어떤날 호동왕자는 드디어 공주에게 귀국할 의사를 말하였다.

『잠간 귀국을 해야겠소.』

이렇게 공주에게 말할 때에 공주는 깜짝 놀라서 왕자를 우러러 보았다.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세요?』

『갑자기가 아니라 그새 오래를 혼자서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소이다. 아무리 해도 잠깐 귀국을 해야겠소.』

『고국 생각이 나십니까?』

『생각도 물론 나지오. 그렇지만 그 고국생각보다 더 긴한 일이 있오이다.』

『그건 또 무엇이오니까?』

『다른 것이 아니라 공주와 내가 짝을 지운 지도 월여가 되지만 아직 부왕께 품하지도 못한 것은 공주도 아는 배가 아니요? 우리나라 법에 아버님의 허락이 없으면 내외가 되지 못하는 법이외다. 지금 결혼한지 월여, 나날이 정은 깊어가지만 우리나라 법으로 말하자면 공주는 아직 내 아내가 되지 못한 셈이외다. 그러니깐 일단 귀국해서 부왕의 윤허를 얻어서 당당한 부부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요? 내 귀국해서 부왕의 윤허를 얻고 수레를 보내서 데려 갈 테니 그날까지 잠깐 상별치 않으면 안되겠소이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까닭이 이렇게 붙는 이상에는 공주도 하루 바삐 시아버님의 허락까지 얻고 당당한 고구려 며느리로서 고구려 대궐에 들어가야 될 신분인 이상은 말릴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상별은 서럽지만 이 상별은 임시요 장차 영구히 고구려 며느리로서의 자리를 준비할 상별이라하면 어서 바삐 왕자를 보내서 부왕의 윤허를 얻고 싶었다.

이리하여 호동왕자는 낙랑추장 장인에게까지 허락을 받고 귀국의 길을 떠났다.

공주는 교외에까지 수레를 같이 타고 나오면서 이 상별을 울었다. 잠시의 상별이나마 떠나기가 싫었다. 그런 특별한 까닭이 붙는 작별이 아니라면 보내기가 싫었다.

『그럼 얼른 윤허를 받으시고 저를 데려가 주세요.』

『내 힘껏 해보리다.』

『한각을 삼추와 같이 기다리리다. 매일 한번씩 기별을 해 주세요.』

책무가 중하지만 않다면 왕자로서도 이별하기 싫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책무를 진 왕자는 이별을 이별로 여기지 않고 교외에서 공주와 작별하고 말에 채쭉질 하여 정다운 고국으로 돌아왔다.

부왕과 대신들의 환영은 굉장하였다.

오래 소식이 없이 종적을 감추었던 왕자가 무사히 돌아 온 지라 왼 나라가 들어서 이 왕자의 무사와 건강을 축하하였다.

『그새 오래 어디 가서 있었느냐, 퍽 근심했다.』

간곡한 부왕의 이 사랑의 말에 호동왕자는 쓸쓸히 머리를 숙이어 절하였다.

『나랏님. 그간의 소신의 행적에 관해서 아직 주상할 수가 없사옵니다. 소신 생각하는 배가 있사오니 아무 하문도 마옵시고 소신이 폐하께 주상하는 날까지 기다려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이렇게 왕자는 말하였다.

왕도 왕자의 심려와 다모(多謨)를 짐작하는 지라 무슨 적지 않은 곡절이 있을 줄 알고 다시는 연위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왕자의 입에서 연위를 말할 날이 올 것을 고요히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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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공주에게서는 나날이 기별이 왔다.

사모하는 정, 애타는 마음, 구구절절이 불타는 듯한 글이 하루 한번씩 이르렀다. 그리고 그 편지마다 부왕의 윤허가 났는지 물어보는 투로서 공주가 얼마나 초조해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왕자는 일체 회답을 안하였다.

마음에 깊은 계교를 품고 있는 왕자는 공주의 사랑의 글을 볼 때마다 젊은 마음에 타오르는 정열은 공주에게 지지 않았으나 한 글자의 회답도 안 냈다.

왕자에게서 회답을 못 본 공주는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편지의 연정은 나날이 더 맹열하여 갔다. 한자의 회답도 없는 왕자를 나무래는 언구도 많이 있었다.

