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조선독립의 당위성 외/조선독립의 당위성 2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고가

일본 내에서는 당신 일행에게 불편한 일이 일어나면 어떤 일이든지 내 힘을 다 하겠지만, 상해에서는 반대소리가 격렬하다는데 거기까지는 내 힘이 미치지 못하니, 돌아가신 후에 만에 하나라도 당신의 일본방문을 반대하는 일파로부터 위해를 당하는 일이 있으면 심히 미안한 일이오.

여운형

상해에 있는 인사들 중에 나의 일본 방문이 불필요하다 하여 일시 반대할지라도 돌아가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또 당신과 나눈 얘기의 전말을 보고하면 넉넉히 이해할 줄 믿습니다.

고가

당신의 성의에 대하여는 깊이 감사하며 기쁘게 생각합니다. 원래 노다 ․ 미즈노 ․ 다나카 등 제씨와도 함께 얘기를 나누기 위하여 초대하였으나 바쁘다는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아 매우 섭섭합니다. 오늘 담화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당신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조선을 통치하여 부강케 하려면 장차 어떻게 해야만 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당신의 고견을 말씀해 주시오.

여운형

정치는 반드시 민의에 순종하고 시대에 적합해야 됩니다. 조선 정치 또한 마땅히 그래야 되지, 민의와 시대에 적합지 아니하면 안 될 것이오. 만일 민의가 일본통치 하에 있기를 원하고 시대도 그것을 허용할 것 같으면, 일본통치 하에 있으면서 부강책을 추구하려니와, 전 민족의 요구가 독립에 있고 시대의 형세가 한국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하는 오늘일 것 같으면 독립이 선결문제요, 부강책은 그 다음으로 강구할 문제입니다.

일전에 당신이 우리나라의 부강에 대하여 말씀을 많이 하셨고 나도 이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담담하게 토론을 해보고자 합니다. 일전의 말씀에 ‘평화의 신의 위력만 믿고, 평화를 보장하는 실력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신의 뜻과 정치적 현실은 합치하지 않는다. 또 당신의 독립 주장은 이론에 불과하고 내가 부강을 주장하는 것은 실질적인 것이다’라고 하셨소. 그러나 오히려 당신의 말씀은 소극적이요, 나의 주장은 적극적인 것입니다. 인생은 불행하게도 모두 다 선한 것인 아니어서 장래에도 반드시 신의에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날 것이 분명한 만큼, 평화보장의 실력이 있어야함은 물론이지만, 생각건대 힘이란 정신적인 면과 물질적인 면이 있는데 평화보장의 실력 중 병력과 부력은 물질의 힘으로서 소극적 실력이라 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이는 평화가 파괴된 이후에 방위하는 힘에 불과하여 평화를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힘은 아닌 만큼, 소위 무력적 평화는 평화를 오게 하고 또 평화를 유지시키는 것은 아니요. 그러므로 소극적인 것이오.

반면 적극적 힘은 정신력인데 이것은 인류의 의식과 감정을 청결하게 하고, 또 세계의 사회조직을 현재보다 더 이상적으로 화평케 하고, 신의 뜻을 현세에서 실현케 하여 평화를 근본적으로 파괴치 않게 하는 것이외다. 조선 문제에 대하여서도 근본적으로 하늘의 뜻과 민의에 순응하여 원만한 평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고식적으로 무력과 정략으로 현상유지만을 꾀하여 임시적 평화를 얻으려고 하는 소극책이므로 이것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외다.

현실에 걸맞지 않는 이상은 공상에 그칠 뿐이며, 이상과 관계가 없는 현실은 곧 죽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치론은 실제적 세밀(細密)을 요구하며 공상적 개괄을 불허합니다. 종래 일본인들은 “합병은 호의로 된 것이다, 한인은 동화가 가능하다, 한인은 선정에 기뻐 복종할 것이다”하는 오해를 품어 왔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도 아직까지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일선(日鮮) 일체주의’니 ‘일선동화주의’니 하는 것으로 창도(唱導:앞서 주장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이상 즉 공상입니다. 그러니 오늘 여기서는 현실에 맞는 세밀한 의논을 합시다.