애타는 그 꼴, 초조해 하는 모양을 눈앞에 서언히 보면서 그 공주에게 못지 않게 자기의 마음도 애타고 초조하였지만, 왕자는 그냥 한자의 회답도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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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한 달, 공주의 편지가 인젠 나무램으로 차게 된 뒤에 왕자는 비로소 처음으로 공주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새 한 달을 날마다 던지신 옥필을 하나도 남김없이 보았읍니다. 생의 마음 공주도 아는 지라 생인들 왜 한자 글월을 공주께 올릴 마음은 간절치 않았으리까. 그러나 생은 번민하는 배가 있어서 아직도 글월 올리지 못하였사오니 널리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그날 공주와 작별하고 귀국하온 이래 오매불망의 이 마음이야 어찌 공주에게 지리까. 하루 바삐 부왕의 윤허을 얻어서 백일 아래 공주를 모셔 올 날을 나날이 기다리고 기다렸읍니다. 그러나 아직껏 부왕은 윤허를 하지 않으시오며 매우 어려운 조건을 내어 세우시므로 생은 그 조건은 차마 공주께 알릴 수도 없고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지금껏 어름 어름 글월을 밀어 온 것이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생은 전력을 다하여 부왕의 어의를 도리켜 보아서 부왕의 윤허를 얻은 뒤에 이 희보를 공주께 알리려 한 것이 부왕의 어의는 좀체 듣지 않고 공주의 힐책은 나날이 심해가므로 뜻에 없는 붓을 오늘 들었읍니다. 이 흉보를 적지 않을 수 없는 생의 손을 생은 스스로 끊고 싶소이다.

부왕의 어의는 이렇듯 견고하옵고 그 조건은 생으로서는 차마 공주께 격언할 배가 못 되오니 이를 어찌하오니까. 생은 스스로 결심한 바가 있나이다.

부왕의 불허하시는 우리의 연분은 깨끗이 잊고 내생에서나 차생에 미진한 인연을 다시 즐길 밖에는 도리가 없을가 하나이다.

공주여, 내내 안녕하시옵소서. 차마 잊을 수 없는 공주를 잊지 않으면 안될 이 환경을 생은 무한히 저주하나이다.」

이 편지에 대하여 공주는 즉시로 회답하였다. 부왕의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들어 드릴 수 있기만 한 것이라면 무엇인들 꺼리리까. 이여 삼생을 맹서한 양인임에 감춤없이 서로 마음을 알리어 어떻게든 최상의 결과를 얻도록 노력하여 보십시다 하는 편지였다.

호동왕자는 또 회답을 썼다.

── 조건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귀국에 비장해 둔 북과 나발에 관한 것이외다. 그 북과 나발은 고구려와 낙랑의 국교에 커다란 암영을 던지는 자로서 그런 것을 비장해 두었기 때문에 고구려는 늘 귀국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고 경계를 하려면 서로 적의(敵意)가 생기는 것이요, 적의가 있으면 언제는 폭발할 날이 있으니 이런 근심이 있는 나라의 공주를 본국의 왕자비로 맞아 오기가 매우 힘들다 하는 것이 부왕의 의견이외다. 그런지라 그 북과 나발만 없어지면 양국의 국교도 친선하여질 것이며 친선한 이상은 혼인 쯤은 이편에서 도리어 청혼하겠지만 그 국교상의 방해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친선치 못하매 혼인도 못한다 합니다. 그러나 북과 나발은 귀국의 국보로서 이것은 절대로 처치할 수 없는 보물이니 어찌 하오리까. 이러므로 공주와 나와는 도저히 즐거운 장래를 볼 수가 없소이다 ── 이런 의미의 회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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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수일 후 공주에게서 다시 온 편지를 보고 호동왕자는 눈물을 흘렸다.

소녀가 몰래 그 북과 나발을 깨뜨려 버렸읍니다. 이것 모두가 오로지 낭군을 뵙고 싶은 정열에서 나온 바이오니 인제는 부왕께 그대로 품하시와 소녀를 데려 가도록 차비를 하여 주십시옵소서 ─ 하는 뜻이었다.

이 넘치는 정열이 눈물겨웠다. 이 정열에 대하여 책략으로서 응한 자기의 태도가 얼마간 부끄럽기도 하였다. 더구나 자기도 또한 공주에게 지지 않도록 사랑하는 몸이라 무슨 큰 죄나 지은 듯하기까지 하였다.

『나랏님, 소신의 흉중에 깊이 감추었던 책모를 오늘 주상할 날이 이르렀읍니다.』

부왕께 알현한 호동왕자는 이렇게 아뢰었다.

그는 과거 반 개년 동안에 그의 행한 일과 그의 오뇌를 죄 털어서 부왕께 아뢰었다. 낙랑을 정벌키 위하여 그 나라의 북과 나발을 없이 하려고 꾀를 써서 태수의 신임을 사던 일로 비롯하여 낙랑공주와 결혼케 된 사유며 드디어 지금 초지가 관철되어 낙랑에는 인젠 북과 나발이 없어졌다는 사유를 죄 이야기하였다.