평화란 무엇이오? 평화의 진수는 정신적 평화 즉 투쟁이나 시기나 분노나 원한 등이 없는 그야말로 새가 노래하고 꽃이 웃고 햇볕 따스하고 바람이 온화한 활동적 자연과 자유의 기상(氣像)에 있는 것이지 결코 죽은 바다(死海)와 같이 평정(平靜)만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 아니외다. 모든 생존의 희락과 희망과 자유와 평등과 존귀가 있는 가운데 평화가 있는 것이지, 위험과 걱정(危(虞?))과 절망과 압박과 차별이 있는 곳에는 평정도 없을 것이거늘 하물며 어찌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의미를 바탕으로 하여 평화를 논의해 봅시다. (1)대내적 동양 평화 즉 동양 각국이 상호 평화하고 (2)대외적 동양 평화 즉 서양의 동양침략을 방어하여 동양의 평화를 보장하면 그만일 것이요, 동양에 나라가 많이 있다고 하지만 그 중에서 조선과 일본과 중국이 서로 불목(不睦)하면 동양에 평화가 있다고는 못할 것이 아니오? 또 대내적 동양평화가 없이는 대외적 동양평화를 유지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 아니오? 그런데 남의 나라를 강제로 병합해 놓고 그 나라 인민이 내 나라의 통치하에서 만족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근거 없는 공상이며 망상이 아니고 무엇이오.(이때 점점 어조가 격렬해지다)

민족적 자존심, 독립심이 풍부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한합병을 분개하고 한탄하며 나라 잃은 국민이 된 것을 비탄하다가 참고 견딘 지 10년, 이제 와서야 거국일치 민족적 독립운동을 개시하였으니 이 자존심과 독립심은 인격의 요소요, 진화의 근본인 것이요. 그런데 이것을 압박하여 소멸시키고자 하니 그것이야말로 인류로서 할 수 없는 죄악이 아닐까요? 이 자존심과 독립심에 바탕한 민족적 자각인 독립운동을 무력으로 진압코자 합니다. 무력으로 과연 이 벌거벗은 알몸(赤身)까지 누를 수가 있을는지요? 또 일본의 중국에 대한 정책을 보더라도 동양 평화라는 미명 하에 종래의 제국주의 침략을 여지없이 감행함으로써 4억만 중국 인민으로 하여금 일치하여 일본을 원수로 여기게 하였으니 이것 또한 동양 내부의 평화를 파괴함이 아니고 무엇이오.

그리고 대외적인 동양 평화에 이르러서는 내부에 분열과 쟁투가 있어서 단결이 불가능한 마당에 서양의 동양침략을 어떻게 견뎌내겠소. 그런데 중국의 내분을 속으로 웃으면서 이를 기화로 삼는 일본의 소위 총명한 정치가들은 입으로는 동양 단결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속으로는 중국 내분의 근원이 되는 야심 ․ 탐욕 ․ 권모술수 등 온갖 수단을 중국에서 행하지 않습니까? 또한 우리나라에 대하여도 같은 모양이 아닙니까? 요컨대 내부의 동양 평화가 없이는 대외적 동양 평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또 한국이 독립하지 않고서는 동양 평화를 바랄 수 없음으로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동시에 일본의 회개를 바라는 것이 일전에 말씀드린 바외다. (어조의 격렬함이 극에 달함에 따라 탁자를 치는 소리까지 들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음)

(조금 낮은 음성으로) 당신은 또 국방력이 없는 오늘의 조선에 독립이 주어져 방임된 채 돌보아주지 않으면 마치 열대지방의 식물을 한대지방에 이식해놓고 아무런 보호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면치 못하리라고 기우 하셨소. 그러나 그 말씀은 전혀 당치도 않는 비유의 말씀이오. 원래 우리 조선의 주위는 일본의 침략만 없으면 어떠한 위험도 볼 수 없으며, 혹시 불행히도 위험을 본다 하여도 국가의 실력이 이미 넉넉하여 남의 보호를 받지 않고 자립하여 발전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한대지방에 이식된 열대의 초목은 유리 온실 안에서 수증기에 의지하여 잠시 생명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생존의 가치와 의미는 이미 벌써 상실한 것이며, 다시는 자연의 공기에서 비와 이슬의 혜택을 향수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니, 그럴진댄 차라리 한풍냉설 (寒風冷雪)에서 열 번 죽는 것이 낫지요. 그런 상황에서 사람이라면 타인의 보호 아래서 자기생존의 의의를 상실한 기생적 생활을 즐길 자가 어디 있겠소?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의 명치유신 이후에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모르겠소만 청년 개량가(改良家) 김옥균 ․ 박영효 ․ 서재필 ․ 유길준 등 여러 선생들께서 일본과 일치하여 신문명을 하루바삐 수입하여 국정을 유신하려고 하였습니다. 완고당(頑固党)들은 혹은 원세개 혹은 러시아와 통하여 일본을 반대하였소. 그리하여 김옥균 ․ 박영효 등 제씨는 한때 일본의 힘을 빌려 정치의 혁명을 도모하다가 실패한 일도 있습니다.

일청, 일러 양 전쟁의 원인이 한국에 있었다함도 옳은 말씀이며, 또 이 전쟁에서 다대한 희생을 하였다함도 사실이라 믿습니다. 또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일본이 힘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라 함도 틀림없는 동시에 한국의 조력이 적지 않았음도 부인할 수 없지요. 러시아 세력이 유럽으로 팽창할까 우려하는 독일은 러시아를 꾀어 그 세력을 동으로 이동케 하였고, 또 러시아가 동양의 패권을 혼자 차지(獨專)할까 시기하는 영국은 일본을 권유 ․ 원조하여 러일전쟁을 일으키게 하였지요. 이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것은 일본 자신의 행복임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한국도 기뻐하였고 열강도 축하하였소. 그때 일본이 한국에 대하여 성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두 믿지 않지만, 나는 이것을 시인합니다.

그러나 말씀하시기를 일한합병에는 이러이러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였습니다만, 합병한 결과가 어찌 되었으며 현상은 어떻습니까? 또 합병의 형식을 유지하려고 할 때 앞으로 쌍방에 어떠한 화란(禍亂)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최초에 성의가 있었음을 무엇으로 증명하실 수 있소?

시대가 변천하였으니 일본도 지난날의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며, 강권 시대는 이미 지났고 평화의 신이 정의의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툴 때가 아니라 화목할 때가 아닙니까?

이것이 오늘 이 자리의 본의가 아닙니까.

무력이 없는 조선이 독립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를 파괴할 위험이 있다하나 그것은 구실에 불과한 것이외다. 지금 러시아나 독일이 조선을 엿볼 겨를이 없음은 물론이오. 이번 전쟁에서 교훈을 얻은 그 국민들은 반드시 자기 주권의 침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위험이 있을 것 같으면 우리는 더욱더 공평한 지위에서 정치적으로 대립하여야 할 것이오. 필요에 따라 단결함이 옳지 않겠소? 또 당신은 합병한 것은 조선이 약함으로 무력과 부력(富力)을 충실케 하여 제3국이 감히 침입치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 그렇다면 과연 무력과 부력을 얼마나 충실케 하였습니까?

우리나라는 합병한 후로 무력 ․ 부력 그밖에 모든 것이 전보다 오히려 약하여짐이 극에 달하여 외세방어의 힘이 전보다 줄고 또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금후로는 우리 양 민족의 쟁투가 일심하여 종식할 날이 없으리라 믿소.

금번 구주전란에서 독일이 프랑스에 패한 것이 독일이 프랑스(法國)보다 약하였던 것이 결코 아니요. 벨기에의 혈전으로 인하여 프랑스는 보존하였고 체코의 내란으로 인하여 프랑스가 패한 것이요. 그러므로 담 안에 두는 것보다 이웃에 친구를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오.