『성사 여부를 추측키 어렵사와 아직 상주치 못하고 유예하던 터이올시다.』

이 상주를 듣고 한참을 묵묵히 생각하던 왕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반갑기는 반갑다. 그러나 이 뒤 낙랑공주를 어떻게 하려는냐.』

왕자는 대답치 못하였다. 마음에 먹은 바 생각은 있지만 그대로 복주할지 어떨지 주저되었다.

『아녀자를 농락한 네 책임을 어찌 하려느냐.』

재차 왕은 물었다.

왕자는 잠시 더 있다가 대답하였다.

『나랏님 만약 낙랑의 신기를 없이 한 것이 군국의 공이 된다 할 진대 소신은 나랏님께 그 공에 대한 상사를 청하올 권리가 있는 줄 아옵니다. 낙랑공주 또한 소신과 아울러 나랏님께 그것을 청할 권리가 있는 줄 아옵니다. 그 권리를 주장하올 심산이옵니다.』

『무엇을 청구할 테냐.』

『공주를 나랏님의 자부로 불러 주시기를 탄원하올 심산이올시다.』

왕의 엄한 얼굴 아래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야 한다. 공도 공이려니와 나라를 위해서도 아녀자의 정을 농락한 비겁한 자가 돼서는 못쓴다. 네 소정 미리 승낙한다.』

이 어지에 왕자는 감읍하였다.

비밀히 낙랑 정벌의 군사를 일으키노라고 고구려 조야는 물끓듯 하였다.

이 정벌군의 통수(統帥)권을 받은 호동왕자는 일변 국사를 정돈하고 한편으로는 좀 조용할 때마다 혼자서 생각하고 생각하고는 탄식하고 하였다.

어리석지 않은 공주이매 자기 나라의 북과 나발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물론 알 것이다. 그 가치를 알면서도 능히 그것을 깨뜨려버린 크나큰 공주의 애정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애정을 장차 무엇으로 보답하나 지금 자기는 국무에 바쁘다. 그 국무라는 것이 즉 공주의 나라를 정벌하려는 것이다. 공주의 나라를 둘러엎으려는 것이다.

그의 애정에 대한 이 반역 ─ 이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언짢았다. 스스로 부끄러웠다. 더구나 만약 낙랑에서 자기 나라 보배가 깨어진 것을 발견하는 날에는 재화가 공주의 몸에도 미칠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나라를 반역하고까지 오직 사랑에 살려는 공주의 심경을 생각할 때 거기에 대한 커다란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공주여. 그대의 나라가 장차 망할 것 ─ 이것은 천명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으리로다. 천명에 쫓아서 그대의 생국은 비록 망한다 하나 장차 고구려의 왕자비로서 그 뒤에는 대 고구려의 왕후로서 그대의 개인적 영예는 그대의 머리에서 벗길자 없도다. 그대가 아버지의 나라를 배반함으로써 낙랑의 공주의 지위에서는 떨어진다 하나 장차 고구려 국모의 지위에서는 그대를 떨굴 자 없도다.

자 어서 군마를 모아 가지고 낙랑으로 가자.

나라를 위하여 경사요, 겸하여 나 개인의 경사를 위한 진군으로다.

이리하여 군사를 급급히 모아 가지고 호동왕자는 낙랑 정벌의 군사를 이끌고 용감히 고구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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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한 북과 나발이 이미 없어진 낙랑에서는 고구려 정벌군이 낙랑 성하에 이르기까지 이를 알지도 못하였다.

온 낙랑이 태평의 꿈에 잠겨 있을 때에 홀연히 고구려 군마의 요란한 소리는 이 안일의 백성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런 변란이 있으려면 먼저 북과 나발이 제절로 울어 줄 터인데 그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고구려 군사가 이르렀는지라 낙랑 조야는 낭패하였다.

이것으로써 승부는 벌써 결정된 셈이다. 신기가 깨졌는지라 낙랑 장졸은 벌써 기운이 꺾였다. 싸울지라도 반드시 질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믿었는지라 어차피 질 전쟁은 애당초 하기부터 피하려 하였다.

의기 하늘을 찌를 듯한 고구려 군사와 미리부터 기를 꺾인 낙랑군사의 싸움이라 그것은 전쟁 같지도 않았다. 두어번 살을 쏘아본 뒤에는 낙랑군사는 장수의 명령도 듣는 둥 마는 둥 제각기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고구려 군사는 성 안으로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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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군사가 성하에서 싸움을 돋울 동안 궁중에서는 신기를 깨뜨린 범인을 물색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공주의 행사며 그 행사가 호동왕자의 지휘에서 나온 것인 줄을 알 때에 군신의 노염은 극도에 달하였다.

이리하여 고구려 군사가 한창 성내로 물밀듯 밀려 들어오는 그 때에 궁중에서는 아버지 왕의 칼 아래에 낙랑공주는 한 개 죽엄으로 변하여 버렸다.

그의 사랑하는 남편 호동이 지금 이 대궐을 향하여 말을 달려 오거늘 그는 아버지의 노염의 칼 아래 애처러운 죽엄이 되었다.

그리고 군신은 고구려 군사를 피하기 위하여 대궐을 뒤로 하여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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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어디 있느냐.

정벌군의 선봉에서 칼을 뽑아 들고 백마에 높이 앉아 낙랑 성중으로 들어온 호동왕자는 이소란의 도시에서 공주를 구해내고자 부하 장병들을 남겨두고 단신 대궐로 달려 왔다. 횡하니 열린 대궐로 들어오며 보매 대궐은 텅텅 비인 듯 헌데 공주인 듯한 자가 홀로 정전 뜰 앞에 엎드려 있다.

왕자는 그리로 말을 달려 갔다. 그리고 그냥 닫는 말에서 뛰어 내리면서 뜰에 엎드린 여인의 몸을 부등켜 안았다.

『앗!』

왕자의 팔에 부등켜 안겨서 올아 온 자는 여인의 상반신 뿐이었다. 하반신은 그냥 땅에 엎드린 채 ─ 그리고 그 아래는 펑 하니 피가 고여 있었다.

너무도 놀라서 하마트면 떨어뜨릴 번한 여인의 상반신의 얼굴을 보매 틀림없는 공주였다.

『공주!』

그러나 무슨 대답이 있으랴.

『공주!』

『공주!』

텅 빈 대궐에는 공주를 부르는 왕자의 애규성만 울렸다.

『공주! 공주!』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그 온기로써 참화를 본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빨리 왔더면 구해 낼 수도 있을 걸. 공주의 상반신을 높이 쳐들고 부르며 부르짖는 호동왕자 ─ 그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낙랑 정벌에는 승리하였다.

일단 몸을 피했던 최리며 신하들도 모두 고구려 군사에게 발견되어 붙들려 왔다.

공주만 만약 살아 있었더라면 혹은 호동왕자도 최리는 사랑하는 아내의 아버지라 생명은 유지되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의 최리는 단지 적국 추장일 다름이었다. 그 위에 공주를 죽인 원수일 다름이었다. 최리 이하의 장신은 모두 군율로 시행하였다.

🙝 🙟

승전은 하였다. 승전 군인이노라고 장병들은 모두 기뻐서 날 뛸 때에 승전군의 통수인 호동은 쓰린 심사에 늘 혼자 속으로 울었다.

이번 첩보와 함께 공주 죽은 사연이 고구려 서울까지 들어가매 왕은 승전을 축하하는 동시에 왕자의 심경을 짐작하고 공주의 무덤에 (왕후의 예에 따라서) 능호(陵號)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이만 일로서 왕자의 마음이 풀릴 까닭이 없었다. 온갖 축하연 전첩연을 모두 물리치고 왕자는 늘 홀로 쓸쓸히 공주의 새 능전에 배회하였다.

전첩도 국토확장도 모두 지금의 왕자에게는 무의미 하였다. 이렇듯 공주를 잃을 줄 미리 알았던들 그는 애당초에 낙랑 신기는 염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 🙟

낙랑은 고구려 강역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정벌군은 뒤에 당당히 고국에 개선하였다.

그러나 이날 가장 빛나는 얼굴로써 선봉에 서서 들어와야 할 개선 장군 호동왕자의 얼굴이 너무도 음침하고 쓸쓸한데 고구려 백성들은 경이의 눈을 던졌다.

『개선장군 만만세 하옵소서.』

『호동왕자 만만세 하옵소서.』

『대 고구려 만만세 하옵소서.』

온 백성의 환호성을 듣는지 마는지 개선장군은 맥없이 백마에 몸을 싣고 얼굴을 가슴에 깊이 묻고 ─ 마치 패군 지장과 같이 대궐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궐에서 왕 이하 못 대신들의 축하를 그냥 거절하고 왕자궁으로 들어 가서 거기서 비로소 목을 놓아 울었다.

고구려 건국한지 약 一[일]회갑 뒤(一回甲後[일회갑후]) 대무신왕 十五[십오]년 가을 지금으로부터 一[일]천 九[구]백여 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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