실력이 없는 한국이라는 말은 당신만이 아니라 일본인은 누구나 하는 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 관찰인지 잠깐 얘기해 봅시다. 실력은 1)정치적 실력 2)군사적 실력 3)경제적 실력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지요.

1) 정치적 실력은 내치와 외교가 될 것이오.

① 먼저 내치로 말하면 우리 민족은 반만년 동안 국가적 생활을 계속하여 자치능력이 풍부하고 또 도덕적 훈련에 강하고 그밖에 언어 문자 풍속의 통일이 완전하며, 국토가 좁고 인구가 적어 중국과 같은 내정의 분란(紛擾)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망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 일치단결이 용이하고, 더욱이 새로 자라난 우리 청년들은 충의와 이상이 신선하여 일본 청년들의 그것보다 몇 배를 넘을 것으로 자신하오. 일본에서도 공평한 학자는 그렇게 평하는 것이 사실이오. 그러므로 우리는 내치의 힘이 충실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소.

② 외교로 말하면 우리는 침략을 하려는 야심은 없고 다만 정의와 인도주의에 굳게 서서 세계 평화의 선봉이 되어 문화로써 세계에 웅비하고자 하는 욕심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밖으로부터 시기를 받지 않을 것이오. 또 지리적 ․ 전략적으로 보아도 한국의 독립은 동양 평화와 세계 평화의 요새가 되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존중과 옹호가 있을 것이며, 또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예의를 존중히 여기고 외국인을 공경하여 친절히 대우하는 특성이 있으므로, 정치상의 외교는 그만두고 국민외교로 만도 넉넉합니다.

2) 군사적 실력 이것이 당신의 요점이지요?

① 내란을 지정하려면 이에 필요한 군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는 재(財) ․ 지(智) ․ 인(人)을 두루 갖추어야 함은 당신도 이의가 없을 줄 믿소.

② 외적을 방어할 군사력 준비는 가상적국의 군사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이오. 가상적국이 일본인가 중국인가 혹은 영 ․ 미 ․ 러 ․ 독 등의 단독인가 또는 그들의 연합인가 등에 따라 달라지지요. 만일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의 적이 된다면 동양의 평화는 파괴되지요. 영 ․ 미 ․ 러 ․ 독의 연합 또는 단독이라면 우리 3국은 연합하여야 될 것이요. 물론 현재의 형세로는 한국이 단독으로 어떤 강국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함을 사실이오. 그러므로 가상적국 여하에 따라서 군사준비가 다른 것처럼 정치적 관계에 따라서 군사준비도 달라져야 할 것이니,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 ․ 일본 ․ 중국은 동맹식 연합이란 정치관계를 맺는 것이 마땅할 줄로 믿고, 또 우리도 독립 후 2∼30년 동안 준비하면 여하한 강적이라도 방어할 실력을 갖추게 되리라고 확신하오.

③ 또한 말씀에서 한국이 실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을 승인할 수 없다고 하시지요? 옳습니다. 일본의 무력과 그 밖의 여러 가지 형세에 비하면 미미한 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 일본이 외국과 전쟁에 들어가는 그날에도 그렇게 미미하게 될까요? 우리는 현재 일본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무력이 없음이 사실이오. 그러나 소극적으로 일본의 세력을 분리시키고 군사행동을 방해하는 데는 위대한 힘이 있을 것을 잘 기억하시오. 그러므로 합병 형식을 유지코자 함은 동양 평화를 파괴함이요 또 실력이 없는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는 것은 평화를 파괴하는 것이라 하나 그 말씀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고가

그대의 의지에 나는 동의하오. 내가 만일 조선에 태어났다면 나도 그대와 같이 했을 것이오. 만일 뜻대로 되지 아니하면 총독부에 불이라도 질렀을 것이오. 내 계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그대에게 가장 깊은 경의를 표하오.

(―《독립신문》, 제42호, 1920년 2월 3일자